반민특위재건

자유인 2009. 5. 8. 13:39

 일진회에 참여한 경남 사람들, 의병토벌에 나선 자들

                                ▲ 의병'토벌'에 나선 자위단원. 1907년 이후 일진회원들은 자위단에 소속돼 의병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에 수록된 사진이다.

 

* 일제강점기 일제에 협력한 단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당시 경남지역에 결성된 중앙조직의 지부, 자생단체 등을 망라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이 글의 대부분은 민족문제연구소, 일제협력단체사전(2004)에서 정리했음을 밝혀둔다. 참고문헌은 단체사전에 나온 문헌을 그대로 원용하였다.<필자주>

 

일제강점기 친일단체 바로 알기 1

 

일진회(一進會)

 

1904년 8월 유신회로 시작한 일진회 경상남도 지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일진회는 “일본의 시정개선을 적극 지지 수용하여 보호통치를 옹호하고 친일 여론을 확산시키며, 나아가 친일정부를 구성하여 일한협력을 공고히 하고 일제의 조선지배 정책 수행에 협조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이에 1904년 12월 진보회와 합동하고 11월 일진회 선언서를 발표하고, 1909년 ‘합방청원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일진회 경상남도지부는 김사영(金士永, 1904년 12월초), 김세제(金世濟), 박영길(朴永吉, 1906. 4. 16), 최영구(1906. 8. 21), 김선재(金善在, 1906. 10. 3․1907. 12. 29∼1909. 2. 13), 조흥원(1906년 12월 1일), 정용태(鄭龍泰, 1909년 2월 13일) 등이 회장직을 맡았다. 경남 지부의 각 군별로 회장과 회원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표1> 경남의 일진회 지부장과 회원

지역

지부장

회원

진주

정용태(鄭龍泰)

박병한(朴秉瀚) 황종락(黃鍾樂) 황도연(黃嶋淵) 최영선(崔榮善)

김수택(金守澤) 최익환(崔翼煥) 박준호(朴準浩) 박용응(朴容應)

유춘일(柳春日) 정준성(鄭俊成) 박기택(朴基澤) 박무일(朴茂日)

강대연(姜大淵) 김갑두(金甲斗) 박병철(朴秉轍) 고대중(高大重)

김선현(金善現) 이기현(李基鉉) 박충일(朴忠一) 손은석(孫殷錫)

사천

정동형(鄭東珩) 최진환(崔晋煥) 한창원(韓昌源) 강태진(姜泰鎭)

조용칠(趙鏞七) 성낙진(成洛鎭) 이경균(李慶均) 이봉규(李鳳奎)

곽종한(郭宗漢) 김형배(金亨培) 오창묵(吳昌黙) 이종락(李鐘落)

구차익(具慈益) 이충후(李忠厚) 강성희(姜聖熙) 배남옥(裵男玉)

강병주(姜炳周) 강정환(姜正桓)

합천

김진한(金鎭漢) 김창권(金昌權) 이병만(李炳萬)

산청

강찬영(姜贊映) 하종홍(河鍾弘)

통영

유창일(柳昌一)

이대영(李大榮)

김해

강위필(姜渭弼) 양부석(梁富錫)

양산

문주선(文周善) 이시영(李時榮)

울산

김홍경(金洪經)

 

경남의 일진회 주요 간부들의 일제협력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선재는 1909년 일진회 경상남도 지부장을 지내고, 1910∼1912년까지 곤양군수를 맡았다. 김사영은 1904년 9월 29일 일진회 평의원, 1905년 1월 23일 경남 사찰위원, 1908년 12월 21일∼1910년 9월 12일 일진회 총무원을 맡은 거물급 친일파라고 하겠다. 김사영은 일본에 ‘합방청원’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통영출신의 유창일(柳昌一)은 일진회 지부장으로 러일전쟁 당시 참전하여 일본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1908년 11월 7일‘훈7등서보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29년 1월 26일 일본인 중심으로 구성된 교화단체인 소화웅변연구회 간사, 같은 해 2월 11일 일본 건국절(기원절)을 맞아 통영신사에서 참배하고, 통영경찰서 연무장에서 재향군인 통영분회 정기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1933년 12월 1일 통영청년훈련소 후원회 회장, 1933년 9월 15일『부산일보(釜山日報)』에 “만주국 승인 1주년 기념”광고를 게재하는 등 친일행적을 남겼다.

 

다음으로 박영길은 일진회 경남위원회 회장을 비롯하여 지방위원회 위원, 부산부 참사(參事), 부산부 사립 초량학교장, 동래부 민의소(民議所) 리사, 조선해수산조합소(朝鮮海水產組合所) 감사, 부산부협의회원 등을 지낸 인물이다.

 

여기서 경남의 일진회원들이 어떤 활동을 펼치는지 살펴보자. 먼저 의병토벌에 참여한 일진회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의병들이 일진회원들을 총살하는 사례가 많았다. 1908년 3월 29일 하동군 청암면 회신촌(檜新村)에 의병 약 15∼6명이 들어와 일진회원 장윤화(張允和)를 총살하였다. 같은 해, 5월 6일 하동군 운곡면 자원촌(自院村)에 의병 20명이 들어와 일진회원 신도기(申島基)을 체포하여 가화면 문암시장으로 연행하여 총살하였다. 또한 7월 24일 의병 6명이 하동군 내횡포면(內橫浦面) 토동(土洞) 62통1호에 거주하는 일진회 회원 장재수(張在洙)를 죽였다.

 

이처럼 하동군에서 일진회원 3명이 의병에 의해 총살되었다. 결국 일진회는 의병을 토벌하겠다고 자위단을 조직하였고, 이로써 일진회원들은 의병들의 표적이 되었다. 또한 일본군과 경남의 헌병분견대 소속 헌병들도 의병의 완전한 토벌을 위하여 자위단과 일진회원들을 동원하였다.

 

일진회

- 존립기간 : 1904년 8월~1910년 9월

- 성격 : 대한제국기 대표적인 친일단체. 일본의 시정개선을 적극 지지 수용하여 보호통치를 옹호하고 친일 여론을 확산시키며, 나아가 친일정부를 구성하여 일한협력을 공고히 하고 일제의 조선지배 정책 수행에 협조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 연 혁

1904.08.18. 유신회 조직.

1904.08.20. 일진회로 개칭.

1904.12.02. 일진회와 진보회 합동.

1905.11.06. ‘일진회선언서’ 발표.

1906.12.13. 시천교 창립.

1909.12.04. ‘합방청원서’ 발표.

1910.09.12. 해산.

 - 주요 인물

윤시병(尹始炳, 유신회장→일진회장) 이용구(李容九), 부회장 유학주(兪鶴柱) 윤길병(尹吉炳) 홍긍섭(洪肯燮) 김택현(金澤鉉)

총재 송병준(宋秉晙), 13부총회장(일명 十三道地方總會長) 이용구, 지방총장 송병준 

 - 일진회는 자위단원호회 등을 만들어 의병들을 토벌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 또한 일진회는 일본에 '합방'되어야 한다고 선언서를 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대한매일신보 ; 황성신문 ; 대한민보 ; 만세보 ; 李寅燮, 元韓國一進會歷史 全4冊 8卷, 文明社, 1911 ; 朝鮮駐箚軍歷史(金正明, 日韓外交資料集成 別冊 Ⅰ, 巖南堂書店, 1967) ; 李鉉淙, 「舊韓末 政治․社會․學術․會社․言論團體調査資料」, 亞細亞學報 2, 아세아학술연구회, 1966 ; 李今奭, 「一進會에 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69 ; 趙恒來, 一進會硏究,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4.

 

출처 : 민족반역자처단협회
글쓴이 : *데이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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