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가득찻잔

자유인 2006. 9. 21. 18:02


紙本 墨書  23.3 * 108.3센티,국보 제180호>

1. 그림이 그려진 배경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되자 그 간 그와 왕래하던 사람들 중 거의 모두는 발길을 
끊게되었으나 그의 제자 이상적<李尙迪. 호는 우선 藕船. 당시 온양군수>만은 
꾸준히 스승을 위하여 책을 구해 보내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 
추사의 유배 5년째인 1844년 추사는 우선<藕船>을 위하여 이 그림을 그렸는데 이 때 그의 나이 59세였다.

2.李尙迪<1804- 1865>
호 藕船  추사의 역관출신 제자로서 북경에 여러차례 왕래하였으며 
시문에 능하여 중국의 문사들과 교류가 깊었다. 
저서에 은송당집<恩誦堂集>과 해린척소<海隣尺素>가 있다.

3.화풍<畵風>
세한도는 그림이기 이전에 그의 암울하고 쓸쓸한 유배생활을 잘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심경사진<心境寫眞>이다. 
자신의 말할 수 없이 처절한 심정은 볼품없는 조그마한 집 한채로서 
표현하였고 제자의 고마운 행동은 지조의 상징인 우뚝한 소나무로 표현하였으며 
'너와 나'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무관심은 
소나무와 집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겨울배경으로 표현하였다.

표현주의적 기법이며  필의가 간결하고 풍격이 높아 
종래의 남종화<南宗畵>를 일신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신남종문인화<新南宗文人畵>이다.





4. 제기<題記>는 소해<小楷>이지만 隸의 필의가 들어있으며 
갈필을 많이 구사하였다.

추사는 24세에 중국 연경에 들어가 많은 금석학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중 가장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학자는 옹방강<翁方綱>이었고 
귀국 후 한 동안 그는 옹방강의 글씨를 많이 썼다. 
그러나 글씨의 원천적인 힘은 篆,隸에 기인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집중적으로 예서를 탐닉하게된다.
이후 西漢의 隸書에서 얻은 강철 같은 힘은 해서,행서,초서에도 응용되었다.

그러던 중 유배생활과 더불어 그의 글씨가 일변하게되는데 
그가 만일 평안한 생활로 일관했다면 글씨가 변하여도 
이렇게 변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유배 10년이란 세월이 본인으로서는 지극히 불행한 일이었겠으나 
지금의 후학들로 보면 오히려 조선 제1의 서학자를 내기 위한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생각도 해본다.


5. 세한도 문장 풀이

歲  寒  圖 ( 추운 날씨를 그린 그림 )

藕船是賞 阮堂藕船是賞 阮堂
藕船(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 줌. 완당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上有 
購之千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지난 해에 두 가지 晩學,大雲 책을 부쳐왔고, 
금년에는 藕耕文編이라는 책을 부쳐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요. 머나먼 천리 밖에서 구한 것이며, 
여러 해를 거쳐 얻은 것이요, 일시적인 일이 아니다.

且世之滔滔 惟權利之是趨 爲之費心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乃歸之海外蕉萃枯稿之人 如世之趨權利者

더구나, 세상의 도도한 물결은 오직 권세와 이익의 옳음만을 따르는데, 
그것을 위하여 마음을 소비하고 힘을 소비함이 이와 같아, 
권력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주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따르는 것과 같구나.
<세상사람이 권력자를 추구하듯 나를 따라주는구나>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以交疎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 權利之外 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세와 이익으로 합한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교분이 성글어진다고 하였는데, 
그대 또한 세상의 물결 속의 한 사람으로 초연히 스스로 도도한 물결에서
 (몸을) 빼어 권세와 이익의 밖에 있으니 
나를 보기를 권세와 이익으로써 하지 않는 것인가? 태사공의 말이 그른 것인가?

孔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 松栢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栢也 歲寒以後一松栢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이후라야 
소나무와 잣나무<또는 측백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 고 하였다. 
松栢은 사철을 통하여 시들지 않는 것으로서, 
세한 이전에도 하나의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하나의 송백이다. 
성인이 특히 세한의 후에 그 것을 칭찬하였는데, 
지금 그대는 전이라고 더함이 없고, 후라고 덜함이 없구나.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거니와,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 아닌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다만 늦게 시드는 정조와 경절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고 또한 세한의 시절에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烏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衰 如下비<丕+邑>榜門 
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

아! 西漢의 순박한 세상에 급암, 정당시 같은 어진 이에게도 
빈객이 시세와 더불어 성하고 쇠하곤 하였으며, 
하비의 방문같은 것은 박절이 극에 달하였구나. 슬프다!  완당노인 쓰다

<참고 : 추사고택에서 배포하는 자료를 참고로 한, 마지막 구문의 풀이문>
아! 서한의 순박한 세상에 급암,정당시 같은 어진 이에게도 
빈객이 시세와 더불어 성하고 쇠하곤 하였고, 
이는 하규(下규)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을 붙여
 '一死一生에 사귀는 정을 알겠고, 一貧一富에 사귀는 모습을 알겠으며,
 一貴一賤ㅡ으로도  곧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겠노라' 고 하였던 
고사에서도 같은 것이었으니, 이렇듯 세상 인심의 절박함이 
극에 도달한 것은 참  슬픈 일이로구나.  완당노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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