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nasica 2010. 1. 15. 21:41

저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요리가 고기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양 고기 요리가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그쪽 방면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그런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시겠만요.  가령 삼겹살이나 생갈비, 스테이크 같은 것들은 그냥 고기를 불에 굽는 것이쟎습니까 ?  솔직히 '고기는 저 식당이 맛있다'라는 이야기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맛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재료의 차이겠지요.  그냥 날고기를, 그것도 손님들이 직접 구워 먹는데 무슨 요리 솜씨가 필요하겠습니까 ?

 

 

 

(이게 요리라면 저도 일류 요리사...) 

 

물론 고기를 어떻게 자르느냐 하는 것도 요리라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긴 합니다.  가령 생선회같은 경우는 아예 불에 굽거나 삶는 과정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생선회는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는 요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생선초밥은 예외...)

 

확실한 것은 고기 요리가 나물이나 해산물로 만드는 요리에 비하면 쉬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역시 요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샐러드를 만들 때도, 채소를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이 꽤 귀찮은 일입니다만, 삼겹살이나 스테이크는 씻는 과정조차 없쟎습니까 ?  불고기처럼 양념장에 재워서 각종 채소와 함께 익혀먹는 요리는 물론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지요.  하지만 서양 고기 요리는 그렇게 복잡한 조리 과정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고기 요리라고, 특히 제게 멸시받는 서양 고기 요리라고 다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도 있습니다.

 

 

 


Sharpe's Regiment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4년 영국) ----------

 

그 꾸러미는 낡은 검은색 망토로 싸여 있었다.  안에는 기름 종이로 포장된, 희미한 색깔의 부슬부슬 부서지는 치즈 덩어리 큰 것 하나와, 반 덩어리의 빵, 그리고 따로 기름 종이로 더 싼 이상한 젤리가 입혀진 고기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죠 ?" 하퍼는 고기를 쳐다 보았다.

 

"모르겠는데."  샤프는 파울니스의 경비병에게서 빼앗은 총검으로 그것을 잘라 조금 먹어보았다.  "더럽게 맛있구만 !"

 

치즈 옆에는 가죽 지갑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꾸러미를 준비해준 그녀에게 정말 고맙게도, 금화 3기니가 들어 있었다.

 
(이 이상한 고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  다음날 밤 런던의 유명한 티-가든(tea-garen)인 복스홀 (Vaux-Hall) 가든에서 알려집니다.)


그는 그것을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잠시 후, 웨이터가 샴페인과 약간의 빵, 그리고 제인 기본스가 바로 전날 밤에 주었던 것과 똑같은 이상한 젤리가 입혀진 고기 덩어리를 가져왔다.  이제 느껴지기로는 어제 밤이 한달 전의 일 같았다. 

 

"이게 뭡니까 ?"

 

그녀는 그의 무식함에 미소를 지었다.  "갤런틴(galantine)이에요.  내가 당신의 일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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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런틴은 주로 이렇게 예쁘게 잘라내어 차가운 상태로 서빙됩니다.) 

 

이 소설 속의 샤프 소령은 런던 극빈층 출신인지라, 갤런틴이라는 요리는 처음 본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원래 갤런틴(galatine)은 프랑스 요리거든요.  이 갤런틴이라는 요리는 소나 돼지, 닭 또는 사냥한 새의 고기에서 뼈를 발라내어 각종 허브 및 양념과 함께 삶은 뒤, 삶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또는 별도로 추가한 젤라틴(gelatin)으로 굳혀서 만든 것입니다.  원래 뼈와 고기를 삶으면 기름도 나오지만, 그 중 일부는 젤라틴 성분이라서 식으면 굳쟎습니까 ?  뼈를 발라내느라고 부서진 고기 조각들을 젤라틴 성분으로 뭉쳐 눌러서 원통형 덩어리로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차가운 덩어리를 얇게 썰어 내놓는 것이 바로 갤런틴입니다.

 

이 요리는 '서양 고기 요리'치고는 상당히 복잡한 요리 과정을 거치는 지라, 꽤 고급 요리로 인식되고, 또 그 모양도 예쁘장하기 때문에 우아하다는 뜻의 galant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차가운 고기 요리라서, 정찬은 아니고, 주로 애피타이저 용도로 내놓는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요리로서, braw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Hornblower and the Hotspur by C.S. Forester (배경: 1803년 프랑스 앞바다의 영국 함대) ---

 

(19세기초반,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브레스트 지역 앞바다에서 프랑스 항구의 봉쇄 임무를 지루하게 수행하던 영국군 함대의 함장들이 펠류 함장의 기함에 오랜만에 모여 펠류가 제공하는 오찬을 같이 하게 됩니다.  악명높기로 유명한 영국 해군의 식사지만, 그래도 제독과 함장들이 모이는 특별한 경우라서 상당히 호화스런 요리가 제공됩니다.)

 

쇠고기 스테이크 파이는 모두들 먹고 싶어하는 지라, 이제 남은 양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혼블로워는 하급 장교로서, 제독들과 함장들이 그 파이를 좀더 먹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양파가 많이 들어간 돼지고기 스튜는 식탁 저 멀리에 놓여있었다. 

 

"저는 이걸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기 앞의 접시를 가리켰다.

 

"혼블로워의 판단력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군요."  펠류가 말했다.  "그 요리가 바로 내 요리사가 특별히 자랑하는 진미입니다.  그것과 함께 이 감자 퓨레가 필요할 걸세, 혼블로워."

 

그건 brawn이었는데, 혼블로워는  그것을 넉넉하게 잘라내어 자기 접시에 옮겼다. 그 안에는 뭔가 거무스름한 조각들이 박혀있었다.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그는 그의 상식을 긁어본 결과, 그 거무스름한 조각들이 들어보기만 하고 먹어본 적은 없는, 트러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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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치즈는 치즈가 아닙니다.  그러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맞습니다.)

 

Brawn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냥 헤드치즈(head cheese)라고 나옵니다.  이 헤드치즈라는 요리는, 돼지나 송아지의 머리나 다리를 푹 삶아서 역시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젤라틴으로 굳힌 식품입니다.  원래 머리나 다리 부분에서 젤라틴이 많이 나오니까, 특히 그 부분을 재료로 많이 이용했지요. 

 

하지만 프랑스의 갤런틴과는 달리, 이 요리는 가축의 머리나 다리 관절 등과 같은 싸구려 재료를 써서 요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고급 요리로 취급되지는 못했습니다. 

 

 

 

(이 사진은 미국에 이주한 스웨덴 사람들이 헤드치즈를 만드는 장면을 리인액트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헤드치즈는 서민층의 음식이었습니다.) 

 

역시 나폴레옹 시대의 영국 해군 장교의 모험담을 그린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명작 해양 소설인 Aubrey-Maturin 시리즈에서도, 이와 비슷한 요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주인공인 영국 해군 함장 잭 오브리(Jack Aubrey)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soused pig's face'라고 되어 있지요.  souse라는 단어는 소금이나 간수에 절이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돼지머리를 삶아 소금 및 식초에 절인 뒤 눌러 놓았다가, 얇게 썰어낸 음식이 바로 soused pig's face입니다.

 

 

 

(Soused pig's face 마데 인 차이나 ?) 

 

이렇게 설명하니까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요리 방식이다'라는 생각이 들으실 겁니다.  그렇지요, 바로 우리나라의 돼지머리 누른 것, 즉 편육과 거의 비슷한 요리 방식입니다.

 

 

 

(이거 가격이 싼 거 맞지요 ?  기쁜 곳(잔치집)이나 슬픈 곳(초상집)이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음식입니다.)

 

뇌입원 지식인을 뒤져 보니 이렇게 나오더군요.

 

"고기를 푹 고아서 물기를 뺀 것이 수육 또는 숙육이고 고아서 얇게 저민것은 편육 또는 숙편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삶아 베보에 싸서 도마로 판판하게 눌러서 얇게 저며 양념장이나 새우젓국을 찍어 먹는다.

이용기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편육이란 것은 약을 달여 약은 버리고 찌꺼기만 먹는셈이니 좋은 고기맛은 다 빠졌는데 무엇이 그리 맛이 있으며 자양인들 되리요 하여 편육의 조리법을 그리 달갑지않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 여전히 좋아하는 음식이고 요즘은 돼지고기 편육을 절인 배추에 싸서 보쌈으로 즐겨 먹는다."

출처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8&dirId=8020110&docId=30855896&qb=7KGx7Y64IOyXreyCrA==&enc=utf8§ion=kin&rank=8&sort=0&spq=0

 

저도 어렸을 때 외가댁에서 잔치할 때, 이런저런 돼지고기를 삶아서 무거운 돌로 눌러 놓은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 기억에 남았던 것이, 그 눌러놓은 것을 마당의 하수구 근처에 두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흘러나오는 기름 때문이었습니다.  굉장히 무거운 돌로 눌러놓으니까, 고기를 싸놓은 천에서 허연 지방질이 조금씩 흘러내려 마치 우유를 쏟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 되더라고요. 

 

 

 

(우리 애도 한때 즐겨먹던 Gummy Bears도 주성분은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입니다.)

 

 

이런 편육류의 요리는 사실 고기를 상당히 많이 먹는 나라에서나 발전할 수 있는, 고도로 발달된 고기 요리 방법입니다.  제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구 표절을 해대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헤드치즈라는 편육류의 요리는 원래 유럽 계열의 요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얘들이 못해먹는 것이 뭐 있겠습니까...)과 베트남, 그리고 우리나라만 편육류의 요리가 있다고 되어 있더군요.

 

 

(고기를 가공하는 거라면 독일 애들이 빠질 수 없지요.  독일식 헤드치즈인 Sulze.) 

 

사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육류를 많이 먹는 나라는 전혀 아니지 않았습니까 ?  그런 우리나라가 편육류와 같은 고도의 고기 요리를 가지게 된 것은, 돼지머리와 같은 '쓸데없는' 부위까지도 낱낱이 긁어먹어야 하는 가난함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해서 약간 씁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유래야 어쨌건 간에, 우리 조상들 덕택에 오늘날 우리도 싸고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갤런틴이든 헤드치즈든 편육이든, 그 주된 성분인 육류의 젤라틴과 관계된 문학 작품 하나만 더 소개하지요.

 

 

 

 

BOULE DE SUIF (비계 덩어리), 모파상 작  (배경: 1870년 보불 전쟁 당시 프랑스) -----

 

(비스마르크의 프러시아군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루앙(Rouen)시의 몇몇 중산층 시민들은 합승 마차를 타고 피난을 떠나기로 합니다.  이 합승 마차에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인인, '비계 덩어리'라는 여인이 함께 탔는데, 점잖은 시민들은 이런 여자와 같은 마차를 탄 것을 몹시 불쾌해 합니다.  그러나 피난 길을 급히 떠나다 보니, 먹을 것을 준비해 온 사람은 이 '비계 덩어리' 뿐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바구니로부터, 그녀는 먼저 작은 질그릇과 은제 컵을 꺼내고나서는, 젤리(jelly,젤라틴)으로 코팅된 조각낸 닭 두마리를 담은 엄청나게 큰 접시를 꺼내었다.  바구니 안에는 다른 맛있는 것들도 많았다.  파이며, 과일같은 온갖 종류의 섬세한 음식들이 3일치 정도 준비되어 있어서, 그 바구니를 가진 사람은 길가의 여인숙에 굳이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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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점잖은 척 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배은망덕을, 한 바구니의 음식을 통해 풍자한 모파상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아직 안 읽어보셨으면 읽어보십시요.  짧고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광고를 보니 "Flavor Sealed Hormel Milk-Fed Whole Chicken in Gelatin Jelly"라고 되어 있네요.  우유를 먹여 키운 닭을 젤라틴 젤리에 굳혀서 포장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닭도 우유를 먹나요 ???) 

 

 

저는 저 위 구절에서 궁금했던 것이, 닭고기를 왜 젤라틴으로 코팅을 해놓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기 좋게 하려는 것도 목적이겠습니다만, 다른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육류의 보존입니다. 저렇게 여행을 떠난다든지 하여, 조리된 고기를 다소 오래 보관해야 할 경우, 저렇게 젤라틴으로 코팅을 해놓으면 공기 중의 산소로부터 고기를 '절연'할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오래 상하지 않도록 보존이 가능했습니다.  다만, 저 젤라틴 자체도 단백질인데, 저 젤라틴은 상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네요.  먹을 때는 긁어내고 먹었을까요 ?

언제나 재미있게 그리고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저도 비계덩어리를 얼마 전 읽었습니다만 음식묘사부분까지 세밀히 관찰하시는 안목이 놀랍군요. 비계덩어리도 그렇고 작가 모파상은 정말 불세출의 작가죠. 리얼리즘의 극에 달한 분이었습니다. 요즘 모파상의 작품들을 몰아서 읽고 있습니다
나시카님 제가 이번에는 좀 딴지를 걸고자 합니다. 정육점집 아들이라서 고기에 대해 들은 것이 좀 있어서요. 나중에 갈굼은 금지 ^ ^
국내처럼 고기를 여러 부위를 분활하여 먹는 나라일수록, 고기를 많이 먹고, 육류문화에 익숙한 나라라고 합니다.
저도 과거에는 안창살까지 빼먹는 사태를 보고, 도대체 얼마나 가난했으면 이것까지 빼먹을 궁리를 했을까 하고 ㅠ.ㅠ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실제 육류가 귀한 원주민이나 저개발 국가, 불교가 원인이 되어 소나 돼지고기를 메이지 유신 이후에나 제대로 먹었던 일본과 같은 나라는 고기의 분류법이 매우 간단합니다. 즉, 뼈와 고기, 내장으로만 분류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특히 내장류를 제대로 못먹는 나라는 고기문화가 없는 나라라고 하네요.
이와 비교해 육류문화에 익숙한 프랑스와 독일,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들은 높은 분들에게 맛있는 부위를 주고, 가난한 이들에게 맛없는 부위를 주는 목적 이외에, 고기를 보다 맛있게 먹고자 많은 연구를 했고 덕분에 여러 부위가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최대 소고기를 200군데로 분류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고구려 시대만 해도 단순한 장작구이가 아닌, <맥적>이라 불리우는 간장 소스 비스무리한 것을 적용한 훌륭한 불고기 산적요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 벽화를 보면 꼬챙이와 작은 칼로 식사를 하는 완전한 육식문화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신라는 양탄자를 만들어 일본에 수출하는 수준이었고, 고려시대의 기록을 보면 소고기, 낙타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등 다양한 고기를 먹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가면 농경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인하여 육류의 소비가 줄어든 감도 있지만, 그래도 임금님 수라상에는 3가지 이상의 고기와 함께 우유로 만든 죽이 올라갔습니다.
양반들이나 조금 먹고 살만한 평민들도 평시에 틈틈이 활 사냥을 통해 뀡, 고라니 등의 사냥은 물론, 사냥이 곤란한 시즌에는 개고기를 많이 먹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고기에 대한 상당한 전통과 역사가 있고 많은 요리법이 남아있는데,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인 안동김씨의 요리책을 보면 완전히 개요리 전문서라고 하네요. ^ ^
소의 경우에는 농사용이라서 잡아먹지는 못했지만, 소가 자연사 하면 고기를 여러 부위로 해체하여 신분에 따라서 고기를 나누어 먹었답니다.
실제 조선의 소 목축량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일본에다가 수년동안 5만장의 소가죽을 판매했다는 일본의 기록을 보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국내에서 여러 부위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것보다는, 과거부터 우수한 육류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생각보다 고기먹을 기회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과거 일본 친구하고 고기 먹을 기회가 있어서 안창살을 대접했더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부위를 구할 수 있느냐고 놀라워 해서, 니들은 죽었다 깨나도 구해서 못먹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기 문화 대단합니당. ^o^
어, 그런가요 ? 저도 국사를 TV 드라마를 통해 배운 사람인지라,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고기를 많이 먹은 줄은 몰랐습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육류를 안 먹던 나라인지는 단정짓기는 힘들다고 봐요. 일단 소나 돼지의 부위에 대한 명칭이 거의 세계에서 제일 종류가 많은걸로 아는데 이건 짧은 역사에선 있기 힘들다고 보고.. (그게 먹을게 없어 별별 부위를 다 먹어 그렇다고 하지만 꼭 그럴까요..) 만약 못 먹는 민족이었다면 고기먹는걸 배웠을건 몽골 침략기인데 그들 요리가 그리 정교하진 않고 저는 오히려 고구려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복국가로서 고구려는 고기를 꽤 즐겼을 거 같고 그 문화가 한반도로 이어져 내려온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 서긍인가 하는 송나라 사람이 쓴 '고려도경'인가 하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 고려 사람들의 고기 요리 솜씨에 대해 한마디 적었더라고요. 고기는 잘 먹지도 않고, 또 외국 사신 온다고 모처럼 고기를 잡아도 그 처리 솜씨가 너무 서툴러 고기에서 냄새가 역하게 난다고요. 그래서 저는 '아, 우리 조상들은 정말 고기는 구경도 못하고 살았구나' 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여기 답글 달리신 것들을 보니, 정말 고기를 의외로 많이들 드셨던 모양이네요.
그것은 물이 안좋아 주로 기름에 튀겨 먹는 것을 즐긴 사람들의 생각인것 같습니다.
자기가 먹던 풍과 다르면 당연히 역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가서 일주일만 있으면 살이 빠진다 할 정도로 기름 투성이 느낀한 음식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아 윗분이 같은 생각이셨네요. 그리고 전 육류요리를 정교화시킨건 역시 산물이 풍부한 전라도였지 싶습니다. 어느 고깃집 바깥에 붙인 해설에서 봤는데 전주에선 흉년에도 소 한마리는 꼭 잡아야했다더군요. 자 이제 간장소스를 베이스로 한국육류 요리가 세계를 정복할 일만 남은 듯.. ㅎㅎ
고추장 베이스가 아니고요 ?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코너가 '이야기 속의 음식 이야기' 카테고리인데 오랫만에 새글이 올라와서 기쁘네요~
앞으로도 이 카테고리에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요즘 독서량이 부족하여 이 카테고리에는 글을 잘 못 올립니다...
저번주에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슬픈곳에서 먹은 편육이 생각나네요.. 잘읽고 갑니다.
구한말 세도정치기와 일제 강점기, 6.25.전쟁시기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식량난이 심각했습니다. 우리에게 그 얘기를 하실 수 있던 어르신들이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과거에는 우라나라 사람들은 정말 못살고 못먹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 5백년간, 큰 흉년이 들지 않는 이상은 일반적인 평민들이 못살고 못먹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죠. 매 끼니마다 밥과 고기를 배가 찢어져라 먹어댄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굶주렸다가 갑자기 음식이 생겨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매일 먹었습니다. 그만큼 육체 노동량이 많기도 했지만, 식량이 그만큼 풍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얘기입니다.
저는 조선시대 때 일반 백성들은 맨날 초근목피에 보리나 겨우 먹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궁금했던 것이, '다들 쌀 농사를 지었던 것 같은데, 그 많은 쌀은 누가 다 먹고 백성들은 맨날 하얀 이밥의 꿈만 꾸었던 것일까 ?'하는 것이었지요.
밀리터리 리뷰// 쐬주에 삼겹살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군요 ㅋㅋ 전통적으로도 고기!를 좋아했던 거네요

우리나라 사람들 식사량에 대해서는 저도 들은 바가 있네요. 조선왕조때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 사람은 대식가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조선시대 때 되어 양이 줄어든 게 서양이나 일본사람들이 보고 기겁을 할 양이었다니....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우리나라 사람 식사량을 기준으로 생각해서 왜인들이 식량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멀쩡히 싸우고 있어서 놀라는 경우도 생겼다더군요
임진왜란 때 그 기록은 재미난 일화네요. 혹시 출처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윗분들도 지적하셨지만 조선왕조시절의 육류소비량은 상당히 높았습니다.
오죽하면 다산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소를 너무 먹어서 농사 지을 소가 없을 지경이니 쇠고기 좀 그만 먹고 돼지 좀 먹으라고 할 정도였겠습니까.
설마 다산 선생께서 거짓말 하셨을리는 없으니, 정말 쇠고기 소비량이 많았나 보네요.
아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추천한방 날리고 갈게염

위에 양념감자선생님 말씀에 추가로 조선후기에 서양인이 조선양반 먹는음식 흑백사진으로 찍어논걸 역갤에서 본적이있는데 진짜....쫄쫄한 노인네가 지름이 30cm는되 보이고 높이는 15cm는 될법한 큰 그릇에 국을, 오늘날 우리가 쓰는 국그릇에 밥을 가득담고는 한상 먹는 장면이더라구요.

조선은 2끼를 먹는대신 엄청나게 대식하였고 -,.- 덕분에 체격도 아주 좋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모파상작은 어릴때 엄마가 사준거 뭣도 모르고 안읽다가 저도 이나이 먹고서야 봤는데 단편단편 하나 정말 놓칠수없는 좋은작품들이 많은거 같아염. 비계덩어린 그 책에 없던데 뒤벼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국사전공의 친구놈을 괴롭히니, 나름대로 체계적인 답을 해 주었습니다. 이를 옮기면,

고구려는 반 유목민 국가였습니다. 농사보다는 유목을 중심으로 사는 나라였고, 쌀 농사는 압록강 이남에서나 가능했다고 합니다. 실제 서양의 역사서를 보면 고구려를 유목민 국가로 분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유목민이니 고기가 주식이었습니다.
신라의 경우에도 북쪽에서 남하한 유목민 집단이 정착해서 만든 국가이므로 육류가 핵심이었고, 무엇보다 거의 평지가 없는 곳이어서 농사가 매우 곤란했습니다. 지금의 김해평야는 신라시대에는 바다여서, 벼농사를 지을 곳이 거의 없었고 덕분에 소규모 유목과 밭농사로 먹고 산 국가였다고 합니다.
백제는 평야지대에서 발전한 나라이므로 농사가 가능했고, 실제 고구려와 비교해 영토가 크게 작았지만, 놀랍게도 인구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건 면적당 수확량이 많은 농사의 힘이 컸습니다.

고려시대가 되면 불교문화가 융성하여 살생, 즉 고기를 먹는 문화가 많이 위축되었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목축보다는 면적당 부양능력이 높은 농경사회로 변화하게 됩니다. 덕분에 점차로 고기먹을 일이 줄어들게 되었고, 무엇보다 국내는 돼지를 키우는 것이 곤란하여 육류를 얻는 것이 점차로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양한 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은 남아있습니다만, 중국과 비교하긴 곤란할 것 같습니다.
특히 돼지고기를 잘 먹는 중국과 비교해, 국내에서 돼지고기를 대량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사실 1980년대 이후였습니다.(이건 우리 아버님 증언)

조선시대가 되면 그야말로 농경국가가 되어버립니다. 이건 무엇보다 단위면적당 인구 부양능력이 목축보다 농경이 훨씬 우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과거부터 고기먹은 전통은 남아있어서, 주변의 일본이나 기타 없이사는 문화권보다는 고기먹을 일이 많았습니다만, 중국과 비교하긴 역시 곤란합니다.
실제 중국처럼 육류를 본격적으로 먹는 사회는 아니었고, 사냥을 하거나 잔치를 하는 경우에만 고기 구경이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육류의 소비량이 줄어들자,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고자 밥을 대단히 많이 먹는 대식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조선시대 밥그릇과 국그릇은 현재보다 최소 3배는 컸습니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요리책을 보면, 고기요리법 대부분이 개고기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이는 소고기는 농사용이므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돼지는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먹는 동물이므로 키우는 것에 문제가 많았고, 실제 제주도 정도에서만 돼지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우수한 육류 분리기술이 남아있는 것은, 역시 뿌리가 유목민이었으므로 이들 전통이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정도는 아니지만, 최소 일본보다는 고기를 많이 먹었고, 조선시대 후반기가 되면 전체적인 생산량 증가 및 빈익빈 부익빈 현상이 심해져 육류를 위해 소를 도살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없는 놈은 굶어도 있는 놈은 고기를 먹는 사회로 변화되었던 것이죠. ㅠ.ㅠ
참조가 되셨나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다음에는 고기집에서... ^o^

고깃집하고 있는데 고기 자르는 것도 중요하고 가스불에 굽냐 숯불에 굽냐도 맛을 좌우한다고들 하더군요. 물론 얼마나 익히느냐는 손님들의 솜씨가 중요하죠.
...그리고 서양식 고기요리도 쉽지만은 않답니다. 두꺼운 안심을 속까지 균일하게 따뜻하게 하면서도 레어로 내놓는 거는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죠.
너무 안익으면 피가 흘러나오고 너무 익으면 딱딱하고 노린내가 나서 먹기 힘든 두껍게 썬 소고기를 안쪽까지 열기가 닫되 레어인 상태로 구워서 내는 건 쉬운일이 아니지만, 조리사 자격증 따면서 몇번 해보니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일본의 회는 확실히 요리라고 보기가 좀 그렇군요.
물론 칼질 한번에 요리에 맛이 왔다리갔다리 한다는 소리도 있지만,
결국은 그저 잘썰고 못썰고의 차이일뿐이니까요.
저는 오마니가 재일교포인관계로 일본을 자주 왔다갔다 하는데(군대가기 전에는 매년 갔었습니다.) 밥을 일본사는 친척들이랑 먹으면 밥그릇 자체가 작은데다가 반찬이라고는 소금에 절여둔 연어구이랑 단무지, 김치(그래도 피는 한국이니까요 ㅋ) 된장국 정도로만 식사를 해서 특별히 고기나 장어먹는날(일본에서는 장어먹는날이 따로 있습니다)빼고는 배가 고파 죽겠더라고요. 그래서 늘 밥 먹기 전에 편의점이나 마트 식품코너 가서 튀김이나 고로케를 많이 사두고 밥 먹고 나서 또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ㅋ 그나마 한국과 일본이 교류가 많이 되면서 음식문화도 많이 건너가다보니까 요즘은 고기요리를 많이 먹지요.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어림도 없었습니다.
소고기, 돼지고기만 고기만 아니지요.
조선시대에 장터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이 꿩이었답니다. 살아있는 꿩인 생치, 말린 꿩고기인 건치의 거래가 활발했답니다. 이렇게 꿩이 많이 거래된 것은 맛도 있지만, 꿩이 많기도 하고 머리가 더럽게 나빠서 잡기가 비교적 수월합니다.(저도 시골 뒷산에서 봤는데 이놈은 대가리만 풀숲에 쳐박고 아무것도 안 보이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압니다...;;;)
소는 농경을 위해 귀중한 가축이고, 돼지는 아들딸 장가시집보내는 밑천이며, 닭과 달걀은 농가의 주요 생활비로 사용되기 때문에 함부로 잡지 못하지만, 그밖에 개라든가, 토끼라든가, 꿩 등은 많이 먹은 듯 합니다.(말고기의 경우는 너무나 맛이 있어서 일부로 맛 없다는 소문을 내서 함부로 못잡게 했습니다.)


서양에도 중세에는 귀족들이 꿩이나 백조, 공작, 오리, 거위등의 새고기를 즐겼답니다.
땅에 발딛고 있는 짐승보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더 우아한 먹을 거리라고 여겼다네요. 그래서 호사스런 귀족들의 경우에는 네발달린 짐승과 채소도 안 먹고 새고기와 가지에 달리는 과일류만 먹었답니다.

특히 귀족들이 채소는 정말 잘 안 먹었는데 방귀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있었고, 방귀가 자꾸 나오는 게 내장이 좋지 않다. 고로 채소는 안 좋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요새랑 전혀 다른..;;;)
네이버에서 nasica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염장쇠고기가 나와욬ㅋ
돼지 고기나 소고기나 맛있는 집은 그 숙성의 비법이 있습니다. 물론 정육점에서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목장에서 나온 고기라도 어떻게 부위를 손질해서 바로 먹을꺼 숙성이 필요한거(저온 숙성으로 부위에 따라 몇일간) 를 골라 이를 잘 처리하는 것이 고깃집의 비법이라고 합니다.
머 물론 대다수의 고깃집이 맛있는 곳 잡아서 좋은 고기를 가지고 오겠지만요.

전 그래서 고기 맛있어도 그집 된장찌게 맛없으면 맛없다고 평가합니다! ㅎㅎ
전에 어디서 윤민혁본좌가 설파한 글이 있는데요 (지금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때 위에 답에도 달렸던 일본에 수출한 소가죽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론이 그때가 삼정이 가장 문란한 시기였음에도 평균(어디까지나 평균) 소고기 섭취량이 현대 한국인이 섭취하는 소고기량이랑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와서 사람들 다들 버로우 시킨적이 있죠.
이 링크인 듯 합니다.
http://ulanbatu.cafe24.com/zeroboard/zboard.php?id=imjin&no=423

조미료 다큐멘터리를 보면, 한민족은 감칠맛에 환장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고기 소비량이 높았던 것으로 설명이 나옵니다. 멸치를 먹게 된 것은 광복 이후의 일에 지나지 않고, 조선시대까지 감칠맛의 원천은 사실상 쇠고기였기 때문에, 양반가에서는 꾸준하게 (합법이든 불법이든) 도살된 쇠고기를 구해다 대량으로 먹어치웠다고 합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肉자는 소고기를 뜻하지만 중국에서 肉자는 돼지고기를 뜻하죠.

물론 조선시대야 전반적인 고기 소비량이 지금보다 뒤쳐진 것이야 사실이고(위의 링크의 경우에도 일단 당대 소의 품종 개량 부분을 고려치 않은 문제도 있고요), 일단 당대 중국이 말 그대로 군벌이 난립하는 막장 상황 아니면 대체로 고기 소비량이 많은 것은 현실이었지만, 이렇게 같은 글자를 가지고 해석이 다른 것은 당대 가축의 차이와 문화적인 차이를 엿볼 수 있죠.

일단 가축의 차이를 보면, 조선의 경우 풍속화를 보면 알겠지만 돼지 크기가 그냥 개 크기만합니다... 괜히 조선인들이 개고기를 선호한게 아니며 이후 일제시대였나(?) 요크셔와 바크셔 등으로 품종 개량하는 이유도 다른게 아니라 고기용으로 쓰기 위해선 너무 작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하죠. 솔직히 돼지는 키운 것보다 사냥한 것이 더 선호되었을 것 같아요. 특히 겨울철 목궁과 창 들고 사냥을 통해 식량을 보충하는 충청도의 대둔산 지역이나 강원도, 함경도인들은 더욱 그랬을 것 같고요. 그런데 멧돼지는 큰데 왜 가축용 돼지는 작냐 의문이드실텐데.

재밌게도 인간은 동식물을 순화시킬 때, 식물의 낱알은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유전적으로 변형 시켰지만, 동물은 오히려 작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의 경우는 어쩌다 너무 작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에 비해 돼지는 중국의 농경 연구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데, 실제로 신석기시대 관련 중국 고고학 자료를 보면, 주로 돼지뼈를 농경과 많이 연관시킵니다. 이는 돼지를 키우려면 그만큼 잉여 농작물이 많아야 한다는 접근 때문이죠

결국 우리 입장에서는 산악이 많아 중국만큼 풍부한 곡물을 생산하긴 힘들고(물론 그렇다고 농업생산력이 엄청 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요, 중국의 곡창지대에 비해선...), 이 경우 곡물 등을 많이 잡아먹는 돼지, 닭 등은 쉽게 즐기기 어려운 고기죠. 특히 돼지는 너무 작고. 결국 아무거나 먹어도 잘 크는 개, 분명 피와 조 등 일부 곡물을 먹일 필요는 있지만 대체로 초목을 먹어도 크게 키울 수 있는 소가 고기로는 좋죠. 다만 소는 역시 농경에 써야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게...


또한 고려도경에서 고려가 고기를 잘 못 다룬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교를 숭상하면서 도축의 수준 등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것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도 마찬가지였죠(물론 여러 핑계되고 고기를 먹기도 했지만)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원래 유목민 출신인 사람들을 백정으로 흡수해서 그나마 도축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