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0. 1. 31. 22:06


저는 몇번 밝힌 바와 같이,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물론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냥 육군 병장 제대했다고만 말하지요.  저는 90년대 초반에 군복무를 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요즘 군대에는 구타가 없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꼭 카투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군대에서 저는 구타라는 것을 당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제가 논산 훈련소에서 식사 후, 훈련병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혼잡한 수돗가에서 식판을 닦고 있는데, 왠 기간병 하나가 군화발로 제 '엉덩이를 걷어차며' 빨리 움직이라고 했던 것이 유일한 구타라면 구타였습니다.  대신 논산 훈련소에서, 그리고 카투사 훈련소에서도 얼차려는 여러가지 것을 많이 당했어요.




(이건 물론 제 사진이 아닙니다.)



요즘 군대에서는 정말 구타가 근절되었나요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최근에 군에서 제대하신 분들은 댓글 증언 해주시와요.)  최소한 의경, 전경 부대에서는 아직도 구타 등 부대원끼리의 폭력이 여전히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게 비단 군대나 경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중고등학교 때부터 선후배 간의 폭력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군대에서 하지 말란다고 금새 구타의 습성을 버리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심지어 대학에서도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얼차려나 구타 등을 하는 경우가 아직도 종종 뉴스에 보도될 정도인데, 군대나 경찰 같은 폐쇄된 남성 사회가 과연 부대원끼리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약간 의심스럽습니다. 


최근에 어떤 책을 읽었는데 (제가 자꾸 책 이야기를 하니까, 어떤 분이 댓글로 제가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이게 책 광고글이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책 광고는 맞습니다만, 그랗다고 제가 출판업에 종사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제가 소개하는 책이나 출판사와 금전적인 관계 전혀 없습니다.) "연사 한 잔 하실까요?" 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맥주, 와인, 증류주, 커피, 차, 그리고 콜라가 인류사에 중요한 6가지 음료라고 합니다.)



이 책은 맥주, 와인, 커피, 차 등의 주요 음료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었는데,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번역이 약간 껄끄럽게 된 부분이 몇몇 눈에 띈 것은 에러...)  그 중에서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즉,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지중해 문명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맥주를 마시는 비지중해 문명권 사람들에 대한 우월함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고요.  그래서 로마군 백부장이 계급의 상징으로 들고 다니던 것이 바로 포도나무로 만든 막대기였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로마군 백부장이 자신들의 문명의 상징으로 와인을 뽑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에 대한 우월감으로 별다른 장식도 되어 있지 않은 포도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녔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막대기는 부하 병사들을 구타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보면 딱 구타용으로 적절하게 생겼거든요. 




(Vinewood staff 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 정말 포도나무 덩쿨 가지를 대충 다듬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길이를 보면, 그 용도가 딱 그 용도 같지 않습니까 ?)



로마 시대 이전, 그리스 시대의 지휘관들도 그런 막대기를 필요할 때마다 사용했습니다.  기원전 401년, 유프라테스 강가의 쿠낙사(Cunaxa) 전투가 키루스 왕자의 패배로 이어진 뒤, 페르시아 깊숙한 내지에서 고립된 그리스 용병들은 클레아르쿠스(Clearchus)라는 스파르타 출신의 늙은 용병 대장의 지휘 하에 살 길을 찾습니다.  그 동네는 문명의 중심지답게 이런저런 관개 수로가 복잡하게 얽힌 곳이어서, 그리스 용병들은 길을 가다 수로를 건널 임시 다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클레아르쿠스는 한 손에는 창을, 다른 한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있다가 일을 게을리 하는 병사가 눈에 띄면 막대기로 가차없이 두들겨 팼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건 약간 뜻 밖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병사들은 다른 시대의 병사들과는 신분이 약간 달라서, 개개인이 당당한 정치적 발언권이 있는 '시민'들이었거든요.  특히 이 용병단의 병사들은 돈 좀 만져보려고 스스로 모여든 베테랑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장교에게 (사실 당시에는 장교라고 계급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개 패듯 구타를 당한다고는, 최소한 저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우리를 졸로 보지마... 우린 졸이 아니야)



이 당시 그리스 군대의 내부 질서가 항상 상명하복은 아니었습니다.  방금 제가 언급했 듯이, 개개인 모두가 언제든 민회에서 '저 장군을 사형시키라'고 탄핵안을 내놓을 수 있는, 상당한 정치력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에, 장군들은 병사들의 뜻을 항상 존중해야 했습니다.  이 '구타 장군' 클레아르쿠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 그리스 용병들은 자신들이 싸우게 될 대상이 페르시아의 대왕 아르타크세륵세스인 줄은 모르고 모병에 응한 것이었거든요.  쿠낙사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 사실을 눈치챈 병사들이 진군을 거부하자, 클레아르쿠스는 억지로 병사들을 출발시키려 했는데, 병사들이 항의의 표시로 그에게 돌을 던지는 바람에 그는 거의 돌에 맞아죽을 뻔 했었습니다.  그는 절친한 병사들을 개인적으로 불러모아 놓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한 뒤에야 진군을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장군에게 돌을 던질 정도의 병사들이 왜 나중에는 클레아르쿠스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꼼짝않고 맞았을까요 ?  완력으로 이 50대의 늙은 클레아르쿠스를 당해내지 못해서였을까요 ?  물론 아닙니다.  그건 그 구타가 '합리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클레아르쿠스는 계급으로 부하들을 억누르고 압제하는 독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실 정식 성골 스파르타인인 Spartiates가 아니라, Perioecoi 출신이었습니다.  즉 자유로운 그리스인이 가질 만한 직업  ( http://blog.daum.net/nasica/6862420 ) 편에서 언급되었던, 국가에서 농토와 헬로트 농노들을 할당받기 때문에 생계 걱정 없이 무예만 닦으면 되는 1급 시민이 아니라, 자유인이되 스스로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2급 시민 출신이었지요.  그래서였는지, 그는 항상 모든 일을 솔선수범하며 부하들을 지휘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용맹스러운 시민들이라고 하면 흔히 Spartiates를 가리켰습니다.  실제로 레오니다스를 따라 싸우다 죽은 병사들 중에는 헬로트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만, 아무도 그들을 스파르타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요.  영화 300에서도 헬로트 따위는 출연조차 못했습니다.)



가령 구타의 원인이 되었던, 도랑을 건널 임시 다리를 만드는 작업에, 그는 30대 이하의 병사들만을 할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그치지 않고, 그는 필요시 언제든 창과 막대기를 버리고 진흙탕 속에 뛰어들어 병사들과 막일을 함께 했습니다.  지휘관의 이런 열정을 본 병사들은, 30대를 훌쩍 넘긴 노병들조차도 자신들의 나태를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작업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일을 게을리하는 병사가 두들겨 맞는다면 주변의 동료들도 '그놈은 맞아도 싸다'라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구타는 어디까지나 장교, 지휘관들의 몫이었고, 병사들 상호간에는 구타나 얼차려가 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것이, 다 같이 민회에서 1표씩을 행사하고, 전장에서는 방패 1개와 창 1자루를 책임지는 동등한 동료들인데, 그들끼리 뭐가 잘났다고 서열을 정해 놓고 때리고 맞고 얼차려 선다는 것이 오히려 더 웃기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나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정치체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입니다.  진짜 민주주의라면 겨우 5년마다가 아니라 언제든 국가 권력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지요.)



나폴레옹 시대의 군대에서는 어땠을까요 ?


영국군 같은 경우는 육군이나 해군이나 무자비한 채찍질로 악명이 높았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장교나 하사관들이 일반 사병들에게, 가할 수 있는 체벌이었습니다.  병사들 사이에서, 가령 고참이 신참 병사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구타를 한다든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대라는 곳이 다 그렇듯이, 있을 수 없다는 일도 종종 발생했을 것 같긴 하네요.)


장교나 하사관이라고 마음에 들지 않는 병사를 즉석에서 두들겨 팰 수는 없었습니다.  가령 전투 중이든 검열 중이든 뭔가 잘못을 저지른 병사가 눈에 띄면, 장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병사의 이름을 적어두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중대장이든 함장이든 지휘관에게 정식으로 보고하고, 정식으로 명령을 받아, 정식으로 채찍질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start that man !' 이라는 명령이 수시로 날아들었습니다.  즉, 게으름을 피우는 수병은 보조 갑판장(bosun's mate)이 수시로 휘두르는 매듭지은 밧줄에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건 글자 그대로 1~2대 정도였습니다.




(19세기 초 영국 해군의 bosun's mate의 모습.  저 손에 밧줄은 왜 잡고 있을까요 ?  거의 로마 백부장의 포도나무 막대기와 비슷한 포즈군요.)



특히 영국 해군에서는 매주 일요일이 소위 '경을 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미사가 끝난 뒤, 일주일 동안 잘못을 저지른 병사들에 대한 약식 '재판'이 있고 그 형벌이 즉석에서 가해졌기 때문입니다.  해당 수병의 잘못을 고발하는 역을 맡은 장교가 있었고, 그 수병을 (형식적으로라도) 변호해주는 장교도 있었습니다.  정식 재판과는 달리, 판결은 함장의 그날 기분에 따라 유죄냐 무죄냐, 꾸지람으로 끝나느냐 피투성이 채찍질로 끝나느냐가 결정되었습니다.  채찍질은 cat-o-nine-tail이라는, 아홉 가닥의 가는 밧줄로 된 채찍으로 가해졌는데, 평소에 이 구승편은 붉은 색 자루에 담아 두었다가 일요일에 일이 생기면 꺼내 들었습니다.  이로부터 let the cat out of the bag (비밀을 밝히다)라든가, do not have room to swing the cat (할 일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공간이 좁다) 라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맛 좀 볼텨 ?)



그래도 해군의 경우는, 군법 재판에 의한 채찍질이 아니라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의 영국 해군 복무 규정에 따르면 함장이 수병에게 내릴 수 있는 최대의 채찍질 수는 불과 12대에 불과했습니다 !  그 이상은 정식 군법 회의를 거친 후에야 형벌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친 바다 사나이들을 이 정도로 겁먹게 할 수는 없었는지, 대개의 경우 이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 채찍질이 가해졌습니다.  그 정당화는 이랬습니다.  가령 수병이 술에 취한 죄를 지었다면, 그렇게 술에 취한 것이 곧 건방짐(insolence)으로 이어질 것이고, 또 당연히 임무를 게을리 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3가지 죄를 한꺼번에 지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12 X 3 = 36대를 때리곤 했답니다.  이 채찍질은 보조 갑판장(bosun's mate)들이 수행했습니다.




(윽 시발 아야 시발 어익후 C발)



문제는 육군이었습니다.  육군 규정에는 지휘관이 내릴 수 있는 채찍질의 최대 수치는 무려 1,200대였습니다.  숫자를 잘못 쓴 것이 아닙니다.  120대가 아니라 1,200대 맞습니다.  이 정도면 죽으라는 이야기지요.  실제로 이렇게 채찍질을 받다가 쇼크로 죽어버리게 되면, 그 시체에다 마저 1200대를 다 때린 뒤에야 풀어주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채찍질에는 군의관이 동석해서, 혹시 벌을 받는 병사가 죽을 지경이 되면 일단 채찍질을 멈추고 치료를 한 뒤, 어느 정도 나아서 채찍질을 맞아도 될 정도가 되면 나머지 채찍질을 마저 채워 맞았습니다.  결국은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이 정도 채찍질이면 때리는 사람도 지치기 때문에, 여러 명이 25씩 번갈아가며 때렸습니다.  육군에서는 채찍질 담당이 다소 의외로 drummer, 즉 고수였습니다.  의외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전장에서 쓰러진 병사를 돌보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 바로 이 고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야 말로 병주고 약주고 하는 직업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



실제로 1,000대 이상의 채찍질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  있었습니다.  웰링턴 휘하에서 싸운 스페인 주둔 영국군 병사들 중 50여명이 1,000대 이상의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다들 죽었을까요 ?  그야 모르지요.  하지만 가끔씩 수퍼맨이 있기는 있었다고 합니다.  제95 라이플 연대의 토마스 메이베리(Thomas Mayberry) 하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 친구는 부대원들의 생필품을 사라고 맡겨진 200 파운드를 도박질을 하다 날려먹은 죄로, 700대의 채찍질에 처해 집니다.  당시 관행에 따라, 이 메이베리 하사는 군에서 불명예 제대를 하면 벌을 받지 않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하사관 계급에서 강등됨에도 불구하고, 메이베리 하사는 벌을 받겠다고 나섭니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이 친구는 700대를 한꺼번에, 그것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다 받아낸 뒤, 걸어서 형장을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프랑스군에는 이런 채찍질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떠한 형벌이 있기는 있었을텐데, 제가 독서가 부족해서 잘 모르겠군요.  다만 명령 위반은 영국군과 마찬가지로 총살에 처해지곤 했습니다.




(혹시 우리 부대 내에 구타같은 거 있나 ?  - 어익후 그럴리가요 폐하, 우린 무식한 영국놈들이 아니쟎습니까 ?)


위에서 이야기 되었던 것은 장교나 하사관이 부하들에게 내리는 정식 처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요즘 군대에는 구타 없다'라고 할 때의 그 구타는 고참 병사들이 신참 병사들에게 가하는 사적인 폭력이지요.  당시에도 그런 구타가 있었을까요 ?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네요.  그러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당시의 계급 구조 때문입니다.  당시 일반 병사들의 계급은 우리나라 군대처럼 이병-일병-상병-병장 이런 식으로 '연공 서열'에 따른 승진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병사들의 계급은 Private (일병) - Corporal (상병) - Sergeant (하사관) 식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복무 기간이 길다고 승진하는 경우는 없고, 뭔가 공로를 세우거나 장교들의 눈에 들었을 때만, 그것도 그 계급에 해당 하는 자리에 공석이 생겼을 때만 승진이 되었기 때문에, 십여년을 복무한 고참이라도 그냥 일병 계급으로 있는 경우도 수두룩 했습니다.  자기가 1년 일찍 들어왔다고 신참을 마구 때리다가, 그 신참이 뭔가 일을 잘해서 상병으로 승진이라도 덜컥 해버리면, 정말 난감하지 않았겠습니까 ?




(찰스 다윈이 탔던 비글호의 미드쉽맨 숙소(midshipman's berth), 항상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였을까요 ?)



하지만 승진 구조가 연공 서열식이라면 어땠을까요 ?  당연히 이야기가 달라졌겠지요.  이렇게 동료 간의 폭력에 가장 취약한 계급은, 의외로 해군의 midshipman, 즉 사관 후보생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까지, 간혹 20대 후반까지의 나이대가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고참 미드쉽맨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미드쉽맨을 학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해군의 전통에 따라, 이들은 midshipmen's berth 라는 그들만의 밀폐된 좁은 숙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왕고참은 어린 애들을 왕처럼 부려 먹고 갈취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선후배 관계는, 결국 그대로 이어져 고참이 먼저 중위 시험을 치르고 정식 장교로 임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현역에서도 그 서열이 지켜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꼼짝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C.S. Forester의 나폴레옹 시대의 해양 소설 'Midshipman Hornblower'의 첫편이 바로 이 미드쉽맨으로서 당하는 신참의 비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소설에서는 주인공 혼블로워가 고참에게 엉덩이를 단검집으로 두들겨 맞고, 세탁물을 빼앗기는 등 시달림을 당하다, 이를 못견디고 자살을 해버릴까 고민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결국은 이대로 죽을 바에야 하는 심정으로, 꼬투리를 잡아 고참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이어지지요. 




(솔직히 혼블로워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책이 이 Midshipman Hornblower 입니다.)



저도 아들이 있는 몸으로서, 부디 우리 군대나 경찰에서, 구타라는 악습이 정말 완전히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S1. 미군에도 구타가 있을까요 ?  있습니다.  흔히 한국군에서 애들을 가장 겁을 주며 윽박지르는 곳이 사격장인데, 그때 하는 말이 '미군도 사격장에서는 구타가 허용된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정말 허용되더군요.  제가 복무한 부대에서, 모 사격장으로 M-16 사격을 나갔는데, 개념없는 미군 sergeant 하나가 (아마도 람보 흉내를 꼭 내보고 싶었는지) 자동에다 걸고 사격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통제를 맡고 있던 다른 sergeant가 같은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다리를 냅다 군화발로 걷어차더군요.  얻어맞은 친구는 계면쩍은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하던데요 ?


PS2. 저 19세기 초 영국군에 복무했던 수퍼맨 메이베리 하사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  메이베리는 일병으로 떨어진 뒤, 1812년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의 바다호스(Badajoz) 요새 공략전에 참전합니다.  여기서 그는 그야말로 눈부시게 싸워, 최소한 7명의 적병을 해치웁니다.  이미 여러 부위에 부상을 입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맹렬히 싸우는 그의 활약에 감탄한 중대장이, 다시 하사관으로 올려 줄테니 제발 후방으로 물러나 있으라고 권하는데도 그를 거부하고 프랑스군이 밀집 방어를 하고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가, 마침내 전사해버립니다.  좀 씁쓸한 결과인가요 ?  이런 걸 보면 정말 앵글로 색슨은 전투민족 같습니다...




(이 처절했던 바다호즈 요새 공략전은 Bernard Cornwell의 Sharpe's Company 편에서 상세하게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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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년에 의무경찰로 제대했는데 그 때도 구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총경이 치안정감에게 쪼인트 까이는 곳이 경찰이더군요. --;
구타하니 하는 말인데...

제가 들은 풍문으로는 세계에서 군대 내 병사 인권이 가장 시궁창으로 선두 다툼하는 곳이 러시아 군과 우리나라 군대라고 합니다 -_-;;

러시아 군의 병영 구타를 담은 동영상 본적 있는데, 신병들을 내무반에 전부 일렬로 세워놓고 고참이 그들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가관인게 리플들이 "뭐 우리 때도 저렇게 당했다." 라는 사람들의 리플이었죠...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시 되었던 거죠.

많이 씁쓸합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01년부터 03년까지 근무했던 함선이 완전히 구타가 근절된 배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후임 잘 패기로 유명한 일병 둘이 있었는데, 제가 승함한 다음날에 바로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는 덕에 온 배가 평화로워졌던 것이죠.
구타하면 우리 군에 그 악습을 물려준 구 일본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구타의 완벽한 일상화가 이루어진 사상 최악의 군대이지요. 사실 구타가 아니면 기강을 잡는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개판이었다고 합니다. 예비역이 재소집되면 무조건 이등병 취급을 해서 새파란 현역 후배한테 두드려맞는다는 괴상한 일이 벌어지는 맛간 집단이었지요. 안으로 병사들의 스트레스는 쌓이고, 구타를 가하기 어려운 전투중에 상급자를 쏘는 일이 중일전쟁중엔 종종 벌어졌답니다. 장교들은 현지민간인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장려해서 스트레스를 풀게 하려는 한편으로 세뇌교육에 열을 올렸죠. 하지만 결국 기강을 잡는데 구타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44년에야 구타 금지령을 내립니다. 너무 늦었지만요.
제 경험으로는 우리 군대가 내무반내 폭력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부터 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95년부터 97년까지 헌병대에서 근무를 했는데 솔직히 그 사건이전에는 구타문제에 대해 구호정도에 그쳤고 문민정부이후 전과는 다른 사회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특수성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장공비 사건 중 공비와의 교전 중에 전사한 아까운 목숨들 보다 당시 빈발한 군기사고, 총기난사사고 등등으로 인해 죽은 안타까운 목숨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많은 장군, 장교들이 옷을 벗어야 했지요.
이때 이후로 강화된 정신교육과 훈련, 과거 때린 놈도 혼나지만 찌른 놈은 더 혼나는 관행 같은 것의 변화, 제대 말년이거나 고참이라면 빠질 수 있었던 유격 혹한기 등의 훈련에 계급에 관계 없이 무조건 참가, 소원수리등의 강화, 내무반 구 관물대를 없애고 대대적으로 신식 관물대를 도입하는등 많이 변했었지요.
전역 후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군생활을 한 친구들 보다 의경, 전경 생활을 한 친구들이 구타에 더 노출 되어 있었던 것을 보고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뭐 60만 대군이라고 하는데 이정도의 숫자가 모이면 별의 별놈이 다 있을 수 밖에 없고 폭력이나 구타가 제로(0)가 될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으로 줄이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의 폭력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은 과거 일본군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지나치게 선후배를 강조하는 문화와 더 관계가 깊다고 봅니다. 대학에서 과모임이나 기타서클보다 고교 동문회 같은 곳에서 지나친 음주 폭력등의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한 집단의 동질감을 강조하는데 이런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변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요.
우리나라 군대에서 구타가 가장 없는 부대는 어디일까요?
해군과 공군은 모르겠지만 육군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물론, 가벼운 갈굼과 경고는 당연히 있지만 비인간적인 수준의 구타가 적은 부대가 하나 있습죠
바로 GOP 관리부대랍니다. GOP 그러니까 휴전선을 관리하는 부대는 근무 시 항시 수류탄과 탄약을 지급받습니다. 구타를 잘못 했다가는 그야말로 큰일이 나죠. 물론 GOP부대도 간혹 사고가 없진 않았지만, 일반 부대에 비해서는 구타 문제에 가장 통계상 안전한 구역입니다.
또한, GOP관리 부대는 근무의 특성상 초기 근무장소로 들어갈 때 전부 관심사병을 제외하고 들어가고, 언제나 인원이 부족하며, 경계근무에 시달리므로 몸은 매우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한 장소입니다.
또한 부식과 의복류와 같은 군장류도 가장 많이, 먼저 보급받도록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의문이 생기는데요. 이스라엘이나 GOP부대처럼 항시 근무나 작전시에 탄약을 지급받으면 구타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해봅니다. ^o^


아닙니다. 06년도에 제대한 GOP출신 육군 병장입니다. 요즘은 전후방 상관없이 실탄 근무합니다.갓 1년 된 병 출신 하사랑 같이 근무 설 때가 있었는데 저 멀리 GP를 가리키면서 저기서 병때 구타를 당했다고 이야기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GP에서도 당연히 실탄 근무를 할텐데 말입니다.
제 부대도 원래 내무부조리가 심한 부대였는데 구타가 발생하면 모조리 영창을 보내서 군기를 바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는 구타가 거의 없었습니다.
09년 GOP 전역자입니다. 페바 1년 GOP 1년 민통선 밖 페바 민통선 안 페바 다 생활해봤는데.. 구타는 없어도 마주치는 부대원들은 거의 그 사람이 다 그 사람이다보니 갈굼의 수준이랄까.. 그런건 별반 차이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제때와는 9년의 차이가 나니 그 동안 많이 변했나 봅니다. 하긴 그때도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타 부대보다는 적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무엇보다 탄약을 지급해도 구타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좀 씁쓸했습니다. 역시 님의 말씀처럼 몽땅 영창을 보내는 것이 좋을까요?
전 8사단에서 근무했었고 이미 제대했습니다. 한창 분위기 타며 구타가 사그라졌던 시기였지요. 그리고 8년차의 막내가 지금 철원에서 근무중이지요. 얘기 들어보면 구타는 없다고 하는데 구타란 것이 나시카님의 글에도 나왔듯이 납득할만한 것과 납득 못할 것이 있죠. 특히 체벌이라고 하는 어릴적 잘못하면 어른들한테 맞으면서 자란 우리나라같은 경우 바깥의 눈으로 볼때는 분명 구타라도 맞을만했으니까하고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구타가 없다 할지라도 폭력행위는 존재할겁니다. 그게 가혹행위로 적발되냐 마냐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요.
실제로 얼차려라든가 각종 형별은 기준이 있고 상관 보고하 승인이 이루어져야하지만 실제로는 혼나는 놈이나 혼내는 놈이나 그런거 안 따지고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는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죠. 결국 문화랄까...

일례로 구타 근절의 바람이 몰아쳤던 복무 당시 하이바와 야삽 등으로 때리거나 집어던졌던 심한 구타 행위는 사라졌지만 하이바 쓴 상태에선 머리 막 쳐댔죠. -_-;; 뭐, 상처도 안 남고 정신이 어찔한 정도지만 분명 폭력 행위는 폭력행위지요. 그리고 간부들간의 조인트 까기는 뭐 당연시돼었었습니다.
로마제국 티베리우스 황제 때 어느 로마군단 백부장하나의별명이 '나에게 하나를 더 가져오라' 라는 백부장이 있었죠. 하도 병새들을 포도나무 가지로 두둘겨 패서 부러지면 하나 더가져와! 뭐 이래서 붙은 별명인데 당시 군단병들이 탄광노동과 같은 여러 중노동에 제대까지 20년이 너무 길다고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면서 이 백부장은 도망쳤다가 숨어있는 것을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죠.

로마 백부장이 포도나무 가지를 들고 다닌다는 것이 여기서 나온 얘기인데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수록되어있습니다.

저복무할때 94,95년도에도 폭행하다 걸려서 전출되거나 영창가거나 하는 경우 좀 있었죠.

하이바위에 하이바로 내리치는 것은 폭행 축에도 안들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내요 나두 때렸는디.......
그리스야 뭐.. 다 같지는 않겠지만 스파르따!!의 경우는 매를 맞으면 강해진다고 믿었잖습니까. 만화판300을 보면 페르시아군 무찌르러가서 자기네 전사들을 노팬티 상태에서 즈려밟으면서 "이것보다 좋은게 있나?", "없습니다!", "그만하고싶나?", "아닙니다!" 하는 장면도 나오죠.

전 09년 전역자인데 요즘 부대는 확실히 구타에 관해서는 많이 근절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안 벌어지는건 아니구요. 다만 계급이 어떻든간에 누구를 마음먹고 신나게 패면 분명 처벌은 받는 구조는 확립된것 같습니다.

그래도.. 안 때린다 뿐이지 내무부조리랄까 군기유지차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부조리한 처사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구타문제도 표면상으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있는 곳은 분명 있더군요. 6사단 GP에서 수류탄 사건 터질 때 저도 철책에 있었죠.
저는 96년도 철원 백골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에도 지금은 구타 많이 없어진거다라고 했고 실제로 제가 입대하던 96년도에는 점호끝나고 한따까리를 안하면 불안해서 잠을 못이룰지경(자는데 깨워서 때릴까봐죠. 한따까리하면 일종의 살풀이랄까... 그날은 맞고 편히 자는겁니다.)이었는데, 98년도 제대즈음에서 점호후 한따까리같은 공식적인 구타행사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10년이 훨씬지난 지금쯤은 구타가 완전히 없어졌지 했는데, 아직도 구타근절이 안된거 보면 사람사는데란게 다 비슷한것이 쉽게 변하는게 아니구나 했습니다.

엠파이어 토탈워를 하다보면 콜옵 모던워페어처럼 로딩중에 명언이 나옵니다.
그중에 인상적인게 볼테르가 말했다는 '많은 국가들이 군대를 가지고 있는데, 프로이센은 군대가 국가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이죠. 신성로마제국을 놓고 '신성하지도 로마도 아니고 심지어 제국도 아니다'라는 시니컬한 명언을 남긴바 있는데, 볼테르는 한 冷笑하는 소쿨한 인간이었나 봅니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당시 유럽에 한덩치 하는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만 있는게 아닌데, 영국과 프랑스는 그렇다 치고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 러시아에서는 채찍질같은 그런 체벌은 없었나요?

특히 지금도 군국주의국가하면 딱 떠오르는 국가가 프로이센이잖습니까.

제가 알기론 오스트리아 해군은 20세기 초까지 채찍질이 남아 있었고, 러시아는 지금도 사적 구타로 악명이 높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구 보니 오스트리아 해군의 채찍질은 해군이 없어지면서 같이 없어졌겠군요. 쩝...
현역군인입니다.
보병교에서 근무중인데, 구타는 없네요.
갈굼은 있지만, 저도 요새 그렇게 터치 안합니다.
화목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1차세계 대전 당시 제정러시아군은 장교들의 매질과 가혹행위가 매우 극심했다죠.
결국 혁명의 와중에 제정러시아 군대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사병들에 의해 처형당한 장교들도 무척 많았답니다.

저같은 경우는
01년에 공군 헌병대를 제대했죠.
다른 말 다 제하고
구타를 옹호하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
혹은 후임병이 잘 되라고 때린다...라고 하는데 과연 그 안에 단 1%의 사감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조직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 구타가 허용되어야 한다면 말단들이 두들겨 맞을게 아니라 제일 윗대가리들만 두들겨 맞으면 잘될거 같기도 하네요.
2009년 8월에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전역자입니다.

군생활 2년 동안 하면서 부대 내 구타사건 소식을 들은게 12번입니다 -_-;
아 위에분 그 유명한 전갈부대 ㅋㅋ

전 상근제대해서 명함도 못내밀겠군요 ㅎㅎ
구타가 현대사회에 또는 현대군대에서 비난 받는 이유는 그 원인 또는 이유가 합리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폭력을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 인간존엄을 해치는 비도덕적 행위이고 오히려 현대사회의 장점인 수평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감이 있는가, 합리적 이유인가, 맞는 사람이 맞을만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등의 이유는 여전히 폭력에대한 수단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도 때려서 가르치고 싶은 후배나 직원들이 있군요. 하지만 그건 더 소중한 사회적 가치를 잃는 일이겠죠.
과거는 어땠냐고요? 유럽 선진국에서도 아버지가 아들 또는 선생님이 학생을 구타로 교육하는 것은 20세기 초까지는 일반적이었고 우리나라도 30년전까지는 일반적이었겠죠. 군대는?
크게 차이없었겠죠. 공식, 비공식 차이는 있겠지만.
동양 문화와 서양문화의 차이는 있는것 같습니다. 그 규율 쎈 독일군대에서도 1차대전중에도 하급 장교나 하사관이 부대작전이나 지휘문제로 상급자에게 감정 실은 반론을 하는 것이 문헌상에 보여서 깜짝 놀랬습니다. 우리나라나 동양군대는 최근에라도 그게 가능했나요?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군대 문화에도 영향을 줍니다.
강릉 사건 무렵 인천 지역 특수부대에서 부당한 구타로 분노한 사병이 1개 소대를 사상시키고

탈영했던 사건이 있다는데 보도 통제로 알려지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찾기도 어렵네요
98군번입니다. 5사단이구요. 위에 zolzi님이 말씀하신 한따까리가 제가 자대배치때 없어졌죠. 근데 점호구타만 없어졌을뿐.. 제가 gop부대였는데 새벽 근무서면 6시간정도죠? 대기초소 2시간빼고 4시간 내내 맞았습니다. 마지막 초소에서 때리다가 힘이드는지 얼차레를 주더군요.. 차라리 맞는게 낫지.. 물론 제 총에도 실탄은 있었구요..;;
그렇게 가혹행위를 하다 옆소대에서 우리소대로 온 1달 고참이 있었는데 이유가 실어증에 걸려서 입니다. 근데 우리소대와서 실어증이 더 심해졌다죠..;;;

제가 자대배치 받고 3~4주쯤 됬을때 그날도 대가리 박고 열심히 얻어맞고있는데(군가는 옛날에 1주도 안돼서 다 외웠고 뭔 쓸때없는거 못외웠다고 핑계대고 패는거죠..) 총소리 들은거 없냐고 옆 소대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담날 알고보니 중대계원 고참하나가 중대장이랑 순찰돌다가 중대장의 가혹행위에 못이기고 화장실에서 총기자살해버렸다더군요.. 그 소대에서 제일 가까운 초소가 제가 구타당하던 초소였거든요. 그 중대장이 또라이라 라면 5개 끓여 다 먹게 하고 무전기 2개씩 들고 오리걸음으로 대리고 다니고.. 담배 한갑을 전부 한번에 피우게 하고.. 그랬다더군요. 평소에 중대장 보조하는 순찰병들 눈빛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했습니다. 저도 그때 한창 맞던 때라 자살이라는 단어가 머리 한구석에 있는 사람의 눈빛은 보면 느껴지거든요.

중대장 가혹행위에의한 사병 총기자살 사건땜에 사단이 완전 뒤집어지고, 중대장 바뀌고, 물론 그 중대장은 구속됬구요.. 그후 구타하다 걸리는 고참들 걸릴때마다 영창가면서 제가 병장달때 쯤엔 거의 구타가 없어진듯하네요.. 최소한 저랑 제 동기는 빰따귀한번 때린적 없으니까요. 그 자살한 고참의 검시 동영상이 우리 사단 신병들 교육용 영상으로 사용된다는걸 후임들한테 듣고 참 착잡하더군요..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면이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저처럼 맞기만하다 구타없어진게 억울했던지 제 후임하나는 신병올때마다 엄청 먹이더군요..;; 자기가 당했던 보상심리는 있고 그렇다고 고참들처럼 행동하기는 싫고... 그런거죠.

뭐 우리나라 군대가 직업군인도 아니고 징병된 사람들이라 여러가지 부조리가 많을 수 밖에 없지만.. 구타나 가혹행위(사병끼리의)는 엄연히 군기가 바로서지 않은거라 봅니다. 60만이라는 대군(전세계적으론 꽤 대군이죠?)이지만 사병끼리의 군율도 바로 잡지 못해서야..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60만이라해봤자 숫자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구타 없는 군대는 없죠..선진 병영이니 뭐니 해도 같은 사람 다모이는 군대란 독특한 구조에서는요..
전 군출신은 아니고요 98군번 의경 590대 후반입니다
그냥 그래요..뭐..잊고살아야지..후..
85년 임관인데..구타 많았죠..많이도 죽고..지금은 없겟.....
경우에따라 다르겠지만 현재가과거에비해 나아진게있따면 구타자체의 존재유무보다는 전반적으로 그강도는 많이약해진점이 아닐까합니다. 요즘도 ㅎㄷㄷ하게 패는경우가 전혀없다고는할수없지만 확실히 구타를당했따는 이야기를들어봐도 과거에비하면 그강도면에서는 완화된게사실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