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0. 3. 21. 22:27


전에도 한번 언급했습니다만, 저는 요즘 드라마 '추노'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몇회에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대길이가 언년이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본 뒤, 최장군에게 이제 추노질 접자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최장군이 약간 당황하자 (누군든 밥줄이 끊어지게 되면 당황하지요) 대길이가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떼어둔 돈을 모아서, 이천에 땅을 백마지기 정도 사놓았고, 자기와 최장군, 왕손이가 각각 살 집도 짓고 있다'라고 말을 하지요.




(땅 부자 3인방의 흐뭇한 미소...  100마지기면 약 2만평인데요, 요즘 이천에 그 정도 땅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 부자 아닌가요 ?  대길이가 주먹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재테크에도 정말 귀재인 모양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묘하게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40대에 막 접어든데다 어쩔 도리가 없는 속물이라서, 돈 이야기나 노후 대책 이야기가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이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대길이는 사실 뛰어난 리더입니다.  (언년이 문제가 개입되지 않았을 때는요.)  특히, 자신들이 하는 사업(추노질)의 한계성을 잘 알고, 부하들(특히 왕손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수익금의 일부를 떼내어 펀드(주로 고리사채업...)에 투자한 뒤, 부하들의 은퇴 자금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길바닥 인생들의 리더인 대길이조차도 부하들의 노후 대책 마련에 신경을 써주는데, 진짜 국가적 조직의 리더라면 당연히 부하들의 노후 대책에 무관심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리스 시대의 시민 병사들은 상비군이 아니었고, 직업 군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그냥 외국인 용병 정도였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노후 대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점은 로마 시대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가, 제정 로마 시대 즈음해서 제대 병사들을 위한 복지 혜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제대할 때는 대길이처럼 땅부자가 될 수 있을까?)



제대하는 로마 군단병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로마 장군 마리우스(Marius)가 최초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즉, 마리우스는 병사들이 제대할 때, 정착할 수 있는 농토를 약속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생겨난 부작용이, 바로 로마군의 정치적 변질이었습니다.  즉, 병사들이, 국가보다는 그 약속을 이루어줄 장군 개인에게 충성을 하게 되면서, 건전했던 로마 시민군은 직업 군인화 되면서 장군 개인의 사병(私兵)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 마리우스는 훗날 술라(Sulla)와 함께 로마의 권력을 두고 쿠데타와 역쿠데타 등을 일으키며 정치 군인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킴브리족과 튜톤족의 침입으로부터 로마를 구한 마리우스의 개선식)



아무튼 제정 로마 시대의 로마 군단병은 거의 최초의 정규 직업 군인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25년간 복무하고 나면 명예 제대(missio honesta)를 할 수 있었고, 보통은 이와 함께 (로마 시민이 아니었던 경우에는) 로마 시민권 및 연금 또는 토지를 함께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대 군인의 이력 및 권리를 언제라도 제시할 수 있도록 아예 청동판에 기록하여 제대하는 병사에게 주었는데, 이의 이름이 바로 diploma였습니다.  요즘 말로는 졸업장이라고 번역되지요.



(로마 군단병들의 diploma.  아마 이걸 받았을 때의 기쁨은, 요즘 대학 졸업장 받았을 때보다 100만배는 더 기뻤을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어땠을까요 ?  연금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기 복무한 직업 군인에게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징집제에 의해 이루어진 군대로서, 대부분의 병사들은 직업 군인이 아니라 몇년간의 복무 후에 (대개는 나폴레옹 전쟁 내내 군에 붙들려 있었지만) 제대하여 원래의 농촌이나 공장 등으로 되돌아갈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거나 특히 공을 세운 뒤 전사한 사람에게는 종종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 훈장과 함께 본인 또는 그 유족에게 연금이 주어지곤 했습니다.  가령 1815년 워털루 전투 직전 샤를롸(Charleroi) 북쪽에서 프러시아 군과 교전 중에 전사한 르토르 (Louis-Michel Letort) 장군에게는 나폴레옹이 그 부인에게 연금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나폴레옹이 사망할 때는 그 유언 중에 르토르의 자녀들에게 10만 프랑(약 10억원)의 유산이 전해지도록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1804년, 영국 침공 준비를 하던 불로뉴 (Boulogne) 병영에서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이 창시한 레종 도뇌르 훈장 자체가 사실은 연금과도 상관이 있었습니다.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는 원래 이름 그대로, 명예 군단(legion)을 뜻하는 것인데, 그 훈장을 받은 사람은 가상의 군단에 속하여 그 안에서의 가상의 계급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급에 따라 연금을 받게 되어 있었지요.  이렇게 이 레종 도뇌르 훈장은 금전적인 혜택이 함께 하여 일종의 귀족 신분을 새롭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으므로, 애초에는 의원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 연금의 액수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  최고 계급인 경우  연간 5천 프랑, 지휘관급인 경우 2천, 일반 장교인 경우 1천, 일반 병사인 경우는 250 프랑 정도였습니다.  요즘 금 1g을 대략 4만원이라고 계산하면, 1 프랑은 대략 1만원 정도니까, 일반 병사가 레종 도뇌르를 받는다면, 일년에 25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 셈입니다.  뭐 그다지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아봐야 1년에 250만원 ???  좀 너무 짠 거 아니야 ?)



프랑스군이야 징집제니까 그렇다치고, 영국군은 어땠을까요 ?  영국군은 나폴레옹 전쟁 이전이나 이후나, 모병제에 의한 직업 군인 제도를 유지했고, 특히 모병에 응할 때는 대개 '평생 복무'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병사들의 노후 대책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병사들이 다 늙어서 이제 도저히 군 복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제대를 시켜야 할텐데, 평생을 군에서 사람 죽이는 기술만 배운 늙은 병사를 아무 대책 없이 사회로 내보낼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그렇게 했습니다.  일단, 영국군 병사가 정말 50세 60세가 되도록 평생 복무를 했느냐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요즘처럼 고용 불안이 심각한 시대에, 평생 복무의 조건이 붙어 있다고 하면 사실 고용 보장이 확실한 것이니까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보시기에 50대 병사가 무거운 군장을 매고 하루에 20 km를 행군한 뒤 차가운 땅바닥에서 노숙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전혀 아니지요.  당시 장교들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대략 15년 복무를 하고 나면, 대개의 병사들은 제대가 허락되거나, 강제로 제대를 시켜버렸습니다.  즉, 평생 복무라는 것은, 군대가 원할 경우 평생토록 군에 말뚝을 박아야 한다는 뜻이지, 병사가 원할 경우 평생토록 군대가 먹여살려주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제대할 때는 아무런 연금 혜택이 없었습니다.  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25년 (아마도 로마군의 전통에서 비롯된 복무 연한인 듯...)을 채워야 했는데, 이렇게 25년간 복무를 하고 나서 받는 연금은 고작 하루 6펜스였습니다 !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가 떠오르네요.)  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6천2백원 정도입니다.  맥도널드에서만 밥을 먹는다고 해도, 하루에 두끼 사먹기도 어려운 금액이네요.  옷값이나 주거비는 빼고도 말입니다.  만약 군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하여 제대해야만 하는 경우, 25년 복무 기한을 채우지 않고서도 일당 6펜스의 연금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 경우에는 그나마 평생이 아니고 1달에서 최대 5년까지만 연금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조국을 위해 몸바쳐 싸운 결과가 하루 6천원 ???  그것도 최대 5년간만 ???)



보통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에 멋모르고, 혹은 모병관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나폴레옹 시대의 영국군 모병 광경 - from Sharpe's Regiment  http://blog.daum.net/nasica/6862349 참조) 군에 입대한 청년이, 40대 중반의 나이에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랑스러운 대영제국의 레드코트들은 결국 길거리 노숙자로서 일생을 마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제대 병사 개인의 불행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1917년 프랑스군의 대부분이 공격 명령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공개적인 반란도 아니었고, 탈영도 아니었습니다만, 독일군의 철조망과 기관총을 향해 돌격하라는 명령을 확실하게 거부한 것으로서, 당연히 총살감의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공격 명령 거부는, 1918년 독일군에서도 일어납니다.  루덴도르프가 주도한 1918년 독일군의 대반격은 이런 메시지로 사실상 마감됩니다.  "...부대들은 이제 명령을 받아도 공격하려 하지 않는다.  공격은 끝났다."




(그 명령 거부자들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  뭘 바라십니까 ?  군대는 군대인데, 뭐 좋은 꼴을 봤겠어요 ?)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  병사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격에 나섰다가 죽을 확률이 10% 정도라면 병사들은 용감히 전투에 뛰어듭니다.  30% 정도라면 망설이겠지요.  그러나 결국 죽을 것이 확실한 지경에 이르면, 병사들은 공격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에서 성실히 복무하여 25년간 평생을 국가에 바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거지가 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 군 전체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래서인지, 영국 육군은 나폴레옹 전쟁 전후를 막론하고 음주 문제가 심각했고 각종 범죄도 아주 많았으며, 이렇게 말썽이 많은 병사들을 다루기 위해 처절한 체벌이 자주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 나폴레옹 시대의 군대에도 구타가 있었을까 ?  http://blog.daum.net/nasica/6862426 참조)  내일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은 좋은 말로 다룰 수가 없는 법이거든요.




(이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럼과 채찍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이들에겐 내일의 희망이 없어요...)



그나마 영국 해군의 경우는 육군보다는 사정이 더 나아서, 21년간 복무하고 나면 하루 1실링 또는 1실링 2펜스의 연금과 함께 명예 제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1만2천원에서 1만 4천원 정도의 돈인데, 이 정도면 그래도 굶어죽지는 않을 정도였겠고, 또 수병의 경우는 제대 후에도 상선이나 어선 등에서 일자를 구할 수도 있었으므로 확실히 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나서도 한참 뒤인 1840년대 정도가 되어서야, 육군에서도 의무 복무 기한을 10년 정도로 줄이고, 25년 복무 이후 연금액도 해군 수준인 하루 1실링 (1만2천원) 정도로 높이자는 제안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자신도 연금을 받았습니다.  1814년 4월 나폴레옹의 1차 퇴위 조건을 정한 퐁텐블로 (Fontainebleau) 협정 때, 나폴레옹은 엘바(Elba) 섬의 통치권 뿐만 아니라 2백만 프랑(약 200억원)의 연금도 함께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연금은 연합군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복귀한 부르봉 왕가의 금고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퐁텐블로에서 사랑하던 근위대와 작별을 고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에게 너무 후한 것이 아니냐고요 ?  1년에 200억원이라면 저같은 사람에게는 자식하고 마누라를 팔아넘기는 것 빼고는 뭐라도 할 만한 금액입니다만, 나폴레옹과 같은 인물에게는 사실 별로 큰 액수는 아니었습니다.  가령 1812년 나폴레옹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조세핀의 경우, 이혼의 댓가로 말메종(Malmaison)의 대저택과 함께, 연간 3백만 (어떤 자료에는 5백만) 프랑의 연금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에게 고작 2백만 ?  글쎄요,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한 금액이 아니었을까요 ?




(나폴레옹이 제1통령 시절 구입하여 '평생 가장 행복했던 삶을 보냈던 곳'이라고 추억했던 말메종 저택)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엘바 섬에서는 얼마가 들었는지에 대한 통계치를 구하지 못했습니다만,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나폴레옹을 가둬두는데 소요되었던 비용에 대해서는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사실 엘바 섬에서는 나폴레옹은 그 섬의 군주로서, 나름대로 호화롭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만,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는 꾀죄죄한 집에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정말 포로처럼 지냈거든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포도주조차 제대로 대접하지 못할 정도로 곤궁한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돈이 기가 막히게 많이 들어갔습니다.


나폴레옹 자신은 세인트 헬레나에 자신을 가둬두는데 영국 정부가 지출하고 있는 비용이 대략 연간 1천만 프랑 (41만6천 파운드) 정도 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은 9만2천 파운드 (약 2백2십만 프랑) 정도가 들었습니다.  다시 금 1g에 4만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2백2십억원 수준입니다.  물론 이 비용 중 대부분은 나폴레옹을 감시하고 혹시나 있을 수 있는 나폴레옹 구출 계획으로부터 세인트 헬레나 섬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비 및 그 관련 군인들의 봉급이었습니다. 




(불만 많은 모험가였던 전직 영국 해군 장교 코크레인이 나폴레옹을 구출하려던 계획은 실제로 있었고, 그 스토리는 Bernard Cornwell의 Sharpe's Devil 편에서 자세히 묘사됩니다.)



정작 나폴레옹 및 그 식솔들에게 주어진 생활비는 그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가령 영국 정부가 나폴레옹에게 지급한 생활비는 겨우 1년에 8천 파운드(19만2천 프랑)이었다가 나중에야 너무 적다고 인정하고 1만 파운드(24만 프랑)으로 늘려줄 정도였습니다.   이 금액가 얼마나 짠돌이 액수였는지는 세인트 헬레나 섬의 영국 총독이었던 로위(Lowe)의 연봉이 약 1만2천 파운드였다는 것을 보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을 미워하고 실제로 대놓고 마구 구박했던, 아주 나쁜 간수였던 이 로위 총독 본인이 계산한 바로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식솔들을 유지하는데 세인트 헬레나에서 실제로 썼던 돈은 연간 약 2만 파운드 정도였다고 합니다.  약 50억원 정도되는 돈이지요.  부족했던 연간 1만 파운드는 어떻게 했냐고요 ?  글쎄요, 누가 돈을 보내왔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사실 돈이 세인트 헬레나 섬 현장에서 꼭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필요 금액 중 상당액은 아마 식솔들의 급료였을 것이므로, 프랑스 본국의 나폴레옹의 재산으로부터 본국에 남아있을 식솔들의 가족 또는 그 은행 계좌로 지급되고 있었겠지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의 나폴레옹의 초라한 모습...)



이렇게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곤궁하게 살면서 수하에 수십명의 식솔들을 거느리는 것에만도 이렇게 많은 돈이 들었으니, 엘바 섬의 군주로서, 그것도 수백명의 고참 근위대 (Old Guards)를 거느리고 살려면 엘바 섬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겠습니까 ?


하지만 정작 나폴레옹은 부르봉 왕가로부터 단 한 푼의 연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공수표였던 것이지요.  연금으로 줄 금화 상자가 도착했다는 소식 대신 나폴레옹은 부르봉 왕가 및 코르시카 섬의 정적들이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들을 보낼 계획이라는 소식만을 들었습니다.  결국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백일천하의 난동을 일으켰던 것에는, 나폴레옹 본인의 억누를 수 없는 야망 외에도, 당장의 궁핍과 목숨에의 위협도 있었던 것이지요. 



(뭐시라 ?  우리가 이렇게 죽어라고 싸우게 된 원인이 부르봉 놈들이 연금 지급을 안했기 때문이라고 ?)



혹시 부르봉 왕가가 연간 2백만 프랑의 연금을 아까와 하지 않고 순순히 나폴레옹에게 지급했더라면, 워털루에서 전사한 수만명의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병사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  글쎄요... 그 대답은 나폴레옹 본인조차도 모를 것 같군요.






세상사에 돈은 빠질수가 없는 군요..
재밌는 내용 잘 읽었습니다.
좋은 블로그를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지금의 가장 중요한 동인 "돈"이 이미 200년 전에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동인이군요.

그러고 보면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니라 "욕망"을 가진 인간의 "의지"의 표현이라는 이야기가 옳은 이야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우와... 잘 읽고 갑니다...^^
Show me the money????? -_-b
전쟁에서 진 군주따위가 연금 타령하는 것도 우습죠
이래저래 불쌍한건 승패여부에 하등 이익볼 일 없는 파리목숨 징집병들...
재정문제는 역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네요 ㅎㅎㅎㅎㅎ
재미있게 잘읽고갑니다~
역시 나폴레옹1세 처럼 황제급의 인물들은 연금으로 수백억원씩을 받는군요...ㅎㄷㄷㄷ 그나저나 프랑스본국에 나폴레옹의 재산이라....부르봉쪽 사람들이 약탈하지 않았을까요...의외로 서양인들이 이런쪽으로는 대해주는 면이 없지 않은지라 내버려 뒀으려나요.

세인트헬레나섬의 총독이였던 허드슨 로는 사실 나폴레옹에게 개인적인 원한의 골이 깊었던 사람은 아니였다고 합니다. 사실은 본국에서 나폴레옹을 황제가 아닌 장군으로 부르라는 명령에 충실했고, 또한 그 자신의 천성이 그닥 부드러운 사람도 아니였기에 황제에게 쌀쌀맞게 대한 거라는 말도 있더군요.
저 사진의 로마군 갑옷을 보니 생각나는데 로마군 갑옷은 대량생산에 의하여 뭔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던데 그 치명적 약점이 뭔지 아시는분 계시나요?
글쎄요 ? 금속제니까 비싸고 무겁고 녹이 슨다는 단점이야 있겠는데... 대량생산으로 인한 단점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나저나 저 시대에 대량 생산이 가능했을까도 의심스럽네요...
사실 금속제 갑옷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로리카 세그멘타타는 방어력은 하마타(사슬갑옷)와 스쿠아마타(비늘갑옷)에 비해 강하지만, 입기 불편하고(혼자서 입을 수 없었음), 몸에 걸리적거리며, 하마타보다 비쌌습니다.
3세기때 로마군이 제정난을 겪은 후 세그멘타타는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장교의 경우, 복무한 지 20년이 넘으면 연금 수령자가 된다고 합니다.
통상적으로 20년 근무한 장교의 계급은 중령 막바지 수준이 되는데, 이때 중령의 말호봉이 약 5,000~6,00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봉은 중령 출신의 경우 한 달에 약 200만원 정도이니깐, 년으로 하면 약 2,400만원 정도가 되어, 연봉의 절반을 연금으로, 그것도 평생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20년 근무 후에 군을 그만 두면,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한 45세 정도의 나이에서 직장을 잃게되는 것이 큰 부담이긴 하지만, 만약 아무일이나 할 수 있다면 연금은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부사관의 경우는 잘 모르지만, 20년 근속일 경우에는 역시 동등하게 연금을 받게 되고, 20년 근무할 시 계급은 상사가 되므르고 그 호봉은 약 4,000만원 정도가 되므로, 장교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연금을 받게 됩니다.
당연히 문제도 있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고, 수명이 길어진 만큼 군인연금은 언제나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실제 올해만 그 적자액이 1조원이 넘어서고 있고, 그 적자액을 보조하고자 국가보조금이 지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무원 연금 적자액이 매년 약 2조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는데, 국가보조금이란 결국 국민의 세금인 만큼, 우리가 대신 내어주고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군인으로 사는 것...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

연금이... 그게 직업을 구하면 반토막나는 등 몇가지 조항이 있습니다.. 덕분에 군인들은 승진에 목을 매줘...
군인 연금은 정말 부럽습니다만, 그렇다고 다시 군대 가고 싶지는 않군요. ^^
로마군 갑옷에 치명적 약점이란 이야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어설픈 지식에 따르면, 당시에는 금속으로 만든 갑옷 자체가 매우 고가품에다가 드문 물건이었습니다. 때문에 전체 군대가 금속제 갑옷으로 무장한 그 자체가 야만족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군사적 압박감이었다는 기록을 본적은 있습니다.
또한, 당시 거의 모든 군대에게 정규 금속갑옷을 지급한 군대는 로마군 이외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외에 유대반란을 기록한 요시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유대반란군이 무기를 얻는 방법이 나옵니다.
이를 옮기면, 로마군의 군사장비 검사기준은 매우 엄격하였으므로, 이것을 이용하여 로마군에게 무기를 납품하는 유대인 기술자들은 약간 성능이 떨어지는 무기를 제작하여, 로마군이 납품을 거부하면 이것을 숨기는 방법으로 비밀리에 무기를 비축했다고 합니다. 요 반란의 최후가 바로 마사다 입죠.^ ^
실제 4세기 후반이 넘어가면, 로마의 경제적 붕괴와 함께, 군대의 수가 아우구스트 황제 당시에 설정된 25만에서 40만 이상으로 늘어난 문제로 인하여 금속갑옷을 제대로 보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때는 정말 로마군 갑옷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혹시 이 기록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로마군의 뽀다구 나는, 사진과 같은 갑옷이 없어졌을때, 로마는 멸망합니다. (물론 동로마 제국은 제외하구요 ^ ^)
항상 글 잼있게 잘 보고 갑니다 ㅎㅎ
혹시 나폴레옹 토탈워라는 게임 아시나요??
나름 전장 묘사 사실 적으로 잘해놓은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나중에 기회되시면 멀티플레이 한번 같이 해요! ㅋㅋ
공짜라면 다운받는 곳 좌표라도...
저도 나폴레옹 토탈 워를 어둠의 경로로 하고 있습죠;;

나시카님이라면 정말 환장하실듯한 게임이긴 합니다. 나폴레옹 전쟁을 최고로 잘 묘사해놨거든요 ㅎㅎ;

그런데 그나마 현대의 군인들은 복지수준이 정말 나아진듯 합니다.

옛날의 그 시궁창같던 나날들과 비교해보면 말이죠.

그리고 러시아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막장인것 같아요... 제정 러시아때도 병사들 사는 수준이 거의 개막장이었고 소련이 붕괴된 지금도 다른게 없으니... 그런데도 묵묵히 근무하는 병사들 보면 러시아인들 근성은 뭔가 좀 대단하다고 봐요.
공짜는 아니구요 ㅎㅎㅎ www.jjang0u.com 가셔서 웹하드로 다운 받으시면 한 1000원 정도면
받으실 수 있어요 ㅋ 해보시고 나중에 멀티 하시려면 정품 사세요 후회 안하실듯..
다음에 this is total war 라는 카페 가시면 스샷도 많습니다~

http://www.totalwar.com/napoleon/?t=EnglishUK 여긴 공식 홈페이지
추노 끝났네요. 기대했던 것에 못 미쳤던 마무리라 좀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정말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다행히 대길이가 이천에 땅 사놓았던 거는 '뻥'은 아니었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금융기관에 종사하고 있는데요, 고객님들께 노후 대책에 대책에 관한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이 글 앞쪽의 추노에 빗대어 노후 준비를 풀어내신 부분이 와닿아. 레터에 좀 인용하고 싶어서요..
앞부분만 좀 인용을 좀 해도 될까요? ^^;;
아무래도 그냥 쓰는 것은 아닌것 같아서.. 글을 남깁니다.
물론 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frg
로 총독은 정말 비열한 악한이었죠... 그런자는 정말 군인이라 불리기에도 아까운 자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