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0. 3. 27. 17:13


천안함의 장병들이 한분이라도 더 무사히 구출되기를 기원합니다. 

인터넷을 보니, 왜 장교들은 다 살고 사병들만 죽었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그런 반응은 좀 아니올시다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살 수 있는 장교들 중 일부가 일부러 죽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은 설마 아니겠지요.  천안함에서 성실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가 다행히 살아남은 장교들보다는, 아예 군대에 가지 않는 사회 지도층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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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원수들(foe가 아니라 marshal입니다)은 모두 26명입니다.  프랑스 제국의 최고 계급의 군인들이지요.  이 중 상당수가 결국 나폴레옹을 배신하고 부르봉 왕가 쪽에 붙었습니다만, 여기서 따지자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 중 몇명이 전쟁터에서 죽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Source는 http://www.napoleonguide.com/marshind.htm )


결론적으로 모두 3명이 전사했습니다.  란(Jean Lannes, 1809년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전사), 베시에르 (Jean Baptiste Bessieres, 1813년 뤼첸 전투에서 전사), 그리고 포니아토프스키(Josef Anton Prince Poniatowski, 1813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전사)입니다.  사실 제 명에 죽지 못하고 험악한 말로를 맞이한 사람들은 4명 더 있습니다.  베르티에(Louis-Alexandre Berthier, 1815년 암살 또는 자살), 뮈라(Joachim Murat, 1815년 총살), 그리고 네이(Michel Ney, 1815년 총살), 그리고 브륀(Guillaume Marie Anne Brune, 1815년 왕당파 폭도들에게 피살) 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엄연히 전투 중 사망은 아니므로, 제외해야겠지요.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최후까지 나폴레옹에게 충성했던 포니아토프스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인이 아니고 폴란드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폴란드의 독립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포니아토프스키는, 라이프치히 전투 직후 후퇴할 때, 겁에 질린 프랑스 공병들이 다리를 너무 일찍 폭파하는 바람에 고립되었다가, 항복을 거부하고 강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부에 따르면 익사했다고도 하고, 일부에서는 강 건너 편의 프랑스군이 무차별로 쏘아대는 유탄에 맞았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총 26명 중 3명이 전사했으니, 11.5%의 사망율입니다.  이 정도면 높다고 보십니까 ?  글쎄요, 장군들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높다고 할 것 같고, 일반 병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적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어떤 장군이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며, 자기는 적의 창에 부상을 당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고 자랑하자, 그를 듣던 다른 장군은 오히려 '내 방패에 적의 화살이 닿는 것을 보고, 난 장군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일개 병사처럼 행동한 것을 후회했다'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장군의 역할은 전투의 위험에 몸을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도록 지휘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글쎄요, 이 말이 맞는 말처럼 들리기는 합니다만, 실제로는 부하들의 선두에 서서 전투의 위험에 몸을 사리지 않는 장군들이 더 인기가 있는 것은 사실 같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장군이자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스파르타의 지휘관인 브라시다스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브라시다스는 젊은 시절부터 스파르타의 용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가령 필로스 전투 때는 아테네 해군의 삼단 노선을 맨몸으로 나포하겠다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가 적에게 얻어맞고 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오늘날 터키 지역인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클레온이 이끄는 아테네군과 전투를 벌여 완승을 거둔 뒤, 멋있게 전사함으로써 그 아름다운 군인의 일생을 완성했습니다.  아테네군은 겁장이 클레온이 도망치다 등에 창을 맞고 뻗은 것을 포함하여 약 600명의 전사자를 낸 것에 반해, 스파르타측 동맹군은 고작 8명이 쓰러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최고 지휘관이었던 브라시다스였습니다.  이렇게 전투를 완승으로 끝내고 전사하는 것은 모든 '진짜 군인'들의 꿈이라고들 합니다.  먼 곳의 예를 들 필요없이, 우리 민족 최고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께서도 바로 그렇게 더 이상 빛날 수 없는, 그런 장렬한 전사를 하셨지요.  영국의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는 넬슨 제독도, 참 희한하게도,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넬슨의 죽음... 상당히 미화된 그림입니다.)



병사들에게 인기가 최악인 지휘관은, 그 반대인 경우겠지요.  그러니까 거의 죽을 것이 뻔한 전투에 무모하게 부하 병사들을 밀어넣고, 자신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와인과 함께 우아한 식사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경우말입니다.  '설마 그런 잡놈이 있겠느냐' 싶겠습니다만, 바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나 프랑스군 최고 지휘관들은 바로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초대 영국 원정군 사령관이었던 존 프렌치 (John French) 경은 제1차 세계대전 초반의 기동전이 끝나고, 전투가 참혹한 참호전으로 들어가자, 심각하게 우울해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시 기술로는 철조망과 기관총으로 무장된 적의 방어선을 뚫을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 공세를 취해야 한다는 점이 괴로왔고, 특히 영국군의 사상자 숫자가 애초에 자기가 데려온 영국 원정군의 숫자인 15만 명 이상을 초과하자, 더더욱 그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프랑스 측과의 불화에 공세 실패가 겹쳐서, 결국 프렌치는 더글라스 헤이그 장군으로 교체됩니다. 




(이름과는 반대로, 프렌치 장군은 프랑스어를 거의 못했고, 프랑스인들과 사이도 안좋았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영매술사와의 회합에서, 나폴레옹의 영혼을 만났다고 주장하던 괴짜 더글라스 헤이그 장군)



이 헤이그 장군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사람으로서, 전투의 참혹함이나 한번 공세에 발생하는 수많은 사상자 숫자에는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령 영국군이 10만명 죽거나 다쳤고, 독일군이 8만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해도, 그렇다면 독일군의 예비 병력이 더 적으니까 우리가 이긴거라면서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전방의 영국군 장병들이 물이 잔뜩 고인 참호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차가운 머카너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배급 식량  http://blog.daum.net/nasica/6862357 참조) 통조림과 건빵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와중에도, 헤이그 장군은 안전한 후방에서 번쩍이는 은제 접시로 식사를 하고, 번쩍번쩍 거리는 롤이로이스를 타고 웅장한 프랑스의 고성에서 사령부로 출퇴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장군이, 저런 생활을 하는 병사들에게 '죽을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돌격 앞으로'를 명령하는 것이 옳다고 보십니까 ? 


물론 헤이그에게는 헤이그 나름대로의 그런 생활을 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가령 후방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헤이그가 책임져야 할 전선이 너무 넓어서, 너무 전방으로 가면 오히려 통신 및 교통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독일군이나 프랑스군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또, 군 최고 사령관이 으리으리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1917년 유럽 사회 분위기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었지요.  하지만 역시 사람들의 눈초리를 싸늘했고, 그 결과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장군들에게는 '사자들을 지휘한 당나귀'라는 오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헤이그가 주도했던 1917년 이프르 공세는 수많은 무의미한 개죽음만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장군들이 과연 그렇게 제 몸 편안한 것만 생각하는 비겁자였을까요 ?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사한 장군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장군들이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사했습니다.  영국 원정군의 경우, 총 1,257명의 장군들이 있었는데, 이중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의 숫자는 무려 232명으로서, 약 18.5%의 사상률을 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것으로 유명한 베르덩 전투에서도, 프랑스군의 경우 참전자들의 사상률이 약 24%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 서바이벌 시리즈 - 나폴레옹 전쟁에서 살아남기  http://blog.daum.net/nasica/6862382 참조), 적어도 영국 육군의 장군들도 상당한 위험을 몸으로 받아내며 싸웠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이 장군님들의 사상자들 중 약 43%는 포격에 의한 것이었고, 28%는 소화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설마 장군님이 적 참호를 향해 선두에서 돌격하셨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참호 시찰 나오셨다가 독일군 저격병에게 당하신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장군들이 욕을 많이 먹은 이유는, 바로 전의 기억에 남는 큰 전쟁, 즉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장군들의 행동과 무척 비교가 많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기와 교리, 병력의 규모가 모두 크게 바뀐 시대에, 100년 전 장군들과 비교를 당하는 것은 무척 억울한 일이겠습니다만,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장군들은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장군들보다 훨씬 더 위험에 많이 노출되었던 것은 사실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이 시대의 장군들은 이쪽으로 돌진해오는 적병들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지휘를 했으니까요.




(수많은 병사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장군들도 목숨을 잃은 보로디노 전투)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육상전에서는 인편에 의한 메시지 전달 외에는 사실 뾰족한 통신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장군들은 어쩔 수 없이 (제1열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장에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전황을 파악하고 병력의 전개를 통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력 소화기였던 머스켓 소총의 유효 사거리가 고작 60~70m 였던 것을 생각하면, 보기보다는 그다지 위험한 것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대포는 저 뒤쪽에 위치한 장군들의 목숨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당시 주력이었던 8파운드 포의 경우는 유효 사거리가 약 700m 정도, 최대사거리는 1km가 넘었습니다.  이런 긴 사정거리 때문에, 나폴레옹 시대의 고위급 장군들은 총탄보다는 포탄에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가령 나폴레옹의 부하 원수인 란, 베시에르, 뒤로크 (뒤로크는 원수는 아니었음...) 등은 모두 포탄에 맞아 전사했고, (모두 직사탄이 아닌, 땅이나 벽에 맞고 튀어나온 ricochetting shot에 맞았습니다) 나폴레옹의 정적이었다가 나중에 러시아군 편에서 싸운 모로 장군도 나폴레옹군의 포탄에 두동강이 났습니다.  전에  나폴레옹 시대, 전사자들의 장례식 ( http://blog.daum.net/nasica/6862392 )편에서 다룬 영국의 포르투갈 원정군 최고 사령관 무어 경도 프랑스군의 대포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의외로 정작 나폴레옹 본인은 대포에 의한 부상은 입은 적이 없고, 오히려 적의 소총탄에 엄지발가락을 맞아 부상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적진에 근접해서 지휘했었다는 이야기지요.  실제로 나폴레옹은 전장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을 지켜주는 자신의 운명을 믿었다고 합니다.




(부하이자 친구였던 란의 죽음은 나폴레옹에게 정말 큰 손실이었습니다.)



여관집 아들이 하사관을 거쳐 왕까지 할 수 있었던 혁명 군대였던 프랑스군은 그렇다치고, 귀족들이 매관매직으로 장교단을 가득 채웠던 영국군은 어땠을까요 ?  귀족들이니까 역시 귀하신 도련님이 다치면 안되므로 멀찍이 후방에서 지휘를 했을까요 ?




(인도를 침략하는 영국 제국주의라는 것만 빼면 이 소설 꽤 재미있습니다.)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그 대포가 불을 뿜었다.  그 포구로부터 몰아쳐닥친 포연이 장군 일행을 삼켜버렸다. 한순간 샤프는 희미한 연기 속에서 웰슬리 장군의 키 큰 윤곽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보이는 것은 피바다 속에 쓰러지는 장군의 모습이었다.  산탄 조각들이 샤프 주변을 휩쓸고 나서 한박자 뒤에 그 포격의 열기와 폭풍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지만, 그는 웰슬리 장군의 바로 뒤에 있었으므로 포격을 정통으로 맞은 것은 바로 웰슬리였다.

실은 장군이 아니고 그의 말이었다.  그 종마는 십여발의 산탄을 맞았지만 웰슬리는 기적적으로 상처 하나 없었다.  그 큰 말은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숨이 끊어졌다. 말이 쓰러지기 전에 웰슬리가 발을 등자에서 빼고 안장에 손을 대고 몸을 빼내는 것이 샤프의 눈에 들어왔다.  웰슬리는 오른발이 먼저 땅에 닿자, 종마의 몸무게가 그의 다리 위를 덮치기 전에 비틀거리며 펄쩍 뛰어 몸을 피했다.  캠벨 대위가 장군 쪽을 돌아다 보았지만, 장군은 그에게 그대로 전진하라고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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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 시리즈는 BBC에서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고, 주인공은 반지의 제왕에서의 보로미르, 션 빈이 맡았습니다.)



위는 제가 전에 번역했던 19세기초 영국군과 인도군은 어떻게 싸웠나 ? ( http://blog.daum.net/nasica/6862373 참조) 편의 일부입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웰슬리(훗날의 웰링턴 공작) 장군의 말이 포탄에 쓰러지는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아사예 전투에서, 웰링턴 공작은 자기가 타고 있던 말 두마리를 잃는데, 한마리는 윗 장면처럼 웰링턴을 태운 상태에서 포탄에 맞아 쓰러졌고, 다른 한마리는 웰링턴이 몸소 마라타 연합군의 대포들을 다시 탈환하려고 돌격할 때 적 기병의 창에 찔려 쓰러집니다.  (소설 속에서는 그때 웰슬리의 목숨을 구한 것이 바로 소설 속의 주인공 리처드 샤프로 나오지요.)  이 전투에서 웰링턴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웠던 것은 아닙니다.  웰링턴의 직속 참모진에는 총 10명의 장교들이 있었는데, 그 중 8명의 장교들이 웰링턴처럼 타고 있던 말을 잃거나 직접 부상을 당합니다. 




(웰링턴 공작은 개인적으로 워털루보다 아사예 전투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웰링턴과 그의 부하 장교들은 워털루에서도 몹시 위험한 상황에서 싸웠습니다.  연기파 배우들인 로드 슈타이거와 크리스토퍼 플럼머가 주연한 대작 전쟁 영화인 "워털루"(Waterloo, 1970년)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이 영화를 보면, 어울리지 않게 중절모를 쓰고 신사복을 입은 중년 남자 하나가 영국군 보병들을 이끌고 프랑스군을 향해 똑바로 말을 몰아가면서 '천하에 개X넘들, 엄마가 X녀인 술주정뱅이들...' 이런 식으로 자기 부하들에게 쌍욕을 해대며 전진하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말에서 미끄러지며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웰링턴의 부하 장군으로서 무지막지하기로 소문났던 맹장 픽튼 경(Sir Thomas Picton)입니다.  사실 이 남자는 식민지 점령 사령관으로 있으면서 토지와 노예에 투기를 하여 떼돈을 벌기도 하고, 식민지에서 14살 짜리 혼혈 여자 아이를 고문한 혐의로 나폴레옹 전쟁 중간에도 재판을 받을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내였습니다만, 아무튼 용감무쌍한 것으로는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의 전광석화같은 움직임 때문에 급작스레 일어난 전투로서, 픽튼의 경우 미처 자신의 짐짝이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던 관계로, 실제로 부득이 중절모와 신사복 차림으로 지휘를 해야 했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그런 차림이었던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픽튼의 초상화입니다.  그 영화 Waterloo 속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사진은 도통 못 구하겠네요.)


이 영화에는 또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더 있지요.  전투 막판에, 웰링턴(크리스토퍼 플럼머)과 그 기병대장인 억스브리지 경(Henry Paget, Lord Uxbridge)이 나란히 말을 타고 서있는데, 갑자기 포탄이 바로 앞에 떨어지면서, 둘이서 움찔합니다.  이어서 웰링턴은 이런 거 한두번 겪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냥 앞쪽을 다시 주시하는데, 억스브리지가 이렇게 말하지요.  (이건 실제로 전투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장군, 제 다리가 잘려나갔군요 !"  (By God, sir, I've lost my leg!)


이에 대해 영화 속에서 웰링턴은 아무 말도 못하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억스브리지를 부축하는 것으로 나옵니다만, 실제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런, 장군, 정말 그렇군요 !"  (By God, sir, so you have!)


이 억스브리지 경은 당장 근처 저택으로 옮겨져 마취도 없이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도 마치 어깨 수술 받는 관운장처럼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칼이 좀 무딘 것 같군!"  후에 이렇게 다리를 잃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영국 정부는 억스브리지 경에게 연간 1,200 파운드 (약 2억9천만원 정도)의 연금을 제시했습니다만, 억스브리지는 거절했습니다.  사실 이미 부자에 귀족인데, 연금을 받을 이유는 없었겠지요.




(두 다리가 멀쩡했던 모습의 억스브리지 경의 모습입니다.)



이 다리는 그 저택 주인의 청에 따라 그 집 마당에 묻게 되었는데, 이 다리 무덤은 훗날 유명한 워털루의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영국이든 프랑스든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장군들은 확실히 위험에 몸을 노출시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노출시켰으며, 또 그렇게 했다는 점을 마구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내각 안에 군복무를 제대로 마친 장관이 거의 없을 정도인 요즘 우리나라 상류층들과 비교가 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많이 아쉽습니다.  제 생각에는 꼭 상류층들이 군대에 가서 죽고 다치고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상류층이라고 군대를 이리저리 빼는 행동은 정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아들은 소중하니까 병역을 회피하게 해놓고, 서민들 아들은 대수롭지 않으니까 '국가를 위해서는 전사자도 무릅써야 한다'며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 파병 보내자고 한다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쟎습니까 ?












항겔이나 여기서나 항상 눈팅만 하던 햏자입니다. 햏력 높은 글에 늘 감탄하면서 잘 읽고 갑니다만, 마지막 짤에서 병역인증한 장관분들이 있어서 처음으로 댓글 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77&aid=0002239856 참고로 청기와측에서는 법적 대응도 검토한다고 하더군요;;;
헉, 그런가요 ? 제 글 포함해서,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의 정확성에는 항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막짤은 삭제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들러봅니다.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저도 천안함 장병들이 무사귀환했으면 좋겠군요.
그런데 마스터 앤 커맨더가 번역되어있더군요 혼블로워도 번역되어있던데 각각 번역의 상태는 어떤지 읽기는 괜춘한지 궁금합니다. 혹시 읽어보셨다면 사볼만한지 여쭙고 싶네요. 아 그런데 샤프 시리즈는 번역이 되지 않았나요?
마스터 앤 커맨더는 괜찮은 편이고, 혼블로워는 약간 개선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샤프는 아직.. 제가 나중에 퇴직금 타면 제가 한번 번역해서 자비 출판해보겠습니다.
완역본 예약이요~~~
글 잘 읽었습니다ㅎ 그나저나 우리나라의 고위층 분들도 저런점은 좀 배웠으면 좋겠습니다ㅇㅅㅇ
헤이그의 경우에는 두가지 의견이 있죠. 하나는 그래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프랑스와 연합을 강화시킨 능력 있는 장군이라는 견해. 다른 하나는 몽고메리 장군의 평가 대로 병사들을 쓸데 없이 사지로 밀어 넣는 1차 대전에서 전형적인 장군.
반대로 프랜치의 경우에는 포악한 성향이었다는데, 나시카님 글을 보니 오히려 감수성쪽은 헤이그 보다 예민한 것 같군요.
참고로 저는 1차 대전 최고의 영국 장군은 허버트 플러머로 꼽고 싶습니다. 치밀한 준비 하에 공세를 준비시켜 성과를 내는 1차 대전 기에 보기 힘든 장군이니까요. 몬티 옹은 전쟁의 역사에서 대 놓고 높게 평가던군요.
8월의 포성을 보니 프렌치, 이전까지 전장에서 용감한 지휘관으로 유명했지만 1차대전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조심스러워져서 위험하다며 후퇴하려고 해서 조프르가 설득하느라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젯밤 믿기지 않는 천안함 침몰속보를 듣고 전원 무사구조되기를 바랬는데, 구조자 명단이 더 이상 늘지 않더군요. 사태의 파장이 어디로 튀게 될지 걱정입니다.
님이 샤프나 혼블로워 좋아하는 것 보고 '워털루'영화도 좋아하실것 같았어요. '워털루'와 '머나먼 다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전쟁영화들입니다. 워털루에서 픽튼이 군복이 아닌 신사복 입고 나온 이유가 군복이 도착하지 않아서였군요. 웰링턴도 신사복차림이라 장군들은 자유복장인가 생각했네요. 욱스브리지는 포탄에 다리가 날아가서 죽은줄 알았더니 살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이 영화를 몇번이나 되돌려가며 봤는데 맨끝에 자막 올라가는데 소련군이 협찬으로 나와서 깜짝놀랐습니다. 영화제작 당시인 1970년대는 냉전이 한창 치열한 때라, 영국,프랑스같은 제국주의 나라들끼리 전쟁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금기시되었을 것 같은데 용케도 협찬을 했더군요. 게다가 이 영화를 만든 나라가 이탈리아라고 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프랑스군의 술트원수도 혁명전쟁당시 병사들앞에서 지휘하며 용맹을 뽐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투도중 큰 부상을 당하고 살아난 뒤로는 항상 뒤에서 지휘했다고 합니다. ㅎㅎㅎ
나름대로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혈압이 오르는 일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노블리스 오블리쥬> 문제 때문인데, 나름 있는 책을 뒤져본 결과만 봐도...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장남인 <제임스 루스벨트 대위>는 일생 단 한번 아버지에게 영향력 행사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고, 특수전 부대에 소속되어 죽을 가능성이 높은 <마킨 환초 탈환작전>에 참가하려 하자, 현역 대통령의 아들이 포로 혹은 사망하면 사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참전을 거부 당합니다.
이에 그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인사청탁을 합니다. 나좀 가게 해달라고.
아버지 왈

" 내 아들이 생명이 위험한 특공작전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그 작전에 가겠는가?"

라며 아들의 특수전 작전참가를 지시했고, 그것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 장군들 명령체계에 직접적으로 간섭한 유일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놈의 아들이란 사람은 저시력에다가 평발이었고, 거기다가 위 수술로 인해, 위가 절반도 남지 않는 수준의 중증 장애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해병대는 커녕 군대에 대한 지원자체가 안될 판이었는데, 대통령의 자식이 군대를 가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기어이 가장 빡센 해병대에 들어가서, 자신의 노력으로 특수전 부대의 일원이 된 사람입니다.
이외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4명의 아들 모두가 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습니다.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장남 <주니어 루스벨트 준장>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가장 먼저 적국의 해변에 상륙한 미국장군이었습니다. 당시 노르망디 해변은 충분히 정리된 상황이 아니어서 사방에 저격병들이 있었고, 포탄이 날아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정치인들과 상층부에서 그의 상륙을 막으려고 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이라서 전장에 나서면 안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팡이로 절룩거리면서 보병들이 타고다니는 험한 상륙정을 타고 상륙했고, 그 이야기가 <사상최대의 작전>이란 영화에 나옵니당. ^ ^
악질인간으로 유명했던 패튼장군의 아들 역시, 중령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하는 등등 많은 사례가 있지만, 사실 너무 사례가 많아서 소개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악마의 자식들 사례...
일본 역시 무대포로 유명했던 노기 장군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무대포 정신, 즉 기관총을 정신력으로 극복한다는 잘못된 전술로 인해 그의 아버지가 지휘하는 여순전투에서 모두 전사했습니다.
전술이 무대포인지 몰라도, 죽을 것이 뻔한 전장에 자신의 두 아들 모두를 전장터에 투입하는 정신만큼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보수 지배층들이 <악마>로 묘사하고 있는 <마오쩌둥(모택동)>의 첫째 아들 <모안영>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했습니다. 그때 마오쩌둥의 부하들이 시체를 거둬올까요? 하고 물으니까, 인민의 아들들을 놔두고 나의 아들만 대리고 올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고, 그 결과 모안영은 지금도 북한에 묻혀있습니다.
대악마의 대명사로 이름이 높았던 <스탈린> 아들 <자코프> 역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포로가 됩니다.
이때 독일군이 제안합니다. 당신 아들과 독일군 포로를 교환하자고. 하지만 독재자 스탈린은 거부합니다. 덕분에 그의 아들은 포로수용소에서 결국 사망합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인 <앤드류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여 인생하직할 뻔 했고, 찰스 황태자의 망나니 아들인 해리왕자도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습니다.
이와 비교해 1945년 이후, 우리나라의 숭고한 지배층 자제분들이 전쟁이 참가했다거나, 군대를 제대로 마쳤다는 기록은 도대체 찾기가 힘듭니다. 자료가 있으면 좀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외국은 대통령의 자식, 국왕의 자식, 심지어 악마의 자식들도 군대 혹은 전장터로 갔지만, 우리나라의 성스롭고 고아한 지배층의 자제분들은 군대와 같은 험한 장소에 가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배층의 도리를 무시하고 바보같이 군대를 갔다온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가 지배층의 도리를 무시하고 군대에 갔다온 결과, 그의 아들 역시 저주를 받아서 강원도 사단의 쫄병으로, 그것도 최악의 박격포 병종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죽갔다고 편지를 보내 왔음에도, 이를 개무시한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배층의 도리를 무시했으니, 그는 지배층으로써, 대통령으로써의 자격이 없는 겁니다. 당연히 이런 사람은 지배층의 순혈을 지키기 위해 제거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의 훌륭한 대통령님께서는 지배층의 도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노무현, 그가 왜 <바보>라고 불리웠는지 아시겠죠? ㅠ.ㅠ



정작 현재 미국 국회의원중에 자식 군대 보낸 사람이 몇 없다죠. (마이클 무어가 의원들 여럿 붙잡고 "내 자식 이라크로 보내겠소."라는 서명을 받으려고 했는데 한명도 서명하지 않았으니...) ...요즘 미국이 괜히 전 세계에서 욕먹는 게 아니겠죠, 정신상태가 이렇게 되버렸으니...
댓글을 퍼가고 싶어질 정도네요. 에휴..
모택동아들 모안영은 밥먹으려고 불지폈다가 미공군에 발각되어 폭사....(등화관제 중요합니다.)
스탈린아들 야코프는 수용소를 넘다가 사살됨...( 독일군의 심리전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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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만민에게 평등하게 말했죠.
포로는 없다. 오직 반역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야 말로 "순수한" 악의 결정체랄까요.
태클 같아서 죄송합니다.
패튼장군의 경우는 포로가된 사위를 구하기 위해서 포로수용소로 무리한 특공대를 파견했다가 실패하자 자신의 사위가 그 수용소에 있는지 몰랐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스탈린과 아들인 자코프는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자코프가 젊었을때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를 했는데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총도 제대로 쏘지 못하는 약골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스탈린 사후 주코프가 쓴 자서전을 보면 실제 스탈린도 정작 야코프가 포로가 되고 나자 아들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독일군이 야코프와 교환하고자 했던포로는 장성급-아마 파울루스였던 걸로-이었는데 이 제안을 들은 스탈린은 '어떤 멍청이가 장군과 졸병을 바꾼단 말이냐' 라고 거절했다 합니다. 주코프의 자서전에는 그 후에 스탈린이 침울해하며 '러시아에 자식을 잃지 않은 부모는 없을거야'고 슬피 말했다네요.
픽튼, 카트르브라에서 큰 부상을 입고 엄청 고통스러웠는데도 내색 안하고 워털루에서 싸웠다죠...

*.1차대전에서는 장군이 전방에 나와 앞장서는 건 할 짓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2차대전 프랑스가 이걸 그대로 써먹다가 독일에게 발렸죠. (웨이강 사령부가 '잠망경 없는 잠수함'이라고 불린 게 무능해서라기보다는 옛날의 개념을 그대로 써먹은... 정말 1939년에 1919년의 전쟁을 준비한 결과였으니...)

*2.영화 워털루는 마지막에 전투가 끝난 전장을 보여주는 장면이 최고였다고 생각...

*3.전쟁과 평화에서 홀라브룬전투 장면도 생각나네요. 앞선에서 진격을 지휘하던 바그라티온장군... 사격받고 있음에도 흔들림없이 전진하다가 "우라" 외침에 돌격! 다시 봐도 대단...
홀라브룬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활약했던 바그라티온 장군은 보로디노에서도 역시 전방에서 "우라" 외침 으로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령한 다음에 날아온 포탄에 전사하죠... 물론 영화 전쟁과 평화에서도 그 장면이 나오죠...
현대전에서 장군이 최전선에서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후방에서 호의호식할 권리 따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소롭게 생각하는건...
부하들 사지로 몰아넣고 무리한 작전 벌이면서...
용장이니 맹장이니 칭하는 쓰레기 장군들...

관우 장비처럼 선봉에 서서 일기투 벌이는 시대 지나서는...
용장 맹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류(부하들은 사지에 몰아넣고 지는 호의호식하는)의 최고봉은 역시 2차대전 당시의 임팔작전을 입안 실행한 남방군 사령관 무다구치 렌야라고 생각합니다.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노구교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중 한명이면서, 실제 작전회의때는 다치지도 않은 팔에 붕대를 감고 나타나 공치사를 했던 똘끼 충만한 인물이죠.

첨에는 대본영의 인도 침공작전을 밀림과 산악지역에서의 작전은 불가하다며 반대하다가 갑자기 뭔 약을 처먹었는지 맘이 바뀌어 버마에서 수백킬로에 달하는 밀림과 산악을 뚫고 인도의 임팔,고히마를 점령하는 이른바 임팔작전을 입안합니다.

부하들이 보급의 난맥을 들어 반대하자, 이른바 '일본인 초식인종설(?)'이란걸 내세웁니다. 일본인은 본래 초식인종이므로 밀림과 산악에 널려있는 풀만 뜯어먹어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건뭐 넘버3도 아니고,.. 송강호의 무댓뽀정신의 원조쯤 되려나요.

벙찐 부하들이 그래도 그건좀... 이러니까... 이른바 '징기스칸 작전(?)'이란걸 말합니다. 요컨데 수많은 말과 소를 이끌고 세계를 정복한 징기스칸처럼 말과 소를 이끌고 평소에는 보급품을 실은 운송수단으로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잡아먹으면 되니 이건 꿩먹고 알먹고라고 입에 침이 닳도록 열변을 토합니다.

다른 군대도 아니고 상명하복의 구 일본제국군대에서 누가 반대를 하겟습니까? 결국 1944년 3월 버마에서 임팔로 수많은 마소를 이끌고 15군(15, 31,33사) 진군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상했듯 마소들은 친드윈강 도강에서 절반이 꼬르륵, 공습한번에 보급품과 함께 증발, 기진맥진해서 임팔근처까지 왔지만 이미 마소는 다 잡아먹고 풀뿌리나 캐먹던 군대가 전투력을 발휘할리 만무하죠.

총이 없어도 주먹으로라도 싸울 수 있지만, 밥안먹고는 못싸운다 라던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죠.

당연히 해당 사단 지휘관들은 보급을 더 해주덩가, 아님 철수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무다구치는 당연히 쌩깝니다.

오히려 본국에서 기생과 요리사를 불러 버마(후방)의 주둔지에 요정까지 차려놓고 일과이후에는 질펀하게 놀아제꼈습니다. 부하들은 무다구치 각하가 좋아하는것은 1훈장, 2여자, 3기자 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는 판국이었습니다만, 무다구치는 전승기원 신사까지 만들어 매일매일 전승기원이나 하고, 뒷풀이는 항상 요정에서 하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6만 5천이나 되는 병력이 1만명으로 줄어들고나서(대부분이 식량및 의약품부족으로 굶어죽거나 풍토병으로 죽음) 심지어는 15사단장의 항명(철수명령없이 버마로 단독철수-죽음을 각오한 행동)까지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에도 철수해온 서있을 기운도 없는 장병들 앞에서 궤변으로 가득찬 훈시를 1시간내내 하다가 전선시찰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내뺍니다.

나중에 전범재판에 회부되긴 하는데, 무다구치의 무능으로 인해 연합국은 득을 보았다며 불기소처분을 내립니다. 결국 풀려나긴 했는데, 그냥 조용히 살면 좋았을것을 죽을 때까지 임팔작전은 나의 무능의 소치가 아닌 부하들의 무능때문이라고 떠벌리고 다닙니다.

심지어는 자시 부하의 장례식에 참석해서도 임팔작전의 실패는 나때문이 아니라 부하들의 무능때문이라는 유인물을 나눠주다가 몰매를 맞을뻔 하기도 했고, 자신의 장례식에서도 유언으로 상기 유인물을 나눠주도록 했다고 합니다.

끝까지 찌질한 최악의 장군이었느데, 혹시 이보다 더 찌찔한 장군을 알고 계신분 있으신가요?
안타깝게도 밑에는 더 밑이 있다고, 무다구치보다 더 상태가 심각한 장군이 있었죠. 원균 말입니다. 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무다구치나 원균같은 경우는 나중에 죄상이 다 까발려졌으니 그나마 낫지만...
승전국에 속한 장군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묻히고 공적만 자랑하는 경우가 많죠
특히 모진놈이 명도 길다고 오래 오래 살아남아 나중에 한자리까지 하는 경우는 더더욱 말이죠

멀리 찾을것도 없이 6.25 당시 한국군 내에도 유명한 장군들 많죠
자기 부하 즉결 처분 남발하기로 유명한 장군하며 맡은 부대마다 족족 괴멸시키는 장군등등...
이른바 아군한테만 용감한 장군들...
기억에 의지하고 쓰다보니 몇가지 틀린게 있어 수정합니다.

항명과 더불어 전선에서 무단철수한것은 15사단이 아닌 31사단 사토중장입니다. 계속 보급을 요청하자 'KIN 풀뜯어 먹어가면서 공격이나 계속하셈' 이라고 답변이 오니까 열받아서 본대를 이끌고 단독철수 합니다.

그러자 무다구치는 단검을 하나 내주고는 조용히 자결해라고 전언을 하자, 사토는 그 칼을 입에 물고 무다구치를 찾아갑니다. 쳐죽이겠다고요. 무다구치는 짱박혔다고 하네요. 결국 사토는 미친놈(정신병)이라면서 귀국후 전역시킵니다.

15사단장은 야마우치 중장인데,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로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본인 스스로 풍토병에 걸려 죽어가는중이었고, "쏘고 싶어도 탄이 없다"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임팔의 실패로인해 무다구치가 "걍 할복이라도 할까" 라고 부관에게 이야기 하니 부관왈 "옛날부터 죽는다는 놈치고 진짜로 죽는놈 본적이 없다. 너 죽는다고 해서 아무도 신경안쓸테니, 그딴 헛소리말고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할복해라. 이 실패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라며 칼을 건넸다고 합니다. 삶의 의지가 되살아 났는지 뭐 그런 굴욕(?)에도 꿋꿋히 살아 남았습니다.

책에는 임팔원정군이 9만여명이라고 합니다. 겨우 3개사단을 동원했는데, 보병 1개 사단이 대충 1만3천~2만남짓으로 알고 있는데, 사단당 3만명이면 꽤 많긴하네요. 하여간 살아돌아온것은 거의 1만 3천남짓이라고 합니다.
하여간 이들에게 훈시를 한 내용이라는게 걸작입니다. 대충 "식량이 없네 탄이 없네 다 개소리다. 식량이 없으면 풀뜯어 먹으면 되고, 탄이 없으면 총검으로 찌르고 팔이 없으면 발로 차고 발이 없으면 이빨로 물면 된다. 우리에게는 야마토 다이시(야마토 정신)이 있다. 일본은 신의 나라고 어쩌구 저쩌구~~~"를 한시간이나 떠들어 몇몇은 탈진했다고 합니다.

무다구치가 본래 18사단장이었을때는 임팔작전을 반대했지만, 15군 사령관으로 영전하고 나서 임팔작전을 주장합니다. 우선 윙게이트 사단이 비행기로 공수되어 일본의 후방을 괴롭히자 거봐라 제네들도 걸어서 통과하는(사실 비행기로 공수된것은 일본도 자~알 알고 있습니다만)데 우리라고 못할거 있냐며 작전을 고집합니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론은 지가 18사단장일때는 만약 임팔작전을 하면 지가 직접 나가야 하지만, 15군 사령관이 된 지금 지는 후방에서 탱자탱자 놀기만 해도 부하들이 전공을 세우면 다 지꺼가 될거라는 헛된 공명심이 원인인듯 합니다. 헐~~~
무다구치 장군에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영국군 통신감청반이 무다구치 장군의 위치를 발견해 내고는,

" 공군을 이용해 폭격하죠 "

했답니다. 이에 대한 지휘부의 답은,

" 아군을 폭격해서 어쩌겠다는 거야!"

라며 공격을 폭격을 금지했던 실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유능한 장군들이 일본에 상당히 많았고, 이런 놈일수록 오래 살아남아 연합군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진주만 공격을 성공시킨 <야마모토>와 같은 문제많은 일본군 지휘관을 미군이 암호해독을 통해 그 위치를 알아낸 이후, 암살용 전투기를 보내어 전사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무다구치와 같은 훌륭한 장군들은 위치가 발각되어도 공격하지 않음은 물론, 가능하면 전사하지 않도록 세심히 보호한 사례가 발견됩니다.
무다구치 장군, 그는 존경받아야 마땅한 인물입니다. 왜 우리가 그를 비난 합니까? ^ ^ ㅋㅋㅋ

추신 : 강원도 원주에서 원균이 무능하다고 말하면, 밥을 못먹거나 쫓겨나는 수가 있습니다. 거기선 원균이 이순신 제독님과 동급임. 조심 ^ ^
미군지휘부에서 의논을 했다고 합니다. ( 실제 있었던 의논임. )
"야마모토를 죽였을 떄 더 유능한 자가 그 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은?"
"야마모토 보다 유능한 자는 없습니다. 제독님."
"좋아 . 그렇다면 제거하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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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김경징-유재흥 --> 을사오적과 맞먹는 넘들이죠.
사실 이 에피소드는 무다구치의 부하였던 31사단장 사토 장군을 상대로 벌어진 일이었죠. 애초에 무다구치는 연합군의 공습 범위근처에도 안갔으니 말입니다. 연합군은 사토의 작전행동을 보고 그가 얼간이라고 여겨 폭격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사실 그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얼간이 같은 명령은 모두 무다구치가 내렸죠. 결국 참다 못한 사토가 항명헤서 무단후퇴했으니, 연합군이 폭격했더라면 31사단은 몰살당했을 겁니다.
무다구치 논쟁이 한창이군요...
이름이 사실은 牟田口(mutaguchi)인데, 다들 말씀하신 어이없는 경력(..)덕분에 다들 無駄口(mudaguchi, 뻘소리)라고 부르지요. 그 외에도 無茶口(muchaguchi, 개소리)로도 불렸죠. 뭐... 개짓 뻘짓은 다들 아시니까 생략합니다 ^^;
ㅋㅋㅋ, 무다구치 렌야, 일본 육군에서 이 사람과 해군의 나구모 주이찌 두 사람은 대한 독립 유공자로 추앙 받는 분들이죠. 건국 훈장이라도 수여해 드려야 할 분들...
자칭 작전의 천재 츠지 마사노부도 잊으시면 안되죠 ^^;
나구모도 나름 삽질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다구치처럼 정신나간 놈과 동급으로 놓는 건 좀...
좋은글 감사합니다 ^^
나폴레옹의 원수들중에 Jean-Baptiste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무려 3명이나 있는데, 혹시 서로 친척들인가요??? 친척이라면 혹시 나폴레옹의 사촌이라거나 외척인가요?

나폴레옹 토탈워를 해보면 사실 저위의 세명 말고도 수많은 Jean-Baptiste들이 나옵니다.

그냥 좋은 이름이라 우연히 동명이인인건가요? 한국사람들 김이박 많듯이 그냥???
쿨럭...억스브리지는 관운장의 환생이었나...
Jean-Baptiste 를 직역하면 세례(침례)-요한이라는 뜻이됩니다. 이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을듯...
우리나라는 멀리서 찾을것도 없이 가까운 한국전쟁에서 찾자면 그 유명한 '현리전투'가 있네요ㅎㅎ 사단도 아닌 군단이 붕괴되는 현대 전쟁사의 진기록이라고 불릴만 하죠ㅎㅎ 죄없는 장병들만 개죽음 당했네요
다리를 잃으면 말을 타고 지휘하기가 곤란해 전역했던거같고,
팔은 하나 정도는 잃어도 말타거나 지휘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서인지 팔하나(주로 오른팔)없는 지휘관들은 참 많은거 같습니다. 넬슨이나 크림전쟁원정군사령관 레글런경같은 경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