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0. 9. 11. 20:59


최근 모장관의 딸이 아빠 빽으로 5급 공무원에 특채되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아빠와 함께 하차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러한 사례가 더 많더라 하는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조선시대의 음서 제도의 부활이네 하며 '있을 수 없는 일'로 개탄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력도 없는 고관대작집 자제들'이 아빠 빽 덕분에 한자리 꿰차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일까요 ?  물론 그렇지 않겠지요.  최소한 그렇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유럽에서 군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실력보다는 집안이 좋아야 했습니다.  다만 현재의 우리나라처럼 쉬쉬하면서 몰래 처리하지 않고, 아주 드러내 놓고 당당하게 제도화해서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게도, 돈으로 그 기준을 삼았습니다.  즉, 장교직을 돈을 내고 샀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필요에 따라, 돈을 받고 팔기도 했습니다.  마치 요즘의 골프장 회원권처럼요.  이를 매관매직 시스템, 즉 purchase system이라고 합니다.





Sharpe's Fortress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3년 인도) -----------------------------

"그게 말이지, 샤프."  어쿠하트 대위는 말을 이어갔다.  말을 하면서도 그는 샤프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자넨 한밑천을 깔고 앉은 셈이야.  내 말 알아듣나 ?"

"한밑천이라고요, 대위님 ?"  샤프는 약간 놀라서 물었다.  샤프가 몸에 숨기고 있는 에머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사파이어들 한뭉치에 대해 어쿠하트가 낌새를 챈 것일까 ?  (역주 : 샤프는 1799년 마이소르 왕국의 티푸 술탄을 살해하면서 그 보석 뭉치를 슬쩍해서 감춰가지고 있습니다.) 

"자넨 소위쟎아."  어쿠하트가 설명했다.  "만약 자네가 장교 일에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든지 장교직을 팔아버릴 수 있다네.  자네에게 돈을 주고 소위직을 사고자하는 멋진 스코틀랜드 친구들이 잔뜩 있거든.  여기 있는 친구들 중에도 좀 있어.  내가 알기로는 우리 스코틀랜드 여단에는 신사 출신 사병들이 좀 있거든."

그러니까 어쿠하트는 이제 곧 닥쳐올 전투에 대해 초조한 것이 아니라, 이 대화에 대한 샤프의 반응이 어떨지 초조한 것이었다.  대위는 샤프를 치워버리고 싶어했고, 그 사실을 깨닫자 샤프의 처지는 더욱 어색해졌다.  그는 전에 그토록 장교가 되고 싶어했는데,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장교로 승진하지 말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대체 뭘 기대한거야 ?  다른 장교들이 (사병 출신으로서 공을 세워 공짜로 장교가 된 그를) 어깨들 두드려주며 마치 오래 동안 나가 있던 형제가 돌아온 것처럼 환영해줄 줄 알았나 ?  어쿠하트는 대답을 기다리며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샤프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샤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00 파운드라네, 샤프."  어쿠하트가 말했다.  "그게 소위 계급에 대한 공식 가격이야.  하지만 자네와 나 사이에서만 이야기인데, 최소한 50 파운드 정도는 더 짜낼 수 있을거야.  어쩌면 100 파운드 정도일 수도 있어 !  게다가 기니 금화로 말이지.  하지만 여기서 사병에게 계급을 판다면, 그 수표가 확실한 건지 꼭 확인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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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소설 인용구를 보면, 소위 계급이 약 400 파운드라고 했는데, 이를 현재 가치로 따지면 (요즘은 금값이나 원-달러 환율이 하도 다이내믹하게 바뀌므로 오차가 좀 큽니다만) 약 1억원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큰 돈이지요.  저 위 소설 속 주인공인 샤프도, 동료 장교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생활이 계속되자, '차라리 소위 계급을 팔고 영국으로 돌아가서 그 돈으로 시골에서 술집이나 할까' 라고 생각할 정도의 한밑천이지요.

그런데, 샤프는 왜 왕따를 당했을까요 ?  상관인 어쿠하트 대위는 왜 샤프에게 '그냥 계급을 팔고 사라져버려라'고 종용했던 것일까요 ?  그리고,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즉 전문 지식도 없는 부자집 자제가 돈이 좀 있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내고 장교직을 사는 제도'가 애초에 왜 만들어졌던 것일까요 ?  또한, 저렇게 돈을 내면, 그 돈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가는 것일까요 ?




(이 군복을 입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



특히 장관 딸이라고 5급 공무원에 특채된 사실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대 우리나라에서 보면, 말이 안되는 제도가 매관매직입니다.  특히나 국가 방위를 책임지는 장교들을, 실력 순이 아닌 돈이 있다는 이유로 뽑는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말이 안되는 것은 또 아닙니다.

일단, 당시는 세금을 얼마 이상 내는, 즉 꽤 재산이 있는 남자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지던 시대였습니다.  즉 출신 성분과 재산을 기준으로, 꼭 법에 씌여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엄격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인 듯...)  이런 사회에서, 사회 체제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군대의 지휘권은 당연히 계급 사회의 상류층이 차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류층 출신이 군 장교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막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또 당시 장교로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 재산이 있어야 했습니다.  대위의 경우에도 기본 급료의 절반 정도가 장교 식당의 식비로 나갈 정도였으니, 소위들은 아예 집에서 따로 고액의 용돈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환경도, 사실 일부러 만들었다기 보다는, '장교=신사'라는 공식 때문에, 장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의식주 생활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장교들의 모임에, 교양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당장 밥값도 내지 못해 쩔쩔매는 친구가 끼어든다면 본인은 물론 동료 장교들에게조차 난감 그 자체일 것입니다.  저 위 소설 속에서, 주인공 샤프가 동료 및 상관에게 왕따를 당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 민폐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가난한 집안 출신은 아예 장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화된 것입니다.

장교들이 부자집 아들이면 좋은 점이 또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있는 집 자제들이라면 돈 좀 만져보겠다고 전쟁터에서 약탈을 한다던가, 부하 병사들의 급료나 보급품을 빼돌린다든가 하는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좀더 높았습니다. 

그럼 실력없는 장교들이 지휘하는 부대가 제대로 싸울 수 있겠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셔야 합니다.  과연 전쟁터에서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있으려면 어떤 실력을 갖추어야 했을까요 ?  또, 그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험을 치루어야 했을까요 ?

사실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전쟁은 첨단 과학 무기가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전문 지식보다는 동료 장교들과 잘 화합하고,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행동하고, 그리고 부하 병사들에게 위엄 있는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으면 장땡이었습니다.  전투에서의 용기야 테스트나 검증이 아예 불가능한 것이고, 또 가르친다고 공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신사인 동료 장교들과 잘 지내고, 또 하류층 출신인 병사들 앞에서 위엄이 서려면 '돈푼깨나 있는 집안'에서 점잖은 교육을 받고 자란 신사 계급 출신이어야 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그러니,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400 파운드 이상의 돈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객관적인 기준도 없었던 거지요.




(장교질이라고 뭐 별거 있나요 ?   그저 용감하게 칼 빼들고 돌격 앞으로 하면 졸병들이 따라오는 거지요.)



루이 16세의 은총으로 왕립 사관학교(Ecole Militaire)를 졸업하고 '실력으로 장교가 된' 나폴레옹조차도, 사관학교에서 배운 것은 주로 수학, 문법, 역사, 지리 등이었고, 군사 훈련보다는 승마, 펜싱, 사교 댄스 등을 배웠습니다.  (나폴레옹은 어떤 공부를 했길래 군사적 천재가 되었을까 ?   참조)  즉, 전문 군사학보다는 신사가 되기 위한 교양 교육 위주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진짜 좋은 성적을 냈던 학문은 수학이었는데, 그래서 그는 나중에 훌륭한 포병 장교가 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이렇게 실력으로 장교가 된 나폴레옹조차도, 정작 장교로 임관하기 전에는 대포 한방 제대로 쏘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나폴레옹도 코르시카의 몰락한 귀족 출신이라는 점이 출세에 도움이 되었지요.  나폴레옹이 어부의 아들이었다면 결코 왕립 사관학교에 못들어갔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포병 장교로서의 전문 기술을 쌓은 것은 발랑스의 포병 연대에 부임한 이후였지요.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병들은 자신들을 버러지처럼 여기는 신사 계급 출신의 장교들보다는 자신들과 같은 하류층 출신 장교를 더 따르지 않았겠느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병사들은 자신들과 같은 하류층 출신은 '진짜 장교가 아니다'라며 멸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것을 잘 아는 하사관들은, 간혹 공짜로 장교 승진을 시켜주겠다는 상부의 제의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당장 소위가 되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곧 파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장교직을 사양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공수부대 이야기를 그린 TV 미니시리즈 'Band of Brother'에도 비스무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니 시리즈 내내 우수한 리더쉽을 보여주던 선임 상사인 카우드 립튼이 맨 마지막 편에서 마침내 소위로 승진하게 되지요.  그렇게 승진한 립튼에게 윈터스 소령이 립튼을 다른 부대로 전속을 보내면서 하는 말이 기억나십니까 ?  '원래 군 규정상, 하사관이 장교로 승진하면 반드시 다른 부대로 전속보내게 되어 있는데, 이유는 바로 며칠전까지 장교가 아니던 동료가 갑자기 장교가 되면, 기존 동료 병사들이 그 권위에 복종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원터스 소령은 '자네 같은 사람에게는 말도 안되는 조항'이라며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그런 규정이 생겨난 것은 아주 전통이 깊은 일이었던 것이지요. 




(Cardwood Lipton 소위 기억나시나요 ?)




(혹시 기억이 안나신다면 이 모습은 기억이 나시겠지요.)


뭐 예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가 열립니다만, 국민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이익을 정확히 대변해줄 도시서민, 농민, 노동자 출신을 뽑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만들어 낼 판검사 출신이나 기업가 출신들을 뽑지 않습니까 ?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군 장교 계급 가격표입니다.  이 가격 외에도, 근위대처럼 폼나는 부대에는 프리미엄이 추가로 붙었다고 합니다.

Source : http://www.colonialwargaming.co.uk/Miscellany/Army/Commissions.htm )



장교가 되려면 돈을 내야 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돈이 있으면 승진을 하고, 돈이 없으면 승진을 못한다면 더더욱 서럽겠지요 ?  그런데 실제로 그랬습니다.  소위 계급이 약 400 파운드라고 했는데, 중위 계급이나 대위 계급은 당연히 더 비쌌고, 승진을 하려면 그 계급 가격 차이에 해당하는 돈을 내야 했습니다.  그 돈은 누구에게 내냐고요 ?  국고에 귀속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자기가 차자하게 되는 계급을 달고 있던 그 전임자에게 주었습니다.   가령 한 연대에서 소령 하나가 제대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 소령은 자기의 계급을 최고참 대위에게 돈을 받고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대위 자리가 비게 되지요.  그러면 그 연대 내의 최고참 중위가 다시 그 전임 대위에게 돈을 내고 그 대위 계급을 살 수 잇었고, 연이어 중위는 자신의 중위 계급을 소위에게 팔 수 있었지요.  결국 승진을 하려면 각 계급 가격 차이에 해당하는 돈을 가지고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꼴통 대위 하나가 있어서 부하 중위를 많이 괴롭혔는데, 소령 하나가 제대를 하게 된다고 하지요.  이 꼴통 대위는 집안이 가난하여 도저히 소령 계급을 살 처지가 못된다고 하면, 혹시 괴롭힘을 당하던 중위가 낼름 돈을 내고 소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건 불가능했습니다.  장교단과 같은 보수적인 집단에서 위계 질서가 그토록 쉽게 무너지도록 놔두지는 않았겠지요.  또, 당시 장교들의 집단은 일종의 사교 클럽 같은 형태로서, 요즘 군대처럼 상급 장교가 하급 장교의 쪼인트를 깐다든가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단 계급은 하나씩 차곡차곡 테크트리를 타야 하는 것이라서, 돈이 많다고 하루 아침에 대령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소위가 되려면 최소한 16세 이상이어야 했고, 소위 이후 최소 2년 이상을 근무해야 중위 계급을 살 수 있었습니다.  또, 2년 채웠다고 언제든지 다음 계급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반드시 공석이 있어야 했습니다.  즉, 선임 장교가 더 높은 자리로, 또는 참모 장교 등으로 승진을 하거나, 죽거나, 제대를 하거나, 하다 못해 half-pay 장교로 예편을 해야 했습니다.  또, 대위 자리에 공석이 있다고 해도, 가장 돈이 많은 중위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공석이 생긴 소령 자리를 살 권리는, 대위 중 최고참자에게 있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저 시나리오에서처럼 최고참 대위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  무척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겠지요.   최고참이 저렇게 딱 정해진 금액만 지불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정상적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최고참이 돈이 없는 사례가 꽤 많아서 일종의 경매가 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통과 명예,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장교 집단에서는 꽤 꼴불견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각 부대의 지휘관은 400 파운드가 있다고 아무에게나 소위직을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즉, 돈을 내는 것은 기본 사항일 뿐, 돈을 낸다고 반드시 장교직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요.  부대가 잘 돌아가려면 그 근간이 되는 장교들끼리 사이가 화목해야 하는데, 저렇게 어색한 경우가 벌어지면 곤란하므로, 정말 괜찮은 집안 출신에 성격 좋은 청년만을 장교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꺼리게 되는 사람은, 동료 장교들과 화합하기 어렵고 또 추가 승진을 위한 재력이 없는 하류층 출신의 인물이겠지요.  장교 하나가 실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  그렇게 실력있는 하류층 출신 장교보다는 화합할 줄 하는 상류층 출신 장교가 훨씬 더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포병은 아무래도 문과보다는 이과 계통이이죠 ?)



하지만 분명히, 인간성 좋고 점잖은 것만으로는 장교가 되기에는 부족한 병과가 있습니다.  이과에 해당하는 포병과 공병, 그리고 해군이지요.  이들 병과의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돈보다는 정말 실력이 필요했고, 이들은 그런 purchase system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해군이야 완전히 지휘 체계가 다르니까 그렇다치고, 같은 육군 소속인 포병과 공병 장교들은, 실력도 없이 아빠 엄마 덕분에 장교가 될 수 있었던 보병 또는 기병 장교들을 얕잡아 보았을까요 ?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요.  보병 및 기병 장교들은, 포병이나 공병 장교들을 무슨 쟁이 정도로 취급했고 자신들보다 한 단계 아래로 취급했습니다.  게다가, 보병이나 기병 연대에서는 돈을 내면 고속 승진이 가능했던 것에 비해, 포병이나 공병 장교들은 그런 것 없이 오로지 연공서열에 의해서만 승진이 되었으므로, 아무래도 승진이 몹시 더뎌서, 나이가 비슷하면 보병/기병 장교보다 계급이 훨씬 아래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나 원래 귀족이거나 먹고 살만 한 집안 출신이라서, 싫증나면 언제든지 half-pay (Half-pay란 무엇인가 http://blog.daum.net/nasica/6356192  참조) 장교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보병/기병 장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포병/공병 장교들은 장교직에서 물러나면 당장 먹고 살기가 어려웠으므로 장교직을 때려치우는 경우가 거의 없어, 더더욱 승진이 느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공계 천대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거랍니다 !)

또, 당시의 모든 장교들이 다 돈을 내고 장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러시아와 프러시아에서는 역사상 단 한번도 이런 매관매직 제도를 도입한 적이 없었고, 프랑스도 혁명 직후 잠깐 동안은 이 매관매직 제도가 중단되었습니다.  (나중에 나폴레옹이 부활시키지요...) 





(프러시아 경기병 장교들의 모습.  이들도 물론 토지 귀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최소한 돈으로 장교직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부 장교들은 돈을 내지 않고도 장교직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영국군의 경우 샌드허스트 (Sandhurst) 군사 학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받은 졸업생은 무료로 장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 왕의 시동들(Pages of Honour, 주로 귀족 자제들이 수행)은 일정 과정을 거친 뒤에 무료로 장교직을 수여받았습니다.  그외에도 공짜로 장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꽤 많았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바로 다른 장교의 죽음이었지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장교들끼리 축배를 들 때 흔히 하는 구호 중 하나가 'A bloody war or a sickly season'이었습니다.  즉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거나 또는 역병이 횡행하여 장교들 중 죽는 사람이 생기면, 그 자리는 non-purchase vacancy, 즉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승진 자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좀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장교가 용감하게 전투에서 앞장을 서다가 죽으면, 그 계급을 얻기 위해 투자했던 수천 파운드 (현재 우리 돈으로 수억원)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리는 것인가요 ?  예, 맞습니다 !  가령 소령 하나가 전사하면 그 유가족은 약 8~9억원의 재산을 날리는 셈이 되었습니다.  가장이 사망한 것도 서러운데, 이건 너무 한 것 아닐까요 ?  특히 용감하게 최전방에서 싸웠기 때문에 전사를 했을텐데,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1856년 이후로는 전사 또는 전투 중 부상을 입은지 6개월 안에 사망한 경우에는 그 계급의 판매 대금이 그 유가족에게 돌아가도록 제도가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공짜로 장교직을 얻을 수 있는 경우는 그 외에도, 소장(Major General)으로 승진해서 생긴 자리나, 신규 부대 창설로 인해 생긴 자리, 또는 전임자가 뭔가 잘못하여 '보직 해임'되어 생긴 자리 등의 경우가 있었습니다.  왜 소장으로 진급하면 그 공석이 공짜냐고요 ?  소장부터는 돈을 내고 사는 자리가 아니었거든요. 

당시 유럽 사회에서 군 장교는 대표적인 중산층 계급이었습니다.  대위 정도부터는 급료도 짭짤했고, 특히 25년을 복무하면 계급을 팔고 제대해도 평생 half-pay를 받을 수 있었으며, 30년을 복무하면 계급을 팔고 제대해도 full-pay가 나왔습니다.  이거야말로 노다지라고 할 수 있는 직업이었지요.  가령 16세에 소위에 임관하여, 30년간 복무하여 어떻게어떻게 중령까지 승진한다면, 46세에 제대할 때는 최소 4500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2억원)의 계급 판매 대금과 함께 평생 full-pay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퇴직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저같은 현대 직장인으로서는 정말 부럽기 짝이 없군요.




(제7대 카디간 공작 제임스 브루드넬, 국군 개혁에 있어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이 purchase system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바로 제 7대 카디간 공작(7th Earl of Cardigan)인 제임스 브루드넬(James Brudenell)입니다.  이 양반은 전형적인 영국 토지 귀족으로서, 속물적이고 오만하고 혁신을 싫어하는 대표적인 수구꼴통이었습니다.  이 양반은 1824년 27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가진 게 돈과 연줄 뿐인지라 purchase system을 이용하여 초고속 승진을 거듭합니다.  입대 바로 다음해에 중위로 승진, 또 그 다음해에는 대위로 승진, 또 4년 후에는 소령 승진, 불과 3개월 뒤에 다시 중령 승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2년 뒤인 1832년에는 마침내 대령으로서 제15 경기병 연대의 지휘권을 사게 됩니다.  이때 정규 가격 외에 추가로 낸 프리미엄만도 35,000 파운드(약 9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좀더 '폼나는' 부대였던 제11 경기병 연대의 지휘권을 48,000 파운드를 내고 샀다고 합니다.  우리 돈으로 약 120억원입니다 !!!!




(카디간 공작의 꼴통 활약은 의회에서도 펼쳐져, 당시 상정된 개혁이라는 개혁은 모조리 반대했다고... 그래도 말년에는 개혁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장기간의 평화가 이어져, 카디간 공작이 전장에서 칼을 휘두를 일이 없었습니다만, 문제가 1854년 크리미아 전쟁에서 터집니다.  이 카디간 공작이 120억원 짜리 지휘권을 발동하여, 경기병 여단(Light Brigade)을 몸소 이끌고, 이제는 전설이 된 발라클라바 (Balaclava) 전투의 '경기병 여단의 돌격'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대실패로 끝난 이 전투에서, 총 674명이 돌격하여 그 중 107명이 현장에서 전사했습니다.  나중에 부상으로 끝내 숨진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도 유명한 사건이라서, 이 돌격에 대한 그림도 아주 많습니다.)


당시 너무나 유명한 정예부대가 너무나 어이없는 지휘로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상당히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1968년에 "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카디간의 돌격 때 저 총사령관 아저씨가 이렇게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뭐하는 거야, 카디간, 적 포병대를 우회 공격해야지 정면 공격하면 어떻게 해 !!!!" )



크림 전쟁에서 '돈으로 계급을 산 장교들'의 지휘력에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된 영국 정부는, 결국 1871년 캐드월 개혁(Cardwell Reforms)을 통해 무려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purchase system을 폐지하게 됩니다.  이때 이미 다른 유럽 국가들은 모두 그런 제도를 폐지한 뒤였지요. 


이 purchase system 이야기는 이미 제가 여러차례 글로 쓴 적이 있었지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장관 딸 특채하고 이 매관매직 이야기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  제 글을 보면 상류층 자제들이 고위직을 독점하는 것을 오히려 옹호하는 느낌을 받으셨나요 ?

여기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2가지입니다.

1. 저렇게 무능한 상류층이었던 카디건 공작도, 발라클라바 전투의 '경기병 여단의 돌격'에서 최소한 몸소 칼을 들고 러시아 군의 포화 속에 맨몸을 던졌습니다.  (기적적으로 카디건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무능할지는 몰라도 비겁하지는 않다 !!)



또 그렇게 돈을 내고 자리를 산 무능한 장교들 중, 위험한 전쟁터에 나가기 싫다고 전투에 임박하여 장교직을 팔아버리고 제대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 극소수의 사람은 신사 계급 내에서도 크게 불명예스럽게 여겼고요.
자기 자신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군 복무를 안 한 것은 물론이고, 자식들도 어떻게든 군대 안보내려는 우리나라 고위층들의 작태를 보면,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정말 대단한 겁니다. 

2. 실력 순으로 고위직을 줘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 과연 진정한 실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요 ?

여기에 대한 답은 최소한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근 타블로 사건을 보면, 우리 자신부터가 실력에 대해 그릇된 사고 방식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타블로는 가수입니다.  가수면 음악(하다 못해 춤과 비주얼)으로 평가를 받아야지, 그가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블로라는 가수를 주목하게 된 것 자체가 음악보다는 그 대학 간판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해요.  (참고로 저는 타블로 류의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 물론 음악성을 떠나 걸 그룹들에게는 관심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학력에 목숨거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아요.




(너희들이 나에게서 원하는 것이 음악이냐 스탠포드 졸업장이냐 - 그건 잘 모르겠지만 스탠포드 졸업장으로 뜬 것은 맞는 듯...)



제 대학 친구 하나가 대학 졸업할 무렵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 친구나 저나 대학 때 전공과는 별로 큰 관계 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학에서 배운 건 사실 별로 없지만 그래도 대학에서 보낸 시간과 학비가 아깝지는 않아,  최소한 대학생들은 어떻게 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배웠쟎아."
지금 생각해보면, 저나 제 친구도 그저 '대학 나온 계급'에 속하기 위해, 직장에서 '대학 나온 계급'과 잘 화합하기 위해 대학을 나온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이렇게 진정한 실력보다는 그저 간판 같은 거에만 신경쓴다면,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실력도 없이 '빽'으로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애초에 우리들 사이에도 실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빽으로 직장을 구하고 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뻘쯤한 일이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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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이 종군기자가 파견된 첫 전쟁이라더군요. 그 전의 전쟁에서는 지휘관이 아무리 무능한 짓을해도 군에서 감추었는데 종군기자로 인해 감추는게 불가능해 졌고 카디건경의 돌격은 신문에 보도되어서 난리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이회영 특집 프로그램 하는거 보니까 몰락 조선에도 끝까지 투쟁한 고위층도 많았던거 같군요.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라는 책에서 발라클라바 전투 이야기를 읽고 실소했었는데... 이면에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였군요
주인장님 언제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가외의 글이지만 주인장께서 오브리 머튜어린 시리즈를 번역 출간 하시길 기대해왔었는데 황금가지 ...음. 흠...^^; 아쉽군요. 제 소견으로는 이원경씨의 번역도 멋지지만 주인장의 번역이 더 감칠맛이 돈다고나 할까요? ^^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이것 역시 제 소견이지만 저는 서양의 노블리제 오블리주 정신을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기사계급이 전쟁의 선봉에 선것은 일단 자신의 이익에 직결되는 문제인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최소한 체면 문제도 많이 있었죠.
백성들을 사랑해서 시민과 농노들의 평화적인 삶을 보장해주기 위해 출전한거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나요??
노블리제 오블리주 너무 강조하면서 동양... 한반도에는 그런 좋은 전통이 없었다 어쩌구는 너무 그냥 들어넘기기
어려운 말입니다. 조선에도 양반 출신으로 백성들을 규합해서 의병활동도 많이 벌였고
관리로써 전쟁에 나서 산화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차치하고서라도요.
신립의 배수진 작전... 너무나 유명하지 않습니까? 죽을수는 있어도 피하지는 않겠다..
백성들이 스스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의병활동을 감행한것도 서양에서는 그 당시 시기에 찾아보기 힘든
거였죠. 왜놈들도 봉건제도하에 그저 침략자에 복종해야할 농노들이 왜 덤비는지 의아해 했다죠..

에구 역사에 해박하신 주인장 블로그에 와서 횡설수설 하고 갑니다. ^^;
프랑스 보나파르트제정에서도 매관매직이 있었나요? 프랑스에서 행해진것은 돈있는자들이 돈없는 자들을 대신하여 병역의무를 지운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장교직 거래도 있었단 말입니까?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독일의 시스템은 융커 계급의 자제가 자기가 장교로 임관할 부대에 사병으로 가서 일정기간 복무하고 해당 부대에 장교로 부임하는 시스템이죠? 평등의 국가 미국에서는 사병출신 장교가 권위가 안선다고 다른 부대로 보내고, 융커계급에 의한 장교 제도인 독일은 자신의 부대로 보내는 것도 참 재밌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거 알고보니 지네들 (신사)계급에서 쪽 안팔릴려고 하는 것이었군요.
저 카디간도 (쪽 팔리는) 돌아치기가 아니라 (쪽 안팔리는) 정면돌격을 한 것도 그렇고...
아무리 신사계급이라도, 채면과 용기만 높게 쳐주진 않습니다. 포대를 향해 정면돌격하며 그 앞에서 직접 지휘했기 때문에 '욕이라도 안먹은거'라고 봐야 할겁니다.
그건 잘못 알고 계시는 겁니다. 카디건도 그 멍청한 지휘 때문에 욕 잔뜩 먹었습니다.
유교를 혐오하는 사람입니다만, 그래도 선비에게 부끄러움을 알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민영환은 전봉준에 의해 매관매직을 일삼는 탐관오리로 규정된 부패한 민씨일족이었지만, 을사조약에 분개하여 자결하여 충절의 상징이 되었지요. 굳이 말하면 이런 것이 한국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현대사는 기회주의자가 승리한 역사라서,(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 나라지요) 지금 권력층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 이익만 아는 것들이 깔려있다는 겁니다. 주인장님이 지적하신대로, 현재 한국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어쩌다 권력층에 들어가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걸 막고 내쫓거든요. 결국 역사가 꼬인 것이 계속 나라를 망치고 있는 셈입니다.
음서야 고려시대 때는 자신이 정 5품 이상이면 아들 손자 사위까지 원하는 품계를 전해줄 수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정 2품 이상이 아니면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지방 수령이라도 한다면 감지덕지인데다 과거시험 출신자들에게 빽으로 들어왔다고 무시 당하기 일수였습니다. 조선시대 행정은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음서가 횡횡한다면 고려가 지금보다 오히려 낫겠지요. 고려시대에 정5품 이상이면 아들 손자 사위 까지 맞고 높은 지위로도 올라 갈수있었지만, 그 반대로도 음서로 들어간 다음 과거를 보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음서로만 들어 가면 높은 지위로 땡이였지만, 음서+과거라면 대우가 더 좋아저서 왕면 출납 같은 권력의 요직 같은 경우 후자의 경우로만 들어 갈수 잇엇습니다. 지금은 물러 났지만 언젠가 세상이 조용해 질때 더 활개 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 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냐라는 생각 마저 들더군요.
평소 nasica 님의 글을 좋아하고 애독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사실 타블로와 epikhigh가 유명해진 것은 대중성 있는 힙합장르, 철학적이고 시적인 라임을 중심으로한 음악성을 통해 뜬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자신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하는 아티스트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스텐포드를 나왔다는것은 그 후에 밝혀진 일이지 사실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에픽하이는 충분히 현대 한국 가요계에서 충분히 지금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저는 현역 국내 가수 중에는 휘성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힙합에 관심이 없는 저도 타블로가 명문대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연예인에게 있어서 지명도가 얼마나 생명같은 것인지는 상식이고요. 철학적이고 시적인 라임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평가에 있어서 인간은 고정관념과 배경지식에 많이 좌우되죠. 스탠포드 출신이 쓴 라임이 철학적이고 시적으로 느껴질 때, 그건 얼마나 객관적인 평가일까요?
그 외에도 방송 출연에서 하는 이야기나 본인이 책을 낸 것을 봐도 스탠포드의 후광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용했다는 건 명백합니다만.. 정말 음악성만으로 인정받으려 했다면 음악과 상관없는 책을 내지도 않았을테고. 방송에서도 스탠포드 이야기는 하기 싫어했겠죠.
고매한 글 잘보고 갑니다.

그런데 한가지 나시카님께 물어봐도 될까요?

당시 프로이센이나 러시아에선 사관학교에서 장교들을 양성했던건가요?

그리고 프랑스도 영국만큼 공공연하게 매관매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프랑스는 영국보단 사관학교에서 배출되는 장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영국에서 샌드허스트는 일종의 사관학교의 역할을 한것인지도 궁금하군요 ^^;
이런 흥미 위주의 글에 고매라는 말씀은 무슨...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들 떳떳이 매관매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시 사관학교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아는 바가 별로 없군요.
감사합니다
역시 주옥같은 글 감사합니다....^^
카디건 경은 인류사에 남는 한가지를 남겼는데 그것은 스워터로 만든 겨울옷 가디건....(즉 카디건) 입니다.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전 찾아보시면 나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글쓸때 나시카님의 자료좀 참고하겠습니다 !: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시대의 자화상을 보는듯 합니다. 논란이 있긴하지만.. 일본군장교로서 광복후 국군장군이 되어 아군에게 크나큰 패배를 안겨 명성을 날린 유재흥장군과 최석장군이 생각납니다...
역사 얘기 정말 재밌네요. 근데 요즘 우리나라 얘기랑 엮는 건 좀 뜬금없는 듯.
티스토리로 옮겨가셔서 보실 일은 없겠지만, 늦은 밤에 예전 생각이 나서 다시 봅니다.

대충 다음 아고라로 시사와 역사를 공부하면서 살피던 차 재밌는 글로 애독하고 첫 댓글단게 2008.06.30 이니 거진 13년이 되어 가네요.

지금 가끔 페이스북에 올리시는 조민 건을 지금 이때와 비교해서 보니 기분이 묘합니다.

한창 블로그의 글들을 즐겨보던 20대에 많은 영감을 주셨던지라 존경도 하면서 여전히 많은 인생의 지침으로 여기는 가치관을 받은지라 정치관은 존중해야겠지만 가끔 치우치는 부분은 보여서 좀 안타깝습니다.

과거의 역사는 누구나 다룰 수 있겠지만, 과거에 가까워지는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되어가는 현재는 아무리 경험과 지식이 절륜할 지언정 장담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더 오래 살아서 이런 변화를 묵묵히 바라보는 게 살아가는 자의 소명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