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3. 11. 25. 00:32

지난 편에서는 나폴레옹이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둔 뒤 그 뒤처리를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은 자신의 위성 국가나 다름없던 뷔르템베르크와 바이에른 등을 중심으로 한 서부 독일의 작은 왕국 및 공국들을 모아 라인 연방을 만들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이 조치는 3차 대불동맹전쟁에서 중립을 지켰던 프로이센을 무척 거북하게 만들었고, 나폴레옹은 그를 잘 알면서도 이 라인 연방의 창설을 강행했습니다.  프로이센은 왜 이를 거북하게 여겼고, 나폴레옹은 왜 굳이 이를 강행했을까요 ?




(라인 연방의 지도입니다.  이는 1806년 당시의 지도는 아니고, 1812년의 상황으로서, 이때는 베스트팔리아 및 작센이 이미 라인 연방에 포함된 상태입니다.  1806년 제4차 동맹전쟁 당시 작센은 프로이센 편이었고, 또 바르샤바 대공국도 아직 프로이센 땅이었지요.)



라인 연방이라는 정치 외교적 집합체의 핵심은 바로 서부 독일 소국들을 신성 로마 제국으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시키되, 그 군사력은 나폴레옹의 통제 하에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와 독일, 즉 오스트리아 및 프로이센 사이에 버퍼 공간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는 다분히 방어적인 조치였고, 또 나폴레옹은 이미 프랑스에 병합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제노바 공화국 및 북부 이탈리아 왕국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프랑스의 영토를 확장할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했으니, 다른 국가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곳이 나폴레옹이 왕위를 겸직하고 있던 1807년 당시의 이탈리아 왕국입니다.  발칸 반도에 있는 달마시아나 이스트리아 반도에도 노란색이 칠해여있다고요 ?  예, 거기도 나폴레옹의 땅이었습니다.  제노바가 있던 오늘날 북서부 이탈리아는 프랑스 제국에 아예 병합되어 버렸지요.)



하지만 프로이센은 이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이유는 라인 강 때문이었습니다.  17~18세기 이래로, 프랑스는 라인 강을 프랑스의 '천연적인 국경'으로 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왔고,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이제 그 염원은 현실화된 상태였습니다.  알고 보면 라인강은 프랑스-독일 사이의 천연적인 국경이라고 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었습니다.  라인 강 서쪽도 문화적, 민족적으로 보면 원래 독일 땅이 맞습니다.  지금도 프랑스 땅인 상-라인 강의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Straßburg)는 그 이름부터가 독일 이름인데다, 주민 대부분이 원래 독일어를 쓰던 알사스 지방의 주도였습니다.  이 도시 앞에 놓인 라인 강을 건너는 다리의 중요성으로 인해, 루이 14세가 30년 전쟁 이후 병합한 알사스 지방의 점령을 공고히 하려 1681년 무력으로 점령하고 병합했지요.  




(1744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때, 신성로마제국의 로레인 공작이 알사스 침공을 위해 스트라스부르 앞에 놓인 라인 강의 다리를 건너는 그림입니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주도권 싸움에 있어, 이 라인강이 뜻하는 상징성은 무척 중요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위대한 케사르조차도 라인 강 동쪽으로는 끝내 세력을 확장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1806년 나폴레옹이 만든 라인 연방이 뜻하는 바는, 라인 강 동쪽에 프랑스 군이 영구적으로 주둔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프랑스에게 된통 당한 오스트리아는 그렇다치고, 항상 오스트리아와 독일권의 주도권을 다투던 프로이센으로서는 이것이 매우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정도의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잘 나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프로이센은 이에 대항하여 "북부 독일 연방" (North German Confederation) 이라는 것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 소속국은 프로이센과 작센 (Saxony)을 비롯한 몇몇 라인 연방에 끼지 못한 북부 독일 소공국들로서, 별 영양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쿨하게 '뭐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프로이센도 이 라인 연방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마음을 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모젤 강변은 물론, 게르만 민족의 전설이 깃든 보름스 Worms까지도 모두 프랑스 땅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국경선은 저 지도에서 분홍색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을 격노시킨 사건이 결국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하노버 (Hanover) 였습니다.  원래 프로이센의 군사 외교적인 위치가 정점에 올랐던 것은 바로 작년인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직전이었습니다.  이때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러시아 편을 든다면 나폴레옹은 십중팔구 패전의 쓴 맛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잽싸게 '하노버를 줄테니 이거 먹고 가만히 있어' 라고 프로이센을 달랜 덕분에 아우스테를리츠의 승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억들 하시겠습니다만, 덴마크 남쪽에 있는 하노버는 원래 영국 땅, 정확하게는 영국 왕 조지 3세의 개인 영지였습니다.  나폴레옹은 1805년 당시 영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서 하노버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침공을 위해 베르나도토의 제1군단을 소환하면서 하노버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이 땅을 프로이센에게 던져준 것이니 사실 나폴레옹으로서는 비싼 승리를 제 돈 들이지 않고 구매한 셈이었습니다.  정작 프로이센은 이 조치로 인해 자동적으로 영국과 전쟁 상태에 돌입했고, 육지에서야 평온했으나 외해에 나가 있던 프로이센 선박이 무려 700척이나 영국 해군에게 나포되는 비싼 값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하노버의 헤렌하우젠 궁전 Schloss zu Herrenhausen의 모습입니다.)



공짜인 줄 알고 덥썩 물었으나, 알고 보면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산 땅인 하노버는 결국 프로이센을 패망으로 몰고 가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1806년 7월 28일, 파리 주재 프로이센 대사인 루케시니 (Lucchesini)가 베를린의 프로이센 궁정으로 급전 한 통을 보냈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트라팔가 해전으로 인해 더더욱 정벌 가능성이 없어진 영국과의 평화 조약을 위해 영국의 야머스 백작 (Earl of Yarmouth)을 파리에 초대해 놓고 부단히 협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루케시니가 보낸 급전의 내용은,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평화를 위해서 하노버를 다시 영국에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에게 있어 나쁘지 않은 존재라고 굳게 믿고 있던 프로이센 왕 빌헬름 3세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바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나폴레옹은 탈레랑을 통해 '하노버가 영국으로 반환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빌헬름 3세를 안심시켜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나폴레옹은 빌헬름 3세의 뒤통수를 친 것이었을까요 ?  반쯤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맘먹고 프로이센의 뒤통수를 쳤다기 보다는, 프로이센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자기 자신의 행동이 프로이센에게는 치명적인 배신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일단, 나폴레옹이 영국에게 평화 조약의 조건으로서, 하노버를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대신 나폴레옹은 당시 나폴리 왕국의 부르봉 왕가가 피난가 있던 시실리 섬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요.  나폴레옹의 입장은 강경했습니다.  저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낭 4세 ( 아우스테를리츠의 후일담 http://blog.daum.net/nasica/6862551 참조)의 나폴리 왕조는 이미 폐지되었으므로, 그들이 영국 해군의 보호 하에 웅크리고 있는 시실리 섬을 즉각 합법적인 나폴리 왕국에게 반환하라는 것이었지요.   나폴레옹은 이제 자신의 가족들을 여기저기의 왕족으로 내세우거나 다른 왕족들과 혼인시키면서 자신의 가문을 신흥 명문으로 내세우는데 급급해하고 있었으므로, 나폴리 왕국의 새로운 왕이자 자신의 형인 조제프의 정통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라도 나폴리의 부르봉 왕가를 확실하게 쫓아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대신 그렇게 쫓겨난 부르봉 왕가에게는 스페인 땅인 지중해의 발레리 군도 (Balearic Isles)를 주고, 스페인으로부터 연금을 받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낭 4세를 위해 점찍어 둔 유배지 발레리 제도입니다.  저때만 해도, 나폴레옹은 나중에 자기 자신이 저렇게 초라한 지중해의 엘바 섬으로 유배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약간 어안이 벙벙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이 영국과 화친을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댓가성 양보를 해주는데, 그 양보라는 것이 프랑스도 아닌 제3국의 영토를 갈라주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  그런데 나폴레옹의 머리 속에서는 아주 평범한 상식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왕국이 이미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남의 나라 땅을 마치 제 것인 것처럼 이리저리 떼어주고 돌려주는 제안을 밥먹듯이 했습니다.  가령 러시아와의 평화 조약에 대한 댓가로, 오스트리아 땅인 달마시아 지방의 몇개 섬을 러시아에게 주겠다고 (오스트리아와는 전혀 상의 없이) 제안하기도 했지요.  이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만, 다른 몇가지는 실제로 실천으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안스바흐와 하노버입니다.  제3차 대불동맹전쟁에서 프랑스 편에서 싸워준 바이에른에게는 프로이센의 땅인 안스바흐 (Ansbach)를 주었습니다.  물론 프로이센에게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영국 땅인 하노버를 주었지요. 




(안스바흐의 위치입니다.  당시 독일은 저렇게 조각조각난 소공국들이 결혼이나 거래 등의 이유로 전혀 엉뚱한 왕국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프로이센 소유이던 안스바흐도 정작 프로이센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은 위치에 있었지요.  이 위치가 좀 오묘해서, 1805년 제3차 동맹전쟁 당시, 하노버에서 급히 바이에른으로 내려가던 베르나도트의 제1군단이 이 안스바흐를 무단 통과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 결과 프로이센이 하마터면 동맹군 측에 참전할 뻔 하기도 했지요.)



아무튼 프로이센이 그를 뒤통수 치기로 오해할 만한 소지는 충분히 있었습니다만,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영국과의 협상은 잘 진행되지 않고 있었으므로 실제로 하노버를 영국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 현실화 될 것 같지도 않았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위의 예에서처럼 대신 다른 영토를 프로이센에게 보상조로 내줄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이 써보낸 편지의 양을 보면, 독일 관계로 1통을 보낼 때, 그의 형 조제프 및 그의 의붓아들 외젠에게 이탈리아 문제로 20통을 보낼 정도로 그는 독일이 아닌, 이탈리아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새로 취득한 영토인 남부 이탈리아, 즉 나폴리 왕국 남단에 있는 칼라브리아 (Calabria) 지방의 민중 반란을 진압하는데 골치를 앓고 있었고,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냥 칼라브리아의 모든 마을에서 무조건 3명씩을 총살하라' 할 정도로 잔혹한 조치를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칼라브리아는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코 끝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그랬으므로, 1806년 8월 중순, 그에게 '프로이센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라는 정보가 전달되었을 때, 그는 상당히 놀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로 전쟁이 벌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작년 아우스테를리츠 직전처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등 강력한 동맹국과 손잡고 프랑스를 공격할 좋은 기회를 다 흘려 보낸 뒤, 하필 지금 이런 상황, 즉 이제 의지할 동맹국도 거의 없는 1806년에 홀로 프랑스와 싸운다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식적인 기대를 뒤엎고, 프로이센은 과감히 전쟁을 택했습니다.  빌헬름 3세는 8월 8일 러시아의 짜르 알렉상드르 1세에게 편지를 보내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일 때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을 기대해도 되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알렉상드르는 당연히 열광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빌헬름 3세가 9월 6일 보낸 답장에서, 빌헬름 3세는 이미 영국 선박들에 대한 통행 금지를 해지했고, 런던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프랑스에 대해 선제 공격에 나서겠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9월 초에 이미 전쟁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대체 프로이센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




(루이즈 왕비입니다.  이 왕비가 프로이센 왕세자이던 빌헬름 3세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미모와 총명함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친정은 가난에 허덕이던 초라한 prince 가문이었습니다.  그녀가 결혼하여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환영하기 위해 도열한 어린이들을 친히 안아줄 정도로 무척 소탈하고 상냥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흔히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초대 독일 제국 카이저가 되는 빌헬름 1세의 어머니가 바로 저 루이즈 왕비입니다.  알고 보면 대단한 여자를 나폴레옹이 몹시도 괴롭혔던 것이지요.  저렇게 프랑스 한복판 베르사이유의 거울의 방에서 대관식을 올릴 때, 빌헬름 1세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프랑스 손에 겪으신 고초를 생각을 하면서 울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나폴레옹은 프로이센 왕실에서 루이즈 왕비가 차지하고 있던 비중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빌헬름 3세의 부인인 루이즈(Luise Auguste Wilhelmine Amalie)는 독일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Mecklenburg-Strelitz)의 가난한 대공 가문 출신으로서 당시 30세의 아름다운 왕비였습니다.  젊고 총명했던 그녀는 구시대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로이센 궁정의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반 프랑스 정서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프로이센 귀족층은 아직도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의 추억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프랑스 쯤은 한주먹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작년에 빌헬름 3세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중립을 지켰던 것에 대해 무척 불만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새로 베르크-클레베스 (Berg-Cleves) 공국의 주인이 된 나폴레옹의 매제 뮈라(Joachim Murat)가 그 곳을 인수인계를 받는 과정에서 보여준 오만함은 프로이센 사람들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습니다.  나폴레옹이 그런 행동에 대해 뮈라를 나무라기는 했습니다만, 콧대높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후손들의 감정은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루이즈 왕비는 이런 귀족층의 반 프랑스 감정을 대변하여, 우유부단한 빌헬름 3세에게 반 나폴레옹 기치를 높이 들도록 부추겼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이 과소평가했던 것이 바로 위에서도 언급한, 프리드리히 대왕이 남겨준 프로이센 귀족층의 자부심과 자존심이었습니다.  왜 프로이센이 1806년 가을이라는, 군사 외교학적으로 자신들에게 최악의 시기에 굳이 프랑스에 대한 선전 포고에 들어갔는지를 이해하려면 프로이센의 역사에 대해 잠깐 살펴보셔야 합니다.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프로이센은 혼자서도 프랑스와 맞짱을 뜰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16세기 후반의 프로이센 공국의 모습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저곳은 독일 땅이었으나, 오늘날 저기는 모두 폴란드 및 러시아, 리투아니아 땅이지요.  히틀러가 다 말아 먹었습니다.  만약 현대 독일이 옛 영토를 되찾겠다고 나선다면... 정말 사단 나는 거에요.  사실 저 영토를 상실한 지도 얼마 안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만주벌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과는 파급력이 다른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겁니다.)



원래 프로이센은 유럽 북동부, 즉 현재의 폴란드 북동쪽에 자리잡았던 종교적 군사 단체인 튜톤 기사단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 개혁이 한창이던 1525년, 여태까지 카톨릭 교리에 따라 기사이자 사제 신분이던 기사단장 알베르트 (Albert)가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을 하면서,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둘 수 있게 되면서 그를 시조로 프로이센 공국 (Duchy of Prussia, Herzogtum Preußen)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이센 공국은 당시 북방의 강국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왕국에 대해 신하의 예를 취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위대한 독일 제국은 히틀러가 대놓고 경멸하던 폴란드 왕국의 지배 하에 있던 일개 공국으로 시작했던 것이지요.  당시 수도는 왕의 도시라는 뜻인 쾨니히스베르크 (Königsberg)였고, 사실 뭐 별로 볼 품 없이 척박하고 가난한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모습입니다.  그 왼쪽에 그단스크라는 도시가 보이지요.  저곳의 독일명이 바로 단찌히로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영토를 잃고 난 뒤에도 독일계 주민들이 모여사는 단찌히 자유시가 됩니다.  나중에 히틀러는 동 프로이센으로 가는 길을 내놓으라고 폴란드를 압박하면서 저 단찌히 자유시를 독일 영토로 합병시키는데 성공하지요.)



그러다가 프로이센 공작의 남성 직계가 끊기면서, 혼인 관계로 맺어져 있던 중부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Elector of Brandenburg)가 1618년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바로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독일 제국의 카이저를 배출한 바로 그 호헨촐레른(Hohenzollern) 가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은 사실상 하나의 국가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그렇다보니,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은 동서로 크게 두 덩어리로 나누어진, 기묘한 모양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조를 따진다면 프로이센이 브란덴부르크를 먹었다기보다는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을 먹은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은 프로이센이었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하 노릇은 당분간 더 해야 했기 때문에, 왕국이 될 때의 이름은 프로이센 왕국이 되었습니다.)




(프로이센의 팽창으로 인해 결국 하나로 합쳐졌던 브란덴부르크, 즉 중부 프로이센과 동부 프로이센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다시 17세기 때처럼 두동강이 나버립니다.  저 지도에서 독일 본토와 동부 프로이센을 연결하는 해안가에 위에서 언급했던 단치히 자유시가 나오지요.  사실 제1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저 동부 프로이센 사람들이 많이 슬라브화 되어서, 힌덴부르크인가 루덴도르프인가 아무튼 높은 독일군 장성은 '동부 프로이센 사람들은 독일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러시아인 같다'라며 한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이 전장의 한 가운데에 위치했던 브란덴부르크 공국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고, 이 경험은 대선제후 (The Great Elector) 라고 불렸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로 하여금 '무조건 군사 제일주의'를 택하게 합니다.  즉, 1644년 5천5백명의 작은 규모이나마, 프로이센 최초의 상비군이 창설된 것이었습니다.  30년 전쟁 내내 대부분의 국가들이 필요할 때마다 돈으로 모집했던 용병 부대에 의존했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일이었지요.  이렇게 시작된 '선군정치'는 나름대로 효과를 거두어, 제2차 북방 전쟁에서는 나름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 형식적이나마 폴란드 왕의 신하 신분이던 프로이센 공국은 1657년 브롬베르크 (Bromberg) 조약으로 드디어 폴란드 왕의 신하 신분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은 전쟁을 통해 점점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유럽 전역으로부터 박해박던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을 받아들이면서 국력을 크게 확충시켰고, 이는 마침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3세가 1701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1세로 승격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프로이센이 독립한다는 것을 뜻했고, 향후 독일권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게 되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경쟁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산업이나 문화의 경쟁력 덕분이 아니라, 이제 4만명 수준으로 성장한 프로이센의 상비군 덕분이었습니다. 




(1701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거행된 프로이센 초대 국왕 프리드리히 1세의 대관식 모습입니다.)



이런 프로이센의 선군정치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버지이자, 프로이센 초대 국왕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Friedrich Wilhelm I) 시대에 더욱 강화됩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흔히 군인 왕으로 불릴 정도로 군대를 좋아하고 우선시했는데, 그 극단적인 모습은 바로 거인 부대, 즉 포츠담의 거인병들로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포츠담의 거인병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시대에는 네덜란드 사람들 키가 작았다고 ? http://blog.daum.net/nasica/6862383 참조)  흔히 19세기 유럽 왕가 인물들의 초상이나 사진을 보면 군복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루이 14세가 화려한 궁정복을 입고 프랑스의 문화를 뽐낼 때, 그는 검소한 장교복을 입고 군인 왕임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둔 덕분에, 1740년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로이센 왕위와 함께, 무려 6만 명에 달하는 상비군을 물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프로이센의 인구는 약 250만으로서 유럽에서 12위에 불과했으나, 6만명이라는 군대는 유럽에서 4위에 해당하는 규모였습니다.  이를 위해 프로이센의 국가 재정은 거의 전부가 군대에 투입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프로이센의 재정 규모는 약 700만 탈러 (thaler) 정도였는데, 그 중 500만 탈러가 군 예산이었으니, 한마디로 군대에 미친 나라였지요.




(1745년 호헨프리데베르크 전투에서의 프로이센 척탄병들의 공격 장면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 즉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 군대를 이끌고 그야말로 중부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그는 즉위를 하자마자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와 전쟁에 들어갑니다.  흔히 실레지아 (Silesia) 전쟁이라고 불리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그는 프로이센 군대의 신화를 만들어 냈지요.  특히 7년 전쟁 기간 중인 1757년의 로스바흐 (Rossbach) 전투와 로이텐 (Leuthen)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무려 2배가 넘는 병력의 오스트리아 및 그 연합군을 단독으로 격파하는 위엄을 보여주었고, 이 전투들은 프로이센 군에 대해 전 유럽에게 경외심을 새겨넣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중부 유럽에서 오스트리아-프랑스-러시아라는 3대 강적에 맞서 사실상 홀로 싸웠는데도 결코 밀리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윗 그림이 로스바흐 전투, 아래 그림이 로이텐 전투 모습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1759년 쿠네르스도르프 (Kunersdorf) 전투에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에 참패를 당해 5만명의 병력 중 프리드리히 대왕과 함께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불과 3천에 불과할 정도로 수세에 밀리기도 했습니다.  베를린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프랑스-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앞두고 프리드리히 대왕이 음독 자살까지 결심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는데, 이때 일어난 일이 소위 '브란덴부르크 가문의 기적' 사건이었습니다.  즉, 러시아의 여걸 엘리자베타 여황이 1762년 1월 사망해버린 것입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프리드리히 대왕의 친척이자 그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표트르 3세였으므로 러시아는 자연스럽게 전선에서 이탈했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다시 한번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동구의 거인, 나폴레옹 앞에 서다 - 러시아의 짧은 역사 http://blog.daum.net/nasica/6862541 참조)  어쨌건 프로이센은 강국들의 연합체에 대항하여 혼자서라도 매우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입증된 셈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건은 1945년 패망을 앞둔 히틀러에게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독일 제국에 기적이!' 라는 한줄기 최후의 희망을 안겨주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지요. 




(밀덕들의 필독서, 굽시니스트의 제2차세계대전 만화입니다.  굽시니스트님, 혹시 요즘도 이 책 잘 팔립니까 ?  시사인 만화는 잘 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댁의 전화 번호를 잃어버려서 저는 연락을 못해요.  나중에 함 연락 주시면 고기 한판 쏠께요.)



이런 극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프로이센의 군사강국 이미지는 점점 더 강화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사망할 즈음인 18세기 후반, 프로이센의 상비군은 무려 19만이 넘는 규모로서, 유럽 4위의 규모였습니다.  이는 당시 프로이센의 인구가 1천만이 채 안되는데도, 무려 3천만의 인구를 가진 대국 프랑스의 군대와 비슷한 수준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프로이센은 해외 무역이 활발한 것도 아니었고, 영국과 시작되던 산업 혁명은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아직 농노제가 시행되는 전근대적 농업 국가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프로이센의 모든 사회 구조는 군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귀족들은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중산층은 군대에게 급료와 보급품을 주기 위해, 농민들은 군대에 병사들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프로이센 장관이던 슈뢰터 (Friedrich von Schrötter)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지요. 

"프로이센은 군대를 소유한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소유한 군대다."




(영국이 의외로 국토에 비해 인구가 많은 편입니다.  저 인구는 영국 본토 및 아일랜드의 인구만 합한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프로이센이 이런 나라이다 보니, 프로이센의 왕과 귀족들이 나폴레옹의 상식과는 벗어나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나폴레옹의 지식과 경험이 주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및 오스트리아 정도에 치우쳐 있었고, 프로이센 같은 2류 국가에 대해서는 별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나폴레옹이 보았을 때 1806년 9월 러시아를 빼고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동맹국도 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러시아군이 제대로 동원되어 프로이센의 국경에 도달하기도 전에 먼저 프랑스에 최후 통첩을 보낸 행위는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프랑스의 승리가 확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프로이센의 병력 수는 나폴레옹이 자랑하는 대육군 (Grande Armee)에 거의 육박하는 숫자였고, 현대 미군 조직의 모체가 되는 참모 본부 조직을 이미 갖추고 있을 정도로 편제도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병사들의 제복도 절도가 있고 훌륭한 것을 입는 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1796년 처음 지휘하여 이탈리아를 침공했던 이탈리아 방면군이 군화는 커녕 바지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었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군대였지요.  하지만 프로이센 군은 어디까지나 18세기 군대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에서 전혀 발전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68세 당시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모습입니다.)



먼저, 프로이센 군은 장기 복무를 하는 직업 군인들로 이루어진 군대였습니다.  원래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버지 시절에는 프로이센 출신의 농민들을 소집하여 병사로 훈련시키는 것을 선호하였으나, 프리드리히 대왕은 주로 외국 출신의 병사들을 모병하는 것을 더 선호했습니다.  이는 내국인들을 믿지 않는다던가 외국인들이 더 잘 싸운다든가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워낙 국가 규모에 비해 상비군이 크다 보니, 군대를 먹이고 입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믿을 수 있는 자국인들은 가급적 생업에 종사시켜 군대를 먹이고 입힐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1776년 프로이센 군 18만7천 중에 중부 프로이센 및 동부 프로이센 출신은 불과 9만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부대원들은 프로이센에 대한 충성심이 전혀 없었고, 엄한 규율이 아니면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교들의 자질이 매우 중요했고, 프로이센 장교들의 우수성은 유럽 전역에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프로이센 사회 구조상 토지 귀족이었던 융커 (junker)들이 장교단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승진 등은 능력과 성과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문과 연공 서열에 따라 이루어졌거든요.  딱 한번, 저 위에 언급한 1759년 쿠네르스도르프의 참패에서 프로이센 장교단이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프리드리히 대왕도 어쩔 수 없이 최초로 귀족이 아닌 중산층 계급 출신들을 장교로 임관시킨 적도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책은 곧 다시 귀족 계급에서만 장교를 뽑는 것으로 바뀌었지요.  그 결과, 샤른호스트 (Gerhard von Scharnhorst) 같은 대단한 인물조차도,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1806년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 당시 나이가 51세였는데도 중령 계급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샤른호스트 장군입니다.  이 양반은 원래 프로이센 출신이 아니라, 하노버 출신으로서, 덕분에 영국군 편에 서서 미국 독립전쟁에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샤른호스트는 저 본인보다도 오히려 2차세계대전 당시의 나찌 독일의 전함으로 더 유명하지요. 물론 저 전함은 윗 양반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7년 전쟁 당시에는 이런 점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적대국들도 다 마찬가지였거든요.  하지만 이제 무적의 프로이센 용사들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적군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프랑스 혁명이 낳은 징집 국민군이었지요.  이들은 모두 프랑스 국적이었고, 애국심과 황제에 대한 경애심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장교들의 체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승진과 훈장에 대한 기대로 필요할 때는 놀라운 용기와 인내심을 보여주는 군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장교들은 잘난 집안에 태어났다는 이유가 아니라, 전투 속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해보였기 때문에 승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란느는 농부의 아들 출신으로서 졸병부터 시작하여 원수가 된 인물이었고, 뮈라는 여관집 아들 출신으로서 20살 때 지나가는 기병대의 멋진 모습에 반해서 학교에서 도망쳐 졸병으로 입대했다가 대공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프랑스 군의 장교들은 졸병이었다가 장교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뭐 개혁 ? 진보 ? 군대는 그저 무조건 명령과 복종 뿐이야 ~  돌격 앞으로 ~  프로이센의 모습입니다.) 



사회 전체도 문제였습니다.  군은 결국 군대를 낳은 사회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곳일 수 밖에 없는데, 프랑스가 계몽주의, 인권 선언과 초기 산업 혁명으로 활기를 띠는 사회였던 반면, 프로이센은 아직도 농도제도가 시행되던 경직된 전근대적 사회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는 곧 산업 생산력과도 직결되었습니다.  그 결과, 프로이센 군의 군복은 그럴싸 했으나, 정작 그들이 가지고 있던 머스켓 소총은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에 사용되던 것을 그대로 물려 받은 것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런 낡은 소총은 격발시 가끔씩 폭발 사고를 일으켰으므로, 당시 프로이센 군에서는 '사격 훈련시에는 화약을 규정량대로 다 채우지 말고 조금 덜 넣을 것'을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전술과 전략 등 장교단의 교육과 훈련도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에서 전혀 발전이 없었습니다.  훗날 독일 통일의 원동력을 제공한 정규 프로이센 사관 학교는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 이후인 1810년에 가서야 샤른호스트의 군 개혁 때 만들어진 것일 정도로, 프로이센의 장교 교육은 초보 수준이었습니다.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 이후 나폴레옹이 프로이센 군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프로이센 군에서 복무했던 폴란드 출신 장교와 대화하다가 프로이센 장교들은 사관 학교에서 응용 기하학 같은 고급 수학은 배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랄 정도였지요.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에는 전투에 동원되는 병력 규모가 많아야 5~6만 정도로서, 부대 편제는 사단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군은 10만이 훌쩍 넘는 군대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작전을 펼쳤고, 이미 나폴레옹에 의해 군단 체제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군단 (corps) 이라는 단어의 발음은 왜 콥스가 아니라 코어인지 ? http://blog.daum.net/nasica/6862538 참조)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 이후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프로이센의 개혁 위원회입니다.  여기서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 등이 활약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베를린에 나폴레옹이 입성할 때 베를린 시민들이 마치 파리 시민들처럼 나폴레옹을 환영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군대가 강해지려면 사회 자체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요.  그래서 나폴레옹은 패망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이후로도 영원히 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과거의 영광에 젖어 있던 전설 속의 군대가, 새롭게 등장한 자유스러운 분위기의 강적과 충돌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전투 개시와 그 흐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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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만기 혹은 전/공상으로 전역하는 인원에 대한 취업 혜택 은 수많은 선진국에서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군 전역한 여성도 복무기간에 따라 보장되므로 차별이라 볼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병역의무를 특정 성별에게만 부과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차별인데 권리가 똑같다는 것 자 체가 말이 안 되죠. 자영업자 등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대체할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전역자에 대한 혜택과 현역 군 복무자에 대한 처우 개선은 다른 문제입니다. 병역 의무는 선택권이 없거나 제한 된 강제 종사이므로 월급은 2~3백씩 준다고 해서 전역자에 대한 보상을 땜빵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돈 억대로 준대도 하기 싫으면 안 할 권리가 있는 건 당연하고, 그러므로 현역 병이 적합한 대우를 받는 것과 관계없이 개개인이 국가에 강 제로 붙들려 있던 시간과 자유에 대한 보상을 별도로 해야 하 는 것이죠.

덧붙여서 남의 의견에 망상 운운하는 소리 들으니 참 그렇네 요. 무슨 수꼴전투기도 아니고 말 가려 하십시오.
혹시 선진국의 취업혜택에 대해 알고계시는 사례가 있다면 정리해주시면 더 좋을것 같은데요.
근데 전역자에게 취업혜택을 주는 것 또한 국가에 강제로 붙들려 있던 것에 대한 보상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환국신민들 얘기 들어보면 몽골족이니 만주족은 우리민족이랍니다. 그런데 조선족은 어떠냐고 하면 학질을 떼면서 우리민족 아니래요. 그런데 좀 이상하죠? 언어도 안통하는 몽골,만주는 우리민족인데 언어와 문화가 같고 심지어는 친척관계도 있는 조선족(헤어진지 불과 수십년이기때문에 조선족과 한국에 있는 사람들 친척관계 알아내기가 쉬움.예를들어 일제시대때 중국에 건너간 큰 할아버지의 후손들같은 식으로)은 우리 민족이 아니다?
좀 이상하죠? 그게 왜 그러냐하면 환국신민들이 할주아는건 딸딸이밖에 없어서 그럽니다.환국신민들이 하는게 아시아지도에 한국을 엄청나게 크게 그려놓고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강단사학에 찌들은 매국노라고 욕하는거밖에 없거든요.지도에 한국 엄청나게 크게 그린다고해서 돈 한푼 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이런게 있어요.어떤 사람이 술 잔뜩 처먹고 나한테 '너를 위해 죽어줄수도 있어.돈 100억 줄수도 있어'같은 얘기는 아무짝에도 소용없습니다.내가 100억 필요없고 1억만 빌려달라고 할때 빌려주면 그게 진짜죠.요컨대 사람이 정직한 마음이 나오는때가 언제냐하면 댓가를 치러야하는때 진심이 나옵니다
몽골족,만주족이 우리민족이라고 우기는 이유는 그런 주장해도 돈 한푼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뽀샵해서 한국지도 크게 그린다고 돈 듭니까? 그런데 조선족은 현실에서 실제 상대하니까(즉 댓가를 치르니까)힘들어하는겁니다.몽골족,만주족은 환빠들의 딸딸이의 세계에 존재하는거고(환빠들은 실제 몽골족에 관심있는게 아니라 대제국딸칠수 있는거에 관심있는 거죠)조선족은 실제 현실에서 부딪치니까 힘들죠.
환빠들은 입만 살아서 그래요.그런데 만주를 만약에 한국이 먹는다고 칩시다.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만 진짜 먹는다.그러면 수십만의 조선족이 아니라 수억명의 만주인구(거의 다 한족,그리고 천만의 만주족,수백만 조선족등등)도 같이 먹겠네요?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지만 혹시 만주먹는게 현실화되면 환빠들이 제일 앞장서서 반대할겁니다.한국내 겨우 수십만 조선족,동남아등등도 감당 못해서 절절매면서 무슨 수억 이민족을 먹습니까.환빠들이 제일 앞장서서 반대하겠지만 먹을 가능성은 0이니 우리가 볼일은 없을듯
맞는 말씀이시긴 한데, 갑자기 여기서 왜 이러시는지?
환빠 식으로 족보를 따지면 한국사람(민족?) 끼리는 전부 근친혼이 되겠습니다 ^^
그치만 말씀하셨다시피 돈도 안드는데 꿈이라도 크게 꿔본들 뭐 어떻겠습니까
전 주류 사학에 편입될 가능성이 당분간은 없어 보이는 환빠보다는 이미 주류 사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뉴라이트들이 더 걱정되네요
대부분의 군복무자가 서민-중상층 수준인 현실에서(뭐 이건 어느나라나 마찬가지) 세금정책은 솔직히 말해 요식행위에 불과하고요. 군복무기간이 2년남짓 한데 사병월급 현실화란 것으로 보상을 한다는 것도 군복무자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군복무자 입장에서 가장 도움되는 정책은 군복무를 통해 우선적인 취업 기회를 가지는 것이죠.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을 권리를 주는게 당연히 그들에게 이익입니다.

민간기업에서 이를 적용시키는 것은 당연히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장애인고용의무화 제도 같은 특정집단에 대한 민간고용의무화 정책은 실행되고 있고 논란중인 여성고용의무화정책에 있어서도 민간채용에서의 실행충실도 여부가 논란이 되는 경우는없습니다.

여성과의 대립이라는 논제는.. 뭐 그냥 페미니즘적 논리구요.
세제혜택과 월급현실화가 도움이 안된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네요. 군복무에 대한 마땅한 보상은 당연히 필요하고 이는 실질적이면서 남녀간의 양성평등을 해치지 않는등 다른 가치와 조화를 이루면서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 가산점제도는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는 공무원 시험에만 한정되어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여성들도 어느정도 지지하는 거고요 하지만 민간의 다른분야로 확대하는건 일단 현실성도 별로 없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의 반대가 분명 강하게 표출될겁니다. 그리고 현실성 측면에서는 이미 위에 여러분이 어려움을 지적했으니 생략합니다.
그리고 과연 가산점제도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요? 헌재가 가산점 위헌을 내린 근거중 하나가 가산점이 당락에 큰 영향을 준다는건데 그럼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주면 되지 않으냐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체 가산점제도가 실질적으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결국 생색내기가 되는겁니다. 즉 가산점 혜택은 그런점에서 중대한 모순이 있다고 봅니다

월 100만원 정도로 올린다고 쳐도, 20대 초중반에 2000만원이라는 돈은 매우 큰 금액이죠.
등록금을 내든, 자기개발을 하든, 사업을 하든, 여행을 간다고 하더라도 매우 도옴될 액수입니다.
등록금 내기가 어려워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군 전역자에게 취업에 대한 가산점을 준다는 건 군대를 못간 사람들에게는 불이익을 주는게 아닐까요.
전역자 중에서도 취업을 하지 않을 사람들에 대한 불평등이기도 하고요. 취업 가산점에 대응할 만한 인센티브를 따로 제공한다 한들, 그게 어느수준이 되어야 적정한지 형평성 논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예전의 공무원 군가산점이라는건 극히 일부의 전역자에게 돈 안드는 혜택을 줘서 생색낸 경향이 커 보이는데요.

논란을 가져올 수 밖에 없고, 평등하게 대우하기도 어려운 가산점을 고집하는 것 보다는 월급을 인상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확실한 보상이 아닐까요. 저도 이게 선택의 자유 없이 젊은 시절의 일정 기간을 국가에 바치는 것에 대한 보상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나마 가능한 것부터 천천히 개선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징병제인 나라에서 군대들 못 간다는 건 징집된 인원들이 빼앗긴 시간과 자유를 누렸다는 얘깁니다. 이걸 갖고 전역자들이 받는 보상에 대해 박탈감을 느낀다는 건 개인적으로 봤을 때 좀 많이 맞아야 할 짓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특히 몸 멀쩡해도 성별 하나 때문에 자동적으로 병역의 의무 자체가 없는 여성들은 저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겁니다. 진짜 장애가 있는 분들은 별도의 장애인에 대한 혜택을 부여하면 될 일이고, 이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보장되지요.
여성들이 성별때문에 병역의무가 면제된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건 아닙니다. 여성들이라고 남성들이 지고 있는 병역의 의무에 대해 대가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 대다수는 어느정도 수긍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산점제도 같은 것은 일부에게만 효과가 가고 양성평등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헌법소원을 걸었고 헌재에서도 그것을 인정한겁니다 다만 헌재도 분명 남성들에게 어떤 보상은 필요하다는걸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남성들에게 적절하고 실질적인 보상을 주되 그것이 양성평등을 해치지 않는 틀에서 사회적인 합의로 이뤄져야 마땅합니다.
근데 지금 이와 관련된 수많은 논쟁을 보면 남녀간의 한풀이 싸움양상이 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안타깝습니다. 양쪽다 위에 말한 원칙에 의거해 타협하는 모습을 안보이고 제자리에서 계속 뱅뱅 돌기만합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여성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거지 보상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해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비록 군 복무에 대한 보상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해도, 그들이 느끼는 보상에 대한 수준은 당사자인 남성들이 느끼는 것과 현저한 차이가 있죠. 자연히 남자들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곧바로 역차별이네 군대서 하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런 큰 걸 바라네 같은 말만 나올 뿐이고요.

결국 이 문제는 성별불문 동일하게 병역 의무를 수행케 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합니다. 여성의 신체가 군 복무에 부적합하다는 건 개소리로 판명난지 오래고, 지금같이 병역 자원이 모자란 시기에 기준을 낮춰가며 군에 적합치 않은 남성을 징집해 머릿수를 채우는 것보다 신체와 정신이 보다 건강한 여성이 들어가는 게 군의 전투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죠. 게다가 복무 가능자가 늘어나므로 1인당 복무 기간도 대폭 줄일 수가 있고요(병의 숙련도 문제로 복무기간 단축을 반대하는 주장이 있는데, 그건 교육 훈련 시간보다 부대 정원 꾸미는 게 일과 시간이 더 긴 국군의 일과표만 뜯어 고쳐도 해결될 일입니다.). 무엇보다, 의무 수행에 있어서 보다 형평성 있고 성대립 해소에도 도움이 되니 결국 국민간 분열도 막을 수 있습니다. 망할 헌재가 자꾸 합헌 때리고 있는데, 진즉에 위헌 때리고 여성징병 했어야 했습니다. 그딴 건 후진국이나 하는 거라는 주장은 노르웨이가 남성만 징병하는 건 위헌이라 판결함으로써 끝장났고요.
남녀 모두 의무복무는 국방부부터 일단 현실성이 없다고 퇴짜를 놓을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여성도 의무복무를 하게 하는 나라는 최근에 노르웨이를 포함한다해도 극소수입니다. 노르웨이같은 경우는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 공기업 임원에 대한 여성 40% 할당이 법으로 정해져있을 정도로 남녀간의 평등이 실현된 나라라는 것도 염두에 두셔야 할겁니다. (물론 여성들이 의무복무를 대가로 이 법을 대신 만들어달라 할때 찬성할 남성분들이 얼마나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노르웨이나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또 인구가 매우 적다는 사실도 감안하셔야 합니다(노르웨이 450만, 이스라엘 800만) 이런 나라들에선 여성의 군복무가 별다른 영향이 없겠지만 우리처럼 5천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여성에게 의무복무를 허용한다면, 국방부가 결코 감당할 수 없을것으로 생각합니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철저한 모병제를 택하는건 의무병역으로 인한 병력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도 한 이유입니다.(중국은 매년 사내아이가 1천만명씩 태어나니 1년만 복무기간을 정해도 1천만 대군을 유지해야합니다) 우리도 예외일순 없겠지요
현실성이 없다고 국방부가 주장하는 건 자기들 생각이죠. 여성 영내 거주자를 위해 회장실 등 시설 개보수나 신축하는 데 드는 비용 내지는 자기들 업무량이 늘어나니까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실상 남성에 한정해 입대시키다 보니 부적격자를 어거지로 기준을 올려 군의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게 더 비효율적이라는 걸 망각하고 사는 이야기고요. 그리고 병역 의무는 국가가 강제로 구성원에게 부과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효율성 뿐 아니라 형평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효율만 따져서 징병제를 실시할 거면 신검 1급 중에 몇 명만 추첨으로 뽑아서 전투의 달인이 될 때까지 5~10년 굴리고 나머지를 면제시켜야죠. 사실 국방부는 이거에 대해 부정적이다기보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선진국들이 여성 징병을 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효율 이전에 대부분 징병제 자체 폐지를 준비중이거나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새로 징병제를 도입하는 소수 국가들은 성별 불문 병역 의무를 부과하죠. 여성의 인권 신장이 이뤄져 있어야 징병제를 여성에게 확대 실시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도 동의하진 않지만, 그게 옳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충분히 역차별 논란이 일 정도로 여권 신장 국가에 들어갑니다. 임원 비율 적다고 뭐라고 하지만 반대로 교사나 공무원 등의 여성 비율은 충분히, 초등교원 등 일부에서는 과도하게 높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걸 무기로 삼을 생각을 않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합니다. 정히 필요한 제도가 있으면 더 개량해서 도입하면 되고요(여성 할당제가 아니라 특정 성별이 고위직이나 공무원 등에 있어서 일정 비율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제도 등. 우리나라 공무원도 이 같은 제도를 운용하여 특정 성별이 일정 비율 이하로 합격하면 낮은 성별에서 비율이 맞을 때 까지 더 뽑습니다.).

국방부가 여성이 징병 대상이 되면 인적 자원 감당 못한다는 문제는 1인당 복무 기간을 단축시켜 순환을 빨리 하면 된다고 앞서 언급드렸습니다. 게다가 군 인사법에 따라 인력난을 겪고 있는 해군과 공군 정원을 육군 눈치 안 보고 늘리거나 정원 상한선 자체를 철폐할 수도 있으니 전력 형상도 기대할 수 있죠. 그래도 인력이 남으면 입대 가능 신검 기준 등을 올리고 나머지 자원들은 보충역으로 선발해 군 내의 비전투 임무(환경 미화 등 현역 군인의 교육훈련 시간을 깎아먹는 쓸데없는 작업류들. 진지 공사 같은 거야 훈련의 일환으로 현역들이 한다 쳐도 "내가 군인인지 정원산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쓰잘데기 없는 일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건 현역 군필이라면 다들 알 거라 믿습니다.)에 투입하거나 사회 기반시설 및 복지시설에 투입해 인력난을 해소하게 하면 됩니다. 중국의 예를 드셨는데, 그 나라는 애초부터 징병제를 유지할 이유도 없고 인구 대비 필요 군인 비율도 현저히 차이가 나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국방부나 관련분야에 근무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간단하고 쉽게 얘기하시는건 같습니다. 자기들 일이 늘어나서 하기 싫다거나 복무기간을 단축한다거나 그런일들이 님이 얘기하는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국방정책이란 국가방위를 위해 여러가지 요건을 고려해야하고 그 요건은 당연히 점진적인 변화, 예산의 제약, 등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합니다. 하지만 님의 제안은 다만 남녀간의 병역의무 동등부과에만 초점이 맞춰져있고, 이것에 의해 제기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사실 더 크다고 보여지는데 그걸 너무 간단히 생각하시는것 같네요.
흠....생각보다 토론이 길어졌네요. 말씀도 많이 격해진것 같고요. 일단 진정부터 하시고....

사실 군 가산점 문제나 징병제 확대 문제나 결국은 징병제가 생긴 이래 수십년간 남성 시민을 착취해온 제도가 원인 아니겠습니까?

그럼 원인을 제공한 국가에 제도의 개선을 요구할 사항이지, 여자와 남자간의 감정 싸움이 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자신의 인생이 걸린 일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맞아야 할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주장의 가부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일단 한번 말이 격해지기 시작하면 개싸움이 되는 일은 그리펜NG 케이스에서 멈추었으면 합니다.)

우선 여성과의 대립 문제는 꺼리가 안된다고 보시는 주장도 있는데, 대립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은것 같네요. 공무원이라는 한정된 안정된 직장이라는 이익이 걸려 있는데, 사회적으로 누가 순순히 양보하려 하겠습니까? 여기에는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이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거에요. (지금까지의 사회 갈등 요소 중에 대의 명분이 뒤떨어진다고 보는 측면이 있었던가요? 전 종교인 과세 문제를 제외하고는 별로 못봤습니다.)

참 이게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한 것이...

우선 민간 기업까지 고용 쿼터를 의무하는 것: 실효성이 떨어지죠. 사실 저희 회사만 하더라도 정규직은 대다수가 남자인 직장인지라, 의무 고용 자체가 의미가 없고, 어떤 직장의 경우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남성 쿼터를 채울 수가 없는 직장도 있지요. (ex: 간호사, 초등학교 교사, 보육 교사 등등), 더욱이 시험과목의 성적이 당락을 좌우하는 직업 중에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직장은 평등 가치보다는 직무에 필요한 지식 능력을 우선해야겠지요.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기업 등 규모가 큰 곳이 많고, 문제가 잘못되면 피해를 입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지고요.

세제 혜택, 월급 현실화: 다 좋은데, 국가에 돈이......그리고 그놈의 적정 수준의 봉급이 얼마인지...세제 혜택은 어떻게

여성도 병역 의무 부여: 우선 노르웨이의 케이스를 들어 여성도 의무 복무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건 한국적인 현실 때문에 반대입니다.

우선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고 복무 연한을 줄이자고 하셨는데, 복무 연한이 줄어들면 병사들의 훈련 숙련도는 그만큼 보장할 수 없겠지요. 노르웨이야 유럽이 집단 안보체제하에 있어 안보환경 자체가 여유가 있지만, 한국은 그렇게 로테이션을 짧게 가져가면 병사들의 숙련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떨어질 겁니다. 이런 문제는 기계화가 잘된 군대일수록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요.

그리고....결정적인 문제는 돈....언급하신 바와 같이 여성들의 입대와 관련하여 들어가야할 시설비 증액이 만만치 않을거구요. 그게 펜대굴리는 장교들의 귀차니즘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사실 이들의 노력 없이 보급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아마 제한된 예산으로 그거까지 처리하려면 결국 어딘가에서 빵꾸를 내서 써야하는거고...그럼 같이 복무하는 남성들도 피해를 보게 되죠.

또 한가지, 군대 내 성범죄 문제도 고려해봐야겠지요. 당장 장교들도 장군들의 성범죄로 인해 고통받았다는 사례가 한 두건이 아닌지라...문제는 이게 처벌 절차가 납득이 가도록 해야하는데, 최근의 사례들을 보면 참 여자들 군대보내기 겁날 정도니까...(물론 한국이 성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문화가 있는게 원인이지 군대만 특정지을 문제는 아니지요,) 아마 여성들이 의무 복무를 하게 될 경우 군 범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위험이 있습니다.

모든 대책들이 한계를 가진지라 선뜻 어느 대책을 쓰자고 주장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사실 가산점에 딱히 공감을 가지지도 않는 것이 저나 주변 친구들이 취업을 할 때 남자의 경우는 군대를 갖다온 것이 암묵적으로 반영되다보니 취업 문턱 자체가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거든요. (물론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노동시장에 이미 군대라는 가치가 반영이 된거란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시장에 맡기자는 주의입니다. 국가보다는 오히려 노동시장이라는 시장이 그 가치를 반영을 잘 해주고 있으니 말이지요. 여기에 가산점이나 규제같은 장치들이 시장 질서를 왜곡할까봐 저는 그게 더 걱정이지요.
동등 부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니라 동등부과로 인한 효과가 지금처럼 남성만을 징집하는 것보다 더 높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초기에는 분명 공동 징병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이득이라는 거죠.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니까 여러 가지를 고려해봤는데 고려 해 봐도 남녀가 다 군대를 가는 게 낫다고 결론이 난다는 겁니다.

군 복무기간 단축으로 숙련도가 떨어진다는 건 어찌 보면 어불성설입니다. 독일 연방군만 해도 징병제 폐지 직전에 육군 기준으로 불과 9개월만 복무했음에도 미군 등과 합동훈련시 숙련도 딸린다는 얘기 안 나왔습니다. 도리어 나토에서 매우 모범적이고 전투럭이 높은 군대 가운데 하나로 여전히 이름높죠. 앞서 얘기드렸듯 일과 시간에 환경 미화나 하는 군대와 자기 특기에 맞는 교육 훈련을 하는 군대는 같은 시간을 보내도 숙련도의 차이는 당연히 커질 수 밖에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기술 특기들의 경우는 전문하사 제도 등을 통해 장기 근무 희망자들을 이 쪽으로 돌리면 됩니다. 덧붙여서, 기계화된 부대일수록 숙련도가 문제될 거라 하셨는데 독일 연방육군은 모든 보병이 기계화된 상태로 육군의 병과에서 아예 그냥 보병이 삭제되기까지 한 군대입니다.

성범죄 문제가 우려된다면 군대 자체가 여군을 받질 말아 합니다. 남자들끼리만 있어도 성범죄는 발생하는 게 군대, 아니 전 세계 모든 직종이고, 단지 군대가 문제되는 것은 강제로 끌려온다는 점과 상명하복 시스템하에서 특히 하급자가 당하는 입장이면 상급자의 부당한 성적 괴롭힘에 항거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이건 성범죄 자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지 성범죄가 일어나기 쉽다고 특정 성별을 의무에서 배제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시설 개선에 드는 비용은 오류 수정에 대한 댓가로 감내해야 할 일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국가적 이득을 생각하면 도리어 싼 편에 듭니다. 따지고 보면 그리 큰 돈 드는 것도 아니고요. 적어도 사단 하나에 골프장 하나씩, 그것도 외주업체가 아니라 병력 차출해 만들면서 여군 영내 거주시설 개보수 비용이 없다고 하면 납득이 안 가죠. 물론 신생활관 건설 등이 지연되고 그에 따른 기존 남성 복무자들이 괴롭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만, 그리 치면 신 생활관 짓는다고 컨테이너 생활 하다 만기 전역해서 새 건물 구경도 못 하고 전역한 사람들도 일일이 보상해 줘야 한단 소리도 일리가 생깁니다. 좋은 시설에서 2년을 보낼지 한동안 컨테이너 쓰더라도 그 반만 군생활 할지 고르라면 군필자들의 답은 항상 똑같을 겁니다.
흠 나폴레옹 시대 카테고리에서는 댓글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기도 뜨거워지는군요. 가산점 문제...참 난감한 문제이지요.

가산점 문제가 주로 불거지는 곳이 공공기관이나 일부 대기업 (주로 강한 노조에 의해 근무조건이 다른 직장에 비해 월등히 좋은 일자리 들이지요.) 일자리라는게 특이 사항이네요.

시험 성적에 대한 가산점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따지면 공인중개사, 관세사, 변리사, 사법시험, 행정고시, 회계사 등등에도 가산점을 붙이자는 말이 나오겠지요.)....

그런 좋은 직장의 입문에 있어 군대 갔다온 사람에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자는 건데....

애초에 이들 직장이 다른 직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여나 근무조건이 큰 차이가 없었어도 이런 이야기가 많았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민간기업에서는 몇몇 부서를 제외하면 웬만하면 여자보다는 남자가 취업에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5년전 제가 취업준비생일 때 최고의 스펙이 '남자' 라는 현실이 당연했었죠. 지금도 상황이 크게 바뀌진 않았고요. 승진이나 급여에 있어도 웬만한 대기업에서는 군대 복무한 것을 감안하여 책정하고요. 물론 명시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어요.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는 거라 굳이 의무화시켜봐야 중복된 규제에 불과하지요.

저는 이 논란이 한국의 기형적인 노동 시장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대기업이나 공공 분야는 강한 노조에 의해 보호되고 있으며 일부 자격이 필요한 서비스업은 경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급여 및 근무조건이 다른 중소기업이나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비해 월등히 좋죠.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급여 차이를 볼 때 OECD 평균이 1.5정도라고 볼때 한국은 2~3에서 결정된다고 하지요. 이는 한정된 좋은 자리를 놓고 비정상적인 혈투가 벌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군 가산점 문제도 그런 경쟁에서 파생된 문제에 가깝고요. 한국에서 구조조정이 발생할 경우 노조의 저항이 강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한 근무조건과 급여를 받아줄 직장이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저는 군 가산점 문제에 앞서 해결되어야 하는 점이 노동시장이 어느 정도 유연성이 발휘되지 않으면 쉽지 않을거라고 봐요. 근본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가산점 문제의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갈등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노동 시장의 현실이거든요.
일부 공무원 지원자에 해택이 있는 가산점이나, 부자에게 이익이 있는 소득공제보다는
월급에서 5% 정도 빠져나가는 건강보험료처럼, 국방보험료 내지 세금을 2%정도 만드는것은 어떨까 하네요. 상속이나 증여시에도 2%정도
애키우면서 집에 있는 주부에게는 부담이 없고, 남자들 군에 있을때 열심히 공부해서 돈버는 여성들은 월 4-6만원 정도, 군면제 받은 스포츠 스타, 연애인, 재벌 2세는 년 수천에서 수십억원 내게 되는 겁니다. 증여나 상속시에는 몇백억까지 낼수 있는거죠.
많은것 같지만, 2년동안 무상 봉사하는 현역에비하면, 평생 1년 수입도 안되는 금액을 내는것입니다.
현재 세금 처럼 소득에 따라 비율을 조금 올려도 될것 같구요. 들어온 수입은 현역병의 처우 개선과, 국방력 강화에 쓰면 지금처럼 돈없어서 비행기, 군함 못사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군면제 받는 재벌 2세들도 조금은 부담이 될것이구요.
여성에 대한 과세는 그 돈 가족들이 대신 대 주는 등 되려 가계에 부담만 줍니다. 정히 여성에게 국방세를 걷게 하려면 정해진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하고 군복무하는 남성보다 몇 개월 정도 더 일하게 한 다음 급여 중에서 공제하는 수 밖에 없는데 이게 가능할리가요.
몇백년쯤 전 군대 야그에서 전혀 뜬금없다시피한 떡밥이 떠올라 모가디슈가 된 이 덧글판을 이해 못하겠심다,다들 자기 하고싶은 이야기만 하니 저도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 해야지
저도 군대 다녀온 사람이지만 여성징병제는 절대 반대입니다. 징병제는 평상시에도 많은 수의 병력을 확보할 수 있고 다수의 예비군을 둘 수 있어서 전시에 빠른 속도로 병력 규모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러가지 단점도 있는데,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는 사회의 병영화입니다. 즉 사회의 상당수가 군대에 다녀온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어 군대문화가 사회 전체에 퍼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군대문화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고 있고 군대 자체에서도 군대문화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직장에서 군대 이야기를 들먹거리면서 후임의 '군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적지 않고, 심지어 대학생들조차 후배들의 군기를 잡겠다면서 정작 군대에서도 이미 금지된 '부조리'를 행하는 것도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까지 군대에 보내자? 이것은 남성들만이 군대에 다녀오는 상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회 전체에 군대문화를 확산시킬 위험이 큽니다. 한 마디로 나라를 지키자면서 그 지켜야 할 나라를 말아먹자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우리나라를 이스라엘처럼 만들 셈입니까?

물론 그 외에도 여성징병제를 반대할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격리문제나 (그럼 여군도 받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위험이 있느냐 없느냐, 비용이 드느냐 안 드느냐의 OX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신체적으로 약하다거나 (훈련하면 되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전 여성들을 전부 늠름한 전사로 탈바꿈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안 그래도 낮아지는 출산률을 더 낮춰서 오히려 국방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거나 등등. 하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군대문화의 확산입니다.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럼 군대에서 군대문화를 없애고 나서 여자들을 군대에 보내면 될 것 아니냐" 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이론에 불과합니다. 군대에 다녀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대문화는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몰려있는 동시에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을 유지할 것이 요구되고 주어진 책무를 수행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다거나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군대문화는 '군대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분명한 의식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지, 한 번 "다 없앴다. 끝!" 해서 영원히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사회의 병영화가 진행되면 군대문화를 제거하고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군대가 사회를 잡아먹는 겁니다. 군대에서 흔히 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군대는 개가 들어가면 사람이 되어 나오고 사람이 들어가면 개가 되서 나온다." 개가 되어 나온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군대가 '개가 되어 나오는' 곳이 안 되도록 노력해야지, 사회 전체를 개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병영화는 반드시 징병제와 연관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회 전반에서 군바리즘(?) 찾아보기 힘든 모범 국가라고 칭송하는 서유럽 국가들 상당수가 20세기 말~21세기 초까지 징병제를 유지해 왔다는 걸 먼저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군대문화가 당연시 되는 사회는 구성원 상당수가 군대를 다녀오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의 군대문화가 어떠하냐 혹은 사회가 군대문화에 대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가 좌우한다는 것이죠. 이는 특히 정부나 국민 다수가 추종하는 사상 혹은 종교를 통해 권장 혹은 조장되는 측면이 큽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군국주의 문화의 대표주자에게 식민지배 30여년을 겪고, 거기에 해방되자마자 미군에 의한 위임 통치를 겪은 뒤 한 차례 전쟁을 치르고, 군사 정권에게 근 30년을 더 시달렸죠. 전역한 장병들이 사회에 군대 문화를 확산시킨 게 아니라 국가에 의해 장려되고 조장된 군대 문화, 그 가운데서도 상명하복식 경직된 시스템을 탓해야 하는 겁니다.

군대 안 갔다온 여성들이 군대 문화의 청산에 대해 큰 기여를 했느냐 하면 전 부정적입니다. 도리어 군대 문화를 더 조장하고 부추기기까지 했죠. 여성의 지위가 낮았을 때야 목소리 못 냈던 건 당연하고, 상당한 여성들이 "남자들은 군대갔다오면 철 들더라."는 생각을 여전히 숭상하고 있고 군대 안 갔다온 남자를 비정상 내지는 소위 말해 등신 취급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대놓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말 그대로 남자를 마초맨이 될 것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이들 상당수가 여성들이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대학가나 직장, 그것도 군필 남성이 하나도 없는 여대나 여성들만 일하는 직장에서조차 소위 군기잡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말씀하신 대로라면 미필 여성들의 사회에는 이런 게 일체 없어야 하지만 이른바 군대 문화는 이들에게도 존재합니다. 한 마디로 여자가 군대 안 간다고 군대 문화 사라지는 데 별 기여는 못 한다는 거죠.

국민 의식의 전환 덕분에 사회에서 군대 문화 청산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맞으나, 이는 미필 여성들이 아닌 군필 남성들이 주도하는 것이 더 설득력도 있고 규모도 큽니다. 사실 미필자들이 백날 얘기해 봐야 "니가 갔다와 봐." 한 마디로 데굴멍하면 했지 설득력이 높을 리가 없죠. 우리 나라를 이스라엘처럼 만들 셈이냐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는 군바리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들이 숭상하는 유대 교가 이슬람보다 훨씬 꽉 막힌 분위기로 이런저런 금기도 많고 생활 전반을 여러모로 통제하는 종교라는 점, 국가 자체가 워낙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법률적 규제가 심하다는 점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분위기 자체가 삭막해진 측면이 훨씬 큽니다. 비슷한 예로 준법국가로 유명한 싱가포르가 있죠.

선진적인 군대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진 않고,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게 선행되기 전에는 남성만을 여기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애초부터 그걸 남성만 다 감당해야 할 이유도 없고, 여성 징병을 하게 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취약하여 군대 문화를 버티지 못하거나 세뇌되어 재사회화가 힘든 연약한 남성들이 들어갈 여지를 더 줄여주죠(신검은 엄연히 정신 수준도 검사합니다.). 인적 자원의 수준을 올림으로써 그 걱정하시는 사회의 병영화를 도리어 더 낮추는 효과까지 줄 수 있다는 겁니다. 편견에서 나온 주장이긴 하나, 군에서 여군 비율을 늘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군 내의 경직된 분위기를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다."가 있다는 걸 상기하셨으면 하네요. 그리고, 여성이 입대하는 만큼 병역 입대자가 늘어나 군대물을 먹는 사람 자체는 늘지만, 대신 1인당 거기에 노출되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재사화화를 훨씬 원활하게 하고 군대 분위기 자체도 일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년 가까운 시간을 군에서 보낸 사람과 1년도 안 보낸 사람 중 누가 더 전역 후의 사회에 더 빨리 적응하고 그 분위기를 수용할 수 있는지는 척 봐도 뻔하죠. 그리고, 징병 대상자 총원이 군대를 가는 것도 아니고 만만찮은 숫자가 보충역이나 면제 등으로 빠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성 입대로 인한 군대 문화의 사회 확산은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남녀 격리 문제는 영내 장병의 경우 생활 공간이나 근무지를 분리하거나 하는 식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부분이고(영외 거주자야 밖에 나와서 사는 것이니 문제가 없죠.), 신체적으로 약하다고 하셨는데 당연히 신검 거쳐서 뽑힌 인원만 군대가고 나머지는 보충역이 되니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장교나 부사관에 지원하는 여성 중 탈락하는 이들 대다수는 병으로서는 충분한 신체/정신적인 역량이 있죠(여자는 전사로 키우면 안 되고 남자는 늠름한 마초맨을 만들어도 되냐고 되물어보고 싶지만 참겠습니다.). 출산률의 문제는 딱히 여자가 군대 안 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언급할 필요도 없고요.

군인을 "개" 취급하신 대목에 대해서 상당히 열도 뻗치고 몇 마디 해 드리고 싶지만 싸움을 확산시키긴 싫은 고로 별 말은 안 하겠습니다. 대신 말은 좀 가려서 하셨으면 하네요.
첨언 하나 더 드리자면, 여성의 징병 불가를 주장하는 사 실 자체도 어찌 보면 사회에 퍼져 있는 군대 문화의 잔재 가운데 하나입니다. 게다가 여성을 선천적으로 신검 등을 통해 검증할 가치조차 없는 열등한 존재라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고 비과학적이기도 하죠.
사회적인 문제를 흑백논리로 보는 것은 문제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회에 군대문화가 퍼져 있으면 군대에 직접적으로 다녀오지 않은 사람도 그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이 직접 군대에 다녀왔건 그렇지 않건 '어차피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군대문화가 있다 없다, 군대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안 받았다로 OX 문제 답하듯이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교련을 의무적으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 왜 비판을 받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군대 안 다녀온 대학생들도 군대문화의 영향을 보여준다면, '어차피 이미 군사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 고등학생들에게 교련을 가르치건 말건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고등학교 교련도 90년대에 들어서는 실제 군사훈련보다 응급처치법 쪽으로 가르치는 게 달라지기는 했습니다만.)

서유럽 국가들이 '군바리즘'을 찾아보기 힘든 모범(?) 국가라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군대문화를 포함한 권위주의적 문화를 배제해 온 결과이지 원래부터 징병제가 영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컨대 프로이센식 징병제를 세계적으로 보급한 독일 같은 나라가 원래 군대문화의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에는 심하게 무리가 있습니다. 68운동 이전의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같은 나라들을 영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와 비교해 보면 징병제의 역사가 긴 독일의 역사에서 군대문화의 영향을 훨씬 강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도 군 장성이 전역한지 10년 이내에는 국방장관에 취임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등 군의 문화가 민간 정부의 통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서유럽 국가들이 군대문화에서 벗어났으니 징병제가 군대문화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똥군기를 잡는 사례를 보더라도 많은 경우 군대에서 갓 전역한 복학생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신입생 군기를 잡는다는 개념 자체는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학생들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똥군기를 잡는 실행력과 노하우 면에서 군대에서 똥군기를 경험한 학생들 쪽이 명백하게 우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OX 문제식으로 말하자면 군대에 다녀왔다고 다 똥군기를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군대에서 똥군기를 경험했다고 다 사회에서 적용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군대 바깥의 조직이라고 다 똥군기 '훈련'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차이가 없냐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특히 많은 학생들의 경우 군대가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하는 곳이기 때문에 군대에서의 경험으로 사회 조직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가 쉽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싱가포르를 예로 드신 것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싱가포르가 엄격한 법치국가인 것은 알겠지만, 싱가포르의 어떤 모습을 군대문화와 연결시킬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싱가포르가 엄격한 사회일지는 몰라도 문화가 경직되어 있다는 인상은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가 싱가포르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원인을 종교에 돌리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럽이나 세계 기타 다른 지역에서 보수적일지는 몰라도 종교를 고수하는 것을 제외하면 유연하게 그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 이스라엘 인들처럼 배타적이고 꼴통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강경파가 문제라고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결과이지 원인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에 원래 해외에서 유대교 정통파들이 흥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80년대까지 실전을 겪은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요소가 새로운 세대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군복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여행자들이 자기중심적인 안하무인격 행동으로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데, 이렇게 이스라엘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여행자들의 상당수가 바로 군 복무를 마치고 국가에서 주는 두둑한 연금(이건 부러워하는 분들도 많겠습니다만...)을 받아서 해외여행을 나온 사람들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군대는 개가 들어가면 사람이 돼서 나오고 사람이 들어가면 개가 돼서 나온다"는 말을 군인을 개 취급한다고 말씀하시는 건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따라서 '가려서' 하라는 말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말은 다름아닌 군대에 있을 때 (당연히) 다른 군인들에게 흔히 들었던 말입니다. 다른 부대에서도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필자들이 군대문화의 청산을 말한다고 설득력이 없다고 하는 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성징병제를 반대한다는 것이 사회에 군대문화가 확산되는 결과를 피하자는 것이지, 여성들이 나서서 군 내부의 문화를 바꾼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아실 겁니다. 그리고 사회의 군대문화를 말하는데 있어서 "네가 군대 갔다와 봐" 라는 말로 '데꿀멍(그런데 이 말은 이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왜 할 말 없게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명백히 군대문화의 산물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별도의 시설을 준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말이야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설들은 남성 장병들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으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있다면 사단 본부나 그런 정도입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막상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도 군가산점을 달라는 둥, 여자들을 군대에 보내라는 둥 하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에 비하면 그런 종류의 시설을 개선하자고 공론을 모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고 뭐고 사실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이러한 종류의 운동이 실제 군복무를 하는 입장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군대를 이미 다녀온 입장에서의 사회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카를 되니츠님의 의견이 좀 더 타당한 듯 한데요.

같은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서유럽 국가들과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다른 것은
한국군 자체가 2차대전 이전에 형성된 일본군의 '닥치고 상명하복'의 폐습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치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징병으로 소집된 자원의 대다수는 시골에서 농사짓다 입대한
교육수준 낮고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죠.
복잡한 전술은 이해를 못 하니 반자이 돌격이나 가르치고 대전차 총검술이나 가르치는데
이런 짓은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개인에겐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언급하신 똥군기의 필요성이 생깁니다.
갈구고 굴리고 패고 각잡게 하는 등등의 뻘짓거리를 통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막아버려야
장교가 명령하면 무조건 닥돌하는 1차대전식의 전술이라도 펼칠수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한 똥군기가 해방 후 관동군 출신의 친일파 똥별(및 장교)들이 한국군 요직을 차지함에 따라
처음부터 군대=구 일본군=똥군기=구타,얼차려,가혹행위 로 굳어지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하 특정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월남전 소재이긴 하나 전쟁 그 자체보다는
평범한 미국 청년들이 징병되어 군사훈련을 받으며 어떻게 살인기계로 변모되어 가는가 하는 데 촛점을
맞춘 영화입니다(적어도 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자국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공감을 불러 일으켰는데 유독 한국에서 개봉했을 땐
반응이 썰렁했던 이유가 관객 대다수인 예비역 남자들이
'그러니까 이게 왜 비인간적이라는 거지?','저런 군대면 말뚝박겠는데?'
'뚱땡이 저거 저 정도 갈굼당했다고 자살하는거임?'
뭐 이런식의 반응들이 다수였지요.

세계적으로 공감을 일으킬만한 비인간적인 군대문화를 묘사한 영화가
유독 한국에서 그다지 큰 공감(및 흥행)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하는 건
사회의 병영화가 징병제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한국 군대의 특수성,즉
남방전선에서 보급품을 현지에 맞게 개조를 했다고 해서 당사자를
'천황폐하(개인적으로 그냥 일왕이라고 부릅니다만 문맥상 뉘앙스를 전하기 위해
왜국의 용어를 썼습니다)의 하사품을 멋대로 훼손했다'는 이유로 군법재판으로 처벌을 할만큼
과도하게 경직된 구 일본군의 잔재가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단각/ 다른 나라에 비해서 왜 군대문화가 왜곡되었는가만을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러한 군대문화가 어떤 구체적인 과정을 보자는 것입니다. 군대문화는 군대의 특성상 끊임없이 사병들을 유혹할 수밖에 없고, 이는 징병제 자체와 관계가 없습니다. 징병제의 문제는 그러한 군대문화를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기 쉽다는 점입니다. 사회 전체의 기본적인 분위기도 역시 군대문화에 반영되지만, 군대문화가 사회 전체에 다시 피드백되는 장치로서 작용하는 점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예로 들었듯이 대학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의 똥군기를 잡는 한심한 짓을 하고 있는 과정을 보면 군을 갓 전역한 복학생들이 전반적으로 군기잡기를 밀어붙이는 확신 및 노하우에서 상당히 앞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권위를 잡기 쉽다는 등의 이유라면 군대가 아닌 다른 사회생활을 하다 들어온 학생들도 마찬가지여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학생들은 똥군기를 잡으려는 쪽보다는 비웃는 쪽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 솔직히 말해서 개개인이 군대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과 군대를 다녀오는 게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정말로 믿고들 있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군대식으로 군기 잡으려는 사람들이 다들 군대에 안 다녀왔어도 전부 똑같이 했을 거라고요? 정말로요?
야채//"군대문화는 군대의 특성상 끊임없이 사병들을 유혹할 수밖에 없고, 이는 징병제 자체와 관계가 없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사병들을 유혹한다는 게 똥군기를 잡도록 유혹한다는 말로 이해하고 얘기하겠습니다.

"징병제의 문제는 그러한 군대문화를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기 쉽다는 점입니다. 사회 전체의 기본적인 분위기도 역시 군대문화에 반영되지만, 군대문화가 사회 전체에 다시 피드백되는 장치로서 작용하는 점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상호 피드백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저는 이것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풀 메탈자켓]의 예를 든 것은 야채님께서 말씀하신 징병제를 시행하는 서유럽 국가들에서도
감독의 의도대로 비인간적인 군대문화와 징병으로 인해 살인병기로 키워지는 민간인들에 대한 묘사가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을 경험했고 그 이유를
한국군의 기원이 똥군기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구 일본군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대학에서 예비역들이 똥군기 잡는 걸 예로 드셨는데 카를 되니츠님께서 예를 드신
군대 근처도 안 가 본 여자들끼리 똥군기 잡는 경우에 대해서는 적절한 반론이 없으시군요.
심지어 여대에서조차 그러한 똥군기를 잡는 경우를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데
이것은 앞서 얘기한 군대와 사회의 상호 피드백이 당사자 뿐만이 아니라 제삼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군대를 다녀오느냐 아니냐는 똥군기를 잡느냐 아니냐 하고는 별반 상관 없다는 것도 말해주죠.

"전 솔직히 말해서 개개인이 군대문화의 영향을 받는 것과 군대를 다녀오는 게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정말로 믿고들 있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 관계가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필들이 예비역들보다 똥군기를 덜 잡고
여자들은 똥군기를 덜 잡으며
공대처럼 사실상의 남대보다 여대가 똥군기를 덜 잡는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군대를 갔다 오는 게 똥군기를 잡는 성향과 밀접한 관계(저는 인과관계라고 생각합니다만)가 있다고
판단하는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잘난 척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 경험을 얘기하자면
입대해서 만기전역하는 날까지 상당히 많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물론 공식적으로는
병 상호간 구타 및 얼차려 및 집합 및 암기강요 전부 금지였습니다만...)
후임들에게는 단 한 대도 구타를 하지 않은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은 전역 이후 제 인간적 자존심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주춧돌입니다.
전역 이후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제가 똥군기를 잡은 적은 없으며
똥군기 잡는 걸 비웃는 게 제 포지션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에 말씀하신것처럼

"군대식으로 군기 잡으려는 사람들이 다들 군대에 안 다녀왔어도 전부 똑같이 했을 거라고요? 정말로요?"

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전부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입대여부와 상관 없이
'할 놈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한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홀로코스트 당시 유태인을 숨겨주면 각종 유무형의 불이익을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유태인을 숨겨준 많은 일화들을 근거로 내세우고 싶네요.

군과 사회의 상호피드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병영사회의 조건을 갖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봤을 때 그것보다는
사회의 병영화에는 구 일본군의 잔재가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 일본군처럼 똥군기를 잡을 필요가 없는 군대를 가진 사회는 한국만큼
사회의 병영화가 눈에 띄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개개인의 선택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거죠.
우단각님이 제가 우단각님의 생각을 잘못 이해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은 전적으로 타당합니다. 그 부분은 상당부분 Karl Doenitz 님의 글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단각님의 글에 대한 언급과 Karl Doenitz 님의 글에 대한 언급이 뒤섞여서 혼란을 드린 것 같군요. 이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 전 우단각님의 관점과 제 관점에서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주장의 핵심은 바로 이런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미필들이 예비역들보다 똥군기를 덜 잡고, 여자들은 똥군기를 덜 잡으며, 공대처럼 사실상의 남대보다 여대가 똥군기를 덜 잡는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군대를 갔다 오는 게 똥군기를 잡는 성향과 밀접한 관계(저는 인과관계라고 생각합니다만)가 있다고 판단하는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군대에 다녀온 사람도 똥군기를 경험하지 않았을 수 있고 경험했더라도 똥군기를 안 잡을 수 있고 또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도 똥군기를 잡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에서의 똥군기 경험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개개인의 '똥군기 잡기'에 명백하게 의미 있는 차이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그 개개인 모두에게 의미있는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이것은 바로 Karl Doenitz님의 "군대 근처도 안 가 본 여자들끼리 똥군기 잡는 경우"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된 것이기도 합니다. 군대 근처도 안 가본 여자들도 똥군기를 잡을 수 있지만, 군에서의 경험은 명백하게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온다고 보아야지 "군대에 간 사람도 똥군기를 잡는다 vs 안 잡는다" 로 평가해서 '그 사람들도 똥군기를 잡으니까' 입대 경험이 군대문화와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는 말씀에는 상당히 공감합니다. 그렇다고 사회구성원 중에서 '할 놈'의 비율을 떨어뜨릴 특별한 대책도 없고 그런 사람들을 군복무에서 제외할 수도 없으니 결국 '군에서 똥군기를 경험하면 사회에 그 경험을 전파할 사람'은 항상 상당한 비율로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징병제의 책임인지 그 사람들 개개인의 책임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개개인의 책임'은 자연현상처럼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꾸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라서 부언하겠습니다.

"입대 경험이 군대문화와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입대경험이 있는 사회구성원의 숫자가 많을수록 사회의 병영화가 심해진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얘기하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주장은 그것을 부정하는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반론을 한 영화의 예에서 보다시피 한국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봤을 때 현저한 사회적 분위기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징병제 그 자체보다는 '군대 내에 얼마나 똥군기가 난무하는가'라는 것이 더 중요한 변수이며
근대적 한국군의 뿌리인 구 일본군이 똥군기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질 떨어지는 군대였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입대경험과 똥군기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똥군기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군경험을 하게 되면 똥군기를 잡을 확률은 매우 높아지겠죠.
말하자면 입대경험이 똥군기 스위치를 켜는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도 똥군기 안 잡는 군대에서 복무를 했다면 스위치가 안 켜졌을 확률이 높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굳이 똥군기만 잡는 (구 일본군의 폐습을 물려받은)한국군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그 성향이 확실하게 활성화 되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68혁명 때 "사회에 권위주의를 퍼뜨리는 징병제 없애자!"같은 식으로 군대를 공격한 적이 있었나요? 68 혁명은 대학가에서부터 시작된 사회 전반에 걸친 권위주의를 타파한 운동으로, 그 영향을 받아 군대 역시 그간의 권위주의적 운영이 많이 사라지게 된 것이지 징병제를 공격하여 사회를 탈권위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군대가 그들의 공격 대상도 아니었고요. 68 이전엔 대학에서 학생이 레포트 관련 질문 한 번 하려면 연구실에 편지 보내서 답장 받고 찾아가 굽씬댈 정도로 서구 또한 권위주의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군대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요. 이 시기의 징병제 반대는 권위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 때문이 아니라 베트남이나 알제리 같은 데 끌려가 아무런 명분없는 지저분한 죽음을 맞기 싫었기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미국에서 군 출신이 행정요직을 맡으려면 전역 후 10년 이상 지나고 가능케 하려는 건 군의 문민통제 원칙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군대 문화의 확산을 막기 위함이 아닙니다. 10년 이상 지나면 특히 퇴역 장성의 경우 60~70세를 넘기기 때문에 활동이 많이 힘든데다, 영향을 끼치기 쉬운 동기 등이 군을 떠나 있고, 자연히 이들보다 젊은 나이에 기용 가능한 영관급 장교 출신들은 군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영향력이 많이 배제될 수 있죠.

그리고, 설령 미입대자가 입대자를 보다 덜 권위적인 군대 밖의 분위기에 적응토록 재사회화할 수 있다 해도, "여자"가 일방적으로 치료자가 되고 "남자"가 일방적으로 권위주의를 독박 써 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남자가 더 권위적으로 태어나는 것도, 더 적응력이 높은 것도 아니고요. 남자 반 여자 반이 군대가고 나머지 반이 안 가도 말씀하신 기능은 다 하고도 남습니다. 즉, 말씀하신 그 어떤 것도 남자만 군대 가고 여자만 가지 말아야 할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군대를 가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게 아니라, 국가 위치부터가 존립에 상당히 불리한 곳에 있는 등 불안한 곳이기 때문에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된 겁니다. 게다가, 그네들의 종교인 유대교, 특히 민폐 여러모로 끼치는 골수 유대교도들도 인생 참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이고요. 이들은 그 종교적 계율 때문에 군대 근처에도 안 감에도(징병제 국가임에도 종교에 따라 징병 가불가가 결정되고, 같은 유대교지만 골수 유대교파 일부는 종교적 계율 운운한 덕분에 병역을 면제받습니다. 안식일 엄수 규정에 따라 군대에서 일요일에 초소 지키는 것도 일하는 거라고 간주해서 못 하겠다고 하거든요. 일요일엔 지네 방 불 켜고 끄는 것도 이교도 고용해서 합니다.) 그 쪽수가 만만치 않은데다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 이 정도는 아닌 교파 및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영향 엄청 줍니다. 이들 사는 거 보면 되려 이스라엘 병영이 더 자유롭고 탈탈한 곳이라 보일 지경이죠. 실제로 이스라엘군은 하급자가 상급자, 그것도 병이 장교에게 "이거이건 이러이러한 이유로 잘못되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고, 병들이 근무 중 선글라스를 끼건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건 별다른 터치도 없는, 오히려 국군 병영보다 규제가 약한 곳입니다.

싱가포르는 문민 통제가 철저한 국가임에도 그 엄격한 법 집행과 개인 자유의 제약(집도 자기 맘대로 못 가지죠.), 교육에서의 과도한 경쟁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삭막한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으로 놀러가는 싱가포르인들이 유달리 사고를 많이 치는 경향이 있는데(재미있게도, 이스라엘 관광객들도 외국만 나오면 그렇게 사고를 많이 치고 매너없이 군다고 하죠.), 이는 법 집행이 엄격한 자국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었다는 느낌 덕분이라고 하지요. 싱가포르가 범죄자 없고 녹지 발달해서 공기 좋고 깨끗할 지는 몰라도 행복한 나라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뭐, 독재 국가가 분위기가 안 삭막하면 이상할 리가 없긴 하지만요.

되니츠 님은 이런 맥락으로 두 나라를 언급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를 이스라엘처럼 만들 셈입니까?"라고요?

이스라엘은 최소한 병영 문화라는 측면만 놓고 봐도 우리보다 몇 배는 선진국입니다만? 그리고 유럽 국가 일부 등 전역자 혜택이 크거나 급여가 전역 후 기념 여행 몇 번 다녀오기 충분할 만큼 모을 여건이 되는 국가들의 예비역들이 전역 여행에서 이스라엘 예비역들만큼 깽판 치나요? 그리고 이스라엘 여행자들 중 예비역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인들은 범국민적으로 해외 여행 엄청 자주 가는 편인데, 이는 자국 내에 별로 볼 것도 없는데다 전쟁 위기나 종교적 규제 등으로 법적이나 관습적으로 각종 제약이 많기 때문에 돈도 많은 편이겠다(게다가 국내 물가도 참 환상적이죠.) 다들 숨 좀 쉬고 싶다고 해외로 다녀 오는 거죠. 즉, 깽판치는 관광객이 예비역이 군대의 비민주적인 권위주의에 찌들어 있다 막 해방되어 깽판을 놓는 문화 부적응이 아니란 겁니다. 막말로 그네들보다 대우 더 거지같고 후진 병영 문화 때문에 되려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곳에서 사람 취급 못 받던 동유럽 국가 출신 예비역들이 훨씬 여행지에선 매너있게 행동합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지요?

설령 예비역들이 권위주의를 민간에 만연케 한다 해도, 그 권위주의에 노출되는 사람을 무조건 남자로 한정시킬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되려 남녀 예비역과 면제자가 적정 비율로 섞이는 게 지금처럼 성대결 양상으로 가는 걸 피할 수 있고, 남는 병역 자원을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복지 시설 등에서 대체복무케 하는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죠. 1인당 복무기간도 줄일 수 있으니 전역 후 민간에 재적응하기도 훨씬 낫고, 병역자원이 늘면 그만큼 만성적인 병력 부족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Aㅏ................ 그러니까 나시카님.
그러게 왜 정치적인 글을 써서 전국의 어그로종자들이 모여들게 만들어 흥미진진한 나폴레옹 연재물에까지 불똥이 튀게 하셨나요;; ;ㅠㅠ;;;;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휘저을 때만 하더라도 참 양식있고 나폴레옹 역사에 관심 있는 소중한 분들만 댓글을 달고 있었는데요;;; 설마 어그로종자들이라도 일단 댓글을 더 달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건가...;;
..자학은 좋지 않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의의가 뭔데? 과거 인류의 삶과 경험을 통한 교훈을 현 시대에 반영해 이전의 실수를 더 저지르지 않기 위함이 아니더냐?

역사를 단순히 여흥거리로만 취급하는 당신보단 여기서 토론하는 사람들이 백 배는 낫다. 한심하기는.
주객전도네요 ㅋㅋㅋㅋ
하아 ... 한국에서 남자가 역차별 심하다고 엄살부리는거 보면 참.. -.- 일단 현재 병역문제에 대한 보상은 누진세를 통한 국민적 세금으로 병사 월급을 합당하게 개선하고 등록금이나 교육관련 기회를 주는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고 봅니다.

여성병역은 일단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수준으로 완전히 동일해진다면 찬성이고
가산점제도는 애초에 웃기지도 않은 발상이니 고려대상조차 못되는거 같네요.
86년생으로 이 땅에 태어난 이래 남자라서 득본 기억이 암만 봐도 없는 입장에선 여자들이 군대 못 가겠다고 하는 거 자체가 엄살로 보입니다. 병 월급의 개선은 강제로 끌어다 종사시키는 거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부리는 이상 합당하게 줘야 할 보수이니 같은 격에 둘 수 없고요. 웃기지도 않은 발상이라 하셨는데, 전 의무를 이행도 안 하면서 권리를 똑같이 맞추라고 하는 게 더 웃깁니다.
여자들에 대한 증오심만 불태우지 마시고 군가산점제도가 왜 위헌이 되었는지부터 확인해보시죠.
아마 여자들에 대해 한방먹여준다는 만족감때문에 가산점에 그렇게들 집착하시는 모양인데.가산점제도는 단순히 여자에대한 분풀이 이상이 못될뿐더러 해외에서 남성들 군복무 보상해주겠다고 여성의 구직을 제한하자는 발상이 있었나요? 병역에대한 기본적인 급료인상도 안이루어진 판국인데 가산점같이 지엽적인데다가 합리적인 보상방식도 아닌걸 들고 여자 멱살잡아가면서 분통터뜨리는거 보고있으면 참 깝깝합니다.
여자들 전체에 대한 증오심이 아니라 의무의 불평등은 생각 안 하고 불만만 토로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입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군요.

군 가산점이 위헌이 된 건 그 범위가 너무 크다는 것이지 가산점 그 자체로 위헌 판결 받은 게 아닙니다. 국방부 등에서 왜 위헌 먹은 가산점 도입을 (기존의 제도에 비해 점수를 낮춰서)재추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가산점 도입하는 자체가 위헌이면 이건 입법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자에 대해 한 방 먹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단순히 비교 대상이 남/녀가 아닌 병역 의무를 진 자와 지지 않은 자는 분명 그에 대한 보상으로 권리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단지 지금의 시스템이 여성은 일방적으로 병역 의무에서 면제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여성 전원이 여기에 포함되게 되는 것일 뿐이고요. 게다가 여성도 군 복무 경력이 있으면 그 기간만큼 가산점 줬습니다. 이걸 구직을 제한했다고 볼 수 있나요? 그리 치면 장애인이나 저소득층 등에 대한 별도 선발 등도 전부 없애야죠. 전체 인구 중에 몇 % 안 되는 장애인 구제한다고 멀쩡한 사람들 구직 제한하는 거라고 항의해도 먹힙니다, 말씀하신 논리대로면.

급료의 현실화는 계속 얘기드리지만 병역 의무 수행자에 대한 보상의 의미는 될 수 없고(국가에서 급수는 없으나 일종의 공무원으로 종사시키는 것이니 보수를 줘야하는 것일 뿐이지 보상금을 월급으로 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가산점 대신 위로수당으로 돈 몇백 더 쳐준다면 가산점 대용이라도 될 수 있겠지만요.), 많은 이들이 가산점 폐지를 놓고 욕하는 게 그걸 대체할 합당한 보상 제도의 도입은 나몰라라 하고 위헌부터 때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산점 제도 자체가 딱히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들진 않고요(국가는 엄연히 모범고용주가 되어야 하고, 당연히 병역 의무로 시간 뺏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고용 등의 방법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해결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저야말로 가산점 논의를 여성에 대한 화풀이로 매도하시는 거에 답답함을 느끼네요.

그만 한다고 했지만 심히 도발적으로 나오셔서 여기에 대해선 한 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해 글 좀 끄적였습니다. 이젠 정말 아무 말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징병제 국가중에 복무자한테 보상주겠다고 가산점을 주는 나라 있으면 말씀해보시라니까요? 비상식적인 행동이니까 안하는거 같습니다만. 가산점자체가 아니라 단지 점수차가 너무 커서 위헌이였다고 얘기는 처음듣습니다. 헌재가 위헌판결을 내린건 가산점 퍼센테이지가 아니라 '실행될경우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과도하게 제한하기 때문'였을텐데요?

약간의 점수차이로 구직에서 당락이 결정되는데 가산점을 그냥 줘버리면 여자들은 노력으로도 매꿀수 없는 간극이 생기는거 생각 안하세요? 2년은 노력으로 매꾸기라도 하죠. 불이익이 아니라 복무자의 권리니 뭐니 포장하시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냥 여자들 구직자체를 제한해서 복무자한테 그만큼 자리를 만들어주자는 발상 아닙니까? 그리고 장애인과 저소득층 특별전형으로 혜택을 보는 숫자랑 군복무자로 혜택을 보는 사람이랑 숫자나 파급영향이 같습니까? 좀만 머리 굴리면 굳이 비복무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 안주고 복무자에게 혜택 줄수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여자를 공격하는쪽으로만 머리를 굴리시는지 모르겠네요.

차라리 그냥 비 복무자들한테 의무적으로 징역살이 주면 복무자와 비복무자간 +-제로가 되니까 보상이 되었다! 라고 말씀하시는게 확실해보입니다. 이건 그냥 포퓰리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급료문제는 그걸로 보상이 전부 되었다는게 아니라 그게 최소조건이라는 겁니다. 가장중요하고 기본적인것부터 해결이 안된상황인데 자꾸 가산점 들고 나오시는거 보면 이분들이 군복무자에대한 처우개선을 원하시는건지 단지 여자들 한테 분풀이해서 만족감을 얻는게 본심이신건지 심히 헷갈리네요.
개나소나 빽없으면 가는게 군대인데 가산점을 했다쳐도 그게 구직에서 얼마나 도움이되는데요? 그리고 실업난 생각하면 그러고도 여전히 대다수는 구직에서 떨어질텐데 그럼 구직 못한사람들은 가산점이 무슨보상이되구요?

헌법 재판소에 대해서도 뭔가 착각하시는거 같은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을 때렸을때 복무자한테 보상자체는 있어야 한다고 권고 해줬습니다. 단지 헌재가 그런구체적인 정책까지 짜는게 아니라 단지 가산점 제도가 맞냐 틀리냐만 판별해야하니까 위헌만 준거죠. (이건 페미들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산점에 반대하지만 군복무자에 대한 보상필요성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이건 당연하죠. 헌재가 입법기관도 아니고 행정부도 아니니까요.

덕분에 국방부가 처우개선해주기 싫으니까 여자 제물삼아 불만 무마용으로 내놓은 이따위 포퓰리즘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정신팔려 같이 부화뇌동하느라 정말 필요한 기본적인 급료문제나 근본적인 혜택은 진전조차도 안되고 있으니 매우 짜증이납니다.
남자라고 득본 게 없다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쪽에서 상당히 전형적인 종류의 시각입니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백인이라고 득본 게 없고 흑인에게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백인이라고 정부에서 무슨 수당을 받거나 무조건 일자리를 주거나 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흑인들이 음으로 양으로 받는 차별과 피해를 자기들이 '안 받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시각은 매우 흔한 것이어서, 예컨대 학벌이 좋은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들이 학벌로 득본 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학벌이 좋다고 가만히 누워있는데 누가 떠메고 가 주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자기 실력과 노력으로 얻어야지 공짜로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누가 서울대 졸업생 연금 같은 걸 만들어서 지급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런 좋은 학벌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인생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경우) 학벌로 인한 여러가지 장애물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그런 장애물이 덜 걸리는 만큼 득을 본다고 해야 합니다. 문제는 본인에게 나타나지 않는 장애물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남자라고 득본 게 없다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여자들이 받는 차별이나 음으로 양으로 여자들에게 부과되는 '의무'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직접 겪는 군대만이 대단한 문제이고 모든 종류의 보상을 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 됩니다.

왜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생각하는 게 다르냐고 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를 그들은 겪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그들에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사회 전체를 보고 판단할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해야겠다면 (그걸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 당연한 요구입니다.) 본인 스스로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야채님 말이 무슨 칼처럼 가슴을 파고드네요.더 붙일거도 뗄거도 없는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는 글입니다.내가 조잡하게 생각하던걸 우아하게 표현했다고나 할까
가산점이 남녀차별이라면 그럼 군 복무에 보상할수 있는 다른거라도 가져오시죠. 어설프게 그리 이득만 챙기지 마시고 그럼 군 복무자에게 혜택을 줄 방법을 진지하게 궁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셔. 소위 '여성'단체들은 그런거엔 조용하던데? 먼저 문제를 해결할 성의를 보여줘야지 무조건 남녀차별이라고 떠들지 마시고. 그리고 어느면에서 남성이 지위에서 혜택을 보는뎁쇼? 대학갈때? 직장선택할때? 남자라고 시험성적 더 쳐준답니까? 뭐 어디 기업 임원이나 국회의원같은 윗분들 남녀성비 가져와서 떠들지 마시고 우리들 아랫것들한테 해당하는걸 가져와보쇼. 난 여태까지 남자라고 이득본건 한번도 없거든?
말 꼬라지 보아하니 징집대상자도 아닌듯한데 '엄살'이라고 떠드시네? 지금 군 차별이 엄살이란건가? 뭐 주장하기 전에 말부터 예의바르게 하쇼. 엄살? 이 나라가 아무리 우스워도 대놓고 성차별 하는 나라는 아닙니다만. 정 불만사항 있음 부서로 까지 만들어둔 '여성'부에 연락을 하시던가. 어느면의 불평등을 얘기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이상적인 형태는 노르웨이, 스웨덴같은 나라밖에 없습니다만? 부계사회가 얼마가 오래됬고 세계에서 얼마나 지배적이었는지 생각하셔야지. 그리고 그런 이상적인 성평등을 원하심 먼저 의무를 수행하고 주장하셔. 맨날 그리 핑계대면서 회피하고 안보 무임승차나 하시는 족속들이 그런 종류의 성평등을 요구하심 안되지. 일단 '엄살'이라고 싸가지 없게 말하진 마쇼. 부끄러운줄 아셔야지
이런 분들이 꼭 남자가 명절 때 다른 가족 다 잘 때 10시간 넘게 혼자 졸린 눈 비벼가며 운전대 잡고 예초기 짊어지고 산으로 벌초하러 가는 건 생각 안 하고 여자만 음식 만들고 남자들은 술먹고 놀기만 한다는 소리를 하죠. 애초부터 평등은 의무를 동일 혹은 더 많이 지는 계층이 권리를 덜 받을 때 그에 대한 형평성을 제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지 의무도 안 지면서 권리만 똑같이 해달라고 하면 씨알 안 먹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군복무가 엄살이요? 그럼 그 엄살 정도의 것조차 감당 안 하려 들면서 무슨 권리의 평등 운운하나요?
한국만큼 여자 엄살 잘 받아주는 나라가 어디 있다고 ㅉㅉ
야채님, 글쎄요. 그리치면 병역 의무를 한낱 엄살로밖에 여기지 않는 데빌쿠우 님이나, 이야기는 장황하나 끝내 남성만이 병역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 못 하신 야채님도 자신이 지적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데요. 이 나라의 성대결 양상은 그 시작부터가 말씀하신 그 한쪽인 여성들이 부당하게 차별받는 만큼 남성들에게 부당하게 부과되어 온 법적인 의무나 차별 및 관습적 책임 등은 외면한 채, 여성들의 목소리에만 따른 정책들을 시행하고 판결하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나온 것입니다. 단순한 기득권을 뺏기기 싫은 마초들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요.

남에게 그런 시각을 가지라고 하시기 이전에, 야채님 자신은 그런 시각을 가진 분이신지 스스로 반문해 보셨으면 합니다.
여러가지로 반박하고 싶고 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들이 많지만, 이야기가 너무 산으로 간 것 같으니 이쯤에서 접겠습니다. 어자피 자기가 믿는 게 곧 답이니 결론이란 게 나지도 않을 테고요. 주인장님께도 실례이고 하니, 당분간은 화제와 관련 없는 얘기는 자제토록 하겠습니다.
한 몇일동안 댓글들 눈팅만 했는데, 다들 필력이 대단하셔서 끼어들기가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특히 야채님의 주장중에는 제가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내용들이 많아서 생각의 범위를 넓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에 달아주신 댓글에 대해서는 답글을 달아드리고 싶었는데, 지적 능력도 그렇고, 댓글 토론이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먼저 발을 빼게 됬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양해 부탁드릴게요.)

처음 시작은 사회가 군인에 가져야 하는 태도와 예우와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한 것 같은데, 결국 토론의 방향이 남성과 여성의 병역 평등 문제로 옮겨 붙은 꼴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논쟁이 길어졌구요.

좋은 사회가 좋은 군대를 만든다는 문제는 여러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우선 그나라의 경제력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업 생산력이 뛰어난 국가가 전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은 기본 상식입니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군 전력의 운용은 그 나라의 경제적 효율성을 고려해서 해야 합니다. 괜히 케인즈가 한 나라의 적정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2~3%로 제한한 것이 아니죠. 프로이센은 이 점에서 확실히 실패한 국가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폴레옹이 잘한거냐고 물으시면 할 말 없습니다만, 적어도 영국은 어느 정도 경제력과 군사력의 밸런스를 맞춘 편이지요.)

이러한 경제력을 근간으로 병력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완성되야겠죠. 군수 지원 체계, 병력 동원 및 훈련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시스템이 돌아가느냐가 유사시에 그 나라의 군사력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현재의 일본 자위대는 꽝입니다. 장비는 최신 장비가 많은데, 미군 없이는 보급, 군수에 애를 먹는다고 하니, 그들의 군사대국화 주장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던지....)

저는 사회의 민주화 성숙도도 군사력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몇가지 예외가 있다고 하더라도, 군대가 정치에 쓸데없이 개입하는 나라, 독재자에 의해 지배받는 국가들의 군사력이 강한 나라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경우가 빈번하면, 우선 군의 위계 체계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또한 군대의 인사시스템의 안정성을 크게 흔들어 능력있는 군인들의 적재적소 배치도 어려워지지요. 정치군인들이 많은 군대 치고, 전투 제대로 하는 군대는 별로 못봣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의 아르헨티나가 그랬고,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그러했지요. 독재자에 의해 군대가 좌지우지 되는 나라도 그러한 폐해를 많이 겪습니다. 스탈린에 의해 골로 간 러시아 장교들이 몇명이나 되던지...그래서 독-소전 초반에 졸전을 거듭하게 되지요.

이는 군의 사기와도 직결됩니다. 군인들이 몇명의 장군들에 의해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게 되면, 군인의 사기는 바닥을 기게 됩니다. 이는 국가에 대해 충성하고, 제대로 전투를 할 줄 아는 군인보다는 상관의 이익에 편승하려는 한심한 인간들만 군대에 남게 만들죠. 소위 말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타락한 군인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일반인들이 군인에 대한 인상도 좋지 못하겠지요. 적어도 미국이나 유럽의 군사 강대국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군이 정치적 중립을 확고히 지키고 자신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다고 할 수 있는거겠죠.

저는 한국군이 민주화 이후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상당히 군사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만, 적어도 북한의 김정은 휘하 정치군인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북한군보다는 월등히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과거와의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군이 사회의 가치관이 크게 엇나가는 정도의 일탈을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군 사이버 사령부 댓글 사건은 그래서 강하게 처벌받아야 하는거겠죠.) 사실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도 민주화의 진행 없이는 애초에 논의 자체가 안되는 거 잖습니까? 예전 같으면 국정원에 끌려갈 소지도 많죠.

이런 토론이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공론화가 많이 되서 군인들의 복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효율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는 민주화+사회적 성숙도가 고도화된 나라가 가질 수 있는 자산이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의 일베나 여러 극우적인 목소리가 확대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찾을 수 있는 현상인데, 이는 경제침체가 오랜 기간 나타나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경기 침체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정책 담당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하네요.
전투력 저하는 남성 인력에서만 인력을 충원하려다 보니 일어나는 것이죠. 인구 자체도 결국 줄어들기 시작할 가능성도 있는데 더해 젊은 인구 비중은 더 줄어들고 있고, 결국 지금처럼 남성에서만 인력을 충원하는 시스템으로는 기존의 부적격자둘을 어거지로 조건을 하향 조정시켜 입대시켜야 하므로 되려 질적 저하를 가져옵니다. 되려 법적으로 군대를 가지 않던 여성들 가운데, 신검을 통과한 질적으로 우수한 자원들을 추려 이들을 입대시키면 인적 자원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죠. 형평성 문제도 해결되고요. 남는 인원은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의무복무케 하는 보충역으로 투입하면 되고요.

서구 등지에선 도리어 성 평등주의자들, 특히 여성들이 근대까지 남아있던 남성들이 "매너"라는 이름으로 부담해 주던 관습적 혜택 등을 받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동일한 의무를 부과 혹은 면제받으며 반면에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줄 것을 요구합니다. 웃기게도, 우리 나라에선 이런 걸 주장하면 극우 내지는 남성우월론자로 여겨지죠. 우리 사회가 아직 덜 성숙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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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가산점사례 ㅋㅋㅋ네이버에 손가락 몇번만 왔다갔다하면 아는건데 찾아본적도 없구나. 미국 이스라엘등의 국가가 군필자에 대한 채용 및 대학진학에서 메리트를 주고있구만(메사추세스판례찾아봐라)게다가 여성군필자(애초에 군필자에 포함한다만 알턱이 없으니 ㅉㅉㅉ)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니 꼬우면 군대갔다와서 가산점 달라고 하던가ㅋㅋㅋㅋ세상돌아가는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어디서 줏어들은거 짬뽕해서 의견이랍시고 바락바락 덤벼대지 ㅋㅋㅋㅋㅋ예의갖춰 존댓말하기도 싫다.
현대에 있어서의 평등에 대한 관점은, 전반적으로 약자인 신분 전체에 대한 일방적인 우위 보장에서 벗어나 세부적으로 어떤 부분은 어느 쪽이 유리 혹은 불리한지를 따지면서 조절하는 방향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독일만 해도 한 때 여성운동의 주역들이 남성을 "여성과 아이의 잠재적인 적"과 같이 인식하면서, 인구가 천 명도 안 되는 동네마다 파리 날리는 성 상담소를 낭비를 일삼다가 남성 및 반대론자들의 공격을 받고 결국 현재는 몰락해 가는 추세죠.
미래에서 온 사나이 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이때 격화된 요즘은 PC주의와 기형화된 패미니즘으로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성부가 아니라 (남녀)인류부서를 만들거나 분쟁조절 요소를 소거해야되는데 표몰이와 파 결집으로 이것도 악용이 되었죠.
정치인의 성추행과 이걸 다루는 정당의 선택적 관대함 피해호소인 이라는 해괴한 단어가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