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nasica 2015. 8. 9. 06:44

 

 

(콜린 파렐이 주인공인데, 미국 TV라 자막이 없어서 full story를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출장 와서 TV를 보니 True Detective라는 드라마를 하는데, 오프닝에 나오는 랩송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부 가사를 못 알아 들어서 가사를 인터넷에서 뒤져 보니, 인상적인 이유가 있더군요.  레오너드 코헨이 짓고 부른 노래였습니다.

The war was lost
The treaty signed
I was not caught
I crossed the line
I was not caught
Though many tried
I live among you
Well-disguised
...

 

 

(레오너드 코헨.  Famous Blue Raincoat를 만든 그 아저씨입니다.  저 Never Mind는 여기서 감상... https://youtu.be/LHA6Ek3vQQ8 )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첫부분, "전쟁은 졌고, (항복) 협정이 서명되었다" 라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가 그렇다보니 전쟁이란 점령 및 항복, 그에 따른 협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외계인의 침공처럼 끝장이 나는 야만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원래 근대적인 전쟁이란 저 노래 가사처럼, 패전으로 끝나더라도 일정한 조건으로 항복 협정을 맺고 배상금을 갚는 정도로 끝납니다.  나라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 죽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야만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끔씩은 승자가 무리한 조건을 패자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결국은 끝이 안 좋습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이유 조약이 결국 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때 배운 교훈 덕분에,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에게도 너그러운 조건을 제시하여 결국 오늘날 그들과 좋은 동맹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베르사이유 협정의 서명식입니다.  패자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면 사단이 납니다.  인류는 그런 자명한 사실을 너무나 자주 잊습니다.)



분명히 사람들에게는 능력의 차이와 노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당연히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됩니다.  또 능력이 좋고 성과가 우수한 사람이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탐욕스러운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공산주의는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 지난 20세기에 입증이 되었지요. 

그러나 야만적인 전쟁에서의 경쟁 결과도 그런데, 일반적인 경제 활동에서의 경쟁 결과가 지나치게 잔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사회에서 상위 10% 혹은 1%만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나머지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전전긍긍하며, '왜 나는 능력이 이것 뿐일까, 왜 그때 노력을 더 안 했을까' 라는 후회와 반성에만 젖어 살아야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닙니다.  비록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90% 혹은 99%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근로를 하며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습 교양 만화라 할 수 있는 네이버 웹툰, '송곳'입니다.  이 장면에서 작가님이 제가 제 블로그에 하고 싶은 말을 하도 시원하게 또 정확하게 말을 해주셔서 염치불구하고 불펌했습니다.  원본은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60025&no=1&weekday=tue 여기서)



일부 편협한 보수층이 비아냥거리듯 일 안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최소한 열심히 일을 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고, 또 적어도 자식들에게는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제대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즉, 적정한 최저임금제와 저비용의 교육제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그를 위해서는 좀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과 기업이 좀더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가령 중소기업 공장의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이, 결국 그쪽에 하청을 주는 대기업의 이익 감소로 이어져야지, 대기업이 아예 방글라데시 등으로 하청업체를 옮겨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자본에는 국경도 없고 인정도 없으며, 애국심도 없으니까요.

 

 

 

 

(차라리 대통령직을 해외에서 아웃소싱하자고요 ?  저는 찬성 !  농담입니다.)

 



더군다나, 그 승패의 결과가 당대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진다는 것은 더더욱 부당한 일입니다.  혹자는 인간의 본성상, 자신이 이룬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길을 막는다면 부를 이룰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회와 경제가 쇠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맞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그에 대해서 적정한 수준의 재분배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속증여는 수혜자 입장에서는 분명히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의 금액에 대해서는 중과세를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제가 연재하는 나폴레옹 전쟁사를 보고 계신 분들은 왜 나폴레옹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다고 보시는지요 ?  그냥 초인적인 불세출의 반신반인 지도자 나폴레옹 1인의 능력 차이 때문이라고 보시는지요 ?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가만 보면, 신기하게도 프랑스에는 명장들이 수두룩한데 오스트리아나 스페인 등에는 왜 이리 지휘관들이 무능력한지 한숨이 나올 정도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랑스는 혁명 직후라서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의해 승진한 지휘관들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나 스페인은 그저 좋은 가문에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 귀족들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과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그런 기업과 돈의 지휘권은 아버지가 부자인 사람이 아니라, 정말 능력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런 경영권과 부가 아무 댓가없이 자자손손 물려져서는 안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정한 수준에서 상속증여세를 부과하여 지속적으로 사회에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며, 또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의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기업과 사회가 발전하는 길이지요.

 

 

 

(평소에 애국보수를 부르짖으며 마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처럼 떠드시는 분들이, 법인세 올리면 기업을 해외로 옮길 것이고 최저임금을 올리면 하청업체를 해외로 돌릴 것이며, 상속세를 올리면 국적을 해외로 바꾸겠다고 협박하시는 것은 에러.  아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할 때 그 목숨은 자기나 자기 식구 목숨이 아니라 서민층의 목숨이었나 봐요.  사진은 본문 내용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가끔가다 보면 재벌 2세가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데, 해당 기업이 마비가 된다는 둥 엄살을 피우며 야단법석을 피우는 모습을 봅니다.  또 경영권 방어 때문에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헛소리도 듣지요.  그렇게 부자집 자식들이 못난 짓을 하는데 왜 기업이 마비되어야 하나요 ?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 정말 국가와 사회를 위한 제대로 된 길일까요 ?

돈이 없어서 복지를 할 수 없다, 그리스 꼴난다 라며 아우성을 치는 정부가 아래와 같은 세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더 이해가 안가는 것은, 이런 뉴스가 버젓이 나가는데도 국민들이 별로 분노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년부터 고가의 핸드백이나 모피, 보석 등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적용 기준이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됩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해 과세기준을 올렸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하지만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나 모피를 구입하는 서민들이 많겠느냐는 지적과 함께 부유층을 위한 감세란 비판이 나옵니다.

또 해외 주식 투자전용펀드에 대해 1인당 3000만 원까지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한 것도 혜택이 고액 자산가에 한정될 것이란 지적입니다.
상속이나 증여 재산의 액수를 산정할 때, 평가받던 기관 수를 2곳 이상에서 1곳으로 줄인 것도 논란거리입니다.
감정기관과 짜고 상속이나 증여재산의 가치를 낮춰 세금을 덜 내더라도, 이를 가려내기가 어려워질 거란 우려 때문입니다.
또 이번 개정안에는 야당이 주장했던 법인세나 소득세의 과표나 세율 조정 등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국민들을 배고프게 해야 합니다.  대신 사회의 승자인 부자들이 마음껏 부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누진소득세나 상속세는 줄이고 대신 서민들이 많이 내는 부가세를 늘려야 합니다. 아, 물론 부자들 부담을 줄여주도록 고가품에 대한 부가세는 줄여야 합니다.  친노종북이 아닌 건전한 국민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찬성합니다.)


부디 우리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저런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을 해보고, 결과적으로는 투표를 좀 더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을 뽑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민주당 싫어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관심이 없으면 정부는 돈 있는 사람들의 편을 들 수 밖에 없고, 국민들이 관심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투표입니다.


이전 댓글 더보기
좋은 글입니다. 새누리당을 끌어내려야 이 나라가 성장합니다.
근데 현재 진보세력들은 새누리급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실무경험이 없는 무능력 집단일 뿐이라 집권해봐야 할수 있는 건 자기들 국가연금 받을 자격 만드는 것외엔 진보적 성과를 낼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노통이후 한걸음도 재대로 못가 따라 잡힌 복지정책이 그걸 증명합니다. 기득권 진보부터 사라져야 나라가 진보할걸요. 그런 수순에서 당장 집권해봐야 노통이 그랬듯 관료와 자본에 놀아나 새누리보더 더 퍼주는 꼴이나 감상하겠지요.
그런데 프랑스 명장 이론을 내세울 때는 조금 주의해야 하는게 반론으로 나올 수 있는게 '그럼 영국은?'일겁니다.

근데 더큰 문제는 반론으로 내세운 사람들이 만드는 국가는 결코 영국이 아니라 깨져 나가기 바쁜 나라들이라는건 그들에게는 사손한 문제일 거라는게 최대 문제겠네요.
영국도 purchase system으로 장교를 임관시키던 육군 장교들의 질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웰링턴의 작전에 대해서도 평가는 좋지 않지요. 영국군의 승리는 그야말로 자본력을 승리. 해군은 그나마 비교적 능력 위주로 장교를 임관시키고 승진시켰습니다.
근데 나폴레옹시절 프랑스해군이 그렇게 형편없는거도 오래동안 양성해온 해군을 혁명세력이 박살내서 그런거도 있는데요.물론 원래 영국해군보다 떨어졌지만 혁명세력들이(양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해군장교들을 막 죽이는 바람에 질이 떨어졌다구요.

혁명해서 새롭게 일신되는거도 있지만 오래동안 유지한거 박살내는 면도 있으니 어느쪽으로 결말이 날지는 알수가 없습니다.혁명을 해서 새로 올라온 사람들이 올라온게 이기는 이유라면 그러면 혁명하면 무조건 외국하고 전쟁해서 이기게요?

나폴레옹이 이긴건 그냥 나폴레옹이 뛰어나서라고 칩시다^^
1. 혁명 세력이 귀족 출신 장교들을 막 죽였기 때문에 프랑스 해군이 몰락한 것이 아닙니다. 1793년 귀족들이 주도하는 반혁명 세력이 프랑스 최대의 군항 툴롱을 통째로 영-서 연합군에게 넘기면서 많은 군함들이 나포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그 피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후 혁명과 반혁명, 공포정치 등의 혼란 속에서 다른 많은 해군 전함들이 항구에 발이 묶인 것도 프랑스 해군의 질적 저하에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2. 혁명 세력은 귀족 출신 해군 장교들을 특별히 숙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육군이건 해군이건 일부 귀족 장교들은 계속 남아서 복무했고, 일부는 고위 장성 제독직에도 올랐지요. 혁명에 반대하는 귀족 출신 장교들이 반혁명 혐의를 받게 되자 대부분 해외 망명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양성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당시 해군의 기술적 기능직은 대부분 준위급 사관, 즉 warrant officer, petty officer들이 담당했습니다. 장교들은 그냥 전술적 결정을 내렸지요. 영국 해군의 여러가지 사례를 보면 새파란 젊은 함장이 빛나는 전공을 세우는 경우가 꽤 됩니다. 그들이 오랜 기간 해사 업무의 기슬적 부분에 뛰어나서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기술적인 부분은 '뱃사람' 출신의 준위들이 담당했지요.

3. 혁명 프랑스의 승전들을 나폴레옹 개인의 능력으로 보시는 것은 상당히 의외입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다룬 것만 봐도 마세나 혼자서, 모로 혼자서, 오슈 혼자서 승리를 거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으실텐데요.
"복지 과잉되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 "연봉을 많이 받아 국회의원이 나태해졌다"

그런데 그리스가 망한거는 팩트체크처럼 복지 영향이 없다고 하면 안될거에요. 저 복지예산의 대부분이 공무원과 그 가족(전체 인구의 1/5)에 투하되는데다가 그리스가 번 돈을 복지에 투자한게 아니고 분식회계로 빚을 만들어서 복지를 한거라...

복지만 문제인건 아니지만 복지도 문제였던 것 같아요. 뭐 윗물도 썩고 아랫물도 썩은 그리스라 문제가 아닌 부분이 없지만요
도덕적 해이로 인한 사회 불균형의 강화가 그리스 몰락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도 비슷한 구조로 진행되고 있죠
복지 과잉이 뭐 별건가요... 1%가 받는 감세 혜택을 나머지 99%에게도 베푸는 것
그게 복지과잉이고 그게 싫다는 거죠
더 베풀어도 상관 없지만 1%만 누리게 베풀어라
참 비슷하죠
분노가 오히려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232002271&code=940100

꽤 유명한 일화인데,
이런 차이는 미국과 우리의 도덕성의 차이 때문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또, 독일과 우리의 교통문화를 비교했을때,
우리가 독일보다 미흡한것이 우리 국민의 도덕성 때문은 아니라 보구요.

책임과 권한이 명확하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이익인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차이라 보죠.

정치인, 공무원을 물갈이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제도가 바뀌고 개선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중의 분노는 그런 제도가 개선될 여지를 없애버립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잘못된 의료제도에 있는데,
공무원, 의사, 병원의 잘못에 집중하다 보니, 의료제도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롯데의 지배구조 문제도 우리의 법과 제도가 잘못된 것이 근본 원인인데,
롯데가의 국적, 일본기업 논란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건 묻혀버렸죠.

문제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지만,
대중이 분노하다보면 사람에 집중하고 그러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누가 잘못했냐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냐를 찾고 고쳐야 문제가 해결되죠.
제가 미국 공무원이여서.... 제도의 중요성에 대해서....쬐금만.... 언급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서 일할적에는 무슨 실수를 하면 짤릴까 굉장히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동료들이 실수하고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실수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고....같은 실수를 또다시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였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잘못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하면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조율을 하는데 집중을 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중요시 생각하는 효율성은 엄청나게 떨어지죠...

그리고 쓸데 없어 보이는 애기를 엄청나게 많이 합니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애기를 많이 해서 서로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보고..... 상대방이 무엇을 어떻게 하기 원하는지 알아낸후.... 내게도 별 문제가 없겠다 싶으면 일을 진행시켜나갑니다..... 애기함으로써 합이점을 이끌어 내면서.... 기록에 남기는 것이죠.... 누구는 무슨 결정을 했고 누구는 어떤 일을 했고 등등.....

이것이 미국 일부 한정된 모습이지만..... 한국 사회가....좋은 것만 잘 취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을수도 있고, 제도에 있을수도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제도를 손봐야 가능한 일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람보다 제도에 집중하자는 말이 도덕성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분명 도덕성, 특히나 정치인, 공무원의 도덕성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안입니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도덕성에만 너무 칩착한다는 뜻인데,
자꾸 오해를 불러이르켜 말하기가 두렵더군요.
저는 메르스 사태의 본질이 일반 대중에 대한 정보 공개라고 생각합니다.
nasica 님
제가 말한 본질이란 것은 사태를 이르킨 주범,
즉 앞으로 제발을 막기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말합니다.

아무리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의료제도, 의료문화 하에서는
확산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15061313483591839&type=3
http://humorcare.blog.me/220394632869

위의 분석이 비교적 잘 되었다 볼 수 있는데,
정부의 무능과 불투명성에 촛점을 맞추다보면 의료문화, 의료제도의 개선은 또 어려워 지는 것이고,
그럼 이런 사태는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비유를 하자면,
칠천량 해전의 직접적 패인은 원균의 무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원균에게만 물어서 원균을 처벌하는 것에 집중하면
또 다른 원균이 그 자리를 대신할 따름이란 뜻이죠.
이순신같은 명장이 쫓겨나고 원균같은 졸장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한 시스템을 손봐야
또 다른 원균과 칠천량 패전을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 아는 내용이시지만, 그걸 제대로 하려면 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투명하게 정보를 취득하고 공개할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꼬치 꼬치 캐물어 들어가면.... 왜 그런 결정이 나오게 되었는지 국민들이 알게 되고.... 국민들이 결정 과정을 바꾸거나 참여하기를 원할 경우..... 결정권자의 밥줄이 끊기거나 줄어드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 아닐까 ..... 싶습니다.....

정보 취득와 의사 결정을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국회안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 가운데.... 이해 당사자와 접촉을 하게 되는 당연지사이고.....이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이나 부정거래가 이루어 지기 쉽죠..... 그렇기에 정보 취득자는 철저히 진실된 정보만을 얻어서 보고하고.... 상위 위원회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되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될 경우 국민들은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를 알게 되고 이에 따라 투표를 하면 되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이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상위 의원회에서 보고서의 의거하여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을 대비하여 임기 이후 조사 처벌 가능하게 되어야 겠죠..... 이렇게 쓰고 나니 이런 제도가 국회내 있는지 알아보니....

있습니다!!!!

제도가 있지만 왜 않되는 것일까..... 찾아보았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92C9A594D60ED6E29
국회 의원들에게 수고비를 넉넉하게 주기 때문에 부정비리때문은 아닌듯 싶습니다....

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은 특별위원회의 위원들 중에서 본회의를 통해 선출한다.[10]

자문위원회의 회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자문사항에 관한 의결내용은 공개하며, 위원회 또는 자문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회의를 공개한다.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07610#0000

지난 해 활동한 8개의 특별위원회는 평균적으로 1년에 3번의 회의를 했으며 그 회의시간도 2시간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로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오늘 개원식이 지연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윤리특위는 국회 자문기구인 윤리심사자문위원회로부터 의원 11명에 대해 출석정지 등 ‘징계 의견’을 받았음에도 지금껏 단 한 건의 징계안도 처리하지 않았다

위원장 : 정수성 (새누리당) - 경상북도 경주시
간사 홍일표 (새누리당) - 인천광역시 남구 갑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 비례대표

위원 (새누리당 : 8명, 새정치민주연합 : 6명, 정의당 : 1명) 새누리당 소속 위원 문정림 - 비례대표
박인숙 - 서울특별시 송파구 갑
염동열 - 강원도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이한구 -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조명철 - 비례대표
황인자 - 비례대표
____________________

대부분의 국민들이 살기 바빠서.... 혹은 여가 시간 때문에 (대대로 가무를 즐기는 민족)..... 자녀 교육 때문에 (가족 이기 주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수 없죠)...... 등의 이유로 시간 내기가 어려워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시카님....

조선시대 부터 내려온 전통.... 민주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급속하게 변화해 온 대한민국에 문제점이 없을 수가 없겠죠.... 특히나 일제 통치하에 기나긴 세월을 지내왔고 남북한 대치라는 아주 특히한 상황에 있으니까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중지되어 있기에 아직도 긴장을 풀수 없고....

보다 많은 대한 민국 국민이 행복하게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

투표를 잘해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법을 잘 제정하고 예산 심의를 통해서 정부가 정책을 잘 실행할 수 있도록 감독하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좋은 국민 좋은 정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심령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공의를 실행하는 좋은 기독교인들이 많아 질 수록...... 많아져서....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never mind 동영상은 가사와 함께 아주 낮은 톤도 특별하지만..... 영상 자체가 예술이네요.....백남준 님이 떠오르고....그의 일본인 아내 Shigeko Kubota 님도 지난 달에 돌아가셨다는 지나간 부음을 오늘이에서야 알게 되고.....휴우.....
자본 권력이 무소불위의 시대입니다.
미래사회 새로운 유형의 혁명이라함은 자본권력과 맞서는 시민사회쯤으로 해야하지 않을까요?
나시카님 미국가시더니 더 좋은 글을 자주 올리시네요. 감사합니다. 추천 드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중톈 삼국지 강의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습니다. 삼국지는 삼국지일 뿐인데 사람들이 그걸 너무 현실 사회에 적용하려고 한다. 삼국지의 배경은 엄연한 과거의 난세이며 이걸 그대로 현대 사회에 적용하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이죠.

이번 글은 글 자체의 논지는 잘 알겠습니다. 평소의 nasica 님의 글대로이구요. 그런데 말에 좀 날이 서 있네요. 살짝 분위기가 달라요......

출장을 가셔셔 쓴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여기저기 출장다니시는 걸 보면 많이 열심히 일하시는 편인 것 같습니다. 힘들게 일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 좀 직설적이 되는데, 아마 그럴 수도......
아, 그리구요. nasica님 글에서 다른 곳 자료를 불펌(???!) 하는건 이번이 두번째인것 같네요. 2년쯤 전 포스팅에서 한번 불펌이라고 하신 것 본것 같은데 ㅎㅎ
저도 예전엔 "내가 부자로 못사는건 썩어빠진 재벌과 정부가 나를 착취해서이다"

뭐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요즘엔 생각이 좀 달라지더군요.

코피를 쏟아내며 3시간씩 자면서 공부를 했는데 취업난이 심해서 안되느니 뭐니 '인터넷에선' 떠들어 대는데 정작 그 많은 pc방 당구장 커피숍마다 '자칭' 취직공부에 밤을 샌다는 2,30대들로 흥청망청 오늘도 영업 성황중~

으아 헬반도 헬조센 쓰레기나라 사람살려! '인터넷에선' 떠들어 대는데 정작 거리로 나가보면 1잔에 8천원 하는 커피 너도나도 마시자 천호동 쭈구미 거리는 오늘도 더시켜 더시켜 여기 소주한병더요 우웨엑 취한다 흥청망청~

서민내수경제에 도움안된다고 욕하는 상류층들의 명품 핸드백 정작 현실에선 남친한테 사달라 징징 여친한테 바치고 아부떨지 못해 안달

해외여행객은 올해도 신기록을 갱신~ 힐링힐링 지중해로 카리브해로 힐링하러 왔어요 좋아요 눌러주세요 ㅎㅎ





절대다수 서민들이 착취당하고 굶주리는 지옥불반도는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자 오늘도 일베타령 수꼴타령 들어볼까요~
성공하기엔 글러 먹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아주 많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성공할 자질도, 성공하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할 의지도 없는 평범한 나머지 90% 사람들, 아니, 나머지 50% 사람들도 평범한 자기 몫의 일을 한다면 평범하게 미래를 위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자기 자식들이 성장할 때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의 절반, 아니, 사회의 30%라도 자기 비하에 빠져 후회와 체념으로 살아야 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많은 부담이 될지는 몰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를 위한 길이고,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건실한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 빈부격차 심한 엉망진창의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
객관적 자료 하나도 없이 '내가 보니 그렇더라' 수준의 논리(?)를 펼치시면.. 뭐 일베타령 수꼴타령 들으셔도 할말은 없을듯한데요.
가슴으로는 백번천번 정말 공감가는 말씀입니다. 근데 머리로는,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크게 공감이 안가요...

전 배재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닥 대단한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지역일대에선 어느정도 공부 좀 한다하는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수업중인 교실에는 팔베고 쿨쿨 자는 학생들,책상밑에 손집어넣어 몰래 문자에 열중하는 학생들,떠드는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랬지만 그래도 문득 교실을 둘러보면 다들 자거나 딴짓을 하고 선생혼자서 그러거나 말고나 깨울 생각도 안하고 떠드는게 참 그래보였지요.

얘네들이 대부분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혹은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새벽까지 알바를 하느라 피곤해서 자는 걸까요?

가식으로는 그래서 자는거다...라고 대답하지만 진실은,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는 다들 진실을 알고있습니다. 밤늦게까지 웹서핑하고 게임하느라 그런거죠.

입시경쟁이 치열하다 하는데, 물론 입시지옥이라는 대명제 자체는 틀린 말이지만 중고등학생중에 정말로 열심히 필기해가며 궁금한거 질문해가며 공부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죠? 저 역시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여러개 다녔지만 '공부를 열심히'하는 학생은 드물었습니다. 대부분 문자하고 떠들며 킥킥대고 퍼질러 자고 멍하니 딴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이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이른바 '지잡대'에 갑니다. 왜 '지잡'에 갔을까요?

이건 사회가 불공평해서 일까요? 또 정부가 잘못해서? 아니면 박정희가 대기업만 잘먹고 잘사는 방향으로 사회를 발전시켜서???

가식으로는 그렇다라고 대답하지만 진실은 역시나 우리 모두 알고 있죠. '자업자득'입니다. 개인적으로 학벌이 어쩌구 학벌때문에 차별받는다 떠들어대는 사람들 학창시절 한번 들춰보고 싶습니다.

남들 먹고싶은거 놀고싶은거 자고싶은거 참아가면서 공부할때, 게임하고 문자하고 놀러다니며 히히덕댄 지잡들은 마땅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학벌차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놀자고 꼬시는 친구를 외면하고 핸드폰 들여다보고 싶은거 참아가면서 죽어라 공부한 입장에선, 만화책 보며 낄낄대던 이들이 학벌차별 운운하며 동등한 권리를 요구한다는거 자체가 역겨워요.

저는 중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지주막하출혈(흔히 말하는 중풍의 일종이죠)로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시고, 가정주부였던 어머니가 기사식당을 운영하면서 저 역시 학교가 끝나면 가게에 매달려 일을 돕고(음식점이라는게 마진도 박하고 웬만한 노가다 못지않게 힘들다는거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방학때도 거의 대부분을 가게에서 서빙하고 계산받고 음식물 쓰레기통 비우고 소주 박스 옮기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마진 자체가 박하고 병원비로 너무나 큰 돈이 나가서 단 한사람분의 인건비도 줄여야 했거든요.

그런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큰 성공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먹고살며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게됐습니다. 어머니도 조금 편해지셨고요.

저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도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저같은 경우면 그래도 '불우하다'라고 할 수 있을텐데,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 어려운 삶이 정말 많이 나아졌습니다.

강남 고액과외 운운하면서 돈이 있어야 공부도 잘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 강남 고액과외 시켜주면, 서울대 가실 자신은 있으세요?"

'패배자'들도 어느정도의 삶은 영위해야한다라는 말씀에는 물론 공감합니다. 백번 천번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어느정도 노력이라도 했는데도 패배자로 밀려난 이들인지, 핑핑 놀고 먹고 마시다가 이제와서 차별이니 빈부격차니 운운하며 '무임승차'를 노리려는 이들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웬만한 막장 사회가 아닌 이상 노력하면 어려운 삶이 나아질 수 있죠. 그런데 역사의 발전 또는 진보란 그 노력의 요구량을 줄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예도 노력하면 주인의 신뢰를 받는 유능한 노예가 될 수 있었죠. 소작농도 뼈가 부숴지게 일을 하면 부농이 될 수 있었죠. 여자도 남자의 서너배 노력을 하면 남자보다 더 인정을 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그래서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었으니 그 사회들은 정당화되나요? 아니요, 그런 부분들이 비판받고 고쳐지면서 역사는 발전해왔습니다.
일베의 사상(같은 게 있다면)을 제가 잘 몰라서 일베타령이 어울리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충 타령은 좀 들으셔도 되겠네요. 님같은 사람 때문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을 키웠고 그게 더 좋은 대학에서 공부할 자격으로 이어지는 건 맞는데, 공부를 많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이 우수한 계급에 속하게 되고 나머지 '공부 안 한' 사람들을 열등한 인간 취급하면서 무시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학교다닐 때 만화책 좀 봤다고 기회를 당연히 박탈당해야 하고, 동등한 기회를 요구하는 게 역겹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그 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과거에 노력했다는 이유로 현재와 미래에 특권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건 근본적으로 발상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좀 눈꼴시리군요. 고작 서울대에 입학한 정도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 성취라도 이룬 양 으스대고 있는 겁니까? 서울대는 혼자 갔습니까? 정말 서울대에 갔으면 나 서울대 간 사람이야 하고 어깨에 힘 주고 다니기 전에 주위를 먼저 둘러보기 바랍니다. 다른 서울대 간 학생들이 다 그렇게 특권을 요구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배양했으면, 같은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더 올라갈 수 있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안 돼서 과거에 공부한 게 억울하다면, 그 '과거의 공부'에 과연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댓글에는 답글을 못다는군요.

진심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옛날 노예처럼, 소작농처럼 해야지 겨우 먹고살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냥 예시를 든것뿐이다 생각하겠습니다.

소작농도 뼈가 부숴지게 일을 하면 부농이 될수 있죠. 그런 소작농은 사회의 불공평이 어떻고, 빈부격차가 어떻고 신분제가 어떻고 구구절절 비판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나무그늘 아래 드러누워 입만 벌리고, 방구석에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누운 소작농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평소에 뭐하고 다니는지 뻔히 아는 아들놈이 개떡같은 성적표를 보여주면서 "시험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라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으면, 어 그래 열심히 했구나 하며 어깨 토닥거려 주시는 스타일이십니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주인장 말대로 경쟁에서 밀려났어도 행복하게 살수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건 맞습니다.

하지만 남들 수업들을때 책상밑에 폰이나 만지작댄 이들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최소한, 더 노력한 자들과 동등한 과실을 요구할 자격은 없다는거죠.

남탓만 한다,무임승차자다 이런 쓴소리는 좀 새겨들으셔야 할겁니다. 님같은 사람 때문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저도 노력하는 학생이 더 좋은 점수를 받고, 노력하지 않고 농땡이 치는 학생은 낙제 점수를 받는 것에는 당연히 찬성합니다. 같은 이유로, 적절한 수준의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찬성합니다. 다만, 그것이 생존의 문제, 그리고 대를 이어 유전되는 계급 고착의 문제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가령 한 아이가 공부를 게을리하여 하위 30% 정도의 점수를 받고 졸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십시요. 그때 그 부모가 아이에게 "넌 공부를 게을리했으니 평생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

제가 듣기로 요즘 소위 '인 서울 대학'을 들어가려면 상위 10% 안에는 들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대기업 취업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임금이나 근무조건 등에서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하긴 대기업 내에서도 차이가 꽤 큽니다. 소위 말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은행 등에서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이 전체 국민 중 몇 %나 되겠습니까 ?

물론 공부가 전부가 아닙니다. 장사를 하는 것도 재주요, 목공일을 하는 것도, 야구를 하는 것도 재주입니다. 그러나 어느 분야든 성공하는 사람은 10% 남짓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누구나 조금만 배우면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또 자식들이라도 성공할 기회를 가지도록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같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평범한 일조차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들은 어쩔 방법이 없네요.

그러자면 마냥 복지만 늘려서도 안되고, 마냥 최저임금을 올려서도 안되며, 그 두가지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져야겠지요. 저는 그 중에서도 교육과 의료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당장의 생존이 달린 문제니까요.

이번에 개떡같은 성적표를 받아왔더라도 다음 시험에서 동등한 기회를 요구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럼 아들이 "난 이번에 노력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낄낄대고 놀았던 놈들과 다음에 똑같은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게 억울하다." 라고 하면 "그래, 똑같은 기회를 요구하다니 참 역겨운 일이구나" 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과거에 남들 수업 들을 때 폰을 만지작거렸더라도 지금 열심히 일해서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기보다 그런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놀았으니 기회를 박탈당해도 당연한 일이고 기회를 요구할 자격조차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누구나 기회를 부여받을 자격이 있고 현실을 비판할 자격이 있습니다.

고작 학창시절에 책 조금 더 읽은 것을 가지고 '현실을 비판할 자격'이 나에게는 있고 너희들에게는 없다면서 대단한 상위카스트나 된 듯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웃깁니다. 고작 서울대에 입학한 정도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남들의 '자격'을 운운하고 있습니까.
노력충의 쓴소리는 새겨들을 생각이 별로 없어서요.. 아마 제가 님보다 학벌도 수입도 좋을텐데 왜 저때문에 무임승차란 말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고.. 배재고 나왔다고 하셨죠? 전 그 근처 h외고 출신입니다. 월수입은 천보다 좀 부족하게 받고요. 그런데 그게 사회의 문제를 지적할 자격하고 뭔 상관이죠? 좋은학벌과 수입을 가질수 있는 사람은 많지않고 그걸 위한 경쟁에서는 반드시 다수의 패자가 생기는데요.
님 글을 보면 다른 노예보다 더 좋은 족쇄를 자랑하면서 너희도 노력하라고 훈계하는노력충노예가 떠오를 뿐이군요. 모든 원인을 사회탓으로 돌리는 인간이 한심한것처럼 모든 원인을 개인탓으로 돌리는 인간이 한심하다는 걸 노력충들은 대체 왜 모르는걸까요..
"우린 벌받기 위해 사는게 아니란 말이요!"
왠지 참 가슴에 와닿는 말이네요.
비밀댓글입니다
일단 바로 위에서 '게으른' 낙오자들에 대해 '도덕적' 성토를 열심히 하는 분이 있는데요.
그리고 전 양심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판단력의 문제로 보지요. 과연 걱정할만큼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지는 사회인지, 반대로 지나친 경쟁으로 개인이 피폐해지고 있는 사회인지,지금의 상황이 정책의 문제인지 고성장이 끝나서 어쩔수없이 오는 단계인지, 어떤 정책이 그 문제를 완화시킬수있는지, 다 이런 판단의 결과죠.
지금 상황과 사회의 현실도 생각못하고 옛날엔 어쩌고 하면서 판단력 떨어지는 훈계를 하는 사람들에게나 님의 글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유지의 문제인데 도덕의 문제로 생각하는건 그들쪽이거든요. 님의 글도 별로 이성적 판단이나 근거는 없어보입니다만 예의는 있는데 그들은 그것조차없습니다.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체적인 정책들이 제대로 굴러가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가,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 다른 가치를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는 도덕적인 문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내가 학교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으니 그 때 놀았던 사람들은 말할 자격도 없다는 식의 주장은, 최소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비도덕적이라고 분류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도덕적인 문제'는 구체적인 정책들이 실패하거나 부작용이 심하다는 것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세훈님의 지적에도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동시에 얻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주어진 문을 넓힐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회의 평등은 경쟁의 심화를 의미하고, 경쟁의 완화는 기회의 제한을 의미합니다. 문 자체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에 그것은 가능하지 않거나 무의미합니다.

예컨대 정규직 일자리의 숫자를 늘릴 수 없는 상태에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으로 올라갈 넓은 기회를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는 현재의 정규직 직원들이 그들과의 경쟁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규직 내에서도 능력만 있으면 임원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끊임없이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임원들도 지위를 잃거나 해고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일자리 자체를 부작용 없이 늘릴 수 있는 방법(=> '고도성장' 등)이 있다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그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도덕적인 주장만으로는 현실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주장이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도덕적인 주장이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거나 그 결과를 예측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도덕적 기준을 적용할 측면과 현실적 결과를 파악하기 위한 측면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 곳의 본문과 댓글을 보다보니
기득권의 도덕성을 문제로 보는 분이 많아 보이기에,
양심에 문제로 파악하지 말아달라는 것일뿐입니다.
진보만의 문제라는게 아니란 것이죠.
실제, 말 안통하는 꽉막힌 사람들은 어른신들이 더 많습니다.

또, 자유경쟁을 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자유를 말하는건 아닙니다.
타고난 조건, 출반선상이 다른데, 기회의 균등은 말이 안되죠.
다만 평준화만이 답이 아니란 뜻이었습니다.

제 의견 또한 지금의 의견일뿐입니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언제든지 바뀌고 폐기될 수 있죠.

도덕성이나 양심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다만,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다면,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지를 살피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것이고,
그래도 이해가 안되면, 상대가 나치, IS 같은 집단이 아닌한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는 것이죠.

요즘 우리는 분노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노하고, 증오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게 아닌가 해서 말씀 드린 것이었습니다.

의도와는 좀 다르게 비춰지는 것 같아. 원글은 삭제했습니다.
박정희 시절엔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를 추구했죠. 오늘날 민주주의는 오히려 꺼리는 단어가 되었고, 대신 한국적 자유주의가 추구되고 있습니다.
한국적 자유주의에는, 대체로 미국 분위기의 자유주의와 비교하여,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경쟁에서 승리하여 쟁취한 상대적 이득을, <내가 생산하여 얻은 소득> 개념보다는, <인정받아 주어진 정의로운 보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예컨대 대기업, 거기서도 좋은 직위를 얻었을 때 묘하게도 <내가 좋은 능력을 닦아, 중요한 일을 해서, 회사에 이익을 주고,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하기보다는, <내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회사(로 대변되는 사회적 권위)가 나를 뽑아, 높은 연봉을 준다> 하길 좋아한다는 겁니다. 두 가지가 차이가 있냐구요? 후자는 실제로 내가 공부한 만큼 실력을 계속 발휘한다는 부분을 살짝 빼먹고 있죠. 자유주의를 자처하지만 사실 자유시장의 원리와는 다른, 전제국가적 원리입니다. 과거제의 전통, 그리고 입시교육의 영향이죠.
둘째,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더 이득을 얻는 데 찬성한다기보다는,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이 뭐든지 나보다 못 얻어야 한다며 열을 올립니다. 말마따나, 패배는 죄가 아니므로, 처벌을 내려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마치 처벌하듯 계속 여러가지 <모멸적 차이 표시>를 생산하죠. 가지가지 옹졸한 사례를 보면 원래 필요없는 걸 일부러 경계선을 긋고 애써 지키는 것 같아 기가 막히고, 그게 당연하다고 하는 걸 보면 기가 욱 차오릅니다. 웃긴 건 그런 사람들이 꼭 자기 위쪽을 <존경>하는가 하면 또 아닌 경우가 많아 보이고.. 이건 솔직히, 현대사의 질곡으로 국민성에 구김살이 생긴 게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이런 건, 그래 자유주의는 아니고, <메리또크라시>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죠. 메리또크라시는 그랑제꼴의 존재로 대변되는 프랑스적 특징이죠. 차라리 이 쪽이 솔직할 겁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현대 프랑스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복지국가의 운영에 신경쓰고 있다는 것. 복지국가는, 최악의 경우 경기장에서 쓰러지면 골든타임 이내에 의료진이 달려와주는 시스템을 세운 국가죠. 의료진이 있다곤 하지만 골든타임은 말만 많았지 잘 어겨지고, 어찌 처치해준다는 게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불만스럽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 운영진과 관객들이 <더 노력했으면 이겼잖아> <싫으면 관두고 나가. 근데 선수로만 길러진 삶인데 나가도 뭐 있겠냐> 이러는 건 사이비 복지국가겠구요.
정이불감님.....감사합니다.... 한국적 자유주의라고 설명하신 것이 참 인상적이고 동감이 갑니다.... 둘째로 설명하신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조금 쉽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설명조사 결과 한국에서 타국으로 이민 가기를 원하는 응답자의 퍼센트가 요즘 많이 내려 갔다는 기사를 읽고... 한국이 예전보다 많이 살기 좋아 졌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아파트 분양 소식을 보니..... 분양은 많아졌고 미분양는 낮아진 것을 보니.... 더욱 그런듯 싶습니다.... 물론 빚이 더욱 많아지고 자본가에게 더욱 매여 살게 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한국 만큼 성공한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복지 제도를 더욱 확대하여 빈곤에 처한 어려운 이웃을 도와 주는 것은.... 위에서 아래도 획률적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서로 돕다보니....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 위로 올라가야 더 잘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해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 적이 있으신가요? 성금을 낸 것 말고요....

쉬게 시작하죠..... 5분 늦더라도 양보 운전.....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상대방을 위해서 문을 열어 주거나 길을 양보해 주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가는 길 .... 네가 비켜라 눈싸움 기싸움하지 않고요]
최근 설문조사 결과 한국 사람들의 76.4%가 이민을 고려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응답자의 퍼센트가 내려갔다는 기사의 출처가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아파트 미분양 낮아진 것이 이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 적이 없으면 이런 주장을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뜻인지 confirm 부탁드립니다.
의 식 주

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가지가 필요하겠지만.... 의식주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다 뭐다.... 아니 물가가 뛰고 있어서 살기 힘들다...... 주거비용이 올라가서 힘들다.... 그런 애기하잖아요..... 최근들어 시장의 원리로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아파트가 보다 싸게 많이 공급되어 겉보기에는 보다 살기 좋아졌다고... 애기한 것입니다....
최홍락님 댓글 감사합니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아시아 센터에서 설문조사를 행한 것인듯 싶습니다.
Fewer Koreans Want to Move Abroad
https://www.google.com/#q=chosun+less+korean+want+immigrate

열심히 토론하듯이.... 열심히 불우이웃들을 돕자.....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런 저런 애기를 썼는데.... 복사하는 가운데 날라가 버려서..... 간략하게 적습니다.)
위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이 개인의 노력 부족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거기에 많은 성토가 있었네요.

우선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성공 및 기반을 구축하신 것은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그런 경험을 하신 어르신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러한 어른들이 노력하지 않는 개인들을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판단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자신의 경험이니 말입니다. 심지어 평등의 가치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하는 486세대들도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 이 분이 특별하게 모난 분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486세대 정치인들이 즐겨 꺼내쓰던 20대에 대한 비판론이죠.)

인터넷에서 스포츠나 연예계나 학계에서 일정한 지위에 자기 노력으로 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노력을 할 생각도 하지 않는 철없는 이들이 악플을 쏟아내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저도 그러한 노력할 생각도 없는 이들이 이렇게 망나니처럼 달려드는 게 정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개탄을 하게 되는데, 이 점에서는 bman님과 제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이분께 비난이 쏟아지는 것 같아 좀 변호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분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공부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도덕성이 희박해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시는 것 같은데, 이것은 공부를 해야 하는 목적이나 유인 설계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내가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그리고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과 돈이 내가 원하는 직업이나 어떤 기회를 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개인은 공부를 노력을 하는 것이 유효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노력을 안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유인에 의해서 나타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때문에 오늘날 자본주의가 불완전하나마 유일한 대안으로 지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님이 보신 그런 분들은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높거나 (요새 수학 포기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지요.)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과 돈이 내가 원하는 직업이나 어떤 기회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안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사는게 가난하다고 해서 꿈도 가난해야 하느냐는 말이 그래서 참 가슴 아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라는게 문제이지요.)

두번쩨, 본인이 노력해서 명문대를 나온 것이야 인정하지만 지방대학교 출신들이 노력을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에 입사해보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상사들이나 동기들의 학교가 저보다 좋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 것도 있고, 삼성이나 유명 대기업들이 지방대학교 출신들을 일정 부분 채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인이 노력을 하면 보상이 필요한 것과는 별개로 조직은 다양한 특성의 인원들로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열심히 일하는 것과는 별개로 조직은 필요로 하는 용도에 얼마든지 다양한 사람을 pick up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 여러가지 변수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제가 bman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 전체적인 시각에서 경쟁에서 탈락한 개인들을 내버려두는 것이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성된 조직내에서도 다시 경쟁이 벌어지고 거기에서도 탈락하는 경우도 많겠지요. 그렇게 탈락하는 사람들이 노력을 안해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업적이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인이 노력을 해도 기업이나 산업의 흥망성쇠나 기타 여러가지 변수들로 인해 탈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경쟁에서 탈락한 개인들을 내버려두는 것보다 다시 일할 기회를 얻는데 국가나 제도가 도움을 주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이 많은 분들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당장 사회 안전망 없이 그 사람들이 실업상태로 놓인다고 할 때 좋은 직장에 붙어있는 내부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비정상적인 저항을 하는 것이 유리한 전략이 됩니다. 한국의 대기업과 공무원 노동조합이 왜 강경 투쟁을 하게 되는지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이나 공공기업에 입사하는 사람들과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사람들 간에 임금 차이가 과도하게 크고 (2배 정도 된다고 하죠. OECD 국가의 경우 평균 1~1.5배 수준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다 사회 안전망까지 부실한 상황에서 구조조정 상황이 발생할 경우 만만치 않는 저항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러한 갈등에 따른 비용을 감안할 때 패자 부활이 가능한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나 빠른 산업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 혁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나시카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나시카님이 올리신 나폴레옹님의 자료로 대체역사를 쓰고 있어요.
'정조-밀리터리 군주' 라는 글을 조아라에서 쓰고 있어요(무료)
http://www.joara.com/literature/view/book_intro.html?book_code=1014165


밀리터리 매니아가 정조의 몸속에서 환생해 나폴레옹 시대(1800~1820)를 사는 내용이에요. 실학자님들과 힘을 합쳐 개혁을 하고 부국 강병을 한 다음 세계 정복을 ^^; 한다는 내용이네요.나폴레옹 님도 비중이 높아서 원 역사와 다르게 조선제국과 프랑스제국이 세계를 양분하고 계세요.

경제학적으로는 중상주의를 쓰는 것이 특색인데 이쪽으로 좋아하시는 분도 많은 편이에요. 나시카님께서 한번 봐주셨으면 합니다. 정조나 나폴레옹이 많이 등장 대체 역사 보시고 싶으신 분들께도 추천드려요. 그리고 혹씨 보신다면 추천 많이 부탁들릴께요.
헛, 한번 읽어봤는데... 이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케일이...
쓰신지 한참 지난 글에 댓글 다는 실정이라 답글이 달릴지, 누가 이 글을 보실지에 대해서 확신할수는 없습니다만 꽤나 좋은 글을 보고 그 아래에 댓글들까지 훑어본 입장으로서 나름 소견을 펼쳐 보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더 많이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게 뭐가 문제냐는 논리에 몇가지 반박을 해보려고 합니다.

롤스의 사상에서는 이런식의 논리로 반박합니다.
네 재능이 꽃필수 있었던 것은 이 사회가 그 재능을 필요로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네 성과를 얻을수 있었던 것은 이 사회가 사유재산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네가 순수한 노력으로 성취를 거뒀다 하더라고 너의 성격은 어디에서 형성된 것인가? 그건 너의 유년기 시절에 정해진 것이고 네 의지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
유물론자로서 전 이 이론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만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 여기서 생각하고있는 저 자신을 부정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자 그럼 다음, 두번째 논리는 정말로 노력한 만큼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할수 있냐고 반박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과 열심히 공부한 학생 그룹을 30년 격차를 두고 비교해 봅시다.
영국에선 대처 총리를 전후로 임금과 생활수준 격차가 확 벌어지겠죠, 미국에선 아마 레이건이 분기점일겁니다.
그럼 30년 새에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기술 발달?
기술의 발달에 의한 생산성 향상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대학 교수와 이발사, 서비스업 직종을 중점으로 비교해 봐도 결론은 같을겁니다.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거의 동일한 정도로 노력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한 세대만에 이렇게 멀어진겁니까?
공부한 사람들은 더 많이 노력했죠, 맞는 말입니다. 공부한 기간만큼 더 일한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딱 그만큼입니다.
아마 몇몇 분들은 여기서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채셨을지 모르겠네요.

세번째 논리입니다, 몇몇 분들은 이렇게 반박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도 안돼! 그런식으로 노력의 가치를 깎아먹으면 아무도 의사나 CEO를 하지 않으려 할거라고!"
이번에는 논리라기보단 간단한 예시를 들어서 반박하고자 합니다.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최고세율이 90%에 달했죠. 미국 최고의 호황기였고, 사회 조직은 이상 없이 작동했습니다. 1950,60년대를 말하는겁니다.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마디 묻고 싶습니다. 도데체 당신들은 믿는게 뭐냐고요.
이와같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거의 자기기만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더 일한만큼(공부까지 포함해서 노력한만큼)임금을 지불하면 되지 않냐고 하면 의사나 교수같은 직업은 육체노동보다 고귀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그러면서 더 노력했으니 그런 위치에 오른거 아니냐는 소리를 거리낌없이 하더군요.
일의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논리와 노력에 대한 보상이 중요하다는 논리가 터무니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둘이 같이 성립할수 없다는 생각은 아마 바뀔 일이 없을겁니다.
공부는 육체노동보다 고귀한가요? 아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교육이라는 근대의 산물이 그 탄생 목적이었던 표준화된 숙련공의 양산을 통해서 더이상 필요하지도 않은 산업 역군들을 찍어내는 와중에는 더 그렇습니다. 어쩌면 필요하지도 않을 영어를 배우고 관심도 없을 문학 작품을 읽히는 것보단 납땜질을 배우게 하는게 더 숭고할지도 모르죠. 물론 그게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막스 베버의 사상에는 신성한(신에게 봉사하고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의미의)일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모든 노동(학업 역시도 노동에 포함되는것으로 기억합니다.)이 시간을 기준으로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이론을 펼쳤죠.
오늘날 복지국가를 반대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자인가요?
아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시장의 위대함을 찬양하는것밖에 모르는 신자유주의자들보다 더 추악합니다.
오히려 아무런 이념이 없기에 그들을 정의하는건 지독하게 힙듭니다.
이하의 내용은 완전히 주관적인 내용입니다만, 독재 정권 당시 학생운동계중 많은 이들은 소위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극우파로 갈아탔다는 내용을 읽고 나서 잠시 생각해본게 있습니다.
그 극우파로 갈아탄 학생운동파는 NL노선을 지향하는 이들이었고 아마 종북이라는 표현을 쓰면 다들 알아차리실 그런 사상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극우와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것 같은 이들은 어쩌다 자신들이 증오해 마지않았던 기독교 우파-재벌-권위적 정부라는 카르텔에 봉사하게 된 걸까요?
그들은 단지 파시스트였을 뿐입니다. 나약함을 증오하고, 자신들이 위대한 무언가의 일부라고 믿고 싶어하고, 나중에는 기득권 세력에 빌붙으면서 콩고물좀 얻어먹으면 더 좋다는 역겨운 버릇 하나가 더 생겼죠.

전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가 파산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저보다 훨씬 전에 쓰여진 댓글들 대부분은 더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맞는 말이죠, 하지만 의도적으로 패배자를 양산하는 체제에서는 그게 불의가 됩니다.
계속되는 기계의 발달은 우리에게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이 생산할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오히려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들은 자기소모적으로 점점더 헐값에 자기 자신을 팔아 넘기는 수밖에 없었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건 어쩔수 없더라도 그걸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함으로서 오히려 더 부유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소위 자유라는것을 말하면서 차갑고 무정한 상거래의 자유만을 부르짖고 그 대가로 큰 정부를 조각낸 대신 큰 기업에게 시민들을 맡긴 대처와 레이건은 노조는 해체하고 파업은 때려잡으면서 점점더 빈곤해지는 사회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건 모순입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본가에게도 치명적인 모순이죠, 자본가들이 생산한 물건을 소비하는건 결국 노동자입니다.
노동자가 빈곤해지면 자본가의 고인 물은 금세 휴짓조각이 되어버리죠, 대공황때처럼요.
물론 대공황이 다시 일어나진 않을겁니다. 신자유주의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일자리의 자동화가 절반 넘게 진행되는 막장스러운 상황이 아니라면요.
우린 공황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대침체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래 계속되서 그게 공황인지도 까먹고 있었죠.
제 사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통째로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겁니다.
만약 반박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주저 말고 답글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필요없는 걱정이겠지만 욕설은 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