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5. 8. 23. 13:43

이번 주도 광복절 특집입니다.  지난 편에 짧게 쓰고 넘어간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7세에 대해 좀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폴레옹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스페인 귀족들과 국민들은 이 페르난도 7세를 적극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1808년 5월 2일의 마드리드 대봉기도 페르난도의 동생이 프랑스로 끌려가는 것을 막다가 일어난 사건이었고, 나폴레옹의 형인 신임 스페인 국왕 조제프에 대해 충성을 서약하라는 명을 받은 스페인 병사들은 모두 은근슬쩍 페르난도의 이름에 대해 충성을 서약할 정도였습니다.  페르난도의 별명은 "el Deseado" (the Desired), 즉 국민이 원하는 자였지요.

 

 

 

(역대 부르봉 왕가의 최악의 군주를 뽑을 때 자기 아버지를 젖히고 단연 1위로 뽑히는 페르난도 7세입니다.  이 왕자님이 얼마나 멍청하고 악독한 인간이었는지 국민들은 그가 권력을 잡기 전에는 몰랐지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아랑훼즈(Aranjuez)의 불협 화음 http://blog.daum.net/nasica/6862599 편에 썼듯이, 이 페르난도 7세(Fernando VII de Borbon)는 그리 명민하다고 할 수 없는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 카를로스 4세가 국정을 너무나 엉망으로 말아먹었기 때문에,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페르난도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또, 이 인간이 왕권을 잡기 전에는 사실 이 인간이 어느 정도의 말종인지 국민들은 알 길이 없었지요.

 

적어도 그의 측근들과 친구들은 그런 사실을 미리 알 수도 있었습니다.  1807년에 1차로 일어난 부왕 카를로스 4세에 대한 반역 모의였던 에스코리알 모반 (Conspiracion-proceso de El Escorial) 사건에서 추궁을 받자 의리없이 혼자 살겠다고 자신을 위해 함께 반역 모의를 했던 친구들을 다 팔아넘기는 뻔뻔함을 보여준 바가 있었거든요.  1808년 바욘 (Bayonne)에서의 강제 퇴위 사건 때 잠깐 이 남자를 만나 본 나폴레옹은 페르난도에 대해 "하루에 4끼를 먹고 아무 생각이 없는, 자기가 본 왕족 중에 가장 멍청한 왕족"이라고 평가한 바가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스페인 국민들은 그런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자가 알고 보면 프랑스에서 건너온 부르봉 왕가의 자손이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스페인 사람들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한 면이 좀 있거든요.  종교적으로도 광적이고요.

 

아무튼 페르난도 7세가 나폴레옹으로부터 연금 50만 프랑을 받으며 탈레랑의 영지인 발렝세 (Valencay)에서 대단히 편한 생활을 하는 동안, 스페인 국민들은 그야말로 피칠갑이 되어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웃기는 일은 정작 마드리드의 최고위 귀족들은 '너희 자리는 유지될 거니까 걱정 붙들어매라'는 나폴레옹의 약속에 따라 프랑스에 협조한 반면, 사회 밑바닥 계층을 이루던 민중들과 가난한 하급 카톨릭 사제들이 프랑스에 대한 항쟁에 가장 열혈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대프랑스 항쟁에 나선 이유는 프랑스가 스페인을 접수한 가장 큰 이유, 즉 세금을 뜯기는 것도 있긴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국왕과 카톨릭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매우 컸습니다.  어차피 세금이야 그 전에도 전제 군주인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 및 토착 귀족들에게 착실히 뜯기고 있었거든요.

 

 

 

(스페인 민중들이 페르난도 7세를 위해 피를 쏟으며 죽어나갈 때, 그는 나폴레옹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여 아름다운 샤또 발렝세에서 아주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귀족들이 모두 친일파, 아니 친불파는 아니었습니다.  5월 2일, 스페인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을 본 후, 스페인 귀족들 상당수가 입장을 바꿔 민중들과 함께 반프랑스 투쟁에 나선 것입니다.  바일렌 전투의 영웅인 카스타뇨스 장군도 그런 귀족들 중 하나였지요.  처음에는 스페인 민중과 귀족들의 일치된 힘이 프랑스군을 압도하여 그들을 에브로 강 동쪽으로 밀어내고 아예 피레네 산맥 너머로 쫓아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지요.  상대는 나폴레옹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1808년 11월부터 제대로 된 스페인 침공을 개시하여 프랑스군을 저지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던 스페인군들을 너무나 간단히 제압하고 마드리드를 재점령했습니다.  스페인 저항 세력은 마드리드에서 쫓겨나 점점 서쪽으로 퇴각하다 결국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까지 물러나야 했습니다.   스페인 남서쪽 끝인 스페인 최대의 군항 카디즈(Cadiz)에 들어가 농성한 것입니다.  다행히 이곳은 긴 반도 끝에 위치한 요새로 이루어진 철옹성인데다 바다를 영국 해군이 지켜주는 바람에 프랑스군의 포위 속에서도 꿋꿋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임시 정부가 농성하던 카디즈 성입니다.  그 지리적 위치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지요.  그러나 여기서 농성하던 임시 정부 인사들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인 1823년에 다시 프랑스군에 쫓겨 이곳에서 농성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스페인 저항 세력은 카디즈 성 안에 쳐박혀 있기만 할 뿐 프랑스군을 몰아내기 위해 군사적으로 딱히 크게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하나 합니다.  헌법을 작성한 것입니다.  이전까지 스페인에는 헌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은 합스부르크 가문에 이어 부르봉 가문의 전제 군주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국왕이 스페인이라는 국가나 민중을 위해 이로운 존재였기 때문에 받들어 모시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이 국왕 것이므로 당연히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쳤던 것이지요.  왕권은 신이 내려주신 것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신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카디즈 성채에 포위된 스페인 임시 정부가 스페인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합니다.  바로 국민주권이었지요.  여태까지 국가라는 것은 곧 국왕이었으나, 이젠 그게 아니라 국민이 곧 국가 권력의 주인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스페인 임시 정부가 선포한 헌법은 이 외에도 여러가지 진보적 조항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페르난도 7세가 스페인의 적법한 국왕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민 대표의 존엄성과, 사유 재산의 절대성,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 심지어 모든 성인 남성이 보편적인 투표권을 가진다는 것 등이었지요.

 

 

 

(카디즈에 포위된 채 헌법을 선포하는 스페인 임시 정부입니다.)

 

 

스페인은 당시 유럽의 후진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의 발전은 영토의 크기나 인구수, 보유한 황금의 양이나 총칼의 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들에 있어서 스페인은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근대 국가 발전의 시작은 계몽주의 등 사상의 자유에서 시작되는데, 스페인에 부족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영국이나 네덜란드, 심지어 같은 카톨릭 국가였던 프랑스 등이 과학과 산업이 발전하며 민주적인 통치 제도를 이룬 것에 비해, 스페인은 광적인 카톨릭 원리주의에 사로잡혀 최근까지도 이단심판을 집행하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페인이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았다고 갑자기 왜 무엄하게도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는 종북친노적인 선언을 하게 된 것일까요 ?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개념은 토마스 홉스의 레비아탄에서 처음 나온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 국가 주권은 수많은 국민들로 구성된 거대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거 읽어 봤냐고요 ?  ㅎㅎㅎ 그냥 웃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말인데, 요즘 이렇게 헌법 제1조 2항을 주워 섬기면 종북좌빨로 몰리기 쉽더군요. 참 걱정됩니다.)

 

 

간단합니다.  평상시 부르봉 왕가에 붙어 부와 권력을 누리던 기득권 즉 귀족 세력이 카디즈 임시 정부에 없었던 것입니다.  귀족들 중 일부는 마드리드의 조제프 왕에게 협력하고 있었고, 또 많은 수는 귀족이 아닌 지식인 출신들이 모인 임시 정부에 합류하기 보다는 각자의 지방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싸우거나 혹은 아예 은거하기를 택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임시 정부에 모인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귀족들과 고위급 사제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1812년 카디즈에서 매우 진보적인 헌법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마치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프랑스 측에 붙었고 진보주의자들은 스페인을 위해 피를 흘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스페인에 원래부터  있던 소수의 지식인들은 스페인 사회의 낙후성에 대해 한탄하며, 개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프랑스의 계몽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은 아프란쎄사도 (Afrancesado, 영어로는 Francophiles), 즉 프랑스주의자, 또는 친일파 아니 친불파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애비나 자식이나 한심하기 짝이 없던 부르봉 가문의 왕들이 프랑스로 잡혀가고 프랑스 혁명의 산물인 나폴레옹 가문의 왕이 부임해오자 이를 스페인 개혁의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협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원래는 뭐 나쁜 뜻은 아니었던 아프란쎄사도는 그야말로 매국노와 동의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도 친미파, 친중파는 그리 나쁜 말이 아닌데 친일파라면 천하에 없는 개쌍놈으로 치부되지요.  아무튼 카를로스 4세 밑에서 재무 장관을 하던 우르퀴호(Mariano Luis de Urquijo)를 비롯하여 많은 귀족과 지식인들이 아프란쎄사도로서 조제프에게 협력했습니다.  스페인의 거장 화가 고야(Francisco Goya)도 아프란쎄사도로 분류됩니다.  조제프의 궁정에서도 그림을 그렸거든요.

 

 

 

(보나파르트 가문의 스페인 국왕 조제프입니다.  이것도 혹시 고야의 그림이냐고요 ?  아닙니다.  이건 제라르의 작품입니다.)

 

 

 

이런 아프란쎄사도들은 그렇게 조제프 왕에게 협력할 이유가 나름 있었습니다.  조제프는 1812년 스페인 임시정부가 발표한 헌법보다도 훨씬 더 먼저, 우수한 나폴레옹 법전에 근거한 꽤 합리적인 헌법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1808년, 부르봉 가문의 못난이 왕들이 강제로 퇴위당한 바욘(Bayonne)에서 승인되었기 때문에 바욘 법령(Estatuto de Bayona)으로 불리는 이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 있다'라는 등의 혁신적인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고 법률 앞에서의 평등, 사법부의 독립성, 그리고 온갖 중세적인 구습들을 철폐하는 등 꽤 합리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특히 스페인의 일부 지방을 아예 프랑스로 편입하려고 했던 나폴레옹의 야욕에 맞서 (주제도 모르고) 조제프 왕은 스페인 왕국의 독립성을 유지하려고 꽤 애썼기 때문에 일부 스페인 귀족들과 지식인들은 차라리 조제프에게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애국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물론 조제프가 들고온 바욘 법령은 실제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스페인 민중의 불굴의 저항 때문에 실제 프랑스의 통치는 프랑스 장군들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폭력 뿐이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시대 때 일본군에 자원하는 등 친일 행각을 벌인 인사들을 근대화라는 미명으로 미화하고 옹호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글쎄요...  최소한 스페인의 경우에는 저렇게 프랑스에 협조한 인사들은 귀족이든 지식인이든 대부분 프랑스로 망명하여 끝내 용서받지 못하고 빈곤 속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고야 같은 경우는 '자신은 그림을 그렸을 뿐 정치적인 행동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변명하며 뒤늦게 '5월 2일 마멜룩의 돌격' 등 프랑스의 침공에 항의하는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고야의 유명한 그림인 '5월 3일'입니다.  도스 데 마요 봉기 다음날 프랑스군에게 처형되는 마드리드 시민을 그린 이 명화의 제작 연도는... 1814년, 즉 프랑스군이 완전히 물러간 다음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천황에게 충성하자는 기사를 올리다가 광복 맞이한 다음에 잽싸게 대한독립만세를 1면 기사로 올리는 셈이지요.  결국 고야는 1824년 프랑스로 망명하여 거기서 죽었는데, 그때 망명한 이유는 친일파로 찍혀서가 아니라 '진보주의자'로 찍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아시는 바와 같이 결국 프랑스군은 영-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에게 패퇴하여 피레네 산맥 동쪽으로 물러났고, 나폴레옹은 1813년 말 발렝세 (Valencay) 조약을 맺고 1814년에 페르난도 7세를 스페인으로 돌려보냅니다.  스페인 민중이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저항한 덕분이었지요.  그런데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돌아온 페르난도 7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이 없는 동안 만들어진 이 헌법을 폐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페르난도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혼자 힘으로 예전처럼 절대 왕정을 간단히 회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었을까요 ? 


아니었습니다.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화려한 행렬 중에, 많은 귀족들과 사제들이 그를 찾아와 저 가증스러운 친불파 놈들이 만든 빨갱이같은 헌법이란 것을 없애버리라고 부추긴 것입니다.  제1, 2 신분인 사제와 귀족들이 천한 평민들과 평등하다니 !!  그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거든요.  페르난도 7세는 이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진보주의자들이 만든 헌법을 뒤집어 버립니다.

 

 

 

(고야의 유명한 그림인 '나체의 마야'입니다.  고야는 1815년 이 그림 때문에 그 유명한 스페인 이단심문에 회부되었지요.  스페인에서 이단심문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1834년, 진보주의자들을 대거 등용한 크리스티나 여왕 때였습니다.  마녀를 불태워 죽이는 식의 야만적인 이단심문은 이미 근세에 없어진 것 아니냐고요 ?  아닙니다 !  1721년에도 마드리드에서 할머니 한명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한 기록이 있습니다.) 

 

 

프랑스 침략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운 댓가로 얻은 이 소중한 헌법이 무너지는 것을 본 스페인 민중이 가만 있었을까요 ?  가만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스페인 민중은 헌법이 뭔지도 잘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프랑스에 맞서 싸운 가장 큰 이유는 프랑스 놈들이 카톨릭 교회를 욕보이고 자신들의 나랏님을 잡아간 악마라는 사제들의 이야기였거든요.  더군다나 자신들과 함께 싸운 사제들이 '저 헌법이라는 것을 앞세운 진보주의자라는 놈들은 사실 아프란쎄사도, 아니 친일파와 한통속이다' 라고 하는 말을 안 믿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진짜 친일파, 아니 친불파들은 조제프와 함께 모두 프랑스로 도망친 뒤였지만, 친불파라는 단어는 강력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당연히 제정 분리를 추구하는 소위 세속주의(secularism, 비종교주의)자들이었으므로, 사제들은 그들을 증오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스페인은 신문이나 언론의 발달은 커녕, 국민들의 문맹률이 높아서 국민들이 높은 수준의 국민의식을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달라진 프랑스의 국민 의식을 파악하지 못한 루이 18세가 다시 전제 군주 노릇을 하려 들자 다시 나폴레옹을 불러들인 프랑스 국민들과는 달리, 스페인 민중은 예전의 예속 상태로 되돌아가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 제3공화국조차도 완전한 세속주의, 즉 제대로 된 정교분리를 이룬 것은 1905년에 와서였습니다.  미국에서조차도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쳤다가 기소당한 것이 1950년대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이라고 소위 '깨시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파엘 리에고(Rafael del Riego y Nuñez)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음 편에 소개할 1808년 11월의 에스피노사 (Espinosa de los Monteros)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포로가 된 뒤, 나중에 석방되어 독일과 영국을 전전하다 1814년에야 스페인으로 귀국한 장교였습니다.  귀국한 뒤 중령 계급으로 군에 복직한 그는 페르난도 7세가 헌법을 헌신짝처럼 폐기해버리는 것을 보고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1820년, 그에게 남미의 독립 전쟁을 진압할 병력에 대한 지휘권이 주어지자, 그는 1820년 1월 뜻을 같이 하는 동료 장교들과 함께 카디즈에서 1812년 헌법의 복원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시대를 앞서 가면 안 좋은 분야가 몇몇 있는데, 예술, 그리고 특히 정치가 그렇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너무 빨리 태어났던 것이 죄였던 열혈 남아 리에고입니다.)

 

 

리에고의 부대는 카디즈에서 마드리드까지 행군을 하며 자유의 깃발에 민중이 함께 일어나주기를 바랬으나, 정작 무지몽매한 스페인 민중은 '뭐라는겨'하며 무심했습니다.  헌법의 의미가 무엇이고 전제 군주정과 입헌 군주제의 의미를 알아야 호응을 하거나 말거나 하지 않겠습니까 ?  하지만 다행히 일부 지방에서는 호응이 있어서, 그는 2달만인 3월에 마드리드에 무혈 입성하며 페르난도 7세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페르난도 7세는 신으로부터 직접 받은 왕권이 무색하게, 마치 1807년 에스코리알 모반을 발각당하자 아버지 앞에서 설설 기었듯이 이 진보주의자들의 요구에 벌벌 떨며 굽신거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은 메테르니히가 이끄는 비엔나 체제 하에 있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이 정당한 국왕을 포로로 잡다시피 한 스페인 상황을 우려한 유럽의 열강들은 1822년 12월 이탈리아 베로나(Verona)에 모여 스페인 사태를 논의한 끝에, 프랑스가 총대를 매고 스페인의 정국을 원상복귀시키기로 합의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합의한 것은 전제 군주정을 가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프랑스였고, 입헌 군주국이었던 영국은 이 합의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1823년 루이 18세가 보낸 프랑스군 6만명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침공합니다.  정말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군대의 총사령관은 루이 18세의 조카이자 훗날 샤를 10세의 아들인 앙굴렘 공작(Louis Antoine d'Artois, duc d'Angoulême)이 맡았고, 그 휘하에는 우디노(Nicolas Oudinot)와 몽세 (Bon-Adrien Jeannot de Moncey) 등 나폴레옹 휘하에서 맹위를 떨치던 장군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몽세는 끔찍한 살륙이 벌어진 1809년 제2차 사라고사(Zaragoza) 포위전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이승만이 4.19 의거를 진압하겠다고 일본군을 불러들인 꼴이었습니다.

 

 

 

 

(몽세 원수입니다.  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스페인 국경을 넘으려 할 때, 프랑스 내의 진보주의자들이 모여 그 앞을 가로 막고 스페인의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공격에 항의했고, 나폴레옹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던 프랑스군이 그 때문에 상당히 동요했다고 합니다.  물론 결국 군대가 발포하면서 프랑스 진보주의자들도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할 때와는 달리 스페인 민중은 이 프랑스군에게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귀족들과 교회, 그리고 재산을 가진 시민계급은 오히려 이 프랑스군에게 동조했습니다.  불과 10여년 전 프랑스군을 벌벌 떨게 만들던 스페인 민중들은 그저 '아유 나랏님을 잡아가둔 역적들을 치러 왔다지 뭐여' 하는 정도였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프랑스군을 지지했거든요.  몇몇 도시들이 프랑스군의 포위 속에 버티다 항복하는 정도였지요. 

 

 

 

(1823년 카디즈 바로 앞인 트로카데로 요새 공략전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승리하면서 프랑스군은 사실상 스페인 전역을 정복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샤또브리앙 같은 사람은 나폴레옹이 수십만의 군대로도 이루지 못한 것을 불과 6만명으로 이루었다며 기뻐했습니다.  몹시 씁쓸하네요.)

 

 

 

혁명 잔존 세력은 이젠 저항의 상징이 된 카디즈 요새로 페르난도 7세를 끌고 들어가 농성했습니다.  그러나 8월 말, 카디즈 요새 앞을 지키는 요새인 트로카데로(Trocadero)가 함락되자, 결국 혁명 세력은 페르난도 7세에게서 '법률을 준수하고 혁명 세력에게 자비를 베풀겠다'라는 서약을 받고 그를 석방하게 됩니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석방되자마자 혁명 세력들을 이잡듯이 뒤져 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5만명이 체포되고 그 중 무려 3만명이 처형되었으며, 혁명을 최초로 일으켰던 리에고도 9월에 체포되어 결국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석방되기 전에는 굽신거리며 사면을 약속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처사였고, 또 너무 잔혹한 숙청이었습니다.  이 잔인하고 뻔뻔스러운 행동에 질려버린 프랑스군 사령관 앙굴렘 공작은 페르난도 7세가 수여하는 훈장을 거부함으로써 페르난도 7세에게 간접적으로 망신을 주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원정군, 소위 '성 루이의 10만명'을 지휘한 앙굴렘 공작입니다.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가 완전히 축출되고나서, 원래 왕위 계승 1순위였던 그의 아들 앙리 Henri Charles, comte de Chambord 는해외 망명 생활을 해야 했는데, 훨씬 훗날 프랑스 제3 공화국이 성공적으로 들어서는데 본의아니게 상당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클레망소 같은 공화주의자들이 앙리를 '프랑스의 워싱턴'이라며 비꼬았지요.  축구 경기로 치자면 헛발질 하는 상대편 선수에게 우리편 응원단이 환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

 

 

1812년 헌법을 작성했던 스페인의 진보세력도 자체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가령 조제프의 바욘 헌법에서도 인정한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동등한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등 다분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속셈이 엿보였지요.  무엇보다, 그들은 배경을 잘못 골랐습니다.  모든 혁명은 민중의 지지를 얻을 때 성공할 수 있는데, 카톨릭 원리주의에 물들어 있던 스페인 민중은 혁명 사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건 마치 이란이나 아프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선교 활동을 떠나는 개신교 신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지요.  오히려 나폴레옹이 써준 조제프의 바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카톨릭 신앙을 국교로 지정하는 등, 스페인 민중의 수준에 부합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이 양반 어록에는 '모든 국민은 자신에게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이 없습니다.)

 

 

흔히 알렉시 드 토크빌 (Alexis de Tocqueville)의 말로 오해를 받는 명언, 즉 '모든 국민은 자신에게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  (Toute nation a le gouvernement qu'elle mérite)라는 말에 대해, 저는 정말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이 말은 사보이(Savoy)의 외교관이자 법률가인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명언이었는데, 유시민씨가 정계를 은퇴한 이유도 요약하면 이 말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가 좀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정권 교체보다는 올바른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보수층에서는 교학사 교과서를 지키려고 많이들 노력하고 뜬금없이 이승만을 미화하는 노력도 하고, 아무튼 많은 노력을 하더군요.  진보 측의 노력은... 글쎄요.  전교조니 진보 교육감이니 하는 것들은 국민들에게 선듯 좋은 느낌으로 와닿는 것 같지는 않고... 아무튼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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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댓글 전쟁을 야기한 사람 입장에서 다른분들께 불편함을 야기한 것에 우선 사과를 드립니다. 잘풀어나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nasica님의 블로그에 정치적인 글들이 올라오는 것에 대해 나름 변호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글을 올립니다.

제가 이 글들을 이 블로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기존의 책에서 얻지 못했거나 미처 놓친 역사에 관련된 부분들을 이 곳에서 많이 얻어갈 수 있기때문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일을 하든 역사를 공부하든 일종의 프로토콜대로 하는 사람과 깊이 파고드는 사람을 비교해볼 때 후자의 질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부정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후자의 경우 능동적인 태도가 타자에게 불편을 줄수도 그 사람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충돌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를 깊이 파고들면 그것이 가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 함의를 끄집어내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저도 nasica님과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반대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곳을 찾고 때로는 말도 안되는 꼬투리로 공격을 가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nasica님의 메세지는 생각할 부분이 있다는 점, 그를 통해서 얻을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아마 이곳을 찾으시는 대다수의 분들도 충분히 공감하실 것입니다.

앞으로는 글을 달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중 수용할 부분들을 더 많이 챙기면서 심사숙고 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불편을 야기한 점 다시 사과드립니다.

충돌없는 역사는 없다.

역사는 변화가 수행되는과정이고

변화는 필연적으로 충돌을 수반합니다.

변화하고자하면 충돌해야합니다.

성경에도 있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난 평화를 주려고 온것이 아니다

난 분쟁을 주려고 왔다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서로 대적할것이다.
스페인이라는 국가가 통일된 게 15세기가 끝날 때쯤인데다가, 그것도 지중해의 상업국가인 아라곤에, 중앙의 농업국가인 카스티야, 정복당한 무슬림들인 그라나다같이 개성강한 지역들을 하나로 묶어놓은게 가톨릭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강할 수밖에 없기도 했죠. 가톨릭 빼고는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하지만 시대가 가면서 나시카님이 서술하신 것처럼, 가톨릭은 스페인의 멍에가 됩니다. 1930년대의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의 주력군은 북아프리카 군단과 함께 레케테라 불리던 농촌 출신의 가톨릭 의용군이었죠. 기존의 왕정 체제에서 몇 안 되는 대귀족들에게 토지와 권력이 집중되고, 대다수 농민들은 빈곤했는데도 이들은 가톨릭과 왕정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사람은 젊은 날 성립된 사상을 죽는 그 날까지 바꾸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사상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중요치 않고 말이죠.
성경의 창세기에서,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 민족은 40년동안 광야를 떠돕니다. 저는 그걸 이집트 치하에서 노예근성이 박힌 사람들이 다 죽는 시간이라고 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의 의식이 바뀌려면 구성원이 바뀌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덤으로 제 사견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선거를 보면, 새누리당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닥치고 1번인 충신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들은 쉽게 말해요.
애초에 우리나라 대다수가 쉬는 시간도 못 챙기니, 정치에 관심가지고 정책 읽어보는 사람이 적은데다, 50대 이상의 고령층으로 가면 중졸 이하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라 지적 수준이 대단치 않은 사람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큰 강점입니다.

나와 적을 나누고, 적을 없애고 대항하겠다고 말해요. 그 적은 북한이고,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정적들을 북한과 동일시시킵니다. 적이 눈에 보이죠. 경제를 살리겠다고 합니다. 부작용이 어떻든 자신이 가진 집값이 오르는 게 보이고, 어쨌든 돈이 늘어나면 자신의 작은 가게도 잘 될 것 같으니 먹히지요.

반면, 야당은 뚜렷한 적이 없습니다. 다 사이좋게 지낸다고 합니다. 복지와 증세를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어떻든) 자신의 돈을 빼앗아갈 것 같습니다. 줏대도 없어 보이고, 복지라니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으니 잘 와닿지도 않죠.
격하게 동감...더불어 정부의 잘못을 말하는거 조차 빨갱이좌파 취급을 받으니 이나라 앞날이 걱정이 되내요..
운동권 세력을 크게 ca nl pd로 나눌수있는데 pd는 마르크스주의고 nl은 주체사상파입니다. 북한과 연관이 아주없는것이 아닙니다.
그리도 ca는 nl 에 흡수돼고 중요하지않아 패스


계파 이야기를 더하자면
NL 이석기 이정희 민주노동당 오마이뉴스
PD 심상정 노회찬 진보정의당 프레시안

입니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은 반독재적 성향도 있지만 정말로 독재정권의 선전대로 진짜공산주의자들도 있었읍니다. 사실 가장큰 주축은 그들이었지요.

문제는 이들이 독재가 끝난뒤에도 사회민주주의 세력이랄수 있는 친노에도 상당히 많리 가담합니다

예를 들어 임수경은 문재인이 대선출마할때에 통일정책특보로 임명되었지요.

김광진은 남민전 출신인데. 현재민주당출신이지요.
할이야기는 많지만 자꾸논쟁이 길어지는거 같아 줄입니다.

남이 나와 다른선택을 하면 남이 나보다 늙어서 남이 바보같이 빨갱이라는 말에 속아서
남이 이기적이여서 자기고향사람뽑아서 남이 학력이 나보다 낮아서 남이 의식수준이 낮아서 다른 선택을 했을수도 있는데. 남이 내가모르는 무언가를 알고있어서 했을수도 있습니다.
새누라당을 뽑는것이 어리석은거고 친노나 민두당 뽑는것아 현명하다면
국민들이 현명해져서 김대중 노무현 뽑았다가
멍청해져서 아명박근혜뽑았다는것린데..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사람들이 멍청해진거네요. 그러면 그기간애 국민을 멍청하게만든 감대중 노무현 책암이크네요.

오타있습니다. 김광진은 민주당출신 에서 김광진은 민주당의원으로 고칩니다.

모바일이라 수정이 안됩니다.

저는 살면서 다른사람한심하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현명한사람못봤습니다.
현명한사람은 자신보다 못난사람을 안타까워하지요
우리나라의 선거가 사람들이 학력과 지적 수준이 낮아서 새누리당이 이길 수밖에 없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은 대체 어떻게 당선될 수 있었을까요?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사람들이 학력과 지적 수준이 높았는데, 노무현 정권 하에서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급격히 낮아졌기 때문에? 그 주장대로라면 노무현 정부가 수돗물에 독이라도 타서 사람들의 지적 수준을 떨어뜨리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아니면 노무현 정부가 비밀경찰이라도 풀어서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을 척살하고 다니기라도 한 것입니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이런 말이 안 되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는 진영이 대체 어딜 봐서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진보 중에서도 종북주의자들은 항상 자기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것 뿐인데 종북으로 몰린다고 말합니다. 천만에요. 북한을 추종하기 때문에 종북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북한의 도발을 근거 없는 음모론을 가지고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북한 정부를 추종하는 것이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진보' 지지자들은 북한 정권으로부터 피해를 입으면 입었지 아무런 득을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북한 정권을 옹호하기 바쁩니다.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수구꼴통"이라는 사상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있어서 살아있는 한 바뀔 수 없는 겁니다. 스페인 농민 이야기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거울을 보면 됩니다. 아니, 스페인 농민들은 가톨릭이라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종교를 가졌습니다.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것과 비교하는 건 스페인 농민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새누리당은 북한을 적으로 몰 수 있어서 이겼다? 잘못된 주장이지만 그 안에 진실의 파편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즉 지금의 야당은 감히 북한을 적으로 부르지 못합니다. '진보'는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부정할 수는 있어도 북한 정권을 똑바로 비난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 적극적으로 자료를 조작해서라도 북한을 옹호하기에 바쁩니다.

nasica님은 모든 국민들은 자신에 걸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의 진보진영이 자기들 수준에 맞는 대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학영(李學永, 1952년)은 전남대학교 문리대 학생회장으로 1979년 민투위 강도 사건에 가담하였다.
그는 남민전의 자금 마련을 위해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의 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다 집에있던
관리인을 수십차레칼로 찌르고 살인미수죄로 체포됐다. 이 사건으로 5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한 뒤
2006년 노무현 정부시절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 배상금13억을 지급하였다.
2012년 경기도 군포시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서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용대(1955년)는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다. 경기동부연합의 수령’으로 묘사될 정도로 실세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이석기는 이용대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중? 경기동부연합의 실세가 되었다
2005년 12월6일 노동당 대외연락부는 지령을 통해 “정책위원장으로는 경기동부의 이용대를 내세우고
그 밑에 우리의 영향 하에 있는 사람들을 박아 넣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을 지시했다.

김영환(金永煥, 1963년 )은 1986년 서울대학교에서 구국학생연맹을 결성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학생 운동권에 전파했다. '강철서신'의 저자로 유명한 그는 공작원을 콩해 1991년 반잠수정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비밀리에 방문( 한국의 정보기관이 사력을 다해도 정체를 모르던 김영환을
북의 간첩은 어떻게 알고 접촉해 초대할 수 있었는지? 운동권 어딘가에 아직도 그 간첩이 활동중이겠지)
김일성과도 두 차례 직접 면담했지만, 김영한은 그 이후 오히려 북한의 독재 실상을 알게 되었다며
북-중 국경에서 북한인들의 탈북 운동을 돕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되어 구금 된뒤 석방되었다.

이들은 그나마 대표적으로 들어난 인물들이고 전교조와 민노총 그밖의 시민단체 설계자들은 김영환과
북을 연결한 인물같이 아직도 그 신분이 노출되지않은채 국회, 정부기관 신문 방송사 및 사회 각계에서
활동중이며 사회의 인식과과는 달리 70년대 학번들이 실제 지휘부였고 386은 단지표면적 대표였었다.
야채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북한 주민들 수준이 딱 김정은이 두목 노릇하기 좋은 수준이고, 일본 국민 수준이 딱 아베 수준이며, 미국인들의 수준이 오바마 수준입니다.

우리 국민의 수준은 박근혜 수준이며, 민주당 수준은 문재인 수준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뽑았던 국민 수준이 왜 이명박 박근혜를 뽑는 수준이 되었는가? 간단합니다. 우리 국민 수준이 김대중 노무현을 뽑았다가 결국 이명박 박근혜를 뽑을 수준이었던 거지요.

박근혜 수준이라는 말이 우리 국민을 비하하는 말로 들리신다면... 뭐 그런가 보지요.

nasica님 김대중 노무현을 뽑았던 국민 수준과 이명박 박근혜를 뽑는 수준이 다른게 아닙니다.
다른 두명은 직접 만난적이 없으니 모르지만 김대중, 이명박은 제가 직접 여러번 만나고 개인적으로
밥도 같이 먹었고 해서 개인적으로 수준을 말할 수 있는데 김대중, 이명박의 수준이 너무도 같습니다.
그러니 한국 국민 눈높이에 그정도가 맞는거 겠지요 한국민이 아직은 그보다 높은 수준의 인물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겠지요. 또 욕좀 먹겠습니다 감히 누구와 누구를 수준이 같아고 했으니....
하지만 두분은 이해력이나 속임수 쓰고 치사한 수준까지 거의 같습니다. 돈 챙기는것 까지두요.
김대중대통령이 당선된 거요? 97년에 그렇게 신한국당이 나라를 들어쳐먹고 죄다 실업자되는 와중에도,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꾸니 39%나 여당에 표를 던졌죠. 이인제가 박정희 코스프레하면서 500만표 가져가지 않았으면 정권교체 없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제가 말한 쉬운 언어를 했습니다. '행정수도'. 이것때문에 땅값오른다고 대전과 충청권에서 노무현에게 표가 몰렸죠.(노무현이 잘했다는 건 아니고. 이것 때문에 부동산 폭등이 지방까지 번지는데 부채질했죠.) 충남과 대전이야 이랬다저랬다 하는 지역이고, 충북은 한나라당이 강세인데도 그랬습니다. 그러고도 2.3% 차이밖에 나지 않았죠.
국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못배우고 생각할 여유도 없는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진보에 일부 구 주사파 세력이 있다고 전부를 빨갱이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죠. 솔직히 무조건적인 친북을 옹호할 세력이 몇이나 되고, 실제 우리나라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일이 있기나 했나요? 오히려 군사정권의 북풍몰이와 국보법 남용이 더 문제 같습니다만.
그리고 민주당이 무조건적인 북한옹호를 한다? 그렇게 민주당이 친북이라 노무현 때 국방비 증가율이 자칭 보수인 이명박 때보다 높은데다, 무기도입사업도 쳐내는 거 하나 없이 꾸준히 진행했군요? 친북이라 병사들 막사를 침상형으로 바꾸기 시작하고, 박정희 때 정해지고 어떤 군사정권도 신경 안쓴 전사자 보상금도 현실화했나요?

말은 부드럽게 하되,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적당히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긴장을 완화하는 게 더 실리적인 태도 아닌가요. 최소한 정쟁 때문에 정상간 대화록을 까발리고, 대북 기밀도 언론에 흘리는 새누리당보다야 훨씬 합리적인 태도라고 보입니다만.

마지막으로, 김대중과 이명박이 똑같은 수준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두 분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초 제 외삼촌이 노동운동에 관련되어 잡혀가셨을 때, 여러 정치인들에게 호소를 하셨을 때 도와준 분은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게 고 김대중 대통령이었지요. 본심이 어떻든, 최소한 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줬기에, 두 분이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브레히트님 외삼촌분께 잘못된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잘못된것인지 모르지만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선상님의 전지전능론을 통해 이곳에서 문제를 흐리시는군요.
김대중씨는 80년초 신군부에 의해 형무소로 보내졌고 82년 말부터 제가 미국에 있던
85년까지는 미국에서 가끔 보았습니다. 80년대 초반의 대부분을 저와 같은 공간에
머물렀었는데 위와같은 근거없는 주장을 하시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렵겠지요.

그리고 진보에 일부에 구 주사파 세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주사파 형성 이전부터
한국에 버려진 남로당 잔존 세력들이 주사파 이전부터 김일성을 신격화해왔습니다.
제 개인 이성으로는 김일성이 박헌영과 남로당 세력을 그리 잔학하게 숙청했음에도
그릉 신격화하는 남로당계 좌익인사들이 이해가 안돼 개인적으로 질문을 한적도있지요.
정확한 숫자를 제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수십만이 넘는 남로당원이 남쪽에 버려졌습니다
그들은 계속 연대를 갖고 지내며 야권 일부와 연계 70년대 학번을 사상적으로 교육시켰고
( 제가 앞서 언급했던 '한반도의 정통성은 한국이 아니라 북이 갖고있다'는 사상으로)
80년 광주 이후 수많은 대학생들을 70년대 학번을 통해 조직화 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자 점부및 한국 사회의 각 분야에 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노무현씨의 당선에 기여해 지분을 확보한 뒤로는 독자 세력화를 구축하기 시작햇습니다.
어느정도 힘을 갖게되자 공산당 전술대로 노무현을 흔들기 시작해 서울시장 선거전에서
이명박과 거래를하고 지지 했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관련된 일이라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관여했고 보고 듣고 활동했던 공간의 이야기로 언젠가는 밝히겠지요.


이제 '진보'의 '국개론'은 드디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국민을 비난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이제 김대중의 당선은 순전히 이인제 때문에 국민의 뜻이 왜곡되었기 때문으로, 노무현의 당선은 순전히 수도 이전이라는 헛된 당근으로 일시적으로 현혹시켰기 때문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국민을 비난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진보'측 정권의 정당성까지 부정하는 단계에 온 겁니다.

물론 이제 와서 이런 정도의 주장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블로그 댓글에서도 이미 투표권은 시험을 봐서 인정하자면서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국민 주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까지 버젓이 나오기는 했습니다. 놀랍다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그에 대해서 '진보'들은 아무런 반대가 없었고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진보'들이 민주주의 같은 것은 실제로는 개껌 취급도 안 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선거권을 시험 봐서 인정하자는 주장을 조갑제 같은 인물이 했다면, 혹은 이 곳에서도 보수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 했다면 '진보'들은 그런 '미친 소리'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단지 '같은 편'이기 때문에 모든 비판의 칼날이 거두어진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새누리당 쪽에서 선거의 의미를 폄하했을 때는 '진보'의 모든 언론과 지지자들이 입을 모아서 비난햇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진보'측을 옹호하며 '국개론'을 내세운, 즉 '우리 편'이 할 때는 이의를 제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영 논리'라기보다 '진영 감정'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시험 봐서 선거를 제한하자는 주장이나 김대중 정권 및 노무현 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 진보진영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인 겁니다. 그 열정의 대상이 스페인 농민들처럼 차라리 제대로 된 종교라면 그나마 나을 겁니다.
'진보'에서 그 '주사파 세력'이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진보'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직시하기 바랍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임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복지정책이나 서민을 위하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로지 북한 정권을 보위하려고 하는가만이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요. 천안함에 대한 '러시아 보고서' 따위를 날조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은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것이지 결코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천안함 음모론을 퍼뜨리고 다닌 정치인, 언론(중에서도 한겨레), 그리고 기타 '진보' 지지자들이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소수에 불과했을까요?

이석기 문제는 어떻습니까? 만약 '진보'의 대부분이 친북과는 관게가 없다면 진보 내에 암약하던 종북세력이 밝혀진 것에 대해서 안도하거나, 분노하더라도 진보의 탈을 쓰고 대한민국 정부를 폭력으로 뒤집을 정부를 음모를 꾸민 자들에게 분노했어야 할 겁니다.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한겨레신문 등은 바로 그들의 음모를 폭로한 내부고발자에 대해 분노 그 자체를 쏟아부었고, 수많은 '진보' 지지자들의 행태도 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내부고발자 보호에 앞장섰다고 자부하던 한겨레가 그 내부고발자의 신상정보를 최대한 퍼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정부를 비판하는 행동일 뿐이다? 본인에게 생각할 여유가 있다면 그 여유를 활용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말입니다.

참고로 그 이석기는 김일성을 만나고 온 주사파인 김영환이 만든 민혁당의 일원으로, 민혁당이 적발되면서 체포된 인물입니다. 그것도 국정원의 거짓 공작이라고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민혁당이 적발된 건 김대중 정부에서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난지 한 달만에 노무현이 가석방했고, 이후 노무현의 손으로 사면복권되어 다시 폭력혁명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중요한 차이 하나를 분명하게 보여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북인 것은 '민주당' 전체가 아닙니다. 이석기를 풀어주고 그들의 종북적 행태를 드러낸 것에 대해 '분노'했던 정치인들, 언론 및 '진보' 지지자들입니다. 그들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소수였고 그들이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대체 지금까지 뭘 본 거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게 이석기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정당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비난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려면, 그게 이석기가 아니라 보수적 정당이었다면 스스로가 무슨 말을 했을지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만약 소수파인 보수정당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진보'에 속하는 정치 세력을 뿌리뽑기 위해 총기를 준비하고 통신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계획을 짰다면, 그런 정당이 해산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내란음모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법원을 비난하고 있지 않을까요? 아닙니까? 그래도 그 정당은 계속 존속해서 선거에서 심판을 받건 말건 해야지 해산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정부와 법원을 비난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일본이 군함으로 포격을 가해서 독도경비대 대원들이 중상을 입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그런 상황에서 만약 제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과 전쟁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면서 "일본과의 전쟁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강경한 대응을 하자는 자들은 전쟁의 두려움을 모르는 철없는 인간들이다" 라고 하고, 일본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반일감정을 이용해서 박근혜 정부를 공격하는 기회로만 생각하는 야당 및 그 추종자들" 을 비난하는데만 열을 올린다면 어떨까요? 많은 '진보' 지지자들이 - 물론 그들만은 아니겠지만 - 친일, 민족 반역자, 정권의 개 등등의 수많은 호칭들이 제게 붙지 않겠습니까? '진보' 지지자들 상당수가 '종북'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굳이 도발까지 안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진보'들은 미국이 피노체트 정권 등의 독재정권을 지원한 것에 대해 '범죄'라고 규탄하고 있습니다. 피노체트 정권이 정치범 수용소에 5만명이나 잡아가뒀다면서 이런 정권을 지원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공교롭게도 마침 그 날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30만명이 갇혀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5만명'에 분노하던 사람은 "30만명을 잡아가둔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냐"는 말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더군요.

물론 저는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것이 범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보'의 수많은 인사들은 미국에 대해서 말할 때는 도덕적 잣대를 날카롭게 들이대고 북한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 반대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미'라고 불러야 할지 '종북'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불분명합니다만, 대체로 둘 다로 보입니다.

"모든 진보가 종복은 아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는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만큼' 종북도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진영논리의 '교리' 때문일 뿐입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종북적 행동'을 비난하며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을 때 그렇게 열렬한 반응을 받은 것도 그 때문으로 봅니다. 즉 '진보' 스스로도 '종북적' 주장과 행태를 좋아서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단지 '종북적'인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보수'의 편을 드는 것이고 '진보'에 대한 배신이 되기 때문에 종북적 주장을 계속 지지하는 겁니다. 그러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오는 과정에서 '진보' 내부의 문제로 '종북'의 문제가 나왔고 '진보진영 전체'가 아닌 '명확하게 구별되는 일부 종북 집단'이 분명하게 특정된 셈입니다. 즉 '진영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종북'을 비난할 장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열렬한 반응이 터져나왔던 겁니다. 사람들이 정말 진보신당 자체를 열렬하게 지지해서 그랬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진보신당은 당 자체를 유지할 만한 수준의 지지율조차 얻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브레히트 / 정원 / Highlander / 야채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스페인이 강력한 가톨릭 국가로 성장한 것은 가톨릭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은 것도 있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합한 왕국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뭉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가톨릭이 해온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역시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국가입니다. 30년 전쟁때 구교가 아닌 신교에 가담하였지만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주류를 차지한 국가입니다. 카트린드 메디시스의 신교에 대한 탄압과 루이 13세 당시 리슐리외 추기경이 절대왕정의 기틀을 마련한 이래로 프랑스는 가톨릭이 중심이 된 나라였지요.

이 두나라 중 한 나라는 가톨릭 사제들과 민중들의 위계가 좀처럼 깨어지지 않은 반면 한 나라는 가톨릭 사제들이 쫓겨나고 신분체계가 자유롭게 된 것은 양 국이 가진 경제 체제의 차이가 요인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페인은 통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태인이나 이슬람 출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다양성의 나라였습니다. 이들 계층은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영주에 소속된 부분도 없어서 주로 상업이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통일 전까지 이들이 스페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1492년 통일 전까지 스페인에서 유대인의 수는 50만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1492년 통일 후 스페인 왕국은 알함브라 칙령을 내려 유태인과 이슬람인들과 같은 비 가톨릭교도들에 사실상 강제 추방에 가까운 명령을 내린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유태인들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대부분 스페인에 두고 쫓겨나야 했으며 이때 추방당한 유태인 수는 17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스페인 입장에서 이 칙령은 유태인들이 가진 재산을 왕실로 귀속시키고 채권을 무효화하며, 가톨릭 국가로의 통합을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정책이었다고 자축할 수 있었겠지만 이는 향후 스페인의 운명을 크게 흔드는 계기가 됩니다. 이렇게 쫓겨난 비 가톨릭 교도들이 주로 제조업에 종사하는 고급 인력이었기 때문에 스페인 산업은 크게 낙후할 수 밖에 없게 되지요. 식민지에서 황금이나 향신료가 많이 들어온다고 해도 농업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페인에 있어 이러한 물품들은 왕실의 배만 채우게 되겠지요.

이에 비해 프랑스는 앙리 4세의 낭트 칙령 이후 위그노의 고급인력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자국의 제조업이나 산업을 키울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 스페인과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루이 14세때 위그노들에 대한 박해가 있었지만 산업 기반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미국 독립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에 시민들의 동요가 겹쳐 자신들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인쇄사업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제3신분들이 계몽사상을 널리 알 길이 없었겠지요.)

이것은 현대 국가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 국가들이 탄생하였지만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의 발전을 이룩한 국가들은 대부분 민주화에도 일정 부분 성과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대만과 한국이지요. 신생국은 아니지만 호주나 아일랜드도 그러한 예의 하나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에 실패한 국가들은 군사독재 내지는 유력 집안들이 정치를 독점하는 불완전한 민주정을 하고 있지요. (대표적인 나라가 필리핀, 아르핸티나겠지요.)

결국 산업의 발전이 시민의 의식 수준을 개선시키고 그러한 의식 수준이 정치 수준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아베와 같은 정치인이 일본에서 먹히는 것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산업 구조조정에 실패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의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한 개혁 조치나 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보니 국민들은 구조조정은 고통을 수반하니 하기 싫고 이 모든게 중국과 한국과 같은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선동이 먹혀들면서 지금의 일본의 우경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스페인과 같이 외부의 적을 척결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자평하겠지만 정작 자신들의 구조 개혁을 게을리할 경우 일본의 선택은 악몽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p.s. 국민의 의식을 문제삼으려면 이승만 이후 최악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게 선행되어야 하며, 한국보다 소득이 높은 아일랜드나 호주 등이 한국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앞으로 한국은 절대 고성장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정치인을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최홍락님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경제 성장률이 저조한 것에 대해서 한마디.....

제가 정부 대변인이 아닌 것을 잘 아시겠지만..... 막연히 감으로 찍으면......

1)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와 연동되어서....
2) 금융시장을 개방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IMF 때문에 혹은 내수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스페인 귀족 (한국 재벌)들이..... 프랑스 (미국을 앞세운 다국적 자본)의 침공에 협조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토론을 열열하게 할지라도 말만 하면 별 영양가가 없습니다..... offline에서 실생활과 연관이 되어져야 약간의 떡고물이라도.... 우리 애들에게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동네 슈퍼에서 사먹되..... 주인 아줌마 아저씨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애기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야채님// 분노가 느껴지는 역필 감사합니다. '이건 진영 논리가 아니라 진영 감정'이라는 말씀에 저도 매우 공감합니다.

주사파나 이석기에 대해 흥분을 하시며 열변을 토하신 건... 제게 하신 말씀은 아니시지요 ? 저는 그 양반들 잘 모릅니다. 또, 남한의 독재자건 북한의 독재자건 독재자 옹호하는 인간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토크빌의 말로 오해받는 '모든 국민은...'이라는 저 명언은 결코 국개론이 아닙니다. 이걸 국개론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이자 현 정부에 대한 모욕이지요. 최소한 집권 진영에서는 저 명언을 '우리 국민의 높은 소양을 반영하는 명언'이라며 자평해야 합니다. 아마 다른 분의 댓글에 대해서 '니가 주장하는 것은 국개론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지명한 부분이 아니면 특별히 nasica님이나 특정인의 주장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진보진영'에서 나타나는 여러 모습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입니다. nasica님의 글을 빈정거린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 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왜 싸운데요?
솔직히 정치가도 아닌데 그렇게 싸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여러분은 아직 정치적 선동의 주체가 아니라 서민입니다, 나도 그렇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겪은 건 피아의 구별이 지역이나 정치적 입장 그딴 걸로 간단히 가를 수 있는게 아니란 것을 잘 알겠던데
본문 내용을 보니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것이 불만이신 모양인데, 쌍욕먹는 이승만은 물론이고 김구나 조만식도 친일파 재벌이나 만주군 딱가리들을 거느리고 다닌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새민련 원내대표인 이종걸이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는 나라, 해방이후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이끌어 온 나라라고 주절 댈때 싸대기 갈기고 싶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 그렇게 느낀다는 그놈이 반민특위 박살낸 한민당의 후신인 당에 입당해서 친일파 2, 3세들이랑 이빨까고 히히덕 거리면서 그딴 소리 지껄입니다. 물론 자기 당이 한민당과 끄나풀이 있다는 것과 당내에 친일파 후손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죠.

나시카 님이 불만스럽게 느끼는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유감스럽게 여깁니다. 당시에 친일청산보다 국가 설립을 우선한 데서 나타난 상황이 단추를 아주 잘못 끼웠죠.
자, 지금은 어떻습니까? 반민특위의 해산은 이승만 혼자의 과오로 여겨져 오고 있고, 한민당의 후예들은 뻔뻔하게 자기 당이 김구의 뒤를 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소리하면 니가 잘못 알고 있느니, 수꼴새끼니하면서 찢어죽일 잡놈 취급하지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민주시민이랍니다.

모든 국민은 그에 맞는 수준의 지도자를 가진다고 하셨지요?
그 발언은 절대 남을 향한 비아냥 거리는 용도로 사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시카 님이 보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다른 것을 보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수준 운운하는 건 본인 스스로도 결국 어떤 틀에 박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 '모든 국민은...'이라는 명언은 남을 깔보기 위함이 아니라, 현실을 현실대로 받아들이면서 발전 방향을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쓰여야 합니다.

가령 님께서는 당장 내일 북한에서 서구 방식의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져 지도자를 뽑는다면 누가 당선될거라고 보십니까?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볼 때, 경악스럽게도 김정은이 당선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그것이 현재 북한 주민들의 실상입니다.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을 얕잡아 보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되고 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을 뽑았을까 라는 역사적 사회적 고찰을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적절한 지도자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세력들은 그런 선택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주민들에게 어떤 점을 호소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겠지요.

우리 국민들은 김대중 노무현 10년을 겪은 뒤 이명박을 뽑았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명암에 대해서는 비교적 언론에서 열심히 물어뜯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다시 박근혜를 뽑았습니다. 그건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야당 인사들도 그에 대해 밥그릇 싸움만 할게 아니라 고민을 해봐야 하는데, 제가 볼 때 대부분의 야당 인사들은 지역주의와 공천권에 기반한 장사꾼들일 뿐, 우리 국민이 바라는 진보주의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민주당을 진보가 아니라 보수(새누리보다 약간 왼쪽에 있는 보수)라고 보는 시각이 민주당내에도 민주당밖에도 있는것으로 압니다.

그러고보면 민주당의원들도 자기들이 진보다 말하는 사람이 잘없지요..

사실 나시카님의 정치적성향에 맞는것은..사회민주주의일텐데... 우리나라에서 거기에 가장가까운 것은 진보정의당 정도로 볼수있겠네요...
질문 1. 나시카님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지요 낮다고 생각하는지요?

질문2. 나시카님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누가 의식이 높다고 생각하는지요?

질문 3. 본문을 보면 "복지하고 거리가 먼 새누리당을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낮아 종볼좌빨이라는 색깔공세에 속아서 계속뽑아준다""라는 뉘앙스를 제3자가 느낄수있는데.
그게 원래 나시카님의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가 맞는지요?
질문에 답안하셔도 됩니다. 답하시고 싶은것만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논쟁을 걸려고 질문한것은 아닙니다.
ㅎㅎ 정원님은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특이점주의자셔서 웬만하면 정원님께는 댓글을 달 일이 없습니다만, 이번에는 특별히 지목을 하셨으니 답을 하겠습니다.

1. 우리 국민의 정치 사회 수준은 그냥 딱 우리 역사의 질곡을 반영하는 수준입니다. 높다 낮다? 글쎄요, 미국 국민과 독일 국민 중 어느 쪽 수준이 높냐라는 질문처럼, 그것도 질문 자체가 좀...

2. 각자가 우선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지지정당이 다른 거지요.

3. 민주당도 복지 정당은 아닙니다. 다만 보수층이 애용하는 종북주의자 몰이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먹히는지 그 효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 4. 나시카님은 본인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시나요?(이질문을 하는이유는 나시카님이 생각하는 복지나 복지에 대한개념 방법들이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생각과 유사해보이기 때문에요.)
제가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 뭔지 잘 몰라서 그 질문에는 답변이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북유럽처럼 만들어준다고 하면 반대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일제시대에는 일본에 빌붙어 동족을 착취하고, 6.25 전쟁때는 북괴에 빌붙어 동족을 학살한 놈들이 지금 와서는 입 싹 씻고 엉뚱한 남을 친일파라 몰아붙이면서 자칭 진보라고 우기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죠...너무나 씁쓸합니다...

친일의 끝판왕, 한민당의 후예들이 이제는 매국의 매개체를 북괴로 옮기어 광복 70주년인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망가뜨리지 못해 안달하는 이 슬픈 현실...

하...너무나 비참합니다. 이런 현실에 맞서서 국민 모두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조선인 독립투사를 체포하고 고문한 일제의 앞잡이 놈들이 해방 후 6.25로 북괴세상이 될것같자 그대로 충성의 대상을 북괴로 바꾸어 다시 동족에 대한 악랄한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그들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쌓아올리며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천인공노할 매국반역자들은 교묘하게 스스로를 민주니 진보니 하는 뭔가 있어보이고 듣기 좋아보이는 언어로 포장한뒤 인터넷 특유의 카더라 통신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 정의구현에 목마른 여론의 분노를 경쟁 정당이나 세력으로 돌려버리고 자신은 안전한 곳에서 비열하게 웃고 국민을 비웃으며 오늘도 민주팔이,진보팔이,복지팔이,상대방 친일파 몰아붙이기로 동족의 피와 살을 매개로 얻은 권력과 부를 지키고 있죠...하...정말 이 얼마나 슬프고 개탄스러운 현실입니까?
심지어 이 뻔뻔한 금수들은 2004년경 그동안 친일과 종북 두가지 악랄한 방법으로 얻어낸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경쟁정당을 친일로 몰아붙이는 대대적 뒤집어 씌우기를 감행, 제대로 역관광 당해 정작 친일파는 자기쪽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친일로 몰아붙이던 경쟁정당의 의원 아버지는 독립투사, 친일청산 하나 하려고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나불댔던 어느 진보의원님의 아버지는 바로 그 독립투사를 때려잡던 조선인 헌병 본인이라는 기가막힌 사실까지 드러나 개망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친일몰이와 진보팔이,민주장사질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후안무치한 놈들입니다. 나시카님 글중 프랑스 혁명에 관련된 대목을 읽을때마다 피가 끓어오릅니다! 우리도 프랑스인들처럼 친일종북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켜 혁명가 조르주 당통의 말처럼 그들 모두 단두대에 오르게 해야 합니다!
수고하십니다.

다만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단두대에 올리자는 말씀은 프랑스 혁명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누구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대를 받아서도, 적대시되어서도 안됩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단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로 평가해야 합니다.

현재 여당 대표가 친일파 후손이네 아니네 말이 많아서 아마 특히 친일파라는 대목에 발끈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정말 잘못된 논란입니다. 지금 친일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과거 조상이 친일파였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친일파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본문에도 썼습니다만, 당시 스페인 헌법을 작성하고 나폴레옹에 대항했던 진보파는 아프렌쎄사도, 즉 친불파로 불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프랑스의 계몽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친불파로 불린 것이지, 프랑스에게 협조하여 그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나폴레옹의 스페인 정복에 저항해서 싸웠습니다.

우리나라의 김옥균 같은 이도 친일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군을 끌여들여 정권을 탈취하고자 했으니까요. 단지, 그가 일본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아니면 정말 낙후된 조선을 개혁하고자 그랬는가에 따라 평가가 바뀔 수는 있겠지요.

묻지 않으셨지만, 저는 외세적인 면에서 따지자면, 저는 노골적인 친미파입니다. 제가 미국 문화를 좋아하고 미국이 흥하는 것을 원하고, 미국으로부터 뭔가 개인적인 이익을 받기 때문이 아닙니다. 좁은 영토와 많은 인구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언제고 우리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일본과 인권 후진국이지만 엄청난 대국인 중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로서는 그나마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체계를 가진 미국의 안보 우산에 기대는 것이 가장 우리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친미파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가령 저는 전시 작전권 반환에 부정적입니다. 물론 주권 국가라는 나라가 전시 작전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와 제 가족의 안보를 우리 군대의 X별 아저씨들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는, 전문적인 미군 장성 손에 맡기는 것이 훨씬 안심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보다는 안보가 우선이지요.

그러나 정작 그 X별 아저씨들이 스스로 몰려나와 전시 작전권 이양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아저씨들이구나... 진짜 저 아저씨들 손에 우리 안보를 맡겨서는 안되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동의하고 전작권 문제도 현실적으로 동의 하지만 좀 바뀌어야겠죠 80년대 초반 육사 생도들 수준이 좀 이상하게
개교 이래 제일 우수한 재원들이었는데...... 똑똑한 친구들은 다 별을 못 달았는지 지금 하는게 실말스러우니
신군부가 나왔을 때 출세 지향적으로 군을 선택한 성향의 인믈들이라 그런건지 기대 이하입니다.
현 새민련 대표위원중 하나인 신기남씨가 떠오르네요.
그 아버지가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핍박해댄 일본 헌병조장 출신 시게미쓰 구니오라는 사람인데 (한국이름 신상묵)
막상 그런 자를 최고위원으로 올려놓은 새민련에서는 친일파 척결 역사 바로잡기 같은 양심이 썩어가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국에 진보다운 진보가 있기는 한가요? 새민련 하는 짓거리를 보면 정말 차마, 차마 내 소중한 한표를 줄수가 없어서 새누리당 뽑는 1인입니다.
ㅌㅌㅌ // 친일파는 척결해야지요. 다만 그 후손들에게 보복을 하자는 것은 말이 안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의 영달을 위해 매국 행위를 한 행동은 분명히 밝히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친일파 척결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일본이 지난 역사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반성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비슷한 상황이 되면 다시 그런 일을 벌이겠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거든요. 두번 다시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식민화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는 이웃과 어떻게 잘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

비슷한 논리로, 자신의 집안이 친일 행위를 한 것을 밝히고 반성하는 것은 '조상은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나라가 어려울 때 개인의 영달을 위해 외세에 붙어먹는 짓은 하지 않겠다' 라는 다짐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여당 야당 구분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나라에 진보다운 진보가 없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마찬가지로 보수다운 보수도 없지요. 그냥 자기들 편이 더 먹겠다는 아귀 다툼이 우리 정치의 현실 아닐까 해요.

다만 그렇게 '어차피 정권이 교체되어봐야 그놈이 그놈이고 바뀌는 거 하나도 없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로 소위 보수층 지지자들이 하는 말인데, 거기에는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좋아질 때까지 좌절하지 않고 계속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ㅌㅌㅌ 님 그리고 nasica 님, 한국 정치를 보면 떠오르는게 딱 한가지 밖엔 없습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편 아님 반대편만이 우선되는 붕당정치 수준을 못 벗어난 느낌이에요.

저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만 새누리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나마 민주당 보다는 0.0314% 정도 낫다고 보기에 새누리당을 지지합니다. 그놈이 그놈이래도 약간의 차이나마 있기에 현 박근혜 정권이 대략 40% 정도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는게 아닌가 하네요.

ㅌㅌㅌ 님 / 신기남의 부친이 친일파임에도 불구하고, 후손인 신기남이 조상의 친일행각에 대해서 성찰하는 건 오히려 용기있는 행동으로 봐야지요.
김무성처럼 아버지의 친일을 미화하는 새누리당도 있습니다. 아니 새누리당 자체가 대놓고 친일을 옹호하는 작자들이 수두룩한데
고작 신기남의 예를 들면서 새누리당에 투표한다는건 어불성설이 아닌가요?

그냥 새누리당이 좋아서 투표한다고 하시는게 말이 된다고 봅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이 블로그를 통채로 사셔서..... 나시카님의 귀한 글과 댓글들을 다 책으로 내시면 참 좋겠습니다...
저 잡댓글들을 왜 책에 포함시킵니까?
그럼 누가 책을 삽니까?
1946년 8월 미군정청 여론조사

자본주의 14%(1,189명), 사회주의 70%(6,037명),

공산주의 7%(574명), 모른다8%(653명) 좌익이념의 선호도가 무려 77%


1947년 7월 조선신문 기자회 여론조사

국호는 대한민국(24%) 조선인민공화국(70%)

정권형태 종래제도(14%) 인민위원회(71%)


우익성향의 선구회(先驅會) 서울에서 여론조사 (978명)

조선을 이끌어갈 지도자’ 여운형(33%), 이승만(21%), 김구(18%),

박헌영(16%)김일성 (9%)‘김규식 (5%)


일제시기 최고 혁명가’ 여운형(20%), 이승만(18%),
박헌영(17%), 김구(16%) 김일성(7%) 김규식 52표 5.3%
48년 5월 단독선거 선거인등록이 3월 30일에서 4월 8일까지 진행되었다.

유권자의 91.7퍼센트인 8백여만 명이 등록을 마친 것으로 중앙선거위원회가 발표했다

한국여론협회에서 선거가능지역 48년 민심동향을 조사

조사대상인원수 1,262명

(1) 등록하였소. 934명 74%

(2) 등록 안 하였소. 328명 26%

(3) 자발적으로 하였소. 84명 9%

(4) 강요당하였소. 850명 91% (<조선일보> 1948년 4월 15일)

서울의 등록률은 92.3퍼센트로 발표되었는데 조사대상의 26퍼센트가 등록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니 어찌된 일일까. 본인이 등록 사실도 알지 못하는 대리등록이 광범위하게
자행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등록했다는 응답자 중 91퍼센트가

강요당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강요의 정도에도 큰 편차가 있겠지만 압도적
대다수가 등록을 강요당했다는 피해의식을 가졌던 사실을 이 조사결과는 말해준다.
이 조사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민의 인데 그 민의를 왜곡한게
미국이고 이승만 그 떨거지 친일파라는 것 이나라를 개판으로 만들고
도발원점이 양키와 친일파라는 걸 알았을때 이후~ 논쟁은 쓰레기가 되어 버립니다

즉 우리가 사는 이땅의 사람중 반절은 입을 봉해 버리고 그 나머지가 옮네 그르네를 말하죠
입을 봉해버린 나머지 반절의 사람들의 입이 터진날은 누가 감당 못할일 생깁니다 ...
광복 직후 남한 지역의 문맹률은 12살 이상 전체 인구(10,253,138명)의 약 78%(7,980,922명)로
당시 여론 조사의 의미를 새기며 논리를 전개하시길, 1946년 조사에서 남한 지역의 전체 인구가
대락 2천만에 조금 못미치는데 그중 한글이라도 읽을 수 있는 있는 사람이 10%를 조금 넘었음
당시의 여론 조사는 90% 이상의 국민이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의미도 모르는 상태에서
조사자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의도대로 작성되는 대외 선전용 통계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임

PS:멧돼지도 생각좀 하고 살자는 뜻의 댓글이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리라 기대 안함
멧돼지님의 글 같은 것이 버젓이 튀어나오는 마당에 "종북은 없다. 단지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누명을 씌우고 있을 뿐이다" 라고 주장해 봐야 설득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것이지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땅의 진실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종북이라고요 종북하죠
우리는 봉해진 매장된 진실을 말해야만 이 기형적인 세상을

바로 잡을수 있습니다 그때 그당시의 세상을 지금의 눈으로 보지 말고
당시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사회,민족계열이 거부한 1대국회

참여한 2대국회 ...이게 진실입니다
민의를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게 양키,이승만,한민당(지금의 민주당)입니다

생각좀 하고 살자님 여론조사기구 전부 서울이고 100% 우익이며
미군정청에서 지원받는 단체였으며 또한 조선공산당의 정판사위조사건으로

조선공산당이 수세에 몰린 상태였으며 특히 김일성은 당시 남조선에서 엄청 견제당해
남조선신문에는 아예 이름자가 안 나올때입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얼척없겠죠

진실을 볼려면 당시 나 같음 이렇게 작전하겠다라는 생각도 해보겠죠
...저도 손 아프게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자료 어찌됐던 당시는 남조선이라는 용어가 99% 사용했으니 오해 마시길 ^^
저 자료 전부 남조선신문자료입니다 예전신문 검색해보세요 사진 올라가면 올릴뗀데요 ^^
제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았을 적에....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라는 한겨례 신문 기사를 보고 근거자료를 살펴본 적이 있었습니다... 영어공부를 할겸 그리고 자료 조사를 할 겸 찾아보았죠.... 마이크로 필름으로 archived 된 것을 뉴욕 타임즈를 통해서 직접 확인하였죠..... 그리고 한겨례 기사의 논리가 타당하지 않았다고 토론장에서 언급을 하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비난하더군요..... Oyster Bay에서 Roosevelt 대통령을 맞나려고 했는데 맞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수정: 파티 첫날에는 맞나지 못하였지만 그후에 접촉이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청년 이승만과 동행한 분이 친일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역을 하여 친일파로 매도하고..... 더불어 함께 있었던 청년 이승만도 친일파임이 분명하다는 주장이였습니다.... 주장의 논리가 맞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엄청 욕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동창중에 무슨 이유인지.... 항상 정권에 불만이 많아서 아무리 애기를 해도 통하지 않고 운동권에 푸욱 빠졌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땐 성격탓이라고 막연히 생각을 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집안 내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더욱이 이승만 대통령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기사를 타자치는냐고 꽤 시간을 들였는데..... 그 토론장이 없어져 버려서 똑같은 부분을 가져올 수는 없고요... 대신 다음의 책으로 대신하겠습니다....

In 1905 the United States hosted peace talks to end the Russo-Japanese War, a military contest for power and influence over North east Asia and Manchuria in which the Japan came out victorious. The document which emerged from the discussions, the treaty of Portsmouth, 'removed the l last obstacle to Japan's domination of Korea(Eckert et al, 1990).

Soon after the treaty was signed, Korea was incorporated into the Japanese empire as a formal protectorate.
But, before these dramatic events took shape, Syngman Rhee co-signed a petition addressed to President Theodore Roosevelt requesting American aid to protect Korean autonomy from further Japanese exploitation. With a Korean colleague, Rhee travelled to the President's country home Oyster Bay, New York, to present the petition, but Roosevelt rejected the initiative, telling them personally that the petition could only be received through proper diplomatic channels

President Roosevelt also dismissed advice from his minister in Seoul to limit Japanese aggression in Korea, arguing Japan would effectively stem the expansion of Russian power in the region. Roosevelt believed that American diplomatic support of Japan's power in Korea would facilitate Japanese recognition of America's new empire in the Philippines, recently acquired by the United States in a brief war with Spain. The President referred to Japan's relationship with Korea as being akin to US power over Cuba, an American protectorate acquired in the same war against Spain(Paterson et ak:1988). President Theodore Roosevelt's policies demonstrated some of the harsh realities of great power politics which limited the freedom of colonial peoples seeking independence prior to 1945
- The Korean War / By Steven Hugh Lee
안중근,윤봉길의사의 의거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폄하했던 미 합중국

카스라ㅡ태프트밀약을 사주했던 USA - 시어도어 루즈벨트대통령는

1900년 “한국은 자치할 능력이 결여하고 있으며
미국은 조선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일본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여 좋은 정부를 수립해서
한국을 유능하게 통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안성맞춤이다”

'나는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은 지금까지의 행위로 봐서 한국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단 그들은 "조선내에서 미국의 권익보호를 해야한다"

미국이 카리브해에서 패권을 잡고 쿠바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이 황해에서 패권을 잡고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04년

일본은 완전히 자주할 능력이 없음이 입증된
조선에 대해서 보호권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이며
“조선의 민족은 가장 문명이 뒤진 미개한 인종이고,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입헌정체의 나라”이며,
“일본의 민중은 ‘지성’ ․ ‘활기’에 넘치는 문명한 국민이다.”,

“미국과 같은 자유로운 입헌체제의 나라, 공정과 번영의 나라” 라고
추켜세우고,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여 한국을 보호하고 통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주먹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에 규정된 조선과의 우호협정을 위반했다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조약은 대한제국이 스스로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에 의거한 것이다. ㅡ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멧돼지님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씨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 못된 짓을 대한 제국에 했죠.... 미 대통령의 결정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참 놀랍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대한제국 편이 아니고 일본편이였는데 청년 이승만이 친일파이였다면 왜 구태어 미국에 찾아가서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직전에 "미국은 일본을 견제해고 한반도를 지켜야 한다 "고 했을까요?

The Corean people feel that unless the American government continue to be thier friend, the Russians and the Japanese will grind them to pieces like grain between the millstones. If the American President will use his good officers our imperilled territory will be saved and we will be able to continue on the upward path of progress - by spokesperson Mr. Yoon / August 4, 1905
청년 이승만이 악질 친일파 박영효(태극기 만든놈 조선왕조 사위)와
고종을 폐위 시키려 박영효랑 음모 꾸미다 4년간 징역산놈이 이승만이죠

박영효는 친일파고 그 똘만이 (해바라기)승만이는 독립투사 개가 웃겟쏘
그 반역(쿠대타)음모로 4년 징역 사는 놈이 이승만이오
감사합니다.... 역사공부는 다시해도 참 재미있네요....

저는 청년 이승만이 독립투사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청년 이승만이 을사조약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에 들어가서 미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의 한반도 정복을 막으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혹시 조선시대 역적이 무슨 벌을 받는지 기억하시는지요? 징역 4년이요? 보통 역적은 가문이 멸절 당하죠. 그렇죠. 그런데 왜 청년 이승만은 감옥에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을까요? 첫번째는 이승만은 왕족 출신이기 때문이죠. 두번째는 한성감옥에 들어가면 보통 일년 정도 지나면 다 죽어나오기 때문이죠..... 5년동안 죽지 않고 기적처럼 살아있었고 특별 사면후 고종이 왜 맞나보기를 원했을까요?
() 안 주무시는 군요 제 브러그 있고요 ^^
전 팔 하나 접고 가지요 하하 술 좀 했습니다 하하

김구 한독당 사라지고 여운형의 근로인민당 없어지고
김원봉 인민공화당도 김규식의 자주연맹도 ...

1950년 10월 14일<국무회의록>에 따르면, 1950년 10월 13일 내무부에서는
자신의 반대세력을 ‘좌익단체’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해산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내무부 관련 의결사항) 좌익단체 해산명령에 관한 건>
한독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근민당, 인민공화당, 민족혁명당,
근로인민당 등 7당에 대하여 해산명령하기로 의결한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나고 그해 11월 25일까지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국가보안법으로 86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동아일보 1950.11.25)

결국 친일파 처단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한국현대사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정부수립 후 친일파는 자신들의 반민족 행위를 반공 이데올로기로 은폐시키고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에 충성을 다하여 독재정권의
영속을 추구했으며, 분단체제의 고착화에 앞장섰다.
친일파를 척결하고 민족의 순고한 자결성을 지켜서 이땅에 양키를 몰아내었으면 ...... 얼마나 좋았을까요?

남조선 북조선이 하나되어 숭고한 주체사상을 면면히 이어 나갔으면 ...... 찬란한 새 역사를 온 세상 만방에 알릴 수 있었을텐데요!

김일성 주석님의 높은 뜻을 배우려 온 세계 지도자들이 줄를 지어 찾아와 숭망하고 학습을 받고 돌아가서...... 곧곧에 조선연방국가를 본받은 자주 공산주의 국가들이 세웠졌을텐데요!

혹 그렇게 되었을지라도 ..... 김일성 주석님의 영단을 반하는 남반도의 수구세력들이 무척이나 반골짓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남수단'과 같이 분쟁이 끊이지 않았을듯 싶은데요....
김일성...극우 김구주석도 보천보 소식 듣고 임정청사 창문 활짝열고 조선의 남아는 살있다고 외쳤쏘
미주 경향각지의 독립자금 ...은밀하기에 연계는 업었다고 김구선생은 밣혀쏘 (못 전해 주었다는 것)

동아일보 호외를 보았던 여운형선생도 밤새 통음후 보천보에 한 걸음에 달렸갔고요
해방후 ? 극우 김구선생은 단 1회 김주석과 ...여운형선생은 6회를 만나지요

좌우합작을 누가 꺴는가 오스트리아와 우리같은 팟쑈에 복무한 민족이기에 ...
어..... 저기요...... 멧돼지님....... 대단히 죄송하지만...... 제가 애기하려고 했던 핵심 요점은...."남수단"인데요......

남수단이 2011년 신생하여 부족간의 갈등으로 내전을 겪고 있는 것처럼 해방후 극한 혼란이 더욱 하였을 것이라는 것인데요..... 죄송합니다....
남수단 북수단 참으로 참혹한 동족내전이죠 종교로
그러나 그안에는 결국 돈(생산관계이지요 )입니다 ....

그 머냐 ...죄송합니다 ...
멧돼지님이 이 정도로 "북한 정권이야말로 정통성 있는 정부"라는 주장을 역설해 주신 이상 "종북은 없고 단지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라는 주장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유부터가 '김일성이라는 인물의 훌륭함'에 불과합니다. 이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그 김일성의 훌륭함이라는 것은 많은 부분 선전과 조작에 의한 것입니다. 김일성의 이름을 드높이고 멧돼지님도 찬양한 '보천보 전투'의 실제 전과는 고작 지나가던 취객 한 명과 엄마 등에 업힌 아기 하나를 쏴죽인 것입니다. 그나마 둘 다 일본인이라는 점이 사람에 따라서는 위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민간인 요리사도 한 명 쏴죽였다는데 그가 일본인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애당초 5명밖에 없는 주재소를 공격한 데다가 정작 그 다섯 명 중 한 명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전과 같지 않은 전과를 거두고 후퇴하다가 일본 경찰(일본'군'이 아닙니다)과의 교전에서 패배하여 큰 피해를 입고 도주했다, 그게 전부입니다. 어지간한 도적떼들도 작정하고 덤비면 그보다는 나은 전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일성 개인의 '명성'은 이를 마치 대단한 성공이라도 거둔 양 조작해서 선전함으로써 쌓아올린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민주주의에서 정부의 정통성은 국민의 손으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선출되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쩌다 무능한 돼지가 선거로 뽑히고 유능한 라인하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정통성 있는 지도자는 돼지고 라인하르트는 여전히 정통성 없는 찬탈자에 불과합니다. 지나가던 취객 한 명과 아기 하나를 쏴죽인 것이 국민의 손으로 뽑힌 정부라는 것보다 더 높은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식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자처할 자격이 없습니다.
1937년 6월 7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6월 4일 보천보 습격 당시 민간인 2명(성인, 일본 순사부장의 딸 2세 여아)이 사망했으며, 6월 5일 파견된 30명의 경찰추격대와 충돌하여 동북항일연군의 25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 일본 경찰추격대 30명 중 7명 사망, 14명의 부상자가 났으며, 전소한 총피해액은 50.000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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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조선인민군 부총참모장 이상조는 중공군으로부터 김일성 부대를 지원해주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그를 찾지못했다고 하며 북한 매체가 일본 관동군이 김일성을 잡기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한 북한 1인체제를 위한 날조라고 말했다 - "北韓(북한)은 金日成(김일성)의 개인兵營(병영) 경향신문 1989년 09월 12일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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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 훈련받은 공산유격대 출신인 김성주는 소련군 로마넨코 소장의 각본에 따라 ‘김일성 장군’으로 변신했다. 1945년 ‘김일성 장군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에 참석했던 박인각 전 평안남도지사는 “스치차코프 점령군사령관이 33세의 젊은 그를 김일성 장군이라고 소개했으나 군중이 모두 믿지 않았다”고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북한 외무성 국장을 지낸 박갑동 씨의 증언이다. 그는 “평양의 김일성 장군 환영식 사진을 보천보 전투에 참가했다 일본군에 잡혀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박달과 박금철에게 확인시켰더니 김일성이 아니라고 했다”며 일본측 판결문을 근거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