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nasica 2015. 10. 2. 10:18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Woman in gold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전혀 기대 안 하고 봤는데, 뜻 밖에도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아무 사전 지식 없이 보면 몇단계의 오해를 거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예술 영화인가?' 라고 시작을 했다가 '알고 보니 법정 영화로군!'이라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다 보고 나면 비로소 이 영화가 '나찌의 희생양인 척 했던 오스트리아의 추악한 과거를 어떤 식으로 반성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즉 과거 청산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2차세계대전 직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던 유태인 가문의 딸인 마리아는 나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탈출해서 미국인으로 40년간 살아 왔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그녀는, 어쩌다 역시 오스트리아의 유태인의 후손 출신이자 집안 친구의 아들인 젊은 랜디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랜디에게 부탁을 하나 합니다.  클림트의 유명한 그림인 'Woman in gold'는 사실 자기 집 거실에 걸려있던 자기 집안의 물건으로서, 자신의 백모를 그린 것인데, 나찌에게 강탈당한 것이니 반환 받을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부탁하는 쪽이나 부탁받는 쪽이나 지나가다 무심코 꺼낸 이야기에서 시작했다가, 그림 반환을 둘러싼 오스트리아 정부의 태도와 그 과정에서 되짚게 되는 오스트리아와 나찌의 관계 등에서 랜디가 흥분하게 되면서 집요한 법률 공방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몇년간의 긴 공방 끝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림을 되찾아 오는 것이 결말입니다.







이 영화는 제국주의 시절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모든 국가와 단체, 그리고 저를 포함한 개개인 모두에게는 감추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작은 것도 있겠고 엄청난 것이 있을 수도 있지요.  나찌 독일이나 제국주의 일본의 경우처럼, 그 규모의 정도가 크고 심할 수록 그런 추악한 과거를 그 후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제 어설픈 글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보다는, 영화 중간중간의 인상적 대사를 몇개 인용해 보겠습니다.  아베로 대표되는, 현재의 일본인들이 과거사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한번씩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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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나찌 약탈 예술품 반환에 대해 비엔나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클림트의 초상화에 관련된 연설을 한 뒤 건물을 나오는데, 어느 오스트리아 중년 남자가 다가와 말을 겁니다.

"알트만 부인, 아주 박력있는 연설을 하셨네요.  그런데 말이죠,  그냥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시는 것이 어때요 ?  당신네 민족은 포기란 걸 모르죠, 그렇죠 ?  모든 일이 홀로코스트로만 귀결되는 아닌데 말이죠."







(젊은 시절, 나찌의 추격을 피해 출국하는 마리아와 그의 남편입니다.)




(어쩌다 클림트가 그린 마리아의 백모 아델의 초상화가 비엔나 벨베데어(Belvedere) 박물관에 걸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그림들은 당신 집의 벽에서 떼어져 조심스럽게 벨베데어 궁으로 옮겨졌어요. 
몇가지 사실은 고쳐져야 했지요.  당신 백모의 이름과 유태인이라는 배경 같은 것들이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지나, 그녀는 그저 단순히, "황금의 여인 (Woman in Gold)"으로만 알려졌지요.
그러니까 그녀의 정체성도 함께 도둑맞은 거에요.  당신네 가족을 강탈하고 파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거지요."






(클림트가 아델 백모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델 백모는 1925년 젊은 나이에 병사하여, 오스트리아가 나찌판이 되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 재판이 과연 미국 법정에서 열리는 것이 절차적으로 옳은 일인가에 대한 심리가 미국 대법원에서 열리게 됩니다.  이 심리에 미국 정부 대표가 출석하여, '이런 과거사에 대한 재판을 소급적용하여 하게 되면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일본 등 많은 외국 정부와 소송이 빈발할 것이므로 미국의 외교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며 각하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거기에 대해 대법원 판사가 조롱조로 이야기합니다.)

판사 : "그러니까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은 알트만 부인이 그림 반환 소송을 하게 되면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그 소송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
미국 정부 대표 : "예, 그런 결과도 가능합니다."
판사 : "알트만 부인, 그러니까 부인의 소송이 제기되면, 세계 외교 관계가 붕괴될 것인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부인이 져야 한다는군요."
(판사, 마리아, 방청객 모두 웃습니다.)






(노년의 마리아 역을 맡은 헬렌 미렌입니다.)




(오스트리아 측은 고령인 마리아가 늙어죽을 때까지 소송을 질질 끌 작정입니다.)

랜디 : "그들은 절차적인 이유를 들어 이 사건을 기각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그건 '질질 끄는 것이 진짜 목적입니다'라는 것을 포장해서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마리아 : "이 소송건이 재판에 회부되기 전에 내가 늙어죽기를 바라고 말이지 ?"
랜디 : "바로 그거지요."
마리아 : "흠, 그렇다면 아주 장수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보답해야겠네."







(긴 소송에 지친 랜디와 마리아가 오스트리아 박물관 측에 '협상'을 요청합니다.  내용은 적절한 보상과 함께, 그 그림이 강탈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박물관 측 박사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 것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보상금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비엔나에서 열린 최종 심의회에서, 랜디가 마리아에게 그림을 반환해줄 것을 요구하며 다음과 같이 오스트리아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이 나라를 몇차례 방문하는 동안, 저는 2개의 오스트리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찌 희생자들에게로의 반환을 거부하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리아 내 유태인들에게 저질러진 불의를 인정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오스트리아가 있습니다.

(중략)
신사숙녀 여러분, 그러므로 이 자체로서, 이 순간이 역사의 한 장면이 됩니다.  과거가 현재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순간이지요.
오랜 과거에, 바로 이 벽 밖에서, 끔찍한 일들이 행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인간으로 다루지 않고, 박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고, 전가족을 몰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훔쳤지요.  재산과, 생명과, 그들에게 소중했던 것들을요. 
그 희생자들 중에는 여기 제 소중한 친구의 가족인 블로흐-바우어 가족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오스트리아 국민이자 인간으로서의 여러분들께 부탁드립니다.  과거의 과오를 인정해주십시요. 
단지 마리아 알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스트리아를 위해서요."






(배우들입니다.  맨 오른쪽이 오스트리아의 양심파 기자 후베르투스 역을 맡은 배우입니다.)





(저 후베르투스 역을 맡은 배우는 어디서 봤나 싶었는데, 전에 소개드린 바스터즈 영화에서 여주인공 쇼샤나를 짝사랑하는 독일군 저격병이더군요.  원래 진짜 독일 배우인가봐요.)



(후베르투스(Hubertus)라는 이름의 오스트리아 1인 잡지사 기자가 이 소송 내내 마리아와 랜디를 자원하여 돕습니다.  왜 이렇게 자신의 조국으로부터 제1급 국보라고 할 수 있는 클림트의 'Woman in glod'를 가져가려고 하는 유태계 미국인들인 자신들을 돕는지에 대해, 후베르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 아버지는 아주 대단한 분이셨어요.  제가 어릴 때, 저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숭배했지요.  커서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어요.
제가 15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나찌였다는 것을 알았지요.  제3 제국의 열렬한 추종자였어요. 
저는 평생, 아버지가 저지른 죄악을 보상하려고 애쓰며 살았어요. 
매일, 제 자신에게 묻지요.  그는 어쩌다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요.  그리고 매일, 어떻게 하면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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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지가 친일파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아버지나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지의 잘못일 뿐, 그 후손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런 추악한 과거를 감추려 드는 것을 넘어서,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건 마치,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다시 외세에 붙어 나라를 팔아먹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동아 전쟁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 강제 동원 따위는 없었다, 일본은 희생자다' 이런 말들은 일본인 자신들을 당장은 기쁘게 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반성을 모르고 미래를 같이 할 수 없는 믿지 못할 족속이라는 인식을 주변국들에게 주는 자살골이라는 사실을 일본인들도 인식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 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추악한 일들, 베트남에서의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합니다.  추악한 우리의 과거도, 분명히 우리의 일부입니다.  감추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두번 다시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후세를 제대로 교육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합니다.




P.S.------------------------


드디어 귀국했습니다 !  집에 오니 너무 좋군요.  그러나 다음주부터 사무실에 출근할 생각하니 그건 또.... 좋네요...  너무 좋아서 죽겠네요 ㅋ


작은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1.  제 보잘 것 없는 블로그는 보통 하루 방문객이 1천명 내외, 새글이 올라올 때는 한 1300 정도까지 올라가는데, 다들 어떻게 들어오시는지 궁금합니다.  다음 블로그가 관리 측면에서는 기능이 부족하여, 어떤 경로로 들어오시는지 잘 파악이 안되더라고요.  혹시 댓글로 어떤 식으로 들어오시는지, 가령 검색으로 들어오셨는지 아니면 그냥 즐겨찾기 해놨다가 며칠에 한번씩 들어오시는지 등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다른 좀더 블로그질에 더 나은 플랫폼이 있다면 그쪽으로 블로그를 옮겨볼까도 생각 중입니다.  페이스북은 아닌 것 같고... 티스토리는 어떤가 싶은데, 거긴 어떤가요 ?   보니 티스토리는 초대장이 있어야 가입이 되던데, 혹시 가능하신 분은 제게 초대를 해주실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한메일의 nasica88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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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쯤 전에 서양 근세와 관련한 검색어로 구글 검색을 통해 발견한 뒤, 외운 블로그 어드레스를 주소창에 항상 직접 입력하는 방식으로 주 1회 정도 다니고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지금의 쓰래기같았던 시절이 아닌, 물론 그때도 문제는 많았지만)에 주기적으로 나폴레옹 시대 연재물을 올려주셨을때부터 봐왔습니다. 블로그 주소도 간단해서 그냥 생각날때마다 주소창에 직접 쳐서 들어갑니다. nasica의 뜻이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네요.
처음에 어떻게 들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음식 카테고리 어딘가였을 것 같습니다...ㅎㅎ 이사무님 글에 얽혀서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즐겨찾기에 올렸고 계속 유지 중입니다. 검색이 필요할 때는 nasica로 검색합니다.

일일이 흔적을 남기진 못하고 있지만 글 한편 한편을 읽을 때 마다 언제나 nasica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족 모두 행복하길 바랍니다.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물론 책 나오면 사주시겠다는 공허한 약속 말고, 그냥 제 계좌로 성의 표시를 보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만, 아직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므로 먹고 살만 해서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됩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보내주십시요.
검색을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요, 이제는 즐겨찾기해놓고 며칠에 한번씩와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나폴레옹관련글을 찾다가 우연히발견했어요
내용이 너무 좋구재미있네요 관런글을 베밀(유용원의 군사세겨에 올려주시면 많은 ㅅㅏ람들이 관심을 가질것 같아요
눈으로만 읽고 글을 안 남겼는데 처음으로 로그인하고 글을 남기네요
전쟁사를 좋아해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됐고요
그이후로는 즐겨찾기 해놓고 시간이 날때마다 들어옵니다.
이제야 글을 남기게 되어서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
좋은글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
저는 ppss에서 글을 접한 뒤 최근에 모바일 바탕화면에 링크걸고 2주에 1회 정도 와서 글을 읽곤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ㅎ
저는 나폴레옹의 장군들을 검색하다가 들어와서 그때부터는 즐겨찾기 해놓고 일정정도 시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들어 옵니다.
다음에서 나폴레옹검색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8월정도까지는 나폴레옹 검색시 첫화면에 떳는데. 이후부터는 첫화면은 커녕 몇페이지를 넘어가야 나옵니다. 아마 유입량에 차이도 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역시 처음 방문은 엔하위키 미러를 통해 나시카님의 글을 알게되었습니다. 염장고기와 건빵 자료에 나시카님의 글이 링크되어 있더라구요. 마침 그때 옛날군대는 어떻게 식료품을 보급했을까 하던 궁금증이 어느정도 풀렸습니다.
예전에 나폴레옹 관련 글 검색으로 알게 된 후, 즐겨찾기 해 놓고 수시고 방문 중입니다.
좋은 글들, 항상 감사합니다.
즐겨찾기 해놓고 일주 1~2번정도 들어와서 업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밌고 유익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폴레옹으로 우연히 들어온 뒤에 즐겨찾기 해놓고, 매주 2-3회 정도 방문하고 있습니다.
잘려고 누웠을때나 잠이 안올때 주로 방문하며,글 내용과 나시카님의 식견이 너무나 좋아 다 읽으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이야 북마크가 되어있으나, 없을땐 나시카나 나폴레옹으로 검색하면 잘 안나온다는 부분이고(저도 보고싶어서 찾는데 찾질못해 안타까워한적이 몇번 있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컨텐츠가 널리 읽히지 못하는게 안타깝습니다.

태그나 검색을 조금더 활용하시면 좀 더 나을것 같은데 인기순위로 되어버리니 힘들어보이네요.예전 레미제라블 관련글은 추천블로그글에도 올라가고 링크도 걸리고 했었는데요.
다음블로그는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네이버블로그를 함께 운영하시면 분명 도움은 될것 같은데 나시카님이 귀찮아지시니까요^^

제가 아는 블로그중엔 최고인데 확실히 질에 비해서 방문자 수가 적어보이긴 합니다.
제가 해드릴수있는건 꼭꼭 누르는 추천뿐.
그리고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해 주셔서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굽시니스트 님의 트위터에 링크가 걸려있길래 들어왔다가 재미있는 글이 많아서 계속 읽고 있는 방문객입니다.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덧 1. 위의 후베르투스 역으로 나온 배우는 다니엘 브륄이라는, 꽤 유명한 독일 배우입니다.<굿바이 레닌>, <에듀케이터>같은 독일 영화들에도 등장했고, <본 얼티메이텀>이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같은 헐리우드 영화에도 간간이 등장합니다.

덧 2. 티스토리 초대장 여전히 필요하신가요?
티스토리 초대장 이미 확보했습니다. 어쨌거나 고맙습니다.

덧. 본 얼티메이텀에도 나왔던가요 ?
4년 전에 나폴레옹 검색을 통해 처음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이후 즐겨찾기 통해 2,3주에 한 번씩 계속 들어오는 중입니다.
4년 전에 나폴레옹 검색을 통해 처음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이후 즐겨찾기 통해 2,3주에 한 번씩 계속 들어오는 중입니다.
올리시는 글 정알 잘 보고 있는 일인입니다.
저는 제폰에 북마크 해놓고 매일들를때도 있고 며칠만에 들를때도 있어요.
유익하고 재미있는 글 계속 부탁드려요.
우리에게 알프스의 그림 같은 풍경, 영세 중립국,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비엔나커피 같은 달달한 요소로만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는 사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가장 협력한 국가였음은 물론, 유대인 탄압에도 가장 앞장선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안쓰럽다고 여겨질 만큼 철저하게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과는 달리 전쟁 직후에는 우리도 피해자 고스프레와 모르쇠로 일관하다 이후에 좀 살만해진다 싶으니 우리가 뭘 어쨌는데?로 나오며 완전 극우주의를 달린 국가였습니다(유럽의 일본...)

그러니 영화와 같은 저런 사례가 나오는 게 지극히 당연하죠..

나치 출신임에도 입 싹 닦고 UN 사무총장까지 지낸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은 두말할 것도 없고 몇 년 전에 게이 남친 만나러가다 교통사고로 죽은 외르크 하이더 캐른텐주 주지사도 친나치성향에 극우주의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죠.
현재 일본에서 망언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극우정당 일본유신회를 이끌고 있는 것처럼 외르크 하이더도 온갖 망언들을 쏟아냈고 오스트리아 국민들을 그를 열렬히 지지하였습니다(이 인간,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교양이 넘쳐나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_-;;)

그가 세운 오스트리아 자유당이 주장하는 것은 나치의 히틀러가 주장한 범게르만주의였고 그 당수 하이더는 철저한 극우 파시스트였으며 아버지는 나치 돌격대 대원, 어머니 역시 나치의 부인조직 간부였으며 하이더의 전임자로서 자유당을 20여 년간이나 이끌어온 전 총재 프리드리히 페터는 나치 친위대 출신이었죠.
그래도 인종주의의 개발자인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다르고 나치 독일에 강제로 통합됐으므로 오히려 나치즘의 희생자였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는데요.

유대인 학살의 선두에 선 나치 친위대(SS) 자원자 40%는 바로 오스트리아인이었고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은 오스트리아인들 자신들의 국민투표로 결정됐으며 그것도 아주 열광적인 지지로 이뤄졌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후처리과정에서 오스트리아는 전범국으로 간주된 독일과는 달리 연합국 진영에 의해 나치 독일에 의한 피해자로 간주되었고 냉전 하에서 영세중립국을 선택한 대가로 전쟁배상 책임은 물론, 역사적 죄의식도 완전히 면제받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뉘른베르크 재판과 같은 전범재판도 벌어지지 않았고 나치 부역자 청산도 없었으며 나치 잔재 청산 따위도 없었습니다.

이후 패전 직후 좀 잠잠하던 나치 망령은 다시 부활했고 이는 과거 일본이 패전 직후 아베의 할배, 기시 노부스케 같은 전범까지도 총리를 해먹으며 돌아온 것과 같이 나치 부역자들도 고스란히 돌아와 국가 지도층에 자리 잡는 결과를 낳았으며 더 심각한 것은 오스트리아인 자신들은 이러한 극우주의에 대해 별 심각한 위기위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스트리아가 얼마나 골 때리냐면 오스트리아판 야스쿠니에 해당하는 시설까지 있는데 울리히스베르크(Ulrichsbergg)라는 산에 있는 무너진 교회로 여기에는 오스트리아계 나치 친위대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들이 벽에 쫙 붙어 있는 것은 물론, 매년 기념행사도 열리고 있고 오스트리아 군은 이 행사에 대표단까지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몇년전부터 나폴레옹전쟁 고증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정보검색 도중에 블로그를 찾게 되었는데, 약 12년도쯤 부터 방문하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제 보잘것없는 학식이 조금이나마 넓어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항해시대 때의 유럽, 아랍 역사를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ㅎ 이런저런 검색으로 대항해시대 역사를 종종 검색도 하는 와중에 나폴레옹 시대를 연재하시는 나시카님 사이트 들어와서 첫글부터 보다 현재 몇 달이 지나서 여기까지 읽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