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6. 3. 13. 19:03

지난 편에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카알 대공의 지휘 하에 군대를 개혁하며 나폴레옹에게의 복수전을 준비하는 오스트리아 내부의 상황을 보셨습니다.  카알 대공의 입장은 아직은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으나, 파리에서 메테르니히가 가져온 소식과 함께, 아름다운 티롤에서 날아온 소식은 오스트리아 주전파들의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습니다.  과연 어떤 소식이었을까요 ?




(티롤 지방입니다.  과거부터 독일-오스트리아 지방과 이탈리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지금은 남부 티롤은 이탈리아 땅입니다.)



먼저 지난 몇년 간 티롤 지방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 보시지요.  티롤은 독일어권이면서도 산악 지방에 위치하여 오스트리아와는 다른 전통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4세기 이후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아온 티롤 지방은 산악 지방 특유의 폐쇄성과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령 스위스도 무척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지요.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와 카톨릭으로 찢어져 대립한 스위스와는 달리, 티롤은 카톨릭을 굳게 지켰고, 카톨릭의 수호자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해 종교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민족을 다스리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각 민족별로 자신의 전통을 지키고 어느 정도 자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산악 지방이라서 어차피 인구도 적고 생산물도 많지 않았던 티롤에 대해, 합스부르크 왕가는 세금도 그다지 무겁게 부과하지 않았고 또 독일권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시 병력 차출 등에서도 꽤 너그럽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엔나와 티롤의 관계는 마치 부모 자식 사이처럼 우호적이었습니다.





(티롤이라는 지방명은 원래 사진 속 티롤 성 Schloss Tirol 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대로 티롤 지방을 다스린 백작의 거주지가 저 티롤 성이었습니다.  저 성은 현재 이탈리아 땅에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하고 이탈리아가 승전하는 바람에, 남부 티롤이 이탈리아 땅이 되었거든요.)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는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나폴레옹이라는 희대의 괴물에게 참패를 당했고, 그 결과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티롤 지방을 통째로 바이에른(Bayern, 영어식으로는 Bavaria) 왕국에게 양도해야 했습니다.  나폴레옹 편에 붙은 독일 민족의 배신자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Maximilian I Joseph)에 대한 두툼한 보상이었지요.  바이에른을 민족 배신자로 부르는 것은 사실 부당합니다.  바이에른 공국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로이센의 호헨촐레른 가문 사이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급급하던 입장이었고, 따라서 그런 동네 덩치들을 단숨에 때려눕힐 전국구 형님인 나폴레옹에게 붙은 것은 국가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인생은 줄서기라는 것을 보여준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1세입니다.)



알고 보면 바이에른을 친프랑스주의로 이끈 것은 막시밀리안 1세라기보다는, 그의 수상인 몬트겔라스(Maximilian Josef Garnerin, Count von Montgelas)였습니다.  몬트겔라스는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에서 태어났으나, 사보이 공국 출신인 아버지 영향으로 프랑스 낭시 및 스트라스부르에서 공부한 프랑스파였습니다.  심지어 독일어보다는 프랑스어를 더 능숙하게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젋은 시절 그를 사로잡은 것은 당시 프랑스를 휩쓸던 계몽 사상이었습니다.  그는 바이에른 내의 계몽주의 비밀 결사이던 일루미나티(Illuminati, 영화에 나오는 그 일루미나티와는 좀 다름)의 멤버이기도 했답니다.  그는 바이에른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프랑스 계몽주의를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가 모시던 막시밀리안이 바이에른 공작이 되자 적극적으로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바이에른 일루미나티는 계몽주의에 근거하여 바이에른을 근대화하기 위한 비밀 결사였습니다.  그들의 상징은 지혜의 상징인 미네르바 여신의 새인 올빼미가 책 위에 앉은 것이었습니다.  좋은 모임인데 왜 비밀 결사냐고요 ?  계몽주의에 따라 나라를 개혁하면 지배층에서 싫어하거든요.  실제로 몬트겔라스도 처음 얻은 직장이 바이에른 정부에서 출판 및 언론을 검열하는 직책이었는데, 일은 잘 했으나 알고보니 일루미나티 소속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빨갱이로 몰려 쫓겨나야 했습니다.)




그는 바이에른 최초의 근대적 헌법을 통과시켰고, 그때까지 남아있던 중세 농노 제도의 잔재를 철폐하는 등 온갖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면세 혜택을 받던 귀족과 성직자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범죄 용의자에 대한 고문 금지, 의무 교육 제도 도입, 백신 강제 접종 등 바이에른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편을 잘 골라 나폴레옹 편에 선 덕분에 제3차 대불동맹전쟁의 당당한 승전국이 되어 과거 상전으로 모시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티롤을 통째로 뜯어냈으니 정말 대단한 정치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뮌헨에 세워진 몬트겔라스의 동상입니다.  2005년에 세워진 관계로 좀 과하게 현대적이지요.  그는 근대적인 개혁적 정치를 펼쳐 19세기 초 가장 성공적인 독일 정치가로 뽑힙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똑똑한 내가 독재를 하는 것이 낫다"라며 의회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등 독재자스러운 면모도 있었습니다.)



티롤로서는 헌법도 없이 구태의연한 전제 정치를 휘두르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벗어나 근대화된 입헌 군주국으로 들어가게 되어 기뻐해야 했을까요 ?  티롤이나 바이에른이나 모두 독일어를 쓰는 지방들이었고, 종교적 배경도 둘다 카톨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민족, 이교도들의 지배라고도 할 수 없었으므로 티롤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더 이로운 바이에른의 통치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티롤 주민들은 바이에른의 근대화된 통치에 대해 심기가 매우 불편했습니다.  왜 티롤에서는 그런 반-바이에른, 반-프랑스 정서가 들끓었을까요 ?  바로 교회 때문이었습니다.  티롤 주민들은 자신들의 종교 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생활까지 통제하던 교회에 대해 그야말로 종교적인 신심을 가지고 복종하는, 보수적인 산악지방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이에른의 근대화된 통치는, 비단 티롤 내 교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바이에른 본토 내에서도 필연적으로 종교와 사회를 분리하는 세속주의(secularism)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이 대다수인 바이에른 내에서도 개신교도들에게도 완전한 시민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배척받던 유태인들의 권리까지 상당 부분 인정해주었습니다.  사제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했을 뿐만 아니라, 바이에른 내의 많은 수도원의 재산을 압류하여 국가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티롤에서는 그런 것들 뿐만 아니라, 각종 종교적 지방 전통 축일을 폐지하고, 교회의 타종이나 종교 행렬 등을 금지시켰습니다.  특정 종교 행사가 국가적 행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세속주의란 무엇인가?  1. 종교와 국가의 엄격한 분리  2. 다양한 종교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법 앞에 평등한 것)








(세속주의라는 것이 위와 같은 것이라면, 현대 사회는 당연히 세속주의를 채택하고 있겠지요.  그런데 가령 동성애나 낙태, 이슬람권 외국인 노동자 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입장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는 세속주의가 맞는가에 대해 약간 망설이게 됩니다.  가령 개신교의 반발로 개신교 성직자들에 대한 소득세 과세가 안되고 있다는데, 이것이 세속주의인가요 ?  흠...)




티롤 주민들은 그것에 대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동요했습니다.  가령 외부 사람들이 볼 때 신정일치인 일부 이슬람 사회의 주민들은 숨막히는 이슬람 율법에 얽매여 비참한 비근대적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슬람 사회에 외국이 개입하여 이슬람 지도자들의 권한을 제한하고 이슬람 모스크에 재산세를 부과하여 그 세수를 가지고 여자 아이들을 포함한 전국민에게 의무 교육을 실시한다면, 과연 이슬람 주민들이 좋아할까요 ?  아니라는 것을 최근 중동 역사를 보면 아실 겁니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슬로안(Sloan)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결국 바이에른의 이런 제도 개혁은 티롤 주민에게도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나, 티롤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근대화보다는 그저 자신들이 수백년간 지켜온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원래 정치나 개혁이나 모두 결국은 해당 국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옳은 길이고 또 국민을 더 위하는 길이라고 해도, 국민의 수준이 떨어져서건 정책을 만드는 지도자의 판단이 틀린 것이든, 국민들이 싫어하면 다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중세시절에 머물고 있던 티롤 주민들에게 충분한 기간 동안, 가령 10년 넘게 교육부터 시켜서 인식을 개선한 뒤에 근대화 조치를 취했다면 모르겠으나, 바이에른의 개혁적 독재자인 몬트겔라스의 조치는 티롤 주민들의 반발만 불러 일으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학교에서 이슬람권 여학생들이 히잡을 쓰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 영역에 속하는 학교에서, 특정 종교의 상징을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도 당연히 금지됩니다.   미국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Merry Christmas"라고 못하고 "Happy Holidays"라고만 말하지요.  히잡이나 부르카 등 여자의 신체적 자유를 억압하는 이슬람 전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슬람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 사진 속에서처럼 "왜 이슬람 전통을 억압하냐" 라며 학교에서 히잡을 쓰게 해달라고 항의하는 프랑스 내의 이슬람 여성들도 꽤 많습니다.  플래카드 내용은 "베일, 즉 히잡에 반대하는 법인가 아니면 이슬람에 반대하는 법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거기서 그쳤다면 티롤도 바이에른의 통치와 근대화를 위한 노력을 결국엔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이에른이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고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강대국이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바이에른은 어디까지나 좋은 말로는 프랑스의 혈맹, 나쁜 말로는 속국에 불과했습니다.  바이에른은 나폴레옹에게 계속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해야 했으며, 이는 결국 세금 인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10~20%의 세금 인상은 티롤에도 여지없이 적용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자신들의 전통과 교회에 대한 박해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던 티롤에게 세금 인상이란 것은 더욱 큰 원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6세기~18세기 경의 독일 은화인 Thaler 화입니다.  민중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사실 정의나 명분 뭐 그런 것보다도 경제적인 문제가 더 큽니다.)



거기에 결정타가 들이닥쳤습니다.  바로 징집제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을 할 때 바이에른은 그 전장이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는 스페인이건 저 멀리 단치히이건 나폴레옹을 돕기 위한 병력을 뽑아 나폴레옹의 대포밥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티롤 주민들은 오스트리아군에 동원되더라도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자유군단(Freikorps 프라이코어)이라고 해서 일종의 자원 의용병으로 차출되었고, 또 총알밥이 되기 쉬웠던 일반 전열병이 아니라 산악 사냥꾼의 전통을 살려 정찰병이나 유격병 등 좀더 자유로운 병종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의 전면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병력 동원을 지시하자, 바이에른은 티롤에 대해서도 프랑스나 바이에른 국내에서처럼 일반 전열병을 대규모로 징집하기로 하고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오랜 기간 좋은 형님으로 모시던 오스트리아군과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자유군단 Freikorps 라는 것은 독일권의 자유 의용병입니다.  그림 속에서 앞에 반쯤 기댄 자세의 사람이 쾨르너 Theodor Körner 라는 유명 극작가라고 합니다.  나폴레옹에 저항한 자유군단에 자원하여 싸우다 1813년 21살의 젊은 나이로 마클렌부르크에서 전사했습니다.)



이미 끓는점을 넘고 있던 티롤은 대대적인 병역 거부와 탈출로 이에 대응합니다.  전운이 무르익던 1809년 3월 12일, 티롤 악삼스(Axams)에 주둔한 바이에른군 진영으로 소집될 예정이던 청년들이 인근 도시인 인스브루크(Innsbruck)로 집단 도주하는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이들이 인스부르크로 도망친 것은 인스부르크에 요세프 호마이어(Joseph Hormayr)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마이어는 인스브루크 출신의 티롤 귀족으로서, 오스트리아 외무부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었고, 특히 프란츠 1세의 친동생인 요한 대공(Erzherzog Johann Baptist Joseph Fabian Sebastian von Österreich)의 비서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그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요한 대공은 제2차 대불동맹전쟁 때 희대의 대패전이었던 호헨린덴(Hohenlinden) 전투의 형식적 총지휘관이었고, 제3차 전쟁에서는 티롤 지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 요한 대공은 이제 바이에른에 대한 반란을 계획 중이던 티롤 주민들에게 동정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반란 지원을 기대하고 있던 티롤 주민들은 당연히 호마이어를 통해 요한 대공에게 줄을 댔습니다.  이미 1809년 1월, 티롤 주민들의 비밀 대표단이 비엔나를 방문하여 반란 지원을 호소했고, 이 사건은 그렇쟎아도 전쟁 쪽으로 결론을 내리던 비엔나 궁정을 더욱 전쟁 쪽으로 기울게 했습니다.  따라서, 티롤의 반란은 인스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친오스트리아파 호마이어의 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다루겠습니다만, 결국 제5차 대불동맹전쟁은 오스트리아가 1809년 4월 9일, 바이에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그 표면적인 이유는 원래 티롤의 자치를 허용하게 되어있던 프레스부르크(Pressburg) 조약을 바이에른이 위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마이어의 초상입니다.)



이래저래 티롤은 이번 전쟁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고, 티롤의 저항은 당연히 귀족이자 지식인이며 애국자인데다 비엔나 궁정에서도 인정하는 티롤의 지도자인 요세프 호마이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호마이어 자신은 그렇게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티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티롤 내에서의 싸움도 전혀 엉뚱한, 귀족도 아니고 배운 것도 없는 여관집 주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치루어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보시겠습니다.


1등이라 처음 댓글 달아봅니다 몇 년 째 보고있는데 요즘 빠른연재 감사합니다
티롤, 인스부르크 여행 버킷 리스트에 올라 있는 지역인데 여기도 바이에른의 영향권 아래 있던 지역이었군요.
페북친구가 되니 업데이트 소식을 빨리 알게 되어서 참 좋네요~^^
5차 대프동맹 개전일이 공교롭게도 제 생일이군요. 찾아보니 이 날의 전쟁사도 참 만만찮던데, 역시 전 태생적 밀덕임이 분명한 듯 합니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안 되는 상황에서 무턱대도 선진 제도와 사상을 도입해 봐야 망할 따름이죠. 같이 혼란스럽긴 해도 군부 잔당의 독재가 존속중인 이집트가 그나마 구 독재 정권이 붕괴된 중동 국가들보다 사정이 나은 걸 봐도요.
데헷 미리 생일 축하드려요
사람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안 되는 상황에서 무턱대도 선진 제도와 사상을 도입해 봐야 망할 따름이죠. 같이 혼란스럽긴 해도 군부 잔당의 독재가 존속중인 이집트가 그나마 구 독재 정권이 붕괴된 중동 국가들보다 사정이 나은 걸 봐도요

->>박정희가 독재를 한이유이기도 하지요.
알타리무님 말씀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4.19 의거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국민들에게... "너희들은 미개하니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고 독재가 딱 어울린다" 라는 것은 부적절해 보여요. 세계 어떤 나라도 처음부터 혼란없이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는 없습니다.

그 나라의 국민이 민주주의라는 선물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선진국의 식민지 노릇이나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그래서 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 친일파들이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일관성은 있네요.
데헷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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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박정희가 그렇게 생각했다는거지. 박정희의 생각에 저도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가 원래 한국인은 독재를 해줘야한다라고 생각을 했었는지,

아니면 지금시기의 한국인들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하는데 무리가 있으므로 당분간은 나 박정희가

나서서 한시적으로 독재를 해줘야한다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중에 친일파가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일관성은 있네요라고

말씀하셨는데...

확실히 보수들도 단순히 부정부패와 기회주의의 화신이라서 보수인것이 아니고 나름 사상적일관성은

어느정도 띠는것 같습니다.

정치제도의 개선보다는 경제문제의 해결에 더 초첨을 맞추는 경향도 있고,

분배보다 성장에 더 우선점을 두고,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매우강하기 때문에

강한 사람과 강한나라는 노력을 많이 한 성숙한 사람과 나라이고

약한 사람과 약한나라는 노력을 적게 한 비성숙한 사람과 나라라는 생각으로 자연적으로 흐르고,

그렇게 생각하니 일본지배 전후를 보면 조선반도가 경제적으로 발전(연평균 5%남짓의 낮은 경제성장이긴 하지만)

했으니 경제성장위주의 역사인식으로는 당연히 긍정적으로 보이고,

일본은 노오력을 해서 메이지유신을 하고 조선은 노오력을 못 해서 개화를 못했으니,

당시 일본이 당시 조선보다 더 좋고 성숙한 국가임이 분명하고,

그러니 당시 일본이 조선지배한것도 거부감이 덜하겠지요. 뉴라이트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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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무님... 뭐라고 해야 할지, 참 걱정됩니다.
나시카님의 설명에 동감합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조선왕조가 계속되왔던 필연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박정희덕에 우리가 그나마 이정도 수준의 삶을 누리는 것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입니다. (국민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분께...히틀러나 마오쩌동이나 시리아의 아사드가 하는 짓을 보면 지도자가 8할은 먹고 들어갑니다. 국민이 얼마나 뛰어나든 지도자가 개판이면 나라가 망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

우리가 박정희를 겪었던것은 어쩌면 성숙한 사회를 향하기 위한 trial & error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때 민주주의 주장했으면 역적으로 몰렸고 처형되었겠지요. 이런 군주제를 겪다가 세계가 변하는 것을 일제 강점기와 박정희를 통해서 배웠고 그들이 물러나자 그들이 세워놓은 튼튼한 시스탬이라는 몸체위에 머리를 새로 세운게 우리나라라고 봅니다.

만약에 박정희없이 민주주의가 되었다면 십중팔구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허약하고 위험한 나라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은 민주국가이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슬람 극단주의를 신봉합니다. (그리고 이 이슬람 극단주의는 민주주의 폐지하자는게 핵심) 우리가 박정희 때를 통해서 조선시대의 의식이 개혁되지 않았으면 지금의 민주주의가 가능할지나 의문입니다. 세계 여러나라를 보면 일제강점기와 박정희는 필요악이었다라는게 느껴집니다.
저 제가 저렇게 생각한다는것이 아니고 뉴라이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박정희가 국민의 수준에 맞는 통치를 한 게 아니라 국민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통치자를 받아들인 것이죠.
기실 축제나 행사는 저 시대에 "일해라, 오토!" 같은 소리나 들으며 1년을 보내야 했던 평민들에게는
실컷 먹고 마시고 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였는지라... 대략 mbc의 어느 기자라는 작자가
pc방의 전원을 갑자기 내린 경우와 비슷한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트롤 주민들의 축제와 행사를 금지시켰습니다. 트롤 평민들이 트롤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금이나 경제 문제야 뭐... 닭아줌마 찍은 사람들이 요즘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는 것만 봐도....
참고로 장웅닌님의 "일해라 오토!"는 최지룡만화에 등장하는
"일해라 핫산!!"이라는 대사에서 온 드립입니다.

http://blog.naver.com/songh599/220222282444

최지룡만화는 매우 매니아적이지요.


오늘도잘읽고갑니다 감사해요
10등 안쪽이라니... 영광입니다.
원래 딱딱한 내용을 재미있게 쓰시는 필력... 너무 부럽습니다.
오랫만에 댓글 도장 꽝! 나시카님은 대체 이런 자료를 어디서 가져오시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걍 인터넷에서 다 구하실 수 있습니다
근세 유럽을 다룬 게임 유로파 유니버셜리스에서는 티롤에 금광이 있어서 오스트리아의 돈줄인데... 지금도 아니고 18세기에 관광산업으로 먹고 사는 산동네라니 ;ㅅ;
T T 당시 관광산업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쪽 동네 사람들은 대개 목축과 농업으로 먹고 살았을 거에요. 티롤에 은광이 있었다는 것은 들었습니다만, 금광은 아닐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유럽에 큰 금광은 역사적으로 없었습니다. 금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나서 인도와 중국으로 향했지요. 나중에는 남아메리카 대륙이 공급원이 되었지요.
유로파는 원래 유럽에서 만든게임이라 유럽역사에대해서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해놓은 게임인데..

티롤에 있는 것이 금광인가 은광인가? 저도 헷갈려서 찾아봤습니다.

티롤에 있는 인스부르크 은광이 유로파게임속에서 금광으로 표현되어있다라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있더군요..

이말이 사실이라면 왜? 은광을 금광이라고 게임속에서 표현했을까요????
알타리무/아 게임상 일괄적으로 금/은/보석광산은 금광으로 표현됩니다. 유명한 남미의 포토시 광산이나 일본의 이와미 은광도 게임에서는 금광으로 표시되죠. 금광에서 산출되는 금이 엄청난 인플레를 유발하기 때문에 관련 정책이나 조언자가 없으면 금 나오는 식민지 주렁주렁 달린 스페인같은 국가는 게임상에서 흑자파산하는 개같은 사태가 자주 일어납니다...
나시카님 혹시 크루세이더 킹즈 2나 유로파 유니버셜리스라는 게임 아시는지요?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4는 1444년 근세 초입의 유럽과 전세계를, 그리고 크루세이더 킹즈2는 11세기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DLC 사시면 샤를마뉴 시대까지 앞당길 수 있음)시점의 유럽과 중동, 인도인데, 유로파는 철저하게 국가 위주로 플레이하고 크킹2는 철저하게 개인과 가문 위주로 플레이해서 재미를 붙이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한번 해보시고 입맛에 맞으시면 이참에 글 연중 찐하게 한번...
성당기사/ 궁금증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으로하다가 남미 금광에서 산출되는 금때문에 파산당해본적있습니다.
버나드 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에스파니아 제국이 몰락하고 영국이 제해권을 차지하고 대제국을 이루게된것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쳐부쳐서가 아니고(스페인의 경제력을 강해서 그정도 손실은 쉽게 회복할수 있었다 합니다) 남미에서 들어오는 금때문에 인플레이션으로 스페인이 몰락해서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하더군요. 유로파 게임이 사실성이 높긴높은 모양입니다.웬만히 뛰어난실력으로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으면 그냥 실제역사대로 흘러가니...
다시한번 궁금증을 풀어주셔서 성당기사님 감사합니다.
저도 페북을 통해서 업데이트 소식 바로 알게 되니 좋네요. 요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있는데 읽다가 나시카님 필명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게 되는 가외의 소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나시카의 뜻은 뭔가요? 몇년째 오는 불로그인던 아직 모르겠네요..구글링해보니까 스키피오나시카란 사람이있고 이곳쥔장이 코가 뾰쪽해서 쓰는거다 라는 말도 있던데 진실이 뭔지 급궁금..
"코가 긴, 또는 코가 뾰족한" 이라는 뜻입니다. 블로그 제목은 정말 저도 궁금해서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맨 처음 이 블로그 만들던 때에는 구글링해도 정보가 안 나오더라고요. 저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인지 리비우스의 로마사였는지 아무튼 로마인의 이름 관련하여 '신체 특성을 딴 별명이 자주 쓰였다' 라고 하면서 Nasica라는 이름을 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어떤 분인지 기억이 안납니다만 (그 분께는 죄송) 정말 댓글로 알려주셨습니다.
중세부터 유럽에는 돈이 많았던것 같습니다.(정확히 말하면 돈의 종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얼핏 생각나는 것이 탈러, 플로린, 두카도, 리브로, 파운드등등.. 아마 그만큼 화폐경제가 발달했었음을 의미할수도 있겠죠. 개인적으로 유럽인들이 작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좁은 그네들의 영토를 뛰쳐나와 전세계를 지배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끝이없는 물질에 대한 탐욕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나시카님 언제 기회가 되면 화폐의 기원과 종류에 대해서 유려한 필치로 정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중세부터 유럽에는 돈이 많았던것이 아니라 동양과는 비교가 안되게 영주들의 착취가 심해
농민들 아니 중산층도 자기 팔을 잘라 먹으면 배가 부르겠지라고 말할정도로 굶주렸습니다.
그들이 영토를 뛰쳐나와 전세계를 지배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가난을 벗어나 자기들도
식민지에서 귀족들 처럼 살아보려는게 동인이었죠. 한국인들의 간도 이주와 같은데 국가가
무력으로 지원해 주느냐 그렇지 못한가의 차이가 컷겠죠.
당연히 귀족들은 심한 빈부 격차로 더 부유했고 식민지 개척으로 화폐 경제도 발달했겠지요.
유럽 대륙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가장 큰 이유가 스테이크라는걸 먹어볼수 있다는거였다니....

1.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특히 제3세계 국가의 안정, 발전, 민주화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강력한 권력체제가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 좀 시끄럽겠지만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2. 어떤 사회가 제도, 정치 및 의식 수준이 선진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안정도가 크게 좌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Nasica님이 언급한 스페인이나 티롤 지방의 경우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사회 체제인데, 이들의 산업 및 경제 수준이 빈곤하다는 상황을 감안해 볼 때 프랑스와 같은 계몽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중동의 민주화의 봄과 그 이후의 결과 등을 살펴 보면 경제 문제와 사회 발전이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는 하나의 정치 세력이 다른 정치 세력으로 교체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와 자식의 밥상에 있다는 얘기도 있지요.

3. 과거의 예를 참조를 할 때, 식민지를 벗어난 국가들이 초반에 빠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세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남북아메리카(1위 아르헨티나 2위 미국)였으며, 20세기 초에는 통일 독일 제국이 그 자리를 이어 받았지요. 1950년대엔 세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아프리카였으며, 한국은 해방과 동시에 전쟁을 겪었지만 이승만 행정부 말기인 57년 이후 고속 성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식민지 폭정에서 해방된 나라들은 길든 짧든 독립 이후 경제적 전성기를 한 번은 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4.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권위주의 국가 체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다른 중동지역이나 남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후진국으로 남아있는 반면 한국, 대만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루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 중 권위주의 체제를 가지지 않은 국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인도, 노르웨이 정도입니다. 이들 중 인도를 제외하면 권위주의 체제를 거치지 않은 국가들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선진 국가들입니다. 대부분 식민지 체제에서 독립한 국가들이 군사 독재 정권 또는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성공한 케이스는 한국과 대만 뿐입니다. 나머지 국가들의 경우 권위주의 체제가 사회 혼란을 야기하여 발전의 기반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에 있는 국가들은 여건 자체가 잘된 잘 사는 국가 아니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 노르웨이는 북해 석유 개발 이전까지 어업 국가에 불과하였으며(아문센이 영국의 스콧과 남극점 경쟁을 펼칠 때 국가적으로 아무 지원이 없었던 것도 경제적 사정도 어렵거니와 영국의 눈치를 봐야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감자 마름병으로 인한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여기에 고향을 등진 이민자들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하는 어려움을 겪었지요. 영국은 아일랜드를 ‘하얀 흑인’이라고 비꼬기까지 했지요. 아일랜드는 무려 900년동안이나 식민지 상태를 견뎌야 했으며, 이는 인도보다도 오래된 기간이지요.(지금은 아일랜드의 국민소득이 영국보다 높습니다.) 저성장과 빈곤의 근원인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의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지 권위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입니다.

5. 우대형 교수는 논문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적 기원”을 통해 60여개의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들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이들의 경제 성장의 원인을 실증 분석한 바 있는데요. 결론은 1) 역사적인 전통, 특히 과거의 기술수준이 이들의 경제 성장과 강한 연관이 있다는 점, 2) 식민지 기간이 짧을수록, 그리고 독립한 년도가 빠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점, 즉 식민 통치는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점, 3)1960년의 교육 수준이 그후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의 경제 성장도 이 부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경제 성장을 볼 때 한국이 고속 성장을 한 것은 과거의 문화적 전통에 따른 높은 교육열과 그에 따른 교육 수준이 그 원인이며, 식민지 기간은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지요. (다른 국가 데이터를 봐도 60년대 이후 평균 초등 교육 이수율이 95% 이상이 되는 국가는 한국 외엔 찾기 힘들겁니다.). 또한 차명수 교수의 “한국의 고도 성장은 산업정책의 결과인가”논문에서는 세계 41개국의 데이터를 비교 분석하였는데, 관세율과 정부의 재정지출 등 정부의 입김이 강하면 강할수록 경제 성장에 (-)로 작용하며, 교육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경제성장에 긍정적 효과가 있음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한술 더떠 IMF는 2001년에 출간된 IMF의 "The Silent Revolution”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한국 외환위기를 다루었는데, 당시 외환위기는 (박정희의) 미봉책과 80년대초 위기 재발로 이어졌으며 주원인은 박정희의 무리한 중화학공업 정책이었으며 중화학공업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화를 무리하게 팽창시키고 재정지출을 크게 확대한 결과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인플레이션이 심화됨은 물론 더욱 큰 국제수지 적자를 유발하여 외환보유고 고갈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기술한 바 있지요. 이후에 벌어진 사회적 상황은 많은 분들이 다 아시는 바 그대로입니다.

6. 이렇듯 신생 사회 및 국가가 발전을 위해 권위주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명제는 이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동시에 한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은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가능했다기 보다는 국민들의 교육 수준 및 전통적인 문화 체제가 뒷받침하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는게 맞다고 봅니다.
1)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노르웨이를 일반적인 비유럽 식민지들과 비교하는 것은 좀 많이 아닌 것 같습니다. 5, 6번에서 말씀하셨듯이, 교육 수준과 문화적 바탕은 국가 운영과 경제 성장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들 국가들이 초기에 다소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지는 몰라도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문화 및 사회 경험은 영국 및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식민지에서 독립한 다른 나라들이 정치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를 겪은 것은 사회적 경험 및 문화적 문제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전적인 이유라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의 문화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빠른 속도로 변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은 (아마도 농경의 영향일 것으로 봅니다만) 국가 형성의 경험이 오래되었습니다. 반면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이란이나 이집트 등은 예외겠습니다만)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국가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체로 뛰어난 지도자가 나오면 그 지도자 개인에게 복종하다가 그 사람이 죽고 나면 해체되는 식이었고, 국가 체제 자체에 소속감과 충성심을 갖는 개념이 뿌리박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보편적 정의보다는 남을 희생시켜서 내가 살아남는 것이 중시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상황이 악화될 수 있는 사막에서, 다른 사람들도 언제든지 나를 없애고 살아남으려고 할 수 있고 이를 객관적으로 심판할 중앙 정부가 없다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 지역의 사회관을 보여주는 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와 나의 형제는 우리의 사촌과 대립한다. 나와 나의 형제, 나의 사촌은 이방인과 대립한다." 이 점은 유럽에 있는 아랍인 공동체들이 문제가 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의 법과 사회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관념 자체는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그 나라 사람들'은 '나와 나의 형제, 우리의 사촌'이 맞서야 할 이방인들일 뿐입니다. 그 나라의 질서에 복종? 아니죠. '우리'는 그들에 맞서는 게 당연한 일이 됩니다. "당신들이 우리 입장이라면..." 그런 건 애당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쪽이 이기는가의 문제일 뿐이니까요.

이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이들 국가에서 권력자들이 국가 전체를 바탕으로 하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 자기네 친척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누가 어떤 자리를 차지할지를 혈연관계에 따라서 결정하는 행태 때문입니다. "나와 나의 형제는 우리의 사촌과 대립한다. 나와 나의 형제, 나의 사촌은 이방인과 대립한다." 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행태가 우리나라에서와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지배층의 친척들이 이권을 챙겼다고 해도, 중동 국가들처럼 친척관계에 따라서 국가와 사회의 '자리'가 결정되는 모습은 군사정권은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없었습니다. 고려도 아니고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판입니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과연 "노르웨이는 어업 국가에 불과했고 아일랜드는 기아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였다" 정도의 경제적 문제 정도로 '여건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유럽 국가들과 많은 비유럽 국가들의 여건은 결코 비슷하지 않았습니다.

2) 식민지 경영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역설하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론은 몇십년 전에 관뚜껑에 못질한 주장 아닙니까?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라면 모를까 "종합적으로 보면 식민지배를 받은 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으로 아는데요. 요즘 또 한국에서 누가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인지요.

3) 권위주의를 어떤 의미로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야 대체적인 의미는 압니다. 하지만 예컨대 싱가포르와 태국 중에서 어느 쪽이 권위주의입니까?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성공한 경우는 한국과 대만 뿐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싱가포르와 현재의 중국 등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 의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중국도 지금같은 독재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가능하고 그건 사실 저도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지만, 현재의 중국을 '성공'에서 제외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권위주의'에서 제외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4) 정부의 관여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한다는 그 연구는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과거 대한민국에서 정부가 경제에 관여한 부분은 관세율이나 재정 지출만으로 측정할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원래는 기업들이 전담해야 할 경제 운영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부분이 핵심이었지요.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 계량화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하듯이 규제 갯수만 가지고 규제가 많다 적다를 말하기도 어렵고 말입니다. 무리한 중화학공업 추구로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도 정부가 나서서 중화학공업을 추구한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추진 과정에서 운영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한정해야 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부의 재정 지출과 경제성장 사이에 마이너스의 상관관계가 있다면, "정부의 재정 지출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보다는 "경제성장이 낮을수록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려 한다" 쪽이 보다 일반적인 해석이 아닐까요.
1. 우선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를 사례로 논한 이유는 첫번째로 앞에서 언급된 낙후된 사회의 가장 최신 사례를 언급하기 위한 것이고, 두번째는 그러한 사회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원동력은 권위주의 정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유에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보면서 이걸 수정했어야 했는데, 그 점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두번째로 지적하신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들 중 서구 국가와 제3세계 국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어느정도 인정합니다. 제가 5번에서 설명했듯이 역사적인 전통, 특히 과거의 기술수준이 이들의 경제 성장과 강한 연관이 있다고 언급을 한 바와 같이 이들 국가가 과거에 어떠한 발전 경로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수많은 제3세계의 독재자나 지도층들이 바로 그러한 점을 빌미로 “아시아는 서구와 달라. 독재가 필요해.”, “민주주의는 모든 국가마다 형태가 다를 수 밖에 없어. 우리는 한국형 민주주의(대만 버전으로는 훈정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권위주의 정부를 구축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이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실패를 하게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나마 동아시아 국가들은 식민지 이전에 구축한 과거의 전통이라는 토대가 있었지만, 동남아시아, 중동(터키 제외), 아프리카 국가들은 초반의 성장세를 이어 나가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지요. 한국과 대만만을 사례로 든 것은 양 국가가 그나마 서구 선진국과 근접한 경제 수준, 정치 제도, 사회 의식을 갖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아직 사회주의 정치 체제를 가진 국가라 비교에서 제외한 것 뿐이고, 향후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된다면 성공적인 국가에 포함시켜야 하겠지요. 싱가포르의 경우는 도시국가라는 점도 있고, 일당 지배 체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여기에 포함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3. 정부가 나서서 중화학공업을 추구한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추진 과정에서 운영상의 문제인가에 대해 물으신다면, 저는 후자는 확실하고 전자는 반 이상은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후자의 경우 경제 쿠데타라고 불리는 ‘8.3 긴급경제 조치”로 인해 이미 운영상의 문제가 드러났으며, 결론적으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산업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자금이 재투입되어야 했던 것을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초반 외환위기를 겪고 IMF로부터 거시경제 전반적인 조언을 받아야 했지요.

전자의 경우는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과 10월 유신이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당시 경제 정책의 지휘자였던 오원철 수석 비서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사이 많은 사람이 박 대통령은 경제에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실패했다고들 말한다. 심지어는 박 대통령 아래서 장관을 지냈던 이들조차 공개적으로 중화학공업화와 유신 개혁을 별개의 문제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중화학공업화가 유신이고 유신이 중화학공업화라는 것이 쓰라린 진실이라고. 하나 없이는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었다. 한국이 중화학공업화에 성공한 것은 박 대통령이 중화학공업화가 계획한 대로 정확하게 시행되도록 국가를 훈련했기 때문이다. 유신이 없었다면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국가를 훈련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다.”

당시의 경제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이 유신과 중화학 공업 정책을 보는 시각이 이러하였으니, 정책 자체가 성공적으로 돌아갈리 만무하겠지요. 중화학 공업 육성을 빌미로 독재 권력을 강화하려는 했으니, 경제와 정치 양쪽에서 에러가 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수 밖에요. 오히려 정부가 방관을 하거나 방해를 했던 삼성 전자, 현대 자동차, LG의 호남 정유 등 기업들의 동물적인 감각에 의해 투자된 기업체들의 성공이 아니었으면 중화학 공업은 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러한 잘못된 정책을 다른 나라가 따라하여 실패한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의 조선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조선소에 막대한 자금을 퍼붓고 육성하여 지금 현재 중국 조선업이 한국을 능가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지에서 들리는 얘기는 중소업체 뿐만 아니라 대형 국영 조선소까지 납기 및 품질을 못맞춰 쩔쩔매고 있으며, 생산성이 낮아 저부가가치인 벌크선을 건조하는데도 앞으로 남고 뒤로 깨지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한국은 그래도 해양플랜트라는 고부가가치 배를 만들려다 값비싼 수업비용을 치르고 있지만…) 독한 합리화 정책이 아니면 큰 실패로 남을 거라는 얘기가 많이 들리더군요.
1. 기본적인 대의에 대해서는 저도 찬성합니다. 권위주의 정부가 문화적 체질을 근대적으로 바꿔주는 경우는 흔치 않지요. 케말 아타튀르크의 터키라면 어느정도 예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기본적으로 터키가 아랍 국가들에 비해 유럽과의 교류가 많아서 근대적 사회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있었고 내부적인 근대화 운동도 일어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고요. 그리고 케말 아타튀르크가 독재자라고 하기에는 워낙 특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2. 이 부분도 역시 대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흔히 동양과 서양을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역사적인 면에서 서양과 동양은 세계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 봤을 때 공통점이 훨씬 많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완전한 식민지였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일본(식민지가 되지도 않았지만) 등은 서양과의 접촉 전에 이미 국가 체제가 오랜 세월에 걸쳐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식민지들과는 달리 독립 이후 국가적 정체성 자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었고 그게 실패해서 사회가 망가지는 위험도 없었습니다. 서양에 비해 과학기술이 다소 뒤쳐져 있었다고는 하지만 근대문명 자체를 이해하기에 어려울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서양식 민주주의를 소화하지 못하거나 자본주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할 정도의 큰 차이는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억지로 선거제도를 도입했더니 후보가 수백명이 난립해서 유권자들은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찍게 된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면, 결국 국회의원 선거는 누가 제일 큰 부족의 대표인가를 확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게 되겠지요. 그런 경우에는 민주주의의 형태를 다소 변형해서라도 실질적인 의미가 있게 만들 방법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외국에서, 혹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민주주의를 '주입'하려고 하는 경우의 이야기고, 외국이 아닌 자국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데 정권에서 "우리에게 맞는 민주주의는 이런 다른 것이다" 라고 주장해야 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이미 정권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말을 정권 스스로 꺼낸 것 자체가 그런 게 필요없다는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3. 말씀하신 대로 정부가 나서서 치적을 쌓으려는 식으로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려 하는 것은 망하기 딱 좋은 방법이 됩니다. 저는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교통망의 건설, 전력 공급의 확대, 대학에서의 관련 학과의 설립 지원, 노동자에 대한 복지대책 마련 등으로 '정부가 할 만한 일'을 해야지 기업더러 넌 이거 해라 넌 저거 해라는 곤란하겠지요. 저는 "정부가 주도하면 꼭 실패한다" 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만.

중국 쪽은 일단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 산업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세계가 다 어려운 상황이라,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어떻게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원래 사회주의고 모든 분야를 국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성장을 어느정도 벤치마킹했다고 말은 하지만 딱히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힘없는 속국(식민지)은 비참할따름이네요.신앙심엔 어떤 좋은 정책도 한낱 휴지조각 같은것에 불과한 것 같아요.그들의 목표는 천국이기 때문에 신앙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어떤 정책도 민주주의도 소용이 없겠지요...
새글 감사합니다.
젬나게 잘 보고 갑니다.
본문도 좋고 댓글 들도 정말 멋지네요...
야채님과 최홍락님은 아마도 경제분야의 전문 연구분야에 근무하시는 분들이신지요.
정말 댓들 수준이 감동적이네요, 지식이 짧아 누차례 읽어봐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만
상호 두분간에 치열한 반론 들이 한편의 경제논문을 보는 듯한 느낌을 항상 받습니다.
연구직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먼 일반 직장인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보통 직장인인데다가 이공계 출신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지금 보면 이렇게 긴글 남기는 사람들 보면 대단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참 덧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때는 재미있게 보고 댓글 달고 싶어도 ;;
不Mean한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수 있는 정보글에 각자의 생각이 모이니 이렇게도 되는구나 싶습니다. 좋아요 눌러주시기도 번거로우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