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

nasica 2016. 7. 6. 00:39

여태까지는 1809년 오스트리아의 거창하지만 서투른 초반 공세를, 나폴레옹이 절대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하셨습니다.  오스트리아인들의 침공에 맞선 폴란드인들의 용감하고 통쾌한 반격은 덤이었지요.  이쯤에서 제5차 대불동맹전쟁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던 티롤(Tyrol)의 반란은 어떻게 진행되었나를 보시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다만, 티롤은 4년 전인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의 결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손에서 바이에른 왕국으로 양도되었습니다.  판세를 제대로 읽은 바이에른이 나폴레옹 편에 붙었던 것에 대한 상품이었지요.  프랑스 계몽주의와 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바이에른이 펼친 근대적, 세속적인 입헌 군주제 통치는 어떻게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으나, 몇 년 안 가 티롤 주민들 당사자들에게는 무척 밉살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유는 세속화에 따른 카톨릭 관습 철폐에 대한 반발심이 컸으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나폴레옹 자신이 제공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바이에른에게도 제국의 유지와 확장을 위한 병력과 군비를 요구했는데, 이로 인한 부담은 티롤에게도 그대로 전가되었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에 강요했던 대륙 봉쇄령은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전역에 교역과 산업 생산의 감소를 가져왔고, 결국 그로 인한 경기 침체는 티롤 주민들에게도 고스란히 닥쳐왔습니다.  이렇게 사나와진 분위기에 불꽃을 당긴 것은 오스트리아와의 임박한 전쟁이었습니다.  당장 티롤 지방에도 징집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가증스러운 프랑스놈들을 위해, 옛 전우이자 수백년 간 충성을 바쳐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군대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야 한다는 압박감은 대대적인 징집 거부와 무장 봉기로 이어졌습니다.  








(아름다운 티롤의 아름다운 도시, 인스부르크 전경입니다.)




하지만 모든 봉기에는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활발하게 나서는 지도자가 없다면 사람들은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그저 동네 술집에 모여 울분이나 삭이다 취해서 집에 돌아갈 뿐이겠지요.  산악 지방인 티롤 지방에도 인스부르크(Innsbruck)와 같은 대도시가 있고 또 귀족과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티롤 봉기의 정신적, 이론적 지도자는 지난 편에도 소개드렸던 요제프 호마이어(Joseph Hormayr)였습니다.   이 양반은 인스부르크 출신의 귀족이자 오스트리아 외무부에서 근무한 관료이고, 티롤 사람들이 하늘처럼 생각하던 프란츠 황제의 친동생 요한 대공의 친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판 플루타르크 영웅전(Österreichischer Plutarch)이라는 20권짜리 전기집을 쓴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티롤의 반란 전에 티롤은 이 양반을 통해서 빈의 합스부르크 궁정과 줄을 대었고, 호마이어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온갖 반-나폴레옹 선동물을 비밀리에 유포시키며 티롤 주민들의 항쟁 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호마이어도 애국자임은 분명했습니다.  티롤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뻔뻔스럽게도 호마이어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보고 그를 냉대했습니다.  호마이어도 그런 냉대에 발끈하여, 결국 말년은 자신이 일으킨 무장 봉기의 적국이었던 바이에른 왕국에서 보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손에 낡은 사냥총이나 쇠스랑을 들고 프랑스군, 좀더 정확하게는 프랑스의 앞잡이인 바이에른군과 싸우는 것은 라틴어를 술술 할 줄 아는 고상한 귀족 지식인들이 아니라 목동들과 농부들, 사냥꾼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호마이어가 서재에 앉아 온갖 유식한 어휘를 써가며 고상하게 써내려간 반-나폴레옹 팜플렛을 스스로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이들은 정말 동네 술집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어려워진 살림살이와 바이에른군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될 남동생 혹은 아들 이야기를 하며 울분을 토하다가,  자신들이 믿고 따를 만한 사람으로부터 '우리 이럴게 아니라 정말 들고 일어나자'라는 권유를 받고 봉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 동네 술집 주인, 즉 호퍼(Andreas Hofer)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호퍼의 초상입니다.  물론 사후에 그려진 상상화에 불과합니다.  여관 주인에게는 이런 초상화를 그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안드레아스 호퍼는 정확하게 말하면 술집 주인이 아니라 여관 주인이었습니다.  상크트 레온하트 인 파사이어(St. Leonhard in Passeier)라는 지역의 산트호프(Sandhof)라는 동네에서 대대로 여관업을 하던 이 사람은 나폴레옹보다 2살이 많은 전형적인 티롤 시골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티롤 지방의 여관 주인은 직업 특성상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사이를 오가는 상인들과 여행객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으므로, 그런 산골 동네에서는 세상 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호퍼는 여관업과 함께 포도주와 말 장수 노릇도 했으므로 더욱 외부 사정에 밝았고, 이탈리아 사람들과 거래를 하다보니 이탈리아어도 제법 할 줄 알았습니다.  또 숙박계나 거래 장부를 써야 했으므로 최소한 문맹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배경에다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성품이었는지, 1791년 티롤 지방 의회(landtag)에 평민 대표 중 하나로 선출되기도 했고, 또 1805년 제3차 대불동맹전쟁 때는 티롤 민병대의 대위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뷔르트(Wirt, 여관주인)라는 친근한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호퍼가 태어나고 자라고 운영했던 산트호프의 여관 건물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정말 그때 그 건물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배운 것이 많지 않지만 무척 경건하고 질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계몽주의가 뭔지, 헌법이나 인권 선언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받은 가정 교육의 결과, 그는 그저 '주님과 황제 폐하와 조국을 위해' 라는 단순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력과, 그를 위해 희생도 불사한다는 숭고한 마음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1809년 1월 빈을 방문한 티롤 비밀 사절단의 일원이기도 했고, 그 방문 이후 더욱 열정에 불타 올라 생업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곳곳의 산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반-프랑스 봉기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티롤의 반란이 터져 나온 것은 호퍼를 포함한 티롤 대표단이 빈을 방문한 뒤 3개월 정도 지난 4월 9일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주력 야전군이 인(Inn) 강을 건너 바이에른을 침공하기 하루 전의 일이었지요.  전날밤 인 강에 톱밥을 잔뜩 풀어 하류의 티롤 주민들에게 미리 신호를 한 뒤, 법으로 금지되었던 교회의 타종을 시작으로 티롤 주민들은 손에 사냥총과 도끼, 쇠스랑 등을 들고 티롤 내 바이에른 수비대를 급습했습니다.  방심하고 있던 바이에른 수비대는 곳곳에 작은 규모로 분산되어 있었고, 이들은 그 상태 그대로 각지에서 포로로 잡히거나 학살되었습니다.  






(산골짜기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반란군을 모집하는 호퍼의 모습입니다.)




각지에서 소동이 벌어져 이제 기습 효과가 없어진 뒤에도, 바이에른 정규군은 티롤 무장 반란군에게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바이에른군은 정규군답게 대오를 갖춘 일제 사격과 절도 있는 집단 총검 돌격 전법을 쓰려고 했으나, 티롤 반란군은 그런 싸움에는 전혀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높은 산 바위턱에 숨어 있다 조준 사격을 한 뒤 도망치거나, 좁은 산길을 지나가는 바이에른군 머리 위에 인공 눈사태를 일으키는 등 지형지물을 100% 살리는 전법을 사용하여 바이에른군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벌떼 같은 공격에 조금씩 녹아내린 바이에른군은 티롤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인스부르크에서도 궁지에 몰렸습니다.  시내의 주민들도 모두 반란군 편인 것이 명백한데다, 도시 주변을 수천의 반란군이 완전히 봉쇄하고 끊임없는 도발로 48시간 동안 괴롭힘을 당하자, 바이에른군 지휘관인 킨켈(Kinkel) 장군은 결국 4월 13일 3천이 넘는 수비군과 함께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가운데 선 인물이 물론 호퍼입니다.  저 둥근 모자와 수염은 티롤 산악민의 상징이지요.)



하늘이 돕는지 뜻 밖의 전과를 올리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인스부르크가 함락된 것을 모르고 무방비 상태로 인스부르크로 접근하던 프랑스군 약 2천이 있었는데, 이들은 실은 제대로 된 프랑스군이라기보다는 모두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징집되어 티롤로 이동하던 2진급 부대였고, 그 지휘관도 주정뱅이에 대식가로 소문난 비송(Baptiste Pierre Bisson) 장군이었습니다.  비송 장군은 점심 식사 때 8병의 와인을 마시고도 전혀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이때 당시에는 취해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들이 이탈리아에서 인스부르크로 향하는 브레너 고갯길(Brennerpass)을 넘는 중에, 사방에 갑자기 티롤 반란군 수천 명이 나타나 포위하자 이들은 허둥지둥 거리다 결국 맥없이 항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일설에는 이 부대는 탄약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이때 티롤 반란군은 나폴레옹이 하사한 제3 보병 연대의 독수리 군기까지 손에 넣어 나폴레옹의 체면을 구겨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프랑스군이 소지하고 있던 2천 정의 머스켓 소총과 5문의 대포, 2문의 박격포까지 노획하여 제대로 된 무기가 부족했던 반란군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브레너 고갯길 Brennerpass의 현재 모습입니다.  브레너패스는 무척 긴 루트라서, 1809년 전투 현장이 꼭 여기는 아닐 겁니다.)



이렇게 초반의 티롤 무장 봉기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티롤 주민들의 저항 의지가 확고하여 반란 동참자가 많았고, 무엇보다 사전에 프랑스나 바이에른 측에게 밀고한 배신자가 없었던 것이 큰 성공 요인이었습니다.  이들을 지원하던 오스트리아도 입만 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약 1만에 가까운 병력을 샤스틀레(Johann Gabriel Chasteler de Courcelles) 장군의 지휘 하에 티롤로 파견해주었습니다.  샤스틀레 장군은 4월 16일 인스부르크에 진주하여 전부터 오스트리아와 협력하던 호마이어를 수장으로 하는 티롤 임시 정부를 세웠습니다.  호퍼는 이때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위임받은 티롤 현지 사령관' 직을 맡았고, 그대로 남부로 이동하여 보전(Bozen)과 트렌트(Trent) 등 이탈리아로 통하는 주요 도시들을 장악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왔고, 이제 티롤은 프랑스와 바이에른의 무신론자들 손아귀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은 듯 했습니다.






(샤스틀레는 합스부르크령 벨기에에서 태어난,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잠깐이나마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자신들을 무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전쟁 발발 직후 바이에른 현장에 도착하고도 티롤의 반란은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그는 바이에른군으로 구성된 제7 군단을 맡고 있던 단치히 공작 르페브르 원수로부터 티롤의 반란 소식을 들었으나, 그저 이렇게 답할 뿐이었습니다.


"티롤에 대해서는 오스트리아 애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 두게.  난 어떤 경우에든 산악전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네."


바이에른을 침공하면서도 바르샤바와 티롤, 이탈리아로 병력을 나눠 보내던 오스트리아 카알 대공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아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오로지 카알 대공의 주력 부대만 잡으면 나머지 문제는 다 저절로 해결된 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4월 18일부터 23일 사이에 벌어진 5일 간의 '란츠후트 기동전'을 통해 카알 대공의 주력군을 두동강 내고 5월 13일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점령했습니다.  


그러고나자 정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비로소 티롤에 대해서도 눈을 돌렸습니다.  그는 5월 초 르페브르의 제7 군단을 티롤로 파견하여 티롤 지역을 평정하도록 했습니다.  나폴레옹으로서도 티롤을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 티롤은 그의 의붓아들 외젠 보아르네가 지키고 있던 이탈리아 왕국과의 교통로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이에른군으로 구성된 제7 군단은 5월 13일 인스부르크 북동쪽의 뵈글(Wörgl)에서 길을 막아선 샤스틀레 장군의 오스트리아 정규군 5천과 맞붙었습니다.  산악에서 벌어지는 게릴라전이 아닌, 제대로 된 라인 배틀에서 오스트리아군은 르페브르의 지휘를 받는 제7 군단 약 1만명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절반이 넘는 약 3천의 사상자와 포로를 내고 사실상 궤멸되어 버렸습니다.  이 전투 이후 샤스틀레는 다른 곳에 주둔해 있던 오스트리아군까지 모두 긁어 모아 5천의 병력을 모은 뒤 계속 티롤 반란군을 지원하다, 요한 대공의 명에 따라 6월 초 티롤에서 철수해버렸습니다.  


이미 전세가 프랑스 측으로 확 기울어 버린 상황에서 제7 군단은, 알고 보면 오합지졸에 불과한 티롤 반란군들을 쫓아내고 5월 20일 인스부르크를 간단히 점령했습니다.  호마이어를 비롯한 인스부르크의 티롤 임시 정부 요인들은 무의미한 저항을 포기하고 물러났습니다.  어디까지나 티롤은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대규모 전쟁판에서 그야말로 거스름돈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스름돈에게도 기회는 오는 법입니다.  얄궂게도 인스부르크가 함락된 바로 다음날인 5월 21일~22일 양일간 숙명의 아스페른-에슬링(Aspern-Essling) 전투에서 놀랍게도 카알 대공의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을 격파한 것입니다 !  이로 인해 르페브르는 인스부르크에서 물러나 북쪽의 잘츠부르크(Salzburg)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고, 이 소식은 각지에 귀가 있던 티롤 반란군에게도 즉각 들어갔습니다.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바이에른군이 꽁무니를 빼려한다는 소식은 티롤 반란군의 기세를 확 살려주었습니다.  약 1만3천명 이상으로 늘어난 반란군은 호퍼의 지휘 하에 5월 29일, 인스부르크 남쪽 요충지인 베르기젤(Bergisel, 이젤 산이라는 뜻)에서 약 5천의 바이에른군을 공격했습니다.  바이에른군은 잘 싸웠으나 어차피 궁국적인 목표는 북쪽으로의 후퇴였고, 또 탄약도 거의 다 떨어진 마당인지라, 미련을 가지지 않고 후퇴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양측의 사상자는 각각 200여명 정도로서, 확실히 정규군끼리의 전투에 비하면 양측 모두 사상자가 많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베르기젤 인근 스테르칭 Sterzing에서 벌어진 전투 모습입니다.  물론 당하는 쪽이 바이에른군입니다.)



이렇게 제7 군단이 물러나자, 호퍼와 그의 반란군은 5월 30일 인스부르크에 다시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인스부르크는 승리와 자유를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고, 반란군의 지휘자 호퍼는 민족적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상태이던 6월 9일, 개선 장군 호퍼는 갑작스레 고향인 산트호프의 여관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호퍼는 그냥 정의, 아니 정의라고 믿었던 카톨릭 교회와 합스부르크 왕가를 위해 들고 일어난 일개 촌사람에 불과했으니, 이제 정의가 회복된 시점에서는 다시 촌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순리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프랑스-바이에른군이 완전히 물러간 것도 아닌 시점에 호퍼가 귀향을 택한 것에는 찜찜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티롤 반란의 기획자이자 정신적 지주라고 자처하던 임시 정부의 수장 호마이어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호퍼의 인기를 질투하고 견제했던 것입니다.  호마이어로서는 배운 것도 없고 매너도 상스러운 시골 여관 주인장인 호퍼가 귀족이자 엘리트 지식인인 자신을 밀어내고 티롤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시골뜨기 호퍼로서는 귀하신 나으리인 호마이어의 견제가 몹시 당혹스럽고 또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에서 재빠르게 파견나온 관리는 역시 가재는 게 편이라고 호마이어를 중심으로 임시 정부를 조직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나가는 조직에는 호퍼를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호퍼는 대단한 야심가는 아니었고, 그저 정의감에 뛰쳐 나온 촌뜨기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아직 인스부르크를 점령하기 직전이던 5월 29일,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가 '어떤 경우에라도 티롤을 프랑스-바이에른 측에 넘겨주는 조약에는 서명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하는 편지를 보내온 바도 있었으므로, 조국 티롤의 안전은 그가 없어도 보장되는 듯 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호퍼의 고향 생활은 한달 정도 밖에 지속되지 못 했습니다.  절치부심한 나폴레옹이 병력을 끌어모아 7월 6일 바그람(Wagram)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박살을 낸 것입니다.  티롤에 대한 프란츠 1세의 약속은 정말 가벼운 것이었는지, 이어서 7월 11일에 양측간에 맺어진 츠나임(Znaim) 휴전 협정에서, 티롤은 다시 바이에른의 영토가 되어 버렸습니다.  7월 21일에는 티롤의 임시 정부도 빈으로부터 '이리 되었으니 그리 알라'는 무척이나 무책임한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무려 3만의 병력을 티롤로 파견하여, 반란군의 잔당을 소탕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2만의 바이에른-작센 병력이 다시 르페브르의 지휘 하에 북쪽에서 내려왔고, 남쪽에서는 외젠이 파견한 이탈리아 왕국군 1만이 밀고 올라왔습니다.  르페브르에게 주어진 나폴레옹의 지시는 간단했습니다.  


"인스부르크 점령은 8월 1일 이전에 마치도록 하라.  주민들의 항의를 용납하지 말라.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  티롤 전체를 무장 해제시켜라.  많은 수의 인질을 확보하라.  그리고 본보기를 보여줘라." 


르페브르는 아무 저항을 받지 않고 8월 1일 이전에 인스부르크를 포함한 티롤의 북부 도시들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호마이어와 그의 임시 정부는 또다시 저항을 포기하고 도주했거든요.  르페브르는 반란군의 지도자들을 색출과 무기의 자진 반납을 요구하며 남쪽으로 점령 작전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인스부르크 남쪽의 요충지 베르기젤에서 르페브르는 티롤 반란군의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티롤의 위기를 접한 호퍼가 다시 한번 저항의 깃발을 올렸고, 그에 호응하여 1만이 넘는 반란군이 모여든 것입니다.   먼저, 프랑스 루에(Rouyer) 장군의 지휘 하에 남쪽으로 내려가던 바이에른-작센군 약 3600명이 베르기젤 인근에서 반란군의 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그 중 작센군은 1천의 희생자를 내며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냈습니다.  이 지역은 지금도 작센클레머(Sachsenklemme, 작센 죔쇠)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1천명에 가까운 작센인들이 희생된 프란첸스페스터 Franzensfeste에 있는 작센클레머 Sachsenklemme 입니다. 영어로는 Saxon Trap 즉 '작센 함정'으로 번역되는 이름인데, 독일어 사전을 보니 Klemme는 죔쇠, 바이스, 집게 등의 뜻이더군요.)



그 소식을 듣고 증원군을 데리고 달려온 르페브르도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 전술을 벌이는 티롤 반란군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8월 13일~14일 벌어진 제3차 베르기젤 전투에서, 르페브르의 본대 7천도 긴 시간 동안 산골짜기에서 티롤 반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녹아내리다 결국 후퇴를 해야 했습니다.  인스부르크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뒤를 집요하게 추격하는 티롤 저격병들에게 많은 병력이 사살되어, 급기야 르페브르 본인도 화려한 장군복을 벗어던지고 평범한 용기병의 제복으로 갈아입는 굴욕을 겪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2만에 가까운 병력으로 불어난 티롤 반란군에게 혼쭐이 난 르페브르는 인스부르크도 포기하고 8월 18일 티롤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 뒤를 따라 인스부르크를 점령한 호퍼는 전과는 달리, 8월 15일 자기 자신이 오스트리아 황제 대신 티롤을 통치하는 섭정(regent)임을 선언했습니다.  아마도 지난 번처럼 귀족 및 지식인 나부랭이들에게 나라를 맡겨 놓으면 또 다 말아 먹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야심차게 티롤 통치를 시작하여 새로운 법령과 세제도 발표하고 새로운 화폐까지도 주조했습니다.  게다가 2명의 사절을 영국으로 파견하여 반-프랑스 투쟁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굉장히 야심찬 계획이었고, 이 모든 것은 휘하에 그를 따르는 지식인 동료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인스부르크의 호프부르크 Hofburg 궁전에서 섭정 업무를 보고 있는 호퍼의 모습입니다.  여관집 주인치고는 엄청난 출세이지요.)



그러나 이런 통치는 불과 2달을 지탱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스부르크 등 도시의 기존 관료들이 호퍼의 통치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호퍼는 그저 총 잘 쏘고 산 잘 타는 난세의 촌뜨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촌뜨기에게 '섭정 각하'라는 존칭을 쓰며 굽신거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호퍼가 처음 섭정 노릇을 직접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그런 지식인 계층 관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바이에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자면 당장 병력을 유지해야 했는데, 이들도 땅을 파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무기와 탄약, 그리고 급여를 지급해야 했습니다.  그러자면 돈이 필요했는데, 세금을 걷으려면 그런 관료들과 부자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순식간에 재무부 금고는 텅 비어버렸고, 사회 통치 기반이 흔들리니 불안한 정세와 맞물려 상거래도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 모였던 반란군 병력들도 차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급여도 보급도 못 받으니 버티고 싶어도 버틸 방법이 없었고, 또 당장 가족이 굶지 않으려면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짓고 양을 쳐야 했던 것입니다.  척박한 산골 마을에서 양떼들이 죽어버리거나 곡물 농사를 망쳐버리면 참혹한 기근이 찾아 들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그런 생업이 전쟁보다 더 긴급한 문제였습니다.






(인스부르크에 있는 호프부르크 Hofburg 궁전입니다.)




호퍼의 통치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와중에, 호퍼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빈에서는 두가지 소식이 연달아 내려왔습니다.  먼저 9월 29일, 호퍼에 대한 훈장과 함께 날아온 프란츠 1세의 격려사는 '절대로 티롤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전에 한 같은 내용의 약속을 츠나임 휴전 협정에서 아무 미련없이 저버린 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해명이 없었습니다.  이어서 날아온 소식은 - 아직 호퍼의 귀에까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만 - 10월 14일의 쇤브룬(Schönbrunn) 조약이었습니다.  제5차 대불동맹전쟁을 끝내는 이 조약에서, 황제는 불과 2주전에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티롤을 다시 바이에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프란츠 1세로서는 전쟁 배상금 8천5백만 프랑과 함께 카린티아(Carinthia)와 크로아티아(Croatia), 그리고 옛 폴란드 땅인 갈리시아(Galicia)까지 뜯기게 된 마당에, 산골 구석 동네인 티롤 따위의 처지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이후의 배상금이 4천만 프랑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그때보다 훨씬 더 가혹한 조건이었던 셈이이지요.





(데를롱 백작 드루에 장군입니다.  르페브르가 교체된 이유에는 그 전의 패전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도 있습니다만, 르페브르와 바이에른 사람들 사이가 너무 안 좋았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드루에는 공정한 일처리로 바이에른 사람들에게 무척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어서 나폴레옹은 치욕스러운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 쓴 르페브르 대신 드루에(Jean-Baptiste Drouet, Comte d'Erlon) 장군을 보내 티롤을 평정하도록 했습니다.  10월 21일부터 바이에른 및 이탈리아군이 남북에서 쏟아져 들어오자, 이제 병력이 흩어진 호퍼도 딱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인스부르크에서 물러나 다시 산으로 들어간 호퍼와 반란군 잔당을 기다리는 것은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이었습니다.  1776년 미국 독립 전쟁 당시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자면서 행한 연설 중 "The summer soldier and the sunshine patriot"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최근 개봉했던 캡틴 아메리카 2편 "Winter Soldier"의 제목도 이 연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이 '여름날의 병사와 햇빛 속의 애국자'라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날씨도 좋고 먹을 것도 풍부한 계절에는 애국도 쉽지만, 추운데다 먹을 것도 부족한 겨울철에는 애국자 노릇도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호퍼를 따르던 반란군의 처지가 딱 이랬습니다.  그들의 뒤를 쫓는 바이에른군의 추격보다도, 이들에게는 산 속에서의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두고 온 가족들의 생계가 더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라는 제목과 연관된 직접적인 사건은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진 미군의 많은 전쟁 범죄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의 국회 청문회였습니다.  이때 미군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에서의 전쟁 범죄에 대해 용기있게 증언하며 '서머 솔져 뿐만 아니라, 열악한 음지의 윈터 솔져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한 사람이 사진 속의 미해군 중위였습니다.  보시다시피 현역 시절 훈장을 받을 정도로 용감한 장교였던 그의 이름은 존 케리이고, 미국 제68대 현직 국무부 장관입니다.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도 입다물지 않는 용기 때문입니다.  우리 옆의 섬나라와는 크게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섬나라를 닮아서는 안될텐데요.)



이렇게 어려운 처지의 호퍼 일당에게 결정타로 들이 닥친 것은 10월 28일 경에야 뒤늦게 날아든 쇤브룬 조약의 소식이었습니다.  하늘처럼 받들던 프란츠 1세가, 그것도 불과 2주전에 '절대 티롤을 버리지 않겠다'라고 두 번이나 약속했던 황제가, 편지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티롤을 또다시 저버렸다는 소식은 호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오직 '주님과 황제 폐하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낭만적인 신념 뿐이었는데, 대체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하며 동료들의 피를 흘려야 했던 것인가 라는 회의감이 몰아 닥쳤습니다.  그리고 그 회의감은 호퍼를 술에 의지하는, 진짜 볼품 없는 촌뜨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호퍼가 이 모양이었으니, 남은 반란군 잔당도 봄철의 시커면 눈덩어리들이 녹아 없어지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호퍼도 반란자들에 대해 사면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미련을 버리고 11월 8일 무기를 내려 놓고 고향의 여관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쌓인 울화가 남아 있었나 봅니다.  귀가한 지 불과 며칠 뒤인 11월 12일, 다시 오스트리아가 들고 일어나 프랑스군을 무찔렀다는 헛소문을 접한 호퍼는 다시 반란군을 소집하며 반란의 기치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호소에 응하는 티롤 주민들이 별로 없었고, 그는 다시 쫓기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망자가 된 그는 어느 마을의 헛간에 숨어 있다 그의 목에 걸린 1500 길더(guilder)의 상금을 탐낸 주민에 의해 밀고되었습니다.   결국 다음해인 1810년 1월 28일 이탈리아군에 의해 체포된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이탈리아의 만토바(Mantua)로 압송되었습니다.






(만토바에서 총살 당하는 호퍼입니다.)



이탈리아의 재판관들은 이 산골 사람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때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 아니 하다 못해 메테르니히(Metternich)라도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그의 충정을 기억하여 '그 호퍼라는 촌뜨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지요'라고 나폴레옹에게 한마디 했다면, 어쩌면 호퍼는 목숨을 건졌을 수도 있습니다.  나폴레옹도 티롤 산골짜기의 여관 주인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그 충직하고 단순한 여관 주인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프란츠 1세도 메테르니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폴레옹이나 프란츠 1세나, 1809년 말에 벌어진 나폴레옹과 조세핀 황후의 이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프랑스 제국의 황후가 될 오스트리아 왕녀 마리아-루이즈와의 결혼 준비에 정신이 팔려 있었거든요. 제국과 왕가의 중대사를 앞두고 아무도 그런 처지 곤란한 인물을 위해 입을 열어 분위기를 망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돌싱 나폴레옹은 능력남이라 오스트리아 왕가의 처녀 공주님과 금방 재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에 대한 보고를 받은 나폴레옹이 그냥 사무적으로 '즉심에 넘긴 뒤 총살해버리게' 라는 짧은 명령을 내린 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그는 짧막한 재판을 거친 뒤 2월 20일 습기차고 추운 만토바에서 총살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겼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여전히 마리-루이즈와 나폴레옹의 결혼 준비에 바빴고,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8일 뒤, 티롤은 남북으로 쪼개져 북부는 바이에른 땅으로 통합되었고, 남부는 오스트리아에게 빼앗은 크로아티아 영토에 새로 만들어진 프랑스의 위성국가 일리리아 자치국(Provinces Illyriennes)에 편입되었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징집령이 티롤에도 적용되어, 1812년 러시아 원정길에는 티롤에서 차출된 병사들도 동행해야 했습니다.





(당시 주요 전장이었던 베르기젤에 세워진 호퍼의 동상입니다.  그는 본받아야 할 열혈 애국자였을까요 ?  아니면 지배계급의 주입식 교육에 의해 세뇌되어 실컷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불쌍한 희생자였을까요 ?  판단은 여러분이 각자가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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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더하여서..... 동학군이 두번이나 일본군을 무찔러 한반도를 지키었는데.... 청군이 일본군 해군에 박살이 나서 조선을 일본에 넘긴다고 협정을 맺으면 전봉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전봉준이 낙심하지 않고 지리산 속리산 설악산 등으로 후퇴하여 게릴라전으로 전환하였으면 좋았을텐데..... 양반 지주들과 공동 노선을 취하여 일본군을 계속 무찌렀으면 좋았을텐데....

항쟁은 진행형.... 현대 현재에도 가능합니다.....
동학에 대해 민중 사학이 왜곡한 사실은 조선왕조는 동학 진압을 위해 초기에는 경군만을 파견하였는데 사령관 양호초토사 홍계훈은 학살식 진압 방식을 피하고자 무력 시위를 통한 협상 방식을 택하엿으나
남접은 숫자만을 믿고 화약을 맺은 홍계훈 장군을 기만하고 대원군및 일본과 밀통했다는 사실이다.

일본군은 동학군의 낮은 전력을 파악하고는 곧 배신해 청군이 도착도하기 전에 공격해 쉽게 궤멸시켰다.
동학군이 패배한 뒤 호남 양반들의 동학 사냥부대는 잔존 동학도들을 체포해 게릴라전의 여지를 없앴고
경군의 방침보다도 더 잔혹한 사형을 가하였는데 그 목적은 동학도들에 살해된 친족들에 대한 보복과 동학도들의 가족을 겁박해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기 위해서였다.

민중 사학자들이 동학을 그들의 이념에 맞는 도구로 활용코자 사실을 왜곡해 역사 드라마를 만들었죠
게다가 아버지 박성빈에게서 어려서부터 동학은 혁명이라고 교육받은 대통령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오늘날 동학은 실제보다 더 거창한 이념과 사상을 지닌 프랑스 대혁명 급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80년대 이전 대학에서 의식화 교육의 도입 교재가 '동학 혁명'과 '4.19 혁명'을 가르치는것이었으니
박대통령은 어쩌면 실패한 민란의 군 단위급 지도자를 아버지로 뒀기에 이적 교재를 지원하게 된것이죠
이적 교재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분명 잘못된 것이...민중사관에서 높이 평가받는 동학농민운동이기에 북한에서도 그럴 것 같지만 북한은 동학 농민 운동을 복벽 계열의 운동으로 보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하신 내용은 어디에서 Copy해오신 부분인 것 같은데, 출처를 명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피 해왔으니 출처를 밝혀라? 험한 말하면 꼬투리 잡을테고...
출처는 없고 스승은 있지요, 김준엽, 강만길, 유영익 선생님
전공보다 부전공인 사학에서 위의 세분들께 배우는 행운을 가졌었기 때문이고
동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건 동학에서 외고조부님이 자주 언급 되시는 분이신데
교재로 공부하게되니 좀더 많이 읽고 선생님들께 여쭤 보고 연관지어 생각했죠
아, 문체가 카피 같은건 제가 전에 동학에 관해 쓴 글에서 가져온 부분입니다.

참 북한이 동학 농민 운동을 복벽 계열의 운동으로 평가절하하는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남로당 잔존 세력들이 동학운동을 초기 의식화 도입 교재로 사용했던것도 맞지요
남로당 계열과의 연계를 이적 행위라고하면 여적죄로 걸려드는 실세들이 꽤 있을테니...

여기 주인장의 글을 자주 읽는것은 주인장이 역사 글을 쓸때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지금의 가치 기준으로만 평가하지는 않는 점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댓글들이 당시의 가치 기준이 아닌 현재의 가치 기준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무참히 재단하고 평가해 선악의 판단을 내리니 의미가 왜곡되곤 합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마저 그리한데 왕조 시대의 역사야 오죽하겠습니까?
Copy "그 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미군과 손잡고 북한을 침공하여 자본주의 체제로 북한을 개조하려 할 때, 호퍼같은 아저씨들이 나타나 "당과 수령님과 조국"을 외치며 게릴라전을 펼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끔찍한 비극이 될 겁니다.
남한과 미국이 북한에 침공해 들어갈 경우.... 충분한 홍보가 일단 먼저 필요하겠죠.... 마을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10번이상 반복해서 김정은 정권이 망하였음을 알려주고 ...... 망한 버린 김정은 정권이 당신의 충성심을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북한 주민과 인민군들에게 확실하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죠....

그렇지만 열에 하나 ..... 정말로 당에 충성하여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죠.... 그렇기에 더욱더 안전한 정권이양을 위한 철저한 준비와 아주 조심스런 실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데 중국은 뭐하고 있길래 남한과 미국이 북한에 침공해 들어갈 수 있나요.... 남쪽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400해리 밖도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욕심장이 거짓말장이 중국이 동아시아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적이죠..........
북한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티롤은 독립국은 아니었지만 바이에른이나 심지어 오스트리아와도 동일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았습니다. 동일 민족인 남북한과는 경우와 직접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요.

하지만 솔직히 북한에 호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건 충분히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는 생각은 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북한 주민들이 더이상 남한 사람들과 동일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명분으로 당과 수령님을 내세웠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현실이 확인되면 '통일'이 정말 유효한 명제인지, 우리가 북한을 같은 민족이 아니라 단순히 호전적이고 위험한 외국으로 대해야 하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가진 자들의 횡포
없는 자들의 슬픔
끊임없이 반복되는군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려고 설칠때 일두체 무솔리니 각하께서 출병을 시켰다는 그 "브레너고개" 인가요? 그리고 티롤의 손바닥만한 산촌에서 쌈박질하고 싶지 않던 나폴레옹이 그 수십배 큰 에스파냐 산촌에는 왜 그리 집착을 했는지..티롤은 바이에른땅이니 관심없고 에스파냐는 형이 다스리던 실질적으로 프랑스땅이라 생각해서 그랬던가 봅니다..
손바닥만한 땅은 포기해도 별 타격이 없고 본문에 나오듯 대마들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힘안들이고 다시 가져올수 있지만 손바닥의 수십배 크기의 땅은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티롤의 반란이 오스트리아가 전쟁에 뛰어드는 도화선이 되었지만 별다른 저항없이 진압된줄 알았는데 역시 사연은 어디가나 구구절절하군요. 호퍼라는 인물 최소한 동정은 갑니다. 전통적인 근왕사상이나 외세에 대한 항쟁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익숙한 코드니까요. 위엣분이 얘기하셨듯이 동학농민운동도 근왕사상과 반외세라는 점에서 궤도를 같이하는 비슷한 항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애국보수]가 타인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비겁한 불한당들에 대한 빈정거림으로 통하는 시대에 호퍼에 대한 [애국보수]라는 평가는 좀 과하지 않으려나 합니다. 주인장님께서 뭐 좀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보시는게 의도였다면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지만말이에요.
세상은 끝임없이 같은 사건들로 반복되는 것 같네요.
호퍼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정말 인간이란...

마지막 질문에 답하자면 본받으면 안되는 거 아닐가요? 애국이든 충성이든 결국 뒤에서 선동하는 이들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는 거라는 게 역사에서 계속 무한번 반복되고 또 증명되어 왔으니까요.

소시민이면 몰라도 크게 해먹는 이들은 정의를 지키며 정도로 성공한다는 건 거의 하늘의 별따기군요. 사기꾼과 위선자가 높은 자리에 오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가차없이 이용되고 버려지네요... 진짜 신도 부처도 없는 게 인간의 세상이 돌아가는 꼴이군요.

차라리 신이 진짜로 존재해 악인에게 벼락이라도 떨궈주면 감격해 자진해서 광신도가 되겠습니다만, 현실은 보통 신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는 건 신을 사칭하는 악인들이 벼락 대신 폭탄을 불행한 희생자들이나 정적들에게 날려대는 형국이라. (....)

역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인간은 존재 자체가 헬이군요. 제게 한 가지 소원을 빌을 힘이 주워진다면 우리 인간이 멸종하게 해주소서, 라고 빌겠습니다. 클린 지구를 위해 ㅋ
누군가의 동상이 후세에 세워진다면 그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본 받을만하다고 생각하는겁니다.
한국의 맥아더 동상도 같은 이유이지요. 그 땅의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동상은 끌어내려지지요.
스탈린, 레닌, 이승만, 차우체스크 등등 곧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끌어내려지기를 기대하며......
비밀댓글입니다
티롤이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인스부르크 몇번 들린적 있는데 오스트리아와 티롤 차이점은 거의 못느꼈습니다. 바이에른쪽도 비슷하긴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더 가깝죠. 그때는 왕조시대니까 왕이나 황제에게 퉁성하는걸 흠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망하기 직전의 조선을 살려놓은 의병들을 때려잡은게 선조이듯 백성들의 충성은 대부분 짝사랑 아닐까요? 남티롤이 현재 이탈리아땅인데 힘없는 민초들은 강대국의 패권다툼으로 혹은 전리품으로 이리저리 쓸려다니는게 현실입니다.
티롤의 역사와 인간 호퍼의 인생사.........
우리의 역사와 이순신장군님, 김구선생님등의 인생사가 묘하게 중첩되네요..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공감 UP! 하고 갑니다.
김구같은 인물은 굉장히 과대평가된인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김구는 자신의 정치적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수립을 거부하고 이승만의 부하로 전향한 자신의부하를 암살하고 이승만 암살을 계획하다. 결국 이승만의 지시 혹은 부하의 자발적인 배신으로 암살당한인물입니다. 그를 쏜 안두희는 한독당원이었지요(일설에는 내부자분란으로 위장하기 위해 이승만이 안두희를 한독당원에게 침투시켰다고 하는 설도있습니다).

김구는 항일업적등의 업적도 많지만, 광복후에는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하여 오류도 많았습니다.
특히 김구는 이승만의 부하로 전향한 자신의 부하를 암살하고 이승만의 암살을 계획하고
그거때문에 결국 본인이 암살당했기때문에,

그를 애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 사회지도층에게 버림받고 죽은 호퍼와 같은 희생양으로 생각하는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과 같이 김구가 좋은이미지로 많이 뜬것은 박정희의 영향이 컸지요. 박정희는 철저하게 문약을 배격하고 무를 숭상하던인물이라 암살에 특화된김구를 외교에 특화된 이승만보다 더 좋게 인식을 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일단 박정희는 5.16이 4.19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던인물이여서 이승만 까내리기를 정책적으로 했고 그리고 개인적인 이승만 부하들과의 악연으로 이승만정권을 싫어한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형의 죽음또한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박정희는 집권후 의도적으로 김구띄우기와 이승만깍아내리기 작업에 돌입하고, 그에 따른 영향으로 김구는 우리에게 좋은 이미지로만 기억되지요~~(사실단점도 엄청많은 인물인데요.
예를 들어보면.
일단 그가 황해도에서 국모시해의 원수를 갚는다며 죽인 일본인은 일본군인이아니고 호신용으로 일본도를 들고다니던 일본상인이었는데, 김구본인은 착각하고 죽였을테지만, 문제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상당수 역사책에서는 김구가 민간인으로 변복한 일본군인을 죽인것으로 나오지요.

암튼 이야기하면 긴데 김구는 호퍼와는 달리 그리 죽어도 억울할게 없습니다. 해방후에 정적암살하다 자기도 암살당해 죽었으니깐요.
아...또 전쟁 나려나요.
개인적으로는 김구주석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음. 단순히 희생자로써 보기에는 너무 복잡한 사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불쑥끼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음. 여기에 북한과 통일해서 북한군의 일부가 게릴라전을 펼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시는분들이 많은데, 작은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릴라전을 펼치면 진압하면 되지요. 북한핵만 통제하고 중국의 청천강이북땅을 먹으러 오는것(중국은 북한유사시 함경도를 포함한 청천강이북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것이 확실시 됩니다)만 막으면,

그이후는 다 비교적쉽게 해결할수있니다. 백만명의 게릴라가 생긴다하더라도 다 진압해버리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북한지배층이 저항하면 다 진압해버리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200만명정도 죽이면 될겁니다.

비스마르크는 통일에는 철혈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흡수통일을 바라고 무력통일(왜냐하면 핵전쟁은 할수없기에)을 원하지 않지만, 일단 통일만해놓고 중국개입막고 핵만통제하면,
그이후에는 힘들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다 기본적으로 해결이 되는 사안입니다.



북한에 호퍼같은 인물이 나온다면 나폴레옹 말처럼 그냥 죽여버리면 그만입니다.
프랑스혁명도 피로이루어졌고 미국의 독립혁명도 피로 이루어졌고 메이지유신도 피로 이루어졌고,
조국근대화도 5.16혁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상대가 개종이 안되면 비무장화라도 시켜놓고 비무장화를 거부하고 무장을 하면 죽이면 그만입니다.

이 세상에 충돌없는 역사란 없습니다.
어그로 끌려는게 아니고 진짜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키아벨리가 한말이 있습니다.

"무장하지 않는 예언가는 실패할것이요, 무장한 예언가는 성공할것이다"고 했습니다.

아래는 마키아벨리 군주론 원문을 인용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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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량으로 군주가 된 인물들 가운데 모세·로물루스(로마의 건국자)·테세우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영웅) 등이 가장 뛰어나다. 새 국가를 세우고 새 제도를 만들면 구질서에서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이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아 있는다.

<<따라서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성공한 반면,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한다. >>무장한 예언자는 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 밀어붙일 수 있다. 인민은 변덕스럽다. 그들은 한 가지 일과 관련해 설득하기는 쉬우나, 설득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민이 군주를 더 이상 믿지 않을 경우, 힘으로라도 믿게끔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백만명의 게릴라가 생겨서 그걸 다 죽여야 할 정도면 북한을 우리가 점령해야 할 당위성이 없습니다. 그건 인디언 전멸시키고 땅 빼앗자는 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북한의 인구 차이가 백인들과 인디언 정도는 아닌데다가 그런 학살에 제재를 가할 국제사회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 경제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극도로 취약합니다) 당장 북한 문제에 간섭할 주변국이 부족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인들을 쓸어버리고 그 땅을 접수하는 건 근본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게릴라전에 대한 준비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통일해놓고 중국개입 막고 핵만 통제하면" - 다른 건 둘째치고, 중국의 개입을 어떻게 막을 겁니까? 우리가 북한에서 대학살을 벌이고 있으면 중국 뿐만 아니라 우선 미국부터가 적대적으로 개입을 시작할 겁니다.
백만명의 게릴라가 생겨서 그걸 다 죽여야 할 정도면 북한을 우리가 점령해야 할 당위성이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북한지역에서 주체사상체제라는 역사발전에 저해되는 것이 사라지는데.

미국이 개입할것이다.
미국인을 죽이고 싶다는 사람을 죽이는데 미국이 하지말라고 개입을 합니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예수를 믿지만 미국인들이 예수는 아닙니다.
자기대신 자기가 해야할 더러운일을 대신 해주는데 왜 개입을 합니까?


국제사회가 그리고 경제제제를 가할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우크라아나에서 친우크라이나세력이 친러시아 세력을 학살할때는 왜 쉬쉬하고 가만히 있습니까? (지금쌍방간에 학살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중국의 개입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고 물으셨는데.

중국에는 커다란 약점이 있습니다. 사회주의정치체제인데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점이지요.
중국의 커다란 빈부격차 부정부패, 사업할때중요한것은 능력이 아니라 인맥,
독재체제임에도 경제적문제때문에 정보를 완전히 차단못하는 사회
이러한 역사상유래없는 커다란 모순을 가지고있는중국

이러한 중국을 현재 지탱해주고 있는것은 딱 2가지

중화주의라와 고도경제발전.

이 두가지에 대한 믿음 때문에 중국상층부 중산층 빈민층이 단결하고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일본과 한국처럼 저성장국가로 바뀌어져 버린다면,

지금과같이 이같은 모순속에서 단결할수있을까요?

기억하십시요 중국만큼 역성혁명의 역사를 많이 가진나라가 없다는것을.

이 저성장->대량실업->중국분열->한국통일 심지어 중국영토일부(간도)를 한국으로 편입

이 시나리오는 몇몇 서양학자들이 예상하고 있는 시나리오 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분열되면 한반도에 개입할여력이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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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더 큰 문제는 핵인데 소위 참수작전은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시뮬레이션해봐도 성공확률이 희박한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핵통제는 다른 방안을 찾아야겠지요.
그리고 게릴라 죽이는것을 학살로 표현하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전쟁터에서 무장한적을 죽이는것이 학살이라니요. 게릴라전도 엄연한 전쟁이에요.

누가 들으면 제가 민간인 100만명을 죽이자고 한줄알겠습니다.
북한게릴라가 100만이던 200만이던 있으면 다 죽여버리면 된다 이이야기입니다.
무장한 적이니 숫자가 얼마던 죽여야지요.

여담으로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이 강대국간의 이해관계속에서 이루어질것이다라고 예견했다지요.

대학원때 주로 연구한분야가 이탈리아 통일사라고 하던데..

음. 제생각도 그렇습니다. 한국과 북한의 입장보다는 강대국간의 이해관계속에서 통일이 이루어질것입니다.

대륙과 해양사이에 끼인 반도의 운명이지요.

중국이 무너지면 중국의 원조로 굴러가는 북한경제는 일시에 완전히 붕괴될것이고.

그때 통일의 기회를 포착할수 있겠지요.

사실 게릴라진압은 부차적인것일분입니다. 주변국들 모두 한국에 옹호적인 상황이 된다면,

100만이 아니라 그 몇배의 게릴라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것입니다.

아니 문제삼기는 커녕 빨리 진압하라고 조를것입니다.

호퍼같은사람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맞선 사마귀 한마리일 뿐입니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중요한것은 주변국의 정세를 이용해서 통일하는거지 통일시에 발생하는 북한게릴라는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걱정해야할것은 바퀴에 맞서는 사마귀가 아니고 역사의 수레바퀴입니다.

일단 군주론을 다시 읽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군주론에서는 인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민들이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고 그 게릴라를 백만명씩 죽이는 상황은 절대 마키아벨리가 긍정하는 형태의 정권이 아닙니다.

중국은 대외 팽창에 결코 소극적인 국가가 아닙니다. 중일전쟁에 이은 국공내전이 막 끝나고 나라 전체가 전쟁의 참화에서 회복되지 못한 시점에서도 수십만 대군을 한반도에 투사한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여력이 없어서 참전할 수 없을 것이다? 수십년간 대전쟁을 치른 직후보다 여력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남한의 일방적 점령과 북한 주민 학살이라는 훌륭한 명분까지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북한쪽 반군이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역시 반군 백만명을 학살하는 막장 상황이 펼쳐지는 동안 미국 여론이 조용할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알타리무님이 원하는 대로 굴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역사는 늘 선택을 강요하고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습니다. 그 흐름을 놓치면 언젠가는 반대로 떠내려갑니다.
북한에는 분명히 백만명이라는 체제 수호 세력이 존재하고 2,500만명의 피지배 계층이 있습니다.
우선 백만의 체제 수호 세력중에서도 끌어안을 수 있는 만큼은 가능한한 함께 가야겠지만
백만중에 무장으로 저항하는 일부 혹은 대다수의 집단 때문에 역사적 흐름을 외면해선 안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링컨과 루즈벨트를 존경하는 이유중 하나가 고뇌의 결단으로 전쟁을 결정한것 입니다.
마키아 벨리를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모르지만 그는 네빌 체임벌린 같은류의 정치인들을 조롱했지요.
1. 역사의 수레바퀴는 원하는 대로 굴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말에 100% 이상 공감합니다.

그래서 모든 급진적인 그것도 폭력을 수반한 논의는 항상 여러사람의 의견을 모아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문제는 한반도 내부의 정치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움직임과 깊은 연관을 맺으며 움직여 왔습니다.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고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희생되는 전쟁과 같은 최악의 수를 막아내기 위한 것입니다. 역사적 흐름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돌아간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링컨의 경우 섬터 요새의 남군의 선제 공격, 루즈벨트도 진주만 공습이라는 피치못할 상황까지 몰려서 비로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전쟁은 복잡한 외교와 정치의 결론이 되어야지, 우리의 입장만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에는 전쟁이 주는 해로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자만이 전쟁이 주는 이로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도 하지요.

2.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군사 방면이나 무력 방면에서는 약간 걸러서 들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군주론의 헌정사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경험 많은 외교관이며 또한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지식인이지만 그는 군 경력이 없으며, 군주론을 포함한 그의 많은 저서들 역시 당대 인문학자들간의 토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마키아벨리에게 이상적인 군대는 칼과 방패로 무장한 병역의무를 진 시민들로 이뤄진 고대 로마 공화국의 군대의 이야기이며, 이것이 현대 사회의 경우에도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져야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키아벨리의 말도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 국가를 지킬 수 있는 국방력의 확보 측면에서 봐야지 온갖 시스템을 무력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표현은 더더욱 아니고요.

3. 비스마르크의 통일 전쟁 조차 이기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책략(엠스 전보 사건 등)과 프랑스의 항복 후 알자스-로렌 지방을 제외한 프랑스 영토 내에서 재빨리 빠져나온 기민함이 수반이 된 것입니다. 한국군이 북한의 항복만 받고 다시 휴전선 이남으로 돌아가는 경우처럼 말이지요. 독일군이 프랑스에 장기간 머물렀을 경우 독일군도 프랑스에서 실패를 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지요. 그만큼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단기간에 최소한의 무력으로 끝내고 미션 달성 후 재빨리 빠져나오는 손자병법에 기반한 정치를 펼친 것이고요. 저는 차라리 마키아벨리보다는 전쟁과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손자병법을 보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만…

4. 손자병법은 원정을 떠났을 때 명심해야 할 전략적 원칙으로 곽지분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원정전에서 승리하는게 전부가 아니라 그 지역을 안심한 채 지배하고 내것으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명심해야 할 전략적 자세가 바로 곽지분리인 것이지요..

(곽지: 성곽을 만들어주고 / 분리: 이익을 나누라.) 지배 지역에서 뭔가 인프라를 만들고 난 다음 거기에서 나온 이익을 나누라는 것. 즉 해당 국가 사람들 중 일부를 이익으로 포섭해서 협력집단을 만들어내라는 말이지요.

이 말을 남북 문제에 적용하면, 무력으로 이긴 후 북한군이나 노동당 고위층, 심지어 김정은의 최 측근이라도 아무리 그가 극악무도한 인권 유린을 행한 자라고 해도 이익으로 포섭해서 협력집단으로 만드는 비정함도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한편으로는 이렇게 할 경우 남한에 넘어와 있는 탈북자라던가, 기존 체제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느낄 박탈감은 어떻게 할 것이며,

백번 양보하여 이들을 포용한다고 하더라도 How?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라는 문제는 더 어려운 숙제가 될 수 밖에 없지요. 이권의 재조정이라는게 그리 쉬운 문제였으면 이 세상은 전쟁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다들 말씀고맙습니다. 일단 군주론에서도 점령지역을 병합하는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근데 어제 군주론책이 집에 있는지 찾아봤는데 없더군요.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해보자면,
군주론은 기본적으로 군주가 피지배계층에게 상과 벌을 주어 그들에게 이익과 손해를 주어 권력을 유지시키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무력사용에 주저하지말아야된다는 이야기만 해서.
다들 제가 무력사용에대한 측면으로만 군주론을 이해하고 있지 않는가.하고 이야기를 하시는데.그렇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군주론적인 통치스타일은 이렇습니다. 첫째단계는 점령후에 피지배계층을 분류하고 군주가 이들중 종래의 사회보다 더이익을 줄수있는 집단을 선택합니다. 당연히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고 피지배계층에게 전부다 더이익을 줄수있다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불가피하게 기존체제보다 더이익을 줄수업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둘째단계는 이들 종래의 체제에서 사는것보다 손해가 날수밖에 없는집단은 어떻게는 현재의 통치제의 불안요소및 반란을 일으킬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럴때 군주는 미적지근한 은혜를 주기보다는 저항할생각이 안들정도의 가혹한 공포를 보여주어서 이들을 무력화시켜야한다입니다.

철저하게 군주론적인 인간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이고 호퍼와 같은이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이익으로써 통제할수있다면 호퍼와 같이 이상으로 저항하는 사람(원문에는 야심가로 표현했습니다)은 소수이므로 이를 통제하는것은 어렵지않다입니다.

만약 북한의 게릴라가 100만명정도면 다죽여도 된다라고 말하는것이 북한인구 2500만에서 100만명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북한민중들에게 지금의 삶보다 더나은삶을 줄수있다면 사상의 힘으로 움직이는100만명의 북한게릴라를 죽이는것은 그렇게 통치에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모택동의 말대로 게릴라는 물고기요 민중은 물이라고했습니다. 물이우리편이라면 물고기야 물고기떼라할지라도 죽이는것은 어렵지 않고 부담도 안됩니다.

최홍락님의 말대로 이권의조정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야지요. 힘들어도 해야지요.^^
Highlander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체임블린같은 자를 경멸했겠지요.
전범재판때 나치스지도자들이 독일이 체코를 침공했을때 폴란드를 침공했을때 그때 서부전선에는 몇개사단밖에 없었다. 그때 영국과 프랑스가 맹공을 했으면 나치독일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초반에 무너졌을것이다라고 말한적이 있지요. 무력만능주의만큼이나 오류가 많은게 평화만능주의입니다.

야채님 무장한반군을 사살하는것을 자꾸 학살로 표현하시는데 그게 과연 옳은 단어선택인지요.
북한 주민 학살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무장반군을 사살하는이야기만했는데. 왜 북한주민학살이야기가 나오는것인지요. 미군이 알카에다나 is 이라크반군을 사살하는데 미국여론이 이것을 반대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왜 무장반군을 죽이는것을 학살로 표현하는지요????? 이해가 안됩니다.
북한지역에 커다란 전투가 벌어지면 중국이 개입할것이다. 하지만 주목해야할점이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미국이 핵폭탄을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떨어뜨린이유로 그후에 단한번도 핵보유국끼리 전쟁을 한적이 없습니다.(6.25는 중국이 핵무장을 안했기때문에 개입할수있었는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전쟁안합니다. 먼저 미군이 북한으로 진격하면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충돌의 우려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할수없습니다.
단지 우려는 일부북한지역 청천강이북지역같은 일부지역을 중국이 먼저 선제적으로 점거하는것입니다. 일단 중국이 점거한지역은 미국도 무력으로 손쓰지는 못하니깐요..
이점이 제일우려스러운점입니다.
그러면 야채님이 생각하시는 통일방안은 무엇인지요?? 저는 중국 분열시점이후에 북한흡수통일후 북한게릴라토벌입니다. 그러면 야채님이 생각하시는 통일방안은 무엇입니까??
북한의 게릴라가 100만명정도면 다죽여도 된다라고 말하는것이 북한인구 2500만에서 100만명은 소수입니다.

-> 차지철 경호 실장도 10.26 암살 직전 캄보디아에서는 100만명 죽여도 아무 문제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100만명이라는 숫자는 죽여도 좋은 숫자가 아니며, 100만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한들, 그걸 보고 나머지 사람들이 동요하여 도미노 효과로 반발이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순수 군인만 100만명이라면 그 가족들이나 연관된 사람들까지 불안이 전염된다면 이는 그냥 평양 찍고 내려오는 것만 못합니다.

그리고 100만명 죽여도 아무 문제가 없을거라고 주장한 차지철과 크메르 루즈는 결국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었지요. 한명은 암살과 더불어 자기 주군까지 끌고 내려간 셈이고, 크메르는 결국 반발을 일으킨 세력이 외세(베트남)을 끌어들여 축출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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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군주론적인 인간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이고 호퍼와 같은이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호퍼와 그를 따르던 무리 역시 순수한 이상과 애국심에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잘 지내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외국군대가 물자 징발하고 군인으로 사람들을 징발해가는데, 이 역시 이익을 침탈당한 것에 저항한 분쟁의 일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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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락님의 말대로 이권의조정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야지요. 힘들어도 해야지요.^^
-> 그 이권의 조정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힘들어도 해야 한다는 말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세부계획도 제대로 짜여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동서독 군 통합과 예멘 군 통합시 발생한 문제점을 감안해야 하는 것은 둘째 치고, 그 성격, 규모는 비교 불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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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학살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무장반군을 사살하는이야기만했는데. 왜 북한주민학살이야기가 나오는것인지요.

-> 무장 반군 사살 시 부차적으로 발생한 민간인 사살 문제와 고문 등 수많은 사례들로 인해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이 고조된 경우가 북한의 점령 시에도 발생 안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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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은 전쟁안합니다. 먼저 미군이 북한으로 진격하면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충돌의 우려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할수없습니다.
-> 네. 그런데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국이 북한으로 먼저 치고들어간다는 아이디어 또한 실현 가능한 방법도 아니고요. 설령 미국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위위구조(위나라를 공략하여 조나라를 구한다.)의 방법으로 대만이나 남중국해의 영향력 확장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현재의 북한의 상황을 그대로 동결시키고 태평양 함대의 역량을 남중국해 봉쇄에 집중하는게 더 우월한 전략인데, 굳이 이 균형을 스스로 깰 이유는 없지요.

이미 통일 방안은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게 없습니다. 동서독의 통일도 소련의 힘이 약화된 세력 불균형 상황이라는 시기에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특이한 상황이었고요. 지금은 러시아-중국-북한 / 미국-일본-한국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신 냉전 상황인데, 여기서 통일의 가능성은 거의 닫혀진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이런 균형 상태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대한민국과 북한은 이제 오스트리아와 독일처럼 서로를 독립된 국가로 용인해 나가는 수순으로 가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위위구조라는 좋은 고사성어를 가르처주시어 고맙습니다.

"동서독의 통일도 소련의 힘이 약화된 세력 불균형 상황이라는 시기에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특이한 상황이었고요. 지금은 러시아-중국-북한 / 미국-일본-한국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신 냉전 상황인데, 여기서 통일의 가능성은 거의 닫혀진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

동의합니다. 현상황에서 통일은 불가능하죠. 그러나 상황은 변할것입니다.
중국의 현체제는 붕괴되고 그때는 통일을 할수있는기회가 올것입니다.
통일을 하는것도 주변정세의 영향을 받지만 통일은 안하고 2개국가로 가는것도 주변정세의 영향을 받습니다.
즉 우리와 북한이 서로 통일을 원하지않더라도 주변의 정세가 우리에게 통일을 강요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통일을 하기 싫어도 할수밖에 없겠지요.
주변의 정세는 변합니다. 아니 반드시 변합니다.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가 양랍하는 중국의 기형적인 체제는 오래가지못합니다. 고도성장이 저성장으로 변하면 분명 중국에 역성혁명이 일어납니다.
알타리무/ 이야기가 계속 헛도는 이유가 아무래도 백만명의 게릴라를 학살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북한 인구를 2500만으로 잡아도 백만명이면 인구의 4%에 해당됩니다. 전체 인구의 4%가 직접 게릴라전에 나선다는 것은 '고작 4%'가 아니라 엄청난 숫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도 전체 성인(전체 '인구'가 아닙니다)의 2%에 불과했고, 이것도 "2%에 불과"가 아니라 대단히 높은 비율에 해당됩니다. 일제의 남한대토벌에서 의병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지만, 이 때의 포로 및 사상자도 2만명 수준이었습니다. 그게 일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고작 2만명박에 안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습니까?

알타리무님은 반대세력=게릴라 정도로 계산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반대세력 중에서 실제로 무장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극소수입니다. 애당초 군이라는 것은 게릴라건 정규군이건 극도로 소모적인 조직이라서,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훨씬 큰 규모의 경제인구가 없으면 지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게릴라가 백만이라면 그 게릴라를 소극적으로나마 지원하는 주민들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정부의 직접적인 동원을 받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전체 인구의 4%가 게릴라전에 직접 나설 정도면 이건 '고작 인구의 4%'가 아니라 사실상 북한 인구 대부분이 대한민국에 대해 베트남전 수준으로 격렬하게 저항하는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이건 알타리무님이 백만명을 죽인다는 말씀이 "게릴라전과 관련된 민간인도 전부 학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전제가 들어가기는 합니다만, 민간인을 죽인다는 건 아니라고 강조하셨으니 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까지 학살한다는 건 또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통일을 한다고 해도 당연히 북한이 대한민국에 대해 그렇게 극단적인 수준의 저항까지는 선택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그런 극단적인 저항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그랬건 우리의 정책 때문에 그렇게 되었건 북한 주민이 그 정도로까지 격렬하게 저항하게 된다면 이미 통일은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백만 명을 쏴죽이고도 나머지 인구가 순순히 따를 거라고 가정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가 그들에게 '한민족'이 아닌 '북조선인'이라는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우리 손으로 각인시켜주는 꼴입니다. 소수의 저항 세력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그건 그 저항 세력이 '소수'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게릴라전에 나선 인구가 백만명이라면 이미 무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고 처음에도 지적했지만, 게릴라를 그냥 진압하자고 '결정'한다고 해서 진압되는 게 아닙니다. 그랬으면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고생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겠지요. 국군은 북한과의 전면전에 모든 촛점을 맞추고 있지 대게릴라전은 장비도 없고 교육한 적도 없으며 경험도 없고 개념 정립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수준이면 백만명의 게릴라를 효과적으로 진압하는 게 아니라 큰 피해를 입고 주민들을 학살하는 식의 대응밖에 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게릴라가 외부로부터 고립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중국이 그들을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면전에 대한 대비태세를 낮추고 그 역량을 게릴라전에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면전과 게릴라전을 모두 준비하기 위해서 국방에 들어가는 자원을 두 배로 늘리는 것도 현실성이 없습니다. 백만명의 게릴라와 싸워도 이길 거라는 것은 근거없는 자신감에 불과합니다.

ps. 써놓고 보니 이미 최홍락님이 언급하신 부분과 겹치는 내용이 많군요. 겹치기는 하지만 일단 글은 이대로 놔두겠습니다.
중국의 저성장을 기대하고 정권이 교체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것도 중국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학자들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나 싶습니다. 근래에 와서 중국의 성장세가 다소 주춤해 졌다는 것을 내세워 서구의 언론들은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라는 성급한 진단을 내놓기도 합니다만, 이는 중국 지도부 스스로 선택한 정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장쩌민 시대와 시진핑 시대는 엄연히 상황이 다르기에 정책의 방향 또한 바뀌는 것은 당연합니다.

EU의 민간 싱크탱크인 유럽외교관계협의회는 시진핑 이후의 중국이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등 여러가지 문제를 겪고 있지만, 중동에서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발생한 쟈스민 혁명같은 일이 중국에서도 유사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나름의 방식으로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방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단수라는 것이죠. 중국 정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을 철저하게 검열하고 탄압하면서도 때때로 필요할때는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보시라이 사건 또한 단순히 개인 비리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지도부의 권력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모든 권력이 김정은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의 말 한마디에 권력 구도가 변화하는 북한과 달리, 중국은 권력 투쟁에서 훨씬 더 교묘한 점이 대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과거 삼반운동, 오반운동, 문혁까지도 모택동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대중을 선동하고 움직였죠. 그래서 대다수 대중 또한 지도부에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자신들도 같은 공범이라는 의식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중국의 정치적 특수성이죠.

앞에서도 여러가지를 언급하셨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각처럼 단순하게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는 않지요. 그래서 정책 하나를 실행하는데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고요. 역사를 많이 아시는 분이 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물으신다면, 결국에는 철저한 연구 외엔 답이 없는것이지요.
야채님/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이제 게릴라전의 효과가 약해질것입니다. 이이야기를 함에 앞서 국군은 과거에 베트남전참전 그리고 빨지산토벌을 한 군대임을 미리이야기하고싶습니다.왜 대한민국군대가 대게릴라전에 대한 경험과 개념이 없다고 하시는지?.
아무튼 본래 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게릴라전의 효과가 이제 매우 약해질거라는 점을 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HcRsR0Dttc
영상을 보시조 현재 대게릴라전입니다.
장비와 기계의 발전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것입니다. 이제 무인기도 발전하고 있고 게릴라는 큰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보병이 주력인 적 게릴라라는것은 이제 아군에게 좋은 오락거리일뿐입니다.

앞에서 서술한바와 같이 민중이라는것은 마키아밸리의 말대로 변덕스럽습니다. 100만명의 적게릴라를 죽이더라도 북한대중들에게 경제적인 혜텍이 간다면 결국 그들을 흡수하는데 성공할것입니다. 로마가 갈리아를 정복하듯이요.
로마는 완전히 적대적이고 다른 문명(게다가 다른민족이기까지 했는데!)을 성공적으로 병합하지 않았습니까?
갈리아의 저항도 전인구의 5%이상이 무장한 매우극단적인 저항이었습니다.
라틴족의 로마도 한것을 왜 한민족의 대한민국이 못한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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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락님/ 중국저성장시에 중국사회는 그 모순을 이기지못하고 붕괴될것이다라는것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너무 긍정적으로만 본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좋은비판을 감사합니다. 제 스스로 이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공부해보겠습니다.
전세계의 공적이 되는 IS나 소말리아 해적 등 게릴라나 빨치산, 해적은 그에 대응한 전술능력이 과거에 비해 발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술 능력이나 장비, 기계의 발전과는 별도로 게릴라가 창궐하는 환경을 바꾸지 못하면 대 게릴라전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와 행정의 영역이지, 기술만의 문제로 해결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더욱이 아무리 현대전의 성격이 바뀌어도 전쟁을 오락거리로 취급하는 것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볼때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대 게릴라 전술이 기계의 발달과 함께 발전한다는 것은 그에 대응한 게릴라의 전술이 우리의 시각을 훨씬 뛰어넘어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의 대 게릴라전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 로마가 했던 일을 왜 우린 못하냐고 하실수 있지만,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서 보여준 여러가지 뻘 사례들, 베트남 전쟁에서 중대 전술 기지 전술이라는 획기적 전술을 도입하였지만, 몇가지 점검하지 못한 소홀히 한 것으로 인해 빚어진 참사들(짜빈박 전투, 얀케 패스 전투에서의 고전)의 경험을 간과해서도 안됩니다. 대 게릴라전으로 돌입할 경우 한국군의 희생이 어느정도 될지 예상할 수 없으며, 치밀한 준비없이 낙관적인 예측만 가지고 돌입할 경우 북한 지역에서 한국군이 치루는 희생이 예상보다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 못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민심의 변덕스러움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데, 희생이 늘어날 경우 한국군의 북한 영토 파견을 지지하는 민심이 견고할 거라는 믿음이 깨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군은 북한 영토의 치안을 구 인민군에게 맡기고 나오게 되겠지요. 철저한 준비 없이는 어떠한 전쟁에서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신중하게 언급되어야 하는 이유이지요. 이 것을 문신들의 문약과 호연지기의 부족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길 수 있는 전쟁을 패배와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제발 손자병법과 군주론이 언급한 정치와 전쟁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가할 수 있길 바랍니다.
자꾸 제가 무력을 언급해서 무력만능주의자라고 비추어지는것같아서 슬픕니다.

저는 해볼수 있는 것을 다해보았는데도 북한에 게릴라가 100만명이상나타나는 최악의 상황이 나오면

그래도 포기하지말고 무력을 써서 라도 제압을 해야한다는이야기입니다.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요. 만주도 중국에게 뺐겼는데 북한도 뺏길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식의 한민족의 영역이 축소되면

장차 한민족이 중국한족에게 소멸되어버릴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에서 모택동의 물과 물고기이야기를 하면서 물(민중)을 우리편으로 만든다면 물고기(게릴라)들도

제거할수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무력만 쓰자는이야기는 결코아닙니다. 무력을 쓰는와중에서도

계속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노력을 해야지요.

하지만 100만명의 적게릴라가 나오는 최악의 상황이라도 포기하지말고 100만명을 다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통일은

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100만명의 게릴라는 비교적 해결가능한 문제입니다.

겨우 이정도 현상가지고 북한과 양립하자는 것은 정말로 상무정신의 부족입니다.

한국국력으로 북한핵문제나 중국개입은 해결할수 없어도 일단 그 2가지 문제만 없으면

나머지는 다 해결가능합니다. 해결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참. 통일후에 북한에 적게릴라가 100만명쯤 나타나면 통일포기하고 내려와야한다는 이야기를

6.25참전용사들이나 6.25때 순국하신 충국선열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마음이 정말로 무겁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할수있는것인지..... 정말로 사람들의 이기심에 마음이 슬픕니다.
군대와 같은 대규모의 조직은 그냥 "어디 가서 누굴 공격해" 라고 하면 게임처럼 척척 가서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병력의 이동, 장비의 이동, 보급의 조정 등을 모두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병사들이건 부사관이건 장교건 모두 작전과 임무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실전에서 그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계절마다 훈련을 하며 준비상태를 점검합니다. 그런데 국군의 모든 작전과 교육은 전면전을 대상으로 맞추어져 있지 대게릴라전을 대비하는 작전을 각 부대에서 세우지도 않고 교리를 교육시키지도 않으며 당연히 그에 대한 훈련도 없습니다. 베트남전을 다녀왔다고요? 그래서 베트남전에서 본 대로 대게릴라전 교리를 세워서 훈련하고 있습니까? 소수의 특수부대라면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수십만 육군 대부분은 대게릴라전 교리를 교육받지도 않고 훈련을 받지도 않습니다. 기껏 관련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북한의 특작부대에 대한 대비 정도겠지요. 하지만 특수부대와 게릴라는 같지 않습니다.

군대의 역량이라는 것은 병사와 장교들이 실제로 훈련을 하거나 교육을 받지 않고 획득하거나 유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징병제인 대한민국에서 (소수의 특수부대나 전략무기가 아닌) 국군 다수의 장병이 움적여야 하는 임무에서의 기본적인 역량은 전혀 비밀이 될 수 없습니다. 무슨 역사책 같은 걸 보고 짐작하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현대의 기술 발달로 대게릴라전에 더 뛰어난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국군이 그런 기술을 대게릴라전을 위해서 운용하고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지금부터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대게릴라전 능력을 높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전면전을 대비하는데 투입할 시간과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군은 그런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대게릴라전을 수행하는 정규군이 더 현대적인 기술을 이용하는 동안 과연 게릴라들은 60년대와 똑같은 무장에 똑같은 전투방식으로 싸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술이 발달하고 '스마트'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게릴라 쪽에 오히려 더 유리한 조건입니다. 더구나 '현대적 기술'은 최신 전투기나 전차 등에 적용하기에는 돈이 많이 들겠지만 게릴라용 무기 정도에 적용할 만한 기술은 오히려 점점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암호화된 통신은 과거에는 많은 장비와 훈련된 인원이 필요했지만 지금이라면 암호화를 적용하는 메신저 앱을 설치하는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정규군이라면 어차피 암호화를 위한 돈과 인력 정도는 쉽게 투입할 수 있지만 게릴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는데, 그런 불리한 점들이 아주 쉽게 해결되는 겁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기본적으로 현대의 정보 기술은 분권적인 점조직간의 네트워크 쪽에 촛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규군보다는 게릴라 쪽에 더 힘이 실리는 겁니다.

라틴족의 로마가 한 것을 대한민국이 할 수 없는 이유는 상대방도 같지 않고 시대상황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고대보다 대량 학살을 하기에 적합한 무기들이 많이 있지만, 현대에 고대처럼 학살을 해대는 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습니다. (로마군의 학살의 기록도 카이사르 본인의 기록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당시에는 갈리아인들을 학살하는 게 로마인으로서 특별히 잘못된 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 카이사르 본인의 기록을 보더라도) 예컨대 카이사르는 아바리쿰을 점령하고 4만명의 주민들을 학살해서 800명만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바리쿰이 대단한 죄를 지은 건 아니고, 아바리쿰 점령은 군량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도 이랬습니다. 현대에 이런 식으로 도시를 포위하고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하면 백만명은 우습게 넘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러자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북한 같은 국가는 고대의 갈리아처럼 부족 단위로 분열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카이사르라고 해도 갈리아인들이 갈리아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나의 민족으로 뭉쳐있었다면 이들을 정복하는 건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갈리아인들이 베르셍게토릭스를 중심으로 어설프게나마 연합했을 때 카이사르가 얼마나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까? 물론 경우에 따라서 북한 게릴라들도 분열해서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는 막장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장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굳이 우리 손으로 백만명을 학살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양쪽 모두에게 미증유의 손실을 안겨줘서라도 이뤄야할 통일이라면 그 통일이 무슨 이득이 있어 국민에게 강요를 해야 하는지요. 차라리 침략을 받아 격퇴하여야할 명분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이것을 정신력의 문제로 단순히 취급한다면 반드시 위태로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순국선열 및 참전용사를 언급하셨는데 실패한 정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인 전쟁을 희생자로 멋지게 포장하는 실수는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국가는 죽은 영웅들의 공동묘지가 아닌 살아있는 시민의 터전으로 작동해야 하고요. 그걸 위해 영웅들의 희생이 있는것이지요. 그들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100만의 희생도 불사해야한다는 소영웅주의가 아니라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을 보수적으로 관찰하는. 위태롭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전략을 짜는것이 될 것입니다.
야채,최홍락님//두분의 글 모두 잘읽었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알타리무// 백만명 죽이는 거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더니 말이 막히니 이젠 뜬금없이 기술의 발달로 게릴라전의 효과가 약해진다고 하시네요 ? 미군이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기술이 없어서 그렇게 많은 사상자를 냈나요 ? 댁이 이 세상에 좀더 폐를 덜 끼치는 유일한 방법은 게시판 어지럽히지 말고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겁니다.

주인장님// 제발 저 양반은 블락 좀 하시면 안될까요 ?
아프파키스탄 이라크전 미군전사자는 지금까지 다합해도 1만명을 넘지 않습니다.
그게 많습니까?

북한게릴라 백만명죽이는데는 5만명의 전사자도 안넘을겁니다.
그정도 피해를 두려워한다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합니까?

전형적인 우리나라 역사에서 볼수있는 문신들의 문약(文弱)이군요.
아니면 너무 평화시기가 길어져서 상무정신이 다 없져버리것은 아닌지 크게 걱정이 됩니다.

남자라면 호연지기도 길러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자신과 의견이 다른자를 용납하지 않는게 바로 북한식 '주체 사고'의 가장 큰 문제이지요.
이점이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대화가 어떠한 합치점도 도출할수 없는 가장 큰 이유임에도
스스로의 무지를 깨닳지 못하는 자들이 잘난척을 했거나 알면서도 이적 행위를 한거겠죠
알타리무/
경악스럽네요.
전쟁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는거야 어쩔 수 없지만
5만명 정도는 죽어도 된다는 것하곤 다릅니다.

호연지기 운운하는 것도 웃기고
댁을 보니 욥 트류니히트가 생각나네요 ^^
ㅅㄴ/아니 근데, 한국에서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4500명수준인데. 사람죽는거 두려워하면 자동차는 어떻게 타고 다닙니까? 저는 그냥 전쟁하자고 한게 아니고 통일할경우 다수의 게릴라가 발생하더라도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북한을 통일해야한다는거입니다. 해외의 다른나라를 침략하는데 5만명정도 죽어도 상관없다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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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욥 트류니히트는 은하제국에 대규모 원정을 실시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예를 잘못드셨어요.

중조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

제2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맡으면서 체결국에 대한 특정 국가의 침략을 방지한다. 체결국 가운데 한 쪽이 몇몇 동맹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중조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이 파기 되기전에는 전쟁는 불가합니다.

나시카님께서 미국과 함께 라는 조건을 붙이시었기에 한번 댓글을 받아 올렸는데.....
1조가 문제입니다....

제1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아시아와 세계 평화 그리고 양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북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 계속 원조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조약을 파기 시켜는 것에 0순위를 두워야.... 조약을 파기하면 Thaad 를 혹 철수할 용의가 있다고 떠보시는 것은 어떠실런지요....
그것은 아마 안될것입니다.

북한제재에 동참안해서 싸드배치하는것입니다.

북한제재에 동참안하면 싸드배치하는것은 중국도 예전부터 예상했었지요.

그런데도 굳이 북한제재에 동참안하는거보면,

이미 중국이 싸드한국배치냐 북한제재냐에서 싸드한국배치를 선택한것같네요.
이 조약을 파기 시켜는 것에 0순위를 두워야.... 조약을 파기하면 Thaad 를 혹 철수할 용의가 있다고 떠보시는 것은 어떠실런지요.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제까지 말씀하신 것 중에 가장 나이브한 발상입니다.

2000년대 이래 현재까지 한국 외교전략의 핵심 기본 기조는 ‘박쥐의 각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는 2006년 1월 19일자 한미 양국의 공동성명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해에 있어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지요.

결국 이 성명에서 지칭하는 동북아 지역 분쟁은 미중간의 충돌을 의미한다. 결국 미중간의 충돌에 한국이 원하지 않는 한 한국은 그 충돌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한번 요약하면 2006년 성명의 기본적 의미는 한미군사동맹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대상으로 한 동맹이며, 그 외 미중간의 대결구도에서 한미동맹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고요.

이 같은 박쥐의 각오는 2006년 이후 한국 정권의 교체에 상관없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바, 그 박쥐의 각오는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한 것에서 보듯이 현 정부에서도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한미군사동맹은 오로지 북한을 대상으로만 작동하며, 중국을 대상으로 한 작동 여부는 2006년 성명의 유효 여부에 상관없이 여전히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에 달려 있습니다. 그 일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주한미군이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유사시 한반도 내 기지를 유지하면서 제3국 군대와 직접 교전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현재 X

-한국군 자체 무기로 미국의 MD 체계에 편입할 것인가? 현재 X

-중국에 대항하는 성격의 미국 주도 다국적 연합연습에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나? 현재 X

-한국 외교부가 동남아 해양관할권 및 도서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의 입장을 비판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재 X

-한국군 해외파병부대가 대민지원에 올인하지 않고, 실제 전투영역에서 미군과 같이 싸울 수 있을 것인가? 현재 X

-주한미군의 THAAD 배치를 용인할 것인가? 이제 O

한국은 한미동맹과 관련한 무수한 사안에 대해 미국에 대해 계속 NO라고 이야기했으며, 간만에 THAAD를 두고 Yes라고 한 것이지요. THAAD는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며, 동시에 주한미군을 방어하는 무기로 볼 수 있습니다. 주한미군을 주둔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이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필요하다는 방어무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건 논리가 궁색하지 않습니까. 이걸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서 철수할 용의가 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동맹에 대한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나타내는 것이고요.
최홍락님 감사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동문서답이 저의 주특기이기에.... 똑 한번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한미 관계를 한번 살펴 보고 싶어서....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 다시금 날카운 비평을 부탁드립니다....

미국이 6.25사변에 참전하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 어쨌든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반도에서 죽어 나갔습니다. 3만 6천명이 죽고 10만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 남한은 정말 풍전등화의 위기속에.... 전쟁에서 져서 그렇게 망해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처지이였고....

국공내전으로 실전 경험이 많은 중공군은 무기/보급/지휘/정보 모든면에서 부족한 국군을 작살내어서 참으로 어려운 전쟁이였습니다.

한국군이 중공군에 대항하여 열심히 싸웠고 유엔 연합군 특히 미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이였습니다.

더욱 고마운 것은 미군이 함께 싸워 주었을 뿐 아니라 싸우는 것까지 가르쳐 주어서 이후에도 북한 적화통일의 야욕에서 버티어낼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국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할 수 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과거를 잊어버리는 과오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사드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조중동맹이 얼마나 엄청난 영향력을 한반도에 끼치고 있는지를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더욱 한미 동맹을 더욱 견고하여....중공도 더욱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 북한에 더이상 미련을 가지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야 하는데..... 쉽지는 않겠죠.....

중공이 원악 욕심쟁이에... 거짓말장이여서.....

현 대한민국에는 이순신도 많이 있고 원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더 많아질뿐 아니라 하나로 단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같은 보수 우익과 종북이 결코 하나 될 수는 없겠지만.... 손을 내밀어 통일을 향해 함께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미 동맹을 견고히 하는 것은 한국에 분명히 유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안보상의 불안정성을 holding하기 위한 레버리지의 의미로 생각해야지, 중국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행사하기에는 양 국간의 이해 관계가 달라서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드 역시도 칠곡이나 성주 등 현재의 후보지로 떠오르는 지역들과 미사일의 사거리를 감안할 때, 평택과 군산의 미 해군 기지만을 방어하는 수준인데, 이게 반드시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라느니 아니면 중국에 큰 위협을 주는 것처럼 오버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2010년 진행된 한미연합훈련 사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은 전력증강에는 관심이 없고 자국민 철수 작전에만 집중해 있으며, 통일 여건 조성보다는 영변 핵시설 제거에 전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에 우리 측 합참의장이 두 차례나 연합사령관의 관심을 촉구했지만 자세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만 탓할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역시 명목상으로는 모르겠으나 한국의 입장이 편할 때 미국의 이해와 일치된 행동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누구 하나 잘못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한미 동맹의 강화라는 구호를 어디까지 실행할 수 있느냐는 우리의 Capacity와 향후 전략에 의해서도 그 수준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조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의 영향력을 과대 평가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드려야 하는 것이 중국이 한국과 미국측에 과거에 북한 붕괴시 시나리오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한반도 통일 시 한국은 평양 외곽인 평안남도와 황해남·북도를, 미국은 강원도, 중국은 함경남도와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를, 러시아는 함경북도를 각각 통제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양은 4개국 공동 담당 구역으로 지정하고요. 이는 중국이 북한과의 조약과는 별도로 중국이 한반도와 태평양 진출을 꾀하고, 미국과 일본 등 해양세력을 저지하려는 전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중국은 북한에 미련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전략이 북한의 안전과 일치하는 수준 내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냉전이라는게 복잡합니다. 아예 전쟁이 터져서 선악과 유능함과 무능함이 이순신과 원균마냥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두뇌싸움이라는 것이지요. 쿠바 핵위기 때의 백악관의 고뇌의 수준의 갈등이 몇십년동안 반복될 것입니다. 쿠바 핵위기에서도 어떻게든 평화적인 해결책을 내세운 백악관의 젊은 참모들, 국무부, 봉쇄 작전이라는 절충안을 들고 나온 해군, 커티스 르메이로 대표되는 강경파 공군이 연일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며 난상토론을 해왔지요. 여기서 누구 하나 무능하다거나 누구 하나 악인으로 몰고갈 인물들이 누가 있었습니까? 이걸 조정해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일은 단순히 단결하면 모든게 다 좋다는 의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p.s. 여담이지만 쿠바 핵 위기 전 미국과 소련 간의 물밑 협상에서 미국은 소련에 터키에 있는 미사일을 후퇴시키는 어찌보면 동맹을 그냥 버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비정한 결정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저는 이게 진짜 마키아밸리의 냉혹한 정치처럼 보입니다.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냉혹한 수단이라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 발휘되는 예술로서의 의미가 더 맞다고 보고요. 메테르니히는 유럽의 균형상태를 만들기 위해 여러 소 국가들 뿐만 아니라 한때 동맹인 러시아도 버리는 정도의 수단도 서슴치 않았는데, 때론 냉혹함을 보이되 절대 피흘리지 않는 (아니면 자기 손에 피 묻히지 않는) 수단을 찾는 것이 정치가 아닐까 합니다.
다른것은 다동의하고 좋은의견인데.
근데 쿠바핵위기관련하여 터키에있는 미국 핵미사일기지를 빼버리는것이 터키를 버렸다고 표현하시는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왜냐면 터키의 미국핵마사일기지만뺀거지 터키주둔 미군까지 뺀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핵미사일기지가 자국내에 남아있으면 소련의 핵공격을 무조건받는것을 고려해볼때 반드시
터키측에 불리한 결정이었다고 보기 힘듭니다.다시말하지만 터키의 핵미사일기지만뺀거지 터키에 있는 미군전체를뺀것은 아닙니다.
고견 감사드립니다. 최홍락님..... 꾸벅

1. 일본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2. 북한 붕괴시 4개국 분활 통제에 관련된 증빙 자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3. 90년초 중공 시장 개방시 20년 이후를 내다보고 헤지(hedge)를 어떻게 걸어 둘 수 있었을까요?
그외의 의견은 최홍락님의견과 저랑같은부분이 많습니다.
일부 아주강경한 보수들은 미국이 북한이나 중국을 공격해줄것이라고 여기지만 미국은 침공할계획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러니까 클린턴행정부에서 북한을 전면적 침공하려고 했었지요. (북한처음핵개발할당시에) 김영삼대통령이 반대하고 김대중이 중재하여 지미카터를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것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물론 그때 북한이 지미카터에게 약속한것은 다깨고 아예 핵보유국의 지위로 기여히 갔지요-사실이것과 고난의 대행군때 북한지원 때문에 김대중은 보수우익들한테 천하에 개!@#$!@$#로 찍힙니다. 한반도의 통일의 기회를 날림사람으로써요.)

아무튼간에 핵폭탄이 사용된이후 핵보유국끼리 전쟁을 한사례는 없습니다.
지금 중국도 북한도 핵을 가지고 있으니 미국이 북한이나 중국을 공격할일은 절대 없습니다. 만약한다면 곧바로 핵으로 전면적인 선제공격을 할것이지. 재래식무기로 공격하지 는 않을것입니다.
우리가 핵보유국인 북한을 공격하는것은 더더욱말이 안되구요.

결국 통일에 있어 무력을 제외하면 남은 방법은 2가지죠 평화통일 아니면 흡수통일, 평화통일이야 북한김정은이
통일이후에 자기가 망하고 북한민중들에게 살해당할꺼 뻔히 아니까. 당연히 할생각이 없을테고
나머지 한방법은 흡수통일인데,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이상 북한은 버틸수있습니다. 역으로
중국의 북한경제지원이끊기면 6개월을 못넘기고 북한은 체제가 붕괴되버림디다.
즉 흡수통일할려면 중국이 북한에게 경제적지원을 끊는 상황이 와야합니다.
그런상황이 올려면. 중국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처리를 해야합니다.

중국을 경제적으로 어떻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여러조건중에하나가.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중국을 향후 압박할시 미국과 공조할수 있어야한다입니다.
미국이 핵전쟁은 안하겠지만(물론 해서도 안되겠지요) 핵보유국을 경제전쟁으로 무력화시켜버린사례는 과거에도 있습니다(소비에트붕괴)
저는 그런점에서 친미파로 사드배치에 찬성하며 그러나 설치지역주민에게는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는것이 당연히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소음이 굉장히 심하거든요.

중국을 경제전쟁으로 침몰시키는 두번째요소가 바로 기술입니다. 중국의 산업은 고도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노동집약적인부분이 많으므로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로 신경제를 만들어낸다면.
저 커다란인구를 가진 중국은 이세상누구보다도 가장커다란 실업난을 겪고. 체제가 붕괴되버릴겁니다.

통일을 할 방법이 분명있습니다.
그리고 흡수통일하면 호퍼같은사람 많이 안나올것입니다(앞의 덧글에서 다른분이 썻듯이 호퍼도 결국 경제적손해때문에 일어서고 경제석손해때문에 다른사람들도 호퍼에게 가답했습니다)흡수통일시에는 북한주민들 대부분에게 전보다 더좋은 경제상황은 충분히 만들어 줄수있으니
분명 통일을 큰피해안입고 할수있을것입니다.
http://news.ichannela.com/politics/3/00/20151009/74086166/1
북한4분할방안

일본의 입장(물론 저한테 물으신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잠도 안오고해서. 그냥 참고만해주시더라도 영광이겠습니다

1. 일본의 입장은 통일은 찬성하는데. 한국의 성장을 경계는 할것입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통일한국도 일본의 국력을 뛰어넘지는 못할것으로 예측되는바(지금이 남한국력이 일본국력의 1/3이 안됩니다. 통일성공해서 북한을 한국수준으로 끌어올려도 일본국력의 절반을 못넘습니다) 그렇게 통일을 반대하지 않을것입니다.

2. 일본이 가장두려워하는것은 일본내의 미군주둔기지를 북한이 핵으로 공격하는것입니다. 북한이 사라지면 이런염려가 없어지죠

3. 일본이 두번째로 두려워하는것은 중국이 함경도를 병합하고 동해에 교두보를 장악하는것입니다. 일본바로 근처에 중국이 해군기지를 둘수있지요. 이것은 분명 일본에게 큰위협입니다. 그래서 북한전역이 한국의 통제하에 놓이는것이 일본에게 바람직할것입니다.

4. 일본의 전통적인 계층식사고방식으로써는 국제사회에 알맞는 일본의 자리는 아시아의 대표자입니다.
그자리를 두고 중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지요. 일단 북한은 일본보다는 중국과 가까운나라입니다. 남한은 (최소한 일본인들의 시각으로보면) 중국보다는 일본에 가까운나라입니다(실제로도 그렇지요)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것이 차후 중국과의 대결에서 일본측에 유리할것이라는 계산을 할것입니다.
알타리무님.... 감사합니다....
질문이 뜬금없는 것 같아서 역으로 질문드립니다.

1. 일본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 무엇에 대한 입장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통일인지...중국인지...아니면 북한인지...

그리고 사실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입장은 미국의 이해와 완전히 일치되는 주요 동맹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오늘날 미군은 극심한 국방예산과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주한미군 전력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미국에도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미 육군 현역의 여유 병력은 글로벌대응부대 및 지역대응부대 13.2만이 전부인지라, 사실 주한미군의 유지도 과거와 차원이 다른 압력을 느끼고 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원하는 이상적인 요충지는 섬이어서 해·공군만으로 방어가 가능하면서도 대륙에 근접해 유사시 병력을 투사할 수 있는 일본과 영국 같은 곳이 되겠지요. 한국처럼 지상군이 있어야만 방어할 수 있는 곳은 미국에게 이상적인 1급 요충지가 아닙니다. 일본의 대 중국, 북한에 대한 입장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당분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것으로 보이네요.

여담이지만, 상기 이유 때문에 1949년 3월 미 국가안보회의(NSC)는 1)한국 포기 2)한국을 무조건 무력으로 지원 3)제한된 조건 하에서 지원제공 등 세 가지 방책 중 세 번째 안을 채택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주한미군이 철수했고, 그 다음은....

2. 북한 붕괴시 4개국 분활 통제에 관련된 증빙 자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 아래 뉴스 외에 중국의 분할 통제에 대한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1년 군사기밀을 북한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되어 최근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흑금성(본명 박채서)’씨가 재판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개념계획 5029로 한미 간에 갈등을 겪은 2004년경에 중국 안전부의 국장급 관리로부터 이 계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박씨는 첩보를 확인 후 복수의 중국정부 관리를 만나 이 사실의 진위를 크로스체크 한 바 상기의 중국판 북한급변사태 계획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유사시 계획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선양에서 인민해방군 정규군을 집결시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진입시키는 작전도로 건설을 이미 끝낸 상태이며, 이를 위한 도로 공사에 중국 정부는 우리 돈으로 총 2조5000억원을 투입했다고 하는군요.

이 외에 북한과 중국 양 정부는 중국 기업인들이 북한에 투자를 하더라도 남포~원산 선 이남에 투자하거나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만일 북한에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 정부는 ‘자국 주민들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개입하더라도 대동강 이남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포~원산 선은 중국의 북한 점령 남방한계선으로 설정돼 있는 셈인데, 이 한계선을 넘어 내려올 경우 남측의 접경지역과 남측 투자지역까지 중국이 점령하게 되어 복잡한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지요.


3. 90년초 중공 시장 개방시 20년 이후를 내다보고 헤지(hedge)를 어떻게 걸어 둘 수 있었을까요?
-> 저기 파생상품 관련해서는 저보다 더 전문가를 찾으셔야...
중공이라는 표현을 쓰시는 걸 보니 연세도 많으신 것 같고, 돈 문제는 저보다 더 잘 아실걸로 보이는데요.
헤지(hedge)가 금융상품으로 헤지걸어놓는거를 뜻하는 거라면 20년짜리 금융파생이 제가알기로는 없는것으로 압니다.

만약 금융상품헤지를 말한것이 아니라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할경우 이를 막을 비책으로써 헤지를 걸어놓는다는 의미로 쓰셨다면(참고로 독도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걸어놓은 헤지 입니다. 일본자위대 고위관료에서 나온내용을 보면 일본은 독도를 자기땅으로 인식하여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것이 아니라. 차후 남한이 북한과 통일하였을경우에 통일한국측이 일본에 적개적으로 변할때 통일한국측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구실로써 독도영유권주장을하고 있는것입니다)

일단 지정학적으로는 대만이 있겠고요. 그외에 미국은 베트남, 인도와의 친선도를 강화합니다. 사실상 베트남은 지금 미국의 동맹에 가깝죠.

경제적인 면으로써는 과거 일본에게 그랬듯. 환율로써 압박을 가하는 방법이 있읍니다. 물론 이것은 중국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조치가 아니고 미국이 평소에 가지고 잇는 방법이지만,
미국은 기축통화를 가진데다가 세계경제기구에 큰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완전히 미국마음대로 환율을 정하지는 못하지만 꽤 크게 영향을 끼칠수가 있지요.

참고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어 이런 미국의 국제금융시장의 영향을 줄일려는 시도를 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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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과거에 일본도 일본주도의 국제금융기구를 만들어 미국주도의 국제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꾸려한적이 잇었습니다. 그러다. 일본은 미국에게 크게혼나고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고~~ 옆에 있던 한국은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진다고 imf를 맞았지요.
감사합니다....
ㅋㅋㅋ제가 그 헤지를 파생상품의 헷징으로 착각을 했군요.

우선 중국의 시장 개방 시기를 90년초라 잡으셨는데, 중국이 개혁개방의 시작은 1978년 12월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덩샤오핑이 중국식 사회주의 즉, 흑묘백묘론과 실시구시를 내세워 시장경제의 도입을 선언한데서부터 시작한 것이고요.

1971년 4월 닉슨의 핑퐁 외교 이후 1979년 1월 정식으로 중국-미국간 국교정상화가 되면서 미국은 기존의 대만에 대한 방위조약을 폐기하는 대신 대만관계법이 통과되어 유사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치, 외교, 군사적 개입의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정부는 국교를 정상화하면서도 미국이 요구하는 대만에 대한 무력 포기 선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닉슨 정권은 어차피 중국의 군사력으로는 대만을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닉슨으로서는 중국을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동맹국으로서 절실하게 필요했고 중국과 관계가 개선된다면 어차피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즉, 동맹국의 입장보다 전적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미국의 대외전략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여기에 반발한 미 의회의 주도로 대만관계법이 통과되어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및 유사시 대만 개입의 명분 정도만 확보하였지요. 최소한 미국은 중국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는 그 당시에는 몰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경제적으로 헷징을 한다는 표현도 쓸 수 있는 표현인지 의문입니다. 발전을 거듭해오던 중국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시작한 것은 1999년 11월 중국의 WTO 가입과 2000년 10월 부시 행정부의 영구적 최혜국 대우 선언부터였습니다. 미국과 일본, 많은 서방 기업들이 앞다투어 중국에 투자하고 값싼 노동력에 매료되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시켰지요. 인구 13억의 거대한 중국 시장은 대단히 매력적인 것이어서 이후 글로벌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년 두자리 수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것은 잘 아실테지요.

중국이 일본과 다른 무서운 점은 무한한 잠재력입니다. 풍부한 지하자원, 13억에 달하는 인구, 광대한 영토는 과거 G2였던 일본이 가지지 못한 무기입니다. 미국이 독일과 일본이라는 2위 경제 대국을 강압적인 환율 조정(플라자 합의)과 개방 압력을 통해 밀쳐낸 역사가 있다고 하나 2차대전 패전국이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지 못한 채 미국의 핵우산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독일과 일본의 국제정치적 지위는 승전국/상임이사국/핵 보유국인 중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를 감안할 때 중국이 가만히 앉아서 밀침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근래 버블로 인한 중국발 경제 위기가 우려되고 있으며 중국이 내부적으로 극심한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부의 독점, 빈약한 사회 복지 인프라, 과도한 중복 투자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정체되거나 쇠락할 것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하는 것이 진통은 겪더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상기 비슷한 문제를 겪으면서 1990년대 말 아시아의 4마리 용에서 추락했다며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동격에 놓였던 사례가 바로 한국입니다. 당시 언론들은 우리에게 더이상의 성장 동력은 없다, 개발도상국의 늪에 빠졌다며 호들갑을 떨었지요. 그로부터 15년 뒤의 한국 경제의 위상은 그 당시와는 차원이 다르게 변했지요. 오히려 4마리 용 중에서 상석에 있던 타이완을 밀쳐내기도 했고요. 미래는 누구도 알기 어려운 것이지요.
1. 일본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일본은 한국의 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구요.
세상의 어느 나라도 주변 국가가 강해지는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는 긍정적입니다.
한반도 분쟁시 미군의 지원은 육군의 경우 현재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전개된 병력에 국한되지요
하지만 미국의 주력군은 미해군의 60%인 태평양 지역 해군력과 중동. 인도양지역의 해군이고
미군 육상전의 주력은 20만이 넘는 미국 최강의 해병대 전체 현역과 예비역 병력입니다.


2. 북한 붕괴시 4개국 분활 통제에 관련된 증빙 자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역사상 참전하지 않은자에게 권리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문서는 문서일 뿐입니다.
쏘련이 38도선 이북에 진주할 수 있었던 것도 종전 2주전 미국 요청으로 참전했기 때문이죠.
참전 효과가 미미 했기에 미국이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까지 내려올 수 없다니 승복했습니다.
한반도 분쟁시 50만에 가가운 미군이 참전하는데 중국이나 러시아의 권리를 인정해 줄까요?
일본이 숫가락 얹을려고 참전을 제도화하는데 중국이 북한편으로 참전하지 않는한 기회가 없을겁니다.
러시아는 핵전쟁을 각오하지 않고는 국동 지역에 군사력 투사가 러일 전쟁의 재판임을 알겁니다.
미국도 한반도에서 대규모오 병력을 투사해야 미국의 의지를 알고 중국과 러시아가 숨을 죽이고
오히려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도 참전하겠다고 나서지 아니라면 철군하느니만 못하다는것을 압니다.


3. 중국의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중국 스스로도 모르고 누구의 계획대로 되지도 않습니다.
단 군비 확장은 쏘련이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다 공산당이 몰락한 역사적 교훈을 봐왔기에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는 허장성세를 하는것이지 미국과의 군비 경쟁은 무척 조심할겁니다.
경제가 나빠지면 군비를 증강할 여력이 없을테고 경제가 좋아져도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만큼
군비에 돈을 쓰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거라는겁니다.
미국과 국지전이라도 발생하면 중국이 내세우는 부의 원천인 미국 국채는 순간 휴지가 되니까요.
Highlander님 감사합니다
Highlander/미국은 당연히 4분할 방안을 거부하겠지요.중국과 러시아의 세력확장일테니깐요.
문제는 중국이 북한내 친중세력과 합세하여 일방적으로 평안북도와 함경도를 차지하고 일방적으로 병합을 선포할수도 있기때문에 문제입니다. 그것때문에 4분할방안이 걱정스러운것이지요.
결론만 말하면 중국이 자국 영토라는 남 태평양 섬들의 영해 수역에서 자유 항해를 제어할 수 있는지 보게될겁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12941886

제 3자 러시아가 애기하기로 미 함모 1척을 침몰시키기 위해서 중공 함대 40% 정도를 소진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함모는 전부 10대 .... 그중에 태평양에 5대가 있으니 좀 힘들겠네요....

미국의 공식 발표는 이제까지 한번도 남중국해를 한번도 중공 해역으로 인정한 적이 없고 그렇게 행동해 왔습니다. 중공도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괜실히 큰소리를 치는 이유는 ....

- 중공군 내부의 불만을 단속하고 국가적으로 단결을 높이기 위한 시진평 주석의 방안이라고 하는데 ....
-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 큰소리를 치면 그냥 찌그러드는 이웃 국가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一曰道(일왈도)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도의, 도덕
二曰天(이왈천) 둘째는 천(天)이며 (기후氣候, 기상氣象 조건) . 천문지리(天文地理), 하늘이 도와 주는 유리(有利)한 시기(時期)와 조건(條件)

손자 병법이 정말 최고지만.....

잠언 16:9, 개역한글 (KRV)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북한 동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최우선이 되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 그 후 방법은 ????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과 그것을 최우선으로 놓고 국가 정책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 되어야 겠지요.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말이 정답이 되겠습니다.
갑자기 댓글수가 확 늘어갔길래 보니, 역시나 또.
독일 이야기하고 있잖은가, 이런 민족주의자들같으니!

솔직하게 감상하면 되는 것인데 어째서 꼭 한국 이야기를 껴넣어야만 하겠는가!
지금 글이 수정된거 같은데. 원글에는 북한과통싱에 호퍼같은이들이 북한지역에서 출현하면 어떻게 해야돼는가라고 나시카님이 화두를 던졌어요.
펌) 시대정신

황장엽黃長燁 씨는 향후 어느 시점에 중국中國이 김정일金正日 정권과의 ‘동맹관계’를 파기하면 북한의 군부軍部는 즉시 김정일金正日을 권좌權座에서 추방하고 군부軍部 주도의 새 정권政權을 출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관하여 미국과 중국 간에 과연 전략적戰略的 ‘흥정’이 이루어질 것이냐에 달리게 될 것이라고 본다.

중공이 김정은을 아직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진평이 전문을 보낸 것이 이내 마음에 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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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공과 관계 개선에 앞서서 많은 연구와 시나리오를 돌려 보았으리라고 봅니다.... 중국에게 전 세계 시장을 열어 주기 전에도 그러하겠죠.......

중공 공장을 돌리므로써 얻게 된 이윤은 어마어마하죠.... 무엇보다도 미국내 인플레이션을 잠재워서 미국내 경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을 예상하였을까요?

그렇지만 중공이 이렇게 빨리 미국에 대항마로 크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미국은 무지 실용적이어서 뭘 잘못했더라도 곧바로 수정하여 고쳐나가는 듯 싶습니다.... 벌써 중공 길들이기 작업에 들어 갔을 겁니다...

이리 저리 찔러보고 있는데.... 얼마나 걸릴런지 어떤 껀수에 걸려 들런지 궁금하네요....
답을 발견한듯 싶습니다...

펌) 중국 경제 내의 수출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제조업비중이 높은 국가로, 글로벌 교역량이 증가할 때 얼마든지 수출을 증가시킬 여력을 보유한 나라죠.

특히 최근들어 교육/기술투자의 확대 속에서 점점 '고부가가치'제품 위주로 산업이 제품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이 교역을 다시 증가시킬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글로벌 교역이 계속 감퇴된다면, 중국경제 입장에서는 참으로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현재 보유한 제조업설비가 필요 없어질 것이며, 더 나아가 끝없는 구조조정과 가격인하의 악순환에 빠져들 여지가 충분하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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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도널드 같은 후보가 나올수 있었고.... Brexit가 가능했군요.....

답은 아주 단순하네요.... : 중공내 세계 공장 폐쇄

예전에는 칼자루를 쥐고 휘토료 원소 수출을 금지하고 일본산 재품을 불매하였는데...

이제는 뿌린대로 거둘때가 다가오고 있는데...

남해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게 큰소리를 칠때가 아니라 협조를 구하고 양보해야 할때인지 모르는듯....
네 맞습니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현재의 해외기업의 중국의 공장들도 베트남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고부가가치상품을 만든다고 하지만 아직도 공산당 통제의 국가주도형 경제개발방식에서 못벗어난

중국은 그한계가있습니다.

그러므로 굴뚝산업위주인 중국의 경제는 정보화가 가속될때마다 커다란 쇠락을 맞게 될것입니다.

중국이 쇠락하면 분명 한반도 통일의 기회가 올것입니다.
중국의 위기를 논하기에는 아직 섣부른 감이 있습니다.

1. 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996년 4.7%에서 2015년 14.3%로, 불과 20년 만에 3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이는 중국이 2005년 이후 11년간 임금이 연 13.2% 인상되고, 주택가격도 같은 기간 연평균 9.2% 상승함에 따라 ‘저렴한’ 요소가격의 이점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달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달성한 가장 기본적인 힘은 품질경쟁력 개선에 있었습니다. 중국의 대미 수출품의 구성을 살펴보면, 1992년에는 고기술 상품의 비중은 22.7%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56.6%로 급증하였습니다. 중국의 수출구조 고도화는 자신들의 기술 경쟁력 개선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부터 대규모로 고품질의 중간재/자본재를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한국·대만·일본에서 고기술 중간재를 수입해 조립한 후, 이를 다시 선진국 소비시장에 수출함으로써 점유율을 제고했다는 것이지요.

유럽중앙은행은 '중국이 품질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낮은 생산비용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사슬에 적극 참여한 덕분에 품질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라고 지적합니다. 즉,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가격경쟁력을 점차 상실한 충격을 ‘글로벌 분업’으로 타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고요. 중국내 세계의 공장을 폐쇄하는 전략은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미국, 유럽-중국-동아시아의 글로벌 분업 사슬이 끊어져 전세계적인 경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역으로 말하면 중국이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무역보복을 가할 경우 자신들이 입을 손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되며, 또한 역으로 말하면 중국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에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한국의 공대 교수들은 더 나아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고요. 석학들은 한·중 간의 관계에서 한국이 부품소재를 공급하면 중국이 조립하거나, 혹은 한국의 기업들이 설계도를 보내면 중국이 생산하는 방식의 도식적 관계는 더 이상 성랍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강조합니다. (이것이 잘 드러난 책이 최근에 발간된 '축적의 시간'입니다.) 중국은 이미 생산공장이 아니라 혁신공장(innovation powerhouse)으로 등장하였고, 공학인력 배출 수, 논문 및 특허의 양과 질, 그리고 생산현장에서 제시되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사례 등을 고려할 때, 혁신의 관점에서 중국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 영역에서 한국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석학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 어떤 품목의 경우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이미 상식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 부끄라워하지 말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중국에 대해 가져왔던 사고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말하는 것이지요.

2. 많은 서구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중국을 분석할 때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분석 틀을 고집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이 유독 심해서) 이 같은 문화적 몰이해에 따른 착시 현상으로 30년 전부터 ‘중국 붕괴론’은 유령처럼 떠돌아다녔지요. 특히 92년 미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소련의 붕괴 이후 '역사의 종언'을 출간한 무렵엔 극에 달해, 그는 민주주의 진영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며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의 질식할 것 같은 사회 통제로 창의적 혁신이 일어날 리 만무하며, 중국의 쇠퇴를 예견하는 강력한 논리 중 하나가 다양성의 결핍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그 후에도 무너지기는커녕 연평균 8~10% 수준의 고도 성장을 유지하며 일당지배 체제를 지켜내는 데 성공합니다.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되었지요. 2011년 이래 세계에서 3년째 가장 많은 특허를 낸 나라는 중국입니다. 2013년 중국에선 40만 건의 특허 등록이 이뤄져 일본(25만 건), 미국(18만 건)을 훌쩍 제쳤으며 저가 핸드폰 돌풍을 일으킨 중국의 기업 샤오미(小米)였다. 인터넷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 등도 세계적인 혁신기업으로 주목받게 되었지요.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경제·산업 분야에서만큼은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중국식 시스템이 잘 돌아간 덕분이라고 분석됩니다. 소련 공산주의에 익숙한 서양에선 정치는 막혀 있으되 경제는 한껏 풀려 있는 체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내부 모순에 따른 중국 붕괴가 이뤄지지 않자 그 후로 고개를 든 게 중국 분열론입니다. 티베트·위구르족을 위시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이 들고 일어나 중국이 쪼개질 거라는 얘기이지요.

그러나 내재적 접근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이 역시 실정 모르는 이야기라고 비판합니다. 민주화 운동이 가열돼 공산당이 전복되더라도 중국이 분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세력 역시 한족이어서 나라가 쪼개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영토의 60%를 소수민족이 차지하긴 하나 인구 수에선 8% 안팎에 불과하여 공산 정권 몰락 후 분열된 러시아인이 70%에 불과했던 옛 소련의 경우와 비교가 안 됩니다. 민주화 운동 자체 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나름의 방식으로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방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단수라는 것이죠. 중국 정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을 철저하게 검열하고 탄압하면서도 때때로 필요할때는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따라서 대중 또한 지도부에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자신들도 같은 공범이라는 의식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고요.

오히려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은 한국을 능가하는 면이 있어 정부 개혁 측면에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시진핑의 주도 하에 반 부패 개혁 정책에 따라 각 성 정부의 5년동안 청사 신축 금지령, 반 부패 고발 사이트를 통한 부패 관리 척결, 각 지방 정부가 판공비에 해당하는 일명 '3공 경비'(공무접대비, 공무해외출장비, 관용차 구매·운영비)의 절감 및 공무원 연금 개선 등 한국이 못하고 있는 공공개혁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때, 한국이 중국의 위기를 논할 처지가 되는지 부끄러움이 앞서는군요.

기회가 온다고 기대할 게 아니라 능력이 달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데, 이걸 못보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지피지기는 백전불태인데....
고견고맙습니다. 하지만 이왕이야기가 나온김에 이야기를 하나더해보자면 중국이 가진 심각한 약점이 또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구지요. 우리나라처럼 인구고령화가 되고있습니다. 속도도 더빠릅니다.
30년후에는 중국의 중간인구연령이(평균이 아님) 50세를 넘어서고 그에맞추어 국력이 쇠락해질염려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일본같은경우는 경제발전을 어느정도한 상태라 이민을 유입을 유도할수가 있어서 버틸수 있지만,
중국은 그냥 늙은수밖에 없습니다. 차후에 인구도 감소할것입니다.
참고로 미국은 인구가 계속 불어납니다. 30년전과 비교해 인구가 30%가량늘었고 30년후에는 인구가 5억이 넘을 것으로 예측됩니다(이민의 힘이죠 미국만이 쓸수있는 치트키입니다)

기업혁신분야도 이야기를 더해보고싶습니다만, 이야기가 너무끝이 없을것같고 해서 , 아직 안다루었던 인구문제만 언급하였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맞지요. 뭘하던지 간에 어떠한 시나리오 든지 간에 큰시야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국가경제을 일으켜야 되겠네요.
중국은 미국이 무역 관세를 부과하면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사회적 혼란이 올겁니다.
단 중국의 혼란은 세계 경제 질서에 혼란과 직결되니 과연 미국에 이익이 될지는 모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의 선동주의를 몇배 능가하는 시진핑의 무모한 선동주의 입니다.
군사적 힘을 바탕으로하지 않는 제국은 사상누각 인데 중국은 경제력은 세계 2위라해도
군사력은 과연 3위라도 되는지 의문인것이, 과거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보여주었던 군사력은
거의 막장 수준이었기에 군사력 증강에 돈을 쓰고있다해도 전투력에 대한 평가는 낮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건 중국의 허장성세는 비핵화 전쟁에서 도저히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없기에
미국과 국지전이라도 벌린다면 중국은 1조2천억달라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하게 될겁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과 합의해 주한미군 부대를 평택-오산 지구와 대구 지역으로 모으는 연합토지계획(LPP)을 승인하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 이와 함께 서울 용산 미군부대가 평택으로 옮겨가는 등 곳곳에 흩어져 있던 주한미군 부대가 한곳으로 모이게 됐다. 또 주한미군 1여단이 이라크로 출동하는 것을 승인했다.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 추진 배경

ㅇ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따른 도시 인구 증가와 전국적인 지역개발의 활발한 전개, 그리고 주한미군 환경 문제가 중요한 사회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주한미군 기지 및 훈련장과 관련한 민원이 급격히 증가

ㅇ 점증하는 민원 및 주한미군-지역주민간 마찰을 해소하고, 지역개발 제한 요소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미군 기지 통폐합 필요성 증대

미국은 한미 연합군이 공동으로 북한을 무대로 개념계획 5029를 발동하자며, 5029를 한미연합군의 작계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는 평시작전에 해당하기 때문에 5029를 연합작계로 만들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먼저 중국이 개입하려 할 텐데 과연 한국군이 단독으로 중국군의 북한 개입을 억제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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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함께 진격 가능했군요/하군요

군 소식통은 "북한 급변 사태 시 작계 5029에 대해 중국이 반발할 경우 우리 정부가 이를 실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 여부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나시카님께서 올리신 글 중에서도 손 꼽히게 씁쓸한 글이군요.
그렇게 죽 읽어 내려다가 북한 얘기가 나올땐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통일 한국의 문제점이 벌써부터 보이는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