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사학의 얄량한 떡밥

대수맥 2012. 3. 11. 17:48

 


2) <무작위적無作爲的 우연偶然에 의해 생겨나는 진화과정은 진화進化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그렇다.   발생은 우연적偶然的이지만 후세後世에 새로운 종種의 출현出現을 완성하는 유전적遺傳的 변이變異라고 하는 진화과정進化過程에 필수적인 필요충분조건必要充分條件을 제공하는 밑거름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쪽은 과연 [민족사학民族史學]일까?   아니면 [변종사학變種史學]인가?



이를 [역사연구과정]에 그대로 적용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무작위적無作爲的 돌연변이突然變異는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  [자연선택]이라고 알려진 이 과정을 통해 환경적인 제한요소들을 극복한 생명체生命體들만이 성공적으로 진화進化하여 자신의 유전자遺傳子를 다음 세대世代까지 전달시킬 수 있다.



3) <진화론進化論은 단지 이론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증명되지 못했다>는 주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진화론進化論]의 자리에다가 [기존의 학설學說에 대응對應하여 등장한 새로운 역사이론]을 그대로 바꾸어 넣어보라!!



지금까지 나타난 대단히 많은 실험적實驗的 이론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반박反駁하기 위해서는 그런 주장이 틀렸다거나 부적절하다는 걸 밝혀내던지 예측豫測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적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매도罵倒와 엉뚱한 트집 잡기와 묵살黙殺과 부정否定으로만 일관一貫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새로운 시도를 선도先導하는 [민족사학民族史學]은 많은 고고학적考古學的*문헌비교학적文獻比較學的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요한 많은 측면들은 [1] 아직도 완전한 해답이 없이 다양하게 논의論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약점弱點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과학적 탐구探究의 주체主體]로서 지닌 힘을 보여주는 표시表示이다.   이와 반대로 기존 학설學說에 대한 확고하고 절대적이며 수정修正을 용납容納하지 않는 지지支持야말로 성경적聖經的 교리敎理임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표상表象이다.  


[1] 환국桓國의 탄생과정*북방초원의 유목기마문명遊牧騎馬文明 선택과정*단군조선檀君朝鮮의 분화分化 과정 등과 현실적인 요수遼水와 요동遼東의 정확한 위치 비정比定과 같은 주요 논쟁論爭 대상들



[과학]은 여러 가지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실험적인 증거들로 타당성이 인정되는 관념觀念들에 의하여 구성된다.    그러나 [유사과학類似科學]은 증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믿음과 가설假說에 대한 신앙적信仰的인 추종追從을 본분本分으로 삼은 [그들만의 리그]이다.



아무리 많이 실험을 해도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 한번의 실험만으로도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는 있다.   <Albert einstein>



마.  초능력超能力Psi(사이비 사이언스 211p부터)



주로 투시透視Clairvoyance*예언豫言Precognition*염력念力Psycho Kinesis들을 가리키는데 어떤 존재나 현상이 실재實在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한 [과학적 기준]은 합리적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立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초능력超能力이 이미 증명되었다는 주장(이는 한사군漢四郡 반도설半島說과 같은 학설學說에도 해당한다) 자체도 역시 여러 다양한 연구자들에 의해 다시 재증명再證明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존 학설學說은 아직도 이 기준을 외면外面하거나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초능력超能力 연구에서의 방법론적 결함缺陷이 제거되거나 이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재현가능再現可能한 실험재료가 얻어지기까지는(사학史學 연구의 경우 다른 여러 학설學說에 의해 경쟁되고 비교되어 결정지어지기까지는) 초능력超能力은 [유사과학적類似科學的 범주範疇] 안에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現 사학계史學界의 기존 역사관歷史觀 가운데 현재 맹렬한 논쟁論爭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분들에 관한 한 [민족사학民族史學]이 [유사과학類似科學]으로 분류分類된다면 [변종사학變種史學] 역시 한 그물망에 걸린 참새처럼 그 테두리 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반짝인다고 해서(현現 학계學界에서 지배적이라고 하여) 모두 금은 아니다.  <Charles M. W ynn*Arthur w. Wiggins  사이비 사이언스>


[진정한 과학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사고思考와 정보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한다.   <Charles M. W ynn*Arthur w. Wiggins  사이비 사이언스>



제3장  역사연구에 있어서의 두 가지 길 - 진정한 역사인가?  변종사학變種史學인가?



[역사]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역사가는 그런 사건들을 중심으로 질문을 던지고 경험적 자료들을 이용하여 근원적 원인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과학]이기도 하다.


모든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들도 이용가능 한 사실은 무엇이나 고려하고 그 사실들에 적합해 보이는 이론들을 구성한다.   그런 다음 얻어진 정보가 어떤 이론과 모순矛盾된다면 수정修正하거나 폐기廢棄한다.


이와 반대로 [유사역사가類似歷史家]들은 자신들이 <참>인 것으로 선호選好하는 이론을 더욱 뒷받침하기 위하여 무엇이 <사실>로 만들어지기를 원하고 있는지? 를 결정한다.



[유사역사가類似歷史家] 들 중에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虐殺>이 일어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혹은 편견偏見에 사로잡힌 역사가들에 의해 잔혹함이 과장되었다고 주장(단군신화론檀君神話論이나 환국환상론桓國幻想論을 생각해보라)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이론에서 시작하여 곧이어 역사가들에 의해 인용된 목격자의 증언과 증거서류 그리고 물리적 증거가 왜 거짓임에 틀림없는지? 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일치되는 <사실>들을 확립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이와 배치背馳되는 사실들은 무시해버리고 있다.


이들은 역사가들에 의해 인용된 증거자료들을 위조僞造된 것으로 매도罵倒하거나 그 자료들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다른 의미가 자료 속에 담겨있다고 떠든다.   자신들의 이론과 모순矛盾 되는 사건의 목격자目擊者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잘못알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미친 것이거나 협박당했다고 비난한다.   <사이비 사이언스  266p-287p>



이쯤에서 여러분들은 위의 글을 음미吟味하는 가운데 분명히 어디서 많이들은 헛소리라는 걸 직감直感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著者는 이런 행태行態를 일삼는 집단이야말로 [유사역사가類似歷史家]들의 모범이라고 명쾌하게 선線을 그어주고 있다.


[과학이론들이 <과학적>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존의 상식을 깨고 새로운 논리論理가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무시無視하지 않으며] 올바른 과학이론의 완성을 위해 [반증反證 가능성-어떤 이론이나 주장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이는 조건의 존재]이 필요충분조건으로 신봉信奉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과학 이론들은 예외 없이 이런 과정을 거쳐 확립된 것들이다(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에 의한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 수정修正 등).   기존 학설學說의 절대적인 옹호擁護가 아닌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하는 이유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잘못된」방향으로 인도하려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을 [유사과학類似科學=사이비 과학]으로 단정하고 있다.


[과학자]들 역시 마지막 결론을 유추類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론이 틀린 것이 명백할 때에는 기꺼이 포기抛棄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다.   바로 이 런 사실들이 과학적인 사고론자思考論者가 가진 위대한 힘임인 동시에


[유사類似 과학자들-이는 필자筆者가 지금까지 거론擧論했듯이 변종사학자變種史學者들의 몫이다]의 모습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지적인 호기심은 인간의 삶속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재산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필자筆者는 다음의 말로서 이 글을 맺고 싶다.



자기 자신을 교육시키고 싶은 사람은 무엇보다도 의심을 가져야 한다.   의심하면서 그 사람은 진리眞理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제5징  사족蛇足을 겸하여 - 앵무새 추종자追從者의 글 소개



[환○] 재야사학在野史學은 역사학이 아니라니까(!) 반테러 동양사 - 왜 사람들은 유사역사학에 빠져드는가?(초록불님 블로그로 트랙백) by shaw.egloos.com/1861125 



초록불님께서 요즘 자주 사용하신 덕에 유사역사학(Pseudohistory) [1]이라는 용어가 제법 널리 알려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나는 오랫동안 재야사학이라는 말을 써 온 탓에 익숙한 것을 계속 사용하는 중이지만, 전세계적으로 회의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개념이 역시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철학은 사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만든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하는 아프리카 중심주의는 유사역사학의 하나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처형 허구론 역시 유사역사학의 한 사례다. 재야사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참되고 위대한 민족사를 밝히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전세계 곳곳에 서식하고 암약하는 협잡꾼, 괴인, 사기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도 내용에 있어서는 창의성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제국주의시대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망상을 복사 붙여넣기 한 뒤 고유명사만 바꾼 처참한 열화 카피본이다.


게다가 저,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다. 재야사학은, 역사학 비슷하기는 한데 사실은 역사학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어떤 학술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따라 쓰거나, 겉모양을 흉내낸다고 해서 그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이 블로그에서 자주 역사 이야기를 하지만, 이는 역사를 주제로 삼아 노가리를 깐 것이지 역사학 연구를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재야사학은 어떤가? 일단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학 이전에 그것이 아예 학문도 아니라는 점이다. 전에도 한번 비슷한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재야사학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학문이 아니다. [2]



(1) 재야사학에서는 결론이 가장 먼저 정해지고 이를 보조하도록 근거가 만들어지며 자료의 신빙성도 미리 정해진 결론에 얼마나 부합하느냐 하는 점으로부터 추단되므로, 모든 논증은 기본적으로 순환논증에 불과하다.


(2) 재야사학의 논거는 대부분 거짓이다. 그 가운데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 [3], 전체적으로 날조인 것 [4], 한문 사료의 해석에 조작을 가하여 독자를 기만하는 것 [5] 등이 있다. 논거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추론 과정 또한 비상식적이다.


(3) 재야사학은 검증을 거부한다. 재야사학에서 주장하는 바를 검증하려는 시도는 비도덕적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구체적으로는 식민사학(혹은 식민잔재), 매국사학, 친일파라는 표어를 앞세워 반대자들을 공격한다.



그렇다면 대체 재야사학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통용되는 개념들 가운데서 가장 유사한 것을 굳이 찾아보면, 재야사학은 UFO 숭배교같은 신흥 사이비 종교에 가장 가깝고 [6] 역사학과는 그보다 거리가 멀다. 그러나 누미노제 체험같은 순수 종교적인 특징이 있다고도 보기 어려우므로, 완전히 종교인 것도 아니다.


재야사학은 역사학을 흉내내고 있기는 한데 역사학은 아니고, 종교같기는 한데 또 종교는 아닌 그 무엇이다. 기존의 개념 가운데 무엇에 속하는지 잘 알 수 없다면,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더욱 적합하다-재야사학은 유사역사학의 하나다.


바로 저, 재야사학은 역사학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지 않으면 여러가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잘못된 대응을 하게 된다. 어떤 예가 있는가?



첫째, 재야사학이 기성 역사학과 대등하게 학술적인 논전을 벌이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역사학계가 재야사학을 인정치 않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셋째, 재야사학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 대응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첫째 경우는 흡사 일전에 지적한 바 있는 양시론의 예 [7]와 흡사하다. 압도적으로 잘못된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같은 부류로 취급해 버리면 후자만 손해를 볼 뿐이다.


두번째 경우는 심각하다. 이는 결국 재야사학이 전면에 내세우는 음모론을 조금 누그러뜨린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재야사학이 학문으로서 그다지 결격되지도 않았고,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왜 이렇게 학계에서 무시되는가? 어떤 학문 외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추론은 근본적으로 틀렸다.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재야사학은, 그것이 아예 역사학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잘못된 까닭에 역사학계로부터 무시되는 것이다.


세번째 경우는 마치 다단계 업체의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저널에 피라미드 상법 모델이 개개인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밝히는 논문을 실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재야사학은 역사학계의 성과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중간 과정에 가로놓인 균열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유/무라기보다는, 그 보급이다. 학계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 평소에 따라가고 있던 사람이라면 왜 재야사학에 빠졌겠는가?


뭔가 더 쓸 것은 있었는데, 우연히도 초록불님께서 먼저 좋은 글을 써 주셨기 때문에 내용은 여기에서 줄이고 하고 싶은 말은 트랙백으로 대체한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글을 쓰는 것을 보니 초록불과 Shaw는 역시 동일인물이었다는 따위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재야사학의 사고방식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글을 쓰는 것을 보니 초록불과 Shaw 사이에는 정신 링크가 있는 것이라는 따위로 생각하는 것이 의사과학의 사고방식이다.) 

    


[1]  http://orumi.egloos.com/3994827


[2]  http://shaw.egloos.com/1629068


[3]  http://shaw.egloos.com/1820923 예시 참조


[4] 재야사서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자신들의 국수주의적인 과대망상적 세계관을 입증해 줄 자료를 찾지 못하자, 아예 역사서를 날조해서 증거로 삼으려 했다.


조인성, 〈"재야사서" 위서론 -단기고사·환단고기·규원사화를 중심으로-〉, 단군과 고조선사, 사계절(2000)


http://munbba.egloos.com/category/%ED%99%98%EB%8B%A8%EA%B3%A0%EA%B8%B0%EC%9D%98%20%EC%84%B1%EB%A6%BD


[5]  http://shaw.egloos.com/1663044 예시참조


[6]  http://shaw.egloos.com/1629318


[7]  http://shaw.egloos.com/1787745



[앵무새들의 합창]



<초록불>     멋지고 통쾌한 글입니다. 역시 Shaw님과 저는 클론... (퍽!) 

<윙후사르>   아. 근데 초록불님. 출판하신다는 그 책 언제 나오는지요.


추신: 그건 그렇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왠지 현 정부랑 환○들이 결합할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뉴라이트들이 당장은 반민족주의지만 오바마에 대해 보인 행태를 볼때 변환이 가능해보여서... 초록불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초록불>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원고 말고도 처리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요. 올 여름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Shaw>   耿君=악질식민빠=초록불=Shaw 모두 동일 인물 아니었습니까. 

<제국후사르> 핫하하, 농담도 심하셔. 

<야스페르츠> ㅋㅋ 정신링크... 진짜로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새   뇌입원에서 갑작스레 해당 질문들이 폭주하기 시작해서 "언제 한 번 총체적으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두분께서 동시에..... 역시 식민성령께서 가호하사....(퍽!) 

<Shaw>    그런... 요새 새 질문을 잘 안 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군요. 

<흠냐리>   용어 설정은 중요합니다. 구축전차는 전차가 아닌 것처럼요.... [어?] 

<무곡>     그냥 소설이라고 하죠(...) 

<불내예후>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이 재밌는게 아닐까요...대륙백제설이니 재야사학쪽은 저도 정말싫지만...   

<2009/01/17 19:16>  깔끔한 정리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

<ViceRoy> 저 유사역사학이 흔히 이야기하는 메타과학하고도 연관이 있겠다...했는데 역시나군요[웃음]   잘 보고 갑니다. 

<inAqua>  트랙백해갑니다. 뭉뚱그려있는 저의 '유사역사학'에 대한 생각이 구체화되었어요. 

<나인테일>  그저 이글루스에선 초록불님과 꼬깔님만이 구원의 길인 겁니다..(....) 

<칸트>      (1) 재야사학에서는 결론이 가장 먼저 정해지고 이를 보조하도록 근거가 만들어지며 자료의 신빙성도 미리 정해진 결론에 얼마나 부합하느냐 하는 점으로부터 추단되므로, 모든 논증은 기본적으로 순환논증에 불과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표현상으로 좀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점에 의문이 들어서 질문을 남깁니다. 저는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라 역사적인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결론에 끼워 맞추어 증거를 선별한다고 하는 것은 증거를 곧 아전인수식으로 그릇되게 해석해버리는것 또는 a라는 주장을 대변하기 위하여 b라는 근거(사료)를 내새우나 전혀 논리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것 등을 들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역사적 사실을 위하여 근거를 끌어 모으는 행위 자체를 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슐리만이 트로이의 전설이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문명에 대한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면 그에 대한 유물을 찾기위해 터키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근거를 확보해야 주장이 성립이 되지요 그러나 앞서 제가 말씀드리 두가지 경우에 그러한 근거가 해당될 경우에 근거가 주장의 전제로서 설득력을 상실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일단 1.의 경우는 사료를 조작하지 않는한 거의 일어날 수없는 경우인듯 합니다.

<Shaw>   안녕하세요? 쓴지 제법 시간이 지난 글들인데, 읽어보아 주시고 코멘트 달아주셔서 우선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양해를 구해올리고 싶은 것은, 제가 블로그 체크와 회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된 탓에 모처럼 해주신 말씀을 제가 전부 자세히 읽질 못하거나, 하나 하나 회답을 드리지는 못할수가 있습니다. 그런 문제도 있거니와, 제가 공부가 부족하여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급적 이야기의 대요에 회답코자 노력하겠으나, 먼저 제가 다 읽어보아야 하겠기에 날이 밝으면 쓰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보니 이미 어제 아침에 쓰신 글인데 이렇게 대답을 지연시켜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수가 없습니다.

<칸트>    바로 님이 말씀하신 사료조작이나 한문자료 잘못해석의 경우인데 이정도면 상당히 재야사학의 허풍치고는 귀여운 편이지요 없는사실 거짓으로 꾸며냈으니 말입니다. 두번째 경우가 제가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동성왕 시절에 백제에 북위가 기병 20만을 이끌고 처들어왔다는 기사 하나만 보고 백제에 대륙영토가 존재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북위기병은 무조건 배를타고 상륙전을 전개할 수 없다는 잘못된 전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료하나가 주장하는 바의 충분조건이 되는 경우로 착각하는 경우가 바로 이 경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주장과 상호주관적인(역사학은 수학이아닌 경험과학이기 때문에) 필연적 관련성이 근거와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를 말함이며 바로 주장하는 논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인 논거의 관련성이 희박한 경우를 말합니다. 물론 그들의 말처럼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생각해보는것이 전혀 문제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추리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알수 있는 부분이 100%가 아니기에 그렇게 예측해 버리는 것은 (추리소설에서는 한가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치밀하게 소설안에 사건의 단서를 100% 구현하여 그 결론이 아니면 사건을 설명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기 때문입니다.) 무모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순환논증이라는 부분입니다. 1의 경우 2의 경우 과연 어디서 순환논증이 발생한다는 것입니까? 사료나 유물은 역사적 사실을 

<칸트>    증명하는 유용한 도구들 입니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을 위해 제시된 유물이나 사료의 정당성이 다시 그 역사적 사실에 의해 정당화 되는 것이 바로 그 구조란 말이신지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되서 질문드립니다.


           유물은 객관적인 것으로 탄소연대 측정과 같은 간단한 방법으로도 후대에 제작된 물건이 아님을 분명히 가려낼 수 있으며 1차적 사료의 조작또한 많은 경우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것으로 보았을 때 역사는 경헙과학이기 때문에 순환논증이라는 어휘 자체가 성립하기 힘든 학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조작하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것은 1의 경우가 될 것 같군요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드실 것입니다. 당신은 애초에 그 사료가 조작되었는지 조작되지 않았는지를 어떻게 아는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 이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경우든 사료의 정당성은 의심받기 마련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료가 의심을 받을 상황은 대게 다른 사료와 배치되는 내용으로 그것이 드러납니다. 혹은 시대에 맞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든지요 그렇다고하여 주장이 사실을 다시 증명하는 구조로 역사적 논증이 이루어 집니까?


           예를들어 조선왕조실록에 한단고기의 책중 삼성기의 이름이 등장한다하여 삼성기가 실제로 후대에 지어진 것이 아닌 고기로부터 내려온 글이라는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삼성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전혀 무관한 일을 연결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쉽게 반례를 들면 후대의 사람이 그것을 보고 삼성기라는 책을 또 지으면 말짱황 아니ㅇ냐? 라는 약간의 생각만 하여도 알수 있는 것을 들수 있겠습니다. 그냥 비유적인 의미로 쓰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하신건지 헷갈려서 질문남깁니다. 답변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칸트>    그들은 삼성기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했기 때문에 옛부터 내려오는 고서이다라고 생각할 뿐이지 삼성기가 옛부터 내려온다는 위서가 아니라는 사뭇 빈약한 주장 때문에 조선왕조 실록의 기록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Shaw>  써주신 것들은 원리적으로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제가 쓴 글의 논조는 저의 개인적인 적개심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울수가 없습니다. 재야사학을 비판하는 것이 지나쳐 과장된 표현을 여과없이 사용한 경우도 있고, 어떻게 보면 다소 불공정한 평가를 내린 부분도 있습니다. 지금도 적개심에서는 같지만, 앞으로 글을 또 쓰게 된다면 그런 요소는 문면에서 가급적 제거를 하려고 생각합니다.


          위 포스팅에 대하여 질문주신 것은 대체로 자료의 신빙성이 미리 정해진 결론에 얼마나 부합하느냐 하는 점으로부터 추단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는데 관련된 것 같습니다. 저 주장은 사실, 의도에 대한 추론을 포함한 것이고 눈에 띄는 사실 그대로에 대한 진술이 아닙니다. 저 자신은 그 추론이 옳다고 물론 여기지만, 자세한 논증이 없이 제시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역사 연구에 활용하는 사료는 여러 종류인데, 그 중에는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환단고기같은 경우에는 위서로 판정되므로 사료로는 쓰일수 없으나, 이를 사료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개인, 집단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모든 사료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고, 심하면 상호 모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굳이 하나를 택하려면 다른 것의 내용은 기각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환단고기 같은 경우에, 다른 사료와 배치되는 부분이 너무 많으므로 환단고기를 취신하려면 필수적으로 삼국사기나, 중국 사료들의 내용을 기각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에 동원되는 것이,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자인 김부식이 썼다던가, 중국인은 춘추필법으로 치욕적인 역사를 감추고 조작했다던가 하는 말들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뭐라고 코멘트하기도 괴로운 얘기들이지만, 의외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설득력있게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료 선별과 취신에 동원되는 저러한 주장의 입증이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사료가운데 정확히 어떤 한 부분 부분이 조작이나 오전이 아닌 사실인가를 증명하기란 많은 경우에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정교하게 짜여진 논의라도 실은 완전치 못한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해도 어떻게든 정확한 전제를 사용하려는 노력은 있어야 하겠습니다.


          환단고기와 상충되는 삼국사기나 중국 사료의 내용은 김부식이나 중국인 사관이 조작했다는 주장을 무엇으로 증명할수 있겠습니까? 사료에서 나타나는 명백한 조작건이나 오류를 발견하여 취합한다해도 부족한 것이, 저런식의 조작설이 사실이라면 그 범위는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정복 기사나 행정구역 관련 기사도 상당부분이 조작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런 대규모 조작이 행해졌음을 입증하려면, 사실상 이는 근원 사료 선택 이전에 이미 환단고기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라도 해야만 '사실' 과 다른 역사 기록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제가 위에 쓴 이야기는 대강 그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로 든 환단고기의 지지자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그런 주장을 한다고 보장할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입증을 하기 전에 이미 환단고기 내용에 우선권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 추론이고, 이 추론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표현도 잘못일 수 있는 것이, 저는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할 때는 순환논증의 '기미가 있다' 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 에두른 표현을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드러난 이야기만으로 순환논증이라고 말 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듯 하여 더 자세한 말씀을 드릴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이상한 부분이나 제가 과대해석을 하는 부분은 언제든 지적하여 주십시오. 저도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할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므로,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재야사학에서 동원하는 논리와 그에대한 반박은 초록불님 인덱스에 많이 나와 있으니, 참고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무슨 생각으로 말한 것인지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http://orumi.egloos.com/3390711#3390711_1

<칸트>   명도전의 예를 들어 순환논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자료 자체의 신빙성 여부보다는 증명되어야 할 대상을 전제에서 참으로 규정하는 경우라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자료자체가 부당하다기 보다는 대부분 자료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전제 또는 증명해야할 대상 그것을 증명되지 않는 전제로 놓고 논의를 전개해서 순환논증이 생긴다고 보는게 옳은 것 같습니다.


          자료 자체는 객관적인 것이니까요 완벽하게 조작하는 경우는 논외로 합시다.   따라서 1번 항목과 같은 경우는 조금 표현상으로 다르게 고치는게 좋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만 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칸트>   그러므로 주장1 주장-명도전은 조선의 화폐 근거-연나라에서는 조선의 화폐가 발견되지 않는다

          전제-연나라와 조선의 영토가 이미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주장2 주장-조선의 강역은 이정도였다 근거-명도전의 출토범위

          전제-명도전은 조선의 화폐


          이와 같은 경우에서 전제1과 전제2가 거짓이라고 해보면 이 논의는 이중으로 무너지는 해괴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그게 아닐수도 있잖아? 또는 명도전이 조선의 화폐가 아니면?과 같이 말입니다. 크게 보아서 제가 말씀드린 2번 범주에 들어가서 명도전의 출토범위가 주장2도 주장1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것입니다.


          순환논증은 순환논증이나 결론에 얼마나 부합 또는 결론에서 근거를 추단한다라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것 같습니다만 이는 순환논증이라기보다는 후건긍정오류에 속하는 편이 아닌가 합니다. 순환논증이라는 걸 부정하는게 아니라 그래서 순환논증은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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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론에 앞서 ■▶


이 사람은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을 인식하여야만 할 듯하다.   [앵무새]가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시중市中에 나와 있는 [사이비 과학 즉 우리말로 유사과학類似科學]이라는 책자冊子에서 영감靈感을 얻었다고 떠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일에 정말로 [유사類似]라는 표현이 그럴듯하여 다만 이름만을 복사複寫했다면 필자筆者도 기발奇拔한 언어구사言語驅使 능력에만 탄복할 뿐이지 <역사논쟁>과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므로 딱히 손을 댈 까닭은 없다.  


하지만 숨은 의도가 [유사과학類似科學➡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민족사학民族史學]이라는 입장에서 그 책에 있던 지극히 과학적인 논지論旨와 검증방식檢證方式을 입맛대로 채용採用했다고 주장한다면 문제는 전혀 다르다.


즉 저자著者가 피력한 [유사과학類似科學]과 같은 내용과 형식 그리고 학문적 경향과 연구 자세를 액면額面 그대로 받아들여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 비판批判]의 근거로 삼았다면 스스로를 진흙탕에 빠뜨린 치유治癒할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誤謬이다.   필자筆者가 앞에서 [유사과학類似科學=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으로 대입代入한 [앵무새]의 글에 관하여 그 모순矛盾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바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Shaw>라는 사람이 한술 더 떠서 이를 거듭 [역사학]의 영역에 마구잡이로 끌어들였으니 좀 더 명확하게  구별해 줄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기본적인 속성屬性과 이론전개구조는 유사과학類似科學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이 사람의 논점論点이 [이런 과학이라는 일반론에서 역사문제인 민족사학民族史學 대입代入이라는 특수성으로] 확장되고 있으므로 그 부분에 관한 쟁점爭點을 집중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학 부분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필자筆者의 주장은 다음에 게재揭載할 [역사학과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관계를 보다 깊게 논論하는 글에서 다시 설명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사과학類似科學]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일 수가 없는 다시 말해 [과학]의 본질적인 연구 방법과 이론적인 규명체계糾明體系 등에 대한 접근 방법을 기준으로 한 <과학>이라는 한정된 영역 안에서의 특별한 분석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겠다.



1) [역사학]이라는 학문學問은 [과학]보다는 인문학人文學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견해見解가 일반적이다.   기껏해야 <사회과학社會科學>으로 분류分類될 뿐으로서 그 가운데에서도 과학적인 설명구조에서 가장 벗어난 덜 과학적인 분야로 간주된다는 게 정설定說이다(정치政治도 정치과학*노벨 경제학상經濟學賞에서도 경제과학이란 말을 종종 쓰는데 역사학과歷史學科를 역사과학과歷史科學科라는 명칭名稱으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2)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역사란 구체적 사실들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기본 인식을 굳게 신뢰하기 때문에 자신을 과학자로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널리 인정되는 과학적 사실이나 방법론도 배우지 않는다.   이 점이 자연과학으로 규정된 천문학天文學*기후학氣候學*생태학生態學*진화생물학進化生物學*고생물학古生物學*지질학地質學 등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경계이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과학적인 예측豫測과 정답을 벗어나는 진행 과정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문명文明의 생존生存과 발전 양태樣態를 좌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즉 대단히 [비과학적]인 요소要素중의 하나가 역사의 운명을 판가름 짓는 인간 또는 인간 집단들의 인류사적人類史的인 삶의 궤적軌跡이라는 인과因果 관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걸 더 잘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3) 또한 확실한 <비역사적 과학>인 [물리학物理學*화학化學*분자생물학分子生物學 ]등의 분야에서 흔히 추구하는 방법론과 인과관계因果關係 정립定立 그리고 예측豫測과 결론도출 방식과는 조금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유사과학類似科學]을 구분하기 위하여 접근하였던 여러 분석 검증 방법이나 예측결과 그리고 유사과학자類似科學者들의 주장들과는 비교 대상은 되지만 그러한 성질들을 완전하게 공유共有하고 있지는 않다.



필자筆者는 이 부분에서 [비역사적 과학과 역사학]의 기본적인 연구 태도와 결론 도출방식導出方式의 미묘한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한 논문論文을 소개해주면서 이 부분의 견해見解로 보충補充하겠다.   <제레드jared 다이아몬드Diamond>의 [총*균*쇠 Guns Germs and Steel]이다.



1) [방법론의 문제]이다.   물리학物理學에서는 주로 <실험>을 이용한다.   어떤 매개변수媒介變數의 영향을 알고 싶으면 그 변수變數에 대하여 <조작실험操作實驗*일정하게 유지하는 대조실험對照實驗*항상 일정하게 유지시킨 다른 변수變數와의 비교실험]을 반복해 충분한 자료를 얻는다.   화학化學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실험실적인 방식으로도 <유사과학類似科學>은 충분하게 과학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학]은 다르다.   <실험>을 하거나 재생再生하거나 인위적人爲的으로 변형變形하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직접적이고 궁극적인 원인들의 사슬관계를 기본 대상으로 연구한다.  


   궁극적인 원인과 추구追求하는 목적이나 믿음집착이라는 개념들이 무의미한 [과학]과 [유사과학類似科學]의 대응관계對應關係와는 출발부터 판이하게 다르다.   다시 말해 <역사학>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활동과 어떤 체계를 완전히 그리고 원형原形에 가깝게 이해하는 데는 과학적인 논리검증論理檢證과의 차별화差別化가 필수적이다.



유럽 역사학자들은 AD 1815년과 AD 1918년의 유럽전쟁으로 값비싼 희생을 치루고 나서야 평화를 되찾았다는 결론에 만족하지 않는다.   왜 AD 1815년과는 달리 AD 1918년이라는 몇 십 년 뒤 다시 세계대전이 터져 더욱 큰 희생을 치렀는지?  


    두 차례의 <평화조약>이 체결締結되기까지 진행되었던 여러 사건들에 관한 인과관계因果關係 사슬을 대조하는 것이 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학자化學者들은 두 기체氣體 분자分子의 충돌에 관해 어떤 목적이나 기능 따위를 설정하지 않으며 충돌의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등과 같은 문제는 아예 관심 밖이다.



2) [예측의 문제]이다.   물리학物理學에서 어떤 가설假說이나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는지? 를 입증立證하는 방법은 그것들이 앞으로 나타낼 반응反應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유사과학類似科學]은 여기에서 그 생명을 다한다.


   이에 비해 자연과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앞서 말했듯이 귀납적歸納的인 설명(어떤 종種이나 어떤 문명은 어떤 원인과 사실로 소멸消滅하고 어떻게 하여 살아남았거나 문명의 흔적들이 존재하고 있는지?)을 할 수는 있으나


   선험적先驗的인 [예측]은 대단히 어렵다(우리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든지 어떤 종種이 사라지거나 어떤 민족의 운명에 대한 확신적인 정답은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래에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어 우리가 알게 될 과거 사건들의 내용을 미리 예측해보며 또한 그 예측을 검증檢證해보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변종사학變種史學]이 외면한 모든 추론推論들이 아직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가지고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다.



3) [복잡성의 문제]이다.   역사체계는 [예측]을 시도試圖하는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특성들을 가진다.   그래서 이를 설명하는데 몇 가지 방식들을 허용한다.   인간집단은 상호 반응하는 개별적인 변수變數들이 엄청나서 그 사회적인 발현發現 형태가 지극히 복잡하다는 가정假定이다(조그만 하위변수下位變數가 상위변수上位變數를 중重大하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는 인간사회체계의 [복잡성]이라는 것이 물리학物理學 등의 경우처럼 <결정되어진 인과관계因果關係>가 곧바로 <예측 가능성 확보>로 이어지는 걸 처음부터 방해한다는 말이다.   여기가 바로 <역사학>이 [유사과학類似科學]과 결정적인 이별을 하는 분기점分岐點이다.   그런 입장에서는 [변종사학變種史學]이나 [민족사학民族史學]이나 모두가 평행선을 그은 채 같은 배를 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왜 동맹국이 아니라 연합군이 승리했는지? 를 분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할 때 양자역학量子力學에 대한 지식과 이론체계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며 그런 방식은 [과학]과 [유사과학類似科學]의 논쟁문제에만 개입할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예측豫測할 수 없는 개체個體이며 그 집단은 유기적有機的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변수變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반면에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소립자素粒子나 동위원소同位元素들은 <화학자>가 다루고 있는 분자分子들과 마찬가지로 그 종류에 속한 모든 개체個體가 동일하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거시적巨視的인 차원에서 보편적인 법칙들을 도출導出하여 정립定立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유사과학類似科學]이라는 단정斷定은 [역사적인 논리 구조]와는 거리가 먼 지극히 <과학적인 판단 기준>에서 나온 결정일 뿐이다.



4) [분석과정에서의 자료선택과 해석방법의 차별성 문제]이다.  우리가 <역사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고대古代 역사]가 매우 흥미롭기는 하지만 깊이 분석하려면 지극히 유동적流動的인 분야라는 사실이다 [1].  


   어떤 역사적 사건의 전말顚末이 쉼 없이 동요하기 때문에 <고고학적考古學的 사건史件>과 <문헌文獻에 기초한 역사적 사건史件>의 본말本末과 인과관계를 합치合致시키려는 노력은 언제 어디서든지 다양한 견해見解와의 신선한 충격을 지니면서 전개되는 가운데 논의論議를 활성화 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종종 문헌文獻 자료의 선택과 해석은 연구자의 의식을 은연중에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전통에 의지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서든 자신의 사고思考 과정이 개입되므로 매우 제한적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연구자가 스스로 의문을 품거나 현명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기한 질문에 따라 모든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가운데 기본적인 해석의 기반으로 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즉 열린 마음과 닫힌 고집과의 차이가 서로 상이한 입장으로 갈라졌을 뿐이지 근본적인 연구 분석방법이나 결론을 도출導出하는 형식에서는 [변종사학變種史學]이나 [민족사학民族史學]이나 실상 별다른 차이가 없다 [2].   이런 관점에서 [유사과학類似科學]이 성취하려는 결론과 분석방법론은 역사논쟁에서 추구하는 다양한 형식과 검증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1] 지속적인 발굴과 발견에 의해 새로운 유물遺物과 문헌文獻들이 출현하여 이를 바탕으로 한 여러 분석결과와 해석이 표면 위로 떠오른다.   다양한 유물遺物들이 등장하고 고고학자考古學者들이 제기提起하는 질문質問 또한 다채롭기 때문에 그동안 완성되었다고 믿었던 [해석]의 표면은 허구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노출露出되어 부풀어 오른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역사연구자]들은 판단을 미루거나 새로운 의문疑問을 증가시키면서 기존의 해석들에 도전하거나 다른 각도角度의 비교 분석 결과를 제시提示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외면外面과 무시無視와 묵살黙殺과 무결점수정불가주의無缺點修正不可主義가 아니다.


[2] <역사 논쟁論爭>의 진정한 의미는 분석 가능한 자료들과 입수入手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질서 있고 균형적으로 배열配列하여 일련一連의 전후관계Context를 형성한 다음 유용有用한 [실마리]를 토대土臺로 가장 현명한 [예측豫測과 가설假說]을 얻어내는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나는 사료史料와 흔적들을 냉철하고 공정하게 비교 분석하여 본질本質에 접근하려는 자세만 유지한다면 반드시 서로 대응하여 진실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기본 상식이다.  

    

    [민족사학자民族史學者]들은 거기에서 그럴듯한 유사성類似性을 찾아내어 이를 바탕으로 의도했던 바를 유추類推할 연결점을 만들어 이를 논리적 여과장치濾過裝置를 거쳐 하나의 진정한 가설假說을 얻는 과정을 중시重視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록불님께서 요즘 자주 사용하신 덕에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이라는 용어가 제법 널리 알려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나는 오랫동안 재야사학이라는 말을 써 온 탓에 익숙한 것을 계속 사용하는 중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회의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개념이 역시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는 주장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렇게 고쳐져야만 한다.



[앵무새]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Pseudohistory)이라는 용어가 제법 널리 왜곡歪曲되어지고 있다.   [역사학]의 근본정신과 미래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차라리 오랫동안 써온 <재야사학在野史學>을 계속 사용하는 태도가 그래도 제 자리를 찾아가는 정상적인 태도이며 그나마 역사학을 연구한다는 사람으로서의 체면體面을 구기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전 세계적으로 회의주의자懷疑主義者들이 사용하는 개념(필자筆者는 이 말이 무슨 기준으로 그리고 어떤 의미로 툭 튀어나왔는지?   아직도 회의적懷疑的이다)을 제멋대로 혼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자신과는 다른 학문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학자史學者들을 아무런 고민 도 없이 그리고 각별한 학문적 접근 자세도 없이 경망스럽게 대입代入시켜 단정한다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매우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 반론反論 시작 ■▶



지금 [앵무새]가 [과학]과 [유사과학類似科學]을 가르는 분석기법을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對應시켜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내용들은 이를 뒤집으면 그대로 [변종사학變種史學]의 입장과도 고스란히 오버랩 되는 자가당착적自家撞着的인 논리구조論理構造이다.  


즉 역사 분석과 의미부여의 <분석모델>이나 비교검증을 위한 <연구방식>은 동일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확정하기 위해 기본적인 인식 기준으로 삼고 있는 [패러다임]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예例를 든다면 사기史記가 한족漢族의 역사를 단 하나 뿐인 통합적인 역사로 보는 관점에서 북방민족이나 동방제국의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구축構築한 [중국中國 중심 문명사적 패러다임]과


역사발전 단계에서 농경정착문화農耕定着文化와 유목목축문명遊牧牧畜文明을 양兩 축軸으로 인정하는 [兩文明의 인정의 상호대응적相互對應的 패러다임]의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인식認識과 논리論理의 차별성差別性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1) 한족漢族 사가史家들은 전통적으로 북방민족과의 문화적인 접촉을 현명하게 파악하려 하지 않고 피해의식의 극단적인 반발이라는 견지堅持에서 [중국화中國化=미개未開한 행동의 교화敎化] 라는 도식圖式에 한정시켜 기술記述해왔다.   그래서 이방異邦은 곧 문명적으로 동화同化시켜야 할 존재들로만 왜곡歪曲하거나 미미한 세력으로 언급하는 자세로 일관一貫했다.


2) 그도 아니라면 문명文明과는 완전하게 동떨어져 있거나 문명文明이 침투할 수 없기에 경계 밖에 머물러 있어야 할 운명으로 때로는 매력이 없거나 자신들을 위협하는 미개인未開人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3) 이러한 [패러다임]의 고착固着 속에서 문화적 접촉과 민족 간의 차이를 다양한 문명 세계의 한 요소要素로서 서술敍述하는 역사서歷史書를 쓰기란 매우 어려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제齊 환공桓公 시대 천자天子는 초라해지고 약해졌으며 제후諸侯들은 서로 공격하였다.   남쪽의 야만인野蠻人과 북쪽의 오랑캐가 침입하여 중국中國의 존망存亡이 위기에 놓였다...환공桓公은 중국中國의 재난과 이적夷狄들의 반란을 걱정하였다.   그는 꺼져가는 것을 되살리고 사라져가는 것을 유지하고자하였으며 천자天子의 지위가 존경받게 하고 문무文武의 업業을 확장시키고자 하였다.   관자管子는 이러한 상황에서 씌어졌다.   <회남자淮南子 권21>



이 같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바로 [앵무새]나 <Shaw>와 같은 함정에 빠져 결코 헤어나지 못한다.   단정적으로 말해 어떤 역사적인 추론推論에 있어서 입장의 차이는 [유사과학類似科學]을 빗댄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의 논리구조論理構造에 있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관점觀點의 상이성相異性에서 부딪치는 마찰운동摩擦運動의 결과라는 걸 아예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아집我執과 기존 학설學說에 대한 교조적敎條的 믿음이 한데 어울려져 빚어낸 자기기만自己欺瞞이다.



※ [민족사학계民族史學界]는 관련 기술과 과학적 분석기법의 발달로 인해 고고학적考古學的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오히려 역사연구에 있어서 가장 흥미진진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한족漢族과 서양 학자들이 저술著述한 고전古典 속의 전통적 패러다임에 스며있는(주로 근대 서양 학계의 해석도 그러하다) 폐쇄공포증적閉鎖恐怖症的 편협성偏狹性을 벗어던진 분석 방식이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증거로서 제시하고 있다.



1) [민족사학民族史學]은 이렇듯 수정불가론적修正不可論的인 역사해석 공간을 더 넓히고 북방과 동방민족의 문명을 문화사적인 수준으로 회복시키며 이를 공정하게 기술記述하려는 방법으로서 다양한 역사적인 증거물과 기록들을 인과관계에 따라 그대로 드러내려 하는 입장이다.


2) 또한 아직은 전부 규명糾明하기에 여러 가지 손길들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한 가지만을 고집하려는 것도 아닌 언제나 다른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낼 수 있도록 하나 이상의 [키포인트]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다.


3) 결론적으로 우리의 역사연구 자세는 한 단위의 연구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자료 분석 과정에 나타나는 의문疑問들을 특별하게 주목하는 가운데 기존의 해석 태도나 관점觀點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아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여 북방 문명과 동방사회구성체東方社會構成體를 새롭게 조명照明할 자리를 마련하려는 대단히 겸허謙虛한 태도이다.



이런 역사적인 [패러다임] 속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한 축軸을 역사적으로 담당한 북방세력권과 동방사회가 나름대로 자율적이고 자기완성을 위한 문명진화법칙文明進化法則을 가졌으며 하나의 동시대적同時代的인 문화적 발전을 이룬 역사적인 지역]임을 입증立證하고 재구성하는 노력이



어째서 [유사과학類似科學]의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非理性的인 패러다임과 <판박이>라는 건지?    필자筆者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불가不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