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刻舟求劍 2012. 2. 10. 21:16

 

‘도가니’ ‘부러진 화살’ 이어 ‘춘천옥산가’도 논란
위조서류, 필적감정 등 초동수사 제대로 했나 의혹

 

‘춘천옥산가’‘춘천옥광산’으로 유명한 대일광업(주)을 둘러싼 남매간의 경영권 분쟁이 치열하다. 김00(79·누나)대일광업 회장과 김준한(77·동생)전 대표 남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부터 수십여 차례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974년 2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소재에서 최00(대표), 이00, 전00, 이00, 최00, 유00 등에 의해 한국제이드(주)로 출발한 대일은 춘천 옥광산을 개발했다. 하지만 분쟁과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77년, 김준한에게 넘어갔다. 이후 남매의 우애는 깨졌고 양측이 입은 상처는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깊어 졌다. 이후 이들의 갈등은 수조원에 이르는 재산가치 때문에 발생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옥광산 인수, 누가했나?

김준한에 따르면, 6.25전쟁이 끝난 53년 9월에 고향인 경북 영주군 풍기면에서 춘천으로 이사를 온다. 이후 김준한은 이웃의 소개로 당시 2군단 특무재장 공병익 중령의 도움으로 운수사업에 뛰어들었다.

60년대에는 미군의 용역운송사업자인 대한통운, 용산화물, 대륙운수 등의 하청을 맡아 사업을 일으켰다. 70년 7월 1일부터는 인천에서 미8군 양주보관 창고업과 양주운송 사업까지 확장한다.

사업에 탄탄대로를 걷던 김준한은 70년대 초반부터 광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영월에 석회석 광산(3개)과 울진에 활석광산(2개)을 개발한다.

77년 5월, 영월에서 운영하던 석회석 광산을 현재 KCC그룹 계열사인 고려시리카(주)에 1억원에 매각한다.

김준한은 77년 8월 16일 박00(10%, 3000주), 신00(5%, 1500주)등으로부터 대일광업 15%의 지분을 매입한다. 같은 날 전00의 지분37%를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여 52%지분을 확보, 대표이사에 취임한다.

김준한은 2개월 뒤인 10월에 정00(34.67%, 1만400주)지분, 78년 8월에는 유00(2%, 600주)·이00(11%, 3200주)의 지분을 잇따라 매입한다. 이때 김준한이 취득한 지분은 총 62.67%(1만8800주)이다.

이후 김준한은 김준한(29.67%)·김 회장(25%)·김00(10%,전무․김 회장 아들)·송00(5%,모친)·김00(2%,감사)·박00(1%,이사)등의 지분구조로 명의 신탁하고 김 전무 명의로 신탁한 지분만 85년 3월에 다시 회수한다. 당시 김 전무가 노름에 빠져 회사를 어렵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의 주장은 다르다.

춘천지방법원 공판조서(2002고합 51,59,60)에서 김 회장은 “개인 업체로 현대주유소를 설립하여 1968년경부터 운영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개인 돈과 석유공사로부터의 지원금을 합쳐서 설립했다. 김준한이 1964년부터 약 7년 동안 미군 부대인 캠프페이지 제4유도탄 부대에서 운송용역사업을 할 때 사업을 함께 해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운영하는 회사가 여러 개 있었고 대일광업 주식을 매입할 당시 회사 운영을 동생이 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주식을 매입했기 때문에 주주명부 명의에 대하여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주권 매수, 엇갈린 진술

남매간의 분쟁은 ‘구주 주권매수’로부터 비롯된다. 양측은 자신의 자금으로 고영광·홍기웅 지분까지 모두 인수해 1인 주주(100%소유)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90년 1월 21일에 고영광으로부터 매입한 지분(20%)과 90년 2월 20일에 홍기웅으로부터 매입한 지분(17.33%)을 김준한(10.33%), 아들(7%)에게 양도했다는 통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또한 김준한이 위

조했다는 임시주주총회통고서(91.6.27.자)와 김준한 대표이사 직인만 찍혀 있는 임시주주총회 의사록도 증거로 제출했다.

반면 김준한은 87년 11월 10일에 고영광과 맺은 주식매매계약서와 90년 1월에 작성한 홍기웅이 대일광업에 보낸 통고서, 그리고 구 주권을 법원에 제출했다. 주권에는 홍기웅에서 김준한으로 양도․양수된 이력이 나와 있다. 홍기웅의 통고서에는 90년 2월3일자 우체국 소인이 찍혀있다.

김준한은 84년 10월 울진의 활석광산 2개 등록 광업권을 매각(1억4250만원)해, 이 자금으로 고영광(지분 20%, 6000주)과 홍기웅(17.33%, 5000주)이 보유한 지분을 각각 87년과 89년에 매입했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이와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자신이 현대석유(주) 등에서 번 돈으로 광산사업에 투자, 90년에 지분 100%를 매입하면서 1인 주주가 됐고, 타인 이름으로 지분을 신탁했다는 것이다.

또한 춘천지방법원 공판조서(2002고합 51,59,60)에서 김 회장 본인이 대일광업의 100% 주주이면서 20년이 넘도록 김준한을 대표이사로 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준한이 내 동생이고 객지에 나가 여러 가지 사업에 실패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해 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90년 지분구조 주권위조 속내

1990년 대일광업의 지분구조는 김 회장(45%)·김준한(40%)·김 전무(15%)로 변경된다.

김 회장에게 고영광의 지분 20%, 김준한에게 홍기웅 지분 10.33%, 김 전무에겐 홍기웅(7%)·송00(5%)·김00(2%)·박 이사(1%)의 지분이 양도된다.

김 회장은 “90년에 김준한이 대일광업 주식을 만들어 본인과 아들에게 나눠주었다. 당시 박 이사가 입회했다”고 재판(2002고합 51,52,53)에서 주장했다.

이에 박 이사는 “사실이 아니다”고 ‘확인진술서(2007.2.12)’에 대답했다.

박 이사는 “기존 주주를 직접 만나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지급한 것은 김준한” 이라며 “홍기웅(주식인수)은 자세히 모른다. 고영광은 직접 본인이 저한테 (몇 번) 전화를 걸어 주식을 김준한에게 팔았는데 잔금을 못 받았으니 잔액을 빨리해주라고 했다”며 서울고법 공판(2003.3.18)에서 증언했다.

홍기웅도 “90년 1월 20일 경에 대일광업에 전체 주식을 김준한에게 6000만원에 양도했다”며 “88.12.부터 89.9.16.까지 4차례에 걸쳐 주식매매 대금 6000만원을 지급받았다”고 춘천지법에 낸 ‘확인서(2003.2.17)’를 통해 밝혔다.

김기현(81년 도미) 전 상무도 대일의 인수자금은 김준한에게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준한은 미군부대 운송사업 관계로 바빠 춘천의 유류사업 부문을 누나에게 맡겼다”며 “당시 김 회장이 육군하사와 이혼하고 친정집으로 돌아와 아무런 재산이 없었다. 김준한이 43세 노총각으로 79년에 늦게 결혼하는 관계로 김준한이 번 돈을 누나가 관리했다”고 미국 인증증인서(2003.3.26)를 통해 밝혔다.

김기현은 60년대 춘천주둔 미군부대 캠프페이지의 유류, 폐차, 폐들, 식량 운송을 담당하던 용산화물과 대한통운의 춘천영업소장을 지냈다. 그의 도움으로 운수사업을 일구었다. 이 인연으로 김기현은 70년 미 8군의 양주보관 창고와 운송 사업을 하는 김준한 회사의 통역과 행정업무를 담당 했다. 이후 김준한이 대일광산 지분매입과정에 관여, 초기 상무를 지냈다. 그는 주주로 주주명부에 등재됐고, 김회장과 함께 이사회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김회장은 법원에서 그의 신변에 대해 모른다고 일관한다.

 

조카의 삼촌 퇴출 '논란'

박 이사의 서울고법 증언(2003.3.18)에 따르면, 이날 정오께 김 전무는 김준한에게 "삼촌 좀 들어오시오“라며 사무실로 부른다. 그는 ”삼촌 오늘 당장 대표이사직을 사임하시오“라며 ”주주명부상 대일광업의 주식 중 60%는 어머니와 내 명의로 되어 있다. 오늘 당장 이 자리에서 사표를 내지 않으면 상법대로 처리하여 해임 하겠다“고 말한다. 당시 김 전무는 경호업체 용역에 힘을 빌려 김준한을 쫓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양측의 갈등은 점입가경 상태에 이른다.

김준한에 따르면 5개월이 지난 2000년 11월 19일에 김준한은 김 회장과 합의, 사임서를 제출한다.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다.

하지만 갈등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12월 29일자로 작성된 사임서가 나온 것이다.

김준한은 2002년에 김 회장을 상대로 주권위조, 사임서 위조, 주식청약서 위조 등의 혐의를 들어 소송을 제기한다.

주주권확인소송(2001 가합 1157) 당시 김준한은 “대일광업 주주명부상 총 주식 45,800주 중 김준한(18,320주), 김 회장(20,610주),김 전무(6.870주) 등에 주주권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며 명의개서 이행을 요구했다. 이에 김 회장도 “2010년 10우러 29일에 지분 분할에 따른 증여약청이 해지됨에 따라 김준한 명의로 개서된 18,320주에 대한 주주건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주권이 정식 발행되지 않은 상태라며 양측의 주장을 각각 기각했다.

김준한은 “법원에서 주권이 정식 발행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이는 법원이 내가 2000년 이전에 발행된 주권 40,000주 100%를 가진 1인 주주임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박 이사는 “당시 대일광업에는 김준환, 김 회장, 박 이사등 이사 3인과 김00 상근 감사가 있었다. 이사인 자신이 모르는 주주명부정리, 신주발행, 주권의 작성 교부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가짜’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은 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엇갈렸다.

김준한은 “1992년 9월에 내가 직접 인쇄소에 맡겨 주권을 인쇄했다. 그런데 1990년 12월 1일자로 작성됐다. 김 회장이 위조를 했다. 김 회장이 수차에 걸쳐 법정에서 김준한이 자신에게 45%, 김 전무에게 15%지분을 나눠졌다고 진술했다. 만약 김 회장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명의 신탁했다면 ‘찾아왔다’고 표현해야 옳다. 이는 내가 김 회장 등에게 명의 신탁한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는 셈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회장은 다른 주장이다.

김준한이 자신의 명의로 신탁을 해둔 지분 40%를 챙기기 위해 1990년경에 경리 직원A씨에게 넘버링을 구매해 번호를 날인케 했고, 다른 직원을 시켜 주주이름과 법인도장을 날인했다는 것이다. 주권을 조작한 사람이 오히려 김준한이라고 했다.

 

회사 근무하지 않은 김모씨 위증 의혹

김 회장은 “93~94년도경 김준한이 이것이 주권이니 잘 보관하라고 해 사무실 캐비넷 위에 올려 보관한 것이다. 2001년 봄에 김준한이 자기 지분을 주장해 그때 확인했다. 그 결과 50만원 주권 400매가 있었다”며 “작성일자가 1990.12.1.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 김준한이 작성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주장을 대변하는 여러 증언도 나왔다.

김 전 경리과장은 사건(2001가합 1157주주권확인) 출석 당시 “김준한이 시키는 대로 넘버링 도장을 찍고 주식배당표를 만든 다음 주권과 배당표에 계인했다”고 주장했다. 최 판매차장은 “91년에 김준한이 주권과 함께 법인 대표자 직인을 건네주면서 이름 옆에 날인하고 분류하여 3개 봉투에 담아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광산 관리부장 2003년 7월 28일에 춘천지검 308호 검사실에서 “김준한의 지시로 주권표면에 김준한의 한문이름 성명을 주권 160매(40%)에 기재했다. 1990.7.경이다”고 증언했다. 이때 김준한 이름은 기재했고, 김 회장·김 전무이름은 기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증인들은 사건 초기엔 90년 초에 김준한에 의해 위조됐음을 증언했다. 하지만 주권의 인쇄시기가 1992년임을 증명하는 인쇄소 문건이 나온 뒤 95년 이전이라고 증언을 번복한다.

하지만 김준한은 김 회장의 증언으로나선 김 관리부장의 위증을 폭로했다.

김 관리부장은 89년 1월부터 94년 11월까지 김 회장이 경영하던 현대공업사에 근무했다. 이후 대일에 99년 1월에 입사했다.

(2003.7.4. 2003가합 257주주권확인소송 반소 증인신문 조사). 90년에서 95년까지는 대일에 근무하지 않았던 김 관리부장이 김준한 지시로 주주권 작성을 도왔다는 것은 증언은 위증이라는 주장이다.

김준한은 “김 관리부장은 99년에 입사한 이후에 주권이 조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00년 5월 이전까지 김 회장과 김 전무에 의해 조직적으로 조작됐음을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류가 위조됐다. 고영광과 홍기웅 통고서를 비롯해 사임서, 남전 대표의 확인서 등이 위조됐다”고 주장했다.

또 “남00 대일광업 전 공동대표이사 명의로 낸 확인서(2003.2.24)에 따르면 ‘김준한이 1990년 초경 대일광업 주권을 위조한 사실과 관련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고 했다. 남 전 대표는 확인서 발생일자보다 2개월 앞선 1월 29일에 퇴사했다”고 말해다. 사임한 남 전 대표가 보낸 공문인 셈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취재진이 김 회장 측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본인이 아닌 해당사건을 10년간 맡은 담당 변호사를 연결했다. 하지만 담당 변호사는 “쓸데없는 질문이 많아 답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며 “서면 질의 외에는 어떠한 답변도 하고 싶지 않다. 바쁘니 시간 날 때 응답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남겨진 숙제는?

이 사건의 배후에는 1994년 춘천에서 발생한 춘천법조비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게 김준한 측의 주장이다. 사건이 처음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취재의 기본은 육하원칙이다. Who(누가), What(무엇을), When(언제), Where(어디서), Why(왜), How(어떻게)이다. 5W1H원칙이다.

수사에도 원칙이 있다. 수사자료 완전수집, 수사자료 감식·검토, 적성추리, 검증, 사실판단 증명 등의 5대 원칙이 있다. 이를 통해 범죄에 대한 혐의의 진부를 명확히 하고, 죄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하여 판결에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대일의 주권조작 사건을 풀 숙제이다. 두 개의 서류가 존재한다. 양측은 자신들의 것이 진본이라고 주장한다. 또 누군가 조작했다는 것도 확실한 팩트(Fact)이다.

대일의 주권조작 사건에는 세 개의 줄기가 있다. 첫째는 주주 고영광·홍기웅로부터 누가 주권을 매입했는가? 둘째, 1992년에 인쇄된 백지주권을 누가 1991년에 발행했나? 셋째 김준한·김 회장의 증인 가운데 누가 위증을 하고 있는가이다. 이 세 줄기와 연결된 가지 위엔 위조서류가 있다. 그것도 쌍둥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인장이 찍혀 있다. 이것만 제대로 수사했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