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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제자 카라, 레일린 & 에릭 삼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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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Helen/헬렌의 일상에서

2020. 12. 27.

2008년 5월 31일

우리 집 피아노 스튜디오에서

왼편부터 둘째 레일린(당시 만 8세), 맏이 카라(당시 만 10세), 

그리고 막내 에릭(당시 5세)

 

 

나는 대학교에서 원래 음악을 전공한 후, 공학을 전공해서 

생뚱맞은 조합의 학력을 소지자가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해서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로 6년간 하다가

공대를 졸업한 후는 바로 운 좋게 세계 굴지의 은행에 IT 전문가로 취직해서

음악과 아주 생판 다른 분야의 커리어우먼으로 일을 시작했다.

 

결혼 후 세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엔지니어로 12개국에서 일을 하다가,

자폐 아들때문에 수시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재택근무를 해도 별 지장이 없는 엔지니어 컨설턴트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전보다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서,

그동안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자주 가 보지도 못했고,

다른 엄마들처럼 여러가지 행사나, 선생님 도우미 봉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한테 늘 미안해하다가

늦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다가, 음악을 전공한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학교의 연극, 뮤지컬 그리고 크리스마스 합창공연을 맡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합창 지도와 피아노 반주 봉사를 몇 년하다보니,  우연하게 몇몇 학부모의 요청과 설득으로

별 뜻 없이 가볍게 거의 15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와서 23년째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지도하는 선생으로 세 번째 커리어가 생겨났다.

 

 

 

2009년 6월 7일

양로원에서 위문 공연 행사에서 연주하는 레일린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교 재학 시절에 피아노를 가르칠 때는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무조건 최고의 실력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다그치는 스파르타식의 지도를 했던 것 같다.

학생들의 실력이 인정받게 되고,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나의 지도 방식 역시 더 강도가 높아졌고, 아마도 은연중에 학생들의 성공만이 아니라

선생으로서 나의 이름을 알리는 이기적인 발상도 한몫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배경과 재능을 가진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접해보고,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 후,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특히 만 여섯 살까지 말을 못 할 정도의 중증 자폐 아들과

27주에 1 kg 도 안 돼서 초미숙아로 태어나서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늘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던 

큰 달을 키우면서, 내 눈높이가 아니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인내와 믿음으로 그들을 대하는 지혜와 아량의 덕을 덕분에 늦게나마 터득하게 되었다.

 

 

 

2009년 6월 7일

공연에서 첼로 연주를 한 큰 딸 진이와 레일린과 에릭과 함께...

 

 

그렇게 뒤늦게 엄마로서 그리고 선생으로서 겨우 철이 든 덕분에

어떤 재능이나 성격 혹은 장애가 있는 학생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는 나의 모토가 

고맙게도 나에 대한 소문이 입소문으로 점점 퍼지게 되면서,

3-4년 내에 본업인 엔지니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특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남자 어린이, 첫 피아노 선생님과의 나쁜 추억

혹은 복덩이 아들처럼 ADD 학생들, 그리고 시각장애인 등등)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 150명의 많은 학생들이 나를 거쳐갔는데,

집중력이 떨어진다거나,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어서 평이한 수업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미 두 세 선생님을 거쳐서 온 남자 어린이들이 많아서인지, 

다른 선생님처럼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월등히 많은 데 비해서

남학생 제자들의 비율이 60-70%를 차지한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만 5-6세에 레슨을 시작한 학생들 중 반 정도는 평균 4-5년간 수업을 받은 후 그만두었고,

나머지 반은 대학교 진학 후에도 레슨을 계속하게 되면서

최소 10년에서 16년까지 나와 함께 한 학생들이 많은 것이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한 학생과 유치원 때부터, 초 중 고등, 대학교까지, 

심지어는 사회인이 되는 과정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게 되는데,

제자들을 물론이고, 자연히 그들의 부모님들까지 좋은 친구로 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비록 피아노/클라리넷 레슨을 그만둔 후라도

그들의 생일, 학교 졸업식, 크리스마스/부활절 만찬, 결혼식 등등 특별한 날 행사에

초대될 정도로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2019년 1월 3일

우리 집에서 가진 새해 파티에 참석한 에릭의 가족

(왼편부터, 큰 딸 진이, 에릭의 아버지 디크, 레일린, 엄마 헤더 그리고 에릭)

 

 

에릭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학생 중 하나이다.

에릭은 카라와 레일린 두 누나가 있는데, 큰 누나 카라가 16년 전에

2학년(만 7살)에 올라가면서 제일 먼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년 후에 둘째인 레일린이 1학년에 입학해서 두 자매가 일요일 미사 후,

점심을 먹고 레슨을 받았다.

 

그러다가 막내인 에릭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세 남매가 다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의 엄마는 우리 도시에서 잘 알려진 암 전문가 의사이고,

아버지도 사고나 뇌출혈로 뇌가 손상된 이들의 재활의 로 아주 바쁜 가운데에서도

아이들의 큰 아버지와 nanny의 도움을 빌어서라도,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일요일 미사 후에, 오후 2시에 세 자녀들을 우리 집으로 실어 날랐다.

 

처음에는 세 자녀들 레슨에 맞추어서 한 사람씩 데려오고 데려가고 하다가

에릭이 2학년이 되면서, 아예 세 아이들을 다 한꺼번에 데리고 와서

한 사람이 레슨을 받는 동안, 두 아이들은 알아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거나

때로는 서로 투닥거리다가도 차례를 못 기다리고 잠을 잘 때도 많았다.

특히 막내인 에릭이 제일 먼저 레슨을 받고 나서, 미리 챙겨 온 책을 소파에 누워서 읽다가

누나들이 레슨을 하느라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늘 곯아떨어져서,

누나나 엄마가 자는 에릭을 안고 집에 가기 일수였다.

 

 

2010년 6월 23일에 우리 집 거실에서 열린 Year-End Recital에서 연주하는 카라

 

 

엄마인 헤더 역시 세 아이를 키우고, 치매까지 걸린 친정엄마도 챙겨야 하고,

암 치료를 받던 새엄마도 돌보면서 의사일을 병행하느라 너무도 힘든 그 시기에

세 아이들이 모두 우리 집에서 2시간 30분- 3시간 30분간  레슨을 받는 시간이

유일하게 혼자 혹은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내게 두고두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 역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워킹맘으로서 과부의 마음은 과부가 알듯이 

너무도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에, 단순히 피아노 선생님만이 아니라,

때로는 먹는 것도 챙겨주고 학교 숙제도 도와주고, 진로 상담도 해 주기도 하고,

급할 때는 부모 대신에 집까지 데려다주는 운전수 노릇을 기꺼이 해 주었다.

 

 

 

2019년 1월 3일에서 열린 새해 파티에서 초대되어서 온

나의 14년 된제자 수잔나(당시 대학교 4학년 재학)

그 옆에 역시 12년간 나의 제자였고 간호사로 막 취직한 수잔나의 언니 마가렛,

에릭의 큰 누나이며 수잔나와 유치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닌 절친이며,

나의 15년간 제자인 카라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세 남매 중에 둘째인 레일린이 2 년 전에 오타와 소재의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내 곁을 제일 먼저 떠났고, 

맏이인 카라는 대학교 재학 4년 내내 클라리넷 레슨을 받다가

대학교 졸업을 하면서 아쉽게 레슨을 그만두게 되면서,

15년간 학생과 제자의 관계를 청산했지만, 여전히 근황을 주고받는 사이를 이어가고 있다.

 

유일하게 남은 막내인 에릭은 올해 고3에 재학 중이다.

3월 말에 코로나로 모든 학교가 문을 닫게 되고, 다양한 서비스들이 봉쇄 상태에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잠정적으로 레슨을 중단하거나, 

세 명의 고등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을 했는데,

유일하게 의사 부모님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었고, 본인의 확고한 의지로

12월 초까지 유일하게 지난 16년간 그랬던 것처럼 한결같이 일요일 미사 후, 점심을 먹고

우리 집으로 레슨을 받으러 온 대단한 학생이다.

 

이렇게 학교 공부는 물론이고, 성당 내에서도 봉사활동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회복지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병행하면서, 비록 연습은 제대로 잘하지 못해도, 

16년간 꾸준하게 음악을 배우려는 마인드로 레슨에 임해 온 삼 남매를 가르치는 선생인 나는

오히려 이런 제자들과 그리고 인생에서 음악과 할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아시고

나를 믿고 오랫동안 뒤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원을 해 준 이들의 대단한 부모님으로부터 

늘 더 많이 배우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큰 행운이자 축복이라는 것을 자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거쳐간 많은 제자들이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보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를 포함해서 평생 음악과 함께 하면서 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 것에

큰 위안을 얻고 자부심이 느껴진다.

 

 

 

7년 전부터 연말이 되면 서로 번갈아가서 크리스마스나 새해에 함께 식사를 하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올해는 그 모임을 가질 수 없었지만,

 

12월 초에 다양한 크리스마스 쿠키를 예쁘게 포장한 선물과

 

 

 

 

 

 

그리고 올 한 해 동안에 있었던 가족의 모습이 담긴 가족 편지와 카드가 함께 

우리 가족에게 건네주었고...

 

 

 

나도 16년간 한결같이 함께 해 온 그들에게 헬렌 표 크리스마스 쿠키세트와

 

 

 

손으로 뜨개질해서 만든 수세미, 면 행주, 냄비 깔개 

그리고 빨간색을 좋아하는 에릭을 위해서 뜬 따뜻한 모자로 보답했다.

 

내년 9월이 되면 부모님처럼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에릭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여전히 피아노와 클라리넷 레슨을 계속하지 할지 아직은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확실한 것은 에릭 가족과 우리 가족과의 좋은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