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Wild Rose Country

아름다운 캐나다의 로키산맥과 광활한 대평원의 동네로

나의 특별한 제자 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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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Helen/헬렌의 일상에서

2021. 1. 4.

 

늘 올인해서 열심히 레슨을 받는 필립

 

 

2018년 1월에 필립의 어머니가 지인의 소개를 받고,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싶어서 연락을 한다고 하면서

빈 시간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문의를 해 왔다.

마침 빈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주 6일을 일을 하느라 좀 쉬고 싶은 마음에, 

괜찮다면 학년 초인 9월부터 시작하면 어떻겠냐고 일단 완만하게 거절을 했다.

 

그러자 필립의 어머니는 사실 아들이 장애가 있으며,

우리 복덩이 아들과도 오랫동안 매년 장애아 여름 캠핑을 함께 가서

아들도 알고, 나도 본 적이 있고, 장애인들을 잘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9월에 시작해도 좋으니 그때 꼭 아들을 받아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을 하셨다.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약해진 나는 바로 아들과 함께 한번 오라고 제의를 해서

1월 말부터 필립과의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필립은 올해 스물여덟살이며, 키가 185 cm로 훤칠하게 잘 생긴 청년이다.

덩치는 이렇게 크지만, 그의 지적 수준은 초등학교 1-2학년에 불과하다.

다행히도 쉬운 내용의 글을 읽고 쓰기는 하는데, 여러모로 손이 많이 필요한 장애인이다.

그리고 건강상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서, 먹는 약도 많고, 시간마다 챙겨 들어야 하고

간질증세도 와서 24시간 부모님 외에도 보모의 도움이 늘 필요하다.

 

그래서 학생으로 선뜻 받아들이긴 했지만, 솔직히 1시간 레슨을 과연 제대로 진행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만 네살 아동부터 가르쳐 온 경험은 많았지만,

필립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성향이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처음엔 참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서로 백지상태에서 레슨이 시작되어서 벌써 거의 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예상치도 못한 복병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 특유의 임기응변과 필립의 장애를 감안해서 준비한 맞춤교재가 서서히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립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보모와 함께 버스를 타고 레슨을 받으러 매주 왔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일 초급책인 1A에서 한참 동안 고전하다가, 1B, 2A, 2B를 떼로, 지금은 3A 교재를 배우는 단계에 올랐다.

 

 

 

 

 

그러다가 올해 3월 중순부터 코로나 사태로 lockdown에 돌입하면서

지병으로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는 필립은 부득이하게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아울러 필립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해 주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매일 한 번씩 외출하던 것도 전면 금지되는 바람에

그야말로 필립은 완전 집콕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렇게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필립에게 피아노가 유일한 소일거리가 되었다.

아들이 매일같이 혼자서 피아노 연습이 너무도 대견한 나머지

엄마는 동영상을 찍어서 매주 내게 보내 주시면서

상상도 못 한 기적 같은 모습을 나뿐만이 아니라, 친척과 친지들에게까지 보내곤 했다.

 

다행히도 코로나 상태가 완화되면서, 5월 말부터 다시 레슨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필립에겐 여전히 유일하게 집 밖에 나와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이 피아노이기에

전처럼 일주에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레슨을 받겠다는 요청이 있어서 기꺼이 수락했다.

 

 

 

2018년 12월 26일, 우리집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매주 두 번씩 레슨을 받으러 온 후, 필립에게 제일 어려운 리듬 개념을 조금씩 터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레퍼토리도 다양해지고, 진도도 전보다  순조롭게 나가기 시작했다.

본인도 피아노의 흥미가 더 많아졌는지,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꾸준하게 연습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제일 좋아하는 엄마는

왜 진작에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단다.

 

이렇게 잘 수업을 받다가, 11월 말부터 코로나 상태가 급격히 다시 악화되자

하는 수 없이 필립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피아노 레슨도 당분간 접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1주일에 한 번씩 엄마가 필립의 연습 영상을 보내 주어서 

그나마 무료한 날을 피아노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도 많이 위안도 되고 안심이 되었다.

 

 

 

올해  필립이 직접 만들어서 우편으로 보낸 준 크리스마스 카드

 

 

 

그동안 나를 거쳐한 수많은 학생들 중에 장애인 학생들이 더러 있다.

학년 초인 9월이 가까워 오면,

레슨을 원하는 학생들의 문의 전화가 이어진다.

하지만, 기존 학생들이 그만두어야만 비는 자리가 몇 안 되기에

대부분이 waiting list에 이름부터 올리게 된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부모님께서 문의를 하시면, 

가능한 한 무리를 해서라도 학생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힘이 들어도 이렇게 해 온 이유는 

자폐아인 복덩이 아들이 만 2살부터 자폐아동 특수학교를 다니기 시작해서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돌발상황이 언제라도 터질 수 있어서 다루기에 힘든 아들을

사랑과 인내로 지도하고 보듬어 주신 고마운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직장을 다니는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반면, 가끔 수업 진행에 어려운 아들같이 장애가 있는 학생을 기피하는 선생님도 계셨고,

본인이 아들을 위해서 더 이상 해 줄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최악의 말을 들었을 때에

그 참담한 기분 또한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애아들을 둔 부모님들에게 초반부터 불가능이라는 말을 나만이라도 되풀이하지 않고,

비록 장애가 있지만, 낙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나름대로의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장애인 학생들을 가능한 받아들였다.

 

 

 

하루빨리 코로나 확산이 줄어들어서, lockdown 상황이 완화되어서

전처럼 필립이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면 수업을 받으러 우리집 문을 두드리는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