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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시14]11월 11일 Remembrance Day/Armistice Day 에 다시 읽어 보는 In Flanders Fields/플란더스 평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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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s Scrapbook/좋아하는 영시

2021. 11. 11.

 

 

벨기에에 소재한 플란다스 평원

 

 

 

매년 북미와 유럽에서는 11월 11일을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친 군인들의 영혼을 추모하는 날로 정해 놓았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날을 Remembrance Day라고 불리고

미국에서는 Veterans Day라고 하며,

혹은 Armatice Day (세계 1차 대전 휴전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전쟁터에서 숨져 간 많은 군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날인

Remembrance Day에 전쟁을 주제로 한 많은 시들 가운데에서

가장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In Flanders Fields" 시를 

올해도 천천히 읽으면서 젊은 나이에 숨진 군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이 영시는 캐나다 출신인 의사이자, 교수였던 존 매크레(John McCrae) 씨가

1차 세계 대전중에 벨기에의 이프레/Ypres에서 군의관으로 참전하면서

직접 목격한 전쟁의 참혹상을 거의 즉흥적으로 지은 최고의 전생 영시이다.

 

 

 

 

 In Flanders Fields  

 

     Lieutenant Colonel John McCrae,/존 매크레 소령/의학박사

     MD (1872-1918)
     Canadian Army

  

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 blow
Between the crosses row on row,
That mark our place; and in the sky
The larks, still bravely singing, fly
Scarce heard amid the guns below.

    플란다스 평원에 핀 수많은 양귀비는

    우리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려주는

 

We are the Dead. Short days ago
We lived, felt dawn, saw sunset glow,
Loved and were loved, and now we lie
In Flanders fields.

 

Take up our quarrel with the foe:
To you from failing hands we throw
The torch; be yours to hold it high.

 

If ye break faith with us who die
We shall not sleep, though poppies grow
In Flanders fields.

 

 

 

한글 번역: Nancy Helen Kim(번역은 잠시 후 내립니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묘지에 시민들이 양귀비 핀을 헌화하고 있다.(2018년 11월)

 

 

 

 

 

 

맥크레씨가 쓴 "플란다스 평원" 영시는 전쟁을 주제로 한 많은 전쟁 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시는 세계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봄  

벨지움/벨기에의 이프 레/Ypres에서 일어난 잔혹한 격전 직후에 쓰였다.

이 영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배경은....

 

매크레소령

 

 

존 맥크레 소령은 군의관으로 남 아프리카 전쟁에도 수년간 동안 참전했지만

전쟁 중 겪는 온갖 전쟁의 피비린내와 고통, 울부짖음과 참혹함에 늘 힘들어했고,

야전 병원에서 보고, 듣고 겪은 여러 상황들은 평생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토론토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00년부터  몬트리올부터 있는 맥길대학교에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가,

세계 1차 대전에 참가한 캐나다 군대의 제1 포병대에 소속 외과의사(군의관) 자격으로 

벨기에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는 세계 1차 대전중에 벌어진 전투 중에서

큰 격전이 벌어져서 이프레/Ypres 전투에 투입되어서

17일 동안 부상당한 연합군(캐나다, 영국, 인도, 프랑스, 독일) 군인들을 치료해 주면서

전쟁터의 참혹함을 실제로 목격했다.

(참고: 세계 1차 대전 중에 이프레에서 벌어진 다섯 번에 걸친 전투에서

총 110여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서 가장 처절하고 참혹한 전투지로 꼽힌다.)

 

이렇게 잔인하고 참혹한 상황이 가능한지 도무지 믿기 어려웠던 그는 후에 

"내가 17일간 겪고 느낀 것을 글을 감히 표현을 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생지옥 같은 17일 그 자체였다.

누군가 내게 첫날이 저물 때에

이 처참한 지옥에서 17일간을 보내야 된다고 알려 주었다면

우리는 손사래를 치고 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예전에 한때 제자이자 동생 같은 오타와 출신인 헬머 대위/Lieut. Alexis Helmer가 

1915년 5월 2일에 폭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 전사했는데

헬머의 죽음은 멕크레 소령에게 특히 더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날 저녁에 매크레 소령은 야전병원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묘지에 

너무도 바쁜 담당 군목도 없이 그가  직접 헬머의 장례식을 거행하고 땅에 묻어 주었다.

 

 다음날, 이프레의 북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날 드 리세르/ Canal de l'Yser에 위치한

야전병원 근처에 주차한 앰뷸런스 트럭 뒤에 앉아서

그의 고통과 분노를 시를 쓰면서 분출했다.

이미 다수의 대학교 의대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했고, 

취미로 시를 써 오던 그에게 글 쓰는 일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는 묘지 주변에 있는 도랑을 따라서 야생 양귀비가 만발한 것을 보면서

그에게 주어진 소중한 20분간의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그의 노트에

쫓기듯이 이 영시의 15소절을 갈겨써 내려갔다. 

 

당시 22세의 사이릴 앨린슨 대위/Cyril Allinson는

그날 도착한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이렇게 트럭 위에서 시를 쓰고 있는 매크레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매크레는 앨린슨이 그의 곁으로 다가오자 잠시 올려다본 후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갔고,

앨린슨은 그의 옆에서 조용히 서서 시를 쓰고 있는 매크레 소령을 지켜보았는데

"맥크레 소령의 얼굴은 아주  피곤해 보였지만, 편안해 보였고

시를 쓰다가 간간히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특히 헬머가 묻힌 곳으로 자주 쳐다보았다"라고 회고했다.

 

5분 뒤에 시가 완성이 되자 맥크레 소령은

옆에서 기다리던 앨린슨으로부터 자기 우편물을 건네 받고

대신 금방 자신이 쓴 시를 앨린슨에게 묵묵히 건네주었다.

앨린슨은 그 시를 읽으면서 크게 감동을 받는다:

"이 시는 우리가 목격하고 겪은 상황을 정확히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날따라 동쪽에서 산들바람이 불면서 그가 표현한 대로 "blow"라는 말에 걸맞게

넓디넓은 평원 천지에 피어있는 양귀비들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가 발표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고 회고했다.

 

사실 이 시는 세상에 발표되지 않을 뻔 한 작품이다.

매크레 소령은 그가  쓴 시가 맘에 들지 않자 그 시를 쓴 종이를 휴지통에 버렸는데

마침 다른 한 장교가 그 종이를 휴지통에서 꺼내서 영국의 몇몇 신문사에게 보냈다.

런던의 The Spector라는 신문사는 이 시를 신문에 발표해 주기를 거부했지만,

다행히 Punch 신문은 이 시를 1915년 12월 8일 자 신문에 게재해 주어서

전쟁의 참혹성을 알리는 이 전쟁 영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