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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다의 정물화 작품으로 네덜란드의 황금기, 세계 역사와 사회 변천사를 배우다/ A Messy Table, a Map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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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Fine Arts

2022. 5. 20.

 

 

 Still Life with a Gilt Cup/금박의 컵이 있는 정물화

Willem Claesz Heda (빌렘 클레즈 헤다: 1594-1680)

Oil on panel, 1635

 

 

 

며칠 전에 뉴욕 타임스에

"A Messy Table, a Map of the World" /너저분한 테이블, 세계 지도"

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한 미술 기사를 우연히 읽었다.

 

3년 전에 22일간 다녀온 네덜란드에서 직접 눈으로 본 그림들을 주제로

빌렘 클레즈 헤다가 그린 한 정물화에 묘사된 아이템을 바탕으로

황금기를 맞은 네덜란드의 사회적인 배경과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다양한 당시의 세계사를 조명한 기사로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고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여기에 공유해 본다.

 

 

 

 

 

 

 

 

즐거운 향연은 끝났다.

손님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하인들은 후에 뒷정리를 하리라.

 

이 조용한 방에는 먹다 남은 음식과 럭셔리한 식기와 그릇들만이 남았다.

 

정물화는 다른 장르보다 스케일도 작고, 가격도 저렴하다 보니 이해가 갈 만하다.

과일, 조류, 컵, 병이 묘사된 그림들은 친근하고 다가가기 쉽다.

 

그런데 이런 그림들은 과연 내게 무엇을 바랄까?

 

 

 

 

 

 

 

 

수 세기 동안 정물화 작품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초반의 미술 평론가들은 정물화를 다른 장르에 비해서 수준이 낮은 장르로 평을 했다.

17세기 후반에 설립된 로열 미술 아카데미는

장르별로 순위를 매겼는데...

 

 

 

 

 

 

 

신화나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작품들이 제일 권위가 높게 평가되었다.

 

 

 

 

 

 

 

 

그다음으로 초상화 작품들...

 

 

 

 

 

 

 

 

 

얼마 후, 풍경화가 그 다음 순위로...

 

 

 

 

 

 

 

 

제일 하위에 정물화로 선정되었다.

 

 

 

 

 

 

 

 

 

음식, 평범한 집기를 묘사한 정물화는 특별한 재능이나 두뇌가 없어도 그릴 수 있는 장르라는 인식이

19세기까지 이어졌는데,

현재에도 과일이 담긴 볼이나 꽃 부케를 그리는 정물화는

미술 클래스에서도 초보 단계로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1635년에 정물화의 대가인 빌렘 클래즈 헤다가 그렸고,

현재는 암스테르담 라익스뮤지엄에 소장된

 "Still Life With a Gilt Cup/금박 컵이 있는 정물화'는

그 어느 장르 작품보다 그 진가가 뛰어난다고 인정받고 있다.

 

그는 막 건국된 네덜란드 공화국/Dutch Republic 시기에

정물화의 거장으로 정물화를 새로운 예술의 경지로 올린 장본인이다.

 

 

 

 

 

 

 

 

헤다의 정물화 작품이 큰 관심을 끄는 이유는 작품이 내포하는 다양한 패러독스 때문이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정물화 작품은 가장 철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작품 속의 보여주는 물건들이 과연 동시에 실제적이기도 하고  환영일 수 있을까?

그것들이 현실적인 용도를 넘어서 어떤 가치를 가질까?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랜덤으로 모인 보여주는 사물들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가?

 

 

 

 

 

 

 

 

헤다가 찾은 해답은 빵 부스러기나 조개껍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 속의 배경인 다이닝 테이블과 더 나아가서 네덜란드를 넘어야만이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단 식탁에 놓인 물건들부터 살펴보면,

메인 코스는 북해에서 채취한 신선한 굴이다

 

접시엔 여섯 개의 굴이 남아 있는데,

할렘의 황금기/Golden Age Haarlem 시기에 아침 메뉴로 추정된다.

 

 

 

 

 

 

 

 

굴 접시 뒤에는 작은 병/cruet는 아마도 굴과 함께 먹는 식초를 담는 병이다.

섬세하게 줄무늬로 제작된 예쁜 자태의  이 병은 당시 최고의 유리 용기를 만드는 베니스에서 제작된 것이다.

 

 

 

 

 

 

 

 

식초병 옆에는 소금을 담는 화려한 용기이다.

소재는 은이며, 정교하게 꾸며진 병에 소금이 넘치고 있다.

 

 

 

 

 

 

 

앞 쪽 접시 위에는 둘둘 말은 연감 종이 안에 담긴 후추가 놓였다.

1630년대 후추의 존재는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그 뒤에 놓인 컵에는 맥주가 담겨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굴과 잘 맞는 화이트 와인은 '로머/roemer'라고 불리는 초록빛 잔에 따라서 마셨는데,

아래 부분의 디자인은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에 그립/grip 감을 좋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로머 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에는 보이지 않는 창문이 반사된 모습이 

로머잔 표면과 와인의 수면에 묘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헤다는 빛의 반사 현상을 묘사하는 데 천재였음을 알 수 있다.

역시 작품 속에는 보이지 않는 십자가 모양의 중간 문설주/mullion과 가로살의 반사된 모습이

백납 소재의 물병에 묘사되었다.

 

 

 

 

 

 

 

 

금박 된 컵의 반사된 모습도 백랍 물병에 조금은 어둡게 비쳤다.

 

정물화 화가에겐 표면의 상대성과 소재의 상이함을

제대로 잘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

위에 보이는 것처럼 금속과 구겨진 다마스크 냅킨에 비친 빛과 그림자의

상반된 대조와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아랫단 부분을 자세히 보면, 화가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반쯤 껍질 벗겨진 레몬은 더치(네덜란드) 정물화의 보편적인 모티브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화가의 라인, 질감과 상대적인 불투명도를 처리하는 기술의 척도로 레몬이 사용되었다.

 

 

 

 

 

 

 

 

과연 테이블에 놓인 다양한 물체와 음식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테이블에 남겨진 음식과 그릇들은 

먹는 도중에 갑자기 중단된 인상을 준다.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일까? 

프로테스탄트 교도(개신교)의 엄한 규율일까?

 

 

 

 

 

 

 

 

 

당시나 지금이나, 굴은 욕망과 유혹의 상징이었으며,

가운데에 놓인 거의 먹지 않은 채 놓인 빵은 마치 영성체를 연상케 한다.

 

 

 

 

 

 

 

 

 

넘어진 글라스는 우리의 짧고 나약한 삶을 상기해 주는 걸까?

책력/alamanac의 한 페이지는 만기날은 받아 놓은 우리의 삶의 환유어/metonym일까?

화가 헤다는 개신교 신자였지만, 문화적 암시는 한계가 있기에

테이블 위에 놓인 물체와 연관된 종교적인 해석은 잠시 뒤로 해도 좋을 듯하다.

 

 

 

 

 

 

 

 

 

플란더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정물화 작품은 다른 세계로 이어주는 창문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홀랜드/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의 사물들은 실내의 편편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헤다는 빵이 담긴 접시의 위치를 테이블의 끄트머리에 두어서

곧 떨어질 듯 한 인상을 준다.

 

 

 

 

 

 

 

 

접시의 이런 위치는 테이블의 제한된 공간을 부각시켜 준다.

 

이 아침식사 공간은 상징적인 레슨만이 아니라, 실제로 삶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대 지중해 연안 지역인 

폼페이, 헤르큘라니움의 벽화엔 삶의 풍성함을 꽃과 과일로 장식한 것을 보면

우리 인간들은 오래전부터 정물화와 함께 해 왔음을 볼 수 있다.

 

 

 

 

 

 

 

 

폼페이의 한 귀족의 게스트룸 벽에 그려진 꽃과 과일은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환대를 상징해 주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생명체가 아닌 물체를 마치 살아있는 듯하게 그릴 수 있는 재능을

화가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여겼다.

 

 

 

 

 

 

 

 

고대에 제욱시스가 그린 이 그림 속엔 포도송이를 극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새들이 그림이 걸린 갤러리에 폭탄처럼 달려 들어서 포도를 먹으려는 장면을 그렸다. 

 

 

 

 

 

 

 

 

 

크리스천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달리 다양한 물건들을 화폭의 뒷전으로 밀려났다가

점점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5세기 네덜란드에서 그려진 이 작품 속에서...

 

 

 

 

 

 

 

 

물건들은 주제나 주인공의 보조 역할을 했다.

과일이나, 접시, 그리고 식기 등은 마스터의 아틀리에에서 

배우면서 허드레 일을 하는 젊은 초보자들 손에 의해서 그려졌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품들은 주로 상징적인 보조역으로 묘사되었다.

질이 좋은 유화 물감의 개발과 새로운 미디엄이 생기면서

네덜란드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게 되었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 가족과 성인들의 모습만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유물건으로도 묘사되기 시작했다.

 

 

 

 

 

 

 

 

이 마리아의 수태 고지 작품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연관된 

병에 담긴 백합 부케와 벽에 걸린 파란 줄무늬와 술이 달린 깨끗한 타월이 묘사되었다.

이들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해 준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얼굴보만큼 신경을 써서 타월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과 꽃, 사물들과 동물들은 보이는 겉모습만이 아니라 어떤 아이디어나 주제를 표현해 준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종교적인 상징으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이 다양한 물체들은 야심 찬 화가들의 손에 의해서 인간적인 측면을 내포해 주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물체들을 인지하는 그 자체는 지식에 다가가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볼 수 있다.

 

 

 

 

 

 

 

 

 

16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특히 플란더스 출신 화가들은, 이전과 반대적인 접근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서는 이전처럼 작품의 메인 주인공이었던 예수님과 순례자들이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처럼 하느님의 아들이 관심의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상 위에 올려진 오이나 컬리플라워, 포도처럼 정물 소재들이 그 중심으로 등장했다. 

 

 

 

 

 

 

 

 

 

16세기 후반에 스페인이 지배하에 놓였던 네덜란드의 개신교 지역들은 스페인 세력을 물리치고,

새로운 더치 공화국으로 결성하게 되면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미술 작품 제작을 위해서 교회의 재정적인 지원도 사라지게 되었다.

 

 

 

 

 

 

 

 

16세기 후반에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네덜란드에서 누가 교회의 지원금이 필요할까?  

 

활발한 무역과 상업 그리고 발전한 과학 덕분에

단시간 내에 경제 강국으로 거듭난 홀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17세기의  암스테르담, 할렘과 라이든 도시는 

지금의 상해나 서울처럼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도시가 되었다.

 

 

 

 

 

 

 

 

 

 

교회와 부유한 귀족과 상류층의 재정적인 후원이 사라진 상황에

거상들과 중산층들이 미술품들을 의뢰하거나 수집하게 되면서 네덜란드의 미술계 판도가 바뀌게 되었다.

이들은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그림을 원했고, 그래서 화가들과 만나서 그들의 요구조건들을 제시해서

다양한 작품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홀랜드에서 처음으로 상업적인 미술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그림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면서, 이 수요를 충족해 주기 위해서

장르별로 세분화된 전문적인 화가들이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팽창하는 미술 시장에 동참하기 위해서  사업가-화가들이 생겨났다.

 

 

 

 

 

 

 

 

 

꽃을 전문으로 그리는 전문 화가들도 생겨났는데, 특히 여성 화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당시 튤립 한 송이의 가격이 일 년치 연봉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니

이런 그림들이 인기를 얻고도 남을만하다.

 

 

 

 

 

 

 

 

풍경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들도 생겨났고...

 

 

 

 

 

 

 

 

길드(협동조합) 멤버들이나 거상들의 그룹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들도 생겨 났고...

 

 

 

 

 

 

 

 

 

초상화와 알레고리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들도...

 

 

 

 

 

 

 

 

 

정물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17세기 초반의 정물화 작품들은 간단한 구도와 밝고 화사한 색상의 작품들이 미술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과일과 견과류들이 상 위에 등장했고, 특히 치즈가 센터 스테이지를 차지했다.

 

 

2세기 전에 그려진 수태 고지 작품의 중간에 묘사된 성모 마리아를 위해서

코너에 소개된 백합과 타월이 이제는 그들만의 특별한 장르와 규칙이 형성되었고,

그들만의 품격과 위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1630년대 할렘에서는 규모도 크고 더 야심 찬 정물화 작품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조명은 전보다 어둡고, 배경 색상은 튀지 않는 회색, 베이지, 흰색과 브라운색으로 처리된 것이 눈길을 끈다.

 

 

 

 

 

 

 

 

반면, 테이블 위에 놓인 각각의 사치스러운 물건들은 당시로서는 아주 사치스러운 아이템들이다.

이 윤택이 도는 럭셔리 아이템들은 의도적으로 함께 두었다.

 

헤다와 할렘에서 그와 라이벌이었던 피터 클레즈는 

틔지 않는 색상과 눈부신 럭셔리 아이템의 조용한 하모니를 보여주는

이론의 여지없이 할렘 정물화의 대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작품 속의 은 소재 타짜 컵(tazza)이 왜 넘어진 상태로 묘사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이런 상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에서 손님들이 만찬에 도착하기보다는

이미 한 두 게스트들이 도착해서 조금 흐트러진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정교하게 꾸며진 값비싼 타짜 컵의 바닥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울러 타짜 컵은 당신의 초점을 빵에서 시작해서 금소재 그릇과 백납 식기까지

대각선 구도로 이어 주기도 한다.

 

 

 

 

 

 

 

 

 굴 껍데기 역시 아주 계산적으로 놓인 것도 알 수 있다.

어떤 것은 접시 위에 혹은 옆에 바로 놓였고, 어떤 껍질은 엎어져 있다.

 

밋밋한 방과 무채색에 가까운 배경을 한 이 정물화는

이 모든 물건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헤다의 만찬 정물화 작품에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물건들을 배치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그의 의도가 상징적인 물건을 통해서 개신교의 교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면

물건의 위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헤다는 "이 물건들이 무엇을 상징하는가?"라는 질문 대신에 

"이 물건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미술 평론가인 롤런드 바스는 "작품 속의 각 글라스나 접시는 절대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고,

절대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라고 해석했다.

 

 

 

 

 

 

 

 

 

정물화의 가치는 하나의 물건과 상징적인 관계에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테이블은 은유적인 의미와 사실 그대로의 의미가 교차점에서 진가가 결정된다.

 

 

 

 

 

 

 

 

헤다의 정물화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레몬을 예를 들어 보면...

 

 

 

 

 

 

 

 

시각적으로 보면, 레몬은 값비싼 은 소재 식기와 백납 식기의 보완적으로 좋은 아이템이며,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의 방에 밝고 노란빛을 발하기도 한다.

 

 

 

 

 

 

 

 

헤다는 작품 속의 이 레몬의 다양한 모양과 질감을 제대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는 레몬의 반듯하게 잘린 단면과 껍질의 하얀 섬유질의 대조를 잘 묘사했다.

그리고 코르크 마개 따개처럼 테이블 아래로 대롱대롱 매달린 기다랗게 벗겨진 레몬 껍질은 

짙은 초록의 테이블보의 배경에서 도드라지게 묘사되었다.

 

 

 

 

 

 

 

 

 

나사처럼 꼬인 레몬 껍질은 헤다가 정물화에서 즐겨 그린 물건이다.

미술 역사학자 스베틀라나 알퍼스는 헤다의 레몬은 어느 물건이나 상황의

확실성(solid)과 개방성(open) 양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각 레몬마다 대단한 볼거리이며, 각 껍질 자체는 작은 정물화 작품이다.

사람의 손을 거친 먹거리가 눈을 즐겁게 해 주는 향연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는데, 할렘을 포함해서 해발이 낮은 지역은 

적은 일조량과 추운 겨울 때문에 레몬트리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점이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어디서 레몬을 구할 수 있을까?

부유한 상류층은 지중해 연안의 풍습을 따라 그들의 오랑제리(식물원)에 감귤류 나무들을 키웠지만,

이는 당시 부유층에 국한된 희귀한 과일이다.

 

글라스와 금소재 컵과 의도적으로 대각선으로 이어져서

밝고 환한 노란 레몬은 마치 남국의 뜨거운 햇볕을 연상케 해 주고

하나의 느낌표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죽었거나 움직이지 않는 '정물'이라고 칭하지만,

정작 이 테이블은 세계 각국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중심지일 수도 있다.

 

 

 

 

 

 

 

 

작품 속의 물건 하나하나에 상징적인 의미는 없지만, 이것들이 아무렇게나 테이블에 놓이지는 않았다.

이 물건들은 세계 각지에서 공수해 온 상품들이다.

 

 

 

 

 

 

 

 

정물화 작품은 자본주의 경제의 부흥과 함께 예술적인 지위가 향상되었다.

네덜란드 북부 지방은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보석, 금속, 실크와 향신료 해상 무역업이 번창했다.

 

미술 역사학자인 줄리 호흐슈트라서와 클라우디아 스완은

정물화의 배경인 개인의 다이닝룸에서 암스테르담에 소재한 베우르스/Beurs 상품 거래소로

우리의 관심을 잠시 돌려보라고 유도한다.

 

청빈을 요구하는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도덕관에 어긋날 정도로

그들은 네덜란드의 황금기 중에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이곳에서 후추를 살 수도 있고, 후추의 선물(先物) 값을 예측하기도 하고,

튤립의 선물가를 흥정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럭셔리가 그들에게는 확실한 담보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공화국의 선원들과 무역상인들은 쓸 돈이 있었다.

그들의 패션은 평범하고 점잖았지만, 암스테르담과 라이덴에 소재한 

바다 건너온 희귀한 상품들을 파는 여러 가게에서 취향대로 다양한 품목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 가게는 바다 건너서 수입한 조개껍질과...

 

 

 

 

 

 

 

 

박제한 동물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이다.

 

 

 

 

 

 

 

 

 

이처럼 먼 타국에서 네덜란드로 들여온 품목들은

네덜란드가 설립한 동인도 회사/The Ductch East India Company(V.O.C.) 덕분이다.

이 회사는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증권을 사고팔 수 있는 국제적인 재벌 기업으로

암스테르담 Beurs 증권 거래소에서 주식이 거래되었다.

 

 

 

 

 

 

 

 

 

동인도 회사는 그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 회사는 역사상 가장 가치가 높은 회사였다.)

전쟁의 무기이자, 하나의 국가처럼 그 위력을 떨쳤다.

 

5,000 척의 배를 소유한 네덜란드는 라이벌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훨씬 능가해서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 무역의 일인자로 부상했다.

 

 

 

 

 

 

 

 

네덜란드 황금기 기간 동안, 동인도 회사는 아시아와 독점으로 무역 거래를 했다.

 

 

 

 

 

 

 

 

벵갈에 소재한 동인도 회사의 분점은 소금과 후추의 거대한 창고로 사용되었고...

 

 

 

 

 

 

 

 

 

실크와 모슬린 옷감을 제작하는 공장이기도 했다.

 

 

 

 

 

 

 

 

규모가 훨씬 큰 동인도 회사 아시아 본점이 있는 바타비아(현재의 자카르타)에서는 

너트멕, 계피 등 다양한 향신료에서 담배까지 생산해서 유럽으로 실려 나갔다.

 

 

 

 

 

 

 

 

 

동인도 회사는 명목상으로는 상업과 무역을 목적으로 한 단체지만,

안전을 위해서 해안에 세워진 성곽은 그들의 거대한 파워의 중심이었고,

개인 용병들까지 주둔하고 있어서 필요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한편, 대서양의 무역을 위해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수리남과 쿠라사오에 

서인도 회사를 설립했다.

17세기 초반에 그들이 믿는 칼빈교에서는 노예제도를 금지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인도 회사는 노예제도를 공공연하게 도입했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데리고 온 노예들은

브라질의 네덜란드의 식민지 영토에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과 질 좋은 원목 산업에 투입되었다.

아울러 이들은 레몬 농장에서 레몬도 재배해서, 

꽃은 향수로, 껍질은 설탕을 추가한 레몬 캔디로 만들어져서 암스테르담으로 보내졌다.

 

 

 

 

 

 

 

 

 

서인도 회사는 현재의 뉴욕과 허드슨 강 유역에 뉴 네덜란드라는 식민지를 확보한 후

럭셔리 품목인 모피를 원주민들과 거래했다.

레납 원주민들이 마나하탄으로 불리는 반도의 끄트머리 지역에 

그들이 거래한 고가의 상품들이 안전하게 유럽으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견고한 성을 구축했다.

(참고로, 뉴욕의 원래 이름은 뉴 암스테르담이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때로는 외교를 통해서 때로는 힘으로 

희귀하고 값비싼 품목들이 네덜란드 내로 공급되었다.

황금과 계피.

포르셀린 식기와 파인애플.

재배된 것들도 있고, 약탈한 것들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신대륙에서 길고 위험한 항해를 거쳐서 네덜란드로 유입되면서

정물화에 등장한 물건들은 세계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헤다의 어질러진 테이블은 먼 외국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럭셔리 아이템을 선호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먼 곳에 온 이국적인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자부심의 근원이며, 세계를 주름잡던 네덜란드의 파워의 표징이다.

 

 

 

 

 

 

 

 

 

푸른 글라스는 베니스에서 공수되었고,

그 안에 담긴 와인은 프랑스나 라인강 유역의 독일에서 들여왔고,

동인도 회사에서 들여온 클로브와 생강을 이 와인과 섞어서 마시기도 했다.

 

 

 

 

 

 

 

 

 

은 소재 접시는 독일이나 스페인 혹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남미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빵의 재료인 밀가루는 발틱 해안 지역에서 수입되었다.

 

 

 

 

 

 

 

 

종이에 쌓인 후추는 동인도 회사의 톱 수입 품목이었다.

동인도 회사는 자바섬과 주위 지역에서 매년 4백만 파운드를 수입했는데,

이는 유럽 전체의 수요의 반에 해당하는 양이다.

 

 

 

 

 

 

 

 

 

1637년에 독일에서 온 한 관광객이 암스테르담에 소재한 한 창고 안을 보고서,

"실론은 섬 전체에서 재배된 모든 계피, 몰러커스의 콜로브와 수마트라와 자바의

모든 향신료들이 이곳에 있는 줄 알았다.

이는 마치 그 지역의 재산과 자원을 비워서, 암스테르담을 보물창고로 만들고 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은 모직 옷 대신에 실크 옷과 모피를 입고 있고,

백랍 그릇 대신에 포르슬린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게 되었다.

 

 

 

 

 

 

 

 

 

젊은 여인을 웃게도 하고...

신대륙에서 수입한 수달의 모피로 만든 모자도 쓰기도 하고...

 

 

 

 

 

 

 

 

작품 속의 지도는 움직이지 않은 정물이지만, 이런 이미지들을 먼 곳으로 떠나기 위해서 돛을 달고 있다.

 

 

 

 

 

 

 

 

그림 속의 방은 지구의 곳곳에서 들여온 다양한 희귀한 품목들이 널려 있다.

 

 

 

 

 

 

 

 

 

카펫, 향, 사향, 인디고 염료, 포르셀린과 진주....

 

 

 

 

 

 

 

 

 

2019년  6월 20일에 방문한 암스테르담의 라익스뮤지엄에서 만나서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긴 헤다의 정물화 작품이 당시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정물화의 파워이다. 

바로 이 장르에서 사회적, 경제적인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헤다는 두 개의 냅킨 사이에 엎어져 있는 잔과 나이프도 포함했는데...

나이프의 손잡이는 멀리 바타비아에서 거대한 범선을 타고 수입된

가장 값비싼 에보니 소재로 만들어졌고, 자개로 처리되었다.

 

나이프의 칼 부분은  냅킨 뒤에 가려졌지만, 이국적인 럭셔리 아이템이자 동시에 무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테이블에 놓인 평범해 보이는 다양한 물건들은 많은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이들을 만든 다양한 국가들, 그와 연관된 아름다움과 폭력을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