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무는 곳

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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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2014. 4. 11.

 

 

 

이제 우리는 미라벨 정원을 떠나 잘츠부르크 구시가지로 걸어서 갑니다.

이곳에서의 구경거리 대부분은 구시가지에 있다네요.

이제 골목길을 누비며 하나씩 예전에 보고 가슴에 담았던 모습과 비교해 보렵니다.

 

 

정문을 나서면 왼쪽이 마카르트 광장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면 오스트리아 국기가 꽂힌 집이 보입니다.

국기가 보이는 8번지는 바로 모차르트가 살았던 집이라 하네요.

유럽은 이렇게 기념관이나 유명한 곳은 그 나라 국기를 집 앞에 게양하나 봅니다.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돌아올 때는 가족이 많이 늘었기에 구시가지인 게트라이데 가세에서 방이 무려 8개나 되는 이 집으로

이사해 1773년부터 1787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동안 돈을 조금 짭짤하게 벌었나 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인 1944년 폭격으로 집의 오른쪽 반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다시 복구해 지금까지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라네요.

다행히 폭격 당시 모차르트의 음악실은 피해를 당하지 않아 그의 유품은 그대로 남았다고 하네요.

 

 

카라얀이 살았던 집도 바로 뒤에 보입니다.

구시가지 다리를 건너기 전에 슈바르츠가 9번지의 왼쪽 모퉁이 집입니다.

 

 

명판으로 그가 살았다고 확실하게 인증서를 붙여놓았습니다.

카라얀은 금세기 최고의 음악가라고 해도 누구 하나 반론을 제기할 사람 없을 겁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주관했고 베를린 필 하모니 관현악단을 지휘하는 등 음악의 황제로 대접받은 사람이죠.

 

 

카라얀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위의 사진만 보면 누구나 "아~"하고 알 겁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오스트리아 사람이지만, 원래 카라얀의 조상은 그리스 사람이라고 합니다.

작센지방으로 이주하며 직물업에 종사해 큰돈을 벌게 되었고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네요.

 

 

카라얀이라는 성은 원래 카리야누스였는데 독일식으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이라네요.

그리고 폰 이라는 중간 이름은 귀족에게 붙이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폰 트랩 대령도 귀족이라는 의미지요.

이제 佳人도 폰 佳人이라고 할까 봐요.

 

 

잘자흐 강 쪽으로 가다가 오른쪽 슈바르츠 거리로 가면 마리오네트 극장이 있습니다.

잘츠부르크 인형극장은 조각가 안톤 아이허에 의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가족극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원래 인형극에 사용되는 인형은 크지 않으나 소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크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극단의 모토는 "일곱 살부터 일흔 살까지 즐겁게 해준다."라고 합니다.

 


잘자흐 강은 잘츠부르크를 관통해 흐릅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나누며 말입니다.

그 강 위로는 많은 다리가 있습니다.

잘자흐라는 이름도 소금에서 유래했다 하네요.

 

 

우리가 건너는 슈타츠교(Staats Brcuke)라는 다리에는 이렇게 많은 자물쇠가 걸려있습니다.

예전에 없던 모습으로 도대체 언제 어디서 시작한 풍습인가요?

사랑이 이런 열쇠와 자물쇠 하나로 견고해질 수 있다면 세상 참 편하게 사는 겁니다.

 

 

요즈음 이런 추세는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여기저기 자물쇠로 점차 채워가더군요.

열쇠를 버릴 때 함부로 버리니 이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천하를 주름잡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씨시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결혼까지 했지만, 다른 남자 품으로 떠나보내고

씨시가 미안한 마음에 대타로 보내준 여인과는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지요?

사랑에는 공식이 없습니다.

그냥 느낌으로 아는 게 아닙니까?

 

 

그때 결혼하기 전 이런 자물쇠로 엘리자베트를 꽉 잡아 두었더라면 눈물로 날밤 새우며 울지 않았을 겁니다.

황제가 말입니다.

 

 

아무리 주인을 잘 따르는 개도 이렇게 세상을 살다 보니 서로 주인과 시선이 반대잖아요.

하물며 사람인데 어찌 같은 생각만 하고 살겠어요.

주인만 섬긴다는 충성스러운 개도 같은 장소에 설지라고 시선은 반대편이 될 수 있습니다.

 

 

황제는 호기롭게 "힘센 자들은 전쟁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할지니, 그들에게는 마르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임)가 있고 우리에게는 비너스가 있으리니..."라고 외쳤지만,

사실 자기 마누라 간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처지가 되었네요.

정말 쑥스럽게 되었습니다.

 

 

평생 엘리자베트만 사랑했다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 "결혼은 불합리한 제도야~ 평생이면서도 취소가 안 되니..."라고

엘리지베트 황후가 속삭였다잖아요.

애초에 엘리자베트는 황후자리도 관심 밖이었나 봅니다.

그런 여인에게 자물쇠로 채웠다고 사랑이 도망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겠습니까?

 

 

원래 프란츠 요제프는 어머니의 조카뻘인 바이에른 공작의 딸 헬레나를 황후로 맞이하려 했다네요.

맞선을 보려고 잘츠캄머구트의 바트 이슐이라는 마을을 갔다가 함께 언니를 따라온 동생 엘리자베트를 보자 그만 뻑소리나게

가는 바람에 작전타임을 요청한 후 모후를 졸라 마누라 될 여자를 엘리자베트로 바꾸었다네요.

요때 엘리자베트의 나이가 꽃도 부끄럽다고 하는 열 다섯 살...

그러나 이게 불행의 시작일 줄이야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이런 그림을 아직도 파네요.

옛날 이 거리에서 산 그림이 아직도 집에 있습니다.

비단천에다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우리가 미라벨 정원부터 걸어온 길입니다.

내일은 구시가지를 걸어 다니며 보았던 풍경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에 들어왔네요.

간판을 올려다보며 기웃거리는 구경도 좋습니다.

내일은 모차르트가 태어났다는 생가와 세례받은 성당도 구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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