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시

나이스 2014. 6. 15. 18:32

 

 

 

 


 

빨리 걸으면 세월은 천천히 간다

 

 

올해 일본에서 100세를 넘긴 이는 5만1000여명이다.

그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람은 히노하라 시게아키 박사일 것이다.

그는 1911년 태어났다.

우리 나이로 치면 102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일 환자를 진료하는 현역 의사다.

일본 전역을 돌며 1년에 130여 차례 강연도 다닌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그의 나이 98세 때였다.

당시 그는 발음이 또렷했고 걸음도 꽤 빨랐다.

막연히 나약할 것으로 여겼던

'100세인'에 대한 선입견을 그는 확 바꿔놨다.

겉으로 보이는 몸의 노화 지표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가 보폭이다.

 

나이가 들수록 짧아진다. 다음은 입김이다.

최대한 깊게 들이마신 숨을 한꺼번에 얼마나 빠르게 내쉴 수 있느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김의 속도와 강도는 낮아진다.

균형감도 노화 정도를 보여준다.

세월이 흐르면 한쪽 다리를 들고 균형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히노하라 박사는 이 모두가 괜찮았다.

신체 상태가 60대 후반 정도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한 세대를 젊게 세월을 천천히 살아가고 있었다.

히노하라 박사의 건강법은 독특하면서도 과학적이다.

식사 때마다 올리브 오일을 주스에 넣어 마신다.

대두(大豆) 가루도 숟가락으로 떠서 커피에 타 먹는다.

올리브 오일은 동맥경화를 예방하여 혈관에 좋고,

대두 가루의 레시틴 성분은 기억력을 증진하고 치매 예방에 좋단다.

강연을 하러 지방 어디를 가든 그의 여행 가방 속에는 이 둘이 꼭 들어 있다.

짐꾸러미에는 특이하게 베개도 있다.

히노하라 박사는 항상 엎드려 잔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복식 호흡이 되면서

폐 기능이 좋아진다는 원리다.

장수 동물인 거북이도 엎드려 자지 않느냐고 눙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인간은 뒤집어 자고 있었다).

그는 엎드려 자기 편하게

자신만의 널찍한 베개를 만들어 갖고 다닌다.

그 덕일까?

그는 100세 생일날, 축하 케이크 위에

꽂은 10년짜리 촛불 열 개를 입김 한 번으로 훅~ 껐다.

 


 

 

그는 수시로 넘어지는 연습을 한다.

노년기 낙상은 골절로 이어지기 쉽다.

엉덩방아를 찧으면 척추와 넓적다리뼈 골절이 오고,

손을 쭉 뻗은 채 바닥을 짚으면 손목 골절이 잘 생긴다.

그래서 그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우리 몸에서 가장 두툼한 엉덩이 근육을 이용해

비스듬히 넘어지는 훈련을 한다.

유도 낙법 하듯 말이다.

팔꿈치를 90도로 꺾어 팔 아래 전체로 바닥을 짚는 연습도 한다.

그는 요즘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오른다.

매일 일기를 쓰고, 하루 3시간씩 독서를 한다.

지금까지 쓴 책은 250여권이나 된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도쿄의 세인트 루크(Luke) 병원 선물 코너에 가면

온통 그의 저서이다.

병원 홍보에 그만한 인물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간다고 말한다.

 

요즘 벌써 연말이 다가왔느냐고 한탄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다.

우선은 새로운 경험이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의 어색함,

첫사랑을 할 때의 설렘,

 

입사(入社) 첫날의 긴장감 등의 다양한 첫 경험은

너무나 강렬하여 기억과 저장 과정이 길다.

그때는 사소한 변화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첫 체험보다 익숙함이 많아진다.

이 때문에 하루는 길고,

1년은 짧다.

 

추억의 이벤트가 줄면서 세월이 금세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낯선 곳에 여행 갔을 때 처음에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다가

후반은 빨리 지나가는 것과 같다.

 

나이에 따라 시간의 볼륨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20세의 1년은 지나온 삶의 5%이지만,

50세의 1년은 2%가 된다는 얘기다.

삶을 좀 알 만한 나이가 되면

세월을 다소 천천히 가게 할 수는 없을까.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기다림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어린 시절 소풍 날은

"몇 밤 남았느냐?"고 셀 정도로 천천히 온다.

제대 말년 병장의 한 달은 1년처럼 길다.

기다림이 있으면 세월은 더디기 마련이다.

생활의 속도를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천천히 흐르는 강물 옆에서 걸을 때,

유속(流速)보다 천천히 걸으면 강물은 빠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걸으면 강물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다.

히노하라 박사의 수첩에는

각종 스케줄이 3년 후까지 잡혀 있다.

지금도 음악과 문학 등 새로운 배움에 몰두한다.

그는 인간의 유전자는 3만6000개인데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아깝지 않으냐고 말한다.

인생의 후반으로 갈수록 생활의 보폭은 준다.

하지만 잰걸음으로 살면,

세월이 천천히 따라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생명은 우리 몸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있다는 것이 102세 의사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 조선닷컴 / 김철중의 생로병사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