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좋은사람 2021. 2. 13. 10:43

비 내리는 顧母嶺을 아시니껴?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 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 이런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 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던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1946년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에 현인이 부른 이 노래는 

일제 시대 故鄕을 등지고 他鄕으로 떠나야 했던 젊은이들의 

슬픔과 恨을 담은 노래로 數많은 이들의 心琴을 울린 노래였다.

顧母嶺(고모령)은 大邱市 壽城區 萬村洞에 있는 자그마한(?) 고개인데 

이에 얽힌 두 가지 버젼의 傳說이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호랑이 담배피는 時節의 傳說이고, 

하나는 거의 實話로 봐야한다.

 

먼저 傳說의 故鄕으로 가보자.

 

옛날 顧母嶺에 홀어머니와 어린 男妹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지나가다가 혼잣말로 한마디 했다. 

“이 집이 가난한 것은 前生에 德을 쌓지 않아서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와 어린 男妹 을 쌓기 위해 흙으로 繼續 山을 쌓았는데,

그 山봉우리가 바로 現在의 母峯, 兄峰, 弟峰 세個의 山峰우리라고 한다.

그런데 그後 山을 쌓던 두 男妹가 서로 높이 쌓으려고 시샘하여 싸우게 되고, 

이 模襲에 失望한 어머니는 子息을 잘못 키웠다는 罪스러움에 집을 나와버렸다.

 

집 나온 어머니가 하염없이 걷던 길이 只今의 顧母嶺 길이고, 

고개 頂上에서 집을 뒤돌아 본 것이 ‘어머니가 뒤돌아봤다’고 해서 

顧母嶺이 되었다는 것이다. (顧 :돌아볼 고)

 

이번에는 實話를 紹介한다

 

日帝 强占期 때 顧母嶺은 徵兵으로 끌려가는 젊은이들의 集結地였고, 

이들이 탄 列車는 반드시 顧母嶺 고개를 넘어가야만 했는데·· 

그 當時 蒸氣機關車 性能으로는 높은 傾斜의 顧母嶺을 한 번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顧母領에서는 列車가 더디게 고개를 넘어야 했고, 

이 때 徵兵징병가는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모여든 

어머니들로 그 一帶일대가 人山人海를 이루었다고 한다.

 

바로 불후의 名曲 ‘비 내리는 고모령’의 誕生 契機가 된 것이죠.

1991年 壽城區 議會에서 이곳에 노래碑를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이듬해에 이 노래비를 취재하다 열차를 피하지 못해 

殉職한 韓國日報 寫眞記者 김문호(當時 29歲)의 不忘碑도 함께 세워져 있다.

 

參考로 1925年에 門을 연 顧母驛은 1970年代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利用하는 汽車驛이었으나 只今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列車는 停車하지 않고 

貨物車만 머무르는 簡易驛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봄날이든,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여름날이든, 

언제 機會가 되시는 님들은 이 고개를 걸어 넘어가 보면서 傳說과 

노래에 얽힌 어머니의 恨과 애틋한 民族 情緖를 느껴보는 것도 어떨지··

 

사람들의 追憶 한켠에 자리하던 옛 서울驛은 只今은 複合文化空間으로, 

 南原驛은 市民들의 休息空間으로, 옛 半夜月驛은 작은 圖書館으로 

再誕生하여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데··

鐵條網에 갖힌 顧母驛 또한 '비내리는 顧母嶺'을 動機로 한 

노래 博物館 等으로 活用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바람을 가져보니더.

 

'비내리는 顧母領'뿐만 아니라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베사메무초' 等 數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韓國 大衆 歌謠史에 

한 劃을 그은 故 玄仁 先生의 노래 博物館으로··마지막으로 

박해수 詩人의 '顧母驛'이란 詩 한 수 紹介하고 마칠까하니더.

 

顧母驛에 가면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 

뒤돌아보면 옛 驛은 스러지고

시레기 줄에 얽혀 살던 虛飢진 時節의 虛飢진 家族들 

 바스라지고 부서진 옛 記憶들 부엉새 소리만 녹슨다

논두렁 사라진 달빛 貨物列車는 몸 무거워 

달빛까지 함께 싣고 쉬어 가던 驛이다

깊어가는 嚴冬에 고즈녁한 顧母嶺의 追憶을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리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