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故鄕)♡

멋진그대™ 2007. 9. 20. 18:07
“못 다 묵겄으문 폴로 나오씨요”

 

장수 산서장 (5일장)

김창헌 기자

 

▲ 모종 파는 곳은 사람이 밀린다. 한 할머니는 “키우느라 애썼네” 하며 모종장사 고생부터 생
각해 준다.
ⓒ 김창헌 기자

 

산이 에둘러 있다.
산서면은 영대산에서 마치재에 이르는 산줄기가 높다. 그 아래로 넓은 들을 베풀어 놓았다. 내륙분지를 이룬다. 평탄한 땅에 논농사가 성하다. 산악 지대 장수군에서는 곡창지대로 손꼽힌다. 풍족한 농산물은 사람들을 모았다. 경제를 받쳐줬다. 산간이지만 장이 들어설 수 있었고 장이 튼실했다.

하동고지에 사는 육윤순(67) 할머니는 “산에 뺑 둘러져 갖고 넘어야 할 고개가 수도 없어. 말방울 달랑거린다고 ‘달랑고개’, 아침나절에 후딱 넘어분다고 ‘아침재’, 산적 무서운게 사람 100명 모태 갖고(모여서) 넘어야 한다고 ‘백제고개’, 버스 타고 가도 고개가 높은게 비행기 탄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행기재’, 지름쟁이고개, 고듬치재 수도 없어. 비행기재는 도로 나고 생긴 시방(지금)말이고, 옛날에는 ‘배치재’라고 혔어”라고 말한다.

백운리 구랑마을 구규훈(66) 할아버지는 “시방은 장수사과가 유명헌게 여그 사람이 비행기재 너머 장수로 사과 따러 댕긴디, 옛날에는 그짝(그쪽) 사람들이 산서로 다 넘어왔제. 여가 논이 넓은게 품팔러 왔어. 거기는 논 쪼금 있슨께 농사 해 먹질 못 혀. 여그는 미작(벼농사) 미맥(보리농사) 헐 것 없이 땅이 좋은게 뱁(밥)이 쫄깃쫄깃 찰져”라고 말한다. 
장수군의 서쪽에 있다 하여 ‘산서면(山西面)’이다. 산서장(2·7일)은 면소재지 동화리 시장마을에 선다.

 

▲ 이 작은 것들 줄기 뻗어 열매 열릴 것 생각하면 오지기만 하다.

ⓒ 김창헌 기자

 

 “고추가 잡아가 불고 고사리가 잡아가 불고…”
“골목이 좁았당게. 삐집고 밀치고 댕겼당게”라는 말은 옛말이 됐다. 장 펼쳐졌지만 사람들 나오지 않는다.
오수장 임실장 산서장을 돈다는 양말장사는 “인자 ‘파싹장’도 안 돼” 한다. “전에는 오전 한바탕 오후 한바탕 됐는디 시방은 파싹(잠깐 반짝 하는 모양)도 안된당께.”

시방은 더욱 그렇단다. “고추가 잡아가 불고 고사리가 잡아가 불고 경로잔치가 잡아가 불고.” 고추 모종 옮길 때다. 늦고사리 한창 끊을 때다. 인근 지사면에는 하필 경로잔치가 열렸다.
“올고사리는 끝났고 시방은 늦고사리 끊을라고 정신이 없어. 고사리란 것이 끊으문 똥구멍에서 나고 나고 허잖애. 올고사리 마냥 연허들 않고 삶아서 널어노문 부스름허니 좋든 안 헌디 고사리는 생전 맛있는 것인게…. 예전에는 먼 산에 눈 올 때까지 끊으러 댕겼잖애. 써리(서리) 하네비(할아버지)가 (고사리를)죽여야 안 끊으러 가지.”

더구나 ‘엄니날’(어버이날)이 막 지났다. 어버이날이라고 주말에 자식들 다녀갔다. 자식들 먹일 욕심에 앞장을 다 봤다.

쌍계리 마평마을에서 온 이희근(80) 할아버지는 “산서장 귀경헐라문 봄 꼬부라지기 전에 와야 헌디…”하고 말한다. 춘사월이다. “산중 사람들이 장사를 잘 혀. 고사리 맨노물(취나물) 두릅 둥그리(둥글레) 더덕 내다 포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여. 산노물 철철 나올 때 이짝 저짝으로 앙거서 폴아. 인자 밭 매고 인삼밭 댕기고 배 사과 과수원 댕기고 물건을 해 갖고 올 수가 없어. 사과는 대구 아니믄 안 되고 배는 나주 아니믄 안 되는 줄 알았는디 시방은 여그도 과수 많이 헌께. 장수배 유명허잖애. 다 산서에서 나온 거여.”

길가 한쪽에는 시골 물건 받아내는 상인이 있다. 손저울 들고 말린 토란대 근을 잰다. 한 할머니는 비닐에 담배상추를 싸왔는데 상인이 ‘언제 심은 거냐’고 묻는다. “작년 가실에 숨궜당께.” 담배상추는 작년에 심어 겨울 보내고 돋아난 것이 이파리가 ‘빳빳’, 두껍고 맛있다. 담배상추 만한 상추가 없다. 배추 같기도, 상추 같기도 한 것이 씹히는 맛이 있다.
 

 

▲ 산서장에는 중절모 쓰고 다니는, ‘멋진’ 할아버지들이 많다. 하
동고지에 산다는 한 할아버지가 농사용 고무관을 사들고 가고 있다.
ⓒ 김창헌 기자

 

▲ 바쁜 농번기, 고등어 한 손 사가는 사람 없이 오전이 다 지나가
도 어물전 할매는 여유만만.

ⓒ 김창헌 기자

 

“요 작은 것이 커서 덜렁덜렁 열매 달 것 생각하문 오진게 사 가제라”
안 되는 장이지만 모종 파는 곳만은 사람이 밀린다.
‘짱짱한 것’을 찾는다. ‘꼬부라진 것’은 절대 마다한다. 키 큰 것 보다 적당히 자란, 마디 굵은 것이 최고다.“돌담이 꼬불꼬불 혀서 우리 딸 말이 운전면허 딸 사람 우리 동네 한 바꾸만 돌믄 다 따분다고 했다”는 동고지마을에서 온 모종장사 이순임(58)씨는 “요 작은 것이 커서 덜렁덜렁 열매 달 것 생각하문 오진게 사 가제라” 한다.

오이 모종이 잘 나간다. 별반 차이 없어 보이지만 한쪽 것은 ‘물외’라고도 하는 ‘조선오이’고 한쪽 것은 ‘마디오이’이다.
“조선오이는 늦게까지 여는 것. 서리 오도록 열어. 못쓸 땅(경작하지 않은 땅)에 거름만 하문 지 맘대로 뻗고 지 맘대로 열어제껴. 야(마디오이)는 마디마디 열어. 긍께 대막대기 박아 갖고 키워야 혀.”
“키우느라 애썼네” 하며 모종장사 고생 생각해 주며 물건을 고르는 한 할머니의 설명. |

방울토마토는 약 안 해도 잘 큰다. 비 온 후 빨갛게 익은 것은 바로 따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매가 벌어져 떨어지고 만다. 큰 토마토는 고추밭 한 가상에 심으면 좋다. 고추밭 약 할 때 같이 하며 키우면 좋다.

 

▲ "내 홍어는 날 닮아서요라고 잘웃는당게" 내 홍어가 제일 크다. 내 홍어가 제일 잘 웃고 있
다. 홍어 사려면 내것 사가야 한다.

ⓒ 김창헌 기자

 

▲ "질로 크당께라"

ⓒ 김창헌 기자


방울토마토 키워보겠다고 나선 중절모 쓴 한 할아버지는 이것 만졌다 저것 한번 다시 들었다 어떤 것을 사야할지 고민 고민이다. 옆 사람에게 “이거이 좋소 저거이 좋소” 묻고 묻는다. 모종장사가 “나 못 쓰믄 넘도 못 쓴디, 못 쓸 것 갖고 왔겄어라” 해도 “이것 하나가 일년 농산디…” 하며 “기왕이문 많이 열릴 놈으로 골라야제” 하며 결정을 못한다.

고생했다고 모종장사 마음 써준 할머니가 나선다. 호통에 가깝다.
“아, 가꾸기 매었어라. 잘 가꾸믄 열 개 열 것 백 개 열고 신경 안 쓰믄 백 개 열 것 한 개도 못 따 묵고. 잘 키울 생각을 혀야지 원∼.”
“잘 키울라고 글제.” 받아치는 할아버지 말도 맞다. 그런 후에도 할아버지 살피고 살피고 하나를 내민다.
모종장사. “(열매) 연 것 보믄 참 재미져라. 주렁주렁 따도따도 열리고, 작년에 다 못 따 묵을 정도로 열었슨께 올해라고 안 열리겄어라. 못 다 묵겄으문 (장에)폴로(팔러) 나오씨요. 내가 다 폴아주께라” 덕담에다가  “순 따 주고, 지줏대에 묶을 때는 끈을 ‘가새표’로 혀야 혀라” 시시콜콜 알려준다.

모종장사 이순임씨는 ‘대수리(다슬기)’도 한 바가지 잡아와 팔고 있다.
“크기는 작아도 오리지날 대수리여. 강에서 잡은 것허고는 달러. 물 깨끗한 산골짜기에서 잡은 거여. 야는 국 끓여도 더 새파랗고 까 묵어도 더 맛나고 수제비 끓여도 달러. 강에치는 1키로에 만원인디 야는 만오천원 받어.” 
 

▲ 유모차가 ‘대세’다. 물건 싣기 편하다. 구부러진 허리에, 지팡이
노릇까지 한다. 할머니 뒤에 있는 건물은 1949년 산서면장과 지서
장이 만든 ‘호룡보루’.
ⓒ 김창헌 기자


임실 사람들이 소달구지 끌고 와 감 사가던 장

산서장을 ‘동고지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화리 능곡마을 주판봉(88) 할아버지는 장이 학선리 ‘동고지’에서 지금의 이곳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평촌 앞에 숲거리가 원래 장터였다는 말이 있어. 언제 이 아래로 내려왔는지는 모른디 그런 말이 있어. 요 장은 해방되고 씨름판 벌이고 난장 터 갖고 장이 생긴 거고. 긍게  ‘동고지장’ ‘동고지장’ 허는 거여.”

1998년 간행된 《산서면지》에도 이러한 내용이 있다. 또한 “일제 말기 농촌경제가 피폐하게 되자 시장도 자연 폐쇄 해방 후 1955년 난장을 텄다”고 나와 있다.
난장 트고 통나무 목조, 양철지붕으로 된 장옥 아래 소 돼지 매매까지 이뤄졌다 한다. 마을마다 감나무가 많아 가을이 되면 임실 사람들이 소달구지 끌고 와 감을 사갔다.

그러나 산서장은 해방 이후 신설된 장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장이다. 동고지에 장이 섰는지는 기록에 없지만 지금의 장터인 동화리에 섰던 장으로 ‘동화장’이라는 장 이름이 옛 문헌에 보인다. 당시에는 3·8일에 섰던 장으로 조선 후기 1770년 간행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기록돼 있다. 1830년에 간행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장수·남원에서 활동한 의병장 정재 이석용이 1907∼1908년 쓴 《창의일기》(倡義日記)에도 ‘동화장’ 기록이 남아 있다. 동화장은 인근의 오수장 임실장 아산장(임실 삼계면 후천리)과 함께 하나의 시장권을 형성하며 커갔을 것으로 본다.

동화장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넓은 분지를 이루는 곳으로 그만큼 장을 형성할 수 있는 인구밀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남원에서 장수를 거쳐 충청도로 가는 삼남대로였고 경남 함양에서 번암을 거쳐 임실 성수, 서울로 가는 삼남대로였다. 산서는 서부 경남에서 호남을 왕래하는 하나밖에 없는 대로였다. 이곳저곳에 주막이 즐비했었다.

▲ 장날 미장원에선 온갖 뉴스가 다 만들어진다.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다.

ⓒ 김창헌 기자

 

▲ 한산하다. . 장날 오후.

ⓒ 김창헌 기자


장날이면 산서에서 오수장을 오가던 ‘장발이차’

구규훈 할아버지는 난장 터서 산서장이 생기기 전, 오수장으로 장을 보러 다닌 얘기를 해준다. 장날이면 산서에서 오수장을 오가던, ‘장발이차’라고 부르던 트럭이 있었다.
“아침밥 묵고 9시나 되믄 추럭(트럭)이 출발해. 손 잡을 디 없이 콩나물시루마냥 타고 가는 거여. 비 오고 눈 오문  호루(천막) 쳐갖고 가고. 어린 마음에 어무니 따라 장에 가고 싶은디 안 데꼬 갈라고 혀. 차에 사람 많은게 다른 사람헌테 미안하잖애. 어무니 타 있으믄, 추럭 출발헐라고 허문 살짝 뒤에 타 버리제. 그날이 국시(국수) 먹는 날이여.”

좁은 트럭에 여러 사람 따복따복 앉아 장에 가는 날, 시끄러운 차 엔진 소리에 큰소리로 얘기 주고받으며 장에 가는 재미가 있었다.
“길이 움푹움푹헌게 푹푹 뛰다가 드러누워부는 사람도 있어. 사람 많은게 뒹굴 자리도 없는디 뒹구는 사람이 있어. 무안해 갖고 어쩔 줄을 모르제. 딴 사람들은 웃느라 정신 없고. 근디 사람들 앙거(앉어) 있는 거 보문 확실히 그때는 남녀칠세부동석이네. 앞뒤로 갈리든지 좌우로 갈리든지 남자 따로 여자 따로. 넘어져도 얼릉 자기 쪽으로 붙네.”

동네로 돌아올 때는 어떻게 했을까? 그 많은 사람들 장 보고 나면 짐도 많았을 텐데.
“긍게 올 때는 두 번을 왔다갔다 혔어.  세시 반에 일차로 오고, 고 놈이 다시 가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제.”
1955년 난장을 터 장을 만들며 장 날짜를 2·7일로 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5·10일 서는 오수장, 1·6일 서는 임실장 4·9일 서는 남원장 등 인근 지역의 장날을 피했다.

산서장은 오수장이라는 큰장을 가까이에 두고 있었지만 동네마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절이어서 풍성풍성, 활기가 넘쳐났다. 하루에 버스가 오수 두 번, 남원 두 번, 전주로 두 번만 다닐 때만 해도 다른 장으로 손님들을 뺏기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는 늘고 인구는 줄며 장꾼도 줄고 장에 나오는 물건도 줄고, 지금은 물건 많은 남원으로 임실로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국시장시(장수) 한우어매가 돼야지(돼지) 말국(국물)에다 말아준 국시가 최고”였다는, “오수장 임실장 가봐도 한우어매만치 국물을 내지 못한다”는 육윤순 할머니 기억 속에서나마 산서장은 “이만한 장이 없다”.

“마을까정 버스 안 들올 때는 장사꾼이 꽉 찼어. 1원짜리 풀빵도 폴고 옹구(옹기)그릇장수도 여럿이고. 쌀 두 되 가져와 쌀집에 내서 꽁치 갈치 사고 배피떡 사 묵고. 5원만 주문 오징어 몇 마리를 샀네. 100원이믄 오만 것 다 샀제.”

 

오일장 속으로( 전체목록보기 )

[2005/07/06] 무진장 중심 사통팔달 산중장 - 장수 장계장

[2006/11/13] ‘육미자’도 팝니다 - 장수 번암장

[2006/01/18]

“마트에 없는 거 여기는 있어” - 임실 오수장

[2007/03/21]

소털 한번 세 볼까? - 남원 우시장

 

 

 
일년에 열 두번 당신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 전라도닷컴 정기구독 신청하기 <<
기사출력  2007-06-08 17:41:12  
ⓒ 전라도닷컴  

이글 보니 올 봄에 마주친 산서장날이 생각이 난다. 추억 끄집어내여 기대 만땅했다가 농촌의 현실을 마주보고왔던 그날이~^^*
차라리 가던 날이 장날이 아니었으면.. 그런 생각이라도 안들지..
아.. 기억 저편으로 넘아간 북적북적 번성했던 산서장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