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평화/강은 살아있다

자마구 2011. 3. 26.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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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숨결로 이 편지를 씁니다.

드리는 말씀도 거칠어질까 쓰기가 망설여지지만

강이 아파하는 신음을 전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몰아칩니다.

 

지금 당장 강으로 가십시오.

어머니이신 강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보고,

어머니이신 강이 뭐라 하시는지 들어 보십시오.

간절하게 외치는 시골신부의 마음을 느끼실 수 있는 분들은 이 편지를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강으로 나가 보시면 압니다. 지금 당장 강으로 가십시오.

 

나는 토요일마다 낙동강으로 갑니다.

지난 겨울 열 다섯 번을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단’과 함께 강을 걸었습니다.

낙동강 상주댐(대형보) 공사장을 지나 내성천을 걷고

하회마을 아래 구담보 공사장을 봅니다.

주중에는 영주댐 공사현장을 보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 강에서 많은 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강을 만납니다.

 

“신부님은 왜 매번 강에 오세요, 힘들지 않으세요?”

누렇게 빛나는 모래벌 위를 맑게 흐르던 강물을

아파트만한 쇠막대기로 시뻘겋게 막아놓은

그 자리에서 가슴이 아파 눈물짓던 여인이 물었습니다.

 

“집에 있으면 더 힘들어요. 만약 아이가 아파서 앓고 있는데,

그 옆을 지키지 못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파하는 강 옆에 있는 게 그래도 나아요.”

 

그 여인에게 나는 이런 답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가슴이 아파서 나도 외면하고 싶지만 아픈 어머니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속으로 욉니다.


        어머니 강이 살해되는 그 현장에 나도 서 있으리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골고타 언덕 피바람 불던 날

        십자가 아래에 섰던 여인들이 있었다.


아픈 가슴을 끌고 강으로 나선 나를 치유하는 이는 아파하는 강입니다.

나를 위로하는 이는 강이 아파하는 소리를 듣고 같이 우는 사람들입니다.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사실상 강을 죽이고 있는 현장에서

거짓말로 천하를 속이고 권력으로 강행하는 이들을 향하여

분노가 치미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강을 걸으며 강이 앓고 있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 분노는 슬픔이 됩니다.

슬퍼하는 나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침묵합니다. 

어느 새 수정 얼음판, 물별, 저무는 햇살에 붉게 물든 강물,

바람결과 모래결, 강을 품어주는 높은 산들이 나에게 옵니다.

그들이 주는 위로는 나의 분노를 거룩하게 합니다.

화가 나서 치를 떨다가도 서로의 손을 붙잡고 깊은 눈을 바라봅니다.

슬픔을 강물에 흘려보냅니다.


강이 죽었다며 ‘4대강 살리기’를 해야한다는 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강은 죽지 않았습니다. 강에 가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곳에는 수달발자국, 고라니발자국,

너구리 똥무더기, 손톱 만한 새 발자국들이

어머니이신 강과 함께 있습니다.

그 강 옆에는 허리 숙여 땅을 일구는 농부의 땅과 마을이 있습니다.

봉화와 영주와 예천을 뱀처럼 구불구불 지나가는

내성천 300리는 눈이 시리게 맑습니다.

강은 죽지 않았습니다.

 

물론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로 막아 놓은

한강은 강바닥이 썩었습니다.

4대강사업 마스터플랜 그대로

16개의 대형보(11.2미터 높이의 댐)로 강물을 가두고,

평균 수심 7.4미터를 만들기 위해

강바닥의 모래와 암반을 모조리 파내고서

강을 인공호수로 만든다면 강은 죽습니다.

 

강이 죽었다며 강을 살리자고 말하는 이들의 속마음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낙동강에서 그리고 한강 영산강 금강에서

4대강 사업의 성공을 기원하는 이들은

“강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데,

강가에 생태공원, 체육공원, 승마장, 골프장을 만들어 놓으면

많은 관광객들이 올 것이고 따라서 지역도 발전할텐데,

왜 강을 죽은 상태로 그냥 두나요?”

하면서 나에게 눈을 부릅뜹니다.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강은 죽어 있다는 말입니다.

 

새마을 운동과 수출입국 개발시대의 유령이 아직도 우리시대에 살아 있는 듯합니다.

‘개발은 좋은 것이다’고 하는 풍조는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 소도시와 농촌에는 개발에 뒤쳐진 열등감과 소외감에 호소하는 위정자들이

개발과 지역발전을 지상과제로 설정하고 사람들을 그 깃발아래에 모이게 합니다.

 

이 편지를 여기까지 읽어 주신 당신에게 묻습니다.

이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깃발의 그늘아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개발은 좋은 겁니까? 인간사회 유지를 위해서 당연히 그리고 끝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디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그 끝은 어디입니까?

 

지금 한국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이웃 간에 밟고 올라서려고 경쟁하는 세상을 살면서,

어디론가 정신없이 달려가는 행렬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은 어리석은 짓이지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묻혀

정신없이 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질병은 ‘무관심’입니다.

강이 죽는지 사는지,

강을 살리든지 죽이든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바야흐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강과 나의 관계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강은 죽습니다.

강이 죽으면 우리도 죽습니다.

 

텔레비전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내가 강에서 보고, 강에 깃든 생명붙이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백분지 일도 나오지 않습니다.

환상에 속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강으로 가십시오.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이웃사람들과 이야기 해보고 인터넷에서 찾아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산하대지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이들로부터 잠시 빌린 것입니다.

 

생명의 평화를 빕니다.

 

(이 글은 성공회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처 : 영주댐 내성천 낙동강 답사기
글쓴이 : 맨발로 천경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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