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평화/4대강 자료실

자마구 2011. 9. 15. 04:31

  다카끼 마사오(박정희) 정권이래 농업정책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농업은 돈마니 최고의 산업에 밀려 천대받아 왔으며 그 결과 농촌은 이제 사람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곳이 태반이다.  마을공동체는 해체되어 왔으며 시골초등학교 동창회는 모교를 찾을수 없거나 폐교된 터를 찾아야 한다. 시골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찾기 어렵다.

 다카끼(박)가  4.19 민주 혁명을 짓밟고  매국노이며 수십만 양민 학살자인, 독재자 이승만의 유산을 물려받아  유신 독재의 간판을 걸었지만 일제국이 내걸었던 대동아 공영, 침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그들만의 배불림을 위한 것임을 이제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돈마니 최고의 정글사회 통계는 이를 말한다.

 그 그림자는 길고도 짙게 이 산하(山河)드리워져 있다. 

다카키의 후예인 살인마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의 계보를 이은 독재자 이명박은 미 위키리키스 폭로대로 뼛속까지 친일, 친미일수 밖에 없다.  그들의 정책이 그러하고 민주주의를 뭉개는 침략의 근성이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생명의 강, 어버이 강인 4대강에 대한 삽질, 패륜 행각은 이 땅을 더불어 살아가는 자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이다.

 

김진창, 그는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사는 천생 농부다.  영주의 내성천은 4번이나 찾았지만 그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는 영주댐 건설 반대에 가장 앞장서 온 사람들중의  한사람이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댐이 생기면 이산면 일대는 수몰되거나 침수된다.  영주댐 건설을 앞장서서 반대하는 김진창씨 같은 분이 모두 수몰민이었다면 지금 영주댐 건설은 아직 시작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아 농업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고 도시에 살면서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땅투기꾼들도 적지 않았기에 영주댐을 반대하는 현지주민들은 수자원공사의 각개격파에 분열되어 땅을 내놓고 만 것이 아닐까...

    

농부 논객 그의 말은 가슴에 다가온다..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만나보고 싶다.  진실한 농부의 말은  감동적이다.

 

낙조가 드리운 금빛 내성천의 모습 /초록 사진작가  박용훈 작

 

                       페이스북 내성천을 아시나요에서 그의 글을 담아왔습니다. 

http://www.facebook.com/?ref=home#!/groups/191874560877713/

 

송기역 작가의 흐르는 강물처럼 에서......

[사람 이야기]

농부 논객 김진창

영주를 향해 출발하기 전 나는 천경배 신부에게 몇 명의 농부를 소개받았다. 갑작스런 방문인 데다 추수철이라 농민들과 약속을 잡기 쉽지 않았다. 영주터미널에 도착하자 영주 부석중학교의 박세원 선생이 마중 나온다. 그가 몇 군데 전화를 돌리더니 운전대를 이산면으로 돌린다.

영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는 이산면과 평은면에 걸쳐 있다. 김진창 씨는 이산면 석포리에 살고 있다. 석포리에 도착해 그가 벼를 수확하고 있는 논으로 향한다. 어두워진 마을 길을 걷고 있을 때 콤바인 소리가 들려온다.

농지 옆 길 위엔 나락을 실어갈 트럭 한 대가 주차해 있다. 트럭에서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이용해 주민 서너 분이 삼겹살을 굽고 있다. 버너 옆엔 소주가 놓여 있다. 버너 위에 구워지는 삼겹살을 나무젓가락으로 건져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수확중인 쌀 가격이 궁금하다.

“우리가 팔라하믄 십이만 원 정도야. 여기 들어간 일당 계산하모는 쌀값이 너무너무 험한 거지. 농사 지가꼬, 저 비싼 기계 갖다 베가꼬, 털어가꼬, 내가꼬 팔아봐야 팔십키로 한 가마가 하루 일당밲에 안 되는기라.”

주재동 씨가 40년 전엔 50일을 일해야 한 가마니의 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쌀의 가치가 그만큼 하락한 것이다. 그럼 주제동 씨가 올해 여덟 마지기 농사로 번 소득은 얼마나 될까?

“논 여덟 마지기 가지고 농협에서 찾는데 320만원 찾더라고. 적자에요. 그 돈 받고 나오는데, 서글픈기라요.”

올해 가을 날씨가 나빠 수확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김진창 씨가 체머리를 흔든다.

“쌀을 얼매나 천대를 했으믄 나락이 안 나와요. 나락이 안 나와.”

농사가 좋지 않아 생계가 막막한 데다 댐 건설 문제로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한숨이 볏단보다 높게 쌓인다. 김진창 씨는 댐이 건설되면 농민들만 피해를 받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가령 고추가 정상적인 날씨에 50일이면 착과를 해가지고 빨개지는데, 안개가 마이 차고 햇빛을 덜 보믄 55일이고 60일이고 걸랜다 하면은 수숙기가 늦어지잖애요. 그죠? 숙기가 늦어지면 수확량이 대번 차이가 날게 아이래요. 글고 습도가 높으믄 병이 마이 와. 병이 마이 오믄 농약 더 쳐야죠? 그거 누가 먹어요? 도시 사람들이 농약 먹죠.”

영주댐 건설에 대해 마을 농민들이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 여쭈었다.

“박통 때는 피해가 올지를 몰랐어. 댐을 하자고 해도 뭐하는 지도 모르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안다 이기라. 알아도 말을 몬하는기라. 말할 힘이 없는 기라. 나이가 많으니까.

“아! 이제는 아는데 말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돼버린 거군요. 입이 있어도 열리지 않는 거군요.”

김진창 씨는 이 동네에서 이장 다음으로 나이가 젊다. 일흔 여든의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정부에 맞서 싸울 힘이 없단다. 그는 영주시청 자유게시판에 4대강 사업과 영주댐 건설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그에게 4대강 사업을 묻는다.

“진짜로 좋은 거면 왜 강을 4개나 하노 이기라. 한 개 강만 해보라 이기라. 그거 당장 안 한다고 어데 난리 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죠? 진짜로 그렇게 좋다면은 한 개만 해보고 나면, 사람들이 아이고 우리 강도 해달라꼬 막 난리 날 게 아이래요? 지금은 국비 100프로로 한다 해도 싫어하는 거를 적극 한다믄 이유가 뭐래요? 거는 누가 계산해도 뻔한 게라. 대한민국에서 들어먹다 들어먹다 들어멀 게 없으이까예, 이제 강을 건드린다는 핑계로 들어먹는단 얘기지.”

나는 청계천 사업으로 대통령이 인기를 끌면서 천 하나에 만족 못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청계천 쪼매난 거 한 개 살렸다꼬 공갈 쳐노코는 온 강을 다 뒤지고 말이 안 되는 얘기거든요.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을 왜 자기 임기 안에서 해야 되느냐 이 말이래요. 우리가 말리다가 못 말리는 한이 있어도 후세에 우리가 말리다 치았다는 얘기라도 들어야 된다 이 말이라.”

내가 김진창 씨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영주시청 게시판에 그가 쓴 글이 예사롭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였다. 생전 글을 써본 적 없다는 그가 어떻게 펜을 들게 되었을까?

“젊은 애들 열 명이라도 있으므는 데모하러 가자고 머리띠라도 매는데 노인들 델꼬 뭘 하는교? 수자원공사 아덜 대가리 하나 뚜드려 깬다고 해가지고 댐이 안 될 거 같으면은 대번 가서 망치 들고 가서 때리고 치아부리지. 나름 내 혼자라도 할 수 있는 기를 연구했는 거지요. 명박이 욕까지 해가믄서 이판사판이다 그렇게 막 꽂아부렀지요.”

대통령을 욕했다는 말에 나는 겁나지 않으시냐고 여쭈었다.

“쥐새끼라꼬 해버렸어.”

“쥐새끼라고도 했어요?”

“뭐 하자 있어? 세게 해부렀지. 더 심하게 써야 된다이까.”

“심하게 안 써도 돼요.”

“더 심하게 써야 돼.”

“어르신, 두렵진 않으세요?”

“영창을 갈려고 싸워야 되재 영창을 안 갈라고 싸우는교? 싸울라믄 그래 싸워야재.”

농부 김진창의 날선 비판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댐 건설을 둘러싸고 지난 10년 영주지역에 무슨 기막힌 일들이 벌어졌는지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