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평화/4대강 자료실

자마구 2011. 9. 17. 00:41

 

 

송기역작가의 흐르는 강물처럼 중 에서 (2)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농부 김 진창

그는 소리꾼 같았다. 나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의 말을 받아 적기 바빴다. 때론 ‘아니리’로, 때론 ‘휘모리 장단’에 신명을 실어 우리 시대 비겁과 파렴치를 날 것 그대로 드러냈다. 그가 세상을 보는 지혜와 통찰력에 나는 놀랐다. 지혜로운 이들은 이렇게 자신을 감추고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 박세원 선생과 나는 새벽 세 시가 넘을 때까지 그의 소리에 추임새를 넣었다.

도로변의 술자리를 파하고 그의 집을 향해 걸어간다. 김진창 씨 집 입구 내성천 제방 위에서 오줌을 눈다. 오줌 줄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마을을 소개한다. 석포리의 한자는 돌 석, 포구 포자라고 한다. 400년 전에 이곳까지 나룻배가 올라왔단다. 동네엔 뱃정지라는 명칭을 지닌 장소가 남아 있다.

그의 집 마당엔 트랙터, 콤바인 등 여러 대의 농기계가 있다. 그는 마을에서 뛰어난 트랙터 기술자로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뼈 빠지게 농사지어도 일 년에 3천 평 농지에서 벌어들이는 순수익은 2백만원 정도다. 도시 회사원 한 달 월급과 비슷한 액수다. 이런 현실에서 다른 살 길을 모색해 농기계를 다루게 된 것이다. 농기계의 달인에게 비결을 묻는다.

“기계를 조작할 때 기계하고 내하고 한 몸이 되는 거지. 기계하고 내하고 말을 하믄서 이래 하지.”

방에 들어서자 그가 책 한 권을 건네준다. 이 책은 김진창 씨가 영주시청 게시판에 쓴 글을 모아 박세원 선생 부부가 인쇄소에서 제작한 것이다. 박세원 선생의 말에 의하면 그는 돌연 떠오른 인물이다.

박세원 선생은 시청 게시판에서 그의 글을 보고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글에는 촌철살인이 있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직설화법에는 농부의 정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시민들의 호응-댓글이 열렬했다. 실제 댐 반대 여론을 만드는 데 김진창 씨가 적잖은 힘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김진창 씨의 책을 들춰보았다. 그에게 글이 좋다고 얘기하자 “놀래키지 말라.”며 손사레를 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읽은 그의 글엔 시장에 떠도는 여느 책들보다 호소력과 생명력이 있었다. 농부의 삶과 몸이 하나하나의 문장 속에 배어들어 있었다. 그의 글은 미사여구도 꾸밈도 없었다. 그가 쓴 몇 편의 시도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내성천은 무서운 수해를 주는 강이면서, 놀이터이기도 했다. 내성천에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마을 동무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잡았다. 내성천에 관해 그가 쓴 글은 한 편의 시 같다.



난 내성천 물을 먹고 자랐으며,

내성천 물고기를 잡아먹고,

내성천 개구리를 구워먹고,

내성천은 나의 수영장이며 목욕탕이고,

씨름장이었으며,

가슴 설레는 밀회의 장소이었기에

내성천과 나는 둘이 아니다.



김진창과 내성천은 분명 둘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천으로 손꼽히는 내성천에 대해 그는, 어린시절 본 강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내성천이 억수로 바꼈거든요. 물이 흘러가다 여기저기 동그란 섬을 마이 만들었는데, 그게 물 흐름에 방해된다꼬 와가지고 포클레인으로 묻어뿌고 이래 뿌이까예. 지금은 옛날 모습과는 백팔십도 달래졌는데 도시 사람들이 와가지고 뭐 원시적인 모습이니 이래는데 우리가 볼 땐 아이라.”

제방도 지금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모습이 아니었다. 제방 위엔 버드나무가 제멋대로 우거져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을에서 심은 미루나무는 성냥공장에서 성냥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강폭이 넓어지고 제방을 콘크리트로 덮었다.

영주가 고향인 르포작가 안미선은 녹색평론에 발표한 글 「아리랑 강물소리에 손대지 말라」에서 김진창 씨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작가와 대화를 나누던 그는 갑자기 말을 끊고 눈물을 흘렸다.



농작물 피해며 농민이 다 죽게 생겼다는 말에는 울지 않던 그가 ‘내성천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그만 줄줄 눈물을 흘리고 만다. 강이 사라지는 것이 내 몸이 사라지는 것처럼 아픈 것이다. “그만합시다.” 그는 목이 잠겼다. “겪지 않으면 알지 못해요.” ‘내 몸을 준 강’이라는 토박이들의 눈물에는 강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심리적 저항이 완강히 있었다. 자신이 살아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강도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내용을 떠올리자 어룽거리는 눈동자로 대답한다.

“내성천 얘기를 신나게 하고 있는데 댐이 되가꼬 챈다 하이까예. 없어진다 하이까예. 인제 또 감정이 그런 쪽으로 또 돌아가 뿌이까예. 시발 새끼들 막 욕을 하다가 갑자기 그래뿌이까예. 내성천이 나를 키아줬는데 저놈들이 내성천을 없애고 있는데 내가 내성천을 위해 해야 될 게 있단 얘기죠. 내가 똥도 누고, 그 똥오줌을 다 받아줬거든예.”

영주 지역은 10년 전에도 댐 건설 계획으로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당시 댐 이름은 송리원댐이었다. 현재 댐 이름은 영주댐이다. 김진창 씨가 댐과 맺은 인연은 이때가 시작이었다. 당시 마흔 살이었던 그는 댐 건설이 농사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도 몰랐다. 그가 사는 이산면이 수몰지로 지정되었고 반대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알게 되었다. 댐 반대 투쟁은 영주가 아닌 상류의 인접 피해 지역 봉화에서 먼저 타올랐다.

“여기 주민들은 대부분 마 댐 차믄 이제 난 어디로 가 산다. 그라고 보상비 계산만 있었지예. 왜 그래 생각하냐 하믄 국책사업으로 떨어져불믄 이길 방법이 없단 얘기지예. 그런데 봉화 사람들은 안개만 몰려온단 얘기야.”

그런 상황에서 시의회에서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10년 전에는 주민들은 반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뭔동 모르니까 반대할 생각이 없었는데 시의회에서 반대를 하믄성 시장 반대하고 막 국회의원 반대 촥 해제끼는기라.”

그도 보상비에 대한 고민이 앞서 있었다.

“댕겨보믄 별 게 다 있어요. 평가하러 온 놈들을 술 마이 담아줘야 보상가가 높아진다느니 나무를 마이 심어야 된다느니 별 소리가 다 나와야.”

마을엔 1993년 임하댐이 건설된 후 수몰민이 되어 이주해 온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본 그로서는 보상비를 많이 받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 와서 제대로 살 수 있는교? 여기는요. 저가 사백몇십 년을 살았어요. 제가 나이가 그렇다는 게 아이고 우리 조상이 터를 잡고 그렇게 된다는 얘기래요. 여긴 씨족사회래요. 타지 사람들이 돈을 10억을 가져오든 20억을 가져오든 여 와서 행세하고 살 수 있는교? 이것 저것 해봐야 다 속는 거야. 텃세가 있어. 내가 여기서 쫓겨나서 다른 동네 가먼은 맹 똑같아진대는 얘기죠.”

가까운 안동에서 댐이 건설된 후 농민들이 겪은 일들이 들려왔다. 댐 건설 후 관절염 환자, 기관지염 환자가 많이 늘고 농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댐 건설은 재앙을 부르는 일이었다. 그때 이산면의 시의원 강정구가 댐 반대 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김진창 씨에게 사무국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사무국장으로 2년 동안 투쟁에 앞장선다.

“정치권이 움직이면 얼마나 힘이 큰지를 당시에 느꼈지예. 그때는 정부가 전라도 정부잖아요.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반대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기라. 전라도 정부는 반대편이니까. 그래서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선언한 거예요. 민이 뭉친 게 아이래요. 민은 첨엔 댐에 대해서 몰랬어. 시의원이고 시장이고 반대를 하니까, 면장이며 이장이 같이 가서 뭐 하자 하니까 그냥 같이 가서 한 거래요.”

당시 시의회에서 집회하러 가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버스 대절 비용 등 동원 비용을 제공했다.

“그때는 우리가 마 조깨도 100개씩 맞차가꼬 조깨를 착 입고 모자를 빨간 걸로 쓰고 여 반대 딱 쓰고 막 이래 복장을 일률적으로 해뿌고 갔지예.”

그로부터 10년. 주민들은 다시 댐이 건설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평화롭게 지냈다. 그런데 4대강 사업과 함께 댐 건설이 다시 추진된 것이다. 그가 다짐하듯 말한다.

“그러고나서 한 10여년 지내고 나이도 들면서 생각을 해보이까예 댐이라는 건 절대 안 된다. 사람이 되고 안 되는 게 확고부동한 게 생길 때는 목숨을 내놓고 뭘 해야 될 게 아인교? 이래도 될까 저래도 될까 같으면 치아뿌리야 되고, 이 길이 내 인생을 걸 수 있는 길이다라꼬 생각을 했을 때는 다 걸자 이기라. 걸었다믄 이판사판이다 이기라.”

한비자에 보면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가 있다. 그 중 하나를 김진창 씨가 알려주었다.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여 대형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고를 탕진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