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평화/4대강 자료실

자마구 2011. 9. 17. 23:00

송기역작가의 흐르는 강물처럼 중 에서 (4)

[마을 이야기]


놋점마을 노인들의 마지막 여행

영주댐 가는 길. 고개를 넘자 차창 밖으로 물도리 마을 금광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반한다. 시쳇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경치다. 내성천 물이 모래사장을 뿌려놓고 마을을 한 바퀴 휘돌며 흘러간다. 그 앞으로 중앙선 기차가 기적소리를 내뿜으며 지나간다. 기적소리는 내성천 물 위로 잔잔하게 내려앉는다.
주민들은 마을을 물도리동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부르는 이름은 더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내성천을 비단을 펼쳐놓을 것 같다 하여 오래 전부터 금강, 또는 금강하회라고 불렀다. 작은 하회마을이라는 뜻에서 소하회라고도 불렀다. 하회마을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금가해라는 이름도 있다. 금강하회의 준말이다.


마을 이름은 원래 금강리였다. 이름을 빼앗긴 것은 일제시대 때였다. 비단 금, 물 강의 한자는 쇠 금, 빛 광으로 바뀌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회마을보다 경치가 빼어나다며 마을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금강마을은 관광지화된 하회마을과 달리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내성천을 따라 영주댐으로 향한다. 강변에서 농민들이 생강을 수확하고 있다. 현재 영주댐의 공정률은 30%가량이다. 금광리를 지나면서부터 거대한 댐이 보인다. 다가갈수록 그것은 점점 커진다. 포클레인과 덤프트럭들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 이질적으로 놓여 있다.
공사 현장에 도착하자 박세원 선생이 산에 뚫린 터널을 가리킨다. 댐 물이 일정량을 넘을 때 빼내기 위해 만든 물길인 무넘기(여수로)다. 산고개를 넘어가니 다시 터널이 보인다. 산을 뚫고 빠져나온 맞은편의 무넘기다. 예상치 못한 크기의 대형 터널이다.
댐 아래 첫 번째 마을을 찾아간다. (무슨 리인가?) 마을에서 만난 주민이 건너편의 또 다른 산에도(산 이름) 중앙선 기찻길을 내기 위해 터널을 뚫을 계획이라고 알려준다.(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진월사 스님들이 터널 공사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앞산 두 곳이 겪는 참화에 주민들 민심이 흉흉하다. 댐 공사로 농작물의 피해가 걱정인데, 터널공사까지 연이은 우환이 마을을 덮치고 있다. 정을 주고받던 옆 마을 놋점의 이웃들을 잃은 것도 억울한 터다.
영주댐 아랫마을인 놋점마을은 사라졌다. 마을이 있던 자리엔 건설회사의 관리사무소가 들어섰다. 후에 공원이 조성된다고 한다. 400년 동안 한울타리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마을 공동체가 통째 없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저항했지만 댐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놋점마을 주민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리 이장 댁을 찾아간다.
이장님 부인께서 식사를 차려준다. 이장님에게 이주의 뒷 얘기를 듣는다. 마을 사람들은 서울로, 대구로, 대전으로, 안동으로, 그리고 영주 시내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가 마을 이름 ‘놋점’의 유래를 알려준다.
“그게 놋점이 아이고 원래는 유점이라. 놋그릇 유자, 유기점이라 캐서 옛날에는 이기 유기점이 있었어.”
“떠나신 분들 중에 시골마을로 이주한 분도 있나요?”
“없어요. 다 도시로 떠났어요.”
버스가 오지 않는 오지에서 옹기종기 한데 모여 살던 놋점 주민들. 그네들의 이주 후 삶이 온전할 리 없을 것이다. 이주를 앞두고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이 있다.
“인제 우리가 헤어지면 죽을 때까지 못 보니껴.”
성치 않은 일흔, 여든의 몸으로 고향을 떠난 노인들이 앞으로 서로 만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60년, 70년을 정든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떠나기 전, 옆 마을 사람들이 놋점 노인들의 마지막 여행을 보내줬다.
나는 마을을 떠나며 그네들의 마지막 여행을 생각했다. 목이 잠겼다.

 

출처 : http://www.facebook.com/groups/191874560877713/?id=200846269980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