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엿보기/추천글과 말

자마구 2012. 8. 25. 11:39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평소에 자기의사를 명확히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데모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50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대규모 항의집회가 지금 일본의 주요 도시들에서 가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이다. 그러나 ‘사요나라 원전’이라는 슬로건 밑에서 진행되는 이 데모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보다도 사고 1년이 넘은 지금 훨씬 더 강도 높게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데모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감각으로는 일본의 데모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일본이라고 해서 가두에서 전혀 시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흔히 극우단체들에 의한 시대착오적인 일탈행동의 표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 중에는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한국의 경우를 내심 부러워하며 콤플렉스를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데모를 할 줄 아는 한국사회야말로 어떤 점에서 일본인들이 본받아야 할 선진사회였다.

사실,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대국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인권의식과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를 박은 성숙한 선진사회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나라로 존재해왔음이 분명하다. 말할 것도 없지만,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패전의 결과로 외부에서 주어진 선물이라는 측면이 강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근원적으로 한계가 명백한 민주주의였다. 일본이 식민지 침략과 전쟁 책임에 대해서 언제나 머뭇거리고, 아시아 이웃나라들과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문제에서 늘 애매한 태도를 취해온 것은 무엇보다 그러한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손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지 못한 사회가 어른스럽게, 책임있게 행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민주주의의 미성숙 혹은 취약성을 생각할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것은 한때 ‘재팬 넘버원’이라고 자타가 공인한 경제적 번영일 것이다. 전후 일본사회에서 드물게 ‘불량정신’의 고귀함을 늘 역설했던 정치사상가 후지타 쇼조의 용어를 빌리면 일본 민주주의의 성장을 가로막아온 결정적 저해요인은 ‘안락을 위한 전체주의’였다. 다시 말해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수(特需)와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 덕분에 빠른 속도로 경제적 번영을 달성한 일본사회는 ‘안락’에 취했고, 그 ‘안락’의 유지를 위해서 국내외적 모순과 불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 대해서 대체로 침묵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습성이 굳어졌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나무젓가락 때문에 필리핀의 산들이 민둥산이 되고 있다는 극히 기초적인 사실도 생각하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대참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다수 일본인은 자신들이 누려왔던--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점점 멀어져가는--번영과 안락이 근본적으로 허구적 토대 위에 구축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모는 원전 재가동을 허용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이의제기이다. 그래서 작년에 방사능이 대량 방출된 사고 이후 원전 54기가 전면적으로 가동 중단된 상황에서도 우려했던 것처럼 전력대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정부가 국민의 이익보다 산업계와 보수언론의 의사를 더 중시한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처럼 위험한 전력생산 시스템은 이제 그만두고 장기적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단순한 전력생산 시스템의 변경에 지금 일본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전반대 데모 참가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드러내는 의견이나 최근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련 자료와 문헌을 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근원은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생활방식 그 자체임을 의식·무의식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일본에서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하산(下山)의 사상>이라는 책이 있다. 요컨대 일본사회가 끝없는 진보와 성장이라는 환상을 좇는 것을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성숙’ 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이다. 근대국가 형성 초기부터 줄곧 계속된 부국강병 혹은 대국 지향 논리를 이제는 단념하고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공생의 삶이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는, 이 메시지는 따져보면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는 근대일본의 ‘웅비’ 과정을 묘사한 유명한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 열광했던 일본사회가 이제는 그 ‘웅비’가 결국 ‘후쿠시마’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언덕 위의 구름>에서 <하산의 사상>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일본의 변화를 가리켜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지난 7월17일 총리관저 앞에서 17만명의 데모 참가자들을 향해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알고 보면 시시한 것. 시시한 전기 때문에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아름다운 나라와 아이들의 미래를 망쳐야 하는가”라고 절규했다. 여기서 ‘시시한 전기’라는 말은 결코 간단한 표현이 아니다. 따져보면 그동안 일본을 포함한 이른바 선진 산업사회를 뒷받침해온 것은 한마디로 전기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전기를 ‘시시한’ 것이라고 통매(痛罵)한다는 것은 그 산업체제의 근원적인 허구와 비윤리성을 꿰뚫어보는 강인한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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