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평화/역사를 위하여

자마구 2012. 9. 4. 23:46

 

 

김좌진 장군과 아무 관계도 없는 김두한, 김을동 

 

 재미만을 추구한 무책임한 영화작가나 드라마작가들,

친일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된 독립운동가의 명예를 되찾아 주어야한다.

 

김좌진 장군의 수하에 있던 사람이 이승만 정부때 요직에 맞게 되자 자신의 업적을 부풀리기 위해

청산리 대첩에서의 수훈을 세운 김좌진 장군을 시대의 걸출한 영웅으로 부각시켰다. 사실 청산리 전투에서

큰 수훈을 세운 사람은 홍범도 장군으로 북한에서는 홍장군님만을 영웅시 한다.

여하튼 김좌진 장군은 업적보다 부풀려진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독립유공자는 사실이며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이때 종로바닥 깡패였던 고아출신 김두한은 정치에 입문하면서 자신을 뛰어난 인물로 부각

시키기 위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 거짓말을 한다.

당시 친일반공주의 매국노들이 홍범도와 대적해 김좌진을 내세운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좌진은 전투공노도 왜곡되고 그 가계도마저 김두헌을 앞세운 친일 매국노들에 의애 왜곡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드라마 영화로 그 거짓을 더욱 정당화시키고 친일깡패들을 미화시켰다.

김두한은 안동 김씨가문에 찾아가 자신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니 돌림자를

달라고 해서 두한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정치에 입문하게 되면서 사실인 것처럼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이것이 지금까지 김두한과 김을동 심지어 송일국의 명예까지 미쳐서 지금까지 후광을 보고 있다.

김을동과 김두한은 부녀지간이 맞지만 김좌진 장군과 김두한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고 깡패의 정치적 거짓말일 뿐이다.   

참고로, 김두한은 전후 반공청년단을 조직, 무수한 시민들을 처형시켰으며, 그중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함.

 

 김두한은 1918년생이라고 알려졌는데 만약 이것이 정확한 것이라면 청산리대첩이 일어날

당시 김두한은 일곱살이 아니라 세살이어야 한다. 더 웃긴 건 그로부터 3년뒤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울었다는 김두한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김두한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 김좌진은 청산리대첩

이 일어난 해로부터 10년뒤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과연 김두한어린이는 새파랗게 살아있는 김좌진장군님이 7년뒤에 죽을 거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언이라도 할 수 있는 "무당깡패"였던 것일까?

 

김두한의 아버지가 김좌진이 아니라는 건 최근 역사학계의 정통 상식이다

 

 김좌진 장군님과 김 계월 이라는 여성과의 인연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김두한 이라는 아이를 김좌진장군과 서첩 김계월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며 조선과 동아일보에서도
기사화 하였다는 점이다.
 청산리 전투를 통하여 일본군을 무찌른 김좌진 장군님이 기생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여덟살된 아들과 함께 목적지(전장)에 이르러 8년만에 김좌진 장군을 만났다는 기사를 작성하게 된 이유가
석연치 않다. 더군다나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자며 떠들어대던 친일 매국신문들이 김좌진 장군님의 승전보도 아닌
알려지지 않은 자식의 기사를 싫게된 이유는 분명히 김좌진 장군님을 흠집내기 위한 숨겨진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게 상식적일 것이다.


 그 무섭던 일제때 깡패로 성공하려면 친일을 안하고 어떻게 살아 남았겠나? 
 여기서 중요한 건 김두한이 싸움실력으로 "일제에 격렬하게 투쟁"해서 요주의 인물이 되고 예비검속을 받아야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김두한은, 열여덟의 나이에 감옥에 갔다 나와 이름을 바꾸고 유격대에 숨어들어 항일투쟁을 한 김일성과는 달리 어디로 숨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며, 유관순처럼 죽지도 않았고, 그저 예비검속만 정기적으로 받으면 됐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대단한 독립운동가일 리는 없는 것이다─, 그냥 "깡패", 그것도 아주 "훌륭한 깡패"였기 때문에 요주의 인물이 된 것이라고 보는 게 가장 사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비검속이라는 곤욕을 통해 나름의 호협심과 반일애국심을 키운 것만은 분명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국심이 있어도 깡패는 깡패인지라 무식한 두뇌에 뿌리를 뒀던 그의 애국심은 해방뒤 잘못 전도되어 자생적 민족세력의 어느 한 분파에 몸담고 있던 천삼백여명의 진정한 애국자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가엾은 철도파업간부 여덟명을 생매장하는 등─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김두한 스스로 한 말이다─ 이승만의 정치깡패로서 도살행위만를 일삼다가 시름시름 앓며 죽어가는 가련하고 한심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김두한이라는 한 인물의 대강적 정보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으로 우리가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허술한 김두한의 날조마저 눈감아주고 치켜세워주면서 국민들을 속여야만 했던 이승만 · 박정희정권(일본이나 중국만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역사왜곡을 실컷 해먹고 또 해먹은 나라다)의 추악한 실상에 관한 것이다. 그들이 김두한의 삶을 날조하는데 공범자노릇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고작 그를 정치깡패로써 이용해먹어 국민들을 때려잡고 반대세력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이승만노망여우, 박정희대일본제국육군소위의 명맥을 이어받아 전두환대머리새끼가 광주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러한 아픈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일뿐이며─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아픔이란 겪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역사도 발전하는 것이다. 북의 경우 그러한 아픔을 겪지 않고 너무도 빨리 훌륭하게 친일세력들을 청산했다는 데에 오늘날의 경직된 모습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김두한후손은 독립유공자로서 정치깡패의 얼굴에다 독립투사탈을 쓰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그 유치한 친일매국노는 반공으로 매국노의 험집을 가리고 지금도 정권을 이어가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외세에만 의존해야만 했던 명분없는 그들의 독재정권의 실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김두한이라는 한 가련한 고아 · 거지 · 깡패의 삶을 산 인물만을 보아도 그 대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이글은  맹꽁이님의 글입니다....
 
이제 다시는 방송,영화,술자리입담에서 조차 역사를 왜곡하고 깡패를 미화하지 말길 바라며....

 

 


김대중.노무현정권 10년외는 모두 친일파 정권이다

수꼴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일제가 심어놓은 말뚝들을 뽑을려고

무지한 애를 썼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친일파후손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을 그렇게 씹는겁니다

밑의 자들 보십시요 모두 한나라당입니다

방상훈(조선일보 사장) 악질 친일파 방응모 후손

조선일보라는 신문 자체가 친일실업인 단체인 대정친목회 명의로 발행허가가 나고, 친일악덕지주 예종석을 발행인으로 하고, 친일상공인 조진태를 초대사장으로 창간되었으며(1920년),  이후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 송병준이 조선일보를 경영했던 수치스런 신문이다. 이것을 방응모가 사들여 운영한 것이다. 예종석과 조진태는 일본에 빌붙어 이권을 챙기고, 가난한 농민들에게 고율의 소작료를 적용하여 고혈을 짜낸 악질적인 인간들이다.또한 송병준이 누구냐?이완용과 더불어 이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일진회의 중심멤버요 최고의 매국노다.이런 신문이 조선일보이다

김학준(동아일보 사장),독립운동가 애국자를 가장한 "김성수"의 후손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경성방직(경방)이 1차대전 후 섬유산업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촌은 총독부를 드나들면서 사이토 총독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그 결과 총독부는 1924년부터 매년 경성방직에 자금을 지원해주었습니다. 1924년에는 2만 8천원, 1928년에는 2만 7천원 등 총독부는 경방 사업 밑천(25만원)의 10%를 웃도는 거금을 매년 지원한 셈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1930년말 사이토가 병을 얻어 일본으로 돌아가자 인촌은 사이토에게 감사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홍석현(중앙일보사장)일제시대 경주지법 판사를 지낸 친일파 홍진기의 아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1942년 경성지법 사법관 시보를 시작으로 일제 때 판사 생활을 했다.해방 이후에는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4.19 혁명을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사건으로 모는 등 이승만독재정권 부역 행위의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나고, 처음에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얼마 안 가 석방되었다. 이후 삼성회장이자 훗날 사돈 관계를 맺었다.

이회창(전 한나라당, 현 선진당 총재)(뉴라이트)부친 이홍규 일제시대 황해도"검찰서기"

           이회창의 부친 이홍규가 일제시대에 검찰서기 겸 통역을 한 것이나, 한인옥의 부친 한성수가

           일제때 법조계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다른 평범한 친일파와는 분명히 일등 친일파였던 것이다.김종필(뉴라이트)부친이 일제의 면장

           1956년 굴욕적 한일회담을 주관함,일본측도 놀랄만큼 대일청구권,독도 문제에서 양보를 하였다.  

           독도를 제3국에 맡기려고 일본측에 제의하자, 일본측 대표가 "한국 국민의 반대가 심할 것"이라

           하며 주저하고 나섬. 당시"제2의 이완용이가 되더라도"란 망발을 하면서 "김-오히라 비밀메모" 작성박근혜(한나라당 국회의원)(뉴라이트),A급 친일파 박정희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던 박 전 대통령은 1930년대말 만주로 건너가 일제의 괴로국

           만주국 의 사관학교격인 신경군관학교를 졸업(2기)하였으며, 졸업 당시 우수한 성적자에게 주는

           특정으로 일본 육사에 편입했다. 팔로군과 조선의용군 토벌한 장본인, 혈서를 천황에게 바침.  박관용(전 한나라당 국회의장)(뉴라이트)부친 "박희준"일제시대 경남도경 부산경찰서 사법계 경찰정두언(한나라당 국회의원)(뉴라이트)할아버지(조부) : 일제강점기 군수최돈웅(한나라당 국회의원)(뉴라이트)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낸 최준집 아들김용균(전 한나라당 국회의원)(뉴라이트)부친이 일제시 면장과 금융조합장정우택(전 한나라당 충북도지사) (뉴라이트) 친일관료 "정운갑" 후손

남경필(한나라당) 부친이 일제시대 면장김무성(한나라당 국회의원)(뉴라이트) 

          부친 김용주(金龍周)는,전방(구 전남방직) 설립자,김무성 어머니는 방상훈(조선일보사장) 고모,

          조선일보가 외가, 친일파 현준호의 후손인 현정은(현대그룹회장)의 삼촌.현정은은 김무성의

          조카가 됨.민족반역 친일파 가문끼리 역시 혼인,김무성 집안은 전라남도 출신,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부산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땔래야 뗄수 없는 민족반역자 집안임.

신기남(민주당 국회의원)(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사죄)부친 신상묵  일본 헌병 오장

김옥숙(노태우부인)일제시대 참의원 "김영한" 후손 오빠 "김복동" 전 의원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1910년에 조선총독부 직속으로 자문기관인 중추원이 설치되었다.

           김영한 은 이때 중추원 찬의로 임명. 새로 조선귀족에 봉해진 이들이 조선귀족관광단을 꾸려

           일본을 여행했을 때, 김영한도  관광단의 일원으로 참가해 이토 히로부미의 무덤을 참배했다.홍라희(삼성 이건희부인)민족반역자 홍진기 (일제치하 판사) 후손

현정은(현대그룹 회장)조부는 중추원 주임참의 "현준호" 증조부도 중추원 주임참의 현기봉.총독부

            중추원 주임참의 라면 친일규명법에 명기된 대표적(친일파) 

현병철(인권위원장) 증조부 중추원 주임참의"현준호"

안병만(교육과학부장관) 부친이 일제때 경찰과 순사부장을지냈다

박용오(두산그룹 회장)조부 "박승직"1(두산그룹 창립자)

           1894년 박승직 상점 개정 일제 면포수입:조선 면포산업 잠식 1907년 공익사(면제품 판매)

           창립 1919년 친일 단체 조선 경제회이사 

이재현조양국제종합물류 대표 "연당(硏堂) 이갑성의 손자,

           1920년대까지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신간회, 흥업구락부 등에 참가 이갑성은

           민족대표 33인 중 최린, 정춘수와 함께 창씨개명을 한 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김윤(金鈗) 삼양사 회장, 민족반역자 친일파 김연수 후손

            김연수는 친일 예속 자본가로써1949년 8월 6일, 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된 피고에 대한

            반민 족행위 특별재판부의 공판에서 같은 친일파 세력의 방해로 무죄판결.

이인구(전 자민련 국회의원) ,이돈직(가짜독립운동가)

윤인구(kbs아나운서) 조선일보와 사돈관계 민족반역자"윤보선"전대통령의 친손자.

김영명(정몽준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 막내 딸.           일본 구주대(九州大 큐슈대) 법문학부 졸업,일제시대 일본고등문관행정과일본후생성근무 ,

           반민족행위자 99인에 들어가는 인물중 하나네요

유인촌(한나라당 장관)(뉴라이트)조부가 친일파 유치진

           유치진은 일제 강점기 당시 현대극장을 중심으로 한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었다.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12편의

           친일 저작물이 밝혀져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김동길(뉴라이트),친일파 김활란의 측근 김옥길의 동생

이장무(뉴라이트)(서울대총장),매국노 이완용 증손자,조부는 역사학자 이병도부친은 서울대

            농과대학 학장을 지낸 이춘녕이며 동생은 문화재청장 이건무이다

최연희(뉴라이트)부친 일제시대 면장으로 주민들을 일제 경찰에 고발해  엄청난 피해를 줌 

           최연희 애비가 고향에서 일제시대때 오랫동안 면장..피디수첩 친일파는 살아있다에 나옴.

           일제시대   면장 8년 .토지대장 조작의혹 받고 있음 .친일진상규명법도 반대한 사람.

조갑제(뉴라이트)일본 사이타마 현에서 출생

이명박(뉴라아트)일본 오오사카 출생

안병직(뉴라이트 이사장)"위안부 영업자의 절반은 조선 사람이었다. 그들이 무슨 권력이 있어

         동원했겠느냐." 이주영 건국대 교수(뉴라이트)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집필참여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뉴라이트)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고 강의신지호(한나라당의원)(뉴라이트)"정신대 강제동원 아니라 자발적 매춘이자 공창제였다"  대학에서 강의

         "11살 짜리가 끌려갔는데 지 에미가 위안부 끌려 갔어도 자발적 돈벌러 갔다고 말할까"

이용훈 서울대교수(뉴라이트)  "정신대, 자발적 참여"했다고 강의

         "11살 짜리가 끌려갔는데 지 에미가 위안부 끌려 갔어도 자발적 돈벌러 갔다고 말할까"

 

출처 : 비공개 카페

뉴라이트교과서에 김좌진 장군을 테러리스트라고 했는데 김을동 국회의원은 조용하네요..
그렇지요! 김대중노무현정권외에는 친일정귄이지요.
왜냐면 그 두 정권은 일본이 아닌 다른곳과 친했으니까.
아니 친했다기보다는 완전 ㅂㅅ~
진짜 김좌진후손은 소송을 통해서라도 밝혀야합니다
그동안 김을동이가 가짜족보르 국민을 기망한 죄 반드시 물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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