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을 입고 인술을 편 몽수(蒙叟) 이헌길(李獻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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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묵상

2016. 4. 4.


상복을 입고 인술을 편 몽수(蒙叟) 이헌길(李獻吉)



온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할 때 몽수(蒙叟)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천연두를 치료하는 비방을 터득하였으나 부모의 상복(喪服)을 입고 있었기에 어찌할 수가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참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목숨들이 떼죽음당하는 것을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는데도 예법에 구애되어 모른 체하고 있는다는 것은 불인(不仁)이다." 라며 떨치고 나와 비방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었습니다.

그후 십여 일 사이에 소문이 나서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문을 메우고 골목을 꽉 메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틈 속에서 어떤 아낙네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병을 고쳐주기를 청하자 몽수(蒙叟)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남편은 위독하오. 단 한 가지 약이 있긴 하지만, 그걸 쓸 수가 없을 거요."

아낙네가 한사코 가르쳐달라고 하였으나 몽수(蒙叟)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살릴 수 없게 된 아낙네는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비상이 든 독약을 사 가지고 와서 술에 타 방에 놓아두고 집 밖으로 나와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들어가 죽으려고 약이 든 술병을 보니 이미 비워져 있었습니다. 놀란 아낙네가 남편에게 물어보니 목이 말라 마셔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낙네는 급히 몽수(蒙叟)에게 쫓아가 살려달라 애걸하였습니다.

몽수(蒙叟)가 말하였습니다.

"이상도 하오. 그 한 가지 약이 바로 비상이라오. 당신이 그 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해주지 않았는데,  하늘이 남편의 목숨을 구했구려!"

아낙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과연 남편의 병은 나아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의 저술을 총정리한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린 글입니다. 몽수(蒙叟) 이헌길(李獻吉)은 조선 후기 영조 때의 왕족 출신의 명의입니다. 천연두와 홍역 치료에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었다고 전합니다. 몽수(蒙叟) 이헌길(李獻吉)의 일화를 빌어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 민생의 위기를 돌아보지 않았던 당시의 지식인을 풍자하는 글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참된 지식인은 많지 않은 법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