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은 오래 기다린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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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2016. 11. 23.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은 오래 기다린 사랑입니다



남원에 사는 노진(盧縝)은 집안이 가난하여 아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모친이 그에게 선천 원님이 된 당숙에게 가서 혼수를 좀 얻어오라 하였습니다. 그는 당숙을 찾아갔다가 빚이나 갚으라는 말만 듣고 문전에서 내쫓겼습니다.

길거리에서 서성이던 그에게 지나가던 한 동기(童妓)가 사연을 묻고는 자기 집에서 하룻밤 유숙할 것을 허락하더니 밤에는 동침까지 하였습니다. 다음 날 그 기생은 은과 말을 마련해 주고 고향에 돌아갈 것을 재촉하며 말했습니다.

"도련님은 십년도 되지 않아 반드시 귀하게 될 것입니다. 내 마땅히 몸을 깨끗이 하여 기다리겠으니 천만보증하소서."

그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기생이 준 은으로 혼수를 마련하여 혼인을 하고 가업을 일으켰습니다. 세월이 오래 흐른 후 과거에 급제한 그느 수의사또로 관서 지방을 시찰하다가 그 기생의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자 기생의 어미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습니다.

"자네가 간 뒤 우리 딸은 어디론지 떠나 벌써 몇 년이 지났네. 소문에는 선천 경내의 산사(山寺)에 있다는데 자취를 감추어서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네. 내가 나이 들고 쇠약하여 딸의 종적을 찾아볼 수 없어 이렇게 울고만 지낼 뿐이네."

그는 즉시 선천 일대의 사찰을 두루 찾아 헤매었습니다. 천 길 벼랑 위의 가파르고 외진 곳에 있는 한 암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칡넝쿨을 부여잡고 그 암자에 어렵게 올라가니 서너 명의 스님이 있었다. 그들에게 물으니 한 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사오년 전 쯤 한 젊은 여인이 와서 은전을 바치고 불좌 앞에 엎드려 머리를 풀어 얼굴을 덮더니 조석 밥을 창 틈으로 들여보내게 할 뿐 나오지 않은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소승은 그 여인이 생불(生佛) 보살이라 생각해서 감히 접근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그 기생이라고 짐작하고 남원 사는 노도령이 낭자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고 전해 달라 하였습니다. 이에 곧 전갈이 왔는데 노도령의 급제 여부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급제하여 수의사또로 이곳에 왔다고 전하니 여인은 또 이렇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소첩이 오랫동안 자취를 감춘 채 고생한 것은 오로지 낭군을 위해서입니다. 즉시 나가서 맞고 싶지만 귀신 형용이 되어 뵈옵기 어렵습니다. 저를 위해서 십여 일 머무신다면 삼가 때를 씻고 화장을 해서 본래의 형용을 되찾은 후에 만나고자 합니다."

그는 여인의 청을 들어 십여 일을 기다린 후 아름답게 치장하고 나온 기생과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손을 맞잡으니 슬픔과 기쁨의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이희준(李羲準 1775- ?)이 편찬한 문헌 야담집 계서야담(溪西野談)에 실린 글입니다. '세상을 거꾸로 사는 관상쟁이'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의 기생은 신분은 천하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한 남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큰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춘향전(春香傳)의 소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완성된 사랑을 쉽게 소유하기를 원하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참다운 사랑의 기나긴 여정을 보여줍니다. 채근담(菜根譚)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一苦一樂  相磨練  練極而成福者  其福始久(일고일락 상마연 연극이성복자 기복이구)
괴로움과 즐거움을 고루 겪은 다음에 얻은 행복은 오래 간다."<팔레놉시스 바스티아니(Phalaenopsis bastian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