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하는 자기를 거부하는 것이 성장의 증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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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묵상

2017. 11. 20.


욕구하는 자기를 거부하는 것이 성장의 증표가 아닙니다



나이 든 여인이 한 승려를 스무해 동안 자신의 땅에 있는 오두막에 살게하면서 지원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승려가 장년기에 접어들자, 그녀는 그 승려가 어느 정도의 깨달음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그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대신해서 아름다운 젊은 처녀에게 승려의 식사를 가져다주게 했습니다. 그녀는 처녀에게 승려를 따뜻하게 포옹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처녀는 돌아와서 승려가 마치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얘기를 들은 후 나이 든 여인은 승려의 오두막으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승려에게 처녀의 따뜻한 몸이 그에게 닿았을 때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다소 쓸쓸하게 대답했습니다.

"겨울철 바위 위의 고목나무처럼 전혀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든 여인은 화가 나서 그를 밖으로 내쫓고 오두막을 불태우면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사기꾼에게 그 많은 세월을 낭비했단 말인가?"


중국 선(禪)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승려는 유혹을 거부했고 심지어 욕구의 뿌리째 뽑아낸 것 같이 보였기에 어떤 면에서 고결한 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 든 여인은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했습니다. 승려가 경험한 것처럼 젊은 처녀를 "겨울철 바위 위의 고목나무처럼" 느끼는 것이 영적 훈련의 목표일까요?

처녀의 젊음과 사랑스러움을 감상하는 대신에 자연스러운 성적 반응이 일어나고 그것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사라짐을 알아차리는 대신에 승려는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이는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과 살아 있음의 원천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영혼을 지혜 쪽으로 기울였고 순결함 속에서 지혜를 발견하였다. 내가 처음부터 지혜와 더불어 깨달음을 얻었으니 결코 저버림을 당하지 않으리라."(집회 5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