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들이 신대륙발견

    오두 2020. 7. 21. 02:15

    - 잉카문명의 풍수지리와 코리안 전통 도읍풍수 비교 -

    - 반구대의 고래지형과 마추피추의 '고래 지형' -

     

     

    잉카인들도 '전방후원(front square and rear circle)' 양식을 택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추피추(Machu Picchu)의 풍수 지형이 전방후원 형식을 갖추고 있다.

     

    앞은 사각지고 뒤는 원형이라는 전방후원이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고분형식에 적용된 경우는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일본으로 퍼져가 대형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다 크게 적용된 것은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전항후원' 마운드에서 나는 찾아냈다.

     

    오랜 현지 방문과 추적으로 알아낸 인디안 '전방후원 마운드'는 오하이오주 뉴악(Newark mounds) 지역에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크기로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모양은 정확하게 사각의 네모진 형태에서 약간은 팔각진 모양을 하여 각 코너마다 문이 있어 서울 장안의 '팔대문'과 같은 팔대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북미 인디안들의 '전방후원' 마운드는 고분형식이라기보다 '도읍지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에 이어 나는 코리안 신대륙발견의 연장론에서 남아메리카 잉카제국에서도 '전방후원 도읍'의 형태를 찾아내게 되었다. 이 글은 잉카제국의 전방후원 특히 마추피추의 풍수 지형과 고대 코리안들의 전방후원 풍수 지형을 비교함으로써 1430년경부터 짓기 시작하여 100여년 후에 사라진 마추피추를 건설한 사람들의 조상이 코리안들의 후예들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 그것은 막연한 유사성 비교를 넘는 구조적이고 다양한 측면의 방증들이 코리안들의 고대 남미 진출의 여파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추피추의 '전방후원 도읍' 풍수 지형

    마추피추(Machu Picchu) '전방' 화이나 피추(Huayna Picchu) 봉우리의 '후원' 풍수를 보여주고 있다.

     

    마추피추에는 돌로 쌓은 네모진 기본 형태의 도읍지 성곽들의 뒷편으로 둥근 원추형의 봉우리가 있다. 그 봉우리 이름이 화이나 피추(Huayna Picchu) 봉우리이다. 이들의 조합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전방후원 형식의 도읍지 구성 구조를 가지고 있는 메소 아메리카 지역의 올멕(Olmec), 톨텍(Toltec), 아즈텍(Aztec), 마야(Maya) 문명의 도읍지 형태의 근원적 풍수인 전방후원 형태의 도읍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하게 피라미드만이 아닌 풍수에서 원추형의 종조산, 주산을 배경한 넓은 앞 들판에 네모진 도읍을 건설했던 코리안들의 동아시아 고대 도읍들의 '전방후원 풍수 지형'에서 유래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전방후원 도읍지 형식은 중국의 한족 스타일이 아닌 코리안들의 고대 도읍 형태의 풍수 지형에서 잘 나타나 있다. 북악산과 경복궁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서울 또한 그러한 오랜 전방후원 도읍 풍수 지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경복궁과 북악산. '전방후원'의 풍수를 보여주고 있다.

    한양성의 팔대문은 아메리카 오하이오주 인디안 전방후원분의 '팔대문'과 그대로 일치한다.

    *경복궁과 북악산

     

    '전방후원' 형태란 흔히 그동안 학곙서 고분 형식에만 적용하여 일본의 닌토쿠 고분의 '전방후원분' 등을 들먹이며 대형 전방후원 형식이 '일본이 원조'인 것처럼 회자되어 왔고 그것에 대하여 한반도의 유적이 전남 지역의 작은 규모의 전방후원분 양식 외에 대형은 별로 찾을 수 없어 한국 고고학계의 일종의 '콤플랙스' 처럼 작용하여 한 때 KBS에서 서울의 작은 둔덕들을 '전방후원분'이라고 오보를 내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고분이 아니라 전방후원 양식은 도읍지 형식의 풍수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그것은 고대 코리안들의 전형적인 풍수였으며 그것이 고분형식으로 일본에서 작용된 것은 그들 고분의 주인공들이 한반도에서 건너갔기 때문에 그들의 '고국 도읍'에 돌아간다는 의미로 일본의 전방후원 형식이 고분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고대 코리안들의 제대로 된 전방후원 도읍 풍수는 한편으로 서울의 북악산과 경복궁에도 남아져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코리안 조상들이 북미 중미 남미에 걸쳐 코리안들이 주로 가졌던 독특한 전방후원 풍수 지형을 택하여 도읍지 또는 요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내가 여러 차례 현지 답사한 오하이오주 뉴악 마운드(Newarc Mounds)는 전형적인 전방후원 형태의 거대한 마운드였다. 그것은 고분이라기보다 그곳 인디안들의 도읍성곽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며, '후원' 형태의 부분에는 고분 양식을 포괄하고 있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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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오하이오주 인디안 마운드의 거대한 '전방후원' 형태. 필자 촬영.

    오른쪽 위의 사진에 팔대문의 하나인 대문 방향에 터진 토성을 볼 수 있다. 모두 8곳이 이렇게 터져 있다.

    현재 하나의 네모진 지역 안에 골프장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흙담장 경계선 넘어 골프 카트 길을 만들어 둔 것이

    사진에 보인다. 이 사진은 게시판 사진 안 왼편에 있는 '전방후원' 그래픽의 현지 모습이다. (아래쪽에 확대 그래픽 있음)

    보다 많은 사진 http://www.jqjacobs.net/archaeo/octagon.html

     

    흥미로운 것은 전방(前方) 부분은 사각 형태에서 약간은 사이에 각이 하나씩 더 들어간 팔각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과 그 코너마다 대문이 들어가 모두 8개의 팔대문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냈다. 서울의 원추형 북악산을 '후원(後圓)으로 하여 장안의 사대문 성곽 배치 사이 사이에 '서소문' 등의 팔대문이 배치된 모양은 그대로 오하이오주 뉴악 마운드의 인디안 도읍지 형식에 그대로 일치하는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코리안들의 아메리카 신대륙발견에 중요한 단서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전방후원' 방형 부분은 8각형태이며 '팔대문' 있다.

    한양성의 팔대문 구조와 오하이오주 인디안 뉴악의 옥타곤 마운드의 8대문은 일치한다.

    THE OCTAGON EARTHWORKS OF NEWARK OHIO

    http://www.celticnz.co.nz/octaone.html

    *북악산과 사각진 서울 성곽의 팔대문.

     

    한양성 즉 한성의 사대문을 비롯한 그 사이마다 들어간 소문들을 포함하는 팔대문은 각각 정동 방향의 동대문 (興仁之門), 정서쪽 방향의 서대문(敦義門), 정남 방향의 숭례문(崇禮門), 북쪽으로 북대문(肅靖門)을 사대문으로 하여 그 사이에 동북방향의 홍화문(弘化門;중종 6년 惠化門으로 바뀜, 동소문), 동남방향의 광희문(光熙門;水口門), 서남방향의 소덕문(昭德門;뒷날 昭義門으로 바뀜, 서소문), 서북방향의 창의문(彰義門;紫霞門) 8대문으로 되어 있다.

     

     

    4대문

     

    1, 남대문(숭례문崇禮門) ; 국보1.

    2,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 ; 보물1.

    3, 서대문(돈의문敦義門)

    4, 북대문(숙정문肅靖門)

     

    4소문

     

    1, 동북 홍화문(弘化門;중종 6년 惠化門으로 바뀜, 동소문),

    2, 동남 광희문(光熙門;水口門),

    3, 서남 소덕문(昭德門;뒷날 昭義門으로 바뀜, 서소문),

    4, 서북 창의문(彰義門;紫霞門)

     

    이들 4소문과 4대문을 합하여 팔대문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오하이오주 뉴악 마운드의 전방후원 도읍의 '팔대문'과 그대로 일치한다.

     

    서울 한성도 처음엔 토성을 바탕하고 석성을 만들었다. 1396(태조 5) 축조를 시작하여, 1422(세종 4)에 중수(重修)되었는데, 세종 때 모두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 따라서 뉴악 마운드와 한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일치한다.

     

    *서울 한성과 오하이오주 뉴악 인디안 마운드의 일치성

     

    1) 전방후원 도읍지 풍수 지형

    2) 팔대문 성문

    3) 토성을 기본으로 석성으로 이어짐

     

    이와같은 북아메리카의 전방후원 도읍지 풍수는 중미의 메소아메리카 지역과 남미 잉카문명 지역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아즈첵 마야보다 먼저 이룩한 올맥(Olmec) 인디안들의 도읍지 풍수는 원천적으로 전방후원 도읍지 풍수를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메소아메리카의 전방후원 풍수 지형

    La Venta, Mexico: (Olmec city)

     

    앞서 살펴본대로 15세기 남미의 잉카제국의 대표적인 유적인 마추피추가 전방후원 형태의 도읍지 풍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남미 지역의 가장 오래되었다는 5천년 전의 카랄(Caral) 유적의 도읍지 형식에 나타나 있는 전방후원 양식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는데서 동아시아 Far East의 주인공이었던 코리안들의 고대 전방후원 도읍 성곽 풍수 양식과의 일치성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비교는 세계 어떤 여타의 피라미드 지역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모양의 양태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의 중요한 방증들이 되고 있는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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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랄 유적. '전방후원' 형태.
    남미 최고 오래된 유적으로 알려진 노르테 치코 문명(Norte Chico Civilization)

    Wide view of the ruins at Caral, the most excavated ruins of the oldest known civilization in the Americas, the Norte Chico civilization. The Norte Chico Civilization is believed to have started around 3500 BC on the coast and the city of Caral was inhabited from 2627 BC to 2020 BC.

    카랄 유적은 노르테 치코 문명(Norte Chico civilization)의 유적인데 BC 3500년경에 태평양 해안지대에서 시작한 문명으로 카랄 시티(Caral city) BC 2627 - BC 2020년까지 존재했던 유적이다.

     

    *남미 최고 오래된 카랄(Caral) 유적지의 '전방후원 도읍지' 형태의 지형

    오른쪽 봉우리를 '후원'으로 하여 왼편으로 피라미드들이 늘어서 있다.

    Caral was inhabited between roughly 2600 BCE and 2000 BCE, enclosing an area of 66 hect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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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의 제국으로 알려진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왕국들의 '전방후원 도읍지 풍수' 지형은

    도성과 산신의 조합적 우주관을 바탕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도읍지 풍수는 흔히 고려의 개성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중국스러운 풍수'에 잘못 훈련된 오류이다. 이미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은 도읍지 선정에서 전방후원 형식은 물론 태양숭배 사상을 바탕으로 그 방향과 도읍지 구조에서 산세를 도입하고 있었다.

    1991 7월판.조경학회지에 실린 정기호교수의 논문 <석굴암의 조영(造營)을 통하여 본 석굴형식(石窟形式)과 신라의 동향문화성(東向文化性)>에서 석굴암 조성은 "전래되어온 문화양상과 전파되어온 외래문화적 요소가 서로 결합되면서 하나의 경관을(또는 경관景觀의 중심中心을 ) 이루는 과정"임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불교적인 외래 문화와 전래적인 토착 태양숭배 사상이 결합된 것이 석굴암 조영에 반영되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정교수는 신라의 도읍 서라벌의 풍수적 지형에 있어서도 향동지일출 라인을 바탕으로 옥녀봉을 중심으로 첨성대 - 반월성 - 선덕여왕릉 - 대왕암으로 이어지는 동짓날 해돋는 선상에 신라의 유적들이 놓여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 1970년대 후반 KBS와 일본의 NHK에서 먼저 밝힌 사실로서 석굴암과 대왕암으로 이어지는 향동지일출 라인이 일본의 유명 역사 유적지에 꿰인 선을 따라 일본 천황가의 정신적 종묘라 할 수 있는 이세신궁으로 이어지는 동지 해돋이 라인의 확대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처럼 신라인들도 '태양의 제국'이었다는 사실과 옥녀봉을 '후원'으로 하여 서라벌이 '전방' 도읍지 형식의 풍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의 재확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방후원 형식의 도읍지 풍수는 나중에 불교가 들어온 뒤 석굴암 조성에서도 그 양식이 전방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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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녀봉을 중심으로 '전방후원' 도읍지 형식의 풍수 지형을 보여주는 서라벌

    도표: 정기호교수의 논문

     

    향동지일출 라인에 세워진 신라의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의미보다 오히려 태양의 길과 관련된 유적으로 보아야 한다. 신라의 첨성대는 태양의 제국을 상징하는 신라의 심볼이라 할 수 있다.

    *신라 서라벌 황경도 복원도.

    중앙의 도성과 산맥이 전방후원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석굴암 전방후원

     

    잉카문명은 태평얀 연안에 이어져 있다는데서 동아시아 끝에 그 역사적 뿌리를 둔 선사시대 코리안 문화와 무관할 수 없다. 필자는 <신화 이야기 115> 불국사와 싸이클로피안 축성법 라는 오래 전에 쓴 글에서 잉카 문명과 코리안 문명을 비교하면서 잉카인들의 쿠즈코 성곽에서 보여주는 축성법인 싸이클로피안 축성법(Cyclopean castle wall) 불국사 축성법과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논한 바가 있다.

    마추피추는 둥근 원추형 산봉우리인 화이나 피추(Huayna Picchu) 봉우리 아래에 지어진 요새지로 만들어진 잉카제국의 숨겨진 도읍이었다. 그 풍수적인 구조가 전방후원 도읍 풍수 외에도 코리안들의 선사시대 지형과 같은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 형태는 놀랍게도 울산 반구대 지역의 풍수 지형과 일치되는 '향유고래를 닮은' 산천 풍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2009년도부터 주창해 온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에는 울산 반구대 고래 암각화가 새겨진 인근 지형이 향유고래(spirm whale)를 닮은 물도리동 지형이라는 '경맥풍수'에 대하여 이론이 있다. 용맥 이전에 선사시대 고래잡이들이 고래를 닮은 지형에 신성한 풍수 의식이 있었을 수 있다는 가설이다. 나는 잉카제국의 마추피추에서도 다시한번 향류고래의 경맥 지형의 물도리동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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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반구대 지역의 '향유고래' 닮은 '경맥 풍수'

    '향유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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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반구대 '향유고래 지형' 닮아 있는 마추피추의 '향유고래 지형'

    *마추피추, 중앙의 향유고래 닮은 '푸투쿠시(Putikusi)' 물도리동 맞은편의 지그재그 위쪽에 마추피추가 있다.

    확대 사진: http://www.world-mysteries.com/mpl_satellite.htm

    *'향유고래 물도리동' 이루는 마추피추 지역의 풍수 지형

     

    *M: 마추 피추(Machu Picchu). W: 와이나 피추(Wayna Picchu or Huayna Picchu).

    P: 푸투쿠시 피추(Putucusi Picchu).

    푸투쿠시 피추 뒤로 멀리 푸투쿠시 마운틴이 위치해 있다(사진에서 잘 안나와 있으나 아래쪽에서 다시 설명할 것이다)

     

    *마추피추 주변의 산들

     

     

    울산 반구대와 서라벌 반월성이 물도리동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마추피추에는 반구대와 같은'향유고래' 스타일의 물도리동이 있다. 마추피추는 '마주비추' 말처럼 들린다. 마추피추에서바라다보이는 산봉우리는 '와이나 피추(Wayna Picchu or Huayna Picchu)라고 불리는데 그곳에는' 사당(The Temple of Moon)' 있다. 반월성(또는 월성) 의미와 물도리동은 마추피추에서도볼 있다.

     

    내가 마추피추에서 주목하는 곳은 마추피추에서 강 건너 푸투쿠시 피추(Putucusi Picchu) 봉우리이다. 푸투쿠시라는 뜻은 그곳의 케추아(Quechua) 언어로 “Happy Mountain” 복봉우리라는 뜻이다. 푸투쿠시 피추를 에둘러 돌아가는 강은 향유고래를 닮은 물도리동을 이루고 있어 울산 반구대와 같은 향유고래 명당의 산이 된다.

     

    강물이 '' 처럼 돌아 흘러가는 푸투쿠시 피추의 산세는 그 자체가 하나의 분재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풍수로 말하자면 와이나 픽추가 마추피추의 조산(祖山)이라면 푸투쿠시 피추는 그 주산(主山)에 해당한다.

     

    푸투쿠시 피추 그 뒷편 멀리 하늘 아래 솟아 있는 산이 푸투쿠시 마운틴(Putucusi Mountain)으로 우리의 풍수로 말하자면 종조산(宗祖山)에 해당한다. 이것은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 마추피추 잉카인들의 의식이 푸투쿠시 피추를 복산으로 보고, 그 뒤로 드 높이세워진 높은 산인 푸투쿠시 마운틴에 대하여 이른바 거룩한 성산(聖山)의 의미를 부여했다. 천산만학(千山萬壑) 고산지대에 있는 마추피추는 늙은 봉우리를 의미하고 뒷산인 와이나 피추는 젊은 봉우리를 의미한다고 했다. 산신과 태양신 복합적 요새지 도읍이라고 있다.

    *마추피추에서 바라본 푸투쿠시 피추(Putucusi Pic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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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투쿠시 마운틴과 푸투쿠시 피추(오른쪽 아래 검은 봉우리) 닮은 거룩한 바위가 함께 사진에 나와 있다.

     

    마추피추에서 강건너 바로 보이는 푸투쿠시 피추는 봉우리라는 의미이고, 푸투쿠시 피추 뒤로 멀리 뽀족하게 솟아 있는 산은 푸투쿠시 (Putucusi Mountain)이라고 하는데 또한 마추피추 명당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산이다.

     

    마추피추 명당에서 주산(主산)이라 있는 푸투쿠시 피추 봉우리 멀리 후광으로 위엄을 보이는 산이 푸투쿠시 마운틴으로 잉카인들에게 '할아버지 '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마추피추에 푸투쿠시 마운틴과 꼭닮은 바위를 '거룩한 바위(Sacred Rock)'이라 하여 특별히 받들고 있다. 이러한 주변 산봉우리와 축소형 '미니어쳐' 연결은 신라인들의 고분에서 있어 특히 마추피추의 잉카인들과 신라인들의 풍수 의식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룩한 바위(Sacred Rock)'는 푸투쿠시 마운틴을 그대로 닮아 있다.

    The Sacred Rock Is Shaped Like The Peak Of The Incas
    Sacred Mountain Of Putukusi

    http://www.delange.org/MachuPicchu4/MachuPicchu4.htm

    *마추피추에 있는 '거룩한 바위(Sacred Rock)'

    뒷편 멀리 푸투쿠시 마운틴(Putucusi Mountain)을 그대로 닮아 있는 바위로 잉카인들의

    '신선바위' 같은 곳이다.

     

    The Sacred Rock is located near the access point to Huayna Picchu from the Sacred Plaza. This large granite monolith looks more like a wall than anything else however upon closer observation many feel that the outline of the Sacred Rock is shaped like the Inca's sacred mountain, Putukusi.

     

    우리 민족의 전통 초가지붕은 본래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능선의 모양에 맞추어져 지어졌다. 명당이란 산을 닮은 집(음택 양택 모두)을 의미했다. 초가지붕 위의 박이 열린 모양은 산등성이 위의 달이 뜬 축소형이다. 신라인들의 고분 봉분 양식은 주변 산능선을 닮아 있다는 것을 경주의 대릉원 고분군과 그 주변 산봉우리들과의 매치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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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시피강변(아이오와주) Fish Farm Mound 인디언 고분군. 촬영/오두 2004

    주변 구릉들과 고분의 능선이 유사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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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대릉원 고분군.

    산능선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 것은 봉분의 형상이 산봉우리와 연관한 '고래등 같은 봉분'의 이미지가 있다.

    고래가 숨을 쉬듯 산은 화산활동으로 연기와 불을 뿜어낸다.

    관련글: <신화 이야기75> 신라 고분群과 미국 인디언 고분群

     

     

    *대가야 고분군과 산능선.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산봉우리와 고분들은 같은 '고래등 같은 고래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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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동부 사적지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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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산리 고분군

    능선과 봉분은 맞추어져 있는듯 닮아 있다.

     

     

    *산능선의 축소형의 양택

     

     

    마추피추의 주산 푸투쿠시 피추의 '쿠시'는 그 어원이 우리말에서 기원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복 봉우리'라는 그 의미 속에서 무속적인 '쿠시 - 구시 - 굿'이 가지는 그 뜻은 어쩌면 서로 통하는 정신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통 굿을 방언에서는 '구시'라고 했는데 손굿은 '손구시'라고 발음되었다. 손구시는 비손비나리잔비나리 등으로도 불리는 소규모 무속적인 의식으로. '굿' '구시'로도 칭해진 근거로 있는 말이다. 힌두쿠시의 '쿠시' 마추피추의 '푸투쿠시' 무속적인 의미의 우리의 ''같은 친근감이 가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고래의 길과 태양의 가지 길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남북 아메리카를 종단해 내려간 선사시대 코리안들의 발자취를 추적 해왔다. 우리 민족 전통 문화의 연장선에서 아메리카 고대 유적들을 재해석하고 있다.

     

    잉카제국은 신라처럼 태양의 제국이었다. 잉카인들게도 첨성대와 같은 태양이 뜨는 방향을 따라 마추피추에 '첨성대'와 같은 돌로 만든 태양을 끌어올리는 인티화타나(Intihuatana)가 있다. 정확하게 동짓날 해돋는 길을 가리키는 태양 이정표와 같은 유적임은 위키피디아 등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잉카인들의 첨성대라 할 수 있다.

    *마추피추의 태양을 붙들어매두는 바위라는 인티화타나 (Intihuatana Stone).

    잉카인들의 '첨성대' 할만한 마추피추의 태양 타워.

     

     

     

     

    인티화타나석은 잉카인들의 태양숭배 의식을 행하던 곳이었다. 스페니아드는 모든 잉카 유적의 제의적 장소들을 파괴했는데 이곳은 찾아내지 못하여 보존된 것이다. 인티화나석은 동짓날 해의 방향을 가리키는 돌이다.

     

    The Intihuatana stone is one of many ritual stones in South America. The Spanish did not find Machu Picchu so the Intihuatana Stone was not destroyed as many other ritual stones in Peru were. These stones are arranged to point directly at the sun during the winter solstice.

     

    인티화타나(Intihuatana) 잉카의 퀘차 언어의 인티와타나(Intiwatana) 스페니쉬 표현이다. Inti 태양을 의미하고 와타(wata) '묶는다(tie)' 또는 '끌어올린다(hitch up)' 의미로 태양을 묶어두는 바위라는 의미가 인티와타나이다. 'na' 장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인티와타나의 의미는 직역하면 '태양을 묶는다(tie up the sun)' 의미이다.

     

    영어로는 흔히 "The Hitching Post of the Sun" 라는 표현을 하는데 동짓날 태양이 이곳에 잠시 머문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춘분과 추분에 태양이 돌의 그림자를 거의 만들지 않는 상태를 만들게 되어 그렇게 해석하기도 것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돌을 첨성대처럼 점성술과 관련된 태양시계로도 풀이한다. 어떻게 보더라도 신라의 첨성대와 같은 태양과 연관된 구조물이 인티와타나석이다

     

    페루의 고고학자 페데리코 카우프만 도이(Federic Kaufmann Doig) "마추피누야말로 우리의 고고학적 유물의 심장이며 인티와타나는 마추피추의 심장이다. 그것들이 우리의 가장 신성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Machu Picchu is the heart of our archaeological heritage and the Intihuatana is the heart of Machu Picchu. They've struck at our most sacred inheritance.)" 말했다. 신라의 심장은 서라벌이며 서라벌의 심장은 첨성대라고 있는 말이다. 삼국시대에서 유일하게 한번도 도읍을 옮기지 않은 곳이 서라벌이었다.

     

    첨성대를 지었던 선덕여왕 때인 645년때에 완성된 황룡사가 1238 몽고병란 때에 방화되기까지 6백년을 버틴 황룡사 구층목탑의 거대한 장관은 마추피추에 솟아 있는 화이나 피추(Huayna Picchu) 봉우리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신라와 잉카인들은 황금 유물들이 많았던 공통점까지 있다.

     

    마추피추의 잉카인들은 고산지대이면서도 물을 끌어다 관개시설을 정교하게 마련했다. 비록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중반까지 100여년의 비밀의 도시로 존재했었으나 세계의 7 불가사의로 들먹여질 정도였다. 나는 마추피추의 바위를 깎아 만든 석조 관개시설을 보면서 서라벌의 포석정의 물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신라인들과 잉카인들은 직접적 공간 접촉은 아니었다 해도 시간적으로 이어져 있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잉카인들의 수로

    Fountains and Water Control on the Inca Road

     

    *마추피추의 정교한 관개 시스템

     

    신라의 유적들은 마추피추와는 달리 수많이 훼손되었다. 두 왕조를 거치면서 두 다른 종교문화에 의하여 철저히 신라 고유의 종교문화와 그들의 유적은 폐기되어 왕궁터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마추피추처럼 침략자들에 의하여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신라 고유의 유적들이 남아 있었다면 돌로 된 파편의 한 부분에 불과한 아직도 그 정체에 대하여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첨성대나 포석정 석조(石槽) 이외의 많은 고유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돌로 된 신라 유적 유물들이 존재했을 수가 있다. 문화인류학적 비교는 역사적 변천의 프리즘으로 걸러내면서 그 유사성과 일치성을 추정해낼 수 있어야 한다.

     

    숨겨진 산중의 성채인 마추피추와 같은 곳이 코리아 역사에서는 성주 가야산 인근의 독용산성(禿用山城)이라 할 수 있다.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무학리, 영천리 계곡 남쪽 산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독용산성은 가야 신라 때의 비밀 성곽으로 임진왜란 때에도 그 위치가 알여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 피난민들에 의하여 발견되었을 때까지 수백년 수천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마추피추가 스페니아드가 침략해 들어왔을 때도 몰랐던 것과 같은 은둔 산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쿠스코 성벽의 싸이클로피안 축성법.

     

     

    *마추피추 트레일 코스의 동굴 통과 지역.

     

     

    *푸투쿠시 마운틴 가는 길은 토함산 석굴암 가는 길의 의미였을 것이다.

     

    푸투쿠시에는 달의 사원(The Temple of Mo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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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카 요새 마추피추로 가는 방어 다리

    The Inca Bridge Is Part Of The Path Leading West From Machu Pic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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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추피추의 자연석을 이용한 축성법.

    경주불국사의 성곽도 같은 자연지형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그무엇보다도 앞서 다룬대로 마추피추의 '고래닮은' 푸투쿠시 지형과 같은 곳이 성주의 독용산성에서도 보인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독용산성에서 대가천 물길을 내려다 보면 봉두리 뒷산 봉우리는 마치 마추피추의 푸투쿠시처럼 물도리동의 고래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봉두'라고 함은 봉황의 머리를 의미하는데 멀리는 고래의 머리라는 의미가 '봉두'로 전이되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댐이 되어 성주호의 물을 담고 있지만, 그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욱 독용산성은 마추피추처럼 느껴진다.

    *독용산성에서 내려다본 성주호의 '고래머리' 봉두리의 '봉두(鳳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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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상류의 가야산 인근이라는 점에서 독용산성은 가야시대에서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타당하게 보인다. 독용산성이 그 규모에서도 신라 중심 지역 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용산성이 독수리 산성이라고 한만큼 마추피추는 잉카인들의 태양새인 콘도르(Condor) 독수리 축제가 오늘날까지 페루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잉카인들의 콘도르(Condor) 토템 뿌리는 코리안 봉황(鳳凰)

     

    15세기 잉카제국이 마추피추 요새를 건설할 때 잉카인들의 '요새' 개념은 얼마나 강한 산악방어 정신이 있었는지 그들의 유적에 남아 있는 싸이클로피안 축성법은 물론, 성까이 올라가는 가파른 협로들의 시설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마추피추의 요새 개념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최대 최고의 요새는 독용산성으로 생각할 때 왜국 동북 1천리에서 돌아온 석탈해가 탄 배와 관련하여 가야시대 전후의 해양을 따라 코리안들이 충분히 아메리카 대륙을 오갈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막낙 섬(알류산 열도) BC 1000년 경에 남긴 온돌에서도 명확히 증명되는 것이다.

     

    나의 선제적인 추적을 동인으로 코리안 문화와 비교할 수 있는 남미 고대인들의 역사 고고학적 사실들이 앞으로 발굴되고 조명되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01/07/10 오두)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잉카(Inca) 코리안들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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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안 신대륙발견> 아마존 '엘도라도' 155마일과 오하이오주 호프웰 인디안 로드 (2)

    *잉카제국의 팽창과정

     

    출처 : http://cafe.chosun.com/clubmain.do?p_club_id=dreamview

    [출처] 211. <코리안 신대륙발견> 잉카문명의 풍수지리와 코리안 전통 도읍 풍수 비교 |작성자 집쟁이

     

    놀랍습니다. 내용을 잘 읽어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