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일반

망양 2015. 11. 22. 11:45


티베트의 정신적 스승들

 - 샤카 스리

 - 티폰 빼마 쵸갤

 - 아포 린포체

 - 세이 린포체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영향도 있지만 티베트 불교의 독특한 수행체계와 연민으로 가득한 티베트의 순수 정신이 물질만능과 이기주의에 찌든 사람들에게 참신한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진 : 작가 이상원)

티베트 불교는 밀교라고 하는 금강승 불교로 대표된다. 소승과 대승을 거쳐 발전된 금강승은 독특한 수행체계를 갖고 있다. 탄트라라는 밀교 경전이 있긴 하지만 수행은 내밀한 방법을 통하여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하는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다. 격리된 은둔수행처에서 엄격한 수행을 하는 전통도 티베트 불교의 특징이다. 티베트 불교의 원조라고 하는 빠드마삼바바의 '사자의 서'가 발견되어 서구에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은 물질문명에 찌든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티베트의 정신문화가 던져준 신선한 선물이었다. 

 


<티베트의 정신적 스승들>은 티베트 밀교 수행 성취자들의 삶과 대자유를 위한 정신수행 이야기다. 샤카 쉬리(1853~1919)는 우리에게 약간 낯선 이름이긴 하지만 근자에 보기 드문 걸출한 밀교 수행 성취자였다. 그는 빠드마삼바바(717-762)의 25제자 중 한 명인 나남 뒤좀의 환생자다. 생전에 걸인과 같은 모습으로 외딴 무문관에서 수행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많은 이적을 행사한 그는 무지개몸을 성취하고 열반한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는 대원만수행인 족첸과 대수인수행 마하무드라에 통달하였고, 나로빠가 전해준 수행법인 나로육법에도 정통한 수행자였다. 왕대밭에서 왕대가 나듯 그의 제자와 후손 중에는 밀교 수행 성취자들이 많다. 

 

이 책은 티베트 수행자들의 일대기 형식이지만, 중간 중간에 각종 밀교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어 밀교 요가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1. 샤카 쉬리 (1853-1919)

 

샤카 쉬리는 1853년 티베트 동부 베루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에 참도 지역에 있는 사원에서 승려들을 시봉했으며 삼촌을 따라 두구사원으로 가서 출가했다그 때 캄툴 린포체인 텐빼 니마를 만날 기회가 있었으며 마하무드라에 대한 가르침을 직접 받는 계기가 되었다어린 샤카 쉬리는 명상을 많이 했는데 동승들이 놀리면서 향불로 살을 지져도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그 때 그의 수행은 이미 촉니 린포체로부터 인정받고 있었다.  

 

나로육법을 배울 때 샤카 쉬리는 기맥과 명점에 대해 잘 이해하였고 허공에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공중부양을 했다에밤동굴에서 용맹정진할 때에는 깨진 주전자와 옷 한 벌만 지닌 채 속세와 인연을 끊고 걸식으로 연명하며 오직 수행에만 전념했다그렇게 하여 샤카 쉬리는 잠양 켄체 왕포잠괸 콩툴 린포체,아좀 둑빠펠뛸 린포체미팜 린포체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둑파 용진 린포체로부터는 독덴 샤카 쉬리라는 법명을 받았다독덴은 출가승이지만 밀라레빠의 전통에 따라 머리를 깎지 않고 흰 가사를 걸치는 은둔 수행자를 말한다.  

 

그는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외딴 곳에서 은둔수행을 하면서 철저히 묵언했다몸 속의 열을 이용하는 배꼽불 수행인 뚬모를 할 때는 허리에 두른 명상 벨트가 불에 타기도 했다두 번째 3년간 무문관 수행 중에는 이례적인 집중력이 생겨 일식과 월식을 예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오렌지색 눈썹을 가진 다키니(수행자를 돕는 호법신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지혜의 여신)가 준 음식을 남김없이 먹자 공성과 지복감을 느끼며 밀라레빠와 불가분의 상태가 되었다삼년 은둔수행의 중반 쯤에 그는 가피를 통하여 밀라레빠를 친견하고 보장(hidden treasure, 뗄마빠드마 삼바바가 시대와 근기에 맞게 숨겨놓은 가르침)의 구전 전승을 받자 경계가 없는 깨달음을 경험했다그리고 현상과 공성이 합일을 이룬 깨달음을 얻었다또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지혜의 다키니(空行母중 한 명인 여성 요가 성취자 마칙 랍된(1031~1129)을 친견하기도 했다. 

 

그는 축지법과 같은 신통력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현상과 공성의 동질성 Equal Taste of Same Nature'을 깨달은 징표라고 했다또 햇빛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희미해졌고 말년에는 치아에 티베트어'자가 새겨지기도 했다때때로 그의 외모는 늙어 보이기도 하고 젊어 보이기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37세에 라싸를 여행하고는 중국의 침공을 예견하였다.

 

1919년 샤카 쉬리가 열반할 때에 하얀 빛의 무지개가 피어오르고 구름이 덮개처럼 나타났다그 순간 천둥이 울리고 지진이 났으며 허공에서 헐헐헐 하는 소리가 들렸다샤카 쉬리의 환생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자 무지개가 하늘을 뒤덮었다아들들과 제자들이 그의 몸에 경배하자몸은 여덟 살 소년의 크기로 줄었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다비식을 하려 하자 그의 몸은 저절로 불타며 향기로운 냄새가 났으며 하늘에는 티베트어 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3일 후 다비가 끝났는데 신 구 의를 상징하는 눈과 혀와 심장은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그의 몸은 엄지손가락 크기로 줄어 하얗게 빛났고 5방승불의 지혜를 상징하는 다섯 종류의 크고 작은 사리가 나왔다.

 

 

2. 티폰 빼마 쵸갤 (1878-1959)

   

티폰 빼마 쵸갤은 1878년 라다크의 둑빠 텍촉사원 근처에서 태어났다그는 어려서부터 홀로 동굴에서 명상하기를 좋아했고수행 토굴과 외진 장소를 좋아했다어린 나이에 승려가 되기 위해 텍촉사원에 들어갔으나 19세 되던 해에 카일라스 순례를 간다고 하면서 약간의 식량만 챙겨 텍촉사원을 떠나버렸다.

  

그 뒤로 그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덧없는 삶을 버리고 고향을 등진 채 그는 티베트 중부지방을 향하여 동쪽으로 여행했다그 당시 부처님법의 진정한 조명자인 샤카 쉬리가 도메이(지방으로 부터 우창U-Tsang지방에 있는 차리 칙차르와 키푹으로 와서 머물고 있었다빼마 쵸갤은 그곳을 지나던 스승 겔롱 데첸 룬둡의 권유에 의해 샤카 쉬리 문하에 귀의하였다그는 스승 샤카 쉬리로 부터 최상의 밀법인 마하무드라와 족첸의 관상법과 명상법을 전수 받았고한 생에서 '집금강의 합일의 경지' Unified State of Vajradhara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을 전수 받았다그리고 나로육법도 완전하게 전수 받았다. 

 

근본스승인 샤카 쉬리가 열반에 들자 장례식을 마친 후 그 스승의 법맥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가 체험한 나로육법의 심원한 가르침을 주었다그 후 그는 창Tsang 지방으로 가서 은둔수행에 들어갔다처음3년간 그는 자기의 전생인 걀와 고창빠가 수행했던 명상 동굴에서 비장한 각오로 앉아 강렬한 은둔수행을 했다그는 또한 롱사르 마부 룽과 랍치 등의 다른 많은 외딴 곳에서 수행을 하면서 마치 제2의 밀라레빠가 나타난 것처럼 수행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한편 그는 키푹사원 소속의 많은 명상센터와 샤카 쉬리의 은둔처에 살고 있던 백 명이 넘는 수행승들을 돌보면서 음식과 의복을 주고 정신적 안내를 해주었다이런 방법으로 그는 둑빠 까규 문중에 커다란 헌신을 했다 

 

더욱이 그는 11대 둑첸 린포체와 툭세 린포체아포 린포체론곤의 라마 잠양 닥파와 다카르에서 온 까규 텐진 린포체의 스승이 되어 가르침을 주었다특히 샤카 쉬리의 손자인 아포 린포체에게 원숙해탈깨달음의 완벽하고 심원한 가르침을 전해 주면서 그를 수행 계율을 확립하기 위한 금강 스승Vajra Master으로 임명했다그리하여 부처님 가르침의 불씨가 꺼져가는 것으로 여겨졌던 둑빠 까규 전통을 복원하였다한편 그는 만 장이 넘는 경전을 목판에 새겨 인쇄하여 티베트는 물론이고 라다크부탄시킴갈샤(라호울),쿠누(킨나우르등의 불교권에도 배포하였다그리고 많은 사원을 건립하고 수리하여 예불을 할 물건들과 실내 가구들을 공급하였다그래서 그의 공부하고 명상하고 헌신하는 삼륜행이 널리 알려졌다. 

 

1959년에 그는 측근 제자들과 시자들에게 알려 82세의 나이에 '완전한 열반'parinirvana에 드는 것을 보여주었다땅이 진동하고 맑은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상서로운 징조를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그는1961년에 전생의 제자였던 아포 린포체의 아들인 세이 린포체로 다시 환생하였다. 

 

 

3. 아포 린포체 (1922-1974) 

 

아포 린포체 응아왕 예시 랑돌은 1922년 7월에 남부 티베트의 차르 키푹에 있는 라와푹에서 태어났다그날 그 지방의 모든 사람들은 다함께 기적적인 일을 목격했다지진이 일어나고 힘찬 무지개가 뜨고 즐거운 고동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키푹 사원을 에워쌌다 

 

아포 린포체는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그때부터 삼촌 팍촉 도르제가 법맥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관정을 주고 샤카 스리의 정신 수행에 관한 모든 것들을 전승해 주었다다섯 살 때는 닝마파 사원인 데르게 셉다 족첸 사원에서 아포 린포체를 그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추대하였다.

 

티베트 밀교 경전과 '고귀한 지식의 보장 The Treasury of Precious Knowledge' (중국에서는 총지보론으로 번역)에 대한 구전이 콩툴 린포체로 부터 아포 린포체에게 주어졌다그는 읽기와 쓰기를 배워 셉다 족첸 사원의 성취자 아촉 린포체와 함께 닝마 닝틱의 기초 교재와 다른 것들을 정리하였다그가 데르게를 떠나 콩포로 갈 때 그의 스승은 둘이 헤어지는 것에 크게 슬퍼하여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아포 린포체가 회상했다. 

 

1933년에 제13대 달라이라마가 돌아가자암도의 수도 실링으로 부터 온 중국군이 캄에 있는 주르망 남걀 사원의 반대자들을 지원하였고 지역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11살 된 아포 린포체와 그의 어머니누이들은 위험을 느껴 밤에 산등성이를 타고 피신하여 결국 안전한 콩포에 도착하였다콩포에는 많은 친척들이 있어 정치적 혼란기에 거기서 1년을 머물렀다. 

 

그 후에 그는 다시 그가 태어났던 차르 키푹에 있는 라와푹의 은둔처로 돌아왔다거기서 소남 상뽀와 함께 대중들을 제접하였다소남 상뽀는 샤카 쉬리와 가까운 부탄의 제자로 키푹에 머물고 있었다아포 린포체는 그로부터 롱첸빠의 '마음의 정수' The Essence of Mind에 대해 전수받고 가르침을 받았다귀의대배에서 부터 구루요가에 이르기 까지 별반 어려움 없이 모든 수행의 진전을 이루어 냈다그는 명상 기간들 사이 사이에 경전을 읽고 심원한 진리를 완벽하게 배웠다 

 

1937년 그가 16세 때 라마 소남 상뽀가 부탄으로 돌아가자 그는 낭첸으로부터 온 진정한 금욕수행자인 텐진 돈둡의 소개로 위대한 스승 응아왕 티폰 빼마 쵸갤을 만났다스승은 아포 린포체에게 마하무드라와 구루요가뚬모수행 등에 대한 모든 가르침을 전승해 주고 나서 "늙은 나무에서 새 가지가 나오는 것처럼 나도 이제 늙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다이 말은 아포 린포체가 고귀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파할 책무를 가지게 되었다고 크게 기뻐한 것이다.


이 인간계에서 모든 일을 다 마치고, '핵심적 구전' Essential Transmission의 가르침을 조명했던 아포 린포체는 1974년 7월 16일 티베트력으로는 나무-호랑이 해 5월 26일 오후 3시에 세수 53세의 나이로 열반하였다. 그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을 바로 세우고 손을 편하게 한 채로 열반하였다. 그는 죽음 후의 명상 수행인 툭담thugdam을 유지한 상태로 6일간을 숨을 쉬지 않고도 몸의 열을 잃지 않았다.

 장마철인데도 불구하고  햇빛이 자주 내리쬐면서 무지개가 뜨고 6일 내내 완전히 청명한 날씨였다. '정광명 수행' clear light meditation이 끝나갈 무렵, 땅이 진동하는 것과 같은 많은 놀라운 징조가 있었다. 

다비장을 한 후 삼일 후에 화장탑의 문을 여니  뼈 몇 개가 타지 않고 남아 있어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바즈라킬라야(지혜와 방편의 분노존)와 밀라레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새하얀 이 하나와 심장, 혀 그리고 눈은 일체 중생이 이익을 쌓는데 의지하도록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4. 세이 린포체

  

세이 린포체는 티폰 빼마 쵸갤 의 환생자로 1961년 12월 5일 에 시킴의 탁체Taktse 은둔처에서 태어났다.그는 독덴 샤카 스리의 손자인 아포 린포체와 그의 부인 오기엔 최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7년에 어린 환생자는 아버지와 가족들과 함께 달하우시 Dalhousie를 방문하여 거기서 3개월 동안 살았다그 기간 동안에 그의 전생인 빼마 쵸갤의 제자들과 동료들은 물론이고 티폰 린포체의 시자였던 최덴도 이 아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네팔의 샤쿰부로부터 달하우시로 달려 왔다

최덴은 자유스럽게 아이와 함께 놀면서 전생에 갖고 있었던 여러가지 물건들인 기도문소고와 요령수미산과 사주(수미산을 중심으로 있는 네개의 큰 대륙으로 동승신주서우하주남섬부주북구로주를 말함)및 천상계를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그 그림을 붙잡고 어린 환생자는 소리쳤다. "이건 내꺼야이 걸 어디서 구했어요이제 돌려주지 않을래요내것을 다시 내가 가져야 겠어요." 이 말을 듣고 최덴은 너무나 기뻐고 또 서러워서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 아이가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16대 걀와 캄파 성하와 뒤좀 린포체도 그 어린 아이가 의심할 여지 없이 티폰 빼마 초갤의 환생자라고 확인했다. 

 

그리하여 여섯 살 배기 환생자는 전통의식에 따라 대관식을 하였다. 1967년 10월 7일 열린 대관식에는 아버지 아포 린포체의 입회하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1970년 11월에 마날리의 치메 둡빼 가찰 사원이 거의 준공될 시점에 그는 아버지 아포 린포체와 가족들과 함께 마날리 시내 위쪽에 있는 그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이주했다. 1971년에 많은 캄족 티베트인들과 독덴들이 제8대 캄툴 린포체 주변에 모여 사는 따시종의 캄파갈 사원에서 캽제 딜고 켄체 린포체가 관정을 주고 가르침을 전승할 때그는 아버지와 함께 그 고귀한 가르침을 받았다마날리에 있는 집에 있을 동안에는 그의 아버지가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몰려든 제자들에게 그 어떤 것을 가르치더라도 그는 함께 참가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들었다 

 

1974년 1월에 세이 린포체의 삼촌인 툭세 린포체가 켄첸 노리앙과 함께 라다크로부터 마날리에 와서 7일간 쉬면서 머물고 있었다툭세 린포체가 다르질링으로 막 돌아가려고 할 때아포 린포체가 그에게 털어놓았다. "이제 나의 건강이 좋지 않다얼마나 더 오래 살지 모르겠다그래서 아들을 너에게 맡겨야겠다.너는 삼촌이므로 그애는 네 아들과 같다부디 그 애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좋은 자질을 갖추는 것을 볼수 있도록 해라." 이렇게 부탁하면서 아포 린포체는 아들 세이 린포체를 툭세 린포체에게 맡겼다그해 1월 27일에 세이 린포체는 라다크로부터 온 시자인 의사 암치 릭진과 함께 툭세 린포체를 따라 서벵갈주West Bengal에 있는 상 응악 쵤링 사원으로 갔다그것이 13살 먹은 환생자가 그의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어버렸다그해 5월에 아버지 아포 린포체가가 돌아가셨다 

 

그해 8월에 그는 동생 잠펠 도르제와 함께 다르질링으로 돌아와 툭세 린포체의 지도하에 2년간을 거기서 공부했다그런 다음 1976년 8월에 그는 딜고 켄체 린포체로부터 부탄으로 초대한다는 편지를 받았다환생자는 아버지의 시자 집사인 이미 둡텐 갸초와 동생 잠펠 도르제와 함께 집을 떠났다푼촉링 국경에서 딜고 켄체 린포체를 만난 후그들은 차를 몰아 아시 케상 여왕이 아낌없는 지원과 시설을 제공하는 팀푸(부탄의 수도)로 갔다그 다음에 그는 딜고 켄체 린포체와 함께 파로Paro에 가서 위대한 닝마 스승으로 부터 관정을 받고 핵심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부탄의 롱초에 살고 있던 샤카스리의 직제자 소남 상뽀(1888-1984)를 찾아갔다거기서 나로빠의 독특한 가르침인 나로육법을 교육받았다. '내부 열 수행'Inner Heat Practice (배꼽불 수행 또는 뚬모라고 함)의 완전한 요가 자세는 걀첸 뚤꾸 린포체가 시범을 보였다그 시점에 종사르 켄체 린포체와 잠펠 도르제가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그는 종사르 켄체 린포체와 함께 심지어 얼어붙은 높은 산에서 젖은 얇은 흰 옷 하나만 걸치고 내부 열 수행을 했다. 

 

1977년 7월에 그는 파로Paro에 있는 키추Kyichu 사원을 방문했다거기서 그는 딜고 켄체 린포체로부터 닝마파의 35권으로 된 '10만 밀교 대장경Hundred Thousand Tantras 과 다른 불경들의 광범위한 해석학적 가르침을 전수받았다부탄의 수도 팀푸를 방문했을 때그는 그 당시 인근에 머물고 있었던 켄체 최키 로되의 제자인 리고 자델로 부터 약 10일 동안에 둑첸 탕통 걀포의 비밀 구전 4권을 전수 받고 수행 입문을 하였다. 

 

부탄에서 15개월 간 살다 1977년에 다르질링으로 돌아와 상 응악 쵤링에서 툭세 린포체가 주는 관정과 구전을 받았다.그리고 보드 케파의 강렬한 가르침을 통하여 비로자나불의 화신인 마하카라Mahakala도 입문했했다. 1979년 그가 18세 되던 해에 데라둔에 있는 민돌링 닝마 사원의 딜고 켄체 린포체가 가르치기로 되어 있는 '보석의 보장Treasury of Jewel' 가르침에 참석하라는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민돌링에 있는 캽제 린포체를 방문하여 그 가르침을 받고 완벽하게 배웠다그 사원에 3개월 간 머무는 동안 최곤 린포체와 가 린포체Ga Rinpoche가 친절한 지원을 해주었다 

 

세이 린포체는 점차 불교철학 논문 공부에 강한 열망을 느껴 다람살라로 갔다그는 '불교담론연구소' 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에 들어가서 3년 간 머물면서 그곳의 학장인 게세 롭상 갸초와 게세 담최 및 다른 스승들 이래서 공부했다그 연구소 학장은 세이 린포체의 뛰어난 지적 수준에 대해 달라이라마 성하께 보고하여 결국 그들이 만날 때마다 달라이라마 성하는 세이 린포체에게 철학적 교재를 큰 주의력을 갖고 진지하게 공부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였다그가 스물 네살 때였던 1984년 6월 26일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그래서 그는 갑자기 다람살라에 있는 불교담론연구소를 사직해야 했다. 

 

1986년에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그는 영혼의 반려자로 갈샤의 노르진 팔모를 택하여 부인으로 삼았다.그해에 그는 사원에 대중법회 장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그 때부터 라다크잔스카르갈샤(라호울), 쿠누(킨나우르)로 부터 계속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르질링에 있는 상 응악 촐링과 키테르 리Kyiter Ri, 기타 다른 히말라야 지역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이 나로육법을 가르쳤다프랑스스페인말레이시아싱가포르타이완미국아르헨티나뉴질랜드이태리벨기에 등 세계 곳곳으로 부터 온 수행자들도 가르쳤다. 

 

임종시에 하는 의식인 '의식 전이'(포와)에 대한 성취자라는 그의 명성 때문에 많은 신도들이 몰려들었다.어떤 때는 백 명에서 부터 최소 열 명 정도가 몰려와 그들의 죽은 가족들을 위한 의식전이 의식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의식이성공하면 죽은 자의 정수리를 길상초kusha grass 로 뚫은 구멍에서 피나 혈청이 몇 방을 나온다추가적으로 많은 물리적 현상들이 일어나고 모두가 그것을 볼 수 있다그는 또한 샤카 스리의 심보장Mind Treasures인 관세음보살아미타불찬달리구루 차크라삼바라빠드마 반짜 수행을 통하여 신성한 영약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그리하여 라다크라호울, 빵기 기타 지역으로부터 온 제자들에 의하여 경이로운 현상들이 목격되었다한편 그 영약을 만든 후에 지역민들에게 장수 관정을 주는 전통을 세웠다. 

 

더욱 더 그는 인도 북부 빵기 지역에 있는 빵기 긴나르호나르수랄 사원 등 사원들의 법당과 내부 성소들을 수리하거나 건설하는 의무를 맡고 있었으며 젊은 승려들에게 음식물 공급은 물론이고티베트학을 가르쳤다철자법을 가르치고 '보살의 삶에 대한 지침 Guide to Bodhisattva’s Way of Life' (우리나라에는 구태의연한 중국식 번역을 따라 '입보리행론'으로 소개 되었음)과 같은 논서들과 샤카 스리의 심보장 Mind Treasures은 물론 종교적 의식과 절차를 가르쳤다 

 

그는 지금 북인도 마날리에의 아포 린포체가 살던 치메 둡빼 가찰 사원에서 부처님법을 신장하면서 부인 노르진 팔모와 훗날 샤카스리 법맥 소유자들이 될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큰 아들 응아왕 타시는 1988년에 태어났고딸 타시 최돈은 1992년에 태어났다. 1996년에 태어난 작은 아들 소남 린첸은 캽제 툴식 린포체에 의하여 닝마파의 켄첸 로되 드리메이의 환생자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그는 성장해온 과정을 뒤돌아 보면서특별한 분들인 소남 상뽀딜고 켄체 성하8대 캄툴 린포체게겐 켄체 린포체와 특히 그의 아버지 아포 린포체를 만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