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기행

망양 2005. 5. 20. 16:59
월간 불광(佛光)

망양거사의 섬기행

연화도 보덕암에서의 하룻밤

글·사진|이봉수

2005년 1월호

연화도 보덕암의일출

 

바다 위에 핀 한 송이 연꽃

 

 

지혜를 갈구하는 섬 욕지(欲知)의 바다 위에 핀 한 송이 연꽃인가? 경남 통영시 욕지면 연화리 본촌마을의 연화사는 망망대해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에서 연화도까지는 여객선으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한려수도의 물길따라 펼쳐지는 풍광은 억겁의 세월 동안 빚어낸 신의 조각품인가. 천년 비바람을 견디고 낭떠러지 바위틈에 뿌리내린 모질게도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겨울 바다의 부처님 인연을 따라 배는 통영항을 미끄러져 나간다. 여기 통영 앞바다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는 약 400년 전 이순신 장군이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와 일전을 벌여 승리한 한산대첩의 현장이다. 이 근처의 지명치고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 한산만 입구에 보이는 조그만 섬 해갑도(解甲島)는 한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장군이 최초로 섬에 올라 갑옷을 벗고 땀을 씻었던 곳이고, 고동산은 망을 보던 병사가 적이 나타나면 수루를 향하여 고동을 불어 신호를 보낸 관측초소가 있었던 곳이다.

보덕암

 

고구마 빼떼기가 반기는 곳

 

배는 점차 내만을 벗어나 부처님의 자취를 따라 연화도를 향하여 넓은 바다로 나간다. 이 물길은 비진도, 연대도, 오곡도, 부지도 등 그림 같은 섬들이 펼쳐지는 해상 국립공원이다. 배가 부지도를 지날 무렵 객실에서 욕지도에 산다는 순박한 노인 한 분을 만났다. 먼 바다에 떠있는 섬 이름을 물으며 말을 건넸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매물도, 소지도, 구을비도, 좌사리도 등을 자세히 알려 주신다. 굵은 손마디엔 고달픈 삶의 흔적이 남아있어 애처로웠지만 나는 노인의 손가락이 아닌 그 너머 섬을 보려고 애썼다.

 

서쪽 바다로 해가 기울 무렵 배가 도착한 연화리 본촌마을! 큰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을 것 같은 북향의 포구마을이다. 첫발을 내디딘 연화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해풍을 맞으며 산비탈에 널려 있는 고구마 빼떼기다. 고구마를 얇게 썰어 말리면 딱딱하게 되는데 이것을 남도 사람들은 빼떼기라 한다. 척박한 섬마을에서 구황작물을 재배했던 팍팍한 삶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부둣가에서 약 5분 정도 걸어가니 고즈넉한 언덕배기에 있는 연화사가 길손을 반긴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경내엔 적막감이 감도는데 대웅전 앞에는 멀리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8각 9층탑이 우뚝 서있다. 홀로 대웅전에 엎드려 경배한 후 계단을 타고 내려와 고무신 한 켤레가 단아하게 정열되어 있는 방문 앞에 서서 “스님!” 하고 불러보니 인자한 모습의 주지스님이 방문을 열고 맞아주신다.


 

보덕암의해수관음상
 

풍광과 역사의 향기 빼어난 보덕암

 

스님은 산 너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최근에 보덕암(普德庵)을 준공하여 낙성식을 마쳤으니 거기로 가서 우봉 스님을 만나보고 하룻밤 묵고 가라 하신다. 노을지는 산 꼭대기에 올라서니 일시에 망망대해가 나타나고 통영팔경의 하나인 연화도 용머리가 노을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2004년 11월 3일에 낙성식을 했다는 보덕암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암자 동쪽의 조그만 언덕에는 해수관음상이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먼 바다를 보고 서 있고, 뒤로는 임진왜란 때 적이 나타나면 큰 깃발을 올려 연대도에 있는 봉화대와 교신하여 수군 통제영에 알렸다는 깃대봉이 자리잡고 있다.

 

암자 주변을 둘러보고는 우봉 스님을 만났다. 예를 올린 후 스님께서 손수 끓여주시는 녹차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어느덧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실리암에 계시던 고승 한 분이 연산군의 박해를 피해 1496년 경에 성운, 성연, 성월이라는 세 명의 비구니 제자와 함께 이 곳 연화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스님은 연화도의 토굴에서 수행 득도하여 열반에 드시면서 자신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할 것을 유언하였고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수장하자 바다에서 큰 연꽃이 피어올랐다 한다. 그래서 스님을 연화도인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약 70년이 지난 후 사명대사가 또다시 비구니 스님 세 분과 함께 이 곳 연화도에서 수행을 했다니 기막힌 인연의 섬이 아닐 수 없다. 임진왜란이 임박했을 때 사명대사는 육지로 나왔으나 보운, 보련, 보월 세 명의 비구니 스님은 연화도에 그대로 남았다 한다.

 

연화도 용머리의 일몰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들 세 스님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해전 현장을 따라다니며 전법을 알려주고 거북선 건조법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가사를 걸치고 바다에서 신출귀몰하면서 왜군을 무찌르는 것이 마치 붉은 구름이 피어나는 것 같다하여 이들을 자운선사(紫雲禪師)라 불렀다 한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보덕암의 적막한 방에 홀로 앉아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밤바다는 별천지였다. 교교한 달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창문을 두드리는데, 안도현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나는 하나의 섬이 되어 밤새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수평선에 개똥벌레처럼 유영하는 고기잡이 배들의 불빛이 희미해질 즈음 방에 걸려 있는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是甚陵’고산 큰스님의 휘호였다. 이 뭣고? 이 뭣고… 순간 도량석을 도는 청아한 목탁소리가 산과 바다에 울려 퍼진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통영으로 나오는 첫배를 타기 위해 보덕암을 떠나오는데 남해바다의 일출이 멀리 소지도 뒤편에서 장관을 연출한다. 구름을 뚫고 나타난 빨간 점 하나가 시계 초침보다 빠른 속도로 솟아오르며 아침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것이 아닌가. 연화봉 산등성이에 우뚝 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삼층석탑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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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원주민 님
다녀가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도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의 호국하는 마음을 올렸는데
감사하오며 오늘도 좋은 주말 맞으시기를.
옆지기도 마산고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