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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 2005. 6. 7. 16:26

무슨 일인지 불현듯 흑산도로 가고싶었다. 

홍어가 많이 잡히고 정약전 선생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산어보'라는 책을 썼던 섬!

 


 

목포 여객선 터미날에 가면 언제나 흑산도 가는 배를 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은 큰 착각이었다. 주말이라 예약으로 이미 표가 매진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막막하기만 했다. 매표창구 앞에서 사정하면서 해약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홍도 가는 배표가 하나 나왔다기에 홍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흑산도에 내리기로 하고 얼른 표를 움켜잡았다.

 

배는 홍도에 도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갑판으로 나가 잠시 바라본 홍도는 하얀 파도가 기어오르는 해식애의 절벽 위에 낯선 아열대 식물들이 빼곡히 자라는 이국적인 섬이었다. 그런데 선착장의 인산인해를 바라보니 이렇게 환상적인 섬의 청정환경도 얼마나 버텨낼지...

 


홍도 선착장

 

오후 4시 반에 목적지인 흑산도 예리 항에 도착했다.

 저녁요기를 하고 숙소를 정할 요량으로 거니는 일몰의 예리항은 육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예전에 조기잡이 파시가 섰을 때는 수많은 뱃사람들로 붐비면서 이보다 더욱 흥청댔을 것이다. 민박집마다 빈방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건너편의 진리 마을로 가서 숙소를 정했다.

 


흑산도 예리 항의 일몰

 

아침 일찍 택시 일주여행에 나섰다. 흑산도 사투리로 '창시고개'라는 열두구비 고개에 올라서니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고산습지 생태가 잘 발달된 장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마리와 곤촌리에는 가두리 양식을 많이 하고 있었다.

 

 

 


심리의 아침

 

포구가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지피미'라고 불렀다는 심리를 지나 섬사람들의 한이 맺힌 '한다령' 고개를 넘으니 흑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미'라는 사리 마을이 눈부시게 다가선다.

 

 


모래미 포구

 

이 동네가 바로 정약전 선생이 유배를 왔던 곳이다. 아침부터 길가엔 미역을 다듬고 약초인 천궁을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사리(모래미)의 미역 작업

다시 묵령 고개를 넘어 멸치 정치망어업이 유명한 소사리를 지나니 구한말 유생이었던 최익현 선생의 유배지인 천촌 마을이 있었다. 

 

이 즈음에서 이 섬의 이름이 왜 흑산도인지 알것 같았다. 섬을 한바퀴 돌면서 살펴보니 온 산이 소나무와 동백, 후박나무, 너도밤나무 등 아열대 상록활엽수로 뒤덮여 있었다. 봄철에 새순이 나올 때를 빼고는 온산이 검푸른 녹색으로 장식을 하고 있고,  절벽 아래 바다도 깊어 검푸른 색을 띠고 있으니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흑산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검게 타버린 '흑산도아가씨'는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만 마치면 여학생들이 목포로 나가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육지 총각을 만나 떠나버리므로 생업을 위해 섬에 남은 흑산도 노총각들만 애태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선착장 주변엔 억센 아줌마들이 건어물과 전복을 팔고 있었다.

몇년전 홍도를 거쳐 흑산도에 일박을 한적이 있습니다
홍도보다는 경관이 빼어나지 못해도
토착어민들이 양식및 고기잡이 농사등으로 삶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기억이 새롭군요.

흑산도민들이 잘사는 행복한섬이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