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기행

망양 2005. 6. 18. 23:33
월간 불광(佛光)

망양거사의 섬기행

미래불이 오실 섬 미륵도

글· 사진 | 이봉수

2005년 2월호

한산대첩의 바다

 

 

동백꽃의 섬

 

동백꽃이 있어 더욱 정겨운 남도의 겨울은 통영시 미륵도에서 그 절정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통영대교를 건너면 한산도와 마주보고 있는 미륵도는 중생을 구원하러 올 미래불이 용화세계를 여실 땅으로 점지한 곳인가. 묘하게도 이 섬에는 미래사와 용화사가 있다. 밀양 표충사에서 새벽에 수도하는 자세로 “나 오늘 갈란다”라는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드셨던 판사 출신 스님 효봉 대선사가 출가 후 가장 오래 머물렀던 섬이 미륵도다.

임진왜란의 흔적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는 이 섬 주변에서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23킬로미터의 산양 일주도로를 타고 돌아보면 그 날의 흔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통영시내와 미륵도 사이의 협소한 해협을 이 고장 사람들은 판데목 혹은 송장목이라 하는데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쫓긴 왜군이 여기 좁은 수로를 파헤치고 도망치다 떼죽음을 당한 곳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통영대교를 지나 우회전하여 산양읍 삼거리에서 약 5분 정도 차를 달리면 삼덕리라는 눈부신 포구마을이 나타난다. 욕지도 가는 카페리가 있는 삼덕항은 임진왜란 때 당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순신 함대가 왜장 가메이 코레노리를 사살하고 적선 21척을 격파한 역사의 현장이다. 마을 뒷산에 있는 당포성지에는 고려 공민왕 때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쌓은 성곽의 흔적이 남아있고 지금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당포를 지나 해안포구를 끼고 도는 일주도로에 심어놓은 동백 가로수에는 한겨울임에도 애절하게 붉은 꽃망울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 때문에 이국 땅에서 불귀의 객이 된 가련한 영혼들을 위로라도 하듯이….

효봉 대종사 석상

 


한산대첩이 있었던 곳
차를 달려 중화리와 연명 예술촌을 지나면 한려수도의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달아공원이 나온다. 여기서 바라보면 멀리 욕지도와 연화도, 추도, 두미도가 맑은 겨울바다에서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달아공원을 지나 미륵도 남단의 척포를 돌아 동쪽 해변을 따라 새바지(신전리) 쪽으로 올라가면 건너편 한산도의 문어포 마을이 지척에 나타난다.
 
여기 이 바다는 1592년 8월 14일(양력) 학익진을 펼친 이순신 장군이 승리한 한산대첩의 현장이다. 속칭 삼칭이 마을에는 이 고장의 의병장 탁연 장군이 바위섬에 돛을 달아 군함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을 기만하고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는 돛단여(괘범도)가 숱한 세월의 파도에 씻기면서도 지금까지 그 날의 역사를 전하며 우뚝 서있다.

용화사 사사자 법륜탑

 

 
용화사와 효봉 선사의 발자취
이처럼 전란의 역사를 간직한 미륵도지만 봉평동의 미륵산 입구로 들어서면 고요하고 아늑한 남국의 불국토로 들어가는 관문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 선불교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석두, 효봉, 구산 스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용화사가 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쉬고 또 쉴 수 있는 아주 편안한 도량이다. 봉평동 버스 종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용화사가 바로 그 곳.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 화상이 절을 지어 정수사라고 했다가 고려 원종 원년에 산사태가 나자 자윤, 성화 두 화상이 자리를 옮겨 짓고 절 이름을 천택사라고 했다. 그 후 조선 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되자 벽담 선사가 현재의 자리에 용화사를 중창했다고 한다. 명부전 영각에 모셔진 효봉 선사의 영정 앞에 서니, 마지막 순간까지 “무라! 무라….” 하시며 치열한 화두정진을 했던 스님의 모습이 오히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용화사 경내에 있는 아쇼카 양식의 불사리 4사자 법륜탑을 돌아본 후 종각을 지나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소나무 향기 그윽한 곳에 효봉 대종사 석상이 있었다. 언젠가 화가 이중섭이 통영의 용화사로 와서 스님을 만나 뵙고는 “차암 맑으신 분이더라”고 한 이유를 이 조각상을 보니 알 것 같다.

미래사 대웅전

 



미륵불이 오실 미래사
용화사를 지나 미래사로 넘어가는 오솔길은 울창한 원시림의 소나무와 전나무가 자라고 있어 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마치 지리산 자락의 심산유곡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고개를 넘어 산허리를 감고 돌면 띠밭등이라는 공터가 나오는데 여기서 바라보면 한산도를 비롯한 한려수도의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띠밭등에서 다시 한 구비 돌아서면 미래사가 있다.
 
미래사로 들어서는 문에는 미륵불인 삼회도인이 찾아와 들어설 문이라 하여 삼회도인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한겨울인데도 경내로 들어서면 밝고 따뜻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든다.
주지스님인 여진 스님과 차를 한 잔 하면서 미래사의 내력을 여쭈어보니 의문이 풀렸다. 1951년에 구산 스님이 노스님과 은사스님이었던 석두 스님과 효봉 스님을 위하여 토굴을 지은 이래 30여 년 동안 중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효봉 스님과 구산 스님은 이 절터를 찾기 위해 미륵산을 일곱 번이나 돌았다 한다.
 
미래사는 공부하는 스님들이 몸이 안 좋을 때 찾아와 자기 공부를 챙기면서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한 절이다. 그래서 전각도 대웅전 하나뿐이며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이 없으며, 용왕제도 지내지 않고 오직 부처님 한 분만 모신다고 한다.
여진 스님은 남국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게 건물 바깥으로 쪽마루를 달아낸 것도 깊은 뜻이 있다고 말한다. 아늑한 양지밭에서 남해 바다를 조망하고 있는 미래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용화세계였다.
 

 

 

이 글은 월간 '불광'지에 '망양거사의 섬 기행'이란 제목으로 저가 1년간 기고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