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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2010. 6. 4. 17:43
  • “삶을 함께하는 개·고양이는 가족” 인식 확산
  • [반려동물] 반려동물과 인간
    <이 기사는 주간조선 [1943호] 에 게재되었습니다>
    반려동물은 외롭고 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고향 같은 푸근함을 선사해
  • 김보경 자유기고가
    • 사례 1

      충남 논산에서 개 ‘빈후’와 살고 있는 이은영씨는 반려동물이 삶의 방향까지 정해준 케이스다. 어린 시절부터 반려동물과 살아서 동물 사랑이 깊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대학 입학 때 동물 관련 학과를 선택했고, 졸업 후 유전자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퇴근 후 개에게 밥을 주기 위해 곧장 집으로 가고, 주말이면 개와 함께 나들이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서울의 부모님도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데 그 개 또한 부모님의 소중한 말벗이 되고 있다. 자식 둘이 대도시로 나가면서 비운 자리를 반려동물이 훌륭하게 채운 것이다. 이은영씨는 반려동물이 빠진 가족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래 남편감의 첫째 조건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강아지 ‘노루(래브라도 리트리버종)’와 함께 노는 초등학생들. 예진이(사진 가운데)는 노루를 키우면서 노루를 보러 오겠다는 친구들 덕분에 학교 ‘인기짱’이 됐다.

      사례 2

      서울 대치동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양정환 원장은 얼마 전 급한 ‘디스크 환자’를 받았다. 남편이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이후 부부는 시골로 내려가 반려동물을 자식 삼아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개가 운신을 못 하며 쓰러진 것이었다. 원인은 목 디스크였고 국내에 목 디스크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의사가 많지 않은 관계로 급하게 이 병원으로 후송되어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그런데 수술 중에 부인이 실신하고 말았다. 자식 같은 개가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걱정하던 부인이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결국 남편은 개가 입원한 병원과 부인이 입원한 병원을 오가며 간호를 해야 했다.

      사례 3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운영하는 임성민씨에게는 잊지 못할 고객이 많지만 특히 마음에 남는 고객이 있다. 장례 의뢰를 받고 어떤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방금 전 개의 안락사를 마친 병원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특히 죽은 개가 들어간 관을 자신이 직접 옮기겠다며 눈물을 훔치는 중년 신사는 연신 “이 녀석은 정말 우리 가족이었다”고 되뇌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초지종은 이랬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이 집은 IMF 때 부도를 맞고 온 가족이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서 살게 되었다. 모두 말을 잊은 채 힘든 시기를 견디던 그 시절, 가족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도 개의 재롱을 보며 웃었고, 개를 소재로 대화를 되찾아 갔다. 그렇게 개는 존재만으로 가족에게 희망을 주었고 2년 후 사업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랬던 개가 죽었으니 장례식장이 눈물바다가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추석 귀향길, 애완견들도 주인을 따라 KTX를 타러 간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가족의 구성원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가족은 개일 수도 있고, 고양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보고 즐기는 애완동물이라는 말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애완(愛玩)동물’이라는 단어를 꺼리는 이유는 바로 ‘완(玩)’자가 ‘장난감, 즐기다’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 즐기다가 버리는 장난감이 아니라 가족과 같기 때문에 애완동물이라 하지 않고 반려동물이라 부른다. 뭘 그렇게 유난스럽게 호칭을 따지냐고 묻는다면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은 “그럼 배우자를 ‘반려인’이라 부르지 않고 ‘애완인’이라고 부를 수 있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들에게 가족과 반려동물은 같은 의미이다.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양에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3년이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 박사는 개, 고양이, 말, 새 등의 동물을 ‘애완동물(pet)’이라 부르는 대신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동반자의 뜻을 담아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주장에는 사람과 동물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동등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제 더 이상 동물은 인간이 주는 음식, 잠자리, 애정을 일방적으로 받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감정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현대의 도시생활은 사람들을 자기중심적이고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다. 현대인은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또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삭막하고 메마른 생활을 한다. 그런 현대인에게 가족을, 고향을 선물하는 게 바로 반려동물이다.

      “집에 들어가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건 우리 집 개밖에 없어”라고 많은 가장이 자괴적으로 내뱉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이들은 학원을 전전하다 아버지보다 늦게 귀가하기 일쑤이고,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부모와 자식 간에는 애틋한 정이 쌓일 틈이 없다. 그러니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같은 틀 안에 있기보다는 각자 ‘자신’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현대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하는 반려동물은 가족,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서울 혜화동에 사는 김원균씨는 얼마 전의 일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은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다녀 언제나 그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10살이 넘은 개였다. 때로는 막내 아들처럼, 때로는 말벗으로 의지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온 식구가 밤 늦도록 개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다녔지만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결혼한 자식까지 와서 집 나간 개 수색에 나섰지만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개가 나간 후 의욕을 잃고 음식도 입에 대지 않는 부모를 보며 자식들은 애가 탔고, 결국 ‘사례금 100만원’이라고 크게 써 붙인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기 시작했다. 전단지를 받으며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개 찾자고 100만원을 줄라고?”하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사람도 많았다.

      마침내 개가 집을 나간 지 이틀 만에 전단지를 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혜화동에서 멀리 떨어진 돈암동까지 가서 개를 찾을 수 있었다. 개가 돌아오자 그는 다시 기력을 회복했고, 새삼 개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다.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사람에게 약속한 사례금을 지불한 것은 물론이다.

      ▲ 한 시민이 네살된 애완견을 등에 업고 길을 걷는 모습.

      위의 사례가 유별난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10개 대학에 수의과대학이 있는데 각 대학은 대부분 부속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부속 종합병원인 셈인데 이곳에는 매일 눈물을 흘리며 아픈 반려동물을 안고 찾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지난 1월 서울대 동물병원 1층 로비에는 당뇨병에 걸린 퍼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자신을 보고 “주위에선 그러다가 당신까지 병 난다고 안락사 시키라고 하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중년 여성, 백내장 수술을 한 16살 된 개의 병문안을 온 노부부, 결혼하면서부터 함께 살아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다 보고 아기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던 개가 병에 걸리자 꼭 살리기 위해 대학병원을 찾았다는 젊은 부부가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그들에게 인간과 동물의 구분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지난 1월 17일, 서울 서부지법은 동물병원의 부주의로 반려동물이 죽은 데 대해 병원 측이 개 주인에게 개 값 20만원과 정신적 위자료 7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각 언론에서는 ‘애견 의료사고 위자료 개 값의 3배’라며 보도했지만, 반려인은 가족 같은 개가 죽었는데 그 정도 위자료가 무슨 의미냐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반려동물 관련 의료사고는 점점 늘어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보고된 것만 2003~2004년 300여건에 달했고,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주인이 늘면서 의료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앞으로 우리나라 반려문화의 발전이 선진국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려문화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경우 현재 반려동물 장례업, 놀이방 등 각종 서비스업이 세분화되어 발달했다. 또한 주인이 죽은 후 남은 반려동물을 위해 재산을 상속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영국의 한 일간지에는 반려동물 부고란이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서구화된 현대사회에서 반려동물문화는 그 나라의 문명도를 재는 척도로도 기능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1세기 펫산업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정치학 주용식 교수는 격려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한·일 독도 분쟁에 대해 수업을 하는데 미국 학생들이 일제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진행된 삽살개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듣고는 매우 놀라며 삽살개 보호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우리의 반려동물문화를 해외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느껴지더군요. 사실 한국의 식견문화 때문에 여러 자리에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한 나라의 반려동물문화가 그 나라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역설한 것이다. 앞으로 반려동물문화가 단지 소수 반려인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올바르게 끌고 나가야 할 문화임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의 바람은 어디까지일까? 최고급 먹거리와 고급의류, 액세서리를 사 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물질적인 것으로 채우지 못하는 공허함이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동물과 대화하기이다. 인간문제의 대부분도 결국 대화의 부재와 단절이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반려동물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 더 행복한 관계를 꿈꾸는 반려인의 바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경기도 분당 인근의 한 애견호텔의 개 수영장.

      이렇듯 동물과 대화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TV의 한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 동물과 대화를 한다는 미국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히비는 사진만 보고도 동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맞추기도 하고, 갑자기 성격이 거칠어지고 말썽을 부리는 개와 대화를 한 후 최근 그 집에 새로 깐 마룻바닥이 미끄러워 짜증이 난다는 개의 말을 들려주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주인은 최근에 마룻바닥을 새로 깐 것이 사실이라며 그것이 개에게 스트레스를 준 것을 미안해하며 당장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은 “나도 저렇게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반려동물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고, 이런저런 문제를 풀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없다. 동물과 대화하는 법에 대해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 막막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물과 대화하는 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직접 쓴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 ‘동물도 말을 한다’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었고, 이를 계기로 직접 동물과 대화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세미나, 스터디 등의 모임을 꾸리고 있다.

      지난 1월 13일엔 동물과 대화하는 법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 모여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 관한 첫 스터디를 열었고, 2월에도 자리가 마련되었다. 사람들은 모여서 동물과 대화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법, 기초적인 대화법 등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함께 훈련했다.

      스터디에 참석했던 오수경씨는 “16살이나 되는 노견과 살다 보니 걱정이 많습니다. 가끔 이유 없이 활동량이 떨어지기도 해서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항상 걱정이거든요. 저희 집은 여름 휴가도 항상 개와 함께 갈 정도이다 보니 대화법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미국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강의하는 곳에서 수업을 들을 예정인 사람도 있으니 우리나라에도 직업적인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등장하는 날이 곧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동물과 대화를 하고 싶어할까? 사람들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통해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지금 행복한지, 앞으로 어떻게 해주면 행복할지 가장 많이 묻고 싶어한다. 이것을 본다면 사람들이 동물과 대화하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반려동물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반려동물이 말썽을 부릴 때, 이유 없이 자꾸 아플 때, 집을 나갔을 때도 동물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준다.

      현재 미국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와 상담을 예약해 놓은 양지아씨는 개가 많이 아파 상담을 신청한 경우다. “우리 집 개는 이제 겨우 6살인데 고질적인 피부병은 물론 각막염, 탈골, 기관지염 등으로 힘들게 투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게 얼마나 힘든지, 앞으로 나에게 원하는 게 뭔지 듣고 싶어서요.”   

      물론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능력에 대해서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동물과 대화가 된다고 무슨 이득이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과학자이며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부디안스키는 그의 저서 ‘개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건 바로 함께 사는 동물과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원하기 때문이며, 그게 바로 현대인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동물과 마음을 나누며 삶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와 다른 존재와 사심 없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아름다운 일인지 동물을 통해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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