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효림 2017. 3. 4. 09:00

* 봄을 맞는 자세 1 - 이정하

 

봄이 왔다고

소란 떨지 마라

지천에 널리고 널린 꽃무리 예쁘다고

호들갑떨지 마라

 

그전에 잠시 묵념할 것

무사히 지난겨울을 나게 해준

것들에 대해

 

고마웠다고 손 흔들어줄 것

봄이 오기까지 우리를 따스하게 해준

모든 것들에 대해

 

* 봄을 맞는 자세 2

 

봄이 와서 꽃 피는 게 아니다

꽃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긴 겨울 찬바람 속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면서도

기어이 새움이 트고 꽃 핀 것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고 있던

봄을 데려오기 위함이다

 

골방에 처박혀 울음만 삼키고 있는 자여,

기다린다는 핑계로 문을 잠그지 마라

기별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 나서면 될 일,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와야 할 누군가가

대문 밖 저 너머에 있다

 

내가 먼저 꽃 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문 열고 나서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끝끝내 추운 겨울이다

 

* 이정하시집[다시 사랑이 온다]-문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