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문화재 여행기

민삿갓 2018. 6. 16. 11:00

<순국 선열의 한이 서린 서대문 형무소1>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지만 여러 해 동안 '조선 건국의 비밀'을 공부하고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조선시대와 그 이전 시대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상대적으로 근현대사에는 무관심하였다. 연재하는 글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서울에 모임이 있어 가야하므로 일찍 올라가서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다. 서대문 형무소는 독립문과 독립관 바로 인근에 있으며 지하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갈 수 있어 대중교통의 편리성이 좋다.


입구에 가기 전 만나는 붉은 벽돌로 된 전면 담장. 근대사와 연관된 문화재를 답사다니다 보면 어느새 이러한 붉은 벽돌은 마치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흘린 피를 연상케한다. 그리고 그들이 흘린 피는 곧 지을 수 없는 민족의 한(恨)이 되어 담장 하나하나에 새겨진 듯하다. 여행은 즐거워야 하는데 근대사를 답사하는 여행은 그래서 항상 마음이 무겁다. 이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짊어지어야 할 무게이리라.


지금은 역사관으로 바뀌었지만 옛날에는......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아치를 많이 봤지만 저 빛 바랜 철문 위의 아치처럼 중압감을 주는 아치는 본 적이 없다. 붉은 벽돌 사이의 아치는 마치 SF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대한 악마의 날개를 펼친 모습같다.


철로된 정문 옆으로 난 작은 문 하나가 입구로 사용되고 있다. 입구를 통해 보이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지금은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옛날에 저곳은 보안과청사였다. 체포된 애국지사들이 수감되면서 조사를 받기도 하고......입구로 들어서 오른편에 매표소가 있다.


어른 1명 3,000원. 문화재 관람료로는 싼 금액은 아니지만 답사하고 나올 때는 비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관람시간은 동절기와 하절기가 다르다. 여름철(3월~10월) ; 09:30~18:00, 겨울철(11월~2월) ; 09:30~17:00

문화재 답사를 다니면서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관람시간에 대해서는 항상 불만족스럽다. 필자와 같이 사진을 위주로 답사후기를 쓰거나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일찍 그리고 더 늦게 촬영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래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9시 반이면 여름철에는 이미 해가 중천이고 겨울철이라도 이른 시간의 촬영은 이미 물건너간 시간대이다. 이런 관람시간 결정은 항상 행정편의주의식 발상이다. 서비스정신이라고는 1도 없다. 그것은 곧 이러한 문화재를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결여된 것으로 국민을 위한 행정이 결코 아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21일에 경성감옥으로 처음 개소하였다. 해설에 나온대로 약 20년 동안 규모가 30배 이상 확대된 이유......그만큼 독립을 위한 열정이 가득했던 애국지사들이 많았었다는 반증이다.



역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지만 나도 참 무식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애국지사를 수감한 곳은 서대문형무소 한 곳만이 아니었다. 전국에 무려 13곳의 형무소가 있었다. 그런데 많은 촬영여행과 답사여행을 다녔고, 형무소가 있었던 큰 도시들을 다 여행해봤어도 형무소가 복원되어 있거나 형무소가 있었던 곳이라는 지역을 들은 기억이 없다.


아픈 역사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역사라면 지방에도 복원을 해서라도 후대에서 기억하도록 해야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이번에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뽑았는데 그들중 과연 이런 것을 복원하겠다고 공약한 인물이 있을까? 아니 그런 공약을 내걸었다고 관심을 가지는 지역 주민들이 있을까?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남아 있는 수형기록표 한 장 한 장에서 당장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대한독립만세". 일제강점기 시절의 수많은 수형자들 중에서 최소한 이곳에 기록된 애국지사들이 살아 돌아와서 이곳에 모인다면 그들이 외치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절박했던 소리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소리요, 독립을 되찾아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후손들에게 가장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민족 혼의 떨림일 것이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순박해 보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세상물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할 것 같은 아녀자도 있다.


학창시절 등하교 길에 마을 정자에서 인사를 나누던 인자하신 동네 할아버지들처럼 친근한 이웃같고, 도시락을 나눠먹던 같은 반 까까머리 친구같고, 종아리를 드러낸 채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옆집 누나같은 사람들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 그들이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제국주의 일본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싸웠던 것이다. 범인으로 사는 것이 천재나 영웅으로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던가?

 

이 방에서 필자는 한 번의 묵념과 수많은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기록된 모든 분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 것이지만 마치 살아 있는 친근한 이웃사촌같아 더욱 안타깝다. 부디 천국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라면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