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문화재 여행기

민삿갓 2018. 6. 18. 17:51

<순국 선열의 한이 서린 서대문형무소3>


교회나 성당의 창을 통하여 내부로 들어오는 햇살은 구원의 빛이요 희망의 빛일 것이다. 하지만 서대문 형무소 계단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물리적 고문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심적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과연 저 빛을 살아서 나가 만날 수 있을까?"하며 자신에게 물었던 순국 선열들......

답은 언제나 질문을 던진 자에게 있다고 한다.


2층으로 설계된 옥사의 내부 모습. 옥사 가운데 지붕으로 채광을 위해 다수의 유리를 사용하였고, 멀리 입구의 철문 위로 채광용 유리창이 보인다. 




2층 옥사 문 위의 작은 환기구멍으로 하늘이 보였을까?


옥사에 갇혔던 많은 순국 선열들의 한 서린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을 철문. 옥사에서 철문 밖까지는 불과 몇 미터 되지 않지만 옥사에 수감되었던 순국 선열들은 그 거리가 한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2층 유리창의 창살이 희망을 가둔 듯하다.




밖에서 본 옥사 정면. 지금은 활짝 열려진 철문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옥사를 구성하는 회색빛 벽돌 하나하나가 아음을 가두고, 희망을 가둔 듯하다. 하지만 순국 선열의 자유 의지를 가두지는 못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국기인 태극기. 동양사상의 핵심 정수가 고스란히 담긴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일 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상징이요 한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태극기가 이곳에 수감되었던 수많은 선열들의 혼을 위로하고 있다.


이곳에 연꽃을 심은 이유를 생각해보라. 연꽃은 불교에서만 남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문둥병이라고 일컬었던 한센병에 걸린 수감자를 별도로 수감했던 옥사. 정면에서 보기에는 언뜻 형무소 관리자들의 막사같은 느낌이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센병 환자들을 내륙에서 조금 떨어진 소록도에 몰아놓고 격리수용했던 것처럼 이 옥사도 일반 옥사와 격리시켰던 것이다.



아직 복원이 이뤄지지 않은 곳에는 들꽃이 피고 비둘기가 노닐고 있다.



발굴조사와 복원공사 때 나온 당시의 건축자재들.

한센병 옥사와 사형장 사이에 위치한 순국 선열 추모의 공간. 당일 같은 시간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관람객 중에 비록 잠시지만 묵념을 올리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이곳에 서서 묵념으로 순국 선열을 추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남녀노소 모두의 마음 속에 나라사랑의 정신이 가득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