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동네주변 유람기

민삿갓 2012. 4. 15. 16:21

수도국산 달동네2 - 미로같은 골목이야기

 

<수도국산은 인천 동구의 동인천역 뒤에 위치한 작은 산으로,

1909년 산 위에 있던 수도국(水道局)에서 유래되었다.

 

대항기 이후 일본인들이 중구 전동 지역에 살게 되자 그곳에

살던 조선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수도국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어 한국전쟁(6.25) 때에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지방 사람들로 붐볐다.

 

181,500m2(5만 5천여평) 규모의 산꼭대기까지 3천여 가구가

모둠살이하면서 이곳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안내 팜플렛 중에서

 

수도국산 달동네 2편은 골목이다.

길(道)이라는 것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아스팔트가 깔린 넓고 편한 대로는 사람과 차가 다니기 편리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人情)이 없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스런 맛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곳은 달리는 자동차가 내뿜는 공해와 소음 공해지역이다.

 

달동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골목에 있다.

계획된 도시의 곧음도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골목은

우리네 할머니들의 이맛살 주름같지만 그곳에는 '길'의 연륜이 있다.

 

달동네 골목은 빨리 나아갈 수가 없다.

느리게 걷기 천천히 걷기를 반복해야한다.

상하가 불규칙하고 어떤 곳은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실족하여 다치기 쉽상이다.

 

달동네 골목은 자건거조차 타고 지나기 힘들다.

흙이 아닌 시멘트로 포장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시골 농로의 편함이 없다.

 

조금만 가도 부서지고 패인 곳이 있는가 하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물론

수도국산 옆으로 난 골목마저도 직선이 없고 내려가고 올라가니 짐이 될 뿐이다.

그리하여 거기선 일체의 문명을 배제시키는 아이러니가 있다.

 

걷고 또 걷기를 하다보면 인생의 미로보다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간혹 지나치는 허리굽은 어르신들의 걸음걸이는 신선하기조차 하다.

 

그 분들의 골목길 걸음걸이는 상쾌하고 부지런하다.

인생이라는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골목길이

지닌 연륜이 그분들의 가벼움을 가볍게 해주는 듯하다.

 

거기서 나는 내 무거워진 다리품이 다시 가벼워짐을 느낀다.

거기서 나는 골목길이 가르쳐주는 철학을  배운다.

 

하지만 그래도 끝없는 미로같은 골목길은 오늘도 어둡다.

봄기운이 온누리에 생동하건만 골목길은 여전히 회색빛이다.

 

 

미로같은 달동네 골목길에서 만나는 갈림길.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할 계단이건만 언제라도 무너질 듯하여 

극히 조심스럽기만 하다.

 

 

 

골목으로 들어서기가 멈칫해지는 어두움이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이럴 때 아직까지 켜져있는 가로등은 별로 도움이 못 된다.

 

 

저 앞에 골목 끝인줄 알았는데 가보니 다시 왼쪽으로 꺾어져 위로 올라간다.

정말 이 정도면 세계 최고의 미로가 아닐까?

 

 

 

 

 

 

 

 

 

 

때로는 골목길 미로를 걷다가 끝에 다가가면 막다른 길이다.

그곳에도 화장실이 있다.

 

 

 

 

심지어는 아이들이나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도 있다.

배낭을 메고 지나가니 옆이 걸려서 어개를 앞으로 움추려야 지나간다.

 

 

 

 

 

 

 

아침 햇살이 밝은데 골목길이 한산하기 그지없고 어떨 때는 사람이 부지런 떠는 소리조차

들이지 않아 미로 속에서 무서움도 느껴지곤 한다.

 

 

 

잔뜩 흐리고 곧 비가 올듯 어두운 데 가로등은 언제 켜질지 침묵하고 있다.

시간이 되어야만 켜지는 가로등은 상황에 따른 대처법이 없다.

마치 법만을 강조하는 탁상공론의 한 단면 같아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건너편 교회의 십자가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건너편 아파트 옆면에 쓰인 휴먼시아가 퇴색된 의미로 다가온다.

 

 

 

길 건너 교회가 있는 곳은 재개발이 된 지역이지만 좁은 도로만 건너 몇걸음만 

골목으로 들어오면 달동네 골목미로에서 헤매이게 된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왼쪽의 저런 문들이 아주 많다.

저곳이 바로 달동네라는 더 확실한 증거다. 바로 화장실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골목. 뼈가 나오고 패이고...... 문화유산과 다름이 없다.

 

 

 

이 골목의 끝에는 어느 집 문으로 막힌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곳과 연결된 것일까.

 

 

해가 중천에 뜬 아침인데도 어둡기 그지 없는 골목길도 많아 아직 가로등이 켜져있다.

 

 

 

 

수도국산 달동네 골목길은 배다리에서 달동네박물관 가는 길에서 시작하여

송현아파트 입구까지 길게 이어지는데 제법 넓은 지역이라 다 걸어보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산이 있고 숲이 있고 자연이 숨쉬는 둘레길이 식상하다면 미로같은 달동네 골목길을

걸어보면 된다. 인생살이 지겹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을 걸어보면 된다.

 

벗꽃이 만발하여 화려한 자태를 발(發)하며 그 유혹에 넘어가 수 많은 인파속에 갔었다면

그 다음에 홀로 뒷짐지고 거북이처럼 이곳을 걸어보면 된다.

 

달동네 골목길을 걷고 나면 인생이 깊어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생길이 무엇인지 달동네 골목길이 섬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줄 것이다.

 

 

 

 

 

 

 

 

 

 

 

 

 

 

 

근데 궁금한 점은 철가방 배달이 되나? ㅎㅎㅎ
어릴때 백만탕에서 경마장 올라가는 길이 좀 그렇고
나도 한 10가구에 공동 화장실 하나 있던 그런 곳에서 한 4-5년 살았는데
감회가 새롭네...
우리 나이쯤이면 누구나 그런 기억, 아니 향수라고 해야하나? 그런 게 있지.
우리 때는 결혼해도 셋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바로 아파트란다.
애들이 어려운 걸 몰라. 격세지감.ㅋㅋ.
수도국산 이라고 너무 생소했었는데...산은 산이네.
그럼 산은 산이지^^ 인천은 높은 산이 전혀 없어. 기껏해야 계양산이 높은데
그것도 사실은 원래 인천지역이 아니고 부평이 편입될 때 들어온거야.
부평도 원래는 부평도호부였는데 인천에 편입된 지 한 30년 되나 그럴꺼야.
벌써 금욜이고 내일은 주말이네. 한 주 동안 고생많았겠다.^^
옛날생각나네요. 미로같은 골목길을지나 학교를 오고가던 기억이.........
고국에나가면 한번 꼭 둘러봐야 겠어요.
멀리 계신 것 같네요.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설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달동네.
지나고나면 아련한 추억의 향수로 남겠지요. 아직도 옛모습이 꽤 남았으니 감회가 남다르실겁니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주름살과 같은.. 표현들이 너무 좋네요. 좋은 사진도 같이 많이 올려주신 덕분에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