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문화재 여행기

민삿갓 2012. 9. 25. 15:02

앞선 세 편의 글을 올리면서 지인들로부터 다소 설명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8282를 지향하는 인터넷은 많은

설명보다는 간결하거나 오히려 설명이 없이 사진만 올린

정보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재를 관람하는 데에는 많은 지식을 요한다.

그저 한가로이 주마간산 격으로 관람한다면 백 번 천 번을

가서봐도 감흥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리라."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다시 언급한 이후로 유명해진 말이다.

문화재에 대한 사랑은 곧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고 이는 곧 나에 대한 자부심이다.

 

알게된다는 것은 그냥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알기 위해 공부해야한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안목을 키우다보면 더욱 문화재를 사랑하게 된다.

 

조선의 궁궐은 거대한 미술이다. 삼국시대부터 궁궐이 있었지만 현존하는 것은 조선의

궁궐 뿐이다. 이 조선의 궁궐은 짧게는 백 여년 전에서 길게는 600년 전의 것이지만,

여기에는 조선 이전의 고려, 고려 이전의 삼국시대, 더 나아가서는 고대국가 초기의 

미술은 물론이고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산 초기 인류의 미술(신석기, 구석기시대.

당시에는 미술이라는 예술이 없었지만 전해지는 암각화 등을 통해 이미 미술이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까지 연결 선상에서 이어진 것이다.

 

흔히 미술사를 말할 때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의 순으로 설명하는데 훌륭한 유물로 전해지는

건축에는 그 시대의 상황은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내려오는 그 민족의 온갖 기술이 망라되어

미술사적으로 훌륭한 문화유산을 낳게 된다. 

 

조선의 궁궐이 오늘날 국내인은 물론이고 많은 외국인들까지 찾는 관광지가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조선의 궁궐은 그만큼 우리가 평소 인지 못하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 안에는

웬만한 전문가들도 다 알지 못하는 기술, 예술이 총집합 되어 있는 거대한 미술품이다.

그러기에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조선의 궁궐과 같은 세계적 문화재이자 미술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웬만큼 공부하는 것이

좋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런 공부를 하기에는 실로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관심만 있다면 문화재 공부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시간과 비용인데 시간은 조금의 독서를 할 마음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비용은 책값이 비싸더라도 나처럼 매일 몇 시간씩 정독하지 않는 한 한 달에 한 두권 사서 읽으면

되는 것이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나처럼 구립 혹은 교육청 도서관을

이용하면 이 문제는 더 해결하기 쉽다.

 

게다가 요즘 스마트폰이 대세인데 유트브 동영상을 검색하면 한국사는 기본이고 문화재 관련 강의가 많다.

출퇴근 시간에 가끔이나마 듣고 배운다면 좋으리라.

 

그리고나서 정작 문제가 되는 시간과 비용은 바로 공부한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인 답사이다.

답사라고 해봐야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국토가 박물관인 우리나라는 어느 곳을 가도 훌륭한

문화재가 즐비하다.

 

좋은 풍경을 찾아 여행을 떠난 곳에도 반드시 그 지역이나 혹은 오가며 지나치는 곳에 훌륭한 문화재

(국보급, 보물급)들이 있다. 그러니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일정을 조금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비용도 적게 든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울리기를 좋아해서 여행도 홀로

가는 것보다는 항상 지인들과 함께 다닌다. 그런데 답사여행을 한다고 하면 웬지 아직까지 지인들과

함께 가기가 꺼려진다. 그 이유는 문화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소치이기도 하지만 음주가무에 익숙한

우리나라 여행실정 때문이다. 음주가무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이라 하겠지만 이는 문화재 답사가

지루한 여행이라느 인식을 심어주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지인들과 함께 답사여행을 다녀오면 그런 편견은 바로 사라진다. 그 어떤 풍경을 

좇아 떠난 여행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오기 때문에 다음에 또 가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답사여행이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건축의 특성상 훌륭한 문화재급 건축은 거의 대부분 훌륭한

풍경을 주변에 품고 있다.

 

조선의 궁궐은 비록 2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수도 서울(600년의 역사가 아니다. 이는 조선의

역사만 생각한 것이다.)에 있고, 인구 천 만 명의 대도시의 한쪽에 자리잡아 현대 문명의 발칙한

도전들을 받고 있지만 거대한 빌딩 숲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경을 자아내는

훌륭한 미술이자 풍경이다.

 

물론, 모르고 가면 늘 똑같지만 조금씩 알고 가면 매번 달리보이는 것이니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이는 조선의 궁궐만이 아니다. 예를들어 서울서 먼 부산의 친구들은 부산의 범어사나 통도사를

가볍게 나들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고 해도 모르고 가면 늘 다를바 없지만 알고

가면 범어사, 통도사가 얼마나 명찰이며 이 또한 얼마나 위대한 미술품인지, 거기에는 어떤 불교적,

도교적, 샤먼적 신앙과 철학이 숨어 있으며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특징들이 숨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미술이나 문화재를 보는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요,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홍준 교수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에서 성실하게 언급하였으니 생략한다.

 

다만 첨언하자면 항상 새롭게 보려고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진을 배워두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각설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희정당부터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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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희정당에 대한 안내책자의 소개를 보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무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

(연산군2년)에 희정당으로 개칭......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국장을 위한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는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동궐도>에 그려진 원래의

희정당은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아담한 집이었고 마당에 연못도 있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이 모습과 완전히 다르고 원래의 강녕전과도 다르다. 재건된 희정당 내부는 쪽마루와 카펫,

유리 창문, 천장에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보물 815호로 지정......'

 

화재로 인한 소실과 복구 당시의 상황은 알다시피 일제 강점기이다. 이 시기에 조선총독부는

사실 경복궁을 철거하고자 하였으나 일본인 양심학자이자 조선 예술을 사랑한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였다.

 

희정당은 그런 암울한 시기에 조선충독부가 멋대로 복원한 것으로 비록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나

복원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는 아픔을 간직한 전각이다.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하나 현재의 희정당 입구는 그야말로 조선의 궁궐을 가장 대표하는

건축의 하나가 되었다. 그 이유는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기본 원칙이자 특징을 간직한 조선의

궁궐에서 유독 이곳이 가장 화려하기 때문이다.

 

정전이나 편전도 아닌 침전의 입구를 이리 화려하게 지은 것은 아마도 일본식이 가미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화려하다고 해도 건물 자체가 그리 큰 위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기에 큰 것에 묻힌

작은 아름다움 정도로 느껴진다.

 

조선 왕조 600년의 궁궐이니 이 정도의 화려함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진을 보기 전에 우선 안내책자에 소개된 청닥궁 전도와 희정당 입체도를 참고로 올린다.

 

 

전체 도면을 보면 오늘 소개할 희정당, 대조전 등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고 어느 정도 크기인지 알 수 있다.

위 도면에서 인정전 옆의 3번이 지난 편에 언급한 '선정전'이다, 규모가 아주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안내 책자에 소개된 희정당 입체도는 아래와 같다.

도면에서 보면 정면이 특이하다. 보통의 한국 전통건축에서는 입구를 궁궐 전각의 입구를 솟을 대문식이나

이곳에는 희정당 정문만 놓고 보면 넓게 펼쳐진 솟을대문식에 정문만 다시 앞으로 튀어나오게 한 T자형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누각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정문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쪽과 양 옆으로 'ㄷ'자형으로

뭔가가 들러쳐져 있다. 이것이 바로 낙양각이라는 것인데 궁궐 정자에나 경회루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건축 부재이다. 이 낙양각이 정문에 설치되어 희정당 정문이 더욱 누각처럼 느껴진다.  

 

정문 서쪽으로는 또 하나의 누각형 출입문이 있다.

 

백 마디 설명보다 사진으로 보자.

 

앞서 1편에서 마지막에 언급한 것으로 인정전 동측문(광범문)으로 나오면 이렇게 화려한 입구를 한

희정당 입구가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중간에 앞으로 튀어나온 곳이 정문인데 기둥 사이에 낙양각이

둘러쳐져 있다. 이는 궁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건축 양식이다. 다른 민가의 정자에는 없다.

  

희정당 앞에는 잔디와 나무가 소공원을 이루고 있다. 원래 희정당 앞에는 제정각이라는 천체관측하는

곳이 있었다. 하늘의 도를 본받기 위해 천체를 관측하는 것은 대자연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정치를

하려는 형이상학적 의지였는데 아쉽게도 없어지고 말았다.

 

좌측의 출입문이다. 낙양각이 없다. 화려한 단청을 하였지만 정문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다.

일례로 나무기둥 아래의 돌기둥만 봐도 간단한 민흘림식이다.

아래 사진과 비교해보면 확실하다.

 

희정당 정문 출입구. 입장불가다. 안쪽에 희정당 현판이 보인다.

나무 기둥 아래의 돌기둥이 주초를 대신하는데 위 사진과 비교하면 더 멋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입구 아래서 올려보면 지붕과 처마의 곡선미가 날렵하고 경쾌하여 한 마리 멋진 새가 금새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다.

 

입구의 누각형 정문인데도 궁궐의 위엄을 나타내듯 작은 팔작지붕을 하였고 당연히 삼각형 합각이

생겼으나 추상적인 금속으로 갈색 나무판 밖을 마감하여 신비로움을 더해진다.

 

그런에 여기서 유심히 살펴보자.

 

내 블로그 다른 글에서 지붕의 잡상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다시

설명하면 이는 잡귀를 물리치려는 주술적 상징을 가진 건축부재로 용마루, 합각마루. 추녀마루에

설치한다. 

 

여기서도 잡상이 추녀마루에 세 개가 있는데 그 뒤에 머리만 보이는 조각이 하나 있다.

그리고 합각마루 끝에도 같은 모양의 부재가 하나 있다. 합각마루와 추녀마루의 방향이 다르니

조각이 보는 방향이 조금 다를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 이런 조각은 용두를 올려 놓는다. 용은 현세에서 임금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상상의 동물로

모든 귀신을 물리치는 주설적 기능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곳의 머리는 용머리가 아니다. 자세히 보면 마치 주둥이가 두툼하고 얼굴이 넓적한 큰 잉어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물고기 머리라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이런 곳에 용두를 올려 놓는다. 전편의 인정전을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거기엔 한 눈에 봐도 용두이다.

 

물고기의 경우에는 머리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단지 치미라고 해서 용마루 양쪽 끝에 용두 대신에

용의 꼬리나 물고기 꼬리 형상의 조각을 건축부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희정당에서는 이처럼 물고기 머리가 사용되었다. 게다가 추녀 끝의 부연을 막은 부재를 보자.

좌측의 별도의 출입문에 보이는 양쪽 부연끝에는 한 눈에도 물고기 머리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악어머리같은 느낌이다. 정문 입구의 부연 끝에는 물고기 형상인지 용두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어느 것이라도 주술적 기능을 가진 상징적 건축부재이다. 일제가 복원할 때 화재로 소실된 점을 감안해서

물고기 머리를 부재로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부재들이다. 

 

천장도 화려하게 단청하고 장식하였다. 들보에 연꽃 단청을 하여 마치 사찰건축의 화엄세계를 보는 듯하고

둥근 원형을 기본으로 그 안에 추상적 무늬를 그려넣은 기하학적 무늬가 화려하면서도 고전적이다.

 

여기서 일반인들이 잘 못보는 풍경을 하나 소개한다.

어디를 가던지 낙양각이 있으면 반드시 낙양각 안에서 밖을 봐야한다.

 

아주 중요한 팁이다. 경회를 올라서기 힘들지만 이런 곳은 안에서 보기 힘들면 아래 사진처럼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는 것은 좋은 풍경작용을 내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입구 동쪽에서 서쪽의 인정전을 바라본 모습.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 지붕까지 지붕의 중첩이

아주 잘 묘사가 된다. 한 눈에 봐도 전통 건축의 지붕과 지붕선들이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지붕의

중첩이다.

 

사진으로 찍을 때는 노출울 여러단계로 조절하여 촬영하면 지붕의 기와가 주는 회색음영의 단조로움을

단청으로 커버할 수 있어 좋다. 낙양각 부근은 내장 후래쉬를 발광시키거나 별도의 플래쉬를 지참하였다가

사용하면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다음에 희정당에 가거든 이 장면을 꼭 보기 바란다.

 

이제 희정당 안으로 들어가보자. 참고로 희정당과 대조전은 붙어있다시피 하여 관람 동선이 'ㅌ'를

엎어 둔 형태이다. 즉, 입구의 정문과 좌측문은 출입이 불가하고 왼쪽의 선정전 방향에 있는 쪽문으로

들어가 희정당을 뒤편에서 들여다보고 그 희정당 바로 뒤편에 이어져 있는 선평문을 통하여 대조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대조전 뒤릐 경훈각을 보고 뒤로돌면 궁궐 화계를 지나면서 반대로 돌아나오게

동선이 되어 있다.

 

희정당 입구 건물의 왼쪽 부근.

 

위 사진 두장이 순서가 바뀌었다^^ 사진에서 삼각형 합각마루를 보자.

팔작지붕은 반드시 합각이 생긴다. 삼각형이다. 이 삼각형 합각을 어떻게 장식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래 사진은 위 사진과 다른 곳의 희정당 전각인데 합각부위에 사진처럼 전돌과 회벽으로 마감하면서

멋진 추상무늬를 그려내고 가운데에는 한자를 넣었다. 쉽게 알 수 있는 한자이다.

 

이것도 임금과 왕비를 위한 상징이다.

 

일반 사대부 민가의 합각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마무리하여 보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희정당 안에서 본 선정전(왼쪽 청기와)과 인정전(오른쪽 합각 부위가 보이는 큰 건물)

 

내부의 전각들은 사진 가운데 보이는 행각처럼 신을 벗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희정당에서 대조전까지 다 연결된다.

 

 

희정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선평문이 있고 그 안으로 대조전이 보인다.

 

대조전이란 무슨 뜻일까? 알다시피 왕실을 안정시키는 가장 큰 일은 바로 왕세자를 생산하는 일.

대조란 바로 그런 뜻이다.ㅎㅎㅎ. 실지로 조선 왕실에서는 임금이 왕비와 아무 때나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후궁들이 있어도 마찬가지.

 

최근에 영화 '후궁'을 본 사람들이 있다면 눈치챘겠지만 임금이 누구와 잠자리를 해야하는지 관할하는

신하(주로 내시)가 있고 그 신하가 속한 궐내각사에서는 왕비와 후궁들의 달거리 기간, 임신 가능시기까지

다 꿰차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임금은 자신이 마음에 든 여인이 왕비가 안되자 삼년 동안 임신을 하지 못하게 하여 이후에

후궁을 들일 때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여인을 후궁으로 맞이한 사례도 있다. 이런 사례가 사극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되어 최근에 인기있었던 사극드라마처럼 비슷한 줄거리들의 드라마로 등장한다.   

 

 이처럼 행랑으로 희정당과 대조전이 연결되어 있다.

 

 

위 아래 사진. 희정당 내부. 편전 기능을 했음을 알려준다.

출입이 금지되어 내부를 들어가 보지 못하는게 한스럽다. 오른쪽 벽면의 그림이 아주 멋진 것으로 보이는데......

 

희정당 북쪽 복도.

 

이제 대조전을 향한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책자의 도면을 소개한다.

 

선평문 바로 앞에 희정당이 있다. 선평문을 들어서면 대조전이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라 가장 뒤쪽에 있다.

 

선평문을 통해 들여다본 대조전에서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았겠지만 대조전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용이 필요없는 곳이라 요아루를 설치핮 않았고 용마루 부분을 굽은 기와로 설치한 것이다.

 

순조 33(1833)에 원인모를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였는데 이곳 또한 1917년 화재로 다시 소실된

것을 1920년 복원할 때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도면으로 보면 알겠지만 전각들이 상당히 엉켜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원래 구중 궁궐이 그렇다.

그러니 이곳이야말로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하겠다.

 

희정당과 행랑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진 왼쪽에서 보듯이 어도로로 이어져 있다. 그 오른쪽에,

월대 아래에 해시계가 있고 훨애 모서리에는 방화수를 모아둔 드므가 있다.

 

대조전의 삼면 모두 휘장문이 있는 녹색판장(나무판 담)이으로 둘러쳐져 있었으나 복원시 다 없앴다.

사실 왕비의 생활공간을 함부로 보일 수는 당연히 없는 것으로 녹색판장이 당연히 있었던 것이다.

 

대조전 뒷마당에는 징광루, 집상전, 화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징광루는 청기와의 2층집이었으나 현재는 없다. 

 

대조전은 익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성종, 인조, 효종, 현종, 철종, 순종이 죽은 곳이기도 하다.

 

대조전 내부의 가운데는 화려한 자기로 만든 의자가 있다.

 

대조전에서 선평문을 통해 희정당을 바라본 모습.

 

대조전 옆에 붙은 건물인 복헌.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술국치가 결정되던 비극의 현장이다.

그 결정을 하기 위해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린 곳이고 그 때 참석한 임금과

신하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통한의 심정과 역사의 죄인이 되는 심정이었을게다.

 

흥복헌 앞에서 가만히 생각하자니 저절로 애국심이 돋는다. 일본에 대한 욕이 절로 튀어나오고. 썩을.....

  

대조전 뒤의 경훈각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경훈각. 합각의 추상무늬가 희정당과 다르고 가운데 한자도 다르다.

아래에는 어른이 구부리고 들어갈 정도의 큰 아궁이가 있다.

 

경훈각도 대조전과 행락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훈각 옆의 작은 전각은 맛배지붕인데 측면의 화방벽을 이렇게 멋지게 장식하였다.

 

대조전 일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이곳 화계이다. 배산의 산자락을 이렇게 계단식 정원으로 만든

것은 조선 궁궐의 특징이자 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으로 발전한다. 화계 중간에 굴뚝이 있다.

 

굴뚝 또한 전통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요소이다. 심지어는 경복궁의 십장생굴뚝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의 굴뚝도 전돌을 쌓아 만들었고 지붕에 연와를 얹었으며 몸체에는 상상의 동물로 돋을새김하였다.

 

 

굴뚝에 학과 사슴의 그림이 보인다. 이처럼 굴뚝에는 상서로운 신수들을 새겨 놓는다.

 

 

화계에는 두 곳의 계단이 보인다. 계단 끝에는 홍예문이 있고 그 옆으로는 꽃담이 늘어서 있다.

꽃담은 크게보면 사선으로 얼기설기 모양으로 무늬를 수놓았으나  자세히 보면 장식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들인 것이다.

 

홍예문을 지나면 배산이 되는 응봉의 숲이 이어지는데 그 안에 전각이 하나 있다.

그 전각을 지나 내려가면 후원으로 바로 연결되나 일반들은 출입불가다.

 

꼭 지나고 싶은 홍예문. 멋지고 아름다운 홍예문이다. 기둥을 장대석으로 세우고 양 옆에는 전돌로 쌓았다.

화강암 머릿돌이 아닌 전돌을 아치로 사용하여 그런지 홍예문에 용두는 없다. 덕수궁 유현문과 비슷한 유형.

 

동북쪽 화계 끝부근에도 홍예문이 하나 더 있다.

 

그 홍예문 입구에 있는 청향각. 굴뚝이 늘씬한 팔등신 미인같다.

 

가까이서 본 청향각 굴뚝.

 

굴뚝에 그려진 실상문양. 새가 날아오고 있다. 어미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듯하다.

 

다른 문양. 토끼이다. 이걸 설명하려면 또 한참 걸리는데......달나라 월궁의 서왕모와 토끼 등의

설화를 검색해보기 바란다.

 

그림 문양만 잇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글자도 있다. 용이다.

사면을 돌아가면서 문양그림과 글자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굴뚝 하나에도 이렇게 온갖 정성을 들어 길상문을 새겼다.

 

대조전 뒷마당의 다른 굴뚝. 이곳에도 글자와 문양이 새겨져 있다. 불륨이 더 커서 날씬하게 보이는 청향각

굴뚝에 비해 남자답다고나 할까? 하지만 조선의 굴뚝은 여근을 상징한다.

 

돌아나오는 곳. 여춘문이다. 안을 다시 들여다보니 멀리 화계와 홍예문이 보인다.

 

여춘문으로 나오면서 왼쪽에는 이런 건축물이 보인다. 안내책자에도 없고 안내판도 없다.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니 물을 저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양 옆으로 고인물이 조금씩

흐르도록 기단석 위에 빼곡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완전히 밖으로 나오기 전에 희정당 옆 건물인 성정각 담과 지붕을 카메라에 담았다.

건물과 건물이 담으로 막혀 있으나 지붕은 닿을 듯 말 듯 하면서 경계가 없는 하늘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듯하다.

 

이상으로 희정당, 대조전 일대의 소개를 마칩니다.

 

 

 

  

  

  

 

 

 

 

 

 

 

 

 

 

 

 

 

 

 

 

 

 

 

 

 

 

 

 

 

 

대단하십니다.
대조전 옆에 경복헌이라고 쓰셨는데 '흥할 흥興'이 아닌지요? 흥복헌.
다시 확인하셨으면 합니다.
헐. 제목에는 흥복헌이라 해 놓고 이런 큰 실수를...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다만 컴에서만 수정이 가능한데 사정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오늘에서야 수정하게 되네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종종 들려 더 공부하고 제가 찍지 못한 부분의 사진을 빌려 갔고 빌려 가겠습니다.
박학다식하십니다.
저도 공부한지 일년 반쯤 되었습니다. 지장님께서 공부하신 좋은 내용 있으면 제게도 소개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성불하시기를...
사진이 아주 선명하고 깔끔합니다. 합각
선생님의 경훈각의 합각에 있는 전서체
樂 자를 사용코저 하오니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엌이 없는 아궁이는 함실아궁이라고 하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