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당

한사정덕수 2010. 1. 12. 07:16

 

세종시와 같이 획일적 도시화가 진정 우리를 잘살게 하는 것일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났던데…”

얼마전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았다고 전화를 한 이유를 밝힌, 설악권 소식을 전하는 <설악신문> 기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잠시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부탁으로 한계령에 올라 사진 몇 컷을 찍은 사실이 있다. 그 뒤 신년에 새로 소개할 시 한 편 가능하냐는 제안에 블로그에 글을 써 놓고 주소만 알려줬는데 어느 것이 소개 되었는지 몰라 전화기의 문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다.

“4일자 신년 첫 호에 정 선생님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11일자) 발행한 신문에 알려주신 신년시를 실었습니다. 금요일에 신문을 갖고 찾아 뵐테니 우선 저희 신문사 홈페이지에서 보십시요”한다. 집에 돌아 와 래은이와 놀아주다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설악신문 사이트에서 기사 내용이 확인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잊은 채…

 

11시에 잠이 깼다.

세 시간은 족히 잔 모양이다.

컴퓨터를 켜 글 두 편을 썼는데 아뿔사~ 저장을 하기 전 ‘응답없음’표시가 뜨더니 작업을 하던 창들이 모두 닫치고 만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자동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저장이 되는데 새로 접속을 했지만 자동저장도 되지 않았다. 5시간의 노력이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썼던 글이니 나중에 다시 기억을 더듬어 바둑을 두는 기사들이 복기를 하듯 다시 쓰면 된다고 체념을 하고 설악신문을 검색해 들어갔다. 사진들이 보이지 않고 일반적인 기사들처럼 기사만 보였다. 신문에 실린 형태는 알 수 없어 창을 닫으려는데 ‘신문 PDF보기’가 눈에 띄었다. 다시 창을 열고 날자를 확인 한 뒤 939호를 찾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13면, 한 면을 내 이야기가 실려있다.

사람들이 여기 실린 사진을 보면 한 마디 하겠다. 다들 금연을 이야기 하고, 신년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금연계획을 세우는데, 신년 첫 호부터 담배나 피우는 모습이 실렸으니…

신문에 실린 내용은 나중에 위의 ‘신문 PDF보기’를 클릭하고 창에서 13페이지를 입력하면 볼 수 있으니 여기엔 별도로 이야기 하지 않겠다.

 

살아가며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죽은 귀신도 저마다 하나씩 사연은 다 지니고 있다는데 살아있는 사람이야 어디 사연 한 둘 없겠는가.

지난 일들에 대한 내용은 기자는 내 블로그의 내용에서 뽑아 자신의 필치로 옷을 입혔다. 너무 화사하다.

사실 난 하고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물론 기자도 그걸 놓치지 않고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오색로프웨이 설치사업으로 한계령 오색이 이미 현대문명의 중심으로 빠져들고 있는 만큼, 오목골의 너와집, 돌담길, 나무하는 산골의 풍경, 과거 지나던 옛길 등 과거 오색과 한계령을 지탱해주던 전통적인 삶의 풍경들을 소중하게 살려내야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고 내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 고향은 기와집도 제법 많았고, 슬라브를 친 건물도 있었지만 초가집과 너와집, 굴피집 등 전형적인 북방식의 산촌가옥도 많았다. 어깨를 넘지 않는 돌담장길이 정을 더 하는 작은 산촌마을이었던 오색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걸 일순간에 사라지게 만든 것은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전국의 국립공원 주변을 일제정리를 하면서다.

얼마동안은 새로 포장이 되고 반듯해진 길과 규격확 된 상가 등이 인상적으로도 보였고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대단한 착각을 한 것이다. 관광객은 어차피 당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고, 제주도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산과 바다, 온천과 약수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지닌 오색과 설악산을 선택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금강산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고,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하면서 오색은 서서히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다.

그나마 오색은 좀 나은 편이다. 설악동을 보면 더 기박한 운명이다. 귀곡산장이 따로 없는 살풍경스런 곳이 되고 만 설악동에 레일을 깔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걷지않고 10여리 길을 오가게 하면 관광객이 다시 찾을 거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 하기야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 그곳에 그런 시설을 하면 그만큼 효율적인 탐방문화는 정착시킬 수 있고 매연도 줄어든다. 그렇지만 한 낮엔 그렇게 사람들로 북적여도 밤이면 썰물처럼 싹 빠져나가고 정적이 찾아드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오색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가을 단풍철이면 식당들이 어느 정도 형편이 피지만 그 때 뿐이다.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해도 그나마 되는 식당 몇 집만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대부분 관광버스에 가스통을 싣고 와 밥을 하고 찌개를 끌여 길바닥에서 배식을 해주니 도로만 더 막힌다. 그들이 빠져나가고 어둠이 찾아들면 길거리엔 사람이라곤 주민 몇이 혹시 모를 손님을 부르러 서성거릴 뿐이다.

 

왜 그럴까?

시설 좋은 팬션이나 콘도로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도로사정이 좋아지니 당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머물게 할, 애써 찾아오게 할 매력이 없다.

그 대안으로 오래전부터 품어 온 생각을 기자에게 말했다. 잊혀져가는 소중한 것을 모형이 아닌 실질적인 모습 그대로 되살려 보존하는 방법이 최상의 문화고 관광자원이라고…

 

오목골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오래전 군부대가 주둔하고 몇 가구가 살 정도로 터가 넓다. 그곳에 생태공원(획일적인 공원이 아닌)을 조성하여 설악산의 들꽃을 심고, 디딜방앗간과 전통적인 생활공간을 살린 집들을 지어 볼거리와 옛생활을 체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 마을을 조성하라고 했다.

자동차가 들어오는 길도 필요없이 차가 보이지 않는, 전기도 지중화공사를 해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아예 호롱불을 밝히고, 코클(황토벽에 작은 굴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관솔로 불을 밝히는 용도로 씀)로 어둠을 밝히는 삶을 체험하게 한다면 방송국도 세트로 사용할 거란 이야기를 했다. 세종시와 같은 도시화가 아닌 산촌마을을 관광자원화 하는 게, 생태공원을 가꾸는 일이 몇 만평의 공간이라면 십수명의 고용을 보장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내게 죽을 때까지 장기 불하를 해주고 사업비만 지원된다면, 양양군에서는 매년 엄청난 수익을 올릴 사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자는 동의를 했다.

아주 유명한 문학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내 이름 하나는 지키려고 노력하고 산다. 사람이 죽은 뒤 ‘OOO의 생가’니 하며 치장을 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살아있을 때 그들이 품은 생각을 발휘하여 고장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게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이어령 교수가 88올림픽 개막식을 기획할 때 말들이 참 많았다고 한다.

공연기획자도 아닌 대학교수가, 그저 임명직이었던 문화부장관이 세계적 행사의 공연을 기획한다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는가. 그가 영화감독이었다면 덜 했겠다. 그런데 말이다. 문학은 문화의 산실이며, 문학을 하는 사람은 머리 속에 세상을 모두 그리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최소한 鳥頭(조두:새대가리)는 아니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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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네요.
한사 정덕수님의 꿈, 생각 모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축하도 드려요!!!!
비밀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 태학입니다. 오랫만에 올블을 통해 블로그에서 뵙네요.
다들 평안 하시지요? 갓난 아이였던 래은이가 이제는 꽤나 자랐음직 하네요. 시간이 어느새 많이 흘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늘 건강하세요. ^^
긴담배 물고 ~ㅎㅎㅎ
조금은 생뚱맞는데요~ 산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사진이라고 하니~ㅎㅎㅎ
축하드립니다.
현재 시간 -

아고라 서명 다시 시작입니다.
제가 알아 본 결과 500명 서명을 받으면, 심사 후에
결과에 따라 모금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예상 모금액은 5천만원으로 했습니다.
빨리 아고라에 접속하여 서명해 주세요.

위젯도 다시 지정하였으니, 제 블로그 위젯을 클릭하여 주세요.
위젯 지정 값은 87646 입니다.

아고라 서명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html?id=87646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로선 갈 곳이 없습니다.
초보라 아는 곳이 없어서인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딱히 머물 만큼 끌어당기는 곳이 없어서
결국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이미 중독일까요? 무슨 병이 들었을까요?
아니면 고무줄 걸어두셨습니까?^^

지금도 관사에 사십니까?
그러게요...여전히 그눔의 담배를....ㅡ.ㅡ

아미고엔 여전히 금연지역인지라...

새해엔 더욱 활발한 정시인의 활동 기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