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한사정덕수 2010. 1. 12. 17:55

 

재형씨, 언제쯤 우리 좀 야한 농담도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사내가 허리가 부실해서야 어디…”

어려서 다친 허리 때문에 눈이라도 내리면 아내 눈치부터 보인다. 요즘에야 나무를 할 일도 없고, 쌀가마니를 지고 몇 십리 읍내를 다녀 올 일도 없으니 지개를 질 일이 없다. 그런데 겨울이면 눈을 치울 생각에 가을 단풍이 대청봉 정수박이에 얼핏거리기 시작하면 걱정부터 앞서고, 끝내 첫눈부터 사단이 났다. 10월 말, 첫눈치곤 고약하게도 많이 내려 빗자루질로는 쓸지 못하고 눈삽과 밀대로 눈을 치워야 했다.

눈을 치다 허리를 다친다면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도 허리냐” 하겠지만, 눈이 얼마나 무거운지 한 번 커다란 눈삽으로 치워보면 알게 된다. 새벽부터 장갑을 끼고 나가 눈을 치우는데 절반도 못치우고 옆구리를 무언가로 찌르는 것과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겨우 차만 나갈 수 있게 건성건성 눈을 쳐내고 들어와 그대로 드러누웠다.

하필 그날 저녁 친구 부부가 놀러왔다.

속옷 차림으로 이불만 덮은 게 아니라 요까지 들추고 들어가 등을 지지다 잠이 들었는데 퇴근을 한 아내가 친구부부가 찾아오니 무심코 문을 열었다. 친구야 같은 남자니 속옷차림인들 어떻겠나만 친구부인에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지만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바로 이럴 경우 확실히 드러난다. 일찍 일찍 결혼은 해 아들이 둘다 장성한 친구부인은 확실히 중년부인이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덕수씨, 지금 몇신데 벌써 자요”란다.

결국 친구부인이 보는 앞에서 트렁크팬티 차림으로 어기적거리며 바지를 입고 티셔츠를 하나 걸쳐야 했다. 친구부부는 동갑이다. 거리가 멀지않은 여학교와 남학교 사이에서 중학교 때부터 사귀더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결혼을 했다. 그들이 보면 내 모습은 한심스러울 것이다. 자기들 자식과 같이 장가를 갈 거냐고 놀려대던 친구들이다. 하기야 일찍 사고를 쳐 손주를 본 친구가 그 방면에서는 모이면 가장 큰소리를 친다.

어쨌거나, 옷을 입는 내 모양이 영 이상한 탓인지 허리가 아프냐고 묻기에 아침에 눈을 치다 삐었다고 하니, “그것도 허리유? 뭔 스티로폼으로 만들었나, 그래가지고 래은이랑 래원이는 어떻게 만들었데”란다. 얄미운 친구놈은 키득대고…

“워따, 어디 그 허리와 이 허리가 같우” 허리를 받치며 거실에 나가 앉아 아내가 타 주는 커피를 마시며 한 마디 하자, “래은엄마, 덕수씨 내다버려. 지금 기운도 못 쓸텐데 억울한 거 지금 다 풀어, 그래가지고야 어디 제대로…”란다. 듣던 친구가 “그래도 할 건 다 해, 왜 자네가 걱정이여? 지 서방이나 잘 챙겨”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나이 40 후반으로 접어드니 여자들은 남자들 기 죽이는 것부터 터득하는 모양이다.

 

 

이번 눈은 30cm 이상 내렸는데 눈이 오기 전 서울엘 갔다가 곧장 큰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를 치르고야 집으로 돌아오다보니 눈을 치우지 못했다. 70m도 넘는 거리를 여자가 치우기엔 벅차다. 아내는 그 눈길을 차로 그냥 밀고 다녔다. 덕분에 눈을 치우지 않고 넘어갔다. 만약 집에 있었다면 또 다시 허리를 삐어 며칠 끙끙 앓았겠다.

이럴 때는 오지 않다가도 꼭 난처한 꼴일 때 사람은 온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인지 외국에서도 ‘머피의 법칙’이란 말을 쓴다.

 

 

이번 눈을 치우지 않게 되었던 서울행의 목적이었던 박재형씨는 허리를 삔 게 아니라 총격을 받아 척추가 부서졌다.

그의 부인이 쓴 글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는데,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은(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만 초기부터 기사를 냈다) 그에 대한 자료가 없어 사진을 촬영하고,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러 서울에 간 날 전국이 폭설이 퍼부었다. 서울은 100년만의 기록적인 눈이라 했다. ‘엄청나게 많은 눈’이라는 말에 이 정도는 내 사는 곳에서는 진눈깨비 정도 밖에 안 된다며 허풍을 떨었다. 그 놈의 말이 씨가 된다고 진눈깨비 탓에 그날 밤 얼마나 걸어야했던지…

 

 

처음 본 낯 선 사람이라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박재형씨를 처음 본 그 날은 웃음이라곤 없었다. 촬영을 허락하고도 내내 고통스런 표정이었고 질문은 아예 나는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인 박명숙씨가 쓴 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 외우다시피 했기에 질문이란 불필요했다.

미리 가겠다는 연락을 했었기에 박명숙씨도 나름 깔끔하게 차려 입었을 것이다. 이번에 갔을 때는 처음 볼 때와는 달리 편한 복장이었고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이었으니까. 더구나 일요일이라 교회에 막 다녀왔다면서도 말이다. 대신 표정들은 이 사진들을 촬영하던 일주일 전에 비하면 더 없이 밝았다.

 

 

눈밑을 스쳐 콧등을 가로지른 흉터도 총알이 스친 흔적이다.

자칫하면 실명을 할 뻔한 상황이었다. 이 날은 혼자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고 수술을 한 배와 등을 촬영하는 것도 부인이 옷을 걷어올리고 부축을 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엔 척추를 고정시키는 보호대를 의지해서지만 제법 오랜 시간(5분 정도)을 혼자 앉아 있기도 했다. 농담도 스스럼 없이 할 정도로 밝았다.

자신들만 외롭게 정부와 사이판, 여행사를 상대하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힘을 내게 했을 것이다. 또한 본인 스스로 일어서려는 강한 의지도 한 몫 했겠고.

 

 

MRI와 CT 등 사건 후 국내로 후송된 직후 곧장 서울대학병원에 들어와 촬영한 DVD 중 우선 사진 하나를 보자.

11월 22일 01시 31분에 촬영한 CT다. 아랫부분이 등으로 피부층의 두깨가 고르지 않다. 두꺼운 부분이 총탄이 날아 들어간 자리일 것이다. 등에 맨 가방을 뚫고 들어간 총알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러개의 총알 중 하나가 관통을 한 흔적으로 붉은 색으로 내가 임의로 선을 그은 각도로 관통되었을 걸로 보인다.

얼마나 강력한 힘으로 피부를 뚫고 척추를 부수었으면 척추의 등쪽 지지를 하는 비교적 넓은 뼈가 부서져 옆으로 피하층을 헤치며 밀려났을까. 작은 원형의 조각들이 총알인지 뼈조각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부서진 뼈조각 사이에서 많은 총알파편들을 제거했다고 한다. 이렇게 부서진 척추는 한 개가 아니다. 더구나 붉은 색 선으로 그어진 각도로 알 수 있듯 정확하게 뇌에서 척추뼈의 중앙을 지나 하반신으로 향하는 신경은 완전하게 절단이 된 상태다.

 

“자기 사진인데 본인이 봐야죠, 사진 찍은 거 저도 보여주세요”라며 박재형씨가 씨익 웃으며 CT와 MRI를 촬영한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만큼 그도 이젠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아내의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그는 찾아간 사람에게 음료수도 안 드리냐며 신경을 쓸 정도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머지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허리를 쓰지 못하는 걸 갖고 농담도 할 그로 보인다.

그에 대한 사연을 전하는 입장에서는 그의 이런 변화들이 정말 고맙다. 가장 큰 보람이다.

 

“수유리 국립재활원에서 화사한 봄을 만나겠군요, 그때 우리 만나서 좋은 이야기 합시다”

그를 병실에 두고 돌아서기 전 해 준 이야기다.

 

 

 

 
 
 
 

함께 한다는 것은 태산도 옮기고, 기적도 만들어 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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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봄에 -
그때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치료 잘 받으시고, 박명숙 시도 간호 열심히 하실테니,
그럴겁니다.

모두 힘 내세요!
네,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전엣날에 비하면 정말 환한 모습이 반가웠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지겠군요.
한쪽에서는 아고라 모금, 한쪽은 정부에 법령개정요구, 여행사의 책임에 대한 문제부분 등 많은 일들이 동시에 다루어져야하는군요.
그래도 희망을 갖고 해야지요.
된다고 말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모든 분들 이 함께하고 있으니 힘내고 빠른 쾌차 기원드리겠습니다
한사 정덕수 선생님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네, 그래야합니다.
덕분이지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