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사람

한사정덕수 2010. 12. 12. 00:44

얼마간 유배의 길에 들어도 좋겠다 싶은 동질성 회복의 기회 

 
 

산촌에 사는 저로서는 번잡한 도시와는 달리 조용한 시기인 이때가 가끔은 적당히 고독할 수 있기에 좋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바람이 부는 내를 건너 양지바른 산비탈을 얼마쯤 걷노라면 창망하게 열린 하늘빛에 부끄러워도 집니다. 그런 요즘은 글감들을 정리하고 글쓰기로 몰입하기 좋은 때입니다.

이곳과 다른 곳에서는 망년회다, 송연회다 하며 매일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산중에 사는 제겐 그런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모래틈으로 물 스미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꺼가며 12월을 보내기엔 너무도 아쉬움이 큰 탓에 지난 1년 살아온 흔적들을 더듬어 살핍니다. 한 해를 맞고 보내는 일, 들어서면 돌아갈 수 없는 법이라 충실하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지나치는 시간엔 후회가 많아집니다. 누구나 얼마간씩은 그런 감정이리라 생각됩니다.

 

 

한해를 마감해가는 길목에선 지금 죽방렴을 소개하려고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내게 등을 돌리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야속한 마음 크군요. 남해를 방문했을 때 지족해협을 가로지른 다리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죽방렴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였지요. 내가 몸을 움직여 가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인 까닭에 온전히 내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 경험이 여러분께 지족해협의 죽방렴을 소상히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족해협을 사이에 두고 두 개 면에 한 개의 마을 이름이 있는 특이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지족리인데,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와 창선면 지족리가 서로 해협을 마주보고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에야 다리가 놓여 같은 문화권이 되었다지만 그 이전에는 분명 전혀 다른 환경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마을 이름은 같습니다.

 

 

들물과 날물의 차가 커 갯벌이 발달한 이곳은 다양한 수산물들을 개펄에서 생산합니다. 또한 바로 이 특징을 살려 발달한 어로법이 명승으로 지정받은 지족해협의 죽방렴입니다.

남해군의 창선면 지족리와 삼상면 지족리 사이의 지족해협에 위치한 죽방렴은 지난 9월 6일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다랭이마을과 금산과 함께 남해는 죽방렴도 관광문화자원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명승이란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지정됩니다.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다랭이마을도 그렇지만 예술적•관상적인 측면에서 경관이 뛰어나고 독특한 곳으로 기념물이 될 만하다 판단이 내려진 곳을,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지정하는 것입니다. 남해군에는 남해가천마을의 다랑이논과 남해금산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남해 지족해협의 죽방렴이 명승으로 지정돼 3개소의 명승이 있으니 축복받은 고장이지요.

 

 

죽방렴이란 우리의 옛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원시어업으로, 지금과 같이 그물질이나 다양한 어로산업이 발달되지 못했던 시대 들물과 날물의 편차가 큰 지역에서 품질 좋은 생선을 잡던 어로행위였습니다. 죽방렴이란 참나무 말목을 개펄에 박는 일로 시작됩니다. 참나무는 특성상 바닷물에 들어가면 잘 썩지 않습니다. 더구나 개펄에서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오랜 세월을 목질의 형태 그대로 유지합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더 견고하고 잘 갈라지거나 뒤틀리지 않게 변화하기도 하지요.

말목을 박은 뒤엔 다시 발장을 세웁니다. 발장은 말목에 단단히 고정시켜 대살을 견고하게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발장에 다시 가로로 돌아가며 띠를 둘러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모두 견고하게 되어야 쪼갠 대나무발을 둘러 칠 수 있게 됩니다. 이러니 죽방렴은 다른 말로는 ‘대나무 어살’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죽방렴은 들물과 날물의 물때를 이용하여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건지는 재래식 어항인 것이지요. 이 죽방렴에서 잡힌 생선은 상처가 하나도 없으며 미끄러운 원형의 대살을 끼고 원형으로 만들어진 울안에서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기에 날물의 영향을 덜 받아 최고의 횟감으로 손꼽힙니다. 물살이 빠른 바다에 사는 고기는 탄력성이 높아 그 맛이 뛰어나다 하는데 그물로 잡을 경우엔 고기가 몸부림을 치게 되어 상처도 많이 생기지만, 그동안 고기가 움직임이 많았던 탓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은 당연히 이치입니다.

 

 

그럼 넓은 바다에서 어찌하여 고기들이 죽방렴으로 들어오게 되느냐는 궁금증이 남겠군요. 하늘을 나는 기러기도 편대를 지어 날아가며 선두를 수시로 바꿉니다. 쇼트트랙에서 선두에 선 뒤를 따라 돌던 선수가 뒤로 빠지고 뒤에 선수가 다시 선두로 나서는 것도 같은 이치로 볼 수 있습니다. 죽방렴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는 지족해협은 물살이 시속 13~15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물살에서 활동하는 멸치나 다양한 생선들이 특별히 육질이 좋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그들도 힘엔 부칩니다. 그럴 때 물속에서 유속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죽방렴의 참나무말장에 근접해 힘을 덜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내부로 서서히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특히 죽방렴 멸치는 소비자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남해의 특산품입니다. 잘 말린 멸치 한 상자에 몇십 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니 참으로 선조들의 지혜 덕에 후손들이 그 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사진을 촬영하는 마음이 분주합니다.

아직 갈길 멀다 재촉하는 이들을 향해 걸으며 마음으로 되뇌어 멀지않은 시간 어디쯤 다시 오마 합니다.

 

남해 죽방렴을 떠나며

 

지족해협 저 물결 위

비단자락도 그림자로 드리울 때

바람아 잠시 숨 멈추고

천지간에 그저 흐름만 느끼게 하라

들물 따라 길 들었을 때

초겨울 시린 바람에서

세상 인연 한 자락 스치듯 만난

화사한 광대나물 한포기

피어 행복한지 물어도

어찌 어진 대답이야 듣겠냐마는

모질게도 기어코 묻고야 만 심사(心思)

 

이름으로 비단을 풀었더니

마음은 더디 가자건만

南(남)으로 앵강만 향해 달리는 속내

분주하기만 하여

고사릿길 사위마다

지게길 언저리에 두고 가리

비단 빛 그리움 한 자락.

 

2010. 12. 3 남해 지족해협에서

 

 

산길인 듯하면,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인가 싶으면 다시 산길을 구불거리며 돌아가는 남해는 우리 가락과 꼭 닮아 있습니다. 자진모리인가 싶으면 휘모리로 세차게 다그쳐 몰아 나가고, 어느 사이 창망한 탄식으로 긴 호흡 뽑아내는 가락에 심취하게 만드는 신명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탄식이 절로 터질 만한 절창이지요. 박수를 치는 관중이 없어도 스스로 도취되어 족한 넉넉한 품세가 아름다운 섬, 남해인 것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남해를 다시 만난 건 즐거운 일이고, 얼마간 유배의 길에 들어도 좋겠다 싶은 동질성 회복의 기회였습니다.

남해 유배문학관에서 만난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 / 인조 15∼숙종 18) 선생의 사친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맺음 하고자 합니다.

 

 

(思親詩)사친시

 

(今朝欲寫思親語)금조욕사사친어
오늘 아침 어머님이 그립다는 말 쓰려고 하니


(字未成時淚已滋)자미성시루이자

글자도 되기도 전에 눈물은 이미 흥건하구나.

(幾度濡毫還復擲)기도유호환부척
몇 번이나 붓끝을 적셨다가 다시 던져 버렸는지


(集中應缺海南詩)집중응결해남시

문집에서 남해에서 지은 시는 반드시 빼버려야 겠다.

 

남해의 많은 유배객 중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을 지그신 서포 김만중 선생의 사친시입니다. 효심이 깊은 서포 선생은 23 젊은 나이로 혼자되신 어머니를 두고 유배의 길에 올랐으니 그 애절한 마음 어찌 다 헤아릴 수 있다 하겠는지요.

오죽하면 선생의 문집에서 남해에서 지은 시는 빼버려야하겠다 하셨을까요.

효심이 깊어 어머니께서 읽으시라고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언문으로 지으셨던 선생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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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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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이 절로 터져 나오는 남해 투어중이시군요. 등 돌리고 떠난 사람의 표현이 겨울바다 모습을 닮았습니다. ^^
남해투어를 이제 시작한 꼴입니다.
아직도 몇 꼭지 더 쓸 내용들이 있습니다.
첫 사진은 어디서 찍었습니까?
그림 아주 좋습니다.
한사 님의 재능이 아주 다양합니다.
부럽습니다. ㅎㅎ
첫 사진은 지족해협을 가로지르는 창선대교 중간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날 몇 사람만 걸어서 건넜지요.
걸음품을 파는 만큼 더 많은 체험이 되고, 시간을 들인만큼 바르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한사정덕수님 다음 남해오시면 죽방에서 건진고기로 소주한잔 대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