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당

한사정덕수 2012. 12. 13. 09:02

심하게 궂은 날 동무에게 전화하는 일도 방정맞은 생각에 멈칫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데도 정말 가슴으로 착 들어와 안기는 감칠맛 나는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

더러 전문 수필가나 소설가도 아지지만 커다란 감동을 주는 글도 만나게 된다. 한동안 멍하니 그 감동의 느낌을 놓치고 싶지않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도 한다.

그런 감동을 선물하는글들은 누구나 겪었을 일들에서 발견된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다.

아버지나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들도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나와 똑 같이 생각하고 아파하며 기뻐하는 사람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만나지는 아름다운 수필(隨筆)같은 아니 수필이 될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가장 열심히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이 사회를 등불처럼 밝히며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그런 눈과 마음을 지녔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 287-1엔 ‘자이랑(www.zairangfood.com)’이란 이름으로 토속적 먹거리를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곳이 있다.

주인 내외와 장인어른, 그리고 처남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정다운 이야기를 그곳의 주인(머슴)이 늘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누는데, 그 이야기가 살아 금방이라도 생생하게 우리 주변에 만나질 것 같다.

 

장인어른과 그 분의 친구들이 오가는 길에 나누는 이야기, 장인과 사위 사이에 툭 던지는 정 가득한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누어도 좋을 내용이라 몇 회만 허락을 받아 소개 할까 한다. 앞으로 불현듯 ‘寒士의 문화마을’에서 오른쪽의 이 사진이 보이면 원저자가 바로 ‘자이랑’의 남덕현 님이구나 하면 된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도 더불어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며, 삭막한 세상에서 고단하게 살아오신 민초들의 투박하면서도 끈끈한 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충청도의 힘 33] 사까다찌 시라카와(물구나무 백천)

 

  원작 : 자이랑 남덕현

 

“저, 저… 늙은이가 참말루 심판(생각)읎어! 빠스 타기 전에 눈 이래두 털구 탈일이지. 얼라? 엇따(어디디가) 터는 겨 시방? 사방을 후질루구(더럽히고) 자빠졌네!”

 

천둥소리 한 번에 눈구름이 삽시간에 먹물처럼 하늘에 번지고, 두 번에 우박이 혼(魂)구멍을 내더니, 세 번에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눈송이가 새까맣게 내리기 시작하여 줄창 이틀을 멈추지 않았다.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쌓였건만 그래도 시골버스는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 버스에 오르고 내린다.

 

“아, 저짝(저쪽)으루 가! 워따가(어디다가) 젖은 짐승의 몸띵이를 들이 미는 겨? 시살(세살) 버르장머리 여든 까정 간다드만, 딱 니헌티(너한테) 해당하는 소리여. 어릴 적 부텀 후질루는데는 대장이여, 대장.”

 

“‥‥‥”

 

“오죽허믄 우덜 집에 쌀 꾸러 와서두 고맙다구 인사허구 나가믄서 마당에다 꾼 쌀을 질질 후질루구 다녔겄어!”

 

지청구를 꼭 참고 겨우 엉금엉금 자리를 잡고서야 ‘젖은 짐승’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시상(세상)은 다 띵띵 얼어 붙는디두 고눔의 싸갈빼기(버릇) 읎는 주둥이는 안정(아직까지) 쩍쩍 벌어지는 개벼? 그라는 니는 마나님 등골 빼먹을라구 칠렐레 팔렐레 옷 후질르믄서 워딜 싸돌아 댕기냐?”

 

“‥‥‥”

 

“작년에두 쥐약 씹은 개 맹키루 싸 댕기다가 자빠져 갖구선 팔에 회칠(깁스)허구 댕기드만. 워쪄, 작년에 들(덜)한 고생 올해 마져헐라구?”

 

“야, 니 걱정이나 혀. 나는 원판(워낙) 몸띵이가 날래갖구 분질르야(뿌러져야) 빼다구(뼈) 하나지만서두 니는 자빠지면 자빠진 모냥(모양) 고대루 납짝(번쩍) 들어다 꽁꽁 얼렸다가 땅 해동하믄 그답(바로) 묻으야 혀!”

 

“‥‥‥”

 

“생각이 있으믄 이런 날씨엘랑(에는) 아랫목이나 뭉게구 살어 잉? 니 죽어두 내는 어차피 문상 갈일 없으니께 상관은 읎다만서두 니 새끼덜은 노상 추운디 모여갖구 제사 지낼라믄 월매나 심(힘)들겄냐. 자석덜(자식들)이 원망 않겄어? 월매나 손이 곱겄냐. 잉? 애구… 생각만혀두 딱허다. 향불 쬐가믄서 제삿상 차리는 꼬라지를 워찌케 지켜 본다냐.”

 

“연설허네. 넘의 집구석 제삿상 걱정은 허덜말구 너거(너의)집 장래나 염려혀. 꼴랑 아덜(아들) 하나 있는 거 워디 가서 살았나 죽었나두 모르는디. 니는 낭중에 제삿밥이나 얻어 먹을랑가 몰러. 귀신 되야(되어) 갔구 허기지믄 워쩐다냐? 애구, 생각만혀두 눈물 난다. 워쩌겄냐? 내 제삿밥 쳐 쟁여(모아) 놀테니께… 배 고프믄 물어물어 찾아와 잉. 니 먹을 만치는 냄겨 주께.”

 

눈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와이퍼가 빠르게 춤을 추며 시야를 열었다.

 

“근디, 니는 내가 제삿밥 안 냄겨(남겨)줘두 굶어죽지는 않을껴?”

 

“얼라? 발쌔(벌써) 맴이 변한겨? 제삿밥 냄겨 준다드만?”

 

“니 말마따나, 니 몸띵이 날랜 것은 대자월부텀 석박떼기까정 모르는 사램이 읎는거 아녀? 오죽허믄 어릴 적 별명이 ‘사까다찌(물구나무)’ 아녀?”

 

“히히히. 자랑은 아니지만서두… 내가 원판 몸이 날래구 담이 크니께 선상이 불러갖구선 쫄쫄이 같은 거 하나 턱 내 주드만 ‘니얄(내일)부텀 체조부를 혀라’ 허드라구. 첨 허는 건디두 뭐 어설픈 구석 하나 읎이 자유자재루다가 노니께 선상이 월매나 놀라 자빠지는지, 봉사 기생 사리마다(속옷) 베끼드끼(벗기듯이) 손만 바르르 떨구 말을 못하드라니께.”

 

“대단혔지, 참말루… 선상이 너 댈꾸(데리고) 일본 건너간다구 허구, 니 엄니는 못 보낸다구 울구불구 참말루 눈에 선허네.”

 

“그려, 그때 선상 따라 갔으믄 나가 시방 너 허구선 이 모냥으루다가 시시허게 살았겄냐? 택두 읎어야. 니는 나 따라 댕기믄서 가방모찌(가방수발)나 허구 살 팔잔디…”

 

“애구 참말루 눈에 선허다. 왜눔 선상이 싸온 벤또(도시락) 보구 침 질질 흘리믄서 졸졸 따라 댕기던 모습이 선혀. 다꽝(단무지)물 들어 갖구선 누런 쌀밥 한 입 으더(얻어) 먹겄다구 엥간히 사까다찌 허든 모습이 선혀. 선상이 ‘시라카와(白川)’ 허믄 발딱 인나(일어나)갖구 그답 사까다찌를 허는디, 시상에(세상에) 지 엄니가 돌아가신대구 그 모냥으루 제까닥 몸띵이가 움직일 수는 읎을껴. 낭중에는 벤또만 살짝 뵈줘두 자동으루다가 사까다찌를 허대. 암만, 유명허구 말구. 사까다찌 시라카와.”

 

“염병허네. 사까다찌구 지랄이구 빠스(버스) 좀 후질르지 말구 얼렁 내려. 시방 못 내리믄 담 정거장에서 워찌케 걸어갈라구 혀?”

 

내려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는 ‘젖은 짐승’에게 ‘사까다찌 시라카와’가 창문도 열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

 

“야! 도착허믄 전화허구 자빠져두 전화혀 잉. 자빠져서 못 인나믄 반다시 전화허라구. 까딱허믄 얼어 죽으니께… 저거 저거 빙충맞어(어리석어) 갖구. 애구 참말루 아슬아슬 허게두 걷네.”

 

창밖에서 ‘젖은 짐승’이 다시 눈발에 젖어가면서 알겠다는 듯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유달리 떠나가는 동무들이 많은 때가 늙은이들의 겨울이다.

그래서 날이 심하게 궂은 날에는 동무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 일도 더럭 겁이 나고 방정맞은 것 같은 생각에 꺼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불현듯 동무의 얼굴을 만나면 ‘살아있구나’ 싶은 안도감에 마음이 들뜨고 고마움이 속으로부터 넘쳐난다.

그래서 눈처럼 농담을 퍼붓는 것이다. 고마워서.

 

 

※ 이야기를 소개하며…

 

문장부호 몇 개와 띄어쓰기만 몇 곳 수정한 원형 그대로다.

바닷가에서 멀지않은 곳,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발이 하염없이 날리는 날 완행버스가 노인들을 태우고 난 뒤 벌어지는 일이 그려진다.

버스에 먼저 탄 친구가 도중에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차에 오른 친구가 반가워 챙겨주면서도, 모르는 사람의 눈엔 쏘아붙이듯 퉁명스럽게 대하는 모양으로 비치지만 이내 가슴 밑바닥부터 깊은 사랑을 담은 농을 던지고…

우리 사는 세상 인정이 여전히 이러하기에 살만 한 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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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려가듯 전개되는 글 향기에 머물다 갑니다
자이랑 한번 들러보고 싶어지네요
차가운 날씨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따듯하면서도 진실한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풍경입니다.
그걸 지켜 본 이의 선한 눈도 느껴지고요.
테리우스님도 긴 겨울 초입 늘 건강 잘 챙기시길~
가슴으로 쓰는 글이 마음에 와닿지요.
글이란 곧 그사람으 ㅣ인품이란 걸 새삼스럽게 느낌니다.
청량리서 기차 타고 시골집 가던 일 생각나요
기차에 오르면 충청도 강원도 사투리로 시끄럽던 객차안 아무리 시끄러워도 정겹기만 했는데
가끔 사투리 많이 쓰시는 분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더군요
얼마전에 택시 탓을때 기사님이 속초 사투리 쓰시던데 그분이 알려주셨어요
우리나라 표준어는 서울이 아닌 춘천이라고..
구수한 사투리에 투박한 글 그냥 좋아요

방가워요.y
또 놀러올꼐용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