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사람

한사정덕수 2013. 10. 9. 04:10

 부소대 거쳐 금산산장에서 막걸리 곁들이 아침상 받는 즐거움이란

 

 

금산(錦山)에선 자칫 추색(秋色)에 넋을 잃을 수 있겠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암괴들이 도열해 바다를 굽어보고, 그 아래로 너른 치마를 펼친 듯 제법 넉넉한 품성의 산릉들이 바다까지 잇대어 있다. 수종들만 보더라도 당단풍과 소사나무, 사람주나무, 신갈나무 등 단풍 고운 나무들이 도처에 자리했으니 조만간 가을 빛 깊게 스미면 일순간 마음 빼앗기는 이들로 북적이리라.



-촬영 : 하늬바람 김연선 님(http://blog.daum.net/sunny38)

 

오를 때 본 누린네풀이 있던 자리는 전망이 좋다.

바람이 제법 드세지만 바위로 올라섰다. 순식간에 모자가 벗겨져 멀리 날아갔다.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볼썽사나운 모습에 모자까지 벗겨지니 이런 낭패가…


잠시 발아래 펼쳐진 풍광을 보고 돌아섰다. 서둘러 걸어야 몇 곳 더 눈에 담을 수 있는 일이라 서두를 수밖에 없다. 가을을 마중하는 구절초나 쑥부쟁이가 한창인 금산 망대를 지나 누린네풀 마지막 꽃을 터트린 지점에서 대숲을 따라 올랐던 길을 잠시 내려서면 곧장 오른쪽으로 단군성전과 부소암(부소대) 가는 길이 나뉜다.

누군가 겨우살이 준비로 씨를 뿌렸음직한 무밭을 끼고 곧장 앞으로 나서면 부소암으로 향하는 길이고,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단군성전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단군성전도 둘러보았을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니 단군성전을 둘러보는 건 포기하고 부소암으로 향했다. 이내 아래로 향해 내려서는 계단이 나오고 여전히 숲은 깊다. 해가 오르고도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숲은 지난밤의 눅눅한 어둠이 미련을 떠는지 머물러 있다.



단풍 좋을 금산을 이야기하며 단풍 사진 하나 없다는 게 참으로 기박하다. 남해 금산이 아니면 어떻겠는가. 설악의 단풍이 더 고운 것도 아니며 남해 금산 단풍이 설악의 단풍보다 더 고운 일도 없으니 더불어 즐겁게 마음으로 그려 볼 일이겠다. 사진은 이곳 설악의 요즘 풍경이다.

설악에서야 10월 초부터 빛 고운 단풍 만나는 일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다.

어느 산이고 일부만 본 이들은 그걸 산의 전부로 판단하기 쉽다. 이런 판단이 세상으로 나서면 사람에 대해 자신의 관점이 그르다는 생각은 접고 깊이가 부족한 인상만을 갖게 될 어리석은 관찰자 되기 십상이다.

남해 금산은 금산 나름의 아름다움과 관능적 미를 갖추었고, 소백이나 지리산은 또 그 나름의 풍부한 감성을 나눌 줄 아는 미덕을 갖춘 산이다. 설악산이야 누가 뭐라 해도 휴전선 남쪽 우리 사는 이 땅에서는 최고의 섬세한 풍광을 두루 갖추어 감미로운 절창으로 사계를 노래하니 아니 좋은가.



내 제법 오래전 썼던 글이지만 남해 금산에서 아침을 맞이한 감동이 닮아 여기 소개한다.

 

먹을 갈며

 

1.

촛불 밝혀

어둠을 밀쳐내고

향 한 촉 사루어

마음을 정케 하고 먹을 간다

 

2.

벼루 속

분연히 피는 신비의 세계

명징(明澄)의 선계(仙界)로 가는

길이 열린다

 

말그라니

선경의 구름이 일고

어데, 신선의 불로불사

젖은 향기

 

형형의 색

휘황한 홍예교를 건너나니

금학이 날고

만장 첨봉에

물소리 청량하다

 

3.

더 이상

검어질 수 없는

무지개빛! 처연히 머금은

태고의 바다

 

검은 것은

흰 것을 위하여

흰 것은

검은 것을 위하여

 

태초

신이 안배한

절대 안정의 이치

 

4.

황모필 흠뻑

선계(仙界)의 힘을 머금어

순지에 옮기나니

 

구름․

바람․

파도․

 

질․서․가․정․연․하․다.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보지만 보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니고 풀어낸다.

마찬가지로 부소대를 암벽등반가가 본다면 어떤 방식, 어느 루트를 개척해 오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역사가가 보면 단군의 아들 부소나 진시황의 아들 부소를 비교 분석하려 들 것이다.

신앙적 관점에서야 우리 어머니들께서 자식의 무궁한 안녕과 성취를 기원하셨듯이 염원의 대상으로 지극 정성으로 치성드릴 도량으로 대할 수 있다.



부소대(법왕대)나 부소암(扶蘇岩)에 대해 남해를 여행한 이들이라면 아무래도 남해 상주면 석각과 관련지어 이야기가 쉽겠다.

지금은 남해 읍내를 경유하면 쉽게 원형을 그대로 본 떠 새겨놓은 진시황과 관련된 상형문자라 소개하는 바위 하나를 만난다. 읍내에 있는 이 석각은 근래 조성한 것이고, 원형은 ‘남해 상주면 석각’이라 하여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에 있다.



위의 사진이 바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 남해 상주면 양아리 석각이다.

최근 이 석각을 두고 별자리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이를 단순한 민원 정도로 치부하는 공무원도 상당수인 모양이다. 솔직히 나도 이 석각은 누군가 별자리를 쳐다보며 새겨놓은 게 아닐까 싶다. 그만큼 별자리와 닮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되려면 진시황의 불로초와 관련지어 보는 게 재미지다.

이번 남해 금산 탐방에서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이 석각을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금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천 다랭이마을과,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 / 인조 15∼숙종 18) 선생이 유배를 당해 살았다는 노도 방향으로 어림해 위치를 짐작해 본다.

이런 정도의 시각으로 이 석각을 대하면 좋을 일이다.

혹여 남해에서 노도를 유배문학지로 근사하게 꾸밀 계획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로초를 구하려 동해를 향해 배를 탔다는 서복과 관련지어 관광지로 크게 부풀려 볼 계획이라도 세우려면 신중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제주도 서귀포 또한 이에 만만치 않게 구구한 예를 들며 나설 일이 자명하고.

혹자는 서귀포가 서복의 다른 표현일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말하기도 한다.

제주 서귀포시만의 문제도 아니다. 일본 또한 이미 고려때부터 서복을 도래인으로 인정하고 사당까지 세워져 있었음이 내 조상의 문집을 통해 알려졌다. 서복 설화는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1337~1392)선생의 글에서도 다루어졌는데, 포은 선생께서 고려 우왕 3년(1377) 9월부터 이듬해인 7월에 고려로 돌아오기까지 대략 1년간 왜구의 준동을 억제하는 봉명사신으로 일본 큐슈(九州)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이때 큐슈에서 서복의 사당 서복사(徐福祠)가 세워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 지었을 것으로 유추되는 한시 여러 편이 포은집(圃隱集)(1439년 초간)에 전한다.

그 중 한 부분을 살펴보면, 「張騫槎上天連海(장건사상천연해) 장건의 뗏목 위는 하늘이 바다에 닿았고 / 徐福祠前草自春(서복사전초자춘) 서복의 사당 앞에는 풀잎이 스스로 봄빛을 띠었네」라 되어 있다.



그런데 왜 남해에서는 이 부소대를 시황제의 장남인 부소(扶蘇)를 연결 지으려 할까?

강화 전등사가 있는 삼랑성을 기준으로 볼 때, 보다 남쪽인 남해군은 단군의 아들과 연결 짓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보다 많은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절호의 기회로 여겨서는 아닐까 싶다.


부소는 어려서부터 영특한 왕자였단다. 그런 부소가 왜 궁에 머물러 황제가 못되었던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정설로 통한다. 부황(父皇)인 시황제의 정치적 문제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대해 잘못을 간언해 분노를 샀고, 북방 흉노를 상대하는 국경 경비대 감독을 명령받아 장군 몽염(蒙恬)과 함께 보내졌다.

또 다른 내용으로는 부소가 시황제에게 귀한 적자(嫡子)였기 때문에 제왕학을 가르치려는 일환으로서 몽념에 딸려 보낸 것이란 설도 있다.

그러나 다음 내용을 보면 부소가 부소대와는 관련 없음이 드러난다.

BC 210년 시황제가 급서한다.

이때 시황제의 상(喪)을 주관하던 환관 조고(趙高)는 승상 이사(李斯)와 함께 부소에겐 시황제의 죽음을 숨겼다. 시황제의 죽음을 부소에게 숨겼음이 정설이라면, 부소를 흉노의 침범을 방어하는 수비대로 보낸 것이 분서갱유에 대한 간언도 있겠으나 조고와 이사의 모략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돼야 제대로 연결되는데, 부소가 궁으로 돌아와 황제가 되면 당장 그들부터 척살할 것이기에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는 시황제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꾸몄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아들 호해(胡亥)를 옹립해 황제로 만들어버리고, 부소에게는 자결할 것을 명하는 성지(聖旨)를 내리면 아들인 동시에 신하인 부소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결하게 된다. 물론 역사는 장군 몽념이 시황제의 성지라고 하는 것이 거짓 성지인 것을 간파하고 부소에게 진언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부소는 “의심하는 것 자체가 도리에 어긋난다”고 말한 뒤 성지 내용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는데, 어찌 부소대가 시황제 아들과 연관이 있단 말인가. 흉노를 상대하던 부소요, 거짓 시황제의 성지를 그대로 따라 자결한 그가 몇 천리 먼 길을 달려와 머물 까닭이 없는 일이다.

‘실체적 기준이 될 수 있는 엄격한 도덕성을 갖추었다면’과 같은 방식의 인식만으로는 미래를 책임질 위치에 서지는 못한다. 미래란 불확실성에도 때로는 도전할 줄 알고 그에 상응하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할 능력을 겸비해 대응할 때 밝은 법이고, 더러 실패도 용인되는 일 아닌가.



부소대에서 작은 암자인 부소암을 찾아가는 길은 바위를 온전히 한 바퀴 빙 둘러 돌아야 한다. 가며 간간히 눈에 띄는 바위산에서 만날 수 있는 넉줄고사리나 부처손, 구실사리 같은 걸 살펴보는 것도 각별한 학습이다.

예외 없이 구절초 드물지 않게 피어 있어 반가운데 일순 작은 철문 하나 앞에 조용히 열려 있다. 문을 통과해 들어서자 이내 바위를 깨 물을 받는 곳이 나타난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속이 먼저 반긴다. 물 한 모금 달게 마시고 계단을 오르며 둘러보니 그저 두어 사람 족히 먹을 고추며 몇 종류 남새를 가꾸는 밭이 정겹고, 이른 아침 찾아든 길손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내어주는 보살의 모습이 정갈하여 삿된 마음의 싹 잘라내기 부족함이 없다.



누가 언제 어떤 사연으로 각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부소암 오기 전 단군성전과 충분히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부조가 눈에 들어온다. 호랑이를 탄 산신할매상이다. 경사도 졌지만 바위가 떨어져나가 자연스럽게 처마를 이룬 자리에 세긴 암각화는 그 덕에 손상되지 않고 긴 세월을 견뎠겠다.

아, 그리고 삼태극이라니…

다양한 종교에서 광배가 나타난다. 부처도 광배가 있고, 예수도 광배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단순한 원형의 형태로 광배를 머리 뒤에 세우거나 그린다. 여기 이 부조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을 담은 삼태극이니!

작은 암자에 들렸던 이들 하나 둘 앞서 떠나고 잠시 툇마루에 앉았던 몸을 일으켜 든 문을 향해 이제 나서고자 한다. 들고 남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음도 몸이 건강하여 가능한 일이니 이 또한 세상 살며 감사하다.

바람 모진 철다리를 건너 되짚어 무밭머리까지 올라서야 금산산장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 자락인 금산에 기대 산지 100년이란 역사를 지닌, 돌을 쌓아 터를 다지고 지은 건물이 산을 닮았다. 금산산장이다. 보리암과 더불어 오랜 세월 금산의 한 부분으로 명맥을 이어왔을 이곳을 다른 국립공원과는 달리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해 쫓아내거나 허물어내지 않았다.

크게 꾸미지 않은 밥상을 마주해 막걸리 몇 잔 곁들인 아침이 만족스럽다.

맛으로 따지면 굳이 이 산중에서 아침을 먹을 일은 없다. 자리에 어울리게 차려낸 밥상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이들만이 소박한 밥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소박한 즐거움 또한 남해군을 보물섬으로 만드는 일이겠으니…


어쩌다보니 진시황의 죽간을 태우는 사건을 이르는 분서갱유(焚書坑儒)부터 내 조상님께서 지으신 포은집의 칠언절구(七言絶句)까지 거론되었나 모를 일이다. 하여튼 기왕에 포은 정몽주 할아버지의 칠언절구를 거론했으니 이 글 말미에 서복의 사당에 대한 대목을 이미 밝혔으니 전문 모두를 소개한다.


弊盡貂裘志未伸(폐진초구지미신) 갓옷 해지도록 뜻을 펴지 못했네

羞將寸舌比蘇秦(수장촌설비소진) 세 치 혀를 소진에 견주기 부끄러워라

張騫槎上天連海(장건사상천연해) 장건의 뗏목 위는 하늘이 바다에 닿았고

徐福祠前草自春(서복사전초자춘) 서복의 사당 앞에는 풀잎이 스스로 봄빛을 띠었네

眼爲感時垂泣易(아니감시수읍역) 계절을 보는 눈엔 눈물 흐르기 쉬운데

身因許國遠遊頻(신인허국원유빈) 나라에 바친 몸 멀리 사신 자주 가네

故園手種新楊柳(고원수종신양류) 고원에 손수 심은 새로운 버드나무

應向東風待主人(응향동풍대주인) 아마 동풍 향해 주인을 기다리리

異域山河故國同(이역산하고국동) 이역의 산과 물 고국과 다름없는데

天涯垂淚倚孤峯(천애수루의고봉) 타향에서 눈물 흘리며 외로운 배를 의지했네

波聲寂歷河關閉(파석전력하관폐) 물결 소리 스산한데 하관은 닫히었고

落葉蕭條城郭空(낙엽소조성곽공) 지는 잎 쓸쓸한데 성곽은 비었구나

野路細分秋草外(야로세분추초외) 들길은 가을 풀 밖에 가늘게 갈라졌고

人家多住夕陽中(인가다주석양중) 인가는 석양 속에 많기도 하다

征帆萬里無回棹(정범만리무회도) 만릿길 멀리 왔는데 돌아가는 배 없으니

碧海茫茫信不通(벽해망망신불통) 아득한 푸른 바다 소식 전할 길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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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금산이
한사님의 시와 만나 이제 선계가 되었네요
고운 휴일 되십시오~
창밖 벚나무는 이미 저문 가을입니다.
남녘은 아직은 늦여름 같은 기분으로 살겠지요.
맑고 향기로운 날 되시길~
가을만 되면 만나는 우리는 견우직녀인가... 하하
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네, 1년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만나는군요. ㅎㅎㅎ
아침상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요?
아침 먹은 이야기는 그저 글로만 표현하고 말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봐서 한꺼번에 먹은 음식들 나열할까요. ^^
이야기가 있으니 그만큼 역사가 있는곳이겠죠. ^^ 잘보고 갑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때로는 그게 마치 정설인 것처럼 먼 훗날 기록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다양한 사료들을 참고해 추적하면 먼 후일에라도 진실된 역사는 밝혀지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