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사람

한사정덕수 2013. 10. 11. 10:23

 물이 들기 시작하면 아직 빈 바구니인 이들은 미련을 버리기 어려우나

 

 

한 시절 내 아버지는 어째서 어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다.

비린 생선 한 토막 밥상에 오르면 좋겠다는 바람이 내 아버지가 어부가 아닌 탓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바닷가에 살면 거저 매 끼 밥상에 비린내 물큰한 생선 토막 오를 줄 아는 낯설고 허망하기 그지없는 어리석음이여! 그곳 삶도 팍팍하긴 매일반이란 걸 체득하기까지 제법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시골 사람이 서울 동경하고, 서울 사람 시골 사는 일 거저먹기인 줄 아는 것처럼 철없음이라 치부하기엔 진정 어리석었고, 바닷가 사는 이들에게 이제는 정말 깊이 미안하고 고맙다.

그런 고마움은 세상 어디에든 존재한다.

1985년 지독히도 무더웠던 그때 몇 사람 함께 제기동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상중(喪中)이었던 나는 검정색 양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날도 누군가의 장례식엘 들렸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양복까지 갖춰 입은 우리 일행이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자 차에 오르는데 억지로 밀고 들어가야만 탈 수 있으니 그 고통이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운전기사 뒤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섰을 때다.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버스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버스엔 승객이 별로 없어 자리가 남아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스무 살 남짓 되는 여성도 시큼한 땀내 나는 사내들 중간에 끼어 고통스러웠을 일인데, 일행 한 사람이 막 지나쳐 가는 버스가 부럽다고 했다. 그때 다른 일행이 말했다.

“더 이상 탈 수 없어 정류장에서 다음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우린 행복합니다.”

그렇다. 내가 아무리 부족한 거 같아도 나 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이 세상엔 또 있다. 주어진 현실에 대해 감사하고 보다 행복한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 조금 더 수고 하는 일, 그런 삶이 아름다운 법이다.



바닷가 사람들은 시간이 뭍에 사는 이들과는 다르다. 물때에 맞춰 사는 까닭에 그들의 시간은 달이 차고 기울기에 따라 움직이고, 물이 들고 나는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일을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바닷물이 들고 나는 때가 그들에겐 시계인 것이다.

좋은 물을 만나면 제법 솔잖게 돈도 쥐었을 그네들의 삶 속으로 단 몇 시간 들어가 ‘체험’ 이란 걸 해봤다.

 

갯벌에 장대를 박고 그물을 고정시켜 매달아 썰물이 들어오면 그물을 내려두고 밀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숭어나 농어, 감성돔 등 다양한 생선을 맨손으로 잡는 개막이 그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체험할 고기잡이는 개막이가 아니라 두 개의 막대에 넓고 긴 날개처럼 그물을 매고, 다시 막대에 끌어당길 당김줄을 묶어 이걸 양쪽에서 당기며 물고기를 한데 몰며 끌어낸 뒤 잡는 방식인 후릿그물질이다. 한 척의 배가 물고기를 가두기 적당한 바다에서 그물을 먼저 내리는 작업부터 후릿그물질은 시작된다.

그물코가 제법 큰 까닭에 몸통이 제법 실하지 않으면 모조리 빠져 나갈 수 있으니 이 또한 바다에 대한 배려겠다. 제법 큰 멸치만 하더라도 멸치 아닌 다음에야 어디 생선으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그래도 그런 그물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새우는 곧잘 걸리겠다.

 


입담 걸쭉한 어촌 아낙(박성아 사무장)의 한 마디에 모두 어린 아이가 되는 곳이 문항마을이다.

문항마을 어촌체험 사무소에서 보면 정면으로(사진에서는 왼쪽으로)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두 개의 섬이 있다. 상장도와 하장도로 바닷물이 들어차는 만조 때는 배로만 갈 수 있으나,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이 섬과 연결된 길부터 드러나 걸어서 갈 수 있다.

문항마을 어촌체험 사무소에서 장화를 받아 신은 우리도 바다로 들어갔다. 우리는 후릿그물만 체험하기로 해 장화와 장갑만 받았지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이들은 갯벌에서 조개를 캘 호미와 바구니 하나씩 받아 갯벌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거 소주 안주 장만하려면 소금이나 된장 가져왔어야 되는 거 아닌가?”

소금으로는 맛을 잡고, 된장으로는 쏙을 잡을 수 있으니 그런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냔 소리다.

 


“카메라 젖어도 책임 안 져요.”

후릿그물을 당기러 들어가는 우리가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 나서자 진행을 돕는 박성아 사무장이 한 말이다. 몇 사람은 카메라를 벗어 방파제에 앉아 기다리는 이에게 맡겼다. 그러나 젖을 땐 젖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촬영하려는 이들은 여전히 카메라를 맨 그대로 장화 신고, 장갑 낀 채 갯벌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앞 선 이들 옷차림이 허드레옷으로 갈아입었다고는 하지만 처음 시작이니 말끔하다.

집에서 먼저 출발했던 난 허드레옷을 챙기지 못했기에 입던 옷 그대로 나섰다.

 


갯벌에서는 먼저 도착한 이들이 아이들과 조개를 캔다.

후릿그물이야 긴 장화만 제대로 갖춰 신고 장갑만 끼면 되겠지만,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체험은 털썩 주저앉아도 좋은 허드레옷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더구나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무언가에 몰입하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니 공연히 좋은 옷 입혀 옷 자랑 할 생각일랑 처음부터 접어야 한다.

하기야 말끔한 등산복 바지 입고 바다에 들어간 내가 아이들 옷 참견 할 일 아니겠다.

 


후릿그물을 내리던 배에서 소리를 지르면 들릴 정도까지 갯벌이 드러나고 우린 그물을 당길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발이 작다고 장화 높이가 다를 줄이야!

270mm 이상 되는 장화는 높이가 40cm은 족히 되고, 245mm를 신는 장화는 30cm 남짓 되니 맨 뒤에 섰어도 바닷물이 장화 목전에 찰랑거린다. 바다에 들어가 작업하는 어부의 배장화가 탐나는 순간이다.

양쪽 합쳐 4~50명은 되어야 당길 수 있다는 후릿그물을 20여 명 남짓한 인원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지…

 


줄을 당겨 그물을 맨 막대가 바닷물이 빠진 갯벌까지 오자 이번엔 줄을 놓고 직접 막대를 잡고 끌어당겨야 한다. 그물이 들리면 고기가 모두 내빼니 일부는 그물을 갯바닥에서 들리지 않도록 바닥으로 밀고, 일부는 그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야 당길 수 있다. 하기야 20명 조금 넘는 사람이 두 조로 나누어 그물을 당겼으니…

그물이 점차 얕은 곳으로 조여들자 놀란 고기들이 그물 밖으로 튀어 넘는다.

어잇싸!

어잇싸!

박자 맞추어 열심히 그물을 당기고, 짬짬이 사진을 한 손으로 초점 맞추고 노출 맞춰 촬영하자니 장화 속으로 물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양쪽 사람들이 겹치게 되자 이제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는 일만 남았다.

꽃게도 걸렸고, 제법 씨알 굵은 숭어도 여러 마리 걸렸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 등껍질 벗겨 초고추장 살짝 찍으면 소주 한 잔 생각 간절한 대하(大蝦)도 나왔다.

갑오징어는 놀라 먹물부터 내뿜고, 순간적으로 흰 속살 드러낸 여러 개의 다리를 보고 “낙지여?”하자 “쭈꾸미여!”란 대답이 돌아온다.

 


그물을 갯벌로 살살 당기며 조심스럽게 그물에 걸린 고기를 찾는 이들은 마냥 즐겁다.

어른 1명당 체험비가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건 10,000원에 장화 대여료 2,000원이지만 개막이나 후릿그물은 15,000원이니 그물질 잘못하면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설 이들 많겠다.

박성아 사무장이 처음에 주의사항을 일러주며 했던 말이 있다.

“돌아가서 사실 그대로만 써야 됩니다.”

욕심 없이 그물질을 했고 미련 없이 돌아서 왔으니 얼마 못 잡았다고 난 섭섭하지 않다.

그러나 각자 체험비에 넘치는 고기를 잡을 욕심을 낸다면 실망 큰 날이 더 많을 일이다. 물론 그런 이들을 위해 조개를 캐는 체험에도 마을 어르신께서 손수 큼직한 우럭조개를 캐 바구니 가득 담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돌아가 섭섭함 토로하면 그런 소식은 재빠르게 옮겨 다닌다.

 


그래도 처음 해 본 후릿그물질에 이만큼 잡은 게 어딘가. 그물질할 사람이나 많았다면 또 모른다. 22명 중 뭍에서 카메라 지키던 이 빼고 사진 촬영하던 이들도 빼면 우리 일행은 채 20명도 안 된다. 조개를 캐다 달려와 거들고 체험 안내를 하던 이들까지 거들어 끌어낸 그물이니 이만큼이 어딘가.

시간 넉넉했다면 뭍으로 돌아와 회 썰어 술 한 잔씩 나눴겠지만 독일마을로 향할 일정 때문에 바구니에 담는 걸로 우리 역할은 끝났다.

그래도 막 잡아낸 갑오징어와 전어, 대하는 미련이 없다곤 못하겠다.

 


회를 떠도 너덧 접시 충분하겠고, 갑오징어 너덧 마리면 소주 몇 병 금방 비워질 양이다.

“젊은 사람 별로 없어.”

온 마을 주민이 모두 이곳 체험장에서 그물을 놓고 안내도 한단다. 그 덕에 이웃 간의 정도 좋다고 성긴 이를 드러내며 사람 좋게 웃으며 한 노인이 말했다.

어떤 마을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관여할 수밖에 없어 분쟁이 잦은데 문항마을은 전 주민이 모두 동참한다니 그로서 복 받은 마을 아닐까.

 

바다에 목숨 줄 걸고 사는 이들에겐 바다가 삶의 전부다.

농부에게 땅이 전부인 것처럼!

 


들어 올 때 눈 여겨 봐 두었던 아이를 찾았다.

부모가 곁에 없어도 아이는 갯벌에 주저앉아 조개 캐기에 빠졌다.

이 아이가 자라 스스로 삶의 터전을 찾을 때면 지금의 경험도 큰 작용을 할지 모른다.

농부에게 땅만큼 정직한 것도 없듯, 어부에게 바다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다시 아이를 본다.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아직 글을 제대로 깨우치긴 어려보이지만 아이들도 자신의 감동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한다.

늦은 결혼으로 이제야 11살과 9살 아이를 둔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도 자신이 아주 어려서 경험한 일이라도 상당한 감동을 느꼈던 부분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해낸다는 사실이다.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하니 마음이 먼저 기억해 몸짓으로 나타내 부모 손을 잡아끄는 행동을 보인다.

 


빠졌던 물이 다시 들기 시작하면 체험은 마쳐야 한다.

사람 수에 맞춰 받은 바구니 가득 우럭조개를 잡은 이들은 마냥 행복한 모습이고, 아직 빈 바구니가 남은 이들은 미련을 버리기 어려운 법이다. 아이도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들어오기 시작하는 바닷물이 야속하기만 하다.

 

과연 몇이나 이런 생각을 할까?

라면이 70년대 20원도 안 할 때가 있었는데 그동안 60배 이상 가격을 치솟았다. 그러나 남해안 어민들의 주된 수입원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서글픈 진실 말이다. 김 한 속 가격이 여전히 3,000원 안팎이고 그 많던 고기는 빈 그물질로 고단한 삶을 부여잡은 어부를 서글프게 만들었다는 사실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 또한 욕심이 자초한 면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어민들 스스로의 욕심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싼 가격의 수입농수산물이 범람하게 만들고 우리 것 소중한 줄 모르는 마음들이 과한 욕심을 부려 이런 현실이 되었음을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싶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남해안 어디나 김발이 뱃길을 막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이제 날이 선선해지면 석화(석굴)이 제철이다.

문항마을에도 석화가 많다. 바위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굴은 붙었다.

 

마산에서 출발한 버스가 지족해협을 가로질러 남해로 들어가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아닌  진교I.C와 하동I.C에서 들어가는 남해대교를 이용해 들어갔는지 문항마을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문항마을을 창선대교로 건너 들어가려면 아무리 짧은 길을 이용해도 1시간 이상 더 걸린다.

가을, 혹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문항마을을 찾아보길 권한다.

 

문항어촌체험마을․문항마을:055-863-4787/010-2224-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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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싱싱해보여요~~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시간 되시면 제 블로그도 방문부탁드려요^^
일당백님 가니 탐 나는 거 많더군요.
블로그하는 입장에서는 노트북이 가장 탐 나긴 하지만~
후리그물로 고기를 잡으시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셨네요.
늘 손에 쥔 것들에 대해 더 많은 욕심을 가지게 되는 오늘의 삶인데
그런 삶에대해 돌아보게 하시는 듯 합니다
고운 날 되십시오
손이 하는 일과 눈이, 그리고 입과 머리와 발 모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게 사람 아닌가요.
거기에 가슴은 또 다른 마음을 품고요. ^^
하늬바람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울애가 갯벌을 엄청 좋아해요...남해서 쏙도 잡고 서해선 맛조개 잡는걸 좋아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네, 남해서 쏙도 있고 맛과 우럭조개도 있더군요.
부산 사시는 거 같은데 멀지 않으니 언제든 다녀오실만 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