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사람

한사정덕수 2013. 10. 12. 05:38

 찾다 지쳐 포기하고 벗어놓았던 갓을 드니 그 밑에 논 한 배미 숨어있던

 

 

남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응당 금산과 가천 다랭이마을을 떠 올린다.

그들에게 다랭이마을이나 금산은 ‘아름답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남해에서 그곳이 가장 아름다운 곳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으련만 사람들은 일단 남해에 대한 기억으로 이 두 곳을 첫 손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금산은 모르겠으되 다랭이마을을 아름답다 여기게 된 것은 사진으로 보여주는 바다와 어울린 가파른 비탈에 고된 노동의 대가를 치르고야 마련했던 다랭이논 때문이다.

 


두 해 전 남해를 찾아 썼던 글을 여기 잠시 옮겨 본다.

걸으며 탄복한다.

걸으며 탄식하게 되었었다.

가천마을을 찾은 까닭은 황금빛으로 일렁일 논배미를 볼 예정이었는데, 애초 벼를 심지 않았으니 황금빛 다랭이 논은 일순간 탄식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나선 길 바래길을 걸으며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돌을 지게로 몇 덩이씩 옮겨 쌓고 논을 일군 고통의 흔적에 탄복하게 되었다.

남해읍내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반주로 소주 반병을 마셨는데 물 한 통 준비하지 않고 걷다보니 초가을 뙤약볕에 이내 갈증이 견딜 수 없다. 샘 하나 만날 수 없는 이곳에, 그렇지 않아도 생활에 그리 큰 도움도 되지 않는 벼농사를 짓겠거니 바랬던 내 자신이 한심하고 미안해진다.

목 축일 한 모금의 물도 없는 이곳에 논을 일구고 억척스레 물을 길러 날랐을 그들의 삶이 참으로 기박하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감탄을 했던 우리가 실지 그 속에 들어가 삶의 터전으로 삼았을 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적응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부터 필요하다.

평화롭게 비치는 햇살 아래 구름 둥실 떠가는 다랭이논은 나들이객들이 구경하기 좋은 풍경이지만, 물이 부족한 척박한 농토를 일구어야 할 이들의 속은 바짝 타들어 가기 마련이다. 같은 햇살이라도 고된 삶을 사는 이와 나들이객의 차이는 그렇게 서로 상반된 법이다. 맑은 샘이라도 철철 넘치면 걱정이 있겠는가.

문제는 또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밥을 챙겨먹는 일이 적어졌다. 자연히 쌀이 남아돌고 농업기술의 발달로 같은 평수의 논에서도 예전에 비하면 많은 수확이 당연시 된다.

거기에 더해 정부가 나서서 수입까지 하니 농민들은 속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런 이들에게 농토를 붙잡고 명승으로 지정해줬으니 팔리지도 않는 벼농사를 매년 지으란 요구는 애초 무리였다.

 


다만 가천 다랭이마을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인정만큼은 변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방식도 변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농주나 담가 어쩌다 찾아드는 이들에게 막걸리 값만 치르면 김치 한 접시 내어주던 그 인정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이다.

차차 음식점을 하는 이들도 늘어나겠고 서로 경쟁도 치열해지겠지만 담장 낮추어 살던 인정, 바로 그런 인정만큼은 오롯이 지켜져야 훗날에도 누군가 추억 더듬어 찾아들 것 아닌가.

 


다랭이논을 일러 삿갓배미란 말로 곤궁하고 고달팠을 삶을 표현했다.

작은 정자 하나 세워진 자리도 논이었고, 그 뒤 벼랑 가까운 자리도 모두 오래전 농사를 짓던 논이었다는 걸 바래길을 걸으며 확인했다.

삿갓배미란 농부가 일을 하다 논을 세어보니 논 한 배미가 모자라더란다. 농부는 다시 세었지만 여전히 부족해 자신의 논 한배미를 찾기 시작했는데, 찾다 지쳐 포기하고 벗어놓았던 갓을 드는데 그 밑에 숨어있더라는 얘기다.

벼 한 섬 겨우 거둬드릴 작은 다락논(다랭이논)이 산 중턱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올망졸망한 곳, 농사일을 한다는 게 평원과 달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은 곳이니 그런 삶에 미련도 없었으리.

 

남해가 보물섬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은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 때문은 아닐까. 심신이 지친 이들이 찾아 돌아갈 고향의 풍경을 갖추었기에 보물섬인 것이다.

이제 그 땅에 남해 특산물 마늘이랑 시금치 심고, 더러 길손들 찾았을 때 섭섭하지 않을 남새 골고루 심어 인심 나누며 살면 여전히 가천 다랭이마을엔 길손이 끊이지 않고, 남해 최고의 보물이 되리라.

젓국에 무친 고춧잎나물도 좋고, 냉이나 달래무침 한 종지면 푸지게 따른 막걸리잔 넘치듯 그렇게 넉넉한 웃음 나누며 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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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마을 자세히 좀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헛걸음만 했습니다.
갈때마다 변해가는 다랭이마을,
한편으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한사님의 글을 읽다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들 편하게 사는 일,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는 세상에게
다른 누군가에는 여전히 불편한 삶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래도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이긴 합니다.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 었어요~ 잘보고 갑니다.